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코지(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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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달콤한 마스크와 높은 연기력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배우.
일본 연극 뮤지컬계를 이끌고 있으며[3] , 지금 가장 난투를 잘하는 배우. 시대극의 귀공자. 신센구미!의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2. 연예 활동
생후 머지않아 아기 모델로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인생의 전부가 연예계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 그 귀여움이 평판이 좋아서 30편 이상의 CM에 출연하며 활약했다.
1987년에는 만 10살의 나이로 일본 초연 레 미제라블(뮤지컬)에서 소년 혁명가 가브로슈를 연기하면서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주로 연극 뮤지컬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에서 주연하고 있다.
1993년에는 16살의 나이로 연속 드라마 한지붕 아래에서 병약한 소년 후미야를 연기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그 이름을 알린다. 지금까지도 그를 후미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5년에는 연속 드라마 삼각 하트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1996년에는 꽃보다 남자의 애니메이션 TV 시리즈와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하나자와 루이 역을 맡으면서 성우로 데뷔했다.
1997년에는 싱글 IMAGINE을 발매하면서 가수로도 데뷔했다.
1998년 일본 초연 뮤지컬 렌트에서 그가 연기한 마크 역은 지금까지도 레전드로 남아있으며, 이 작품과의 만남은 본인의 인생에도 큰 전환기가 되었다.
2003년 레 미제라블(뮤지컬)에 16년 만에 마리우스 역으로 컴백하여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2004년에는 NHK 대하 드라마 신센구미!(드라마)에서 콘도 이사미 역의 카토리 싱고를 보좌하는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로 NHK 대하 드라마에서 서브 주인공으로서 출연을 하게 된다. 실제 히지카타 토시조가 빙의한 듯한 연기력으로, 히지카타의 실제 별명이기도 했던 '귀신 부장(鬼の副長)'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주인공인 콘도 이사미를 뛰어넘는 인기를 자랑했다. 콘도 이사미가 신정부군에게 처형되면서 극은 막을 내렸으나, 시청자들의 많은 요청으로 인해 2006년 정월시대극 신센구미!! 히지카타 토시조 최후의 하루에서 또다시 히지카타 토시조 역을 맡으면서 단독 주연이 되는 것은 물론, NHK 대하 드라마 중에서는 이례적인 후속작이 되었다. 히지카타 토시조 최후의 하루를 크랭크업하면서 대하 드라마의 촬영은 2003년부터였으므로 햇수로만 무려 3년동안 히지카타를 연기했기에 그 3년동안 히지카타 토시조로 살아온 것 같았다는 소감까지 남겼다. 신센구미! 전후로 야마모토 코지의 히지카타는 강렬한 인상을 남겨, 트위터에서 실시한 야마모토 코지 총선거에서 항상 독보적인 1등을 차지하고 있다.[4]
2005년에는 홍백가합전 백팀 사회를 맡는다.
2005년, 2007년, 2010년 세 번에 걸쳐 뮤지컬 The Last Five Years에서 주인공 제이미 역을 맡아 연기했다. 상연이 거듭되며 여자주인공은 매번 바뀌었지만 남자주인공은 야마모토 코지가 작품의 제목처럼 5년 동안 계속 연기한 것이 특징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이지만 히지카타 역의 인기로 한창 주가가 올라간 야마모토 코지가 출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야마모토 코지가 스스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 중 하나.[5]
2007년에는 드라마 화려한 일족에 조연인 만표 긴페이 역으로, 가족의 정이 사라진 만표 집안을 증오하면서 마음속으로 형을 늘 응원하지만, 아버지 다이스케(키타오오지 킨야)의 방해로 인해 결국 좌절하는 형 만표 텟페이(기무라 타쿠야)의 모습을 보며 점점 회의적이고 무기력해져가는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2007년 드라마 아지랑이의 갈림길 ~이네무리 이와네 에도 일지~에서 주연을 맡아 화려한 검술 액션을 선보이며 시대극 히어로의 새 지평을 연다. 히지카타 토시조의 이미지가 강했던 야마모토 코지의 기존 인상과는 정반대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역할로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시리즈는 4년에 걸쳐 3기까지 이어진다. 2010년 정월시대극을 끝으로 시리즈는 일단락 되었지만, 2017년 7년 만에 정월시대극으로 부활하여 다시금 그 인기를 증명, 마침내 완결되었다. 이 사카자키 이와네 역은 야마모토 코지 본인에게도 애착이 깊은 역할로 "이와네로 시작해 이와네로 끝난 행복한 30대"였다고 자평한다.
