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영화)
1. 개요
1937년 제2차 상하이 사변을 배경으로 한 전쟁 역사 영화.
2. 예고편
3. 줄거리
제2차 상하이 사변 의 사행창고 전투를 바탕으로 하며 영화의 농성전은 총 4일에 (1937년 10월 26일 ~11월 1일 새벽) 걸쳐 전개된다. 패주하는 중국군은 상하이로 가다 일본군의 습격을 당하고 탈영병들을 처형하는 다른 중국군 도 보며 험한 길 끝에 결국 사행창고로 흘러들어오게 된다.[2] 사행창고는 셰진위안 중교[3] 가 지휘하는 88사단 524연대[4] 가 지키고 있었고 이미 중국군이 상하이 에서 크게 손실을 입어 다 퇴각하는 와중 일본군의 추격을 늦추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사행창고는 당시 중국의 4대은행이 공동으로 쓰던 창고라 크기는 물론 갖춰진 물자가 상당했었고 상하이의 중화민국 지역의 작은 강과 거기에 놓여진 다리를 두고 영미 조계지와 경계를 이뤘다. 중화민국이 통치하는 상하이는 일본군이 이미 점령하고 파괴한터라 인외마경과 다름없지만 조계지역은 상주하는 영국군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했고 지옥과 천국이 강 하나로 갈려진 것 처럼 심히 대조된다. 그렇지만 창고 내 몇천톤의 가스가 있어 일본군이 적보다 나은 화력과 공군도 있었지만 조계지에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순수 보병으로만 전투를 치르게 된다.[5]
3.1. 1일차
나중에 흘러들어온 패잔병 들은 따로 창고의 한 구석에 몰아넣어졌고 일본군이 창고 안 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는 모두 중국군의 전술이었고 창고 안 에서 기습당한 일본군은 죄다 몰살, 첫 전투를 기분좋게 시작한다. 하지만 일본군이 독가스를 사용한대다 중국군 포로들을 창고 앞에서 학살하며 경고하였고 창고 내 중국군도 보복으로 방금 전투에서의 일본군 포로들을 처형했지만 약간의 잡음이 났다. 그로인해 이날 밤 탈영병이 발생했지만 탈영병들이 창고와 강이 연결된 수로에서 일본군이 잠입해 온걸 발견, 소리를 질러 창고의 중국군이 야습해온 일본군을 전부 무찌른다.
3.2. 2일차
국제연맹 에서 온 사절단이 창고 위 상공에 비행선을 띄워 전투를 관망했고 동시에 강 건너 조계지의 중국인들과 외국인 기자들이 전투를 관전했다.[6] 일본군은 창고 내 폭약 때문에 야포를 사용하지 못하는 대신 굴착기로 창고를 허물려 했지만 상기됐듯 넘치는게 폭약인 창고에서 수류탄과 함께 이용해 굴착기를 터뜨렸고 이에 일본군 보병들이 방패를 둘러싸 창고 벽에 폭약을 설치하려 했지만 중국군 병사들이 수류탄을 몸에 칭칭감고 자살공격을 하는 바람에 실패한다.[7] 3시간 내로 창고를 점거하겠다던 일본군은 실패해 국제연맹 사절단 앞에서 수모를 당했다. 한편 창고는 의약품과 식량 등이 부족해졌지만 조계지 내 중국인들이 나치깃발을 두르고[8] 강 건너로 가 필요물품을 제공했고 민간인 여럿이 희생해 전화선 까지 두게된다. 이때 셰진위안 중령과 인터뷰 에서 창고 내 중국군의 숫자가 '''팔백''' 이라 알려진다.[9] 그리고 그날 밤 창고 내 장병들을 위한 물품이 당시 상하이 걸스카우트 였던 양후이민(杨惠敏: 1915-1992)[10] 에게 기부될 때 대형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전달되었고 양후이민은 강을 헤엄쳐 건너가 깃발을 셰진위안 중령에게 전달한다. 국기를 받은 중국군 장병들은 의기가 넘쳤지만 일본군 항모가 상하이에 있는 상태에서 국기게양은 조금 꺼려졌지만 다음 날 강행하게 된다.
