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 리

 

'''꺼삐딴 리'''
Captain Lee
'''작자'''
전광용
'''배경'''
일제강점기 ~ 6.25 전쟁 시기 남한과 북한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제재'''
의사 이인국의 삶
'''주제'''
기회주의자의 풍자와 비판
1. 개요
2. 주요 등장인물
3. 줄거리
4. 평가
5. 관련 문서


1. 개요


전광용(1919~1988)의 단편소설.
현대 소설로 제7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사상계 1962년 7월호에 발표되었다.
일제강점기 후반~광복 후 대한민국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이인국'이라는 기회주의자 의사의 이야기. 제목의 꺼삐딴은 러시아어(Капитан; 카피탄; Captain)의 와전된 표기.[1]
권선징악과는 거리가 먼, 어떻게 보면 씁쓸할 정도로 현실적인 줄거리이다.
그가 발표한 여러 단편소설들을 묶어서 꺼삐딴 리라는 제목으로 재발매되었다.[2] 재밌게도 작가 전광용의 아들 전호경은 진짜 의사가 되어 활동 중이다.[3]

2. 주요 등장인물


  • 이인국 박사 - 주인공. 원래는 병원장이었으나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게 된다.
  • 혜숙 - 이인국의 두 번째 아내로 원래 이인국의 병원에 고용된 간호사[4]였다.
  • 스텐코프 - 소련군 육군 소좌. 수감 중인 이인국이 소내에 전염병이 도는 걸 조기 발견하고 구호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와 친해졌고 이인국이 그의 혹 제거 수술을 무상으로 완벽하게 해 준 것을 계기로 그를 '캡틴 리(李)<꺼삐딴 리>'라 부르게 된다.
  • 나미 - 이인국의 딸.
  • 원식 - 이인국의 아들.

