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든 나이트(야구)

 

'''브랜든 나이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03'''


'''2012 KBO 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0번'''
(2008)

'''나이트(2009~2010)'''

레딩(2010)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54번'''
이동학(2009~2010)

'''나이트(2011~2013)'''

신재영(2013~2014)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4번'''
박정준(2011~2013)

'''나이트(2013~2014.5.13)'''

정재복(2014~2015)
'''넥센 /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1번'''
류영수(2014~2015)

'''나이트(2016~2020)'''

오태근(2021~)
'''SK 와이번스 등번호 73번'''
이종운(2018~2020)

'''나이트(2021~)'''

결번


'''SK 와이번스 No.73'''
<colcolor=#ffffff> '''브랜든 마이클 나이트
Brandon Michael Knight'''
<colbgcolor=#ff0000> '''생년월일'''
1975년 10월 1일 (48세)
'''출신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옥스나드
'''국적'''
[image] 미국
'''학력'''
부에나고 - 벤츄라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드래프트 14라운드 (전체 374번, TEX)
'''소속팀'''
[image] 뉴욕 양키스 (2001~2002)
[image]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3~2004)
[image]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5)
[image]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2006)
[image] 서머셋 패트리어츠[1] (2007~2008)
[image] 뉴욕 메츠 (2008)
[image] 삼성 라이온즈 (2009~2010)
[image] '''넥센 히어로즈 (2011~2014)'''
'''지도자'''
[image] 화성 히어로즈 투수 코디네이터 (2016~2017)
[image][image] '''넥센-키움 히어로즈 1군 투수코치 (2017~2020)'''
'''프런트'''
[image] SK 와이번스 용병 스카우트 (2014)
[image] SK 와이번스 외국인 투수 특별 보좌 (2021~)[2]
'''SNS'''

1. 소개
2. 선수 경력
2.1. 미국 시절
2.2. 일본 시절
2.3. 다시 미국으로
2.4.1. 2009~2010 시즌
2.5.1. 2011 시즌
2.5.4. 2014 시즌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시절
4.1.1. 2016년
4.1.2. 2017년
4.1.3. 2018년
4.1.4. 2019년
4.1.5. 2020년
5. 프런트 시절
5.1.1. 현지 용병 스카우트
5.1.2. 용병 투수 어드바이저
6. 기타
6.1. 연도별 성적
7. 관련 문서


1. 소개


미국 출신의 前 야구 선수 및 코치. 現 SK 와이번스 용병 어드바이저이며 선수시절 포지션은 투수.
2009년~2010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였으며, 2011년부터 2014년 5월 13일까지 넥센 히어로즈에서 활약했다.

2. 선수 경력



2.1. 미국 시절


[image]
미국 시절 성적
텍사스 레인저스에 지명된 후, 5년 안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목표로 차근 차근 올라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투구폼을 바꿨던 트리플 A에서 뜬금 없이 부진에 빠졌었다. 98년 AA에서는 5.11이였는데, AAA에선 9.73으로 폭등해버렸다. 물론, 최악의 타고투저인 PCL인 걸 감안하더라도... 99년 AAA 4.91을 기록했으나,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지,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나이트 말에 의하면, "미국 유망주 시절에는 포심의 평균 구속이 '''98~99마일'''을 넘나들었던 파이어볼러였는데, 공끝이 무뎌서 그런지, 선수들이 160을 찍는 자신의 공을 잘만 쳐냈었다."고... 이 때는 자기가 피쳐가 아니라, 그냥 공 던지는 스로워였다고 회상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2000년 AAA에서 10승 12패 4.41, 2001년 AAA에서 12승 7패 3.66을 기록하자, 드디어 콜업 되어서, 메이저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주로 연장전에 나오는 불펜투수였다고. 2002년에도 AAA 2승 7패 3.90을 기록하는 안습한 기록을 적립하던 와중에 또 콜업되었다고 한다.
2001년 4경기 10.2이닝 ERA 10.13, 2002년 7경기 8.2이닝 ERA 11.42였다. 2001년에는 5피홈런 기록이 있는데, 한 경기 2피홈런 기록도 있었다는 얘기.

