최후의 신조
1. 개요
The Last Article
미국의 소설가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 단편소설이며, 1988년 미국의 SF 전문 잡지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지에 발표됐다. 대한민국에서는 2010년에 페이퍼하우스에서 번역 출간된 장르문학 단편선인 <장르라고 부르면 대답함>에 수록되었다.[1][2] 옮긴이는 조호근.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면서 발터 모델 원수가 이끄는 독일 국방군이 영국령 인도 제국을 점령한 뒤, 독일군의 점령에 반대하는 마하트마 간디와 발터 모델이 사상적 대결을 펼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소설 제목의 뜻은 이 단편소설의 시작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 간디의 어록 '''"비폭력은 나의 첫 번째 신념이자 최후의 신조이다."'''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바로 밑에는 깨알같이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인용한 '''"이성에 대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포와 폭력이다."'''가 적혀 있다. 흠좀무...
2. 줄거리
1947년,[3][4] 발터 모델 원수가 이끄는 독일군이 인도 대륙에서 저항하던 클로드 오킨렉 원수[5] 휘하의 인도 주둔 영국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다. 영국 본국은 이미 1941년에 항복했으나, 인도 주둔군은 그 뒤로도 추축국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게 끝난 것이다.
새로 손에 넣은 인도를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하던 모델 원수에게 어느 날 마하트마 간디가 찾아온다. 간디는 독일군이 인도에서 철수해줄 것을 모델에게 요구하나, 모델은 당연히 이를 거부하고 간디를 협박한다. 그러나 간디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인도의 독립을 주장하고 돌아간다. 모델은 간디의 비범함을 꿰뚫어보고 간디가 여타 정치인들과는 다른 위험한 인물이라고 보고 강경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간디와 자와할랄 네루는 델리의 거리에서 비폭력적인 독립 요구 행진을 시도한다. 네루는 바이센탈[6] 이라는 유대인이 해준 홀로코스트 이야기 때문에 걱정하지만, 나치의 끝갈데 없는 잔혹함을 모르고 있던 간디는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냐며 믿지 않고 그대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계속한다. 집회는 불법으로 규정됐기 때문에 1개 분대 규모의 독일군 순찰대가 나타나 해산할 것을 요구하지만, 간디의 비범함에 압도된 독일군 병사들은 행진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위 행렬에 멍하니 끌려가게 된다.
모델은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1개 소대를 이끌고 현장으로 가서 간디에게 당장 집회를 해산할 것을 요구하나 간디는 이에 불복한다. 모델은 간디에게 홀린 순찰대원들을 일단 자기 쪽으로 다시 불러내고[7] , 마지막 수단으로 손수건 하나를 땅바닥 위에 떨어뜨린 다음 손수건이 놓인 지점을 인도인들이 넘어올 시 발포하겠다는 경고를 한다. 마음을 굳게 먹은 간디와 인도인 군중은 기어코 선을 넘게 되고 독일군은 군중에게 소총과 기관총을 무차별 발포한다.
간디는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앞을 막고 그를 피신시키는 바람에 네루와 함께 살아남는다. 간디와 네루는 그들의 추종자들이 마련한 은신처를 옮겨다니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은신생활 도중에 두 사람은 독일군 병사들이 모델 원수의 명령 아래, 독일군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죽어가던 인도인들을 확인사살하기까지 했다[8] 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암리차르 사건 때처럼 독일 본국에서 모델 원수의 만행을 알고 그를 처벌함으로써, 인도 독립의 명분과 인도 국민들의 저항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은신처에서 라디오로 '라디오 베를린'의 영어 사용 채널에서 방송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독일 정부가 모델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지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이 무색하게 라디오에서는 "제국보안본부 장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인도에서 일어난 소요사태를 영웅적으로 진압한 발터 모델 원수의 행동을 '''크게 칭찬했다"'''는 소식과 함께 간디와 네루에게 현상금이 걸렸다는 소식도 전한다. 간디와 네루는 독일인들이 그동안 상대했던 영국인들과는 다른 상대였다는 현실을 깨닫자 절망하고 분노하면서, 이윽고 인도인 전체의 파업 운동으로 독일군의 점령정책을 마비시킨다는 계획을 실시한다.