3.3. 3일차
창고 옥상에서 국기게양식을 셰진위안 중령의 영도로 가졌고 강 건너의 중국인들의 애국심과 항일의식을 고취시킨다. 국기 게양과 함께 중화민국 국가가 연주된다. 하지만 상하이 앞바다에 있던 일본 항모에서 발진한 A5M기들이 국기를 노리며 공격해왔고 대공포 조작 미숙으로 여러모로 중국군이 피해를 입지만 피와 살로 국기를 사수하는데 성공한다. 아울러 A5기 중 하나가 조계지 방향으로 공습해 조계 내 민간인들 소수도 희생되었고 영국의 구두경고가 일본군 에게 향했다.[11]
3.4. 4일차
사행창고의 중국군이 철수를 준비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일본군 장교(코노에 이사오)[12] 가 셰진위안과 면담을 요청했고 공터에서 두 사령관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군은 상부로 부터 중화기 사용을 허가받았고 전멸 및 조계지 영향으로 일 커지는 걸 막기위해 알아서 중국군이 창고에서 안전하게 철수하게 해주겠다 라는 식 으로 일본군 대대장이 소리쳤고 셰진위안은 일단은 거절하지만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을 직감해 장병들이 전통과 같이 죽기 전 목욕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영국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중국군 사단 정치주임이 창고에 찾아왔고 총사령관 의 공문이 입수되어 사행창고 내 중국군이 모두 강 건너 영미 조계지로 퇴각하고 시기에 맞춰 중화민국 지역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셰진위안은 그럴려고 이런 희생을 감수한게 아니라고 소리쳤지만 현실적 으로 일본군의 중화기 사용은 창고의 최후가 가까웠다는 소리와 같아 명령을 수용하고 철수를 준비하게 된다. 이에 밤에 후방에서 일본군을 기습해 철수의 시간을 벌 소수의 군인을 자원받은 뒤 철수하려 하지만 전투를 하지 않겠다던 기존 약속과 달리 일본군은 철수하는 중국군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셰진위안도 중상을 입지만 중국군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고 조계 내 동포들은 이들을 맞이하러 영국이 세운 바리케이드도 무시하고 이들에게 손을 뻗어 환영한다.
4. 철수 후 실제 역사
영화에도 잠깐 나왔고 원래 영미 조계를 통해 중화민국 통치지역 으로 장병들이 가야했지만 영국이 중국군을 놓아주면 조계를 친다는 일본의 협박에 철수한 병력들을 비무장화 시킨 뒤 감금했다. 그나마 조계 내 중국인들이 군인들의 식량과 교육 등 에 후원해 좀 나아졌다만 1941년에 일본군이 상하이 전체를 점령했고 이들은 전부 강제노역에 투입된다. 셰진위안은 왕징웨이 정권으로 부터 전향 요구를 줄기차게 받았지만 거절한 뒤 1941년 에 암살당한다. 그리고 전향서를 쓰지않은 장병들은 남양군도로 강제로 징용됐고 전후 약 100명 정도가 생존했다 한다. 생존자 중 국부천대 때 대만으로 건너간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중국 대륙에 남아있다 문혁 당시 박해당했다고 한다. 이는 참전 88사단이 장제스 직계사단으로, 장제스에게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던 친위부대였기 때문이다.[13] 다만 1980년대 이래 중일전쟁당시의 국민당군의 기여가 재평가됨에 따라서 이들도 점점 대륙에서 평가를 받게 되었다. 대만에서 최후까지 생존했던 참전용사 리딩신은 2013년 92세로 사망했고, 대륙의 최후의 생존 참전용사 양양정은 2010년 96세로 사망했다.
사행창고 자체는 일본군 치하, 국공내전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문혁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풍파를 거쳤어도 보존됐고 1985년에 유적지로 지정된다. 현재, 과거 영미조계지는 약간의 빈티지한 건물들을 제외하면 모두 현대화 됐고 동방명주 를 비롯한 상하이의 화려한 마천루들 사이에 창고는 원형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중화민국의 마잉주 정부는 2009년 남양군도에 파견되었다가 사망한 참전자들을 기리는 비석을 현지에 세웠고, 2010년 중화인민공화국도 참전자를 기리는 기념비와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이 전투는 일본군이 무적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중일전쟁 초반의 중국의 항전의지를 드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달후 벌어진 난징 전투와 6개월후 벌어진 우한 전투에서 중국군은 상하이에서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참패하고 국민정부는 장강 상류인 충칭까지 물러난다.
5. 등장인물
사행창고에 농성하는 중국군은 소속이 다른 여러 부대원들이 각양각색의 군장을 하고 있는데, 군벌연합체였던 국민당군의 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장제스 직계부대(88사단, 독일식 철모를 쓴 부대)가 아닌 기타 부대원들은 농성초반에는 사기가 매우 낮고 전투의지도 거의 없으며, 어떻게든 창고를 탈출해 안전지대로 피신하고자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애국심이 불붙어 중장비로 밀고 들어오는 일본군을 저지하여 88사단을 탈출시키기 위한 결사대에 자원한다.
