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북부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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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위치한 교도소'''들'''. 경북북부제1교도소, 경북북부제2교도소, 경북북부제3교도소[1] , 경북직업훈련교도소로 이루어져 있다. 진보향교 근처에 있다.
흔히 말하는 '''청송교도소'''는 이곳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2. 상세
1981년에 사회보호법에 의거한 보호감호제도에 따라 삼청교육대에서 미순화자로 분류되어 전국의 군부대 내에 임시로 분산수용된 감호생들을 수감하기 위해 청송제1, 2, 3보호감호소로 출발, 1983년 대통령령 제11066호에 의하여 청송교도소, 청송 제1보호감호소, 청송 제2보호감호소[2] 로 바뀌었다가 1992년에는 청송교도소가 제1교도소와 제2교도소로 또다시 분리되었다.
이후 2004년에 청송 제1보호감호소와 제2보호감호소가 통합되어 청송 보호감호소로 변경되면서 구 제1보호감호소는 청송 직업훈련교도소로 바뀌었고, 2005년 8월 3일 사회보호법 폐지로 청송 보호감호소는 청송 제3교도소로 변경되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만 해도 청송제X교도소였지만, 청송군민들과 청송 출신 인사들이 청송군의 이미지 실추를 우려하여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오히려 교도소가 들어서면서 지역에 많은 수의 교정직 공무원들이 거주하게 되고 면회객들도 오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지역의 학교들 같은 경우에는 지역 주민의 자녀만으로는 학급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이나, 공무원 및 관련 업무 종사자들 자녀들이 인원수를 채워주어 유지가 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청송군민들은 '''교도소를 추가 유치하겠다'''고 나설 정도.# 역으로 교도소 없이는 지역경제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라는 말도 된다.
청송군 자체도 BYC라고 불리는 전국 3대 오지 중 하나인데, 그중에서도 경북북부교도소의 입지는 '육지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곳이다.[3] 3면이 물살 빠른 반변천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 또한 광덕산의 깎아지를 듯한 절벽으로 되어 있다. 교도소를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 덕분에 불어온 바람이 되돌아나가게 되어 돌개바람이 많이 생기고 겨울에 바람이 강한 편이다. 오로지 교도소를 만들기 위해 생긴 지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면소재지로 연결된 나머지 한쪽도 산이고, 그쪽의 한 개밖에 없는 출입구는 보안과 교도관들이 이중삼중으로 24시간 경비를 서고 있으며 신원 확인도 철저하다. 지근거리에 대한민국 육군 제50보병사단 예하 청송대대가 주둔하고 있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5분 대기조를 중심으로 언제든 완전무장한 육군 병력이 출동한다. 방호훈련도 실시한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6시간이라는, 부산광역시보다도 많은 시간이 들었고 그나마 가까운 편인 대구광역시에서도 5시간이 걸린다는 최악의 입지조건을 자랑했다. 물론 교도소로서는 최고의 입지조건이다. 지금은 더 빠른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3시간, 대구에서 1시간 반 정도면 접근이 가능하다. 여담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지원급 이상 대한민국 법원이 있는 지자체에 교도소가 있는 게 보통이지만, 청송에는 법원도 없는데[4] 교도소가 있다. 그만큼 교도소로서 최고의 입지조건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예. 그나마 입지의 특성상 공기는 좋다고 한다.
1981년 개소 후 43년간 이곳을 탈옥한 재소자는 1명도 없다. 몇 재소자는 담장은 넘었으나 절벽에 막혀 다시 잡혔다. 설사 그것마저 넘는다 해도 인근에 민가가 적고 도주로 또한 극히 한정되어 있으므로 금방 잡힐 것이다. 가까운 곳에 진보면소재지가 있긴 하지만 근처에 관광지가 별로 없어 지역주민들이 차도 없이 나타난 외지인을 몰라볼 리가 없다. 근처에 군립청송야송미술관이 있기는 하지만, 미술 애호가나 찾지 일반 여행객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 시설은 타 교도소보다 벽이 두껍고 CCTV나 적외선 감시망도 방 안까지 감시할 정도로 철저하며, 타 교도소보다 20% 이상 증원된 교도관들이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근무한다.