2.2. 일본 시절


11회 정도 가야 등판 기회가 왔던 미국 생활에 지쳐갈 무렵, 일본에서 연락이 왔고, 조건도 나쁘지 않아 일본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나중에 밝힌 바로는 "그 때 일본으로 간 건 실수였다."고..
미국이나 한국야구와는 달리, 당시의 일본야구는 용병 자체를 같은 팀으로 보기 보다는 말 그대로 용병 그 자체라고 생각하며, 소통이 안 됐었고 강요에 가까운 환경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일본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같은.. 이 건 훗날 KBO 리그로 오게 되는 마이클 보우덴, 제이크 브리검, 닉 에반스도 똑같이 얘기한 바가 있다. 이 때문에 훗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다르빗슈 유는 "일본야구는 팀의 외국인 선수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차갑게 대한다."며, 일본야구를 까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알렉스 라미레스, 랜디 메신저,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경우는 극히 예외였던 셈이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는데, 2003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16경기에 등판해 6승 4패를 기록했다. 다만, ERA가 4.86이였다. 물론 그 해 다이에 호크스는 한신 타이거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3][4][5] 여하튼 다이에 호크스가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 덕에 우승반지도 챙겼다. 이 때문인지, 가끔 키움 팬들 중에서는 선수단 중에서 선수 시절에 우승을 경험해본 유일한 인물[6]이라 추켜세우는 이도 있다(...)
문제는 그 놈의 부상. 그 다음해인 2004년에는 무승 12.00,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계약한 2005년에도 2패 11.12로 부진했다고 한다. 따라서 2004, 2005년 2년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 하며, 2패를 기록한 채, 2군에 머물렀다고 한다.
일본 시절 통산 성적은 30경기(선발 18경기) 104이닝 6승 6패 ERA 5.95

2.3. 다시 미국으로


[image]
일본 시절 생활을 청산하고, 2006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AA에서 '''또 2승 7패(...)''' 2.25를 기록했고, 베네수엘라 윈터리그 06-07 시즌에서 0승 3패 9.00을 기록하고 결국, 2007년에 팀을 찾지 못 하자, 독립 리그인 서머셋 패트리어츠[7]에서 뛰게 되었다. 2007년 성적은 12승 5패 4.03. 2008년에도 서머셋에서 뛰었는데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고, AAA PCL리그에서 5승 1패 2.28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고,[8]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4경기 12이닝 5.25를 기록했다. 이 게 나이트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등판 기록.
한국에 처음 알려진 계기도 독립 리그인 서머셋 패트리어츠에서 뛰던 때[9]2008 베이징 올림픽의 미국 대표팀 자격으로 출전해 한국전에 선발로 출장한 때부터였다. 이대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는 등 4.1이닝 8안타 6실점으로 부진하고, 팀도 패했으나, 대만전에서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때 괜찮게 본 기억이 있어서인지 AAA에서 4승 9패 5.06을 기록하고 있던, 2009년 7월 삼성 라이온즈가 루넬비스 에르난데스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계약하며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2.4. 삼성 라이온즈 시절


[image]
추억의 밤느님 시절. 8월 4일 데뷔 첫 승을 거둔 대구 한화전 때였다.

2.4.1. 2009~2010 시즌


2009년에는 윤성환과 함께 삼성의 실질적 1, 2선발 자리를 꿰차며 에이스로 취급받았다. 별명은 백기사부터 시작해서 밤느님, 밤신. 못할 때는 밤.
구단 관계자 말에 따르면 친화력도 좋고 한국 음식에도 빠르게 적응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활동할 때는 차가운 동료들과 구단의 압력 등에 괴로웠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동료 선수들도 친근하게 대하고 잘할 땐 같이 좋아해주고 못할 때는 위로해주고 격려해 줘서 좋다고 하며, 대한민국에서 오래 활동하는 게 목표고 심지어는 대한민국에서 성공해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훈련도 하고 일부 용병들이 요구하는 특별대접 요구도 안 한다고 한다. 제일 친한 선수는 진갑용(Jin). 클럽하우스에서 같이 논다고 한다.
2009 시즌 이대호에게 가장 약했다.(3타석 이상 기준)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 이대호가 나이트로부터 시원한 홈런을 때린 바 있으며 시즌 도중에도 홈런을 맞았다. 나이트 상대로 6타수 4안타 1홈런을 기록. 그렇지만 롯데 자이언츠한테 약한 건 아니라서 롯데를 상대로 져 본 적이 없다.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는 이도형이라고 한다. 이도형 또한 이대호와 마찬가지로 나이트 상대로 2009 시즌 6타수 4안타. [10]
2009년 9월 21일자 최훈 프로야구 카툰에 기사(knight) 투구를 쓰고 나왔다. 2009 시즌 최종 성적은 11경기 60.2이닝 6승 2패 3.56. 후반기에 들어온 대체용병 치고는 매우 좋은 성적을 기록해주며, 당연히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초반에 부진하였고, 5월에 4연승을 찍으며 에이스 모드로 돌아가나 했으나, 8월 1일 넥센전에서 3회 초 투구 도중 무릎 통증으로 공을 던지고 '''자진 강판'''하는 일이 일어났으며[11], 이튿 날 구단 지정 병원인 서주미르방사선과에서 촬영 결과, 무릎 외측 반월상 연골 손상이 판명되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시즌아웃 판정이 났다. 그리고, 8월 4일 임의탈퇴 공시되어, 8월 6일에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시즌 성적은 21경기 13선발 83.1이닝 6승 5패 4.54. 여러모로 전 해에 비해서 부상으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던 지라, 후에 구단이 이 사건에 대해 밝힌 바(기사 삭제됨)로는 "무릎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마운드에서 무릎을 붙잡고 뒹굴고 싶었던 심정이였으나, 그랬다가는 팀의 분위기가 안 좋을 거 같아서 그러진 못 했다."고..
나이트는 인터뷰에서 "좋은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한 것이 무척 보람 있었다. 하지만 좋은 성적으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혀 많은 삼성 팬들을 눈물 짓게 했다.
그리고... '''삼성 시절 상대한 마지막 팀에서 2010 시즌 후 무릎 치료를 받던 중인 그에게 러브 콜을 보낸다.'''

