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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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heed P-38 Lightning'''
P-38 Lightning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 육군 항공대의 중전투기. 특이하게 달린 쌍발엔진이 특징으로 이 덕분에 '쌍꼬리의 악마(fork-tailed devil)'란 별명을 얻었다. 기관총 등의 무장이 기수의 콧등에 몰려 있어서 명중률이 높았으며 일반적인 전투기의 몸통이 있어야 할 곳이 텅텅 비어있고 장갑도 비교적 튼튼해 의외로 생존율도 괜찮았다. 설계자는 스컹크 웍스의 초대 보스로 유명한 켈리 존슨.
"쌍발 프로펠러 전투기"라는 컨셉은 2차대전 초기까지는 각국이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고 나서 전투기로서 오래 활약한 기종은 많지 않았다. 그 중 유일한 예외라고 할 만한 작품. 그후 라이트닝이라는 이름은 F-35의 이름으로 계승된다.
본래 P-38 시리즈는 미국 본토로 침공해올지 모를 적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격기였기 때문에 개발 초기부터 뛰어난 상승력과 속도, 고공성능에 중점을 둔 기체로 개발되었고 결국 수평비행속도 400mph(약 644km/h)를 돌파한 최초의 전투기로 기록되고 있다. 게다가 가급적 미 본토에서 먼 거리에서 적 폭격기를 요격해야 했으므로 비행거리도 매우 길었다. 요격기로서의 상승력을 높이기 위해 큰 주익을 장착하면서 익면하중이 낮아졌고 그로인해 부차적으로 선회성능이 상당히 좋아졌다.[1]
예외적으로 구형은 고속에서 조종성이 떨어져서 그대로 땅에 혹은 바다에 곤두박질친 적이 많았지만, 후기형에는 다이브 플랩(Dive Flap)이란 것이 붙어서 이런 문제가 줄었다. 다이브 플랩은 단순히 속도를 줄이는 스피드브레이크와 달리, 고속에서 주날개의 효율을 높이고 주날개에서 발생하는 후류를 이용, 수평꼬리날개에서 만드는 양력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
당시 전술기 수준으로는 높은 외부 탑재능력을 가졌고, 쌍발기라는 특성상 기수에 대형, 대량의 장비를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전투기형 이외의 파생형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파생형은 정찰기형이다. 기수의 무장을 철거하고 고성능 카메라를 여럿 탑재한 비무장 정찰기형인 F-4, F-5[2] 는 연합군의 중요한 정보 수집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문학가이자 조종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을 함께 했던 기체로도 유명하다.[3]
이 정찰기형은 그 활용도 만큼이나 손실률이 매우 높았다.[4] 이 비무장 정찰형들은 단독 저공비행이 주요한 임무패턴이었다. 그러나, 본문에 나왔다시피 유럽전선에서 P-38의 비행속도는 썩 빠른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추축군 전투기와 만나면 이를 따돌리기가 어려웠고, 저공에서 작전하기 때문에 지상의 대공포화에도 여지없이 노출되었다. 반격수단은 당연히 없었고, 자신을 보호해 줄 동료기를 대동하지 않는 단독 비행이란 점도 피해를 가중시켰다. 결국, 유럽전선에서의 전투기 개조 정찰기 전력은 무장을 제거하지 않고 전투능력을 그대로 가진 기종들이 주력을 이루게 되면서 전쟁 말기에는 주력 정찰기의 자리를 내어준다.
P-38들은 유럽전선 전쟁 말기에 이르면 높은 무장 탑재능력을 활용하여 폭격기처럼 편대를 짜서 폭격임무에도 투입되었는데, 이 폭격 편대의 선두기 역할을 위해 무장을 철거하고 기수를 유리로 바꿔서 폭격조준기와 폭격수 자리를 설치한 드롭스누트형이나, 폭격 조준용 대형 레이더를 설치한 패스파인더형으로 개조된 기체들도 있다.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선 부대에서 레이더를 장착한 야간전투기로 개조한 기체들이 야간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야전개조 기체들의 운용성과를 받아들여서 본격적인 야간전투기로 개발된 M형이 전쟁 말기에 투입되었다. 기수 아래에 소형 레이더를 설치하고 조종석 뒤편에 레이더 조작수 자리를 마련했다.
이외에도 소량의 화물, 인원 수송 임무에도 활용되었고, 각종 실험기로도 활용되었다.
심지어는 전쟁이 끝난 뒤, 인도의 한 항공사는 기수 전체를 유리로 바꾸고 고급 좌석과 편의시설을 갖춘 VIP수송기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P-38은 특히 태평양 전쟁에서 전투기로서의 명성을 많이 날렸다. 당시 일본군 전투기들과 비교하여 한 급수 이상의 고성능 전투기로, 고고도 성능이 우수[5] 하고 고속비행성능도 뛰어났기 때문[6] 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력으로 날아와 강한 화력으로 기총을 퍼붓고 도망치면(붐앤줌 전술) 일본군 전투기들은 속수 무책이었으나 많은 미군들이 일본군의 장기인 기동전,선회전에 말려들어 격추당하는 일이 속출했다.[7] 무거운 기체를 이용한 급강하이탈도 초기형 기체 자체의 문제점과 대부분의 전투가 중고도 이하에서 벌어진 태평양전쟁의 특성때문에 어려웠고 일본군은 P-38을 '정어리꼬지(페로하치)'라고 라이트닝을 부르며 손쉬운 적으로 평가했으며 오히려 당시 일본군은 P-40를 P-38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기체로 평하고 있다. 어떤 조종사는 회고록에서 고고도에서 만난 P-38을 매우 무섭게 여긴 반면, 어떤 조종사는 기동성도 나쁘고 덩치가 커서 맞추기도 쉽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전자는 실력있는 조종사를 일본기가 불리한 고고도에서 만났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고 후자는 운좋게도 풋내기 조종사가 모는 P-38를 만났거나, 문제가 많던 초기형 P-38만을 만났던 것 같다.[8]
초기 미군조종사들의 이런 전술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P-38은 제로센 등에 비해 속도와 상승력에서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미국 조종사들은 전투에 임할지 퇴각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쥐고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우수한 고공, 고속성능에 당연히 방어면에서도 더 튼튼했고, 화력에서도 우세했다. 뿐만 아니라 무장이 모두 기수에 장착된 덕분에 화력의 집중도가 높았고 이스파노 수이사 20mm 기관포와 M2 기관총 모두 탄도 특성이 우수해서 P-38은 날개에 기관총을 장착한 다른 전투기들에 비해 더 먼거리에서도 더 높은 명중률을 기록했다. 이는 방어력이 취약한 일본 전투기들을 상대로 특히 더 위력을 발휘했다.