- 돤우[14] (端午: 어우하오) - 호북성 보안단[15] 출신으로 삼촌과 함께 상하이에 지원병력으로 파병되었지만, 도보로 행군에 도착한 상해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고 국민당군도 찾을 길이 없었다. 이 호북성 보안단은 상급부대를 찾아 헤메다가 바로 일본군과 조우, 부대는 싸워보지도 못 하고 흩어지고 돤우도 삼촌과 친척동생인 호북꼬마를 포함한 부대원 몇몇과 함께 낙오병이 된다. 이들은 일본군, 중국군[16] [17] 을 모두 피해 숨어다니다가 헌병대에 체포되어[18] 사행창고의 농성장에 합류하게 된다. 처음에는 탈영를 기도하지만, 포로로 잡힌 삼촌이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전투가 계속됨에 따라 탈영할 생각을 접게 된다. 옥상에 게양한 청천백일기를 사수하려다가 일본군 전투기의 기총소사에 맞고 전사한다.
- 랴오톄 (老铁 : 장우) - 콧수염을 기른 노병. 브로디 철모를 쓰고 등장. 동북 안동 출신으로 동북왕을 모셨다고 한다. (동북군 출신인듯) 대공포부대원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전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부상병을 구하기 위해 전투에 뛰어들었다가 양 볼을 총알에 관통당한다. 이후 88사단을 탈출시키기 위해 일본군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결사대에 자원한다. 짧은 시간동안 친해진 양과이와 작별인사를 한 후 홀로 옥상으로 올라가 정군산의 황충을 묘사한 노래를 부르며 항일대도를 들고 한바탕 춤을 춘 후에 대공포로 일본군 진지를 저격한다.
- 양과이 (羊拐 : 왕첸위안) - 국민당군 36사단 패잔병. 산서성 출신이며 문맹이다. 시니컬한 성격이며, 마찬가지로 헌병대에 체포되어 억지로 농성장에 합류했다. 장교의 명령에 잘 따르지 않을 정도로 전쟁에 열의를 보이지 않다가 청천백일기 게양을 계기로 항전에 적극 참여한다. 사행창고에 잔류할 결사대에 자원하여, 88사단과 함께 영국조계로 탈출하는 팡기자에게 어머니께 남길 유서와 이전에 일본군 진지에 자폭한 병사의 유서를 전달한다. 여자경험이 전혀 없는 모태솔로인듯, 랴오톄에게 옥상의 대공포진지로 가기 직전 최후의 작별인사를 하며 여자 가슴을 만져본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고, 다 듣자 담배를 물고, 다음생에는 꼭 해봐야지라고 혼잣말을 한다. 88사단의 탈출을 돕기 위해 일본군 진지로 돌진한다.
- 라오산판(老算盘: 장이) -저장성 보안단의 회계담당자 출신으로 돤우와 함께 농성장에 합류했지만 애초에 싸움과는 거리가 먼 샌님이라 전투가 벌어질땐 숨어있으며 계속 탈출하려고 시도한다. 탈주하는 장면을 돤우에게 들키지만, 돤우에게 "나는 손을 부상당해[19]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다."고 빌고, 돤우는 결국 그를 못 본 척한다. 결국 결국 탈출에 성공하여 영국조계로 피신하며 88사단 장병들이 영국조계로 피신하는 장면을 목격한다.[20]
- 호북꼬마 (小湖北 : 장쥔이) - 마찬가지로 호북성 보안단 출신의 소년병 이고 돤우와는 형제 혹은 친척이다. (형이라고 부른다) 본인에 의하면 주원장 의 18대손 이라 한다. 어찌어찌 하다가 패잔병을 따라 사행창고의 농성에 참여한다. 말을 잘 다루는 듯, 창고에 갖혀 있던 백마를 찾아내 흥분한 백마를 진정시킨다.[21] 3일차 전투가 끝나고 조계지를 보며 조자룡 을 떠올리고 조자룡으로 분한 돤우가 장판파 에서 조조군 에게 돌진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셰진위안이 따로 불러 "너는 살아남아 우리나라가 좀 더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을 봐야 한다"고 탈출을 권하지만, 철수작전때 전사한 장교가 아내에게 남긴 편지를 읽어보고 결사대에 지원해 일본군을 치러간다.
- 셰진위안 (谢晋元 : 두춘) - 실존인물(1905-1941). 사행창고에서 농성하는 국민당군 최고지휘관. 황포군관학교 4기이다. 88사단 524연대장. 계급은 중령. 끝까지 농성하려고 하지만 장제스의 명령을 받아들여 결국 철수작전을 실행한다. 철수 시 총에 맞지만 생사는 불명.[22]
- 위훙쥔 (俞鸿钧: 차오웨이위) - 실존인물(1898-1960). 상하이 시장. 상해 주둔 국민당군의 정치주임(공산국가로 따지면 정치장교)도 맡고 있다. 항전 제4일째 되는 날 아침 영국조계로부터 사행창고에 나타나서 셰진위안에게 이날 자정까지 철수하라는 장제스의 친필명령서를 전달한다. 국민당의 재정통이자 장제스의 문관 심복으로 국부천대 이후에도 행정원장을 하는 등 출세했다.