2.5. 넥센 히어로즈 시절


[image]

2.5.1. 2011 시즌


미국으로 돌아가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한 후 넥센 히어로즈가 그에게 영입 제의를 했고, 넥센 히어로즈삼성 라이온즈로부터 '''동의'''를 받아 임의탈퇴가 해제되어 2011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게 되었다. 2011년 4월 8일 경기까지 2경기에 등판, 14⅔이닝 1실점으로 엄청나게 호투 중. 넥센 팬들은 환호하였다.
4월 26일에 등판, 썩 좋지 않은 컨디션이었으나 정말 어찌어찌 막아냈다. 하지만 승리는 기록하지 못했다. 이 때까지의 기록은 1승 3패 ERA 2.27로 넥센의 1선발급 활약을 보여줬지만 승운이 따르질 못하는 상황.
5월엔 8일 한화전, 15일 LG전에서 시원하게 털렸지만 그 후 꾸준하게 잘 던져서 넥센의 제 1선발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근데 승을 거의 못 먹었다. 6월 12일 현재 3점대 방어율임에도 불구하고 넥센의 타선이 2011시즌 너무나도 빈약해 고작 2승 6패에 그쳤다.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선발 투수들 중에서 3승 투수도 한 명도 없다는 걸 봤을땐 승운이 지독하게 없었다.[12] 못 던지는 날은 얄짤없이 패전이고, 잘 던지는 날은 노 디시전(…).
후반으로 가면서 무릎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탓인지[13]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채 골골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1년 넥센의 선발진이 초토화된 상황이라, 어찌됐든 꾸준히 선발로 나와주는 나이트가 팀 내 공헌도가 제일 높은 선발이라는 안습 상황이 만들어졌다.[14]
2011시즌 결국 7승 '''15패'''로 '''시즌 최다패 투수'''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시즌 내내 특유의 성실함과 건강함을 앞세워 로테이션을 한 번도 거르지 않으며 리그 5위에 해당하는 172.1이닝을 기록해 이닝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넥센 투수들 중 유일하게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로 자리매김했고[15], 그 실력을 인정받아 2012년에도 넥센과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 외에 좀 유별난 경기를 꼽자면, 9월 15일 정전으로 인해 선발로 나오던 나이트의 컨디션 조절이 우려되던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7이닝 동안 109개를 던져 5피안타 1볼넷 6삼진 1실점(1자책)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챙긴 것.

2.5.2. 2012 시즌



이전까지의 부진은 모두 털어내고 2012 시즌 최강 외국인 에이스로 군림하였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완전히 털어낸 것에 더해 2011년 전지훈련지에서 손승락에게 싱커를 전수받았는데, 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면서 싱커볼러로 재탄생한 것. 덕분에 탈삼진 개수는 2011년에 비해 줄었지만 땅볼 유도율이 높아졌고, 무엇보다도 방어율이 2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아쉽게도 시즌 MVP는 팀내 동료인 박병호에게 밀렸는데 정작 문제는 KBO 골든글러브 수상에서 터졌다. 승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나이트에 뒤쳐지는 장원삼에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골글에서 밀려버린것. 그런데 아이러니 한 점은 바로 이 외국인 차별정서 덕에 다음해에는 넥센이 수혜자가 되버리고 역시 한참 우월한 성적을 찍은 용병이 골글에서 밀려버리게 된다(...)

