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1. 개요
# 프랑스어 위키백과 문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겪은 처참한 꼴에 대한 문서이며, 일명 '남아공 쇼크'라고 부르는 내용을 다룬다. 프랑스 국내에서는 당시 프랑스 국대의 캠프가 위치했던 나이즈나에서 따와 '''나이즈나의 삽질'''이라고 불린다.'''"축구는 독불장군이 아니야. 팀워크야. 혼자서는 할 수 없어."'''[2]
- 영화 소림축구 中에서, 소림축구단의 감독 명봉.
2. 남아공 월드컵 이전
2.1. 21세기판 신의 손 사태의 재림
프랑스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우승,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사건이 있기는 했으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준우승을 일군 유럽의 강호 중의 강호였다. 그러나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는 세르비아에게 밀려 조 2위를 함으로써 플레이오프로 떨어졌고, 플레이오프 상대로 지명된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는 티에리 앙리의 핸드볼 파울로 겨우 1승 1무를 거두어 월드컵에 진출하는 초안습함을 보여준다.[3] 이 사건은 일명 ''''신의 손'''' 사건으로 불리며, 이로 인해 아일랜드를 꺾고 월드컵 본선에 오른 프랑스 대표팀과 앙리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재경기를 요구했으나 FIFA는 아일랜드를 인정할 경우 다른 나라들이 추가로 항소할 수 있으니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2.2. 천운의 조편성
그렇게 프랑스가 플레이오프를 거치게 되면서 톱시드를 놓친 관계로 1시드에 있는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 등과 엮여 죽음의 조가 탄생하는 게 아닌가 예측되었다. 그런데 천운이었는지 공교롭게도 개최국 자격으로 1시드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약체에 불과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은 조가 되었고, 멕시코와 우루과이까지 들어오자 프랑스의 반응은 그냥 축제 그 자체였다. 그냥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우루과이와 가볍게 비겨주고[4] 상대전적에서 훨씬 앞서는 멕시코, 개최국이라지만 톱시드 중 사실상 최약체인 남아공을 이기면 16강은 당연히 올라갈 수 있었다.[5] 이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개최국 자격으로 톱시드가 되어 미국, 폴란드와 한 조가 되어 실질적인 톱시드라면서 조별예선 통과는 기정사실이라며 설레발을 치던 당시 포르투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6]
2.3. 콩가루 조직력 대표팀
이렇게 행운의 조편성으로 기대치는 한껏 올라간 상황이었지만, 프랑스 대표팀은 월드컵을 앞둔 친선경기에서 아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조차도 진출하지 못한 '''중국에게 0:1로 패배한다.''' 패배도 패배지만 경기 내용도 심히 막장스러웠는데, 이 경기를 계기로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은 위험 수준이었다. 다비드 트레제게[7] , 세바스티앵 프레이는 대놓고 빠지기로 했고 아스날 FC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사미르 나스리는 뽑히지도 않았는데, 윌리암 갈라스와 프랑크 리베리와의 불화 탓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던 요앙 구르퀴프, 시드니 고부, 리베리, 마티유 발부에나, 아부 디아비, 니콜라 아넬카[8] 등은 서로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했다. 대표팀에 뽑히지 않은 나스리, 카림 벤제마, 아템 벤 아르파의 경우 실력보다는 불화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 안 뽑힌 거라는 말도 있었다. 셋은 청소년 대표 동기인데, 나스리와 벤제마는 프랑스 리그 시절 라이벌 팀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올랭피크 리옹 출신임에도 서로 친하다. 반대로 벤 아르파는 나스리랑도 안 친하고, 벤제마와와는 리옹 시절 동료였음에도 사이가 나빴다. 그 탓인지 리옹은 벤 아르파를 마르세유로 이적시켰고, 청소년 대표팀 시절에는 디아비와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기도 했다.
특히 구르퀴프가 프랑스 국대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구르퀴프가 좀 튀는 성격이라[9] 아넬카 등을 비판하였다가 역으로 본인이 비판을 받게 되고 이에 사과까지 했지만, 아넬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따를 주도했으며 여기에 리베리, 발부에나, 갈라스 등이 합세하여 구르퀴프를 비난하고 그러다 보니 좋든 싫든 옆에 있던 나머지 선수들도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 해외파 선수들의 국내파 선수들(특히 FC 지롱댕 드 보르도) 무시, 여기에 도메네크의 총애까지 겹쳐진 탓에 구르퀴프는 소속팀 보르도의 라이벌인 리옹 소속의 제레미 툴랄랑하고만 같이 말을 트고 훈련도 했다고 한다.