2007년 뮤지컬 헤드윅에서는 전곡을 영어로 소화하는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섬세한 연기도 놓치지 않으며 큰 찬사를 받는다. 이후 재연, 삼연을 거듭하며 관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으며 헤드윅의 인생을 살았다는 평을 듣는다.[6]
2010년 Team YAMAMOTO presents 록 뮤지컬 갓스펠로 첫 연출을 담당하고 주연도 맡아 연출가로서도 수완을 보인다.
2012년에는 또다시 대하 드라마인 타이라노 키요모리(드라마)에 후지와라노 요리나가 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악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력이 증명되었다. 첫 촬영날 공연자인 나카이 키이치에게 "지금까지 많은 배우들을 봐왔지만, (눈썹이 없는 헤이안 시대의 독특한) 귀족 분장이 일본에서 제일 잘 어울린다"고 극찬받았다고 한다.[7][8]
2012년 야마모토 코지가 주연을 맡아주는 것을 전제로 제작된 드라마 박앵기에서 오른팔을 잃은 검호의 검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한층 깊어진 연기력을 선보인다. 당시 야마모토 코지는 복수의 드라마 촬영 및 직접 연출과 주연을 맡은 뮤지컬의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 박앵기의 섭외는 거절하려고 했으나,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부탁하는 열의에 결국 섭외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감독은 신센구미!부터 인연을 맺어온 분으로 야마모토 코지와 매우 호흡이 잘 맞아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013년 일본 초연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서는 매 공연 두 주인공이 역할을 바꿔 연기하는 어려운 과제도 거뜬히 소화해내며 큰 화제를 모아, 극장 사상 일일 최다 관객동원수를 기록한다.
2013년 게오르크 뷔히너 탄생 200주년 기념작 음악극 보이체크에서 연출가 시라이 아키라와 11년 만의 합작으로 주목을 모은다. 사회 부조리로 인해 파멸로 치닫는 젊은 병사를 압도적으로 표현해내며, 베테랑 배우임에도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2014년 세계적인 음악가 미야케 준[9] 의 음악 세계를 무대화한 실험적인 작품 'Lost memory theatre'에서는 포르투갈어와 프랑스어 노래를 부르며 연기 못지않게 비범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한다. 야마모토 코지는 이 노래들을 전부 귀로만 듣고 외웠다고 한다. 보이체크부터 함께한 미야케 준은 야마모토 코지를 "동물적 직감과 표현자로서의 스킬이 일치하는 남자"라고 높이 평가한다.
2015년 일본 초연 뮤지컬 멤피스에서 노래, 연기, 춤 삼박자를 갖춘 훌륭한 퍼포먼스로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동시에 이끌어내며 인생 배역을 새로 쓰게 된다. 재연을 희망하는 뜨거운 목소리에 2017년 야마모토 코지 연출, 주연으로 다시금 돌아오게 되었다.
2015년에는 NHK 아침드라마 '아침이 왔다'에서 또다시 히지카타 토시조 역할로 출연했다. 야마모토 코지는 국장과 그때 그 멤버들이 있다는 전제하에 존재하는 히지카타라며 처음엔 출연을 별로 내키지 않아 하였으나, NHK의 3~4개월에 걸친 기나긴 구애 끝에 출연이 성사되었다. 의상과 가발은 04년에 방송된 대하드라마 '신센구미!' 에서 사용한 것을 재사용했는데, 11년이라는 세월의 흐름도 뛰어넘어 여전히 딱 맞아 그 꾸준한 신체 단련에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러나 야마모토 코지가 받아본 첫 대본은 이전에 연기했던 히지카타와 캐릭터가 달랐다고 한다. 내가 출연한다는 것은 '신센구미!'의 히지카타가 요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프로듀서의 허가를 받아 미타니 코키에게 직접 부탁하여 '신센구미!' 대사에 가깝게 말투를 변경했다고 한다. 원래 NHK 사극에서는 후속작이 아닌 이상 다른 작품에서 같은 역할을 맡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으나, 야마모토 코지는 이 룰을 깬 몇 안되는 배우였다.[10] 그만큼 지금도 그의 히지카타 토시조가 얼마나 인기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
2015년에는 인기 여배우인 호리키타 마키와 교제 끝에 결혼했다.