2.5.3. 2013 시즌



시즌 초반 송신영 트레이드로 24번을 쓰던 박정준이 NC로 건너가게 되면서 미국, 일본에서 쓰던 등번호인 24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2.5.4. 2014 시즌


2013 시즌 종료 후 거취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전[16]도 있었으나, 앤디 밴 헤켄과 함께 일찌감치 재계약을 맺었다. ###
이로써 대한민국에서만 6시즌째 선수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다니엘 리오스와 같은 기간의 투수 최장 기록이며, 용병 전체로 확대해도 제이 데이비스 다음으로 긴 기록이다. 아예 본인은 선수의 마지막 커리어를 KBO에서 마무리하려고 마음을 굳혔고, 인터뷰에서도 번번히 넥센의 투수코치를 하고 싶다며 의견을 피력하였다.
4월 6일에 선발 등판해서 지난 첫 등판 때와는 달리 7이닝 2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 줬지만 팀은 이재학을 공략하지 못했고, 9회에 손승락이 시원하게 불을 지르며 팀은 지고 말았다.
4월 12일에 선발 등판해서 5와 2/3이닝 사사구 4개 3삼진 1자책점의 준수한 투구 내용을 보이고, 팀 타선이 홈런 3방을 터트리는 등 6점의 득점 지원을 받아 2014년 첫 승리를 기록했다. 다음 등판은 유리하게 가져갔던 롯데 자이언츠전.
4월 23일 롯데 자이언츠전에는 4이닝 동안 피안타 8개 3볼넷을 내주고 8실점했다. 로나쌩 클럽이였던 지난 때를 생각해 볼 수 없는정도의 처참한 성적.
4월 29일 두산 베어스전에는 4와 1/3 이닝동안 피안타 6개, 볼넷 5개,사구 1개를 내주고 2실점했다. 꾸역꾸역 막았다 볼수 있지만 2경기 연속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되었다.
5월 6일 NC 다이노스전에는 '''또''' 4와 1/3이닝동안 11개의 피안타를 맞으며 6실점. 피안타율 5할을 기록하며 장렬하게 '''퐈이야'''!
그 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노쇠화의 영향 때문인지, 당시 나이트의 세부기록은 용병 중 최하위권에 속했다. 나이트와 비슷한 평균자책점, FIP을 기록하던 용병 투수는 케일럽 클레이가 유일했는데, 나이트의 BABIP이 더 낮았다(...). 정상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선수 중 나이트와 비슷한 성적을 보였던 건 봄 타는 송승준 정도.
그렇다고 운이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NC 다이노스전 이전의 FIP은 '''6.98''', BABIP은 '''0.288'''로 FIP은 ERA보다 훨씬 높았고 BABIP은 리그 평균(0.300)보다 낮은 축에 속했다. NC 다이노스전 이전의 잔루율 역시 0.832로 '''리그에서 굉장히 운 좋은 투수'''였는데도 성적이 그랬다.
장점이었던 제구력이 엉망인 게 원인일 지도 모른다. 9이닝당 볼넷 개수는 '''6.750'''개 이며 정상적인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투수 중 2위(1위는 7.615개의 유창식). 허나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제구가 되는 공으로도 그냥 주구장창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많은 넥센 팬들이 불안해했다. 노쇠화로 인해 구위가 떨어져 프로에서 타자들을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온 듯. 다시 말하자면 나이트의 나이는 39세로, 한국 나이를 치면 40세다. 노쇠화가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다. 인터뷰를 보면 스프링캠프때 허벅지 부상을 입었는데 이때 밸런스가 무너진 듯 하다.
결국 5월 14일자로 웨이버 공시되었다. 한때 넥센의 마운드의 기둥이었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지만, 성적이 우선 순위인 프로의 세계인지라 구단의 행보도 이해가 간다는 의견도 많았다. 구단으로서도 스프링캠프 때부터 하락세를 보였던 나이트를 5월까지 기회를 주고 웨이버 공시 후 잔여 연봉도 모두 지급하기로 하는 등 예우는 다했다. 기사 은퇴식이나 투수코치 부임을 기대하는 팬들도 있지만 나이트가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의사가 강해서 언제 성사될 지는 미지수. 나이트는 퇴단이 결정된 날 "넥센이 내 퇴단으로 한층 발전하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며 동시에 "삼성에서 버려졌던 내게 다시 기회를 준 넥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체 선수는 작년까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헨리 소사.