이곳에 위치한 4개 교도소 중 가장 악명이 높은 곳은 경북북부제2교도소로, 다른 3곳은 강 옆에 위치해 있는데 이 곳만 혼자 산중턱에 따로 떨어져 있다. 2교도소는 엄정 독거 전용 수용시설로, 이 밑에 나올 내용들은 거의 2교도소 이야기이다. 1교는 그냥 일반 강력범들이 들어가 있는 곳으로, 이후에 형기를 살면서 다른 곳으로 이감가기도 한다. 단, 2교의 경우 흉악범과 문제수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전원 독거이기 때문에 계호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평도 있다.
어느 정도 고립된 곳인지 직접 보자.
이 정도로 철벽을 자랑하는 교도소임에도 불구하고 김길태 탈옥 괴담이 돌자, 법무부의 높으신 분의 전화로 교도관들은 김길태가 수감되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시 한번 신원확인을 했어야 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 교도소를 자세히 다룬 기사
경비교도대 존속시절 경북북부교도소 부대는 대대급이었다.
3. 역대 소장
3.1. 경북북부제1교도소장
- 한도희 (1981~1983)
- 김명식 (1983~1985)
- 유병렬 (1985~1986)
- 정구복 (1986~1987)
- 최우섭 (1987~1988)
- 신흥재 (1988~1989)
- 이현옥 (1989~1990)
- 강경초 (1990~1991)
- 오희창 (1991~1994)
- 변동윤 (1994~1995)
- 김인호 (1995~1996)
- 이충배 (1996~1997) [5]
- 배병도 (1997~1999)
- 송주석 (1999~2000)
- 강봉학 (2000~2001)
- 서진철 (2001~2002)
- 안유 (2002~2003)
- 김양택 (2003~2004)
- 박태봉 (2004~2005)
- 김민희 (2005)
- 최상국 (2005~2006)
- 조성룡 (2006)
- 최상윤 (2006~2007)
- 김선태 (2007)
- 지정수 (2007~2008/2010~2011)
- 박종관 (2009)
- 경의성 (2010)
- 김상두 (2011~2014)
- 김안식 (2014~2016)
- 정병헌 (2016~2020)
- 최철경 (2020~ )
3.2. 경북북부제2교도소장
- 배병도 (1992~1993)
- 김인길 (1993~1996)
- 정상문 (1996~1997)
- 서진철 (1997~1998)
- 안유 (1998~1999)
- 김주환 (1999~2001)
- 강중근 (2001~2002)
- 김용기 (2002~2003)
- 박병철 (2003~2004)
- 손용기 (2004~2005)
- 김문하 (2005~2006)
- 김선태 (2006~2007)
- 서병석 (2007)
- 김준겸 (2007~2008)
- 선규철 (2008~2009)
- 이영수 (2009~2010)
- 이동규 (2010~2011)
- 문병일 (2011~2013)
- 류동백 (2013~2014/2019~2020)
- 신동윤 (2014~2015)
- 민육기 (2015~2016)
- 강위복 (2016~2017)
- 도재덕 (2017)
- 이승철 (2017~2019)
- 최진규 (2020~ )
3.3. 경북직업훈련교도소장
- 배응찬 (1981~1982)
- 최건식 (1982~1985)
- 서진수 (1985~1986)
- 이순익 (1986~1987)
- 박희흔 (1987~1989)
- 조영희 (1989~1990)
- 이충배 (1990~1993)
- 전중호 (1993~1994)
- 박영태 (1994~1995)
- 강신성 (1995~1996)
- 정동진 (1996~1997)
- 김재일 (1997~1998)
- 박연수 (1998~2001)
- 김영룡 (2001~2002)
- 김건휘 (2002~2003)
- 추의식 (2003~2004)
- 김한종 (2004~2005)
- 하기수 (2005)
- 김현석 (2005~2006)
- 한재준 (2006)
- 이상승 (2006~2007)
- 장영석 (2007)
- 이상국 (2007~2008)
- 이병해 (2008)
- 홍종우 (2009)
- 정재홍 (2010~2011)
- 박형배 (2011)
- 이경우 (2011~2013)
- 강위복 (2013~2014)
- 유태오 (2014~2015)