2016년에는 신센구미!(드라마)의 각본을 담당한 미타니 코키의 NHK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에 이시다 미츠나리 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대하 드라마에서 다시 한 번 미타니 코키와 호흡을 맞추었다. 이시다 미츠나리 역은 히지카타, 이와네의 뒤를 이을 드라마 부문 야마모토 코지 제3의 인생 배역으로 일컬어질 만큼 큰 호평을 받았고, 미츠나리의 이미지 향상에 기여한 공을 높이 사서 연고지의 감사패를 받았다. 트위터에서 실시한 사나다마루 인기 투표에서도 2회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다시금 야마모토 코지 - 대하 드라마 - 미타니 코키 조합의 시너지를 발휘했다. 사나다마루의 야마모토 코지의 이시다 미츠나리는 쿠사카리 마사오가 연기한 사나다 마사유키와 함께 연간 40만명의 관광객이 오고가는 아오모리현 이나카다테무라 논 아트의 테마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세키가하라 전투 축제에 갑주를 입고 등장해 축제 분위기를 북돋았으며, 이 모습을 라인 생중계로 40만명의 시청자가 지켜보았다.
2017년 관객석이 회전하는 극장 IHI 스테이지 어라운드 도쿄 개관 첫 공연 극단 신칸센 촉루성의 7인에 출연. 어른스러운 섹시함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호평받는다. 실은 공연 초반에 다리 부상을 당해 만신창이였지만 부상당한 다리를 처음 적에게 베이면 계속 다리를 절면서 싸워도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고. 애초에 얼마나 준비해도 항상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오히려 실패했을 때에 어떻게 하는지이며, 야마모토는 '그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할 때 두근거린다고 한다.
2017년 드라마 우에키 히토시와 노보세몬에서 쇼와를 상징하는 스타 우에키 히토시를 호연했다. 매회 우에키 히토시의 히트곡인 스다라부시와 무책임남 등의 노래도 직접 소화했는데, 엔딩 크레딧에 야마모토 코지의 이름이 뜰 때까지 우에키 히토시의 노래를 립싱크 한 것이 아니냐는 혼란을 줄 정도로 신이 내린 싱크로율을 선보였다.[11] 노래 뿐만 아니라 걸음걸이나, 말투, 버릇까지도 많은 연구를 거쳤으며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닌 우에키 히토시의 인품이 묻어나오는 연기로 절찬을 받았다. 아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쇼와의 스타를 연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야마모토는 우에키 히토시의 제자이자 이 작품의 원안을 쓴 코마츠 마사오 상이 기뻐해주신다면 그걸로 좋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 코마츠 마사오는 그런 야마모토의 연기를 절찬하며 자동차 안에서 코마츠의 홀로서기를 지지하는 장면을 보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2017년 우에키 히토시와 노보세몬과 같은 시기에 일일드라마 토토짱!에서 쿠로야나기 테츠코의 아버지 쿠로야나기 모리츠나를 연기하며 큰 호평을 받는다. 이 역할에 야마모토 코지를 추천한 쿠로야나기 테츠코는 야마모토 코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자신의 아버지와 똑 닮았다고 큰 신뢰를 보였으며, 작가인 오오이시 시즈카는 "드라마 전반부는 야마모토 코지가 다했다. 야마모토 코지 상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쵸를 바라보는 눈빛에 견딜 수 없었다"라며 무한한 감사를 표시했다. 모리츠나는 주인공의 아버지 역이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아 드라마 최종회 직전 방송된 총집편은 모리츠나를 중심으로 편집될 정도였다.
2017년 가을 화재 예방 운동 포스터의 모델이 되었으며 신주쿠 일일 소방 서장을 거쳐 2018년 신년 소방 첫 의식의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2019년 히지카타 토시조 사후 150주년이 되는 역사적 단락에 신센구미 최후의 땅 하코다테 고료가쿠 축제에 특별 게스트로 참가. 신센구미 명대사인 "마타세타나(기다리게 했지)"를 재현하며 큰 환영을 받았다. 야마모토의 뮤지컬이 상연되는 극장에는 신센구미 둔소 구 마에카와 저택에서 화환이 도착해 관객들의 주목을 모았다.
3. 필모그래피
3.1. TV 드라마
3.1.1. 연속 드라마
3.1.2. 단막극 / 게스트
3.2. 웹 드라마
3.3. TV 애니메이션
3.4. OVA
3.5. 영화
3.5.1. 실사 영화
3.5.2. 극장판 애니메이션
3.6. 무대
4. TV 프로그램
5. CM
6. 디스코그래피
6.1. 야마모토 코지
6.1.1. 싱글
6.1.2. 미니 앨범
6.2. KOJI YAMAMOTO & KD earth [15]
7. 수상
8. 여담
- 만화 드래곤 볼의 팬으로 캐릭터 성대 모사와 일러스트를 그리는 게 특기이다. 손오공의 성우 노자와 마사코에게서 직접 녹음한 자명종 시계를 선물 받아 보물로 여기고 있다. 드래곤 볼 캐릭터를 연기에 참고하는 일도 있다고 하며 신센구미의 히지카타는 베지터, 화려한 일족의 긴페이는 피콜로, 이와네는 손오공, 박앵기의 탄게 텐젠은 천진반을 참고했다고 한다(...).