모델 원수는 인도인들이 파업하는 바람에 점령 정책이 차질을 빚게 되자, '''파업에 참여한 인도인들의 명단을 작성한 뒤, 명단에서 매 스무 번째 오는 이름을 엑스 자로 지워버리고, 이렇게 걸린 자들의 집에 1개 분대씩 보내 대상자를 길거리에서 총살하는''' 작전을 파업 운동이 끝날 때까지 지속할 것을 명령한다.[9] 이 무지막지한 탄압 정책으로 인해 인도인들은 저항 의지를 점점 상실하고 만다. 또한 모델은 힌두교 신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무슬림들을 이용해 힌두교 신자인 간디를 찾게 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결국 현상금에 눈이 먼 무슬림 인도인이 배신하는 바람에 독일군에 체포된 간디와 네루가 총살형을 당하면서 소설은 마무리되는데, 결말에서 독일군에 체포된 간디가 모델과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눈 후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직전[10] 둘이 마지막으로 주고받는 대사가 이 작품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역사가 우리를 평가할 것입니다."'''
원수가 일어서서 그를 끌어내 가도록 명령하는 동안, 간디는 그를 향해 경고했다. 모델은 웃음으로 답했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오."'''
3. 기타
실제 인물인 발터 모델은 소설과 달리 비정치적인 군인으로[11] 독일 정부와 집권 여당인 나치당을 철저하게 분리해서 판단했고, 1944년에 일어난 바르샤바 봉기에서 SS 국가지도자 겸 보충군 사령관인 하인리히 힘러가 진압 병력을 바르샤바로 파견할 것을 명령했을 때 '''"바르샤바 봉기는 폴란드인에 대한 나치당의 가혹한 통치로 인한 것이며, 이러한 후방 지역의 민간인 소요 사태에 절대로 군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12] 며 딱 잘라서 거절한 바 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모델은 차라리 테오도어 아이케와 비슷하다.[13]
작중에서 영국, 소련은 이미 나치 독일에 항복한 뒤이며, 특히 소련에서는 '''게오르기 주코프가 발터 모델에게 사로잡힌 뒤 총살형을 당했다'''고 언급된다. 미국은 2차대전이 일어났음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립주의 정책을 유지하다가 뒤늦게서야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듯하다. 그 예로,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라디오 뉴스에서 "아프리카 정글에서 독일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군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군 사이에서 대리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하자, 그걸 들은 간디가 '대양이라는 장벽 뒤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낀 미국은,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는 생각을 하며 슬퍼한다.
한편, 해당 라디오 뉴스를 통해 일본 제국이 대동아 공영권을 완성한 것으로 유추되는 소식이 전해지는데, 만주국 - 일본 점령지 중국 - '''일본 점령지 시베리아''' 사이의 교역 협정 소식과 함께 대동아 공영권에 간섭하는 미국에게 독일이 경고를 보냈다는 소식도 보도된다. 영국과 소련이 조기에 처발리자 미국을 공격하는 대신 소련을 공격한 듯.
실제 히틀러는 1938년 영국 외무대신 핼리팩스경과 만난 자리에서 간디와 인도 독립운동에 대해 이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히틀러는 2차대전 당시 독일에 거주하던 인도인들과 영국군에게서 탈영하거나 항복한 인도인들을 모아 인도 자유군단을 편성하였는데 이들은 처음에 국방군이었다가 무장친위대로 전속되었다. 이들은 실제 전투 임무에는 거의 투입되지 않았다. 주력은 대서양 방벽 구축에 노동력으로 투입되었다가 뒤늦게 무장을 갖췄으나 전투는 거의 없었고, 일부 병력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빨치산과 레지스탕스를 상대로 교전했을 뿐이다. 이들은 사실상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노동부대 노릇을 했다.'''간디를 사살하시오. 만약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국민회의 지도부 열댓 명을 사살하시오. 그래도 충분하지 않다면, 200명... 등 질서가 잡힐 때까지 사살하시오.'''[14]
물론 나치 독일은 프로파간다에 써먹고 아군의 인력도 보충할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인도자유군단을 만든 것이지 절대 인도인을 좋아하거나 인종차별에 반대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히틀러는 형편없는 군사적 능력을 가진 인도인들을 비웃었었다.