상황이 얼마나 개막장이었느냐면 이 사태를 말려야 할 '''주장 파트리스 에브라'''조차도 구르퀴프랑 말하려면 툴랄랑하고 하라고 하였을 정도. 왜 툴랄랑만이 구르퀴프를 왕따시키는 것에 동참을 안 할 수 있었느냐면 그가 전직 '''복싱선수'''인지라 아무리 성격이 안 좋은 아넬카라도 어떻게 할 자신이 없어서였다고 한다. 게다가 원래 구르퀴프와 친했기도 했으니. 어쨌든 구르퀴프가 라이벌 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툴랄랑이 이런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준 덕분에 툴랄랑의 주가만 상승했다.[10]
그런데 이런 문제점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최고의 리더 '''지네딘 지단'''이 있었다는 것.[11] 2006년도에도 프랑스는 국내파와 해외파의 갈등이 강했지만, 그나마 카리스마가 있는 지단이 있었기에 그를 중심으로 뭉쳐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단이 없어진 유로 2008 때부터 영건들인 벤제마, 나스리와 고참인 클로드 마켈렐레, 갈라스 등의 갈등이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월드컵 시점에서는 손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후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 후 아넬카는 월드컵 기간 도중에 팀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 뉴스에 따르면 다른 선수들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패스도 하지 않으며[12] 도메네크 감독에게도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아넬카는 대표팀 은퇴를 하게 되고 이 사건 이후 아넬카는 18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어차피 본인은 이 사건에 관계 없이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위의 사태에 관하여 에브라는 좀 사실이기는 한데, 이 사실이 누설된 것을 보아서 팀 내에 프랑스가 망하기를 원하는 '''배신자'''가 있다고 하였다. 배신자 설은 리베리 등도 동의한 것을 보면 사실인 것 같기는 한데, 덕분에 누군가가 배신자일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서로 불신감만 커지고...
이후에도 개막장스러운 상황은 계속되어 도메네크 감독과 코치간의 불화로 코치가 훈련장을 떠나고 선수들은 아넬카의 귀국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훈련을 거부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대표팀 단장은 사임했으며, 내분 수습을 위해 '''체육부 장관'''이 직접 도메네크 감독과 축구 협회장, 주장인 에브라를 만날 계획도 밝혔다. 그리고 체육부 장관에게 이 명령을 내린 사람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애들 싸움에 어른들이 끼어든 것 같은 인상까지 주는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사실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후술.
지브릴 시세 등 몇몇 선수들은 훈련 거부에 동참한 것을 후회하면서[13] 훈련 거부를 주도한 선수들(에브라, 리베리, 갈라스 등)과 도메네크 감독을 화해시키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에브라, 리베리, 갈라스, 에릭 아비달은 경기 출전조차 거부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이쯤 되면 거의 개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3. 남아공 월드컵
3.1. 조별리그 1차전 우루과이 전 - 0 : 0 무
3.2.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 전 - 0 : 2 패
3.3. 조별리그 3차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 - 1 : 2 패
3.4. A조 최종 순위
- 우루과이 A조 1위로 16강 진출.
- 멕시코 A조 2위로 16강 진출.
