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츠슈타펠/계급
1. 개요
나치당의 슈츠슈타펠(친위대)은 독일국방군과 비슷한 계급 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시기별로 상당히 차이가 난다. 또한 SA(돌격대), 경찰 역시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제 3제국 중후반기의 독일 경찰은 친위대에 사실상 통합되었으며 이후 경찰은 자신의 계급과 매치되는 SS의 군계급을 동시에 수여받고 일종의 이중 신분자가 된다. 이는 병력 부족으로 무장친위대의 2개 사단(제 4 경찰척탄병사단, 제 35 경찰사단)이 경찰 출신으로 창설될 만큼 상당수의 경찰이 전투경찰로 일선 및 후방의 대파르티잔 위주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이들을 포로로 취급받게 하려는 배려이기도 했지만, 하인리히 힘러의 경찰권 장악을 위한 물밑 작업이기도 했다. 이들 경찰들은 강제로 SS 대원으로 임명된 경우이므로, 하사 이상 SS 대원은 전원 기소 대상이었던 전후 재판에서도 개개인의 전범 행위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기소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계급에 지도자(Führer)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지도자 원리에 따른 결과이다.
독일 국방군의 계급은 독일국방군/계급 문서 참조.
2. 발전
초창기에는 단 4단계로 이루어진 간략한 체계였으나, 1930년대 초반에 세분화가 이루어졌고 1934년 이후로 군대 계급과 유사한 복잡한 체계가 된다.
다만, 독일군의 계급체제와는 약간 다르기도 하고, 명칭은 완전히 달라서 슈츠슈타펠의 장성급 장교들은 정식계급명칭에 부가해서 독일군의 준하는 계급체제 이름을 달고 있다. 보통 SS중장 같은 식으로 번역되는 명칭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명칭 병기는 슈츠슈타펠에 들어오기 전에 경찰 계급을 가지고 있었을 경우도 적용되므로 심하면 슈츠슈타펠 계급 + 경찰에서의 계급 + 무장친위대 계급 명칭이라는 복잡한 명칭이 붙기도 한다.
그리고 당시의 독일군과 다르게 계급을 부를 때 님같은 경어를 붙이지 않으며 (예를 들면 장교님), 3인칭으로 부르지 않고 2인칭 (당신)같이 부른다는 독특한 규정등이 있다. 예를 들어서 하인리히 힘러를 일개 SS소위가 독대한 자리에서도 '''SS국가지도자. 당신이 불러서'''와 같이 당시의 독일어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말(?)을 해야 했는데, 이는 구 국방군 특히 권위주의적이고 귀족적인 분위기로 대표되는 육군과 차별화되어 보다 친국민적이고 민주적인 군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 이 규정은 타군 장병이 슈츠슈타펠의 상위 계급 장병을 만나야 할 때도 적용되며, 이 때문에 오토 카리우스도 입에 붙은 독일군식 경어 사용법 덕분에 고생을 했다고 한다. 1976년작 영화 <The Eagle Has Landed>에서는 양민 학대를 자행하는 집단지도자에게 쿠르트 슈타이너 공군 대령(마이클 케인 분)이 "Difficult decisions are the privilege of rank, '''Herr Gruppenführer.'''" 라고 말한다. 위의 어법을 따르지 않아 노골적인 경멸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경우 공식적으로 친위대 최고계급자였으며 SS대원번호의 1번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수의 학자들은 Der Oberste Führer der Schutzstaffel. Der Führer Adolf Hitler라는 히틀러만의 계급 - 슈츠슈타펠 최고지도자 총통 아돌프 히틀러 - 이 존재하였다고 주장하나 공식석상에서 히틀러는 친위대 복장을 입은 것이 확인되지 않으며 자신도 이에 대한 어떠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힘러가 자신과 헤르만 괴링에게 명예 SS상급대장을 수여하려고 하려 했으나, 명목상으로라도 자신보다 하급자로 여겼던 힘러 장관 밑사람이 되는게 싫어서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다른 원수들이 인정을 안 해줬을 뿐 엄연히 법적으로 원수보다 높은 대원수급 계급인 제국원수 신분인 그가 2계급이나 낮은 상급대장, 그것도 자신의 눈에는 군대같지도 않던 친위대의 그것 따위가 눈에 찼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나무위키에선 유달리 SS의 계급만 번역시 독일어 그대로 직역하는 경향이 있는데, 각군별로 계급이 상이함에도 SS만 그리 할 필요는 없다. 해군 중령을 호위함장으로, 육군 소장을 소령장군으로 번역할 필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3. 체계
여기서는 1934년 이후 1945년 제3제국이 망할 때까지 사용한 계급체제를 설명하며 같이 보이는 계급장은 어깨에 달리는 견장이 아닌 옷깃에 다는 금장(襟章, 칼라장)이다. 친위대 흑색 정복에는 견장이 있지만 권총벨트의 어깨띠를 고정하기 위한 장식용 견장으로 우측 어깨에만 붙는 견장이며, 개별 계급이 아닌 사병/위관급 장교/영관급 장교/장관급 장교만을 표시했다.