- 김동환 (2015~2017)
- 류동백 (2017)
- 김일환 (2017~2018)
- 김왕무 (2018~2019)
- 김진석 (2019~2020)
- 류동수 (2020~ )
3.4. 경북북부제3교도소장
- 정용세 (1981~1983) [6]
- 김형집 (1983~1985)
- 오기수 (1985~1988)
- 이천영 (1988~1989)
- 이승근 (1989~1990)
- 정태왕 (1990~1991)
- 여광석 (1991~1994)
- 정봉교 (1994~1995)
- 김용배 (1995~1996)
- 정상문 (1996~1997)
- 이민수 (1997~1998)
- 유윤수 (1998~2000)
- 신경수 (2000~2002)
- 김태희 (2002)
- 김용기 (2002~2003)
- 방을봉 (2003~2004)
- 송영삼 (2004~2005)
- 장동원 (2005)
- 곽두일 (2005~2006)
- 윤경식 (2006)
- 오영태 (2006~2007)
- 지정수 (2007)
- 권기훈 (2007~2008)
- 이경영 (2008~2009)
- 이영수 (2009~2010)
- 김안식 (2010~2011)
- 배종섭 (2011~2012)
- 김재준 (2012~2013)
- 정재홍 (2013~2014)
- 한응범 (2014~2015)
- 임형종 (2015~2016)
- 민현기 (2016~2017)
- 김평근 (2017)
- 서수원 (2017~2019)
- 서민 (2019~2020)
- 박융우 (2020~ )
4. 수감자
청송제3교도소와 청송직업훈련교도소는 원래 청송 제1보호감호소와 청송제2보호감호소 시절에 보호감호 처분받은 절도범 등 상습범이 수감되어 있었다.
수형 시작 당시의 죄질[7] 도 저곳에 수용되는 기준의 일부이지만, 죄질이 나쁘더라도 이들을 수감하는 교도소가 따로 있고 독방 수감은 예산 면이나 수감자의 정신 건강 면에서나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다지 크게 반영되지는 않는다.
4.1. 제 2 교도소
미국에 ADX 플로렌스 교도소, 러시아에 흑돌고래 교도소, 일본에 후츄 형무소(府中刑務所)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이곳이 있으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최악의 남성 흉악범들이 가는 곳. 즉, '''대한민국 유일의 슈퍼맥스급 교도소이다.''' 단, 여성 범죄자들은 장기수건 무기징역수건 죄질에 관계없이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된다.
주로 탈옥을 수차례 시도하거나 교도소 내에서조차 계속 폭동, 상해죄, 자해 등의 죄를 저지르는 수형자들 중에서도 철저한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때 통제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게 명백한 수형자, 즉 교도소 내에서 수형 생활 중에 행형 성적이 극도로 나쁜 이유로 인해 법무부에서 교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그러나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서 언젠가는 다시 사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재소자들만을 수용할 목적으로 모아둔 교도소 중의 교도소라서 저렇게까지 일시로 철저히 격리해 수용[8] 한다.
하루 중 주어진 유일한 30분에서 1시간의 운동 시간조차 혼자서 해야 한다. 24시간, 365일, 모든 생활을 혼자 해야 하는 데다가 통제가 상상 이상으로 엄격하여 맨정신으로 살기가 아주 힘들다. 이 때문에 최악의 범법자들도 저곳은 정말로 무서워한다고. 허나 모든 교도소가 저렇게까지 철저히 격리해 수용하지는 않고 대부분은 통제가 엄격하긴 해도 최소한의 사람으로서의 대우는 하는 편이다.[9] 교도소 통제가 엄격할 수밖에 없는 게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도소 수감자는 막장 오브 막장으로 안 그러면 미국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막장 사태를 막을 수가 없다.