- 고노에 이사오 (나카이즈미 히데오[23] )- 일본군 대령. 상해파견군 5사단 68연대장. 최후의 작전이 있기 전날 셰진위안에게 직접 회견하자고 사절을 보낸다. 회견중에 자신이 작전실패로 곧 교체되며, 내일 셰진위안과 자신의 마지막 전투가 있을 것이라고 직접 통보한다.[24]
- 팡싱원 (方兴文 : 신바이칭[25] ) 상하이에서 일하는 중국인 신문기자. 일본군과 영국조계, 중국군 진영을 오가며 전쟁을 취재한다. 마지막에 사행창고의 중국군 농성장을 취재하다가 88사단 장병과 함께 영국 조계로 탈출한다. 탈출 와중에서 양과이가 어머니께 전달해 달라고 한 유서를 떨어뜨리지만, 목숨을 각오하고 다시 회수한다.
- 주성중 (朱胜忠 : 웨이천) 524 연대 소속 7분대장. 계급은 상병. 작중 군인 중 가장 호전적이고 애국적인 모습을 보인다. 군복 저고리를 벗고 셔츠차림으로 싸운며, 창고로 흘러들어온 패잔병들을 다그친다. 일본군이 중국군 포로를 처형하자, 중국군도 보복으로 일본군 포로를 처형하는데, 타부대 출신들에게 집행을 맡기지만, 이들이 살인에 머뭇거리자 주성중은 권총으로 위협하며 쏘라고 다그친다. 참모장이 자살특공대를 모집하자 자원하지만, 치자밍이 그를 제지하고 본인이 나선다.[26]
- 치자밍 (齐家铭: 리천[27] ) 마찬가지로 88사단 상병. 산둥성 출신. 주성중과 마찬가지로 분대장인 듯. 탈주병을 직접 처단할 정도로 엄격하지만, 전투에 솔선수범하고 희생정신도 강하다. 화생방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돤우가 일본군의 독가스 공격에 어쩔줄을 모르자 자신의 방독면을 벗어 줄 정도. 전직은 예술가였던 듯, 항상 그림자극 꼭두각시를 들고 다니며, 마지막 날에는 병사들에게 보여줄 그림자극 공연을 한다. 호북꼬마가 전사한 돤우의 가묘를 만들자 자신의 무덤도 만들라며 이름표를 떼어준다. 마지막에 자살특공대에 자원하여 지휘하며 "형제들, 다음생에 보자"고 한후 적진에 뛰어든다.
- 양후이민 (楊惠敏 : 탕이신[28] ) 실존인물(1915-1992). 걸스카우트 단원이며 중화민국 령 상해에서 영미 조계로 피난 간 뒤 중국군을 위한 모금활동을 하며 대형 청천백일기를 직접 수영해서 도강해 전달한다. 이후 홍콩을 거쳐 임시수도 충칭으로 가지만 정보기관 총수 다이리에게 밉보여서 4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다이리가 죽은 다음 풀려났다고 한다.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하자, 대만으로 도피했고, 이름을 바꾸고 물리전공 대학교수와 결혼하여 물리교사로 조용히 살다가 1976년 대만에서 이 전투를 다룬 <팔백장사>라는 영화가 나오면서 임청하가 이 역을 맡아 유명해지자 그제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6. 평가
일각에서는 이를 체제선전영화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 이 영화는 국민당군의 전공을 다루는 것이고 공산당의 활약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중화주의를 표방하는 작품일 지언정 공산당의 체제 선전물은 절대 아니다.[29] 영화 시작후 배경설명을 하는 자막에서도 "공산당측에서 항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여러 열사가 있지만, 국민당측에서도 이영화의 팔백장사뿐만 아니라 애국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무명용사들이 있었다고 나온다.