미군 조종사들이 P-38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술에 익숙해지면서 P-38은 제 위력을 발휘, 결국 태평양 전선에 배치된 미 육군항공대 전투기들 중 가장 많은 일본군 항공기를 격추시킨 기종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P-38은 태평양 전선에서 약 1700기의 공중전 격추를 기록했으며, 중국-버마-인도 전선에서도 157기의 격추를 기록했다. 때문에 제로센 전투기의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는 "P-38의 쌍발 엔진음이 남태평양의 모든 일본 조종사들에게 익숙해졌으며, 또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태평양 전역에서 P-38의 최초의 성공적인 전투로 기록된 것은, 1942년 12월 27일 파푸아 뉴기니 포트 모르즈비 상공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 35 전투비행단 소속 제39 비행대대는, 11기의 일본기 격추를 보고했다. 반면 P-38은 단 한 기를 잃었다. 11기 중 2기를 격추한 파일럿은, 이후 40기의 일본기를 격추시키며 P-38 에이스를 명성을 떨치게 되는 리처드 "딕" 봉 Richard "Dick" Bong이었다. 그를 포함해서, 태평양 전선의 미 육군항공대 에이스 다수가 P-38로 전과를 올렸다.[9]
한편 P-38은 장거리 비행성능을 살려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탄 G4M 폭격기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좀 더 정확한 이유는 작전 당시 가장 긴 항속거리와 탑승자를 확실하게 죽일수 있는 20mm 기관포를 가진 전투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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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의 생산을 독려하는 전시 선전포스터[11] . 제목이 '우리에게 더 많은 P-38을 다오'이다.(포스터 내용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활약인데, 정작 생산된 전투기 다수는 유럽전선에 보내버렸다는 게 함정...)[12]
P-38의 전과에 고무된 태평양 전역의 미 육군항공대는 더 많은 P-38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군 육군항공대에게 태평양 전역은 어디까지나 '2순위' 고려대상이었다. 따라서 P-38은 유럽전역의 폭격기 호위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다. 그러나...
정작 유럽전선에서 라이트닝은 전투기로서 그렇게 환영받지 못했다. 유럽전선에서 P-38이 마주친 Bf109계열은 이 전투기보다 고고도 성능이 더 우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속 800km 이상 고속에서의 조종성 문제로 급강하 최대속도가 833km/h 정도에 제한된 때문에 급강하시 시속 900km 이상으로 가속할 수 있던 Bf109나 Fw190 등 독일 전투기들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었다. # 이는 P-38 초기형에서, 시속 800Km 이상 고속비행시, 주익 일부의 공기흐름이 부분적으로 음속을 넘으며 발생하는 공기흐름 변화로 인해 수평미익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 탓이었다. 위의 '성능' 문단에서 언급된 것 처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기형에서는 '다이브 플랩'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량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1944년으로, 그 시점에는 이미 유럽의 미 육군항공대에는 P-47과 이어 P-51 머스탱이 배치되어 있었다. 때문에 P-38이 일선 전투기로 활동할 기회는 많지 않았고, 독일 전투기들과의 전투에서 기록한 초반 부진의 오명을 씻기엔 조금 때늦은 조치가 되었다.[13]
또한 유럽전선에서 미 육군항공대 소속 전투기들이 주로 맡던 임무는 매우 높은 고도[14] 에서 폭격기를 호위하는 것이었는데, 이 정도 고도에서는 P-38의 조종석이 상당히 추웠다고 한다. 대부분의 단발 전투기들은 엔진 바로 뒤에 조종석이 위치하여 어느 정도 엔진 열기로 조종석이 보온이 된 반면, P-38은 조종석과 엔진이 먼 구조적 특성상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태평양에서는 오히려 P-38이 너무 덥다고 투덜거리는 조종사들이 있었는데, 비행 중에 캐노피를 열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더운 태평양 전선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낮은 고도로 내려오면(주로 전투를 벌이지 않는 이착륙 상황때 특히) 전투기의 캐노피를 열고 다니곤 했는데, P-38은 캐노피를 열고 비행하면 캐노피에서 발생한 후류가 수평꼬리날개에 영향을 미쳐서 진동이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P-38은 일본군 전투기를 상대로 선회전보다는 일격이탈 전술을 주로 사용했지만, 유럽전선에서는 반대로 독일군 전투기들을 상대로 선회전을 벌였다. 이는 Bf109 후기형이나 Fw190같은 전투기들에 비해 P-38의 최대속도가 더 느렸던 대신, 선회성능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축군이었던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 유전지대 공습 당시, 루마니아군의 전투기인 I.A.R. 80에게 선회전을 걸었다가 참패한 전력이 있다.[15] I.A.R. 80이 Fw190과 워낙에 흡사하게 생겨서[16] P-38 조종사들이 Fw190을 상대하듯 선회전을 걸었던 것이다[17] .
그러나 유럽전선에 투입된 라이트닝이 겪은 가장 큰 문제점은 항속거리 부족. P-38은 당시 전투기들 치고는 비행거리가 긴 편이었고, 그 때문에 폭격기 호위전투기로 투입되었으나, 영국기지에서 출발하여 독일 본토까지 폭격기를 호위해주기에는 부족했다. 때문에 유럽전선에서는 호위전투기로서의 임무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독일 본토까지 왕복이 가능한 P-51 머스탱이 등장함에 따라 더더욱 전투기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그러나 P-38은 넉넉한 무장탑재공간, 두터운 장갑, 적 대공포에 엔진 하나를 얻어 맞아도 나머지 하나로 살아돌아올 수 있다는 이점[18] 때문에 지상공격임무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19] 독일군에게는 그 독특한 쌍동체 때문에 '악마의 사다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P-38은 여러방면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으나 P-51이나 P-47 썬더볼트 같은 다른 미 육군 항공대의 주력전투기보다는 약간 어중간한 성격의 전투기였다. 특히 값은 1/2 수준이면서도 우수한 공중전 능력과 초장거리 비행능력을 갖춘 P-51이 등장하자 미 육군 항공대는 P-38보다는 P-51을 더 선호하였다. 사실 P-38L-5-LO 같은 후기형은 공중전에 있어서도 P-51D보다 최고속도나 기동성에서 우위를 가지는등 전반적인 성능에서 더 우수했다. 단지 항속거리도 더 짧고 2배나 더 비쌌을 뿐이다. [20]
미 육군 항공대가 육군에서 독립하여 미 공군이 됨에 따라 1948년 당시 남아있던 소수의 P-38은 F-38로 이름이 개칭됐으나, 이들은 1949년에 모두 퇴역하였다. 퇴역한 기체 대부분은 폐기처분되어서 그 명성에 비해 현재 비행 가능한 상태로 남은 기체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특이한 쌍발엔진의 유래에는 웃기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사정이 하나 있는데, 고출력을 위해서 엔진을 키우자 진동이 심해져 조종하기가 어려워졌고, 그걸 억제하기 위해 장갑재를 늘리다 보니 원하던 출력을 낼 수 없어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아예 엔진을 두 개 달아버려 고출력과 안정성 및 생존율에 여유공간까지 늘어났다는 '''천조국스러운''' 이야기가 있다.[21] 게다가 쌍발기의 장점.. 바로 엔진에 의해서 기체가 기우는 현상인 토크가 없다는 이점이 이 기체를 보다 손쉽게 조종할 수 있는 전투기로 만들었다.