비슷한 케이스로 미국에서 중범법자들을 모아 가두거나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공모자 테리 니콜스 같은 위험한 죄수를 '보호 겸 손봐 줄' 목적으로 격리하는 ADX 플로렌스 교도소가 있다. 여기는 사람을 서서히 죽여 가는 곳이라는 뜻에서 '깨끗한 지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5. 교정직 공무원
괴로운 건 안에 있는 수용자 뿐만이 아니다. 교도관 역시 말 그대로 '''육지의 섬'''인 교도소 안에 갇혀 있어야 하며, 나와서는 고향도 아닌 곳에서 세월을 보내야 한다. 고충처리를 통해 옮기려고 해도 최소 2, 3년이 걸리며 보통 5년은 바라봐야 한다. 덧붙이자면 '''8년 동안 못 나온''' 현직들도 많다.
고참들은 주로 청송이 고향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고참이 적다. 신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이 워낙 험하기에 신입들도 1, 2년 만에 다들 베테랑으로 변신한다. 변신 못한 자는 스스로 적응을 못하고 나간다. 청송교도소 출신이라고 하면 어느 교정기관에서도 환영받는다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수용, 근무 체계가 잘 잡혀있다. 또 전국에서 사람을 긁어모으는 만큼 주야주야 무한 반복인 일부 교도소와 달리 4부제도 그런대로 잘 돌아가는 편. 인원부족으로 불규칙적인 근무가 가장 큰 단점이라는 교정직에게는 나름 큰 이점이다. 그리고 고충처리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관사 입주도 빠르면 1년 만에 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이 있으나 단점이 크다. 교도관은 중범죄자와 씨름한다거나 일을 잘 배워서 나온다고 월급을 더 주는 것이 아니다. 거기다 청송군은 깡촌이라 문화시설이 없다. 그래서 다들 기피해, 최대한 빨리 나오려고 한다.
교도관으로 붙으면 교도소와 구치소 배치는 성적 순으로 가는데, 성적을 잘 받은 유능한 자는 순한 수용자로 이루어진 편한 소로 지원하고 성적을 못 받은 자들은 일이 거친 소로 간다. 가장 유능한 인재가 필요한 곳에 성적 꼴등이 간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할 사람이 없다. 물론 교정본부도 이게 문제라는 건 알고 있어서 특채 출신들은 성적과 무관하게 일괄 오지로 보내버리고 있다.
거기다가 깡촌이라서 경제적인 여건이 빤한 지역이라 교도관들을 등쳐먹고 있다. 원룸 가격이 서울 등 대도시 지역을 후려갈기는 수준. 때문에 성적에서 밀려 청송에 배정받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방세를 치르거나, 편도 40~50분 정도 걸리는 안동대학교 주변 지역에 방을 잡아야 하는 지경이다. 때문에 관사를 추가하려고 해도 지역 주민들이 육탄저지를 하는 상황이다.
예전부터 안동 지역에 거주하는 경북북부교도소 소속 교도관들은 출퇴근시 안동대학교에서 카풀을 하기도 한다. 저녁시간이 되면 안동대나 인근 대학가인 논골 등지에서 교도관들이 가끔 보인다. 차 타고 30 ~ 50분 거리에 안동시도 있다. 아무리 청송이 육지의 섬이라지만 교도관들은 엄연히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다. 안동도 나름 규모가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없는 것은 없지만 있을 것은 대체로 있는 곳이다. 출퇴근 시간과 기름값만 감수하고 안동대 근처에서 원룸을 잡으면 나름 사회 분위기에 젖으면서 살 수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교정직들이 많아서 계획 잘 잡으면 카풀도 할 수 있고. 그래서 경북에 사는 일부 수험생들은 연고지에 TO가 없으면 근무 힘들고 분위기 어수선한 곳 갈바에야 차라리 청송을 가겠다고 자원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청송이 기피지역인 이유는 '깡촌'에 혼자 살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만약 본인의 연고지가 대경권이라면 정말 멀어도 차로 2시간 거리에 고향이 있으니 휴일 중 시간만 나면 본가에 들르거나 친구들 얼굴도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의외로 휴일이 잘 보장되는 곳이다. 예를 들어 대구에 본가가 있다면 야간 뛰고 원룸에 돌아와서 잠깐 눈 붙인 다음 대구로 내려가면 다음날이 비번이기 때문에 1박 2일간 놀고 다시 업무로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경북이 연고지인 사람들은 타 지방에서 튕겨서 온 사람보다 정서적인 쇼크가 덜한 편이다. 근무 잘 돌아가고, 휴일 제때 나와서 집에 가는 것도 쉽고. 물론 근본적으로 연고지 근무가 아니라면 집세부터 시작해서 한 달에 나가는 돈이 꽤 들지만 이거는 딱히 청송이 아니더라도 국가공무원의 운명이기 때문에...