게다가 영화 초반의 주인공격인 돤우가 소속된 보안단은 국민당이 홍군을 토벌하기 위해 지방에 조직한 준경찰조직이었고, 굳이 따지자면 현재 중국 공산당과는 원쑤지간이다.[30] 이렇게 현집권세력과는 반대되는 세력의 항일행적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체제 선전이 아니라 애국심 고취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31]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장제스나 국민당측을 온전히 평가한 것은 절대 아니다. 상하이 시장 위훙쥔을 통해 전달된 장제스의 철수 명령을 두고 셰진위안과 위훙진은 한바탕 논쟁을 벌이는데서 잘 드러난다. 셰진위안은 갑작스럽게 내려온 철수명령을 영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위홍쥔은 결과적으로 이 항전은 영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장제스가 연출했던 쇼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그리고 이 철수명령조차 항전하는 병사들의 안전을 위함이 아니라, 영미가 자신의 조계에 전화가 옮겨붙을까봐 장제스에게 압력을 가한 결과로 묘사된다. 말하자면 장제스는 장병들의 항전의지와 애국심을 자신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위해 이용했다는 식으로 묘사한다.[32]
7. 흥행
7.1. 월드 와이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에서 중국은 여름까지 극장을 폐쇄했다가 재가동했고, 이 영화도 이 당시 개봉하여 중국 내에서만 4억 6천만불[33] 을 벌어들였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덕에 중국영화로서 처음으로 전세계 1위 흥행을 달성했다. '''2020년 흥행 1위 확정'''[34] 되며 사상 최초로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연간 1위를 중국 영화가 차지했다. 하지만 코로나 탓에 연도별 박스오피스 1위 수입이 1995년 다이하드 3 이후 25년 만에 5억 달러를 밑돌았다.
7.2. 대한민국
개봉 첫주 5,700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5위에 올랐다.
7.3. 중국
2019년 6월 상하이 국제 영화제 개막식 상영과 동시에 중국 전역에서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개봉 하루 전 '''기술상의 문제'''란 이유로 돌연 개봉이 취소되었다. 이후 7월로 한 차례 연기되었지만 그때까지도 검열을 통과 못했는지 끝끝내 개봉을 못하게 됐고, 이는 이 무주공산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게 넘겨주는 계기가 된다.[35]
1년 후 2020년 8월, 결국 13분에 달하는 분량을 삭제하고 난 뒤에야 개봉을 했다. 삭제분량은 사실 정치적인 것과는 그다지 상관없고, 영화가 너무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우여곡절들을 보상받기라도 한 듯 중국에서만 4억 달러가 넘는 대흥행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2021년 현재 중국 영화 역대 흥행 순위 9위를 마크하고 있다.
8. 기타
- 사실 사행창고 전투를 그린 영화는 1938년에 개봉한 적 있다. 이때는 중일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53분 정도 길이의 선전영화였다. 당연하게도 실제사건의 주요인물인 셰진위안과 양후이민은 당시 생존한 상태였다. 같은 전투로 상업용 영화는 위에서 상술했듯 1976년 대만에서 영화화했다.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어 전 장면을 ARRI Alexa 65 IMAX 카메라로 촬영한 역대 세번째 영화다. 비 할리우드 영화 중에선 최초.
- 영화의 배경인 제2차 상하이 사변은 중국 공산당이 아닌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이 이끌었던 전투여서 영화 내에 병사들과 시민들이 청천백일만지홍기에 경례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었고, 이 부분이 검열에 걸렸다고 한다.# 다만, 이전에 국민당군의 활약을 그린 여러 항일 영화에서 청천백일기가 잘 나온 경우도 있고 실제 영화 내부에도 청천백일기는 무사히 등장하며 나름 영화 내에서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다. 하지만 양안관계가 차이잉원[36] 집권 이후 파국으로 치들었고 중국인의 항일정신과 애국주의를 그린 영화에 아무리 고증에 맞추더라도 청천백일기가 나오는 것이 불편했는지 정면 클로즈업은 거의 나오지 않고 멀리서 촬영한 장면만으로 등장한다.[37]
- 거액을 들여 제작했던 영화가 제때 개봉하지 못한 탓에 자금난에 시달렸던[38] 화이브라더스는 결국 중국 정부의 비위를 맞춰 100여 명이 넘는 중국 공산당 당원들을 사내에 들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본 영화가 검열됐던 이유는 상기됐듯 청천백일기 문제도 있지만 제작이 완료된 2018년 당시 중일관계가 전례 없을 정도로 개선되어 굳이 일본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중국 당국의 의도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20년 들어 다시 중일관계가 악화되고 미중무역전쟁에 코로나19 등 국가적 대위기가 닥치자 애국심 결집을 이유로 개봉이 2년이 지나 허락됐다고 한다.
- 영화의 본래 러닝타임은 160분이었으나 최종편집본인 147분으로 중국에서 개봉됐다. 한국에선 149분으로 2분여 정도가 추가됐다.