3.5. 세네갈 쇼크의 재림
프랑스는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1명이 퇴장당한 우루과이를 상대로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우루과이에서 한 명이 퇴장당했기에 망정이지 그 전에는 탄탄한 우루과이에게 한참 밀렸다. 우루과이도 강팀이라고는 하나 오히려 한 명이 퇴장당한 팀을 상대로 무승부를 한 프랑스는 이와 같이 막장스러운 경기력으로 프랑스가 독주할 거라는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A조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이러다가는 콩가루 같은 2006년의 토고 국대가 재현될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14]
2차전 멕시코 전은 구르퀴프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고 리베리가 공미를 맡았지만, 우루과이 전보다도 못한 한심한 경기력으로 0:2으로 패배하면서 제대로 망해버렸다.[15]
마지막 3차전 상대는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랑스는 남아공을 100:0으로 이겨도 만일 멕시코와 우루과이가 무승부라도 거두면 16강에 진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16] 그 실낱같은 가능성마저도 승리 이후에나 기대해 볼 만한 것이었지만, 정작 프랑스는 승리할 가능성 자체가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6월 22일 남아공과의 마지막 3차전 경기가 벌어졌고, 선발 출장한 구르퀴프가 전반 24분 만에 퇴장당해 이어 전반에만 2골을 먹히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후반 24분에 플로랑 말루다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그게 전부였다.[17]
결국 프랑스는 모래알 조직력으로 A조 최약체임을 인증하면서 조기에 짐을 싸는 걸 확정지었고, 남아공은 비록 멕시코에게 골득실에서 밀려서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비운의 월드컵 개최국이 되기는 했지만 프랑스에게 1승을 거두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실제로 남아공 국내의 여론에서도 '''"그래도 잘 싸웠다"'''처럼 좋은 평가를 받았다.[18]
그야말로 '''남아공 쇼크'''. 결국 프랑스는 1무 2패, 1득점 4실점이라는 악몽같은 성적표를 쥔 채 일찌감치 파리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프랑스 축구 연맹은 "너네들은 비즈니스 탈 자격도 없다" 라며 광탈의 책임을 물어 귀국행 비행기 좌석들을 그 악명 높은 '''에어 프랑스의 B777 3-4-3 배열인 이코노미'''로 끊었다.
이로써 2010년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모여있어도 팀워크가 맞지 않으면, 결국은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과 축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닌 11명이 같이 하는 것이다."''' 라는 명언을 전 세계에 증명한 꼴이 되어버렸다.
4. 프랑스는 어떻게 다시 약팀이 되었나?
4.1. 희대의 졸장 레몽 도메네크
'''우선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무능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도메네크 감독은 UEFA 유로 2008 당시의 졸전으로 경질 의견이 매우 높았는데, 그나마 만만한 상대로 꼽히던 루마니아와 무득점으로 비기고 네덜란드한테도 1:4로 대패하면서 1무 1패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전 대패와 루마니아 전 무승부가 된 이탈리아와 2010년 동아시안컵의 한일전 마냥 경질 더비가 성사되어 결국 프랑스가 지고 광탈했으나, 어찌저찌 2010년 월드컵까지 계속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 프랑스가 조별예선도 통과하지 못하는 부진을 보인 유로 2008 당시에도 청혼 드립이니 별자리 드립이니 하면서 각종 별의별 어록을 남기며 신뢰를 잃어버리고 금방이라도 경질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 덕분에 도메네크 감독의 생명은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19] 즉 월드컵에 임하기 전부터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였다.
도메네크 감독이 범한 최악의 실책은 바로 선수단 장악 실패이다. 사실 도메네크 감독과 프랑스 선수들의 반목과 갈등은 그 역사가 꽤나 긴데, 이미 2004년에 감독에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로베르 피레스와 갈등을 빚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도메네크 감독과 지단의 불화, 선수들 간의 갈등은 프랑스 언론의 주요 이슈였다. 그저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 덕분에 묻힌 것일 뿐. 이걸 보면 2010년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도 전혀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선수단 구성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였다. AS 로마의 더블 러너업을 이끈 필립 멕세[20] 도 없었고, 세리에 A 3대 골키퍼인 프레이도 일치감치 빠져버렸다. 물론 저 둘은 유로 2008 때 아주 안습한 경기력을 보이기는 했지만,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펼쳤던 졸전을 볼 때 과연 멕세와 프레이가 문제였을까? 그나마 빛났던 트레제게도 끊임없는 갈등 끝에 결국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나름 구심점이 될수 있었던 베테랑 파트리크 비에라는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무시했다. 아스날 FC에서 나름대로 멋진 활약을 보여준 나스리는 대표팀 내의 내분 탓에 선발되지도 못했다.
이런 도메네크 감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 수준이라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 선발 시 선수의 별자리를 고려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도메네크 감독은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렇다 보니 2006년 월드컵 때도 컨디션이 좋았던 피레스와 루도빅 지울리, 요앙 미쿠를 뽑지 않은 이유가 단지 별자리가 좋지 않아서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그 내용은 언론에서 약간 과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들과 불화가 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도메네크 본인은 극구 부인하며 루머에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프랑스 언론들 또한 도메네크 감독에게 우호적이지 않아서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럴 바에는 지단을 다시 불러오는 게 낫다'''며 비판에 여념이 없다. 근데 지단의 나이도 곧 40대에 접어들 시점이라는 게 문제.