- 모노마네의 달인이면서 BOØWY의 광팬으로 기타를 치면서 호테이 토모야스, 히무로 쿄스케의 성대모사가 가능하다. 단지 성대모사 차원이 아니라 원래 기타는 잘쳤기 때문에 예능에서 종종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송에서는 종종 어쿠스틱 기타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일렉트릭 기타까지 프로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연말 FNS 가요제에는 GLAY의 히사시, BREAKERZ의 DAIGO, 니시카와 타카노리, 키시단의 아야노코지 쇼, 라르크 앙 시엘의 tetsuya, BOØWY의 다카하시 마코토와 함께 BOØWY RESPECT 무대에 서기도 했다.
- 어머니가 사장으로 있는 개인사무소 소속으로 형을 매니저로 두고 있다. 아역 시절에는 형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현재 형은 연예계 활동을 하지 않는다) 야마모토는 대형사무소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쭉 혼자서 해왔는데, 이는 일본 연예계에서 매우 드문 경우이다. 그 이유에 대해 "나는 큰 조직이나 극단 등에 들어가서 모두와 보조를 맞추며 하는 타입은 아니니까. 그리고 배우란 본디 혼자서 걷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보조는 맞추는 것이 아니고 혼자서 걷는 사람들이 문득 옆을 보면 몇 명인가 있었다 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그 선만은 지키고 싶어요. 오래된 것에 얽매이지 않고 내 자신이 여기다! 라고 생각되는 곳에 계속 서 있을 수 있는 자유만은 소중히 하고 싶고, 항상 지니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쇼후쿠테이 츠루베에게 이 작은 틈새 공장 출신이 홍백가합전의 사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평을 듣는다.
- 1998년 21세에 출연한 일본 초연 뮤지컬 렌트에서 마크 역을 연기해 지금까지의 배우관이 바뀔 정도로 큰 전환기를 맞는다. 해외에도 눈을 돌려 23세에 3개월 간 뉴욕 생활을 하기도 한다. 렌트의 원작자 조나단 라슨에게 큰 영향을 받아 일찍이 사망한 그의 정신을 이어가려고 한다. "조나단은 브로드웨이의 낡은 음악에 질려서 아무리 주위에 인정받지 못해도 좀 더 멋진 것을 목표로 계속 만들었어. 렌트는 지금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어요. 주류에, 공동체에 휩쓸리는 것만큼 아티스트로서 비참한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해. 공동체 작품에도 몇 편인가 나갔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떨칠 수 없어. 그렇기에 만날 수 있었던 작품이나 사람도 있어요. 이 길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닌 거죠." 조나단이 30세 생일을 맞이하는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작품 틱틱붐을 공연하던 중 야마모토는 극중 역할과 마찬가지로 30세 생일을 맞이한다. 생일 당일에는 특별 공연 형식으로 관객들의 축하를 받았다. 조나단이 사망한 나이인 35세에 틱틱붐을 재상연하며 직접 연출과 번역, 주연을 도맡았다.
- 렌트를 만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해졌다. 그것은 좋았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일도 되고 말았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구나 생각하면 무척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말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간간히 스페셜 작품이나 특별 출연을 하는 것 외에는 TV 연속드라마 출연도 삼갔다. 약 8년간 그런 딜레마와 투쟁이 이어졌지만 대하드라마 <신선조!>에 출연하며 의식이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동세대 공연자들의 존재가 컸어요. 굉장히 충실한 현장을 1년간 경험한 것으로, 어떤 작품에 어떤 만남이 있을지 모른다. 그 기회를 스스로 버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론 저의 핵심에 있는 연극 취향의 기준은 지금도 있고 그것은 안이하게 바꿀 수 없고 바꾸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럼 어떤 작품이라도 나의 핵심을 소중히 하면서 하면 되겠지 라고" 그렇다고 해서 일을 지나치게 넓혀서도 안 된다고 경계한다. 항상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며 그 입장을 확인하면서 걷고 있다.