- 중국에서 초대박을 친 영화지만 무슨 연유인지 유튜브에 풀버전이 서너개 이상 올라와있다. 사실 중국영화 자체가 유튜브에 풀버전으로 올라온 경우는 몹시 흔하며 중국 일반 대중은 유튜브에 접근할 수 없으니 영화사도 굳이 대응하지 않는듯. 이 영화의 경우 한창 중국에서 상영되던 8월 말 에도 풀버전이 버젓히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은 영리목적보다는 애국주의 또는 체제선전용의 영화이기 때문에 굳이 막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39]
- 여러모로 명량 과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인데 비록 명량대첩이 전세에 준 임팩트가 훨씬 거대하지만 사행창고 전투도 패주하기만 하던 중국군이 일본군에 처음으로 제대로 먹인 전투고 퇴각도 중-일-영의 협의 후 이뤄진 것이라 패배가 아니었다. 그리고 숫적 열세의 군대가 다수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한 전투고 상대도 동일하다.
- 삼국지를 인용한 경극 여러편이 작품에 인용되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사행창고 건너편의 영국조계에서는 경극 <주맥성> (관우가 맥성에서 오군에 포위되어 사면초가에 이르는 내용)이 공연되고 있다. 돤우를 항당 따르던 호북꼬마는 돤우가 전사한 후, 돤우가 경극 <장판파>의 조운 분장을 하고 조조의 백만대군을 향해 돌진하는 상상을 한다. (장판파는 이들의 고향인 호북성에 위치)[40] 라오톄는 <정군산> (황충이 하후연의 목을 베는 내용)의 한 구절을 부르며 일본군에 돌진한다. 경극은 아니지만 산둥지방의 전통 그림자 인형극도 등장하여 중국군 장병들의 전투의지를 높인다.
- 유튜브에 제작진 쪽 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계정에 쿠키영상이 꽤 올라와있다. 주로 등장인물 간 자질구레한 갈등내용 이나 다른 조금 잔혹할 수 있는 전투나 학살 영상 으로 상술했듯 거의 10% 가까이 되는 분량을 들어낸 다음 개봉됐기에 잘린 부분들이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듯 하다. 위에서 지적했지만 삭제분량은 정치적으로 문제된다기보다는 본 스토리와는 좀 엇나가거나 없어도 되는 곁가지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 돤우를 비롯한 호북성 탈주병들이 헌병대에 체포되는 장면, 사행창고 내에서 돤우가 "홀로 되신 노모가 기다린다"며 88사단 장교에게 보내줄 것을 사정하는 장면, 일어를 할줄 아는 대만인이 일본어로 일본군에게 욕했다가 중국인들에게 일본인으로 오인되어(...) 맞아죽는 장면, 또한 일본군 해군육전대가 영국조계에 중국군 패잔병을 수색하러 들어왔다가 영국군과 시비붙는 장면 등등이 있다.
- 여러 중국의 유명 배우들이 카메오로 나왔는데, 영국 조계부터 전화선을 전달해주다가 일본군에게 저격되어 사망하는 깡패역인 리주샤오는 2020년작 금강천의 주연이다. 2000년대 중국의 톱여배우였던 야오천은 국민당의 원로중의 하나인 랴오중카이의 부인이었던 허샹닝으로 나온다. 도박장 여주인으로 나오는 배우는 유효경으로 1980년대 중국의 톱여배우였다. 안젤라베이비의 남편 황효명도 국민당군 단역으로 등장하며, 본편에서 잘렸지만 맞아죽는 대만인을 연기한 완경천은 실제 대만배우다.
[1] 전 장면이 Arri Alexa 65 IMAX 카메라로 촬영되어 IMAX 상영관이 아닐 경우 위아래가 잘려서 나온다.[2] 이들은 후술될 국군덕계사와 달리 군벌군 또는 지방군 정도로 보이며 당연히도 전력이나 사기가 낮았다.[3] 중령 급 계급[4] 원래 국민당 정부는 국제적으로 고립된 소련과 군사적 협력관계였으나, 장제스가 4.12 상하이 쿠데타로 공산당을 숙청하고 정권을 잡은 뒤 중단되었다. 장제스는 비슷하게 패전국으로 고립된 독일과 협력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독일에서 수입한 군장과 제식, 무기로 무장하고, 독일 군사고문단 (한스 폰 젝트,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에 의해 독일식으로 훈련된 36사단, 87사단, 88사단을 양성했다. 원래 10개사단 을 계획했으나 중일전쟁이 일찍 터졌기 때문에, 결국 3개 사단양성에 그쳤다. 이들 병력은 약 5만명 정도였으며, 장제스 직속의 남경정부군 20~30여만 중의 핵심이었다. 이들은 당대 아시아 에서 최고의 개개인 전투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중포와 전차 등 화력은 충분치 않았고 특히 국민당 중앙의 지휘력 부족으로 상하이 전투에서 크게 손실을 입고 바로 뒤 난징 전투 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우한 전투에도 참가하고, 충칭에서 재건되어 버마 전선에도 참가하였다. 이후 태평양전쟁 이후 미제무기로 무장하고 1946년 국공내전이 발발하면서 만주에 전개하지만, 1948년 가을 진저우시에서 린뱌오가 지휘하는 인민해방군에게 포위섬멸당함으로써 파란만장한 부대역사를 마감한다.