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 대학농구연맹전
1. 개요
1993년도 대학농구연맹전 및 기타 대학농구 대회들에 대해 소개한다.
- 11월에 열린 1993 자카르타 아시아선수권에 연세대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고려대 전희철, 중앙대 김영만 등 총 5명의 대학생 국가대표가 참가하였으나, 별도의 사전 소집이 없어 국가대표 선수들은 모든 연맹전에 빠짐없이 참가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전국체전까지;;)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최종 순위 3위를 기록, 2위까지 1994 토론토 세계선수권 티켓을 놓치게 되었으나 2위를 했던 북한이 승부조작혐의(;;)로 출전권을 박탈당하면서 어부지리로 세계선수권에 나갈수 있었다.
2. 대회결과
2.1.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3월)
1993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항목 참조
- MVP: 문경은(연세대)
2.2. 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 (9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12개 1부 대학팀이 모두 참가하였으며, 5명의 대학생 국가대표들(연세대 서장훈, 이상민, 문경은, 중앙대 김영만, 고려대 전희철)은 약 2달후에 1993 자카르타 ABC가 열림에도 불구, 모두 참가할 수 있었다.
3) 결선리그[4]
- MVP: 김병철(고려대)
2.3. 전국체전 (10월)
2.4. 대학농구연맹전 2차대회 겸 농구대잔치 대학부 (12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농구연맹 남대 1부 12개팀 전체가 참가하였다.
- 2차 연맹전의 성적만 가지고 농구대잔치 참가팀 4팀이 가려지게 되었다.
- 조별리그에서의 전적을 결선리그에 가져가지 않는다.
※ 골득실로 순위 결정.
3) 6강 결선리그
- 최종순위: 고려대/중앙대 공동 우승 / 명지대/연세대 공동 3위 => 총 4팀 농구대잔치 2차대회 진출
- 우승후보 연세대가 부진끝에 라이벌 고려대, 중앙대에 연이어 패하며 3위로 간신히 농구대잔치 2차대회에 진출했다. 이에 연세대 선수들은 주장 문경은 이하 전원이 삭발을 한채 농구대잔치에 참가했고 그 결과는...우승
- 결선리그 첫 경기에서 조성원(4년,F,181cm)-조성훈(2년,G,185cm)의 "조-조 쌍포"가 불을 뿜은 명지대가 고려대를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후 고려대는 남은 경기에서 4연승을 거두며 중앙대와 공동 우승했고, 명지대는 건국대와 한양대까지 잡으며 대학 4강의 일원으로 농구대잔치에 진출했다.
2.5. 1993-94 농구대잔치 (12월~1994년 3월)
1993-94 농구대잔치 항목 참조
3. 시즌 결산
※ 2차연맹전 공동우승(고려대/중앙대)
- 전통의 농구명문이면서도 80년대 이후부터 연세대와 중앙대에 밀려 강호의 면모를 전혀 보이지 못하고 이빨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던 고려대 농구부가, 1993년 들어 드디어 태세 전환에 성공했다. 박한 감독이 큰맘먹고 스카웃했던 92학번 랭킹 1,2 순위출신 전희철, 김병철이 드디어 신입생 티를 벗고 맹활약했고, 광주고 시절 센터였으나 대학에서 폭발적인 3점슛을 장착하며 3번으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한 양희승과 "캘리포니아 특급" 박재헌 등 특급 신입생들까지 가세하면서, 1,2학년의 어린 선수들이 주축임에도 1993 시즌 2관왕(1차/2차연맹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킨다. 고려대의 어린 호랑이들은 농구대잔치에서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실업 강호 삼성전자, 현대전자를 연파하는 등 정규리그 4위로 8강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8강에서 삼성전자(정규리그 5위)의 노련미에 말려 1승 2패로 역전패하고 만다. 오랜만에 부진에서 벗어나 성인농구 최강팀들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랐으나, 라이벌 연세대와 중앙대가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돌풍을 넘어 태풍을 일으키며 각각 우승과 4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이들과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였던 고려대로선 2% 아쉬운 결과일수 밖에 없었다.