3. 플레이 스타일


미국 유망주 시절 최고 99마일까지 찍고, 평균 98~99마일에 형성되는 파이어볼러였다. 다만, 등판 기록지에서 보듯이, 많은 이닝을 던지지는 못 했으며, 피안타가 많지만, 피홈런이 적지도 많지도 않았던 투수다. 따라서 전형적인 땅볼유도형 투수. 2344.1이닝을 던지면서 올레벨 통틀어 HR/9가 0.9이다. 심지어 KBO 리그 평균 '''0.5'''라는 수치를 기록하는데,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수치냐면, 메이저리그로 따지자면, '''0.53을 기록한 놀란 라이언급이다.''' 그리고, 2012년에는 HR/9가 '''0.3'''까지 떨어지면서, 한화 이글스류현진을 압도하는 성적을 보여줬다. '''무려 37세에 기록한 성적.''' AAA와 독립리그를 전전한, 선수가 KBO 리그 수준 차이까지
기존에는 140km/h대 후반의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투피치 피처였지만, 2011년경 손승락에게 싱커를 전수 받고 2012년부터 싱커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트는 이 싱커로 인해 2012년 KBO 최고의 투수가 되었다.
피칭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140대 중반에서 최대 150까지 끌어올리는 속구와 브레이킹볼을 주력 변화구로 삼는 파워 피쳐이지만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는 아니다. 딜리버리 역시 오버핸드로 고질적인 무릎부상이 아니더라도 제구가 그리 안정적인 편은 아니다. 2012시즌부터 장착한 싱커는 나이트를 리그를 압도하는 투수로 만들었다. 포심과 같은 구속에서 형성되지만, 우타자의 몸쪽으로 날카롭게 꺾이거나 가라앉는 싱커는 때려봐야 내야 땅볼, 냅두면 스트라이크로 마구나 다름 없었다. 삼진을 잡는 결정구로 사용하는 커브도 쏠쏠한 편이다. 다만 슬라이더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이외에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는 성실한 이닝이터로 시즌운영에 큰도움이 되는데, 재능은 뛰어나지만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건 선발투수들이 많은 히어로즈의 팀사정을 생각하면 나이트는 시즌운영의 기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팀에 잘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고, 팬들에게도 친절하다 보니 평가가 좋다. 프런트에게도 평가가 좋은 편. 한마디로 잘 할 때는 토론토 시절의 로이 할러데이나 피홈런 억제력까지 보자면, 놀란 라이언.
문제는 고질적인 무릎부상과 노쇠화다. 구속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무브먼트 자체가 밋밋해지면서 맞아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커맨드의 안정성보다 구위로 압도하는 스타일이다보니 타격이 큰 편, 또한 체력적으로 점점 떨어져서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트 본인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문제점을 수정하고 있다고 한다. 37세였던 2012년에 리그를 씹은 건 기적인 셈.
결국 노쇠화로 인해 발목잡히며 2014년 5월 14일 넥센에서 웨이버 공시되며 사실상 방출되었고, 이후 은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트를 욕하는 히어로즈 팬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때 나이가 한국 나이로 무려 40세였으니... 선수로서는 말년에 가까운 나이에 대단한 커리어를 KBO 리그에서 보여준 점을 생각해본다면, 훌리오 프랑코와도 비슷한 면이 여럿 있다.

4. 지도자 시절



4.1. 키움 히어로즈 시절


[image]

4.1.1. 2016년


'''뜬금 없이 넥센 히어로즈로 복귀했다는 기사가 떴다!!!'''
2015년 11월 3일 화성 히어로즈의 총괄 투수코치로 부름을 받아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다시 부름을 받은 것에 대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피칭 코치와 우편배달부로 투잡을 뛰다가 부름을 받고 몹시 기뻐했다고. 기사
2016 시즌부터 2017 시즌 중반까지 화성 히어로즈 투수 코디네이터로 활약했다.

4.1.2. 2017년


이후 2017년 7월 31일 배터리코치 박도현과 함께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됐다.기사 그리고, 박승민은 2군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올라오고 난 뒤 투수진들 상황이 전체적으로 좋지 못하다. 불펜진은 방화범으로 탈바꿈해 늘 점수를 퍼주기 일쑤. 어느 정도 그냥 첫 시즌이니까 이해한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하지만, 투수진들이 못할 때는 여지 없이 '''밤레기''' 소리를 들었다(...) 뭐 이 때는 여름이니까 투수코치가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도 존재한다. 한국의 여름이 워낙에나 덥고 그렇다 보니...
하지만, 최원태의 두 자릿 수 승수에 어느 정도 공헌한 바가 있으며, 투수코치로 올라와서는 중계 카메라가 덕아웃을 비출 때마다 펜을 손에서 놓지 않는 등의 열의를 보여주곤 했다.