[5] 영국과 미국이 직접 투자하고 가꾼 조계지 였고 영국군도 진주해 있었다. 이 조계지역은 훗날 일본이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 하는 1941년 이후 일본군에게 점령되었고 전후 중화민국에 반환된다.[6] 이에 사절단은 마치 이들이 무슨 유희거리 보듯 전투를 본다고 비아냥 댄다.[7] 처음 자살폭탄드랍을 한 중국군 병사는 편지 하나를 어머니께 전달해 달라고 상사에 부탁한 뒤 경례와 함께 일본군과 폭사한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도 수류탄을 꽁꽁 묶은 채 자기의 고향과 이름,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등 을 외치며 희생했고 강 건너의 중국인들이 감동하게 된다.[8] 나치독일은 당시 일본의 우방이었고 열강 중 하나였어 일본군이 독일인이나 독일국기에 위해를 가할 수 없었다. 똑같은 뉘앙스로 욘 라베 에도 나치국기로 중국인들이 일본군의 폭격을 피하는 장면이 그려진다.[9] 실제론 사행창고 전투 개시 때 432명 정도였다 한다.[10] 실존인물로 후에 국부천대 를 따라갔고 대만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한다. 본 일화도 실화였고 후에 대만의 도덕교과서에 수록된다. 이미 팔백과 같은 소재의 영화는 1970년대 임청하 가 이 역할로 대만에서 개봉 된 적이 있었고 당시 실제 양후이민은 살아있던 상태였지만 본 일에 대해 언급을 안했다고 양훼민의 자녀들 에게 증언된다.[11] 이는 전투를 조기에 끝내려는 영국의 중재를 이끌어낸다.[12] 주연 이름은 나카이즈미 히데오이며 일본 에히메현 출신 배우다. 대부분 중국 항일 관련해서 일본군 장교로 나온 배역을 대다수 맡았으며 일본내 활동은 가면라이더×가면라이더×가면라이더 더 무비 초전왕 트릴로지/에피소드 레드 : 제로의 스타트 윙클에서 키쿠치 히로시 역을 맡았다. 그런데 출연 명단에 이 이름이 올라와 있는데 영문 표기는 중국어 병음표기로 나왔다.어째서 저런 표기를 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13] 문화대혁명 항목에도 있듯 당시는 광기의 시대로 마오쩌둥과 그에 관련되지 않으면 홍위병 들이 모조리 파괴하고 박해하던 시대로 참전용사 였어도 '''국민당군 출신 이었다는 이유'''로 탄압 받았고 셰진위안의 묘소도 파헤쳐 졌다 한다. 후에 잠잠해진 뒤 다시 제대로 이장되었긴 하지만.[14] 등장 병사들은 서로 별명으로 알고 있다. 돤우도 단오절의 뜻. 양과이, 라오산판도 각각 중국 전통의 보드게임 장난감, 주판을 뜻한다.[15] 보안단은 사실 국민당이 홍군을 토벌하기 위해 조직한 준경찰조직이며, 정규군이 아니다.(방탄모도 없이 달랑 소총 한 자루만 들고 전투에 투입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연히 중무장한 일본군과 싸운다는 것은 죽으라고 보낸 것과 다를 바 없었고, 사기도 엉망이다.[16] 중국군 헌병대는 장제스 의 명령(헌병 지휘관이 용의자들에게 사형을 언도할 때 상부의 명령에 의거한다고 말한다)에 따라 탈영병 용의자들을 체포 즉시 즉결처분한다. 체포된 병사들은 헌병에게 "지휘관이 전사해서 해서 부대가 흩어졌다."고 항변해보지만 얄짤없다. 돤우는 상해 시내에서 후퇴하는 국민당군의 대열을 보면서 삼촌에게 자수해 보자고 제의하지만, 삼촌은 "낙오병도 마찬가지 운명이다."라며 제지한다.[17] 이 당시 중국군의 패배주의가 너무 심해서 부대 전체가 임의로 전선이탈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제지하는 독전대와 교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8] 체포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고 상하이 시내에서 도피하다가 이후 뜬금없이 무장한 군인의 감시를 받으며 군수품을 짊어지고 사행창고로 들어간다. 아마도 헌병대에 체포되어 처형대신 농성지 전출로 사실상의 사형을 받은 듯. [19] 이것도 라오톄가 총에맞고 쓰러진걸 돕다 유탄에 손가락을 잃은 것 이다.[20] 여담으로 본 역을 맡은 배우는 중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연기파 배우인데 바로 다음 작품인 금강천 에서는 미 공군과 1대1로 맞짱을 뜨려는 전 작품과는 정반대 성격의 대공포부대장 으로 나온다.[21] 이 백마는 전화의 와중에서도 끝까지 살아남고, 일본에 굴하지 않는 중국 애국주의의 상징물로 등장한다.[22] 실제로는 이 사건이 이후 영국조계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왕징웨이 정권의 전향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암살된다. 중화민국 정부는 소장계급을 추증했다.[23] 난징 난징의 주연이다. 