4.2. 극심한 내분
두 번째 이유로는 프랑스 축구 연맹과 전직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 간의 내분을 들 수 있다. 당시 프랑스 축구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의 선수들과 프랑스 축구 연맹의 내분이 극심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한 예전 대표팀 선수들은 끊임없이 도메네크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하며 이래저래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려 했고, 프랑스 축구 연맹은 여기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 유로 2008에서의 광탈에도 불구하고 도메네크 감독을 경질하지 않는 강수를 취한 것. 즉 권력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팀도 장악하지 못하고 성적도 나지 않는 감독을 월드컵이라는 중요한 대회에서 계속 기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지단과 함께 프랑스의 우승을 이끈 로랑 블랑을 선임해 놓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도메네크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지도 않았다. 이미 차기 감독이 정해져 있으니 안 그래도 신뢰받지 못하는 도메네크 감독은 레임덕 현상에 직면한 것.
여기에 전직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 특히 프랑스의 축구 영웅인 지단이 이런 내분을 조장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지단이 선수들의 에이전트를 통해 선수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도메네크 감독에게 끊임없이 반기를 들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주 내용. 지단의 영향을 받은 에이전트들과 선수들이 도메네크 감독에게 전술 변경을 요구했고 도메네크 감독은 이를 수락했지만, 나중에 이들의 배후에 지단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화를 내며 전술 변경을 없던 일로 해 버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에도 지단이 팀 전술 문제까지 개입하는 등 도메네크 감독을 '''반쪽 감독'''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의혹이 있다. 이렇게 지단에게 휘둘린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도메네크 감독이 이번에도 또다시 지단이 개입하려 하자 화를 냈다는 것. 물론 지단은 이러한 언론 보도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지만, 한 나라의 축구 레전드를 둘러싸고 이런 음모론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상황이 심각했다는 증거이다.[21]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명색이 국가대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팀워크는 안중에도 없이 개인적인 감정만을 앞세워서 그저 팀을 해치는 행동만 해댔던 프랑스 선수들의 책임 또한 결코 작을 수는 없을 것이다.
5. 각계의 반응과 후폭풍
마지막 3차전을 남겨 놓기 전까지는 아직 프랑스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프랑스의 탈락은 전 세계적으로 이미 여러 언론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툴랄랑은 "틀렸어 이젠 꿈도 희망도 없어." 라며 선언까지 하였다. 이게 툴랄랑 혼자만의 생각이 절대 아니어서 지네딘 지단과 마르셀 드사이 등 프랑스 축구계의 이름 있는 인사들도 모두 '''"이번 프랑스는 꿈도 희망도 없다."''' 라는 의견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특히 지단의 경우 '''"도메네크는 감독도 아니다"''' 라고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등 매우 격하게 도메네크 감독과 프랑스 대표팀을 비난했다.
프랑스 대표팀은 선수단 전원이 전술했던 대로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귀국해야 했는데, 1등석만 타던 그들에게는 크나큰 굴욕일 수밖에 없었다.[22] 프랑스 때문에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 아일랜드는 이에 '''사필귀정'''이라며 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프랑스 대표팀의 막장 행각은 프랑스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당시 프랑스의 야당이었던 사회당 등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인주의적인 마인드가 사회에 펴져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사르코지 대통령을 마구 까댔다. 프랑스 좌파들은 사르코지가 통합을 못했다고 비판하는 중이다. 백만장자들이라면서 깐 건 덤. 좌파 세력뿐만 아니라 극우 세력들도 포용적 이민정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응부터 순혈이 없어서 졌다는 발언을 늘어놓았다.[23] 결국 좌우 모두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선수들을 까대는 국가적 병림픽이 벌어졌다.