- "역시 '무대를 중심으로' 라는 의식은 계속 변하지 않아요. 솔직히 드라마에 나가는 것도 스스로가 원했다기보다는 주위로부터 요구되는 것이 변해왔다고 할까, 자신이 놓여져 있는 상황이 변해온 거네요. 무대라는 것은 한정적인 장소잖아요. 흥미가 있는 사람만이 돈을 지불하고 보러 오는 곳. 게다가 객석수는 한정되어 있어. 그러니까 텔레비전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저를 알려서 극장에 모시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 다음에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고 뭔가를 느끼도록 하는 것도 좋지 않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는 일본 뮤지컬계를 더 훌륭하게 바꾸고 싶다는 이상이 있고, 실현되는 것은 100년, 200년 후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저의 원동력이에요."
- 찰리 채플린을 동경한다. 언제 봐도 바래지 않는 화려한 퍼포먼스, 지금 배우들이 할 수 없는 걸 그 시대에 이미 했다는 것도 대단하고, 엔터테이너로서 전부 통틀어 좋아한다고. "그는 비뚤게 세상을 보는 레지스탕스가 있어. 나도 그런 확고한 자신감과 에너지를 가지고 싶어"
- 극작가 미타니 코키는 대하드라마 '신센구미!'의 히지카타 토시조 역으로 야마모토 코지를 4년 전부터 점 찍어두었다고 한다. 드라마 '한 지붕 아래'에서 야마모토 코지를 눈 여겨 본 미타니 코키가 연극 '오케피'에 그를 섭외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미타니 코키는 처음 야마모토 코지를 '예쁘장하게 생겨서 조용히 책을 읽는 순진한 청년'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지켜본 그는 '몸 안에 마그마를 품고 있는 남자'로 당시 최연소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연습이 끝날 즈음엔 '재주는 좋지만 사는 법이 서투른 남자' 로 인식이 바뀌었다. 일견 순진해 보이는 청년은 실은 뜨거운 녀석으로, 하지만 그 실태는 역시 순진하다는 결국 본 그대로의 녀석이었다고 한다. 공연이 종반에 접어든 무렵 미타니 코키는 야마모토 코지에게 "앞으로 4년 후, 1년 스케줄을 비워뒀으면 좋겠어"라고 부탁하며 대하드라마 '신센구미!'의 히지카타 토시조 역에 그를 강력 추천하게 된다. 흰 피부의 예쁘장한 남자지만 그 안에 감춰둔 반골정신과 마그마 같은 정열은 신센구미의 귀신 부장과 그대로 겹쳤다고 한다. 현존하는 히지카타 토시조의 사진과도 매우 닮았다.
- 연예계에서 친한 친구 중 한명이 SMAP 출신의 카토리 싱고. 신선조!를 촬영할 당시 야마모토는 과중한 스케줄과 익숙하지 않은 사극 촬영에 힘들어하던 카토리를 늘 곁에서 신경쓴다. 실제로 극중 역할과 같은 국장과 부장 사이였다. "연기는 뒷전이었다"고 할 정도. 야마모토는 오늘은 카토리군이 어떤 상태로 올까, 어떤 모습으로, 오늘은 어느 정도 기운이 있을까를 살피며, 그가 지쳐있는 날은 힘이 나게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줘야지 결심했다. "이 사람 이대로라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고 한다. 이 사람을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그래서 십 몇년 간 연예계 동료들과 교류가 없던 카토리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는 것을 촬영 끝날 때까지의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단단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집에 금이 가면 그대로 무너져버린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카토리였지만 야마모토의 노력으로 신선조! 촬영 후반에는 반쯤 무너졌다고 한다. "저는 그 편이 통풍이 잘 되는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 카토리의 휴대폰 번호를 알게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카토리는 야마모토에게 '훔칠 수 있으면 훔쳐봐'라며 도발했고, 야마모토는 신선조! 촬영 당시 자신의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카토리의 옷소매에 집어넣거나 대기실 문에 붙여놓거나 비밀번호가 걸린 싱고의 대기실에 몰래 들어가 '이렇게 틈이 있으면 훔칠 거야' 라고 사전에 경고하거나 다방면으로 시도[16] 마침내 다트바에서 카토리가 다트를 던지는 사이에 카토리의 휴대폰으로 자신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방송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비겁한 방법이라고 카토리가 정색하며 화를 내서 근 한달간은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야마모토는 그 자리에서 사과하며 저장된 번호를 지웠지만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고. 후에 카토리는 야마모토에게 "내 전화번호를 훔쳐줘서 고마워"라고 감사를 표한다. 신선조! 촬영이 전부 끝나고 카토리는 야마모토의 문자에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해올 수 있었어"라고 답장하며, 이번에는 메일 주소를 훔쳐보라고 도발한다. 참고로 메일 주소는 카토리의 고향 친구가 알려주었다고 한다. 기무라 타쿠야는 야마모토가 카토리의 바뀐 메일 주소를 모르던 시절 문자를 대신 전달해준 일화가 있다. 반대로 카토리는 송신 실패한 야마모토가 보낸 기무라의 생일 축하 문자를 기무라 타쿠야에게 대신 전해주기도 하였다.