3. 줄거리


작중 현재 이인국 박사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을 무대로 한 서울의 유명 2차병원의 병원장. 전공은 외과이지만 아예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을 들여서 대형 병원을 만들어 놓았다. 첫 아내와 사별했지만, 연하인 간호원이었던 혜숙을 후처로 삼아 늦둥이 아들을 낳고 살고 있다. 큰아들은 소련의과대학으로 유학을 갔으나 한국전쟁이후 소식이 끊겼고, 딸은 미국으로 유학가서 미국인 교수와 결혼하기로 했다. 한편 이인국 박사는 자신의 의사경력을 빛내기 위해 미국행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중에서도 특급 대우인 미국 국무성 초청 케이스로 미국에 가기 위해 예전에 주한 미국 대사 브라운씨에게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확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인국 박사는 차를 타고 브라운 씨의 관사로 간다. 출발하기 전 석간신문을 읽으면서, 그리고 운전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이인국 박사는 북한 지역에서 유명 외과병원의 원장으로 결벽증적인 깔끔함[5]과 꿈에서조차도 일본어를 고집하는 깐깐한 성격으로 등장한다. 주 고객은 일본인이나 친일 조선인 부호 등으로 가난한 이들이나 불령선인은 가차없이 내치는 인물이었다.[6]
그러나 8.15 광복 이후 소련군이 진주하게 되고 로스케신탁통치가 시작되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색출 및 처벌이 시작되었는데 하필이면 자신이 치료를 거부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춘석에게[7] 딱 걸려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찍혀서 형무소로 끌려가게 되었고 거기서 애지중지하던 회중시계를 소련군 소년병에게 빼앗기게 된다.[8] 설상가상으로 형무소에서는 온갖 욕설과 구타에 시달렸다.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때마침 형무소에 이질 환자가 발생하였는데 이들을 치료할 만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없자 형무소장은 이인국을 불러 응급처치실에서 일할 것을 명령하면서 죽음을 앞둔 처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9]
응급처치실에서 이인국은 스텐코프라는 이름의 소련군 장교가 높으신 분이란 사실을 깨닫고 잘 보이기 위해 성심성의껏 환자들을 돌보고 러시아어 교본을 구해 불철주야 러시아어 공부에 매진한다.[10] 스텐코프 역시 그런 이인국에 호감을 보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친분 관계가 형성되고 말도 통하자 그의 턱에 있는 혹을 수술해주겠다고 제안하였으며[11]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쳐 스텐코프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12] 덕분에 이인국 박사는 아직까지도 불안불안하던 신변 안전을 완전히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친소 노선을 걷기로 결심하였으며 아들에게 러시아어를 배우라고 격려하였다. 그리고 아들을 소련에 유학보내라는 스텐코프의 추천으로[13] 소련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아들을 모스크바에 유학까지 보냈지만 전쟁통에 이인국 박사의 가족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소식이 두절.
회상이나 언급을 통해 보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청진기와 회중시계 하나만 들고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이 와중에 아내는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병사했다. 후처인 혜숙은 1945년 이미 이인국의 병원에서 일하던 인물로 20년 연하인데 어쩌다 보니 결혼하게 되었다.
남한에서도 뛰어난 의술 덕분에 미군의 환심을 사게 되고 그 지원으로 대형 병원의 원장으로 지내게 되자 다시 친미 노선으로 갈아탔다. 유학간 아들의 생사는 불명인 상태였고 대신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딸 역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딸의 이름은 나미. 본래는 나미코(奈美子)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이인국 박사는 친일 행적을 지우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나미로 바꾼 바 있다. 사실 친미파라서 자식을 유학보낸 것도 있고, 어제까지 언니였던 또래 나이의 간호사가 새엄마가 된다는데 문제가 있어서 불편한 가족 분위기 때문에 본인이 도피성으로 간 이유도 있다. 원래는 나미도 혜숙을 언니처럼 따랐고 아버지와 혜숙의 재혼에 찬성했다. 아버지의 외로움을 동정했기 때문도 있지만, 나미 자신도 아버지의 시중이 힘에 겨웠고 혜숙이 사실상 아버지의 뒤치다꺼리를 했기 때문. 그러나 막상 아버지와 혜숙이 재혼하고 나니 혜숙을 어려워했다고.
그 후 딸은 미국인 동양학 교수와 눈이 맞아 국제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미국인 교수는 나미가 영어영문학과를 택했을 때 개인지도를 해줬을 뿐만 아니라, 장학금을 얻게 해 준 것도 그고, 유학 절차의 재정 보증인을 알선해 준 것도 이 외국인 교수였다. 그러한 시류에 따라 나미가 미국 유학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은 오히려 아버지인 이인국 자신이었다. 게다가 이왕이면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던 그 교수의 솔직한 고백에, 자기의 학문을 위한 탁월한 견해라며 크게 찬성해주기까지 했었다. 돌이켜보면 죽 쒀서 개 줘버린 셈.
이인국은 미국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면서도 딸이 일명 코쟁이 미국인과의 흰둥이 혼혈을 낳는 것은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내선일체에 의해 '일본인과 결혼해 일본인처럼 살아간다' 는 관념에는 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던 그지만 아예 인종이 다른 미국인과의 국제 결혼은 좀처럼 내키지 않아했다. 하지만 늦둥이 아들이 대학 갈 때 유학 알선을 위해서는 코쟁이 사위도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와 같은 회상과 생각들을 하는 사이 이인국 박사는 브라운 씨의 관사에 도착한다. 이인국 박사는 중요 문화재인 고려청자를 브라운 씨에게 선물하고 브라운 씨는 만족해한다. 그리고 미국 국무성에서 통지가 왔다며 이인국 박사의 미국행이 성사되었음을 알려준다. 이인국 박사는 감사를 표현하며 며칠 뒤 휴전선 근방으로 사냥을 가자는 약속을 잡는다. 그리고 비행기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이인국 박사가 택시를 잡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마지막 말은 '''"나보다 더한 놈도 더 있는데 뭘, 나쯤이야".'''

