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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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reie Hansestadt Bremen, 브레멘 자유 한자 시'''
독일 북부의 도시주.
2. 역사
브레멘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로 추정된다. 빙하기가 한창이던 기원전 12,000년 무렵으로 추정되는 원시인들의 유적지가 발굴되었기 때문. 이후 한 때 아우구스투스가 추진한 게르만족 정복 시도로 브레멘 일대가 로마의 영역에 짧게나마 들어왔던 적[1] 이 있지만,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참패 이후 로마군이 라인강으로 국경을 물렀기 때문에 로마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가 작성한 유럽 지도에서는 지금의 브레멘 위치에 게르만족의 영역지가 표시되어있는데,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이 때부터 브레멘이 존재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 대다수 학자들의 반응은 "글쎄..." 정도.
이후 3~4세기 무렵에는 색슨족이 이곳으로 이주해왔으며 중세 이후에는 프랑크 왕국의 영토에 포함되게 된다. 프랑크 왕국이 게르만 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함에 따라 8세기 후반에 최초로 주교가 브레멘에 파견되었으며 10세기 무렵부터는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노르웨이,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무역을 하면서 부를 쌓기 시작한다.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주교에게서 화폐주조권을 인정받았으며, 바르바로사(Barbarossa) 프리드리히 1세에게도 제국 자유 도시(Freie und Reichsstädte)로 지정받으면서 여러 특권들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특권에는 브레멘 시내의 재산권을 영주들로부터 보호받는 조건 및 브레멘으로 도망쳐 온 농노들의 신변의 자유를 인정하는 조건 등이 있었는데 중세 독일의 속담 중 하나인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Stadtluft macht frei)'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 이후 13세기에 가입한 한자동맹은 브레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브레멘은 명목상으로는 주교 겸 대공의 지배를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2]
이렇게 잘 나가던 브레멘의 기세를 꺾어버린 것은 바로 17세기 유럽을 피바다로 몰아넣은 종교개혁. 상인들답게 종교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지 브레멘은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시기 중립을 선포했으며[3] 막대한 부를 이용해 중립을 지키기 위한 용병까지 고용하면서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했지만 베저 강 하구라는 지정학적 요소와 무역으로 쌓아올린 막대한 부는 개신교와 가톨릭 진영 모두에게 매혹적인 요소였고, 덴마크, 프로이센, 스웨덴, 합스부르크 등등 다양한 세력들이 브레멘을 놓고 충돌하게 된다. 특히나 스웨덴과는 공성전까지 벌였으나 브레멘 입장에서는 다행으로 점령만은 피했다. 다만 스웨덴이 포위를 푸는 조건으로 내세운 브레멘을 둘러싸고 있던 각종 요새의 해체와, 라이히스탁으로의 브레멘 대표 파견 금지를 허용하면서 최전성기의 위상을 누리지는 못하게 됐다.
그 후로 무난무난히 지내던 브레멘을 뒤흔든 것은 나폴레옹 전쟁. 1811년 나폴레옹이 브레멘을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속국으로 놓이게 되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빈 회의에서 다시금 자유도시로의 권리를 인정받고 독일 연방의 일원이 된다. 1817년 독일 최초의 증기선이 이곳에서 발명되면서 산업혁명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한 운송업이 폭발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하고 1827년에는 해운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노버 왕국으로부터 베저 강에서 북해로 빠지는 항구 일대를 사들인다. 이것이 바로 브레머하펜(Bremerhaven).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영미로 4분할 된 독일의 영역 가운데, 미국의 점령지가 내륙에 국한되어 브레멘을 월경지로 미군 점령지로 삼았다.
3. 사회
3.1. 인구
브레멘 주의 인구는 67만명 정도로 천안시와 비슷하며, 이 중 브레멘 시의 인구수는 대략 55만명 정도로 포항시보다 약간 많은데, 절정기였던 1960년대 후반의 60만 명에 비하면 약간 줄어든 수치이다. 또한 55만명의 인구중에서 외국인이 25% 가량의 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 중 다수는 역시 터키인이다. 또한 독일 제국 시기에는 폴란드에서 일자리를 찾아 폴란드인들이 브레멘을 많이 왔었는데[4] 냉전 종결 이후 다시금 폴란드 인들이 브레멘에 정착하고 있다. 덧붙여서 전통적으로 공업과 운수업이 발달한 도시였던만큼, 계층상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3.2. 정치
위의 인구 항목에서 설명하였듯이 노동자들이 다수인 도시였던만큼 19세기 후반 이후로 사회민주당의 아성과도 같은 곳이다. 1946년 이후로 7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회민주당은 지역 의회에서 기독교민주연합에게 여당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2015년 선거에서도 사회민주당이 기독교민주연합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지지율[5] 을 보여주면서 두터운 지지를 재확인했다.
녹색당이 가장 먼저 의회에 진출한 곳이다.[6]
3.3. 경제
전통적으로는 해운업이 발달한 곳으로, 독일에서 함부르크에 이은 두번째 규모의 해항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공업이 발달하여 에어버스의 주요 민항, 군수 부품 공장과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 라인이 입지하고 있다.이외에 각종 주류산업 및 노르트제(Nordsee)[7] 와 같은 외식업체들도 많다. 외식업체는 아니지만 독일 맥주 브랜드 중 몇 안되는 세계적인 규모의 벡스도 브레멘 연고의 맥주회사이며 양조장도 상당한 규모로 존재한다.