다만 위 장점은 오로지 P-38에게만 해당되는 장점이다. 왜냐하면 P-38의 경우 두개의 엔진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구동시켜 프로펠러 토크를 없앴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항공기용 엔진의 설계시설을 따로 운용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엔 자원과 인력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았지만 타 국가의 쌍발엔진 중전투기들은 그냥 두개의 엔진을 모두 같은방향으로만 구동시켜서 비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독일군의 중전투기 Bf 110인데 이 녀석은 엔진 두개가 모두 같은방향으로만 구동되므로 토크가 발생한다.
내구성 하나는 경이로워서 1942년 사고로 인해 그린란드에 비상착륙했고 세월에 의해 빙하 속에 파묻힌 P-38 한 대(일련번호 41-7630)를 1992년 발굴했는데 놀랍게도 '''50년 동안''' 빙하 속에 파묻혀있던 기체의 외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이것을 전세계에 남아있는 오리지널 P-38의 부품을 끌어모아 개조시켜 비행 가능한 기체로 만든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빙하의 소녀(Glacier Girl)'''이다. 현재 세계에서 비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P-38 중 한 대다.
덧붙여 당시에 같이 빙하에 착륙해 파묻혀 있던 B-17 폭격기 들은 모두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고, 조종사들은 동체 착륙후 즉시 본부에 알렸고 근처에 있던 미 해군 어뢰정이 급파되어 11일 후에 모두 구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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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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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후 '''빙하의 소녀'''의 비행 장면.
해당 기체의 비행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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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의 여인과 비슷한 케이스로 2007년 영국 웨일즈의 해변에서 P-38 라이트닝의 비교적 온전한 잔해가 발견된 적이 있다. 일련번호 41-7677, 1942년에 추락했으며 할렉의 처녀(Maid of Harlech)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복원 프로젝트가 TIGHAR(The International Group For Historic Aircraft Recovery, 국제 역사적인 비행기 복원단체)라는 단체에서 진행중이며 2011년 현재도 진행중. 순수하게 모금 받아서 진행하는 거라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듯 하다.
훗날 이름이 F-22의 프로토타입인 YF-22 라이트닝 II에 계승되었다가 양산형에서 랩터로 바뀌자 로우급 스텔스 전투기인 F-35 라이트닝 II에 계승된다. 참고로 F-35 계획에는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도 참여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영국 역시 50년대에 개발한 초음속 요격기, BAC 라이트닝이 있었기 때문에 라이트닝 'II'를 쓰는데 문제가 없었다.
어린 왕자의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이 정찰기를 타고 나갔다가 실종된 후 나중에 사망 처리됐는데, 그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독일의 조종사가 그의 팬이었다고 한다. 자기도 이 사실을 알았다면 격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하면 2008년 3월 헤르만 괴링 공군 원수에게 훈장도 받은 공군 에이스 조종사인 호르스트 리페르트(Horst Rippert. 1922-2013)가 생텍쥐페리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문제는 기체에는 탄흔이 없었기에 격추된 건지 우울증에 의한 자살인지 논란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 자료에 따르면 독일 전투기에 격추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해졌다.''' 왜냐하면 P-38의 우측엔진에 피탄으로 인한 윤활유 누유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 기습공격을 받아 엔진 하나가 망가진 상태로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는게 유력하다. 따라서 '''호르스트 리페르트가 생텍쥐페리의 P-38을 격추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른 유명인으로는 찰스 린드버그가 2차 대전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억지를 좀 부려서 P-38로 전투임무를 여러 차례 수행한 적이 있다. 생텍쥐페리와 달리 정찰기 1기를 격추하고 훈장도 받고 종전 이후로도 잘 살았다. 린드버그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나찌 지지자였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입장이 아주 곤란했다.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는 차원에서 참전.
주한 미 7공군 산하 8전투비행단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에이스 로빈 올즈는 이 영 좋지 않은 비행기를 갖고 유럽 전역에서 '''17기나 격추'''를 하면서 아무리 안좋은 P-38이라도 사용자와 그의 실력만 좋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허나 그의 평가에 따르면 "P-38은 비행이 즐거울 정도로 원래 그렇게 나쁜 전투기는 아니었다"고 한다.[22]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에 1기가 노획되었는데, 요격기가 부족했던 이탈리아는 이 노획기를 실전에 투입했고 실제로 B-17 1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린다. 덕분에 라이트닝은 2차대전 당시 미군기를 격추시킨 유일한 미군 전투기(...)로 기록되기도 했다. #
한국전쟁때 참전하신 참전용사들이나 50~60년생 중장년층이 P-38사진을 보고 전쟁때나 어릴때 이 기체를 보았다는 경우가 있는데 P-38은 한국전 이전에 퇴역했으므로 볼수 없었을 것이고 이분들이 보았다는 기체는 대전 후반기에나 나온 C-47의 후속 기종인 C-82 패킷이나 한국전과 베트남전때 활약한 수송기인 C-119 플라잉 박스카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머스탱 동체 2개를 붙인 정찰기인 P-82 트윈 머스탱일지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자 미국 항덕들에게 한 번 쯤은 나오는 소재가 P-38이 후기형까지 왜 엘리슨 엔진을 고집했냐이다. 미국의 앨리슨 사는 공랭식 엔진은 잘 만들었지만 수냉식 엔진은 처절해서 초기의 P-51A가 이 앨리슨 엔진을 써서 그저 그런 성능의 2류 기체 취급을 받다가 단지 엔진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순식간에 최강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 유명한 사례도 있을 정도. 록히드가 무슨 생각으로 똥고집을 부렸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 빌빌대는 앨리슨 엔진이 유일하게 궁합이 잘맞았던 기체가 P-38이다.'''