- <신선조!> 에 출연한 배우들과 스태프는 야마모토의 주선으로 드라마가 종영된 후에도 일 년에 한 번 모임을 가진다. 2016년부터는 같은 작가의 작품인 <사나다마루> 팀과 합동 개최되고 있다. 사나다마루에서는 신선조!에서 공연했던 사카이 마사토와 12년 만의 재공연이 화제가 되었다.[17]
- 2005년 전년도의 활약을 평가하여 장래가 유망한 배우에게 주어지는 에란도르 신인상을 받았을 때 소감이 인상적이다. 정말 어릴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신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하다며 "언제까지나 모순을 지니면서 골에 다다를 수 없는 그런 보잘 것 없는 배우로 있고 싶다" 고 한다.
- 신센구미!(드라마)의 인기를 이어 홍백가합전에서 백조 사회자를 맡은 적이 있다. 훤칠한 체격에 잘생긴 외모까지 겸비하여 훌륭한 진행 능력을 보여주어 대중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 2008년 뮤지컬 일본판 헤드윅에서 헤드윅을 연기했을 때 서문탁이 헤드윅의 상대역 이츠학을 연기했었다. 이러한 서문탁과의 인연으로 2008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일본인 관광객답게(...) 명동에서 자주 포착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 개그맨이자 MC로 잘 알려진 야마구치 토모미츠(굿상)와 사적으로도 친해[18] 둘만의 바이크 팀을 만들어 투어링을 가거나 가족과도 함께 어울린다. 굿상의 아이가 야마모토를 무척 잘 따른다고 한다. 굿상은 야마모토가 독신 시절 이사 기념으로 냉장고 선물을 약속해 직접 지고 온 적이 있다. 야마모토는 굿상의 생일에 점프 수트를 선물하지만 색상이 맞지 않아 돌려받은 이력이 있다. 야마모토는 해외를 다녀와서 굿상에게 도끼를 선물하기도 한다. 야마모토는 굿상의 방송에 자주 우정 출연하고 있다.
- 2013년 미타니 코키 극작 연출 연극 <오노레 나폴레옹>에서 야마모토의 상대역인 아마미 유키가 심근경색으로 공연 기간 도중 하차하게 된다. 미야자와 리에가 대역을 맡게 되는데 미야자와와 제일 얽힘이 많았던 야마모토는 3일 밤을 새며 그녀와 연습을 맞춰주고 무대에 올랐다. "미타니 상, 아무 걱정마세요. 저, 이런 일도 있을 거 같아서 알빈의 대사 전부 외워왔어요. 미야자와 상이 실전에서 막혀도 내가 완벽하게 커버해 보일 테니 괜찮아"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미타니는 이런 야마모토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공연이 무사히 막을 내린 후에 사흘 밤을 자지 못한 야마모토는 피로가 극에 달하여, 다음 날 드라마 회견에 부득이하게 결석한다.
- 드라마 <밤의 선생님> 촬영 당시 화이트 데이에 여성 스태프 & 배우 전원(단역 포함)에게 직접 쓴 카드와 함께 초콜릿을 선물했다. 이러한 야마모토의 소소한 배려에 단역으로 나온 배우가 무척 감격하여 인증했다.
- 2014년 동갑내기 친구인 카토리 싱고, 미즈키 아리사와 함께 뮤지컬 오션스11에 출연. 뮤지컬 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두 사람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며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다. 야마모토가 매일 바꾸던 애드리브는 명물 코너가 되었을 정도로 화제였으며, 카토리 싱고는 공연 도중 생일을 맞은 야마모토의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기획하기도 하였다.