4.1.3. 2018년


[image]
2018년 들어서는 시즌 초반 넥센 히어로즈 선발진이 안정되면서, 나이트 코치의 공이 있지 않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는 선발진의 안정에 힘입어 4월 22일까지 7경기 연속 선발 QS 기록을 세웠다. 특히 긍정적인 똘끼와 함께 가끔은 과격한 멘탈을 보여주는 에스밀 로저스를 잘 다루며, 로저스를 순둥이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평이 많다.
에스밀 로저스가 불의의 부상으로 빠진 뒤로는, 에릭 해커와 연락을 주고 받았고, 이 인연으로 인해, 넥센은 새로운 외국인 투수로 에릭 해커를 데려올 수 있었다.
사실상, 지미 파레디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두산 보다도 훨씬 빠르게 외국인 교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산은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교체한 반슬라이크도 망했다(...) 심지어, 넥센에서 뛰고 있는 대체 외국인 타자반슬라이크의 동료인 데다, 그 선수가 한만두를 때리던 경기에서 반슬라이크는 1안타 0타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산은 팬들에게 또 까였다(...)
투수 수치가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좋아졌다. 선발들이 평균적으로 먹어주는 이닝 수가 상당히 증가했으며, 팀 WAR가 한화에 이어 2위다. 팀 피홈런과 팀 볼넷이 하위권에 위치해있고, 팀 ERA도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팀 공격력이 예전 같지가 않다는 걸 감안하면, 5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
의문이 있던 1년차와는 별개로,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가며 적어가는 걸 보니, 열정이 있는 듯 하다. 투수들의 자책점이 리그 3위다. 그러나 폭염에 의해 불펜이 충격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비판의 목소리도 조금씩 늘고 있다. 다만, 이 점은 나이트보다는 불펜 투수 코치인 마정길이 비판받아야 할 사항이며, 더위 탓에 컨디션 난조를 겪는 선수들이 타 구단에도 골고루 나오는 등 전반적으로 2018년의 여름 자체가 리그 전체에 피로도를 크게 주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LG 트윈스는 이걸 극복하지 못 해 최악의 DTD가 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8월에 오면서 약간 더위가 수그러드니 다시 불펜진도 어느정도 치고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오주원을 임시나마 마무리로 갈 수 있게 한 좌완 요원 김성민, 이승호의 활용과 더위 이전에 제법 치고 나왔던 양현, 6월에 콜업 된 이후, 나름 자리를 잡아가는 윤영삼 등 그래도 부상선수와 사고이탈자들을 두고 현재 위치에서 어렵게나마 순위싸움을 이어가게 해준 부분이 있기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지켜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브리검의 완봉승과 더불어서 이승호의 성공적인 선발 데뷔전을 보여주며,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안우진의 제구를 마침내 잡았고, 안우진은 선발승을 포함해, 불펜승까지 후반기 막바지에만 2승을 챙기게 되었다. 작년에는 망해버렸던 선발진과 불펜진이 나름 살아났으며, 결국, 투수코치로 1년차 풀타임을 보낸 결과, 넥센을 포스트시즌에 다시 진출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A급 선발투수(브리검, 최원태)와 F급(리그 꼴찌) 불펜투수로 '''창단 최초 업셋 포함'''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가면서 졌잘싸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정리하자면, '''싸융짱문오 이래, 제대로 된 토종 선발 투수가 한 명도 없었던 팀에서 투수코치로 부임한 지, 불과 6개월도 안 되어서 선발 투수들을 모조리 살려낸 팀의 화타.''' 비슷한 시기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선발 투수들을 살려낸 미키 캘러웨이 투수코치와 비교되고 있다.[17]

4.1.4. 2019년


팀을 2위까지 올려놓은 1등 공신이다. 뭣보다도 완주나 하면 다행이였던 요키시가 완봉승을 거두는 등, 1선발급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후반기에 뜬금 없이 선발투수가 전체적으로 부진하고 있으나, 최원태가 오랜만에 승리투수를 따내면서 여전히 평가는 좋은 상태. 뭣 보다도 불펜진 성적이 매우 좋아졌다. 덕분에 포스트시즌에서 불펜 물량공세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결과는 아쉽게 되었지만, 어찌 됐든 한국시리즈 두 번째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4.1.5. 2020년


[image]
2020년 8월달까지는 평가가 좋지 못했다. 요키시를 제외한 모든 선발투수들이 집단 부진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릭 요키시, 이승호, 최원태가 부상을 당한 9월달을 기점으로 바뀌었는데, 선발진이 붕괴당한 상황에서 조영건, 김재웅, 윤정현 같은 선수들을 대체선발로 넣으며 놀라움을 자아냈을뿐만 아니라 조영건, 김재웅, 윤정현 모두 이승호나 최원태, 요키시 급은 아니지만 선발투수로 등판해 준수한 투구를 선보이며 세명의 빈자리를 말끔히 메워주며 선발진의 붕괴를 막아주었고 또 기존의 선발투수들인 제이크 브리검, 한현희가 9월달을 기점으로 다시 본인들의 실력을 되찾으며 9월달을 기점으로 키움팬들에게 찬사를 받고있다. 오죽하면 손혁 감독이 절을 해야한다는 의견이 있을정도이다.