록히드사는 설계때부터 앨리슨 엔진이 고고도에서는 시궁창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23] 그걸 해결하기 위해 터보차저를 달았었다. 터보차저가 고고도에서 앨리슨 엔진이 빌빌대는 것을 보완해주었기 때문에 나름 좋은 성능이 나온 것.[24] 사실상 수랭앨리슨 엔진을 장착하고 터보차저를 단 기체가 유일하게 P-38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엘리슨엔진을 장착한 기종이 중, 고고도에서 욕먹을 때 P-38은 그런 일이 없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롤스로이스 멀린을 장착하는 시도가 이루어질려 했으나 기존에 앨리슨 엔진에 맞추어져 있던 터보차저 시스템 때문에 동체 뿐만 아니라 터보차저 시스템까지 다시 재설계까지 해야되었고, 또 P-51에 필요한 멀린엔진을 2개나 요구하면서 기체값이 쌍발기라 P-51보다 비싼지라 결국 P-51에 밀려 멀린엔진교체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자료는 없지만 실제 한 미국항공기 동호인에 의하면 서적에서 멀린엔진을 장착한 P-38의 사진을 보았다고는 하는데 이 말을 토대로 추측하면 실제로 크게 성능을 개선시키지 못해 그냥 기존에 엘리슨 엔진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25][26]
미군 4티어 전투기 P-38 라이트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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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아케이드 전용 프리미엄 전투기 P-38 라이트닝
'''Lockheed P-38 Lightning'''
1. 제원
P-38 Lightning
2. 설명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 육군 항공대의 중전투기. 특이하게 달린 쌍발엔진이 특징으로 이 덕분에 '쌍꼬리의 악마(fork-tailed devil)'란 별명을 얻었다. 기관총 등의 무장이 기수의 콧등에 몰려 있어서 명중률이 높았으며 일반적인 전투기의 몸통이 있어야 할 곳이 텅텅 비어있고 장갑도 비교적 튼튼해 의외로 생존율도 괜찮았다. 설계자는 스컹크 웍스의 초대 보스로 유명한 켈리 존슨.
"쌍발 프로펠러 전투기"라는 컨셉은 2차대전 초기까지는 각국이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고 나서 전투기로서 오래 활약한 기종은 많지 않았다. 그 중 유일한 예외라고 할 만한 작품. 그후 라이트닝이라는 이름은 F-35의 이름으로 계승된다.
3. 성능
본래 P-38 시리즈는 미국 본토로 침공해올지 모를 적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격기였기 때문에 개발 초기부터 뛰어난 상승력과 속도, 고공성능에 중점을 둔 기체로 개발되었고 결국 수평비행속도 400mph(약 644km/h)를 돌파한 최초의 전투기로 기록되고 있다. 게다가 가급적 미 본토에서 먼 거리에서 적 폭격기를 요격해야 했으므로 비행거리도 매우 길었다. 요격기로서의 상승력을 높이기 위해 큰 주익을 장착하면서 익면하중이 낮아졌고 그로인해 부차적으로 선회성능이 상당히 좋아졌다.[1]
예외적으로 구형은 고속에서 조종성이 떨어져서 그대로 땅에 혹은 바다에 곤두박질친 적이 많았지만, 후기형에는 다이브 플랩(Dive Flap)이란 것이 붙어서 이런 문제가 줄었다. 다이브 플랩은 단순히 속도를 줄이는 스피드브레이크와 달리, 고속에서 주날개의 효율을 높이고 주날개에서 발생하는 후류를 이용, 수평꼬리날개에서 만드는 양력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
3.1. 파생형
당시 전술기 수준으로는 높은 외부 탑재능력을 가졌고, 쌍발기라는 특성상 기수에 대형, 대량의 장비를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전투기형 이외의 파생형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파생형은 정찰기형이다. 기수의 무장을 철거하고 고성능 카메라를 여럿 탑재한 비무장 정찰기형인 F-4, F-5[2] 는 연합군의 중요한 정보 수집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문학가이자 조종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을 함께 했던 기체로도 유명하다.[3]
이 정찰기형은 그 활용도 만큼이나 손실률이 매우 높았다.[4] 이 비무장 정찰형들은 단독 저공비행이 주요한 임무패턴이었다. 그러나, 본문에 나왔다시피 유럽전선에서 P-38의 비행속도는 썩 빠른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추축군 전투기와 만나면 이를 따돌리기가 어려웠고, 저공에서 작전하기 때문에 지상의 대공포화에도 여지없이 노출되었다. 반격수단은 당연히 없었고, 자신을 보호해 줄 동료기를 대동하지 않는 단독 비행이란 점도 피해를 가중시켰다. 결국, 유럽전선에서의 전투기 개조 정찰기 전력은 무장을 제거하지 않고 전투능력을 그대로 가진 기종들이 주력을 이루게 되면서 전쟁 말기에는 주력 정찰기의 자리를 내어준다.
P-38들은 유럽전선 전쟁 말기에 이르면 높은 무장 탑재능력을 활용하여 폭격기처럼 편대를 짜서 폭격임무에도 투입되었는데, 이 폭격 편대의 선두기 역할을 위해 무장을 철거하고 기수를 유리로 바꿔서 폭격조준기와 폭격수 자리를 설치한 드롭스누트형이나, 폭격 조준용 대형 레이더를 설치한 패스파인더형으로 개조된 기체들도 있다.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선 부대에서 레이더를 장착한 야간전투기로 개조한 기체들이 야간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야전개조 기체들의 운용성과를 받아들여서 본격적인 야간전투기로 개발된 M형이 전쟁 말기에 투입되었다. 기수 아래에 소형 레이더를 설치하고 조종석 뒤편에 레이더 조작수 자리를 마련했다.
이외에도 소량의 화물, 인원 수송 임무에도 활용되었고, 각종 실험기로도 활용되었다.