1939년 기존의 검정색 제복 대신 회색 제복이 도입되면서 타군과 동일하게 견장이 계급장 겸 병과장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양쪽 어깨에 모두 부착하게 되었다. 형태는 육군과 같으나, SS의 경우 사병은 검정색에 병과를 나타내는 색상의 테두리를 두른 견장을, 상급대령 이하 장교는 각 신분을 나타내는 형태의 금속사 직조물을 병과색 위에 붙이되 그 밑에 SS를 나타내는 검정색 원단을 한 장 더 깔은 형태를 했다. SS 장군은 병과색 및 검정색 없이 회색 원단만 받쳤다. 때문에, 장군을 제외한 SS 장교들의 견장은 동 계급의 육해군 견장보다 약간 두껍다.
무장친위대와 일반친위대를 겸임한 사람들 중에서 각자의 계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꽤 많다. 에른스트 칼텐브루너만 해도 1944년 이전까지는 일반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겸 경찰대장이었으나 무장친위대에서는 소위계급을 가졌었다.
3.1. 친위대 국가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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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ichsführer-SS(SS국가지도자): 계급 겸 직책. 원래 하인리히 힘러는 Obergruppenführer이었으나 이 '직함'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장검의 밤 이후 자신의 '계급'으로 만들어서 SS의 최상위에 두었다. 실질적으로 힘러의 전용 계급(?)이었다. 이 계급을 원수급 계급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힘러의 역할과 권한 및 책임한계를 보면 사실상 이 계급은 군인의 계급이라기보다는 장차관 등 민간인 정무직 공무원의 계급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힘러는 무장친위대의 군사작전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으며, 그를 독일 군사 조직의 원수로 인정하는 사람도 없다. 그 뿐 아니라 독일국방군이 배출한 원수 중 친위대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아르덴 공세가 성공했다면 요제프 디트리히에게 민족원수(Volksmarschall)을 추서하려 했으나 작전 실패로 없던 것이 되었다. 이후 베를린 공방전 당시에 힘러의 배신이 들통난 이후 히틀러는 자살 하루 전날인 4월 29일에 카를 항케에게 이 직위를 승계시킨다. 그러나 항케는 당시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젔던 브레슬라우에서 있었던지라 뒤늦게 자신이 국가지도자로 진급한 소식을 들었다. 이후 항케는 브레슬라우 공방전이 끝나던 날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프라하로 탈출해서 무장친위대 제18사단과 합류한 다음에 그곳에서 싸우다가 체코 탈출에 실패하여 포로로 잡힌다. 전후 항케는 체코슬로바키아의 SS수용소에서 복역하다가 타 수용소로 이관하기 위한 호송 열차를 탄 이후에 탈출을 시도했다가 6월 8일에 사살당했다는 공식 기록이 있지만 야사에 의하면 체코인들이 그의 정체를 알아내고 구타해 죽였다는 썰이 있다고 한다.