6. 특이사항
가장 악명높은 교도소이지만, 경북북부 제2교도소에는 사형수가 없으며 사형 집행 시설도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형장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이 극렬 반발해 무산되었다.#
우선 모든 사형수는 현행법 상으로 법집행이 되지 않은 상태인지라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고,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형량은 확정되었지만 법집행이 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교도소에 수감시킬수 없다. 다만 우리나라 교도소와 구치소는 지역에 따라 구치소와 교도소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교도소 내부의 별도 구역에 미결수들이 수감되어 있어 있는 경우들이 있어서 대전교도소나 대구교도소 같은 일부 교도소에 사형수들이 미결 상태로 분류되어 구금되어 있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청송교도소는 구치소와 연계되지 않은 교도소로 형집행 중인 수형자만 받는 곳이기에 사형수가 수용될 일은 없다.
경북북부제2교도소에는 사형수가 한 명도 없고 사형수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에 위치한 교도소와 구치소에만 수용된다. #[10] 일본에서도 사형수는 형무소가 아닌 구치소 내의 독방에 따로 수감한다. 그 이유는 사형수는 형이 사형이기 때문에 형이 집행되기 이전에는 미결수로서 구치소에 수감하는 것, 당연히 사형시키려고 특별기관이나 타 교도소로 이감할 필요가 없으므로 구치소 내부에 형장이 설치돼 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11]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의원 원장의 수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서는 '''못을 삼켜서 실려 온 재소자'''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감옥에만 오래 있으면 바깥 세상이 궁금해지기 때문에 일부러 부상을 입어서라도 외부에 나오려고 한다고 한다. 당연히 교도소 내에도 부속의원과 전담의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교도소 내 장비와 인력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의 부상이나 병이 아니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재소자를 묶을 때 수갑과 계구를 채우는 데만 20분이 걸렸고, 열쇠다발도 한 아름이나 됐다고 한다.
문제의 그 재소자는, 청송교도소 지정병원인 안동 신세계연합의원에서 못을 빼내려고 했는데, 못이 식도가 아닌 기도에 걸렸기 때문에 병원의 장비로는 도저히 빼낼 수 없었다.(못을 삼킨 게 아닌 들이마신 셈) 그래서 대구 영남대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대구라는 대도시까지 구경하게 되자 아픈 것도 잊고 헐떡거리면서 주위를 돌아보기 바빴다고 한다. 그러나 기관지경으로 못을 빼내고 감염의 위험이 적어 입원시키지 않고 바로 교도소로 복귀했다고, 재소자가 얼마나 실망했을지는 안 봐도 뻔할 수준.
그리고 면도날로 가슴에 자해를 한 재소자 얘기도 실려있는데, 가슴에 용이 한 마리 그려져 있었기에 제대로 안 꿰메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등의 육두문자를 들어가며 봉합에는 성공했지만, 상처가 심해 하루 입원시키고 다음 날 출근 했을때 박원장은 엄청난 광경을 보게 됐다. 4명의 교도관이 재소자를 이송해 왔는데 재소자가 누워 있는 침대에 양 옆에 침대를 연결해 교도관 2명이 나란히 누워 교도관의 손과 재소자의 양손을 연결해 수갑을 차고 자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그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한다. 언제 사고칠치 모르는 인간폭탄이다보니 산전 수전 겪은 베테랑 교도관이라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링크 의외로 이런 사례는 청송교도소뿐만 아니라 전국 교도소+구치소를 불문하고 의외로 흔한 일이다.