심지어는 전쟁이 끝난 뒤, 인도의 한 항공사는 기수 전체를 유리로 바꾸고 고급 좌석과 편의시설을 갖춘 VIP수송기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4. 실전
P-38은 특히 태평양 전쟁에서 전투기로서의 명성을 많이 날렸다. 당시 일본군 전투기들과 비교하여 한 급수 이상의 고성능 전투기로, 고고도 성능이 우수[5] 하고 고속비행성능도 뛰어났기 때문[6] 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력으로 날아와 강한 화력으로 기총을 퍼붓고 도망치면(붐앤줌 전술) 일본군 전투기들은 속수 무책이었으나 많은 미군들이 일본군의 장기인 기동전,선회전에 말려들어 격추당하는 일이 속출했다.[7] 무거운 기체를 이용한 급강하이탈도 초기형 기체 자체의 문제점과 대부분의 전투가 중고도 이하에서 벌어진 태평양전쟁의 특성때문에 어려웠고 일본군은 P-38을 '정어리꼬지(페로하치)'라고 라이트닝을 부르며 손쉬운 적으로 평가했으며 오히려 당시 일본군은 P-40를 P-38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기체로 평하고 있다. 어떤 조종사는 회고록에서 고고도에서 만난 P-38을 매우 무섭게 여긴 반면, 어떤 조종사는 기동성도 나쁘고 덩치가 커서 맞추기도 쉽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전자는 실력있는 조종사를 일본기가 불리한 고고도에서 만났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고 후자는 운좋게도 풋내기 조종사가 모는 P-38를 만났거나, 문제가 많던 초기형 P-38만을 만났던 것 같다.[8]
초기 미군조종사들의 이런 전술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P-38은 제로센 등에 비해 속도와 상승력에서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미국 조종사들은 전투에 임할지 퇴각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쥐고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우수한 고공, 고속성능에 당연히 방어면에서도 더 튼튼했고, 화력에서도 우세했다. 뿐만 아니라 무장이 모두 기수에 장착된 덕분에 화력의 집중도가 높았고 이스파노 수이사 20mm 기관포와 M2 기관총 모두 탄도 특성이 우수해서 P-38은 날개에 기관총을 장착한 다른 전투기들에 비해 더 먼거리에서도 더 높은 명중률을 기록했다. 이는 방어력이 취약한 일본 전투기들을 상대로 특히 더 위력을 발휘했다.
미군 조종사들이 P-38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술에 익숙해지면서 P-38은 제 위력을 발휘, 결국 태평양 전선에 배치된 미 육군항공대 전투기들 중 가장 많은 일본군 항공기를 격추시킨 기종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P-38은 태평양 전선에서 약 1700기의 공중전 격추를 기록했으며, 중국-버마-인도 전선에서도 157기의 격추를 기록했다. 때문에 제로센 전투기의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는 "P-38의 쌍발 엔진음이 남태평양의 모든 일본 조종사들에게 익숙해졌으며, 또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태평양 전역에서 P-38의 최초의 성공적인 전투로 기록된 것은, 1942년 12월 27일 파푸아 뉴기니 포트 모르즈비 상공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 35 전투비행단 소속 제39 비행대대는, 11기의 일본기 격추를 보고했다. 반면 P-38은 단 한 기를 잃었다. 11기 중 2기를 격추한 파일럿은, 이후 40기의 일본기를 격추시키며 P-38 에이스를 명성을 떨치게 되는 리처드 "딕" 봉 Richard "Dick" Bong이었다. 그를 포함해서, 태평양 전선의 미 육군항공대 에이스 다수가 P-38로 전과를 올렸다.[9]
한편 P-38은 장거리 비행성능을 살려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탄 G4M 폭격기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좀 더 정확한 이유는 작전 당시 가장 긴 항속거리와 탑승자를 확실하게 죽일수 있는 20mm 기관포를 가진 전투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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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의 생산을 독려하는 전시 선전포스터[11] . 제목이 '우리에게 더 많은 P-38을 다오'이다.(포스터 내용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활약인데, 정작 생산된 전투기 다수는 유럽전선에 보내버렸다는 게 함정...)[12]
P-38의 전과에 고무된 태평양 전역의 미 육군항공대는 더 많은 P-38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군 육군항공대에게 태평양 전역은 어디까지나 '2순위' 고려대상이었다. 따라서 P-38은 유럽전역의 폭격기 호위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다. 그러나...
정작 유럽전선에서 라이트닝은 전투기로서 그렇게 환영받지 못했다. 유럽전선에서 P-38이 마주친 Bf109계열은 이 전투기보다 고고도 성능이 더 우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속 800km 이상 고속에서의 조종성 문제로 급강하 최대속도가 833km/h 정도에 제한된 때문에 급강하시 시속 900km 이상으로 가속할 수 있던 Bf109나 Fw190 등 독일 전투기들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었다. # 이는 P-38 초기형에서, 시속 800Km 이상 고속비행시, 주익 일부의 공기흐름이 부분적으로 음속을 넘으며 발생하는 공기흐름 변화로 인해 수평미익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 탓이었다. 위의 '성능' 문단에서 언급된 것 처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기형에서는 '다이브 플랩'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량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1944년으로, 그 시점에는 이미 유럽의 미 육군항공대에는 P-47과 이어 P-51 머스탱이 배치되어 있었다. 때문에 P-38이 일선 전투기로 활동할 기회는 많지 않았고, 독일 전투기들과의 전투에서 기록한 초반 부진의 오명을 씻기엔 조금 때늦은 조치가 되었다.[13]
또한 유럽전선에서 미 육군항공대 소속 전투기들이 주로 맡던 임무는 매우 높은 고도[14] 에서 폭격기를 호위하는 것이었는데, 이 정도 고도에서는 P-38의 조종석이 상당히 추웠다고 한다. 대부분의 단발 전투기들은 엔진 바로 뒤에 조종석이 위치하여 어느 정도 엔진 열기로 조종석이 보온이 된 반면, P-38은 조종석과 엔진이 먼 구조적 특성상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태평양에서는 오히려 P-38이 너무 덥다고 투덜거리는 조종사들이 있었는데, 비행 중에 캐노피를 열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더운 태평양 전선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낮은 고도로 내려오면(주로 전투를 벌이지 않는 이착륙 상황때 특히) 전투기의 캐노피를 열고 다니곤 했는데, P-38은 캐노피를 열고 비행하면 캐노피에서 발생한 후류가 수평꼬리날개에 영향을 미쳐서 진동이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P-38은 일본군 전투기를 상대로 선회전보다는 일격이탈 전술을 주로 사용했지만, 유럽전선에서는 반대로 독일군 전투기들을 상대로 선회전을 벌였다. 이는 Bf109 후기형이나 Fw190같은 전투기들에 비해 P-38의 최대속도가 더 느렸던 대신, 선회성능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축군이었던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 유전지대 공습 당시, 루마니아군의 전투기인 I.A.R. 80에게 선회전을 걸었다가 참패한 전력이 있다.[15] I.A.R. 80이 Fw190과 워낙에 흡사하게 생겨서[16] P-38 조종사들이 Fw190을 상대하듯 선회전을 걸었던 것이다[17] .