4. 평가


그냥 보면 격동의 시대를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면서 인생의 승리자를 그리는 작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데 사실상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인국 박사는 딱 봐도 기회주의자의 전형이며 친일-친소-친미의 노선을 연속으로 갈아타며 애국심은 전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배신과 아부도 서슴치 않으며, 불행하게도 이런 인간말종이 의술하나는 뛰어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처세술과 능력을 활용해 인생의 승리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는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한국 사회를 반영한 것으로 실제 매국노의 대명사인 이완용도 이와 비슷한 전적을 갖고 있다. 사실 초반 안습과 중간단계인 친소만 빼면 많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 이 소설은 그런 친일파같은 매국노들의 삶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북한에서 아들을 모스크바 유학까지 보낼 정도였는데 6.25 전쟁월남하는 건 무슨 이유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소설에서는 6.25 사변 직후 월남하는 걸로 묘사되어 있다. 그냥 단순히 자본주의가 더 좋았고 북한에서의 행보는 살아남기 위한 포장이었다는 게 정설. 혹은 딱히 어떠한 주의가 없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에 붙는다'는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전쟁이 났을 때 굳이 남하한 건, 소설 초반에 공산주의 계열한테 찍힌 걸 봐서 전쟁 통에 벌어질 학살을 예견하고 몸을 피한 것으로 해석하면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이후 북한이 토사구팽식으로 박헌영, 김원봉 등이나 김일성의 동료들마저도 수상하다 싶으면 숙청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인국 역시 월남 안 했으면 진짜 죽었을지도. 생각해 보면 일제 때도 적극적으로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의술을 바탕으로 일본에 귀화하거나(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았겠지만), 차후 소련행을 택하는 것 또한 선택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굳이 한국에 남아 있었다. 자신의 피붙이를 보낼 망정.
그나마 인간적인 부분이 있다면 딸인 나미를 꽤나 애지중지 대한다는 것. 나미가 미국으로 떠난 후에는 새 아내와 늦둥이가 옆을 지키고 있음에도 여전히 나미의 빈 자리를 느끼며 허전해한다거나, 나미가 미국인 교수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분노하면서도 차마 대놓고 반대는 못하고 그냥 '충분히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라고 마지못해 허락하는 점,[14]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겸사겸사 딸을 만나러 미국행 절차를 밟는 것 보면 알 수 있다. 심지어 나미의 언니뻘인 혜숙의 육체에 자극을 느끼면서도 순간적으로 나미를 떠올리고는 죄책감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전처가 피난 중 수용소에서 병사한 것에는 하나뿐인 아들이 실종된 것도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북한 유학생이 서독으로 망명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혹시 아들이 아닌지 살펴보는 것을 보면 그 역시 나름대로 아들에 대한 죄책감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15]
제국대학 의대를 졸업했고 졸업 때 받은 제국대학 문장이 새겨진 시계를 매우 소중히 생각한다. 당시 일본 대학의 풍습으로 보아 졸업식 때 시계를 받았다는 말은 그가 수석 혹은 그에 준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청진기 하나만 들고 내려와서 부자가 될 정도인거 보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의사로서 실력은 최고에 가까운 듯.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병원에서 수술하지 못한 환자도 말끔하게 치료한 경험이 있다고 작중에서 회술하는 부분이 있다. 원래 의료계라는 업종이 실력에 따라 대우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환자가 대부분 일본인이였다는 것도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의술은 인술이라고는 하지만, 의술은 기술이기도 하며 기술은 그에 상응하는 댓가로 평가받기 마련이므로. 실제로 오사카 등지에서는 실력있는 한인의사들이 꽤 많은 편이기도 하다. 출신 학교가 경성제국대학인지 아니면 일본 본토에 있는 학교였는지는 확실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윤승운 화백이 한국 단편소설 만화로 그렸을 때 이 이인국이란 캐릭터가 굉장히 싫었는지 카멜레온으로 그려내며, 마지막에 지나가는 스님이 끼어들어 '저 속물' 이라고 욕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은 의사들은 그 당시 한국인 외과의사가 저렇게 수술 실력이 좋았을리가 없다며 비현실적이라는 감상을 남기기도 한다. 진짜 이 정도로 실력 좋은 외과의가 있었다면 친일이고 뭐고 반드시 잡아야 할 실력자다. 6·25 전쟁 때 미국 의사들은 조금만 총상을 입었어도 무조건 손발 절단 수술을 해버리는 한국 의사들에게 질겁했다.[16] 물론 백인제 박사나 장기려 박사[17]처럼 대단한 실력을 갖춘 이들도 어딘가에는 있었을 테지만...