독일에서 소득 수준은 평균 이상으로 높지만 반대로 실업률 또한 16개 주 중에 가장 높은 것이 문제이다. 2021년초 기준 11.5%로 독일 평균(6.3%)은 물론 구 동동 지역(7.9%)보다도 한참 높다.
4. 행정 구역
브레멘은 도시주이지만 다른 주들과는 다르게 하위 2개의 구에 도시권을 부여하여 시(Stadtgemeinde)라고 부른다.
브레멘 시와 브레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브레머하펜(Bremerhaven)을 하위 행정구역으로 두고 있다. 브레머하펜은 브레멘 도시주에 속해 있지만 니더작센 주를 사이에 끼고 있는 월경지이다. 두 지역은 베저 강으로 연결된다.
5. 대학교
브레멘에는 네개의 공립대학교가 존재한다.
브레멘 대학교, 브레멘 응용과학 대학교 (Hochschule Bremen), 브레멘 예술대학교 (Hochschule für Künste) 그리고 브레머하펜 단과대학교 (Hochschule Bremerhaven)
6. 공항
자세한것은 브레멘 공항 참조.
7. 여담
-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막스 플랑크 해양 미생물학 연구소(Max-Planck-Institut für marine Mikrobiologie)가 이곳에 있다.
- 독일 도시들이 다 그렇듯이 구도심에 중세-근대 풍의 예쁜 건물들이 많다.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의 브레멘 시청은 세계문화유산. 시청사광장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롤란트 기사상이 있다. 그 옆에는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 석상도 있다.
- 분데스리가의 SV 베르더 브레멘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리그와 포칼 2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팀이었지만 셀링클럽의 한계를 못 이기고 2010년대부터는 부진하여 중하위권을 맴돌다가 플로리안 코펠트 감독이 부임하면서 다시 성적이 상승하는 중이다.[8]
- ICE 1의 76편성에 이 도시의 이름이 붙어 있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처음엔 없었지만, 그로닝겐과 함께 확장하면서 추가된 도시 중 하나이다. 처음 생길 때는 교역품이 모피, 밀, 맥주, 소금 등이어서 북해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계륵에 가까웠다.[9] 패치를 통해 투자시 민들레와 면 원단이 나오면서 중요성은 올라간 편.
- 유럽의 역사적인 도시들이 으레 그렇듯 길이 조금 중구난방이며 특히 중세시대 느낌을 잘 보존한 구도심 부근은 더 한데 시청 맞은편에 위치한 여행정보센터를 방문해서 지도를 구비하여 지도와 함께 여행하면 더욱 직관적으로 여행 할 수 있고, 굽이진 골목 하나하나 다 영화나 그림같은 곳이므로 시간이 있다면 지도를 보고 대략적인 동선만 숙지한채 이리저리 걸으면서 골목길 하나하나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브레멘과 흐로닝언을 오가는 버스가 있어서 이곳을 통해 네덜란드와 독일을 오갈 수도 있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활약 중인 율리안 브란트의 고향이다.
- 2020년 3월 1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첫번째 확진자가 브레멘 주에서 나온 이래 3월 22일 현재 168명의 확진자가 나왔는데, 독일 16개 주 중 가장 적은 수이긴 하지만 브레멘 주의 인구가 67만명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10만명 당 감염자 수는 독일 전체 평균보다 조금 낮은 수치이다. 더군다나 브레멘 주와 인구가 비슷한 천안시가 줌바 댄스 집단 감염에도 불구하고 99명인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가 지역 사회에 심각하게 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10]
- 소녀전선의 이벤트인 이중난수에서 동독의 주요도시로 등장하고, 이곳에서 안젤리아가 패러데우스에 대한 단서를 찾는 임무를 수행한다.
[1] 엘베 강까지 약 20년 동안 로마가 지배했던 적이 있다. 물론 완벽한 지배가 아니라 주요 거점과 교통로에만 로마의 힘이 미치는 정도.[2] 오히려 브레멘에게서 막대한 자금을 융자받는 주교들이 브레멘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도 있었다(...)[3] 다만 브레멘 자체에는 종교개혁에 호응해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세력이 다수였다고 한다.[4] 다만 이는 브레멘 뿐만이 아니라 당시 독일 산업지역 일대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5] 사회민주당이 38%인데 기독교민주연합은 20%. 다만 의석은 사회민주당이 30석, 기독교민주연합이 20석을 확보했다.[6] 1979년 결성한 '브레멘 녹색후보자 연합'이 시초이고, 1980년에 '녹색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전국정당이 된다.[7] 해산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체인이다. 도이치반 역에 많이 입점해 있어 여행자들에게는 친숙할 듯.[8] 여담으로 라이벌 함부르크 SV는 2017-18시즌 창단 첫 강등의 굴욕을 당한데다 2018-19시즌 2부리가에서도 4위에 머물며 승격에 실패, 분데스리가 최다 참가 경력 타이틀을 베르더 브레멘에 내주고 말았다.[9] 가구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지만 위치가 애매해서......[10] 면적은 천안시가 브레멘 주 전체보다 1.5배 넓으나, 인구가 적은 읍,면 지역의 면적이 압도적으로 넓은 점을 감안하면 시내의 인구 밀도는 천안시가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