그러나 유럽전선에 투입된 라이트닝이 겪은 가장 큰 문제점은 항속거리 부족. P-38은 당시 전투기들 치고는 비행거리가 긴 편이었고, 그 때문에 폭격기 호위전투기로 투입되었으나, 영국기지에서 출발하여 독일 본토까지 폭격기를 호위해주기에는 부족했다. 때문에 유럽전선에서는 호위전투기로서의 임무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독일 본토까지 왕복이 가능한 P-51 머스탱이 등장함에 따라 더더욱 전투기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그러나 P-38은 넉넉한 무장탑재공간, 두터운 장갑, 적 대공포에 엔진 하나를 얻어 맞아도 나머지 하나로 살아돌아올 수 있다는 이점[18] 때문에 지상공격임무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19] 독일군에게는 그 독특한 쌍동체 때문에 '악마의 사다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P-38은 여러방면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으나 P-51이나 P-47 썬더볼트 같은 다른 미 육군 항공대의 주력전투기보다는 약간 어중간한 성격의 전투기였다. 특히 값은 1/2 수준이면서도 우수한 공중전 능력과 초장거리 비행능력을 갖춘 P-51이 등장하자 미 육군 항공대는 P-38보다는 P-51을 더 선호하였다. 사실 P-38L-5-LO 같은 후기형은 공중전에 있어서도 P-51D보다 최고속도나 기동성에서 우위를 가지는등 전반적인 성능에서 더 우수했다. 단지 항속거리도 더 짧고 2배나 더 비쌌을 뿐이다. [20]
미 육군 항공대가 육군에서 독립하여 미 공군이 됨에 따라 1948년 당시 남아있던 소수의 P-38은 F-38로 이름이 개칭됐으나, 이들은 1949년에 모두 퇴역하였다. 퇴역한 기체 대부분은 폐기처분되어서 그 명성에 비해 현재 비행 가능한 상태로 남은 기체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5. 기타
특이한 쌍발엔진의 유래에는 웃기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사정이 하나 있는데, 고출력을 위해서 엔진을 키우자 진동이 심해져 조종하기가 어려워졌고, 그걸 억제하기 위해 장갑재를 늘리다 보니 원하던 출력을 낼 수 없어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아예 엔진을 두 개 달아버려 고출력과 안정성 및 생존율에 여유공간까지 늘어났다는 '''천조국스러운''' 이야기가 있다.[21] 게다가 쌍발기의 장점.. 바로 엔진에 의해서 기체가 기우는 현상인 토크가 없다는 이점이 이 기체를 보다 손쉽게 조종할 수 있는 전투기로 만들었다.
다만 위 장점은 오로지 P-38에게만 해당되는 장점이다. 왜냐하면 P-38의 경우 두개의 엔진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구동시켜 프로펠러 토크를 없앴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항공기용 엔진의 설계시설을 따로 운용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엔 자원과 인력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았지만 타 국가의 쌍발엔진 중전투기들은 그냥 두개의 엔진을 모두 같은방향으로만 구동시켜서 비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독일군의 중전투기 Bf 110인데 이 녀석은 엔진 두개가 모두 같은방향으로만 구동되므로 토크가 발생한다.
내구성 하나는 경이로워서 1942년 사고로 인해 그린란드에 비상착륙했고 세월에 의해 빙하 속에 파묻힌 P-38 한 대(일련번호 41-7630)를 1992년 발굴했는데 놀랍게도 '''50년 동안''' 빙하 속에 파묻혀있던 기체의 외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이것을 전세계에 남아있는 오리지널 P-38의 부품을 끌어모아 개조시켜 비행 가능한 기체로 만든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빙하의 소녀(Glacier Girl)'''이다. 현재 세계에서 비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P-38 중 한 대다.
덧붙여 당시에 같이 빙하에 착륙해 파묻혀 있던 B-17 폭격기 들은 모두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고, 조종사들은 동체 착륙후 즉시 본부에 알렸고 근처에 있던 미 해군 어뢰정이 급파되어 11일 후에 모두 구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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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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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후 '''빙하의 소녀'''의 비행 장면.
해당 기체의 비행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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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의 여인과 비슷한 케이스로 2007년 영국 웨일즈의 해변에서 P-38 라이트닝의 비교적 온전한 잔해가 발견된 적이 있다. 일련번호 41-7677, 1942년에 추락했으며 할렉의 처녀(Maid of Harlech)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복원 프로젝트가 TIGHAR(The International Group For Historic Aircraft Recovery, 국제 역사적인 비행기 복원단체)라는 단체에서 진행중이며 2011년 현재도 진행중. 순수하게 모금 받아서 진행하는 거라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듯 하다.
훗날 이름이 F-22의 프로토타입인 YF-22 라이트닝 II에 계승되었다가 양산형에서 랩터로 바뀌자 로우급 스텔스 전투기인 F-35 라이트닝 II에 계승된다. 참고로 F-35 계획에는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도 참여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영국 역시 50년대에 개발한 초음속 요격기, BAC 라이트닝이 있었기 때문에 라이트닝 'II'를 쓰는데 문제가 없었다.
어린 왕자의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이 정찰기를 타고 나갔다가 실종된 후 나중에 사망 처리됐는데, 그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독일의 조종사가 그의 팬이었다고 한다. 자기도 이 사실을 알았다면 격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하면 2008년 3월 헤르만 괴링 공군 원수에게 훈장도 받은 공군 에이스 조종사인 호르스트 리페르트(Horst Rippert. 1922-2013)가 생텍쥐페리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문제는 기체에는 탄흔이 없었기에 격추된 건지 우울증에 의한 자살인지 논란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 자료에 따르면 독일 전투기에 격추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해졌다.''' 왜냐하면 P-38의 우측엔진에 피탄으로 인한 윤활유 누유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 기습공격을 받아 엔진 하나가 망가진 상태로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는게 유력하다. 따라서 '''호르스트 리페르트가 생텍쥐페리의 P-38을 격추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른 유명인으로는 찰스 린드버그가 2차 대전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억지를 좀 부려서 P-38로 전투임무를 여러 차례 수행한 적이 있다. 생텍쥐페리와 달리 정찰기 1기를 격추하고 훈장도 받고 종전 이후로도 잘 살았다. 린드버그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나찌 지지자였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입장이 아주 곤란했다.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는 차원에서 참전.