나치가 일제와 동맹을 맺은 게 일본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이었고 네오 나치들 중 일부가 가끔 일부 극단적 흑인 우월주의자들과 손을 잡는 것이 '인종 간의 분리'라는 공통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 그들이 흑인을 친구로 여겨서 그러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또 일제가 찬드라 보세나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해 준 것이 적국인 영국과 네덜란드를 견제하고 열강들의 식민지를 자기가 차지하려고 지원해 준 것이지 진짜로 독립을 시켜주려고 그런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인식에도 일본이 미국을 기습 침략하자 좋다고 참전한 것을 생각하면..
[1] 이 단편선에는 해리 터틀도브가 '에릭 G. 이버슨'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인 선택하지 않은 길도 수록되어 있다.[2] 단편선 출간 1달 후에 작성된 어느 네이버 블로그의 소개글도 있다. [3] 작중에서 정확한 배경 연도는 나오지 않지만, 발터 모델이 '폴란드 전역에서 4군단의 참모본부에 배속되어 있던 때로부터 8년이 흘렀다'는 설명이 나온다.[4] 의미심장하게도 1947년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해이기도 하다.[5]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오킨레크'로 표기됐다.[6] 2차대전 후 '나치 사냥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홀로코스트 생존자 출신의 유대인으로, 이 소설에서는 폴란드에서 러시아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온 인물로 언급된다.[7] 원래는 지시불이행(시위를 미연에 진압하라는 자기 명령을 말한다)의 죄를 물어 모조리 시위대와 함께 쏴버릴 생각이었으나, 동료들을 쏘라는 명령을 내리면 병사들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거라는 조언에 철수시켰다.[8] 이는 "지시를 거부했던" 병사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하지 않는 대신 모델이 요구한 "거래"였다. 세 명은 확인사살 명령을 거부하고 체포되지만 나머지 분대원들은 수행한다.[9] 이것은 실제로 나치독일이 네덜란드와 폴란드와 같은 점령지에서 직접 실행한 정책이다. 독일 군인 한명이 저항운동가에 의해 죽을 때마다 용의자가 아닌 수백명의 무고한 인질들이 끌려와 처형되었다.[10] 네루는 한 마디 이야기조차 나누지 않고 바로 총살했다.[11] 평소에도 "군대는 반드시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하며 무력으로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책무는 전선을 지키는 것이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었으며, 그가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번 했었던 정치적 발언은 '''"진정으로 내가 범죄에 종사해 왔음을 믿게 되었네. 나는 양심적으로 부하들을 이끌었지… 하지만, 범죄 정권을 위한 것이었어."'''(Derek S. Zumbro <Battle For The Ruhr>, 2006)라는, 국방군 무오설을 대놓고 부정하는 내용이었다.[12] Mitcham, Samuel W. (2001). Crumbling Empire: The German Defeat in the East, 1944[13] 악질 전쟁범죄로 악명이 높은 양반이지만 의외로 구데리안이나 만슈타인과 같은 다른 국방군 장군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으며 치안 문제도 확실하게 해결하는 등 능력은 있었다. 허나, 국방군 무오설을 까기 위한 작가의 방책일 수 있다. 좋은 평이란 말부터가 민간인에 대한 무개념적 행위가 전쟁 수행보다도 우선시 될 때에 그걸 찬양하는 명장은 거짓말이란 것을 함축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담으로 실제 역사에서 발터 모델의 전쟁범죄 관련 이슈는 들소 작전 과정에서 '고의적인 민간인 강제이주와 초토화 작전을 시도했다' vs. '소련군이 자국 민간인을 공격하는 당시 상황에서 민간인들을 무사히 피난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로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14] 출처1, 출처2("Shoot Gandhi" was Adolf Hitler's advice to Lord Halifax, in 1938, about how to rule the Subcontinent, "and if that does not suffice to reduce them to submission, shoot a dozen leading members of Congress; and if that does not suffice, shoot two hundred, and so on until order is esta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