- 배우자인 호리키타 마키와 결혼하기 6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야마모토 코지는 2009년에 호리키타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락처를 물어보았는데, 자기 번호가 아닌 소속사의 번호를 가르쳐줬다고 한다. 또다시 부부 역할로 재회했는데 (촬영은 역시 2009년) 야마모토는 다같이 회식에 가자고 권유했지만 거절당했다고.[19] 2012년에 야마모토와 호리키타는 같은 방송국에서 서로 다른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옆 스튜디오라서 자주 인사를 하러 갔다고 한다. 야마모토는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여 무려 십여년 전 아역 시절에 공연한 선배 배우가 옆 스튜디오에 있다고 듣고 인사를 갈 정도다. 당시 호리키타의 작품에는 야마모토의 친구인 오오사와 켄이라는 배우가 출연하고 있었고 그 친구를 만나러 가서 종종 호리키타의 안부를 묻곤 했다고 한다. 후에 호리키타는 야마모토가 재미있는 마술을 보여주거나, 낯을 가리는 자신에게 계속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고 밝힌다. 2014년 야마모토는 호리키타가 출연한 연극을 보러 갔을 때 자신의 연락처와 메일 주소를 적어 '슬슬 친구가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쪽지를 남겼지만 답장은 없었다고 한다.[20] 2015년에 연극 <폭풍의 언덕>에서 연인 역할로 출연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급진전을 보인다. 야마모토는 이전부터 흥미는 있었지만 연극을 하면서 호리키타를 좋아하게 되어 교제 요청을 하는데 결혼을 전제하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고. 연극 연습의 후반부터 40통에 가까운 편지를 손수 적어서 건넸다고 한다. 이것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21] 러브레터가 아니며 연극에 서툰 호리키타에게 조언을 해준 것이다. 낯을 가리고 말수가 적은 호리키타를 배려해서 쪽지나 메모로 적어준 것인데 어느 새 그것이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교환이 되었다고 한다. 도중에 호리키타는 이제 말로 해도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연극 마지막 날, 야마모토는 자신의 연락처를 건넸고 호리키타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던 중 입적 5일 전에 야마모토는 새삼스럽게 편지로 청혼했으며 호리키타가 잘 부탁한다는 답장을 주었다고 한다. 2015년 8월,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에게 2016년 말에 첫째가 탄생한다. 태어난 일시, 이름, 성별 등은 미공표.
- 2016년 잡지 ViVi 조사 "현장에서 사랑받는 진정한 미남"으로 TV 제작 스태프에게 인기 있는 호감도 미남 베스트 3에 선정되었다. 대기 시간에도 특기인 성대모사로 모두를 웃겨준다고 한다.
- NHK 아침드라마 아침이 온다에서 근 10년만에 히지카타 토시조 역할을 다시 연기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때 입었던 모든 의상이 정말 그때와 마찬가지로 딱 맞았다고 한다.[22] 본인은 여러가지 운동을 병행해서인지 몸이 잘 유지된것 같다고 한다. 방송 당시엔 많은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는데 특유의 대사인 "기다리게 했군!(待たせたな!)" 부터 시작해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아주었기 때문이다.
- 자국 내에서는 러시아의 전직 피겨 스케이팅 선수 예브게니 플루셴코와 닮았다는 반응이 많다. 실제로 일본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이 되기도 했는데 얼굴 계통이 같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배우 박용우와 닮았다는 반응도 나온다.
- 원래 2020 도쿄올림픽 기후현 성화릴레이 봉송자 중 한명으로 낙점되기도 했다. 의외로 태생지인 도쿄가 아닌 기후현에서 성화릴레이 봉송을 하게 된 이유는 2016년 NHK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에서 이시다 미츠나리를 연기하였는데, 이시다 미츠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결했던 세키가하라 전투가 지금의 기후현에서 일어났기 때문. 하지만 코로나 19때문에 올림픽이 아예 1년 연기되면서 성화봉송도 중단되었다.