주한 미 7공군 산하 8전투비행단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에이스 로빈 올즈는 이 영 좋지 않은 비행기를 갖고 유럽 전역에서 '''17기나 격추'''를 하면서 아무리 안좋은 P-38이라도 사용자와 그의 실력만 좋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허나 그의 평가에 따르면 "P-38은 비행이 즐거울 정도로 원래 그렇게 나쁜 전투기는 아니었다"고 한다.[22]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에 1기가 노획되었는데, 요격기가 부족했던 이탈리아는 이 노획기를 실전에 투입했고 실제로 B-17 1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린다. 덕분에 라이트닝은 2차대전 당시 미군기를 격추시킨 유일한 미군 전투기(...)로 기록되기도 했다. #
한국전쟁때 참전하신 참전용사들이나 50~60년생 중장년층이 P-38사진을 보고 전쟁때나 어릴때 이 기체를 보았다는 경우가 있는데 P-38은 한국전 이전에 퇴역했으므로 볼수 없었을 것이고 이분들이 보았다는 기체는 대전 후반기에나 나온 C-47의 후속 기종인 C-82 패킷이나 한국전과 베트남전때 활약한 수송기인 C-119 플라잉 박스카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머스탱 동체 2개를 붙인 정찰기인 P-82 트윈 머스탱일지도...
5.1. 엔진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자 미국 항덕들에게 한 번 쯤은 나오는 소재가 P-38이 후기형까지 왜 엘리슨 엔진을 고집했냐이다. 미국의 앨리슨 사는 공랭식 엔진은 잘 만들었지만 수냉식 엔진은 처절해서 초기의 P-51A가 이 앨리슨 엔진을 써서 그저 그런 성능의 2류 기체 취급을 받다가 단지 엔진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순식간에 최강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 유명한 사례도 있을 정도. 록히드가 무슨 생각으로 똥고집을 부렸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 빌빌대는 앨리슨 엔진이 유일하게 궁합이 잘맞았던 기체가 P-38이다.'''
록히드사는 설계때부터 앨리슨 엔진이 고고도에서는 시궁창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23] 그걸 해결하기 위해 터보차저를 달았었다. 터보차저가 고고도에서 앨리슨 엔진이 빌빌대는 것을 보완해주었기 때문에 나름 좋은 성능이 나온 것.[24] 사실상 수랭앨리슨 엔진을 장착하고 터보차저를 단 기체가 유일하게 P-38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엘리슨엔진을 장착한 기종이 중, 고고도에서 욕먹을 때 P-38은 그런 일이 없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롤스로이스 멀린을 장착하는 시도가 이루어질려 했으나 기존에 앨리슨 엔진에 맞추어져 있던 터보차저 시스템 때문에 동체 뿐만 아니라 터보차저 시스템까지 다시 재설계까지 해야되었고, 또 P-51에 필요한 멀린엔진을 2개나 요구하면서 기체값이 쌍발기라 P-51보다 비싼지라 결국 P-51에 밀려 멀린엔진교체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자료는 없지만 실제 한 미국항공기 동호인에 의하면 서적에서 멀린엔진을 장착한 P-38의 사진을 보았다고는 하는데 이 말을 토대로 추측하면 실제로 크게 성능을 개선시키지 못해 그냥 기존에 엘리슨 엔진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25][26]
6. 각종 매체에서
- 온라인 게임 라테일에서는 모에선을 맞았는데, 한쪽 눈이 가려져있고 목과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으며 사슬을 달고 있는 발레리나형 안드로이드로 의인화되었다. 비프로스트라는 맵에 출현. 주먹이 분리가 되는 모양인지 플레이어를 향해 로켓 펀치를 발사한다. 도감 정보를 보면 보이쉬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듯. 꽤 인기가 많다.
- SS-Alpha에서 제작한 '모에모에 2차대전'에서는 '앨리스'와 '클라렌스'[27] 라는 이름의 쌍둥이 자매로 등장한다. 쌍꼬리의 악마라는 점 때문인지 매우 장난꾸러기다.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 연합군 전투기로 등장한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는 미국 중전투기트리로 F형과 J형(동체 연구시 L형)이 5, 6티어로 등장한다. 화력은 낮지만 살짝 나은 기동성과 무시못할 한계고도덕에 타 볼만한 물건.
- 워 썬더에서는 미국 육군기로 나온다. 좋은 상승력과 기수집중형 무장덕에 붐앤줌에 특화된 물건이다. 생존성이 높다는 특성답게 조종석 장갑이 충실하지만 연료탱크가 넓어서 체감상 불이 더 잘 붙는다. 또 쌍발기가 어째서 저고도 선회전에서 안쓰이는지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에서는 특이하게도 같은 기체가 각각 전투기 트리와 관제기 트리에 출시되는 기괴한 구성으로 출시되었다. 전투기형 P-38은 일반 전투기 트리와 동일하게 최대 81도까지 급강하가 가능하며, 관제기형은 전투기 기동이 불가능하게 설정되어 있다. 웃기게도 전투기와 관제기형은 기체 크기도 성능도 동일해서 전투기형 보다는 관제기용 스킬이 사용가능한 관제기형이 좀 더 인기가 높았다.
- 히어로즈 앤 제너럴스 에서는 연합측 중전투기로 등장. 분명 좋은 기체이나 상대가 Bf109와 Yak-9인지라... Bf109와 Yak-9 보다 튼튼하고, 기관포탄의 장탄이 더 많지만, 쌍발기인지라 피탄면적이 넓어 더 잘 맞는다. 그러나 업데이트로 중전투기로 올라가면서 미국의 4대악 중 하나로 변해버렸다.
- 웹 소설 별이 펄럭일 때 에서 미 육군 항공대 전투기로 등장한다. 첫 등장 당시 유일하게 시속 600km 이상을 내는 기체라며 아군에게 주목받았고 최초의 실전인 로젠그라프 항공전에서 시홀앙르 공군을 상대로 P-39, P-40과 함께 대활약하며 이후로도 작품 안에서 꾸준히 활약하다가 머스탱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출연이 줄어들게 된다.
- 캡콤의 194X 시리즈와 사이쿄의 스트라이커즈 1945 시리즈의 주력 전투기로도 유명하다.
- 캡콤의 194X 시리즈의 경우 전 시리즈에서 등장. 1942에서 처음 선보인 한바퀴 빙글 돌며 폭탄이나 회피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1942를 제외하면 성능은 기본적으로 무기를 따르지만, 기체간 특성이 따로 적용된 19XX만큼은 예외로 다른 기체들에 비해 성능이 안습하다.