- "국내최장신", "골리앗센터", "슈퍼루키" 등 한국농구 사상 최강 센터라는 서장훈이 가세한 연세대는 시즌 첫 대회인 MBC배를 가볍게 접수했지만, 이후 연이은 CF 촬영과 행사참여, 그리고 자만심으로 인해 1차, 2차연맹전에서 의외로 고려대, 중앙대에 연패하면서 각각 3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인다. 지난 1992-93 농구대잔치 4강 멤버인 이상민-김훈-우지원-문경은-김재훈이 건재한 상황에서 대학 전관왕은 못할망정 3위라는 성적은 최희암 감독의 자존심을 구길만한 일이었고, 이에 최희암 감독 이하 선수단 전원이 삭발투혼[7] 을 보여주며 1993-94 농구대잔치에 참가하였고, 그 결과 18승 1패[8] 라는 압도적인 전적으로 대학팀 사상 첫 농구대잔치 우승 타이틀을 가져가게 된다.
- 센터 정경호(202cm)가 졸업했지만 29세 강정수 감독이 이끄는 중앙대의 달리는 농구는 더 강해졌다. 김승기, 홍사붕의 백코트와 김영만, , 그리고 센터 조동기까지 연신 달리는 중앙대의 팀컬러는 특히 남성팬들의 인기를 끌었고[9] 시즌 2관왕(2차연맹전, 전국체전) 및 농구대잔치 4강이라는 호성적을 거두게 된다. 특히 1993-94 농구대잔치 8강에서 허동택이 건재한 최강 기아자동차를 2승 1패로 물리치는 최고의 이변을 일으켰는데, 매경기마다 전반엔 10점차 이상 뒤지다가 후반시작과 함께 강압수비와 속공으로 몰아붙이면서 형님들[10] 의 체력을 빼놓으면서 대역전극을 펼치는 양상이었다. 당시 기아자동차가 결승전에서 연세대를 만나면 질까봐, 8강에서 동생들(중앙대)을 위해 태업을 했다는 설도 많았는데, 그러기엔 이 시리즈에서 허재가 3경기 내내 38점-32점-17점으로 분전하는 등 최선을 다했으나 후반들어 노장들의 체력문제[11] 로 패했다는게 정설이다. 중앙대가 기아자동차를 8강에서 잡아준 덕분에 연세대가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할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연세대가 정규리그에선 기아를 잡았지만, 5전 3선승 제에서는 기아가 유리했을거라나..
- 조성훈(2년,G,184cm)-조성원(4년,F,182cm) 쌍포[12] 가 이끌던 명지대가 돌풍을 일으키며 시즌내내 대학 4강을 유지했다. 골밑이 타 팀들보다 단신이었지만[13] 연세, 중앙, 고려대 3강을 제외하면 크게 밀리는 팀이 없었고, 무엇보다 조-조 쌍포의 콤비플레이가 뛰어났다. 농구대잔치에서도 정규리그에서 중앙대를 격파하는등 선전했으나, 기업은행과 승자승에서 밀려 9위로 아깝게 8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 그밖에 "한양대의 모든것" 추승균이 입학한 한양대와 최명도-장창곤 콤비의 경희대, 정진영-김용식의 건국대 등이 6강 언저리를 맴돌았으나, 대학 3강과의 전력차가 너무나 커서 이변이나 돌풍이 적은 해이기도 했다.