티에리 앙리는 귀국하자마자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사르코지 대통령을 면담하려 엘리제궁으로 향했다. 조별리그 탈락 때문에 뒤숭숭해진 프랑스 사회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수들과 대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그리고 도메네크 감독과 장 피에르 에스칼레트 프랑스 축구 연맹 회장은 프랑스 국회의 청문회에 불려갔다. 세계일보. 축구 하나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한 이유는 프랑스가 단순히 전 대회 준우승팀이라거나 프랑스 사람들이 축구에 미쳐 산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프랑스 축구 대표팀은 다민족 다문화를 훌륭하게 통합한 예로 프랑스 사회의 관용과 박애, 자유, 통합의 상징이었다. 이민자 2세 출신인 지단이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우승과 준우승을 하면서 프랑스 축구 대표팀은 일개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 프랑스 통합의 심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프랑스적 가치를 대변하는 살아있는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그런 대표팀 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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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보니 패망의 원흉인 도메네크와 사임을 하기로 한 에스칼레트 축구 연맹 회장은 나란히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분열원인과 참패 원인을 소명하게 된다. 그리고 국회에서 감독은 언론 탓을, 협회장은 선수 탓을 하면서 버티다가 국회의원들에게 신나게 까였다. FIFA는 이에 대해 정치계가 축구에 개입하면 안 된다며 청문회를 연 것을 비판했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내부 사정이니 끼어들지 말라"''' 라며 FIFA의 요구를 씹었다.
지네딘 지단, 로랑 블랑, 디디에 데샹 등과 같이 1998년에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릴리앙 튀랑은 감독의 책임보다는 선수들의 책임이 강하다고 하면서 모두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고 특히 주장이면서 도리어 내분에 열심히 참여한 파트리스 에브라는 국대에 발도 못 붙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벌을 주도한 에브라, 리베리, 아넬카 등의 선수들도 청문회에 소환되어 에브라는 5경기, 리베리는 3경기, 아넬카는 18경기 등의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정작 후임자는 징계가 끝나고 2경기 만에 복귀시켰지만...
이 최악의 사태는 FIFA 랭킹에까지도 그대로 악영향을 끼쳤다. 2010년 7월 FIFA 랭킹에서 프랑스는 동년 5월과 비교해[24] 무려 154점이나 깎이며 9위에서 21위로 12계단이나 미끄러졌다. 177점이 깎이며 19위에서 40위로 미끄러진 카메룬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항상 거의 최상위권을 지켜온 프랑스에 이는 매우 큰 치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런 개막장 사태 후 예정대로 프랑스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로랑 블랑은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에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던 선수 전원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 경제. 그리고 그 경기에서는 벤 아르파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노르웨이의 에릭 후세클렙이 연속골을 작렬하여 1:2로 패배했다. 그리고 역시 막장 사태에 휘말린 선수들이 빠진 상태에서 UEFA 유로 2012 지역 예선을 치렀는데, 첫 경기인 벨라루스 전에서 0:1로 또 패했다. 새로 부임한 로랑 블랑 감독의 한 마디는 '도대체 골을 넣는 방법을 아는 선수가 있기는 한 건가...' 하지만 10월 중순 이후에는 3연승을 거두면서 조 1위로 등극하게 된다. 그러나 블랑 감독도 역시 이들 없이는 팀 운영이 힘들다고 느꼈는지 출장 정지 기간이 끝나자 마자 1-2경기만에 징계를 받은 선수들을 칼같이 소집하였다. 골닷컴. 그리고 프랑스는 유로 2012 본선에 진출해 8강까지 오르며 월드컵에서의 추태를 어느 정도 만회하였다.
이후 프랑스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때에도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8강까지 오르며 지난 대회의 한심했던 모습을 어느 정도 만회했고, UEFA 유로 2016 준우승을 거쳐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2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이 당시의 망신을 완벽히 떨쳐냈다. 관건은 21세기 들어서 유럽 대륙 소속 우승팀이 다음 대회에서 죽을 쑤는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로, 다음 대회에서도 세네갈 쇼크를 되풀이할지 아닐지의 여부다.
6. 기타
- 워렌 버핏은 프랑스가 16강에 진출할 경우, 3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 나이지리아도 조별리그에서 짐을 싼 뒤[25] 프랑스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심지어 이쪽은 대통령이 직접 "이제 니네 못 믿겠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고친다!" 라면서 나이지리아 축구 연맹 물갈이를 시도했는데, 이에 FIFA는 처음에는 프랑스를 예로 들면서 경고 조치만 내리다가 나중에 정부 인사가 축구 연맹 관련 인사에 들어갈 조짐을 느끼고는 가장 강력한 처분인 나이지리아 축구팀(국대/클럽 전부)의 국제대회 출장 금지 처분을 내렸다. # 즉 축구 연맹에 정부 인사가 들어감으로서 축구 연맹이 정부의 힘에 휘둘리는 잠재적인 가능성 때문에 이런 조치가 나왔다는 이야기인데, 이 통보를 들은 나이지리아 정부가 "우리가 잘못했으니 좀 봐주세요. 엉엉" 하면서 자비를 빌면서 축구 연맹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자 그제서야 제한을 풀었다. 이를 국력 차이에서 기인한 걸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애초에 나이지리아는 대놓고 정부에서 연맹의 일에 관여하려다가 그런 거고 프랑스의 경우 선수단 청문회를 몇 번 하기는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직접 축구 연맹의 일에 개입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징계를 내릴 이유가 없다. 애초부터 프랑스 축구 연맹은 대통령 한 명이 혼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단체도 아닌 데다가 정치인들이 관여할 수 있고 독재가 가능한 구조나 시스템도 없다.