[1] B형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자주 앨범. "조금 돈이 드는 놀이"였으나, 멤버 중 한 명이 사망하여 현재는 제작 중단 상태[2] "저는 시대극을 다른 의미로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현재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도 본 사람도 없어요. 예의범절도 지키는 사람도 있고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오히려 상상을 더할 수 있어요." 이처럼 야마모토 코지 본인이 시대극을 좋아하기도 하여 영상물에서는 주로 시대극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다. 무사, 낭인, 귀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올 장르를 소화하고, NHK 중역 프로듀서는 향후 10년, 20년 앞의 시대극을 지탱할 수 있는 건 야마모토 코지 이외에는 없다고 단언한다.[3] 연극, 뮤지컬, 음악극 장르를 불문하고 활약하고 있으며, 많은 후배 배우들이 그를 동경하며 따른다. 브로드웨이 레 미제라블(뮤지컬)의 오리지널 연출가인 존 케어드가 일본 연출도 담당하면서 오디션을 통해 당시 10세였던 야마모토 코지를 선발하였는데, 그가 16년 후 다시 레 미제라블 무대에 돌아왔을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6년 사이에 일본 뮤지컬 세계는 큰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그「새로운 물결」의 선두에 코지가 있었습니다. 처음 내가 초연한 1980년대, 일본에서는 아직 전통적인, 낡은 뮤지컬의 창법, 연기가 주류였습니다. 특징적인 것이 큰 비브라토입니다. 이것은 엔카 등의 일본의 파퓰러 음악에 다용되고 있고 그래서 예쁘지만, 이 가창법으로는 서양 음악 뮤지컬은 노래할 수 없다. 코지는 비브라토의 폭을 작게 억제해 흔들리지 않고 힘차게 발성하는 가창법을 몸에 익힌 최초의 배우 중 한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단지 몸에 익힐 뿐만 아니라, 이 창법의 의미를 이해하고 매우 잘 노래하는 선구적인 배우가 되었다. 오늘날 일본 뮤지컬은 대부분 이 창법으로 바뀌었습니다."[4] 2017년 현재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5] 그 밖에는 RENT, Tick, Tick... Boom! 이 있다[6] 2008년 헤드윅 재연에는 한국 록 가수 서문탁과 공연하며 한국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7] 심지어 그 당시 귀족풍습대로 이빨을 검게 칠하는 오하구로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나중에 야마모토 본인이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밝히기를 처음에는 실제 고증대로 이빨을 검게 칠하고 연기를 했는데, 연기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검게 칠한 게 자꾸 지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이빨에 마우스피스를 끼고 연기를 했다고.[8] 실제 헤이안 시대때는 귀족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이빨을 검게 칠하는 풍습이 있어 타이라노 키요모리 제작진들은 처음에 여성 출연진들에게도 이를 재현시키려고 했으나 괴랄한 비주얼때문에 여성 출연진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결국 남성 출연진들에게만(특히 후지와라 가문일족) 이빨을 검게 칠하게 했다고 한다.[9] 한국에는 전지현의 휘슬러 광고 음악, 영화 Pina의 사운드 트랙 등으로 알려져있다.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 소개된 도쿄 올림픽 예고 오프닝의 편곡을 담당하기도 했다. [10] 야마모토 코지 외에 다른 작품에서 동일 역할을 한 사례 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타케나카 나오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히데요시(1996)에서 단독 주연을 맡고, 군사 간베에(2014)에서도 메인 조연을 맡았다.[11] 우에키 히토시와 노보세몬 OST에는 야마모토 코지가 부른 스다라부시가 수록되었으나 저작권 상의 문제인지 다른 곡들은 실리지 않아 OST를 기대하던 시청자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12] 2022년 방영예정인 NHK 대하드라마로 이전의 신센구미!, 사나다마루의 극본을 담당했던 미타니 코키가 극본집필을 담당한다. 사나다마루 이후 6년만에 다시한번 미타니 코키와 호흡을 맞추게 된 셈.[13] 옆에 이후 아내가 되는 호리키타 마키가 함께 서있다.[14] 911 자선 콘서트 뉴욕 공연[15] B형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자주 앨범. "조금 돈이 드는 놀이"였으나, 멤버 중 한 명이 사망하여 현재는 제작 중단 상태[16] 하지만 그런 야마모토에게 카토리 또한 대기실 비밀번호 힌트를 알려주며 밀당을 했다. 야마모토가 비밀번호 누르는 손가락의 위치를 보고 알아내면 카토리가 매일 비밀번호를 바꾸고 그렇게 주고받다가 야마모토가 정말 모르겠다고 하면 카토리가 "오늘은 어제와 정반대 패턴이에요"라고 슬쩍 알려줬다고[17] 두 사람은 매년 신선조 망년회에서 만나며, 사적으로도 서로의 연극을 보러 가는 사이지만 드라마 공연은 오랜만이다.[18] 희한한것은 극중에선 둘이 상당히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사상적인 부분도 있고 기본적인 이념면에서 특히...[19] 야마모토는 연예계 마당발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료와 연락처 교환은 기본. 솔선해서 회식을 이끄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면 호리키타는 동료들과 깊이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 정반대 타입의 두 사람일뿐 처음부터 남녀 사이를 의식한 대시나 그에 따른 거절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20] 실은 그보다 전인 2013년에 야마모토의 공연에 호리키타에게서 화환이 왔다. 연극 뮤지컬 배우이기도 한 야마모토는 평소에도 동료의 공연을 빠짐없이 관극하는 편이며, 이 작품은 그와 인연이 깊은 연출가의 작품이기도 하다.[21] 당시 과열된 미디어가 대부분의 이야기를 부풀리고 와전해서 보도했다.[22] 공교롭게도 전작과 후작 모두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된 드라마다. 같은 방송사 소품을 그대로 재활용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