4. 1993년 졸업반 선수들의 행보
90년대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슈터 문경은과 전성기가 짧긴했지만 폭발력 하나만큼은 대단했던 00-01 시즌 MVP 조성원이 있던 세대로, 대학시절 활약은 이들에 못지 않지만 KBL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중앙대 트리오 김승기-홍사붕-조동기와 역시 KBL에선 외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백업을 전전했던 연세대 파워포워드 김재훈 등 나름 농구대잔치와 KBL을 주름잡았던 선수들이 대다수 포진하고 있어, 허재, 의 졸업이후 수년간의 대학농구 암흑기를 지나 한국농구의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시작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 국가대표팀 선발
- KBL 출범(1997) 이후까지 활약
- 프로출범 이전 은퇴
5. 그때 그 선수들
5.1. 건국대
2차연맹전 6강
- 장석환(2학년,G,180cm)
- 정진영(2학년,G,184cm)
- 김용식(2학년,G,187cm)
- 황준삼(3학년,F,179cm)
- 이일웅(4학년,C,195cm)
- 신현식(1학년,C,196cm)
5.2. 경희대
MBC배 4위, 1차연맹전 6강
- 최명도(3학년,G,180cm)
- 김광운(2학년,G,181cm)
- 손규완(1학년,F,186cm)
- 김도명(4학년,F,190cm): 전주고 졸. 기업은행-광주나산(97-98)-안양SBS(98-01)-대구 오리온스(01-02)
- 장창곤(3학년,C,194cm)
- 박영진(2학년,F,191cm)
- 구장환(2학년,C,191cm)
5.3. 고려대
시즌 2관왕(1차/2차연맹전), 농구대잔치 8강
- 김병철(2학년,G,185cm)
1993년도 한해동안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었으며, 1993-94 농구대잔치 어시스트 3위에 오른다. 허나 애초에 스타일이 1번이라기보단 본인 공격을 먼저 보는 타입이라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
- 양희승(1학년,F,195cm)
광주고 시절 센터였으나, 대학 입학후 슈터로 전환하여 농구대잔치때부터 주전 2번으로 뛰었다.
- 박세웅(4학년,G,180cm): 부산중앙고 졸, 기업은행-광주나산(97-00)
고대 입학 후 1년 선배 윤호영에 밀려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으며, 윤호영 졸업한 후에는 후배 김승민, 김병철[19] 등에게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내주었다. 군 제대후 KBL 광주나산에 복귀하면서부터 최명도의 백업 포인트가드로 쏠쏠하게 활약했다. 현 부산 kt 소닉붐 수석코치
- 진현구(4학년,F,190cm): 용산고 졸, SBS
청소년 대표 출신의 장신 3번이었으나, 위의 박세웅과 마찬가지로 1년 선배 정인교한테 밀려 벤치를 달궜던 선수. 정인교가 졸업한 뒤 주전 자리를 승계하나 했더니 이번에는 양희승이 센터에서 3번으로 성공리에 전향하면서 망했어요. 졸업 후 창단멤버들이 대거 군입대한 SBS에 스카웃되었으나 KBL 출범 직전 어른의 사정으로 은퇴했고, 현재는 제주도에서 농구교실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 김승민(2학년,G,182cm)
- 전수훈(3학년,C,195cm)
- 이익수(3학년,C,203cm)
- 박훈근(1학년,C,195cm)
- 박준영(2학년,F,195cm)
5.4. 국민대
- 이환우(3학년,G,184cm)
- 김성환(3학년,F,194cm)
- 조승민(4학년,C,192cm)
- 배성우(2학년,C,202cm)
5.5. 단국대
- 위성우(3학년,G,185cm)
- 김정인(1학년,F,190cm)
- 양준호(1학년,C,197cm)
- 곽기완(1학년,C,200cm)
5.6. 동국대
- 이원혁(3학년,G,178cm)
- 정성조(2학년,G,181cm)
- 봉하민(4학년,G/F,190cm): 대경상고 졸. 기아자동차-부산기아(97-00)-여수골드뱅크(00-02)-서울삼성(00-01; 임대)
5.7. 성균관대
- 박규훈(3학년,G,180cm)
- 허훈(1학년,F,186cm)
- 배상우(2학년,F,192cm)
- 전재경(1학년,C,195cm)
- 박상욱(4학년,C,200cm): 배재고 졸. 기업은행-광주나산/여수코리아텐더(97-03)
배재고 1학년까지 야구부에서 활동했으나 큰 키 때문에 뒤늦게 농구선수로 전향한 케이스. 기업은행 최초의 2미터 장신 센터로 구력이 짧아 기량은 떨어졌지만, 체격조건이 워낙 좋아 농구대잔치 시절 가끔씩 20점대의 득점력을 과시하며 깜짝 활약을 하기도 했다. [20] KBL에서 7시즌간 뛰었고, 현역내내 現 부산 kt 소닉붐 전신(이자 암흑기) 기업은행-광주나산-광주/여수골드뱅크-여수코리아텐더 시절 오직 한 팀에서만 뛴 레전드(라 불리기는 좀 부족한) 선수이다.[21] 현재 성남시농구협회 회장을 맡고있다.