다만 9월 말에 들어서면서 선발투수 승리가 사라지고 브리검, 최원태, 이승호, 한현희가 부진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마무리 투수 조상우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1월 12일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통보 이전에 이미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였다고 한다. 지방 모 구단과 감독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기사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5. 프런트 시절



5.1. SK 와이번스 시절



5.1.1. 현지 용병 스카우트


2014년 6월 28일 자신의 트위터로 SK 와이번스스카우트 자격으로 간다고 밝혔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방출 조치를 받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를 원했으나, 관심을 보이는 구단이 없던 도중 SK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며, SK 측에서는 브랜든 나이트가 선수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고 침착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스카우트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여 접촉에 나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나이트는 미국 지역 담당 스카우트로서 7월부터 오는 9월까지 3개월간 마이너리그를 돌아보며 활동을 하기로 했으며, SK는 앞으로 3개월간 나이트가 만들어낼 미국 지역 선수들에 관한 자료를 축적해 장기적인 외국인 선수 영입에 활용할 예정이다.
시즌이 끝나고 계약이 종료되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고, 이후에는 캘리포니아 옥스나드 부에나 고등학교와 벤추라 칼리지에서 피칭 스쿨을 열고 지도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5.1.2. 용병 투수 어드바이저


[image]
2021년 1월 14일 SK 와이번스 외국인 투수 어드바이저로 선임되었다. 일단은 시즌 개막 직전인 3월 31일까지 계약하기로 돼 있으나 상황에 따라서는 계약이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나이트 어드바이저의 주요 임무로는 신규 외국인 투수들에 대한 선수 관리와 훈련 지원, KBO 리그 및 한국 문화ㆍ예절ㆍ소통 교육, 멘탈 케어 등을 담당하게 된다고 한다. 또 자가격리 기간동안 외국인 투수들의 식사도 챙겨줬다고 한다.
2021년 1월 16일 SK 와이번스의 외국인 선수인 제이미 로맥아티 르위키와 함께[18]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곧바로 스프링캠프 장소인 제주도로 이동, 2주간 자가격리를 마친 뒤 내달 1일 서귀포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계획이라고 한다.
3개월 계약의 어드바이저인데 이례적으로 등번호 73번이 부여되어 있음이 SK 와이번스 공식 유니폼샵의 배번표를 통해 확인되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나이트 어드바이저가 그동안 키움에서 오랜 기간 투수코치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르위키의 투구를 코칭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보통 등번호는 선수들이나 코치들에게만 부여되는데 나이트 어드바이저도 등번호를 받았고 코칭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차후 코치로서 영입할 가능성도 보여지고 있다. [19]

6. 기타


  • 네 아이의 아버지다. 아들 셋과 막내딸이 있는데, 2013년에 막내딸이 태어나면서 넥센 구단 측에서는 가정적인 나이트를 배려하여 열흘 간의 출산 휴가를 내주었다고 한다.
  •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 단장이 선수 목록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잠깐 등장한다. 나이트 외에도 몇몇 KBO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 나온다.
[image]
  • 잘 언급되지 않은 경력이긴 하지만,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던 시절이었던 2003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우승멤버였기도 했다. 2003년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5이닝 3실점[20]으로 그럭저럭 제 역할을 했다. 다만 팀은 연장 끝에 가네모토 도모아키의 끝내기홈런으로 패했지만. 여담이지만 이때 상대 선발투수는 이가와 케이다.
  • 대한민국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말하기 & 쓰기는 잘하지 못해도 웬만한 한국말은 통역이 없어도 다 알아듣는다고 한다.
  • 원래 왼손잡이다. 그가 왼손으로 사인하는 걸 본 팬이 당신 원래 왼손잡이인데 우투인 거였냐고 묻자, 자기도 이상하다고 답했다고...... 어릴 적 우완 투수가 워낙 다수이다 보니 투수는 으레 주로 쓰는 손과 관계 없이 오른손으로 던져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21]
  • 손가락 끝 살점이 사고로 절단된 이후 엉덩이에서 조직을 떼어 이식한 경력이 있다. 하필 오른손에 사고가 났던 탓에 공을 챌 때 종종 무리가 가해지는 듯 하다. 때문에 경기 중 투구수가 늘어날 경우 종종 이식한 부위에서 피가 흐르거나, 유니폼 바지에 피가 묻어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 선수 시절에는 본인의 선발 등판일마다 영자신문을 읽는 모습이 많이 포착됐다.
  • 별명은 선수시절땐 성을 따서 밤느님,코치시절땐 밤코치 등 으로 불린다

6.1.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2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9
삼성
11
60⅔
6
2
0
0
3.56
52
5
28
2
51
1.32
2010
21
83⅓
6
5
0
0
4.54
87
5
42
2
66
1.5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11
넥센
30
'''172⅓'''
(5위)
7
'''15'''
(1위)
0
0
4.70
169
12
98
12
115
1.55
2012
30
'''208⅔'''
(1위)
'''16'''
(2위)
4
0
0
'''2.20'''
(1위)
180
6
53
7
102
1.12
2013
30
172⅔
12
10
0
0
4.43
192
10
79
14
129
1.57
2014
6
29⅓
1
2
0
0
5.52
36
5
22
1
19
1.98
<color=#373a3c> '''KBO 통산'''
(6시즌)
<rowcolor=#1f2023> 128
727
48
38
0
0
3.84
716
43
322
38
482
1.43

