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92 농구대잔치
1. 개요
1991년 11월 2일부터 1992년 2월 1일까지 펼쳐진 대한민국 농구대회 중 최 정상 레벨의 대회. 남자부 14개팀 (실업 7팀, 대학 7팀)이 참가하였다. 이 항목에서는 남자부 대회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2. 참가팀
- 실업팀 (7팀)
- 대학팀 (7팀)
- 전대회 (1990-91 농구대잔치)에서 대학팀이 무려 11팀이나 참가하면서 실업팀들과의 기량차로 인한 경기수준 하락이 비판받았다. 이로 인해 91-92 대회부터는 상위 7개 대학팀만 참가하였으며, 상위 대학 7팀은 1991년 춘계, 추계 대학연맹전 및 MBC배 성적을 토대로 선정되었다.
3. 운영방식
- 1차대회: 총 14개 팀을 3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 후 상위 2개팀이 6강 풀리그로 우승자를 가렸다. (각 조별 예선에서의 전적을 가지고 간다. 같은 조의 팀과는 상위리그에서 다시 맞붙지 않는다.)
- 2차대회: 총 14팀을 7팀씩 2개조로 조별리그 후, 각 조 상위 2개팀이 4강 풀리그를 거쳐 우승자를 가렸다. (각 조별 예선에서의 전적을 가지고 간다. 같은 조의 팀과는 상위리그에서 다시 맞붙지 않는다.)
- 3차대회: 1,2차 대회 성적을 점수화하여 상위 8개 팀이 진출, 4개팀씩 2개조로 조별리그 후 각 조 상위 2개팀이 4강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렸다.
- 챔피언 결정전: 1,2,3차대회 성적을 토대로 최상위 2팀이 5전 3선승제로 최종 우승자를 가렸다.
4. 대회결과
4.1. 1차 대회
1991년 11월 2일 개막하여 12월 2일까지 총 14팀 (실업 7팀, 대학 7개팀)이 3개조로 편성되어 진행되었다.
1) 조별 리그
※ 승패가 동률일 경우 골득실로 순위를 결정했다.
2) 6강 결선리그
※ 승패가 동률일 경우 골득실로 순위를 결정했다.
- 1차대회 우승: 현대전자 / 준우승: 연세대 / 3위: 삼성전자 / 4위: 기아자동차
- 1차대회 개인부분 시상
- MVP: 이원우 (현대)
- 득점상: 김현준 (삼성)
- 리바운드상: 표필상 (중앙대)
- 어시스트상: 강동희 (기아)
- 수비상: 김유택 (기아)
- 이번대회에서도 연세대의 돌풍은 강력했다. 지난 대회에서 3차대회(8강리그)까지 진출했던 연세대는 주축멤버를 그대로 유지한채 기량이 한층 물이 올랐고, 대학생 국가대표 3인방 오성식-문경은-정재근에 1학년 포인트가드 이상민이 확실히 주전으로 자리매김했고, 센터 김재훈과 4학년 이상범까지 오히려 기존 실업팀들보다도 탄탄한 전력을 자랑했다. 조별리그에서 전대회 우승팀 기아자동차를 또한번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키더니, 6강결선리그에선 삼성전자까지 이기고 연승을 질주하면서, 최초의 농구대잔치 차수별 대회 우승타이틀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결선리그 최종전에서 현대전자에게 75-64로 대패하면서[2] 또다시 골득실차로 현대에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3]
- 기아와 현대의 라이벌전은 또한번 불꽃을 튀겼는데, 결선리그에서 현대가 기아에 대패한 경기에서 기아 에이스 허재를 마크하던 김광[4] 이 허재의 얼굴에 강펀치를 날려버렸다. 허나 90-91 농구대잔치 결승에서의 폭력사태로 이미 3개월 출장정지를 받고 돌아온 허재는 묵묵히 참았고, 김광만 출장정지를 받았다. 이후 허재가 김광을 고소, 김광이 구속수사를 받는등 요란했었는데, 이후 허재가 전주 KCC 이지스 감독에 부임하면서 김광을 코치로 선임하는 또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모습을 또 보여주기도 했다.(대인배??)
4.2. 2차 대회
1991년 12월 6일 개막하여 1992년 1월 2일까지 진행되었다.
1) 조별리그
※ 승패가 동률일 경우 골득실로 순위를 결정했다.