5.8. 명지대
MBC배/1차/2차연맹전 3위, 농구대잔치 9위
- 조성훈(2학년,G,185cm)
- 고상준(4학년,F,182cm): 전주고 졸. 삼성전자-수원삼성(97-99)
허영, 서동철 등과 함께 삼성전자의 농구대잔치 암흑기[22] 를 지키던 단신 3점슈터.
서울 SK 나이츠 전력분석팀장을 지냈고, 2017년 세종시를 연고로 창단한 남자실업농구팀 2호[23] "점핑호스"의 초대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서울 SK 나이츠 전력분석팀장을 지냈고, 2017년 세종시를 연고로 창단한 남자실업농구팀 2호[23] "점핑호스"의 초대감독으로 부임하였다.
5.9. 연세대
농구대잔치 우승!! MBC배 우승
- 이상민(3학년,G,183cm)
- 김훈(2학년,F,190cm)
- 우지원(2학년,F,193cm)
- 문경은(4학년,F,190cm): 광신상고 졸
- 서장훈(1학년,C,207cm)
- 이종호(1학년,G,180cm): 대경상고 졸
청소년대표 출신의 듀얼가드였으나, 김성헌이 벤치를 달굴 정도로 연대의 가드진은 포화상태여서 변변한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최희암 감독과의 불화까지 겹쳐 2학년 때 농구부를 퇴단, 군복무를 선택한다.
- 김도완(4학년,G,175cm): 마산고 졸, 한국은행(1994-96)
1, 2학년 때는 오성식, 이상민의 틈바구니에서 김성헌처럼 벤치만 달궜으나, 3학년이던 1992년, 오성식이 이중계약 파동으로 제명되면서 기회를 잡아 투 가드 시스템에서 이상민을 보좌하는 세컨드 가드 역할을 맡는다. 졸업 후 한국은행에 입단했다가 농구단 해체로 은퇴했고, 이 후 지도자로 전향해 모교인 마산고 감독을 맡다가 현재는 WKBL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수석코치로 근무 중이다.
- 이민우(4학년,C,187cm): 미국 클리블랜드고 졸. 산업은행-나래이동통신-원주나래/TG(97-99)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주목받았으나 애초에 빅맨 치곤 너무 단신인데다 연세대의 두터운 선수층 탓에 대부분 벤치에서 시간을 보냈다. 연대출신으로 드물게 산업은행에 입단했고[24] KBL에서도 세시즌간 뛰었으나, 병역문제로 조기은퇴했다. 은퇴 후 전자랜드 코치, LG 외국인선수 통역, WKBL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코치를 역임했다. 97-98 시즌을 앞두고 나온 "KBL 가이드북"에 의하면 프로 초창기 토종선수중 최고의 서전트점프를 자랑하던(85cm) 선수였다.[25]
- 김재훈(4학년,C,193cm): 용산고 졸.
서장훈의 존재감이 너무나 압도적인 탓에 최희암 감독은 서장훈 싱글포스트에 3점슈터 3명(김훈-우지원-문경은)을 동시에 사용하는 작전을 주로 썼고, 1학년때부터 주전센터였던 김재훈은 벤치멤버가 되었다.