7. 관련 문서


[1] 뉴저지에 있는 독립구단[2] 계약 기간은 3월 31일까지이다.[3] 당시 다이에는 사이토 카즈미, 스기우치 토시야, 와다 츠요시, 아라카키 나기사 등 신예 4인방이 선발투수진을 구성했었다. 사이토 카즈미는 이 해 20승 3패를 기록하며, 이가와 케이와 함께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사이토는 전성기가 오래 못 갔는데, 소프트뱅크가 인수했던 2005년부터 호크스는 몇 년 간 플레이오프에서 미끄러지며 가을고자 소리를 들었는데, 사이토는 이 시절 부상을 당하고 5년을 재활하다가 은퇴하고 만다. 현재는 소프트뱅크의 코치로 재직 중.[4] 1,2,6,7차전은 다이에의 홈인 후쿠오카 돔에서, 3,4,5차전은 한신의 홈인 고시엔 구장에서 개최됐다. 홈팀들이 홈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특이한 시리즈였다.[5] 참고로 4년 전 호크스가 4승 1패로 우승했던 1999년 일본시리즈의 상대팀은 주니치 드래곤즈였는데, 당시 주니치 3총사(선동렬-이종범-이상훈)가 일본시리즈에서 무릎을 꿇었다.[6] 그런데 사실 히어로즈에서 우승하지 못했을 뿐이지 타 팀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사람은 제법 있다. 특히 현대에서.[7] 미국 독립리그인 '아틀란틱 리그' 소속팀. 넥센에서 같이 선수 생활을 한 앤디 밴 헤켄도 한때 여기 소속이었다. 리그 수준은 AAA 정도. 나중에는 브래드 스나이더도 넥센에서 재계약에 실패한 후, 여기서 여포짓을 했다(...)[8] 왜 놀라운 성적이냐면, PCL 리그는 최악의 타신투병 리그다.[9] 다만, 그 때는 뉴욕 메츠 소속이였다.[10]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이 둘은 각 팀의 1군 투수코치와 1군 타격코치로 재회했다.[11] 이 게 문제가 됐던 게 경기 초중반에 선발투수가 마운드에서 상태가 안 좋으면 트레이너를 불러서 몸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사이에 덕아웃에서는 유사 시를 대비해 불펜투수의 몸을 풀게 한다. 즉 아무리 투구가 불가능한 상태라도 조금이라도 불펜투수가 몸 풀 시간을 벌어주는게 보통인데, 나이트는 상태가 안좋으니 공 던지고 그냥 자기 발로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결국 이우선이 올라오긴 했는데 제대로 몸 풀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올라와야 했다.[12] 선발, 계투를 모두 소화한 고원준이나 코리는 제외.[13] 해설자들도 이를 수 차례 지적하곤 했다.[14] 일전에도 무릎 때문에 구단에서 많이 걱정하면서 매일매일 체크하라는 김시진 감독의 요청으로 2012년 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체크를 시작하여 제대로 각성 했다.[15]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이닝이터를 찾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기아 타이거즈가 아킬리노 로페즈의 후반기 부진을 보고도 재계약 쪽에 무게를 두는 이유 중 하나가 그만한 이닝이터를 찾기 어렵기 때문. 나이트 다음으로 넥센에서 2011년에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문성현이었고, 130이닝을 살짝 넘었다.[16] 2013 시즌 내내 기복 있는 롤러코스터 피칭과 불혹에 접어드는 나이 때문에 재계약을 포기해야 된다는 여론과 비록 2013년의 기록은 좋지 못하지만 나이트만한 용병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여론이 대립했다.[17] 재미있는 사실은 캘러웨이 또한 이 팀의 전신격인 현대 유니콘스의 에이스 투수였다는 것.[18] 또 다른 외국인 선수 윌머 폰트는 입국을 위한 취업비자 발급과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마쳤으나, 11월말 현지에서 신청한 '국외여행허가서' 발급이 지연됨에 따라 추후 입국할 예정[19] 하지만 염경엽 전 SK 감독도 단장 시절에 등번호 85번을 달았던 적이 있어서 아직 단정하기엔 이르기는 하다. 염단장하고 나이트 어드바이저의 차이점은 염단장은 당시에 그냥 85번을 단 점퍼를 입고 다녔을 뿐이고 공식적으로는 등번호 85번은 박계원 코치가 달았었다. [20] 그 3실점도 1회에만 내줬다. 조지마 겐지가 주자 아카호시 노리히로를 잡으려던 도루저지가 아웃타이밍인데 세이프 판정이 나서 흔들린 모양.[21] 이정후의 아버지도 야구와 필기빼고 왼손으로 생활을 한다.[22]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