이러고도 청송교도소에 수감되는 재소자들의 전과와 죄질을 고려해 봤을 때 부당하다고 할 수 없는 게 현실. 재소자들이라는 게 김길태, 오원춘[12] 보다도 답이 없는 자들이다. 흉악범이라 해도 어지간해서는 일반적인 집단 생활을 하되 흉악범만 따로 모아놓는 교도소[13] 에서 주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사회에서 저지른 범죄 그 자체만으로 여기 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오원춘처럼 가장 악질 흉악범은 사회에서 저지른 범죄만으로 경북북부 제2교도소로 오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그 악명높은 조두순조차도 2015년 7월 경북 북부 제1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2019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진 이춘재도 조사가 끝난 뒤 이곳으로 이감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인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빡센 교도소로 이감시키고 감형이나 가석방을 불허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
이 교도소가 위치한 진보면의 농어촌버스중 교도소 안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있는데 푸른솔아파트 이후 구간부터 교정시설 관계자만 탑승이 가능하다.
청송 교도소에서 근무했던 현직 교정직 공무원이 프리즌 아키텍트에서 직접 교도소를 만들었다.Real Korea Prison(Cheong-Song Prison)
7. 사건사고
2020년 12월 9일 새벽에 팝콘TV BJ들이 자동차로 청송교도소를 무단 침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기사
[1] 구 청송보호감호소[2] 원래 춘천교도소 내에 있던 보호감호소를 이전해서 생긴 것이다.[3] 다만, 경북북부교도소가 소재한 진보면 자체는 교통이 청송, 영양, 영덕 일대에서는 그나마 가장 편리한 편이다. 청송/영양/영덕에서 안동이나 서울 방면으로 향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송, 영양, 영덕에서 출발하는 대다수의 시외버스 노선이 진보면을 경유한다.[4]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 관할이다.[5] 1989년 대구교도소 부소장 시절 대구교도소 기결수 3명이 기능경기대회장을 탈주사건으로 직위해제되었다가 복귀.[6] 이후 1989년 당시 대구교도소장 재직중 기능경기대회에 참가했던 대구교도소 재소자들이 탈주한 사건으로 불명예 퇴직.[7]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서 교도소에 오게 되었는지를 본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교도소는 미국 교도소와 달리 중범죄자나 조폭이 경제범이나 과실범 같은 약자를 괴롭히는 일을 최소화하고자 '''죄질'''로 교도소를 분배해 수감한다. 절도범은 절도범끼리, 사기범은 사기범끼리 모아놓고 폭력 사범이라도 그냥 주폭과 전문 조폭, 일진 출신들이 따로 분류되어 수감된다.[8] 후술하겠지만 그 조두순조차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았다. 다만 워낙 사회 물의를 크게 일으킨 극악무도한 자라는 이유 때문에 처우만 개선됐을 뿐 출소 직전까지 독방에서 지냈다.[9] 쌍팔년도라면 모를까,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활동으로 인권향상을 이룬 현재에 와서는 정말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경우는 극소수 교정공무원의 일탈이 아닌 이상 일어나기 힘들다. (신창원도 이런 말을 한 바가 있다.) 한국의 교도소는 유럽의 교도소보다는 환경이나 처우가 열악하긴 하지만 미국보다는 평균적으로 나은 정도이기도 하다. 다만 오히려 이런 중범죄자 교도소보다도 구치소 등에서 불필요한 인권침해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으며, 수감자들 사이의 서열 등을 방치 조장하거나 수감으로 인해 지병에 대한 치료(특히 정신질환)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는 것도 여전하다. 교도소 일기도 참조.[10] 이 5개 지역에는 공통적으로 고등검찰청이 있으며 사형 집행 시설 설치 기준이 고등검찰청 존재 유무다.[11] 이는 소설 13계단에 잘 묘사돼 있다.[12] 판결 이후 한때 천안외국인교도소로 수감된다는 루머가 있었다.[13] 예:경북북부 제1교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