5.10. 중앙대
시즌 2관왕(2차연맹전, 전국체전), 농구대잔치 4강
- 김승기(4학년,G,182cm): 용산고 졸
- 홍사붕(4학년,G,185cm): 송도고 졸. SBS-안양SBS(97-01)-인천SK(00-03)-전주KCC (03-04)-서울SK(03-04)-안양SBS(04-05)
- 김영만(3학년,F,193cm)
- (3학년,F,193cm)
- 조동기(4학년,C,197cm): 강원사대부고 졸. 기아자동차-부산기아/울산모비스(97-02)
5.11. 한양대
1차/2차연맹전 6강
- 김동철(3학년,G,180cm)
- 이현주(2학년,F,185cm)
- 추승균(1학년,F,190cm)
- 최호(3학년,F,193cm)
- 이흥섭(2학년,C,200cm)
5.12. 홍익대
- 김영구(1학년,G,187cm)
- 이무진(3학년,F,186cm)
- 김대현(3학년,F,190cm)
- 이정환(1학년,C,195cm)
[1] 공동 3위[2] 공동 3위[3] 1993-94 농구대잔치 1차대회를 겸해 열렸다. MBC배 및 1차연맹전 성적을 토대로 상위 6팀만 참가하였다.[4] 예선에서의 상대 전적을 가지고 간다.[5] 총 12팀 참가[6] 대학팀 최초[7] 삭발이라곤 하나, 짬이 되는 4학년 문경은이나 귀공자 타입이었던 우지원, 김훈, 서장훈(??) 등은 스포츠머리 수준이었다. 반면 이상민은 앞머리까지 모두 빡빡밀어버리는 소림사 스타일의 삭발을 감행, 소녀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 장면도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재현 되었다.)[8] 정규리그 11전 전승. 1패는 결승전 3차전 상무에게 당했다.[9] 연세대, 고려대에 비해 오빠부대를 끌어들일만한 꽃미남이 보이지 않는다;;;[10] 당시 기아자동차는 중앙대 OB팀으로 유명했다.[11] 90년대 초만해도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관리가 될때가 아니어서, 체력소모가 심한 농구선수는 27세만 넘으면 무조건 노장으로 불렸다.(1993년 당시 김유택 30세, 허재 28세, 강동희 27세.) 중앙대 감독 강정수가 28세에 은퇴한게 이상한게 아닐때였다. 심지어 유부남은 국대로 뽑으면 안된다는 신문기사도 있었으니...(왜??)[12] 얼굴만 봐도 알겠지만 절대 형제가 아니다;;[13] 정재헌(2년,193cm)-윤제한(1년,192cm)[14] 연세대 2학년이던 1991년 고베 ABC부터 2005 도하 ABC까지 15년간 선발되었다. 문경은의 존재로 인해 당시 김영만, 양희승, 우지원 등 같은 포지션의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15] 1999 후쿠오카 ABC, 2001 상하이 ABC 대표팀 선발[16]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997 리야드 ABC 대표팀 선발[17] 1995 서울 ABC,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 선발[18] 13-14 플레이오프 창원LG:부산KT 4강전에서 전창진 감독의 배치기 퇴장 사건 당시 주인공이다.[19] 모두가 알다시피 듀얼가드도 아닌 100% 슈팅가드다. 대학시절이나 KBL에서도 잠깐이나마 풀타임 1번을 본적이 있으나 결과가 별로 좋지 못했다. 특히 KBL 00-01 시즌에 김병철이 포인트가드를 봤을땐 김병철-전희철이 모두 뛰었음에도 10개팀 중 꼴찌를 차지했다.[20] 기업은행 입단 후 1995-96 농구대잔치에서 우지원-김훈-조상현이 이끌던 연세대의 골밑을 폭격하며 승리의 주역이 된 적이 있다. 195cm의 이병률과 함께 그나마 기업은행에서 믿을 수 있는 센터였다.[21] 유명하진 않았지만 착실한 골밑 플레이와 성실성을 인정받았다.[22] 김현준이 은퇴하고 문경은도 입대했던 시절.[23] 1호는 2016년 창단된 대구 놀레벤트 이글스.[24] 당시 대학선수들의 진로와 관련 암묵적인 룰이 있었는데, 1) 연세대 에이스급 → 삼성 (ex> 김현준), 평범한 주전/벤치 → 한국은행 (ex> 황상하), 2) 고려대 에이스급 → 현대(ex> 이충희), 평범한 주전/벤치 → 산업은행(ex> 정인교), 3) 중앙대 → 기아(ex> 허재), 4) 경희대 → 기업은행 등이 대표적이다.[25] 덩크좀 한다는 에어본 전희철, 저승사자 정재근, 주성타 김주성의 서전트 점프가 70cm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