5. 관련 문서



[1] 스텐코프가 자신의 혹을 무상으로 완벽하게 수술해주자 이인국을 극찬해 주며 부른 명칭. 표기가 와전된 데에는 작가의 반어적 표현 의도가 들어있다. 후술할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의술실력에서는 캡틴급일지도 몰라도 기회주의자인 이인국 박사는 '캡틴'이라는 칭호를 붙일 만한 인물이 아니다.[2] ISBN 978-89-320-1999-4[3] 1979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강북삼성병원 진료부원장으로 근무했다. 국내 대장암 분야의 권위자로 남자의 자격 2011년 2월 13일 방영된 "남자, 그리고 암" 특집에서도 출연한 적이 있다. 2020년 정년퇴임하였다.[4] 작중에서는 예전 호칭인 '간호원'으로 나온다.[5] 진찰실에 나오자마자 손가락 끝으로 창틀이나 탁자를 훑는데, 이때 손가락 끝에 먼지만 묻으면 불호령이 터진다고 한다. 그런 날에는 간호원은 종일 원장의 신경질에 부대껴야 한다.[6] 해방 후인 현재는 높으신 분들이나 재벌이 주요 고객이다.[7] 춘석은 해방 6개월 전쯤, 일제의 제국주의를 전복시키려 한 사상범으로서 감옥에 있다가 질병에 걸려 가석방되었을 때 이인국 박사의 병원을 방문한 인물이다.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상태였으나, 이인국 박사는 경제적 능력도 안 되고 사상범인 춘식의 입원을 거절했다.[8] 이 시계는 이인국이 제국대학을 졸업할 때 받은 수상품이며, 뒤쪽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자기 전에도 비상용 금고에 넣고 자는 등 이인국에는 인생의 반려와도 같은 물건. 후에 이 ''''''''''''시계''''''''''''는 스텐코프 소좌의 도움으로 돌려받게 된다.[9]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죽음의 위기를 면했기 때문에, 이인국은 의사가 자신의 천직(天職, 타고난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10] 러시아어 교본을 독학했는데, 그 책은 감방에 있던 학생이 나가면서 두고간 것이다. 그 감옥은 러시아어 교본, 공산당의 역사책(작중에는 '당사'라 칭함) 빼고 일절 독서가 금지되어 있었다. 이인국은 러시아어 교본을 작중 표현으로 마치 '생명의 열쇠'나 되는듯이 읽었다고.[11] 표현에 따르면 턱에 있는 혹이 오리알만 하다고(...). 실제로 상당한 콤플렉스였는지 이인국이 혹을 수술하려 하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хорошо, 하라쇼)를 연발했을 정도.[12] 서약서에는 "수술 실패시 총살"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목인 "꺼삐딴 리"는 수술이 성공한 후 스텐코프가 이인국을 칭찬하면서 그를 부른 호칭이다.[13] 스텐코프 본인의 추천은 아니었다. 애초 스텐코프는 계급이 소좌에 불과해 본인의 권한이 그렇게 막강하지는 않았기 때문. 대신 이 사람은 줄을 잘 섰는지 그의 라인에 있는 고위 장교의 추천을 받아 소련 유학을 결정지었다고 언급된다. 장성급 고관의 뒷배가 있는 모양.[14] 다만 이 장면은 이 미국인 교수가 백인, 즉 동양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인국의 인종차별적 시각이 섞였다고 할 수 있다. 예로 작중에서는 그 교수와 결혼하면 혼혈 흰둥이가 나오는 거냐며 혐오감을 느끼는 장면이 묘사된다.[15] 기사를 보면서 얘는 대체 뭐하는거길래 이런 축에도 끼질 못하냐.. 애비가 월남한 것이 알려졌으면 그쪽에도 무언의 압박이 갈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아들이 어떻게 될 지 본인도 심히 걱정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직계 가족이 월남했다면 북한으로 돌아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전후 북한에서는 참전자라도 월남자 가족을 가만히 냅두지 않았으며, 설령 포로로 잡혔다가 본인이 원해 북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국군 포로들과 똑같이 적대계층으로 분류해 변방으로 보내버렸다. 아들에게 남은 길은 진짜 운이 좋다면 신문기사처럼 서독 등 제 1세계 국가로 탈출한 뒤 대한민국으로 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운좋게 소련에 남거나 중앙아시아로 가는 것이 그나마 최선의 경우로 여겨진다.[16] 다만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잘나가던 인물들의 대다수가 친일파 였고 광복 이후 해당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이런 친일파들은 사형당하거나 도주하거나 징역형을 받아 엘리트 의사들이 사라져서도 있다[17] 장 박사는 백 박사의 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