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93 농구대잔치
1. 개요
1992년 12월 5일부터 1993년 3월 7일까지 펼쳐진 당시 대한민국 농구대회 중 최정상 레벨의 대회. 남자부 14개팀 (실업 8팀, 대학 6팀)이 참가하였다. 이 항목에서는 남자부 대회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2. 참가팀
- 실업팀 (8팀)
- 유도훈, 임근배 → 현대전자
- 강양택 → 삼성전자
- 이승학 → 한국은행
- 대학팀 (7팀)
3. 운영방식
- 1차대회: 총 14개 팀이 풀리그를 진행, 상위 6팀이 2차대회에 진출했다.
- 2차대회: 1차대회 상위 6팀이 풀리그를 진행, 상위 4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차대회에서의 전적은 유지되지 않았다.)
- 플레이오프: 2차대회 상위 4팀이 1위-4위, 2위-3위의 대진의 4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4강전은 3전 2선승, 결승전은 5전 3선승제)
4. 대회결과
4.1. 정규리그 (1차대회)
1992년 12월 5일 개막하여 1993년 1월 31일까지 총 14팀 (실업 7팀, 대학 7개팀)이 풀리그전을 펼쳤다.
- 정규리그 (1차대회) 개인부분 시상
- MVP: 허재 (기아)
- 득점상: 김현준 (삼성)
- 리바운드상: 표필상 (SBS)
- 어시스트상: 안세환 (산업은행)
- 수비상: 봉하민 (동국대)
- 지난 91-92 농구대잔치를 끝으로 주전멤버 정덕화와 강정수가 은퇴했음에도, 허-동-택이 건재한 기아의 독주는 여전했다. 이충희의 은퇴로 전력약화가 예상되었던 현대는 전포지션에 걸친 두터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삼성은 김진-김현준-오세웅 노장 트리오의 활약속에 여전한 3강의 위치를 유지했다. 뒤이어 정재근, 표필상, 이상범 등 연세대, 중앙대 출신 알짜 졸업생을 모두 스카웃하여 창단한 신생팀 SBS가 바로 직전 실업연맹전(코리안리그)에서의 돌풍을 일으킨데 이어 농구대잔치에서도 선전하면서 정규리그 4위에 올랐다.
- 연세대는 국가대표 센터 정재근이 졸업했고, 주전 가드 오성식이 당시 유명했던 "오성식 스카우트 파동"을 일으키면서 연세대와 충돌, 자체 징계로 인해 농구대잔치에 불참하였다. 허나 1번자리에서 이미 오성식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하고 있던 이상민이 건재한데다, 2번 자리에서 오성식의 공백을 신입생 우지원, 김훈이 꽤나 잘 메워주면서 여전한 연세대 돌풍을 유지하였다.
- 전년도 기아자동차의 우승멤버였던 강정수는 은퇴후 중앙대 코치로 부임하였다가, 농구대잔치를 앞두고 정봉섭 감독이 중앙대학교 체육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모교 중앙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장신군단의 이미지였던 팀 컬러를 김승기-홍사붕-김영만을 주축으로한 빠른 팀으로 변모시키면서 이전 농구대잔치때마다 부진을 면치못했던 중앙대를 모처럼 6강 결선리그까지 이끌었다.
- 고교랭킹 1,2위라는 전희철, 김병철을 보강한 고려대는 기존 멤버들이 너무 약해 신입생 2명이 실질적으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해야만 했고, 상무, 산업은행에도 지는 등 고전끝에 리그 9위를 차지, 결선진출에 실패한다. 다만 대학 라이벌 연세대와의 맞대결에서 김병철의 결승자유투 끝에 73-71로 간신히 승리하면서, 88년 이후 공식경기 16연패의 사슬을 끊어낸다.
4.2. 6강 리그 (2차대회)
1993년 2월 4일부터 1993년 2월 21일까지 진행되었다.
- 6강 리그 (2차대회) 개인부분 시상
- MVP: 강동희 (기아)
- 득점상: 김현준 (삼성)
- 리바운드상: 표필상 (SBS)
- 어시스트상: 강동희 (기아)
- 수비상: 표필상 (SBS)
- 현대전자가 드디어 기아를 이겼다. 2차대회 네번째 경기에서 현대는 강인태의 결승 3점슛으로 86:84 2점차로 역전승, 89-90 농구대잔치 이후 무려 14연패를 이어오던 기아와의 악연을 끊는다.
4.3. 4강 플레이오프
1993년 2월 25일 개막하여 1993년 3월 7일까지 진행되었다.
- 기아자동차는 88-89 대회부터 5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다음 대회에서 6회 연속 우승을 노렸지만.......
- 삼성전자는 이 대회를 끝으로 오세웅과 김윤호가 은퇴했다.
4.4. 대회 결산
- 최종 순위
- 우승: 기아자동차 / 준우승: 삼성전자 / 3위: 현대전자 / 4위: 연세대
- 개인부문 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