2) 결승리그
- 2차대회 우승: 기아자동차 / 준우승: 삼성전자 / 3위: 연세대 / 4위: 현대전자
- 2차대회 개인부분 시상
- MVP: 김유택 (기아)
- 득점상: 김현준 (삼성)
- 리바운드상: 표필상 (중앙대)
- 어시스트상: 강동희 (기아)
- 수비상: 김유택 (기아)
- 3차대회 진출팀: 1, 2차대회 성적을 점수화하여 총 8개팀 진출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연세대, 현대전자, 기업은행, 경희대, 산업은행, 한국은행(※)
※ 8위자리를 놓고 상무, 중앙대, 고려대, 한국은행 등의 점수가 동률이라 순위결정전을 하려고 했으나, 전력 약화를 이유로 상무, 중앙대, 고려대가 3차대회 출전을 포기하였고, 이에 어부지리로 한국은행이 3차대회에 출전했다.
※ 8위자리를 놓고 상무, 중앙대, 고려대, 한국은행 등의 점수가 동률이라 순위결정전을 하려고 했으나, 전력 약화를 이유로 상무, 중앙대, 고려대가 3차대회 출전을 포기하였고, 이에 어부지리로 한국은행이 3차대회에 출전했다.
- 1차대회 우승팀 현대전자에 상무에서 제대한 국가대표 이영주, 최병식까지 2차대회부터 합류하면서 올해는 드디어 기아를 한번 이겨보는가 싶었으나, 조별리그부터 여지없이 대패;;하고 만다. 각성한 허-동-택 트리오의 적수는 없었으며 1차대회에서의 부진을 만회하며 예선부터 결선까지 7연승을 달리며 우승했다.
- 기아-삼성-현대를 제외한 나머지 실업팀들은 줄줄이 대학돌풍의 희생양이 되어갔다. 2차대회에서도 4강에 오른 연세대는 물론이고, A조 예선에서 경희대도 실업팀들을 상대로 연이어 대승을 거뒀다. 반면 정봉섭 감독의 중앙대는 표필상(200cm)-정경호(202cm)의 더블포스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음에도 불구 큰 생산성을 내지 못하며 이번에도 예선탈락, 허-동-택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실패한다. 경희대 센터 이창수(196cm)는 실업팀들을 상대로도 여전한 활약을 보이며 일약 대학 No.1 센터의 자리에 올랐고, 중앙대의 국가대표 센터 표필상은 이때부터 거품이 점점 꺼지면서 국대에서도 멀어지고 만다.
4.3. 3차 대회
1992년 1월 10일 개막하여 1992년 1월 26일까지 진행되었다.
1) 조별 리그
2) 4강 결선리그
- 3차대회 우승팀: 기아자동차 / 준우승: 삼성전자 / 3위: 연세대 / 4위: 현대전자
- 3차대회 개인부분 시상
- MVP: 허재 (기아)
- 득점상: 김현준 (삼성)
- 리바운드상: 김유택 (기아)
- 어시스트상: 이상민 (연세대)
- 수비상: 김유택 (기아)
- 챔피언 결정전 진출팀 (1, 2, 3차대회 총 점수 상위 2팀 진출):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4.4. 3-4위전
4.5. 챔피언결정전
4.6. 대회 결산
- 최종 순위
- 우승: 기아자동차 / 준우승: 삼성전자 / 3위: 현대전자 / 4위: 연세대
- 개인부문 시상
- 기아자동차는 1차대회에서 연세대, 삼성전자에 각각 한번씩 패하긴 했으나, 2차대회 개막 이후 챔피언 결정전까지 단한차례도 패하지 않고 15연승가도를 달리며 우승한다. (현대는 90-91 농대에 이어 91-92 농대에서도 기아를 단한번도 못 이겼다.)
- 현대전자의 이충희[5] 는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인해 이 대회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려 하였으나, 대만 리그 홍궈팀의 적극적인 러브콜에의해 플레잉코치로 이적하게 된다. 그런데 대만 진출 후 무릎상태가 갑자기 호전되면서 선수로도 맹활약, 선수 겸 감독으로 팀을 우승시킨다. (김수겸??)
- 연세대는 농구대잔치 참가이래 최고 성적(4위)을 거두었고, 이때부터 이상민-오성식-문경은 등 미남선수들이 많던 연세대는 90년대 초반 아이돌그룹 이상의 인기를 구가했다. (김재훈은 아마 아니었을거다;;) 여기에 다음 신입생으로 받은게 우지원-김훈-석주일(?)이었다.
[1] 서울 삼성 썬더스의 가드 이동엽의 아버지이자 前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감독.[2] 90-91 농대 2차대회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기아, 삼성 연파 후 현대에 대량실점끝에 패배.[3] 이 경기에서 연세대의 주포 문경은은 현대의 신인 김지홍에게 철저히 막히면서 단 2점에 그친다. 골득실차가 중요하다보니 득점만 더 했어도 우승할 수 있었던 아쉬운 순간이었다.[4] 대회 첫 출전이었다.[5] 농구대잔치 통산득점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