3.2. 장성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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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erstgruppenführer(최상급집단지도자): 국방군 상급대장급 계급. 딱 4명 나왔다. 무장친위대의 창시자 파울 하우서와 LSSAH의 초대 사단장 요제프 디트리히가 최종적으로 수여받은 계급. 카를 볼프의 경우 1945년에 자신이 이 계급으로 진급하였다고 주장하였지만 대다수 역사가들은 이를 인정치 않는다. 반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경우 그가 최후에 역임하였던 제국보안본부장의 위치가 사실상 상급대장의 계급이라고 인식된다. 각각의 명단으로는 질서경찰(Ordungpolizei)의 수장 쿠르트 달뤼게(Kurt Daluege), 유일한 명예 상급대장 프란츠 자페어 슈바르츠(Franz Xaver Schwarz)와 상기 무장친위대의 2명뿐이다.[1]
- Obergruppenführer (상급집단지도자): 국방군 대장급 계급. 실질적인 최고 계급. SD 총책임자로 악명높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와 에른스트 칼텐브루너, 장검의 밤 당시 SA 수장인 에른스트 룀을 직접 처형하였고, 이후 그 악명높은 다하우 #s-1.1 수용소의 소장과 무장친위대 제3기갑사단 토텐코프의 사단장을 역임한, 테오도어 아이케[2] , 벨라루스 초토화작전의 주범이자 바르샤바 봉기를 진압한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가 역임하였다. 최초의 SS대장 하인리히 힘러부터 고틀로프 베르거,[4] 최후의 진급자 한스 캠러를 포함하여 총 98명의 상급집단지도자가 있었다. 병력에 비해 대장의 숫자가 과도하게 많은 이유는 당간부중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 명예직으로 마구 뿌려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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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igadeführer(여단지도자): 국방군 소장급 계급. 독일 패망 직전 총통 벙커와 그 인근 지역의 방어 책임자이던 빌헬름 몽케와 원래는 소련인이었다가 독소전쟁 초기에 부역자가 된 이후 나치 독일 최고의 인간 쓰레기 집단 중 하나인 카민스키 여단을 이끌며 온갖 전쟁 범죄를 지시하거나 직접 실행했던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 무장친위대에서 가장 젊은 나이로 사단장에 오른 이[5] 들 중 하나 였으나 종전 8개월 전에 포로가 된[6] 쿠르트 마이어의 최종 계급이다.
3.3. 장교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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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erführer(상급지도자): 상급대령급 계급. 초기에는 소장 급 대우를 받았으나 무장친위대의 정식편제 이후 국방군의 대령보다는 우위에 있으나 소장 이하의 계급으로 격하되었다. 독일 국방군 육군 및 공군에는 준장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고, 해군에만 준장 계급이 있었는데, 해군의 준장은 엄연히 제독으로 분류되는 장성급 장교라 SS 상급대령이 해군 준장을 만나면 상급대령이 준장을 상급자로 대우해야 했다. 상술한 카민스키 못지 않게 전쟁 범죄라는 인간 쓰레기 짓을 하고 다녔던 디를레방어 여단의 여단장이자 학살자인 오스카 파울 디를레방어의 최종 계급이었다.
- Standartenführer(연대지도자): 대령급 계급. 이 계급부터 SS 문양 대신 양쪽에 떡갈나무잎이 들어가게 된다. 친위대에서 세 번째로 젊은 대령이자[7] 본인 이름을 딴 전투단을 이끌며 탁월한 전공을 쌓음과 동시에 말메디 학살로 대표되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요아힘 파이퍼의 최종 계급이며,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주요 악역인 한스 란다의 계급이다.
- Obersturmbannführer(상급돌격대지도자): 중령급 계급. 돌격대는 대대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고 불리었던 오토 슈코르체니와 영화 다운폴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군위관인 에른스트 귄터 솅크의 최종 계급이다.
- Sturmbannführer(돌격대지도자): 소령급 계급. 영화 다운폴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총통의 수행 무관인 오토 귄셰의 최종 계급이다. 영화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에서 정웅인과 닮은 꼴로 유명한 조연급 등장인물인 헬스트럼 소령의 계급이다. 또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해진 크라쿠프 강제수용소장인 아몬 괴트의 최종 계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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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ersturmführer(상급돌격지도자): 중위급 계급.
- Untersturmführer(하급돌격지도자): 소위급 계급.
3.4. 부사관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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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rmscharführer(돌격반지도자): 선임원사급 계급. 반은 소대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독일군에는 준사관 신분이 없으므로, 여기서 진급하면 바로 SS 소위가 된다. 이 계급은 무장친위대 전용 계급이며 일반 친위대는 원사 이후 바로 소위로 계급체계가 이어진다.