- 사이쿄의 스트라이커즈 1945 시리즈의 경우 스트라이커즈 1999를 제외한 작품에서 등장. 1편에서는 기체의 속도가 느린 대신 유도미사일의 발사속도, 공격력이 매우 좋아서 자잘한 적비행기들을 알아서 처리해준다. 따라서 초보자가 쓰기에는 가장 좋은 기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2편에서는 화력이 심하게 너프되어 주인공 위치임에도 성능이 매우 심하게 구리다.
-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미군 전투기로 등장한다.
미군 4티어 전투기 P-38 라이트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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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아케이드 전용 프리미엄 전투기 P-38 라이트닝
7. 둘러보기
8. 참고 링크
[1] 물론 어디까지나 쌍발기치고 그렇단 거다. 라이트닝은 기동성 둔한 포케불프보다도 익면하중이 높다.[2] P-38 대신에 아예 이 명칭으로 바뀐 것. 현대의 F-4, F-5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지금과는 달리 2차대전 당시 미육군 항공대에서 정찰기를 뜻하는 영문자는 F였다. 그러나 이건 육군 항공대의 경우고 해군은 전투기의 약자로 F를 썼다. 종전 후 3군 무기 명칭이 통합되면서 지금처럼 F로 통일되었다.[3] 2차세계대전 당시 생택쥐페리는 자유프랑스 공군의 일원으로서 정찰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마지막 비행 당시 탑승기는 F-5.[4] 생텍쥐페리 역시 정찰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실종되었다.[5] P-47 썬더볼트와 함께 터보슈퍼차저를 기본장비하고 있다. 이 물건이 고고도에서 효과가 좋은 걸 생각하면 당연하다.[6] 당시 일본군이 보유한 양산형 전투기들인 제로센이나 Ki-43 하야부사보다 100킬로미터 이상 빨랐다. 심지어 P-38 초기형 조차 '수평비행 최고속도'(시속 624Km)가 제로센 초기형의 '급강하 제한속도'(시속 629km)에 맞먹는다. 일격이탈을 걸어오면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는 셈.[7] 일본기 자체의 선회력 또한 저속선회든 고속선회든 모든 상황에서 P-38보다 뛰어났다.[8] 대형 쌍발기의 특성상 저속, 저고도에서 선회력이 매우 안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보 조종사들은 선회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사례로 Me262와 처음으로 교전한 P-51 조종사도 Me262의 성능에 놀라지만 Me262의 조종사가 무리하게 선회를 시도하다가 자멸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9] 봉 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전적을 올렸다가 전사한 토머스 맥과이어도 이 기체의 에이스이다.[10] 그러나 폭격기가 이륙한 비행장의 위치가 과달카날을 중심으로 P-38의 최대 작전반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쳤기에 실제로 폭격기를 격추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5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야마모토의 철저한 시간관념덕분에 성공했지만.[11] 제작이 미 육군성이다.[12] 당연히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유럽전선의 비중과 중요도가 태평양 전선보다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지리적인 면에서도 태평양 보다 대서양이 미 본토와 가깝고 나치 독일의 수준은 일본의 그것과도 훨씬 높았다. 대서양을 관통할 수 있는 능력을 나치 독일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13] 게다가 그 와중에 1944년 3월에는, P-38J의 개수용 부품을 싣고 영국으로 향하던 C-54수송기를 영국공군 전투기가 독일군의 Fw 200 초계/폭격기로 오인하고 격추해버리는 바람에 개수 일정이 더 늦춰지기도 했다.[14] 대략 3만 피트 이상인데 천미터 올라갈때마다 온도가 6도씩 떨어지니 이쯤 올라가면 지상의 온도랑 상관없이 그냥 덜덜덜 떠는 수밖에 없다. 파일럿들이 목도리를 메고 다니는 이유가 바로 이것.[15] 루마니아 공군 에이스 단 발렌틴 비잔티가 P-38의 선회전을 역이용해 단숨에 3기를 격추시켰다.[16] 나중에 루마니아도 Fw190을 도입했지만[17] 그래서 초기 공습때 Fw 190으로 착각하여 폭격기들이 우왕좌왕 하기 바뻤다고 한다. I.A.R. 80은 P-38보다 최대속도가 500km/h대여서 느린 대신 선회성능이 더 좋았다. 아마 I.A.R. 80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P-38 조종사들은 일격이탈 전술을 사용했을 것이다.[18]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한데 정작 실제 조종사들은 엔진 하나가 당하면 보통 기체를 버렸다고 한다.[19] 앞서 언급한 루마니아 유전지대 공습 당시에도 P-38은 본래 지상공격 임무를 맡았다.[20] 그러나, 머스탱보다 두배 비싼 이 쌍발 중전투기를 천조국은 '''1만대''' 뽑았다. 이해를 돕자면 일본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 단발 전투기인 제로센이 전 형식을 포함해 약 1만대 뽑혔다.[21] 사실 이건 P-38만 그랬던게 아니라 미국의 무기 개발 사상이 원래 그런 식이다. 미국은 F-22를 개발할때도 스텔스 능력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항력을 받는다는게 문제가 되었는데, "뭐 항력을 많이 받아? 그럼 더 센 엔진 달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사상 유래없는 추력을 내는 F119-PW-100 엔진을 개발하여 달아버렸다(...) 같은 2차 세계대전때의 기체인 B-29는 짧은 엔진 수명주기가 문제가 되었는데, "뭐 엔진 수명이 짧아? 그럼 75시간마다 새로 교체해버려!" 식으로 대응했다(...)[22] 다만 이 양반은 독일의 Bf109 50대를 본인과 윙맨 2대로 50:2로 맞장뜰 정도로 상당히 기량과 똘기가 넘치는 사람임은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미하일 비트만이나 척 예거의 사례처럼 추억보정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23] P-38의 주된 개발목적도 고고도 고성능이였다.[24] 사실 록히드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벨사도 그렇게 생각해서 P-39에 터보 차저를 달려고 했었다. 그러나 터보차저를 못 달고 장갑판을 대신 달아버리는 바람에 기체가 고고도에서 망해버렸다. 다만 이후에 나온 개량형인 P-63 킹코브라에는 터보차져가 달렸는데,역시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P-51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었기에 대부분 소련에 공여되었다 .[25] 이는 P-40도 마찬가지였다고한다.[26] 초기에 록히드가 멀린엔진 탑재 라이트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나 멀린엔진을 탑재한 라이트닝은 약간의 고도이점을 제외하면 무게, 상승 속도, 항속거리면에서 손해를 본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27] 각각 라이트닝의 엘리슨 엔진에서 따온 이름과 라이트닝의 디자이너 클라렌스 '켈리' 존슨에서 따온 이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