난징 난징 출연 이후 일본 극우파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24] 이 장면은 일본군 장교가 애써 적장을 만나자고 해 놓고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노에가 나름 무사도를 발휘한 장면이다. 영미의 압력에 일본군은 영국조계로 후퇴하는 중국군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합의했고, 장제스의 후퇴명령서에도 그렇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일본군이 약속과는 달리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셰진위안에게 미리 통보하는 듯.[25] 2020년 드라마 대진부에서 진장양왕을 맡았다.[26] 전투 참여에 열성적이고 용감했던건 자신이 지휘하던 7분대원 전체가 그랬던지 작중 후반에 7분대원 중 생존자는 자신 하나였다.[27] 판빙빙의 전약혼자이다. 2017년 결혼하기로 했지만 판빙빙 탈세사건이 불거진 이후인 2019년 파혼을 발표했다. 이 배우는 은근히 스캔들이 많다. 디리러바, 장신위와도 사귀었으나 헤어졌다.[28] 후궁견환전의 악역 과이가 문원역으로 유명하다.[29] 기자가 중국역사를 잘 모르거나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고 평을 쓴 듯.[30] 이 보안단은 보갑제-이갑제와 연동되어 조직되었는데, 좌익 유격대 를 토벌하거나 좌익분자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중공정권은 집권후 대대적인 보복을 했는데, 보안단 간부들도 체포되어 상당수가 처형되었다.[31] 사실 2020년초에 시행된 제15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서 대만의 국민당이 완전히 몰락하고 대만독립세력이 득세했기 때문에, 당시의 국민당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현재의 중국 공산당에 전혀 정치적인 손해가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고려 왕조에 대한 향수가 옅어진 조선 세종시절부터 고려의 충신이자 이성계를 반대했던 정몽주와 최영이 충절의 귀감으로 높이평가된 것을 연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공산당은 계급투쟁은 거의 포기하고 중화패권주의-한족중심주의 노선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장제스가 시종일관 내세운 가치와 딱히 다르지도 않다. 현재의 중국이 마오쩌둥보다는 장제스가 꿈꾼 나라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32] 이 영화에서 장제스-위홍쥔은 어차피 중국이 일본에 단독으로 맞짱떠서 이기는 힘들고, 당시 중립을 지키고 있는 영미의 힘을 이용해 일본에 압력을 넣어 강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미의 중재안을 순순이 받아들여 사행창고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33]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테넷이 3억6불정도였다.[34] 알다시피 테넷은 망했고 연초 개봉 나쁜 녀석들 포에버는 4억 2천만 달러로 R등급 치고는 상당히 성공했지만 이 영화에는 조금 딸린다.[35] 7월은 할리우드 블랙아웃 기간으로 할리우드 영화들은 중국에서 개봉을 못하는 게 규칙이다. 스파이더맨도 이 블랙아웃 기간이 시작되기 딱 한 주 전에 개봉을 결정했는데, 당시 800을 비롯한 다른 중국 영화 2편도 함께 개봉이 취소되자 그 황금기를 스파이더맨이 홀로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중국에서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36] 사실 마잉주 집권 시절만 해도 양안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나, 2016년 대만독립파인 차이잉원이 집권하면서 완전히 파국으로 갔다. 차이잉원이 집권기반으로 하고 있는 범록연맹은 대륙과 별개의 대만을 강조하며, 국민당과 공산당을 그저 똑같은 대륙세력으로 본다.[37] 1975년작 대만에서 만든 <팔백장사>에서는 국기게양시 중화민국 국기가를 연주하는데, 2020년작에서는 대륙 관중들에게는 국기가가 생소하다고 생각했는지, 중화민국의 현 국가인 삼민주의가가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삼민주의가는 현재 중국에서 금지곡이고, 국기가는 대만팀이 대륙에서 체육대회에 참가할 때 시상식에 쓰이는 등 금지곡은 아니다.[38] 그리하여 애써 한국에 진출해 설립한 화이브라더스코리아도 2020년 여름에 매각했다.[39] 중국 선전영화들은 3-4년 정도 지나면 제작자 측에서 대부분 유튜브에 풀어버린다.[40] 작 중 조조군대는 일본군, 그리고 조자룡 은 이들에 맞서는 중국군 으로 은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