- Hauptscharführer(본부반지도자): 원사급 계급. 전차 에이스이자 베를린 공방전 당시 최후의 쾨니히스티거 전차장으로 활약하여 소련군과 맞서 싸운 카를 쾨르너의 최종 계급이다.
- Oberscharführer(상급반지도자): 상사급 계급. 대전차포 에이스 프리츠 크리스텐과 미하엘 비트만의 부하이자 6호 전차 티거 포수였던 발타자르 볼, 영화 다운폴에 조역으로 등장하는 통신 병과 부사관이자 총통 벙커의 전화 교환수로 복무했던 통신부사관 로후스 미슈의 최종 계급이다.
- Scharführer(반지도자): 중사급 계급. 무장친위대 제3기갑사단 토텐코프 소속 군인이자 폭풍 속의 씨앗의 저자인 헤르베르트 브루네거의 최종 계급이다. 단, 그가 이 계급을 달았을 때는 토텐코프 사단 소속이 아니었다.
- Unterscharführer(하급반지도자): 하사급 계급.
3.5. 병 계급
창설 시기가 늦은 탓인지, 국방군보다 병 계급 수가 1개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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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rmmann(돌격병: 상병급 계급.
(일병~병장은 칼라 뿐 아니라 왼팔에도 계급장을 부착하며, 육군 동 계급과 형태는 같으나 색상이 검정 바탕에 은색으로 다르다.)
- Oberschütze : 상급병. 일병급 계급.
- Mann, Schütze(병): 이병급 계급.
- Anwärter(훈련병)
- Bewerber(입대지원자)
[1] 저 계급을 단 파울 하우서와 요제프 디트리히의 공통점은 둘 다 무장친위대 초기에 편성 된 3개의 기갑사단들 중 각각 한 개씩을 맡았다는 것이다. 집단지도자 시절에 디트리히는 제1기갑사단인 LSSAH, 하우서는 2기갑사단인 다스 라이히의 사단장을 역임했고, 두 명 다 상급집단지도자를 거쳐 이 계급을 받은 것이다. 허나 후술한 제3기갑사단 토텐코프 사단장인 테오도어 아이케는 이 두명과 더불어 무장친위대의 3대장이라고 할 만한 이였고, 본인의 능력도 좋았으나 1942년에 동부전선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이 계급을 달지 못했다. 따라서 만약에 아이케가 일찍 전사하지 않고 계속해서 활약했다면 그도 충분히 이 계급을 달았을 것이다.(참고로 하우서와 디트리히 모두 1944년에 최상급집단지도자를 달았다.)[2] 상술했듯 이 놈은 동부전선에 있다가 일찍 전사해서 하우서나 디트리히처럼 최상급집단지도자가 되지 못하고 이 계급에서 그의 군 경력이 끝났다.[3] 그가 지휘하던 부대는 전투를 지지리 못해서 바르샤바 봉기 진압 당시에는 부대 인원 손실률만 315%나 되었던 반면, 학살이나 약탈, 강간이나 같은 전쟁범죄는 때를 안 가리고 무분별하게 해대었다. 이런 짓은 나치 독일이 잘 나가던 전쟁 초반이라면 모를까, 모든 독일군이 24시간 내내 전투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전쟁 후반에 더 심해졌다.[4] 굳이 이 사람을 언급한 이유는 나치 내에서도 손꼽히는 인간 쓰레기인 오스카 파울 디를레방어의 친구였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디를레방어가 전쟁 내내 답이 없는 행보[3] 로인해 나치 고위층 거의 대부분에게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유지한 이유가 (본인의 충성심도 충성심었지만) 바로 이 놈이 실드를 해 주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5] 1944년 9월 1일에 진급했는데 이 때의 나이가 고작 34세(1910년 12월 23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포로로 잡힌 시점에서는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나이로는 33세다)[6] 그는 1944년 9월 6일에 프랑스에서 후퇴하다 벨기에서 현지 저항군에게 생포당한 뒤, 미군에게 인계되었는데, 사단장으로 취임한 지 불과 5일 만이었다.[7] 최연소 SS대령으로는 24살에 SS대령으로 진급한 헬무트 슐츠이며, 두 번째로 젊은 대령은 26살에 SS대령이 된 Gunter d'Alque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