- 4년 뒤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보여준 카메룬의 내부 분열과 멘탈 문제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내부의 상처가 얼마나 곪았는지는 조별예선의 추태만 봐도 알 수 있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2014년 6월 19일까지도 얼마나 심한지 진단조차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조별예선 마지막 브라질 전에서는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경기마저도 결국 대패하며 월드컵 참가국 중 꼴지라는 한심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 한국도 2014 월드컵을 준비하던 시기에 기성용과 윤석영의 SNS 논란과 이전부터 떠돌고 있던 축구 대표팀 내의 해외파, 국내파 간의 갈등 논란이 거세지면서 당시 프랑스가 겪은 일들이 조금씩 재조명되었다. 대부분 이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서 국가대표팀이 내우외환을 극복하기를 바랐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다르게 반면교사는 커녕 고쳐지는 모습은 전혀 없었고, 결국은 더더욱 나쁜 결과만을 낳았다. 이후 울리 슈틸리케가 개판이던 상황을 어느 정도 수습하고 나름 정신을 차리면서 아시아의 호랑이의 위엄을 다시 살리는 듯 했으나, 역시 정신을 못 차리고 병크를 저지르다가 다시 한국 축구를 4년 전보다 더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어 버렸다. 이후 대표팀과 관련해서는 예전에 비하면 잡음이 없었지만, 조별리그 난이도가 확 뛰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축 선수들의 대규모 부상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갑자기 심하게 터져서 이번에도 결과는 4년 전이랑 별 다를바 없어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결과적으로는 2010년의 남아공과 비슷한 긍정적인 결과를 불렀다.
7.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야쿠부 아이예그베니의 '''니가가라 16강슛'''은 탑10, 6위에 들였고, 탑3는 뒤에서부터 결승전, 수아레스의 신의 손, 램파드의 골라인 오심.[2] 소림축구단 팀원들이 주인공 씽씽의 뛰어난 각력으로 초강력 슛과 리프팅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대단하다, 혼자서 나가도 우승하겠는데?" 라고 말하자 명봉 감독이 팀원들에게 했던 대답이다.[3] 사실 그 전에도 UEFA 유로 2008에서 처참한 성적을 낸 끝에 광탈하면서 뭔가 불안하기는 했다.[4] 우루과이가 사실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까지 2번이나 월드컵 우승을 한 국가기는 하지만, 이것도 엄청 먼 과거의 얘기였고 이후로는 남미에서도 중위권 수준의 팀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게다가 2002년 대회는 오랜만에 진출하기는 하였지만 프랑스와 함께 아쉽게 동반 광탈하였고, 2006년에는 대륙 플레이오프에서 '''호주'''에게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하기까지 했다 보니 2010년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우승 후보에는 아예 못 미치는 팀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2002년에 프랑스가 유일하게 지지 않았던 상대가 우루과이였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우루과이도 승점자판기 정도로 보일 만했던 것.[5] 반대로 남아공은 '''톱시드인데도 왜 받아먹지를 못하니''' 급의 불운을 조편성에서부터 맛본 꼴이 되었다.[6] 다만 포르투갈은 한국, 미국과 마지막 3차전까지 경합했고, 그 결과는 한국 7점(1위) - 미국 4점(2위) - 포르투갈 3점(3위). 다만 프랑스는 1무 2패로 승점 1점밖에 못 얻어 더 안습하게 탈락했다.[7] 트레제게는 이미 유로 2008 때부터 레몽 도메네크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8] 아넬카는 트레제게 다음으로 앙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앙리 또한 아넬카의 이번 사태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했다. 참고로 아넬카는 그가 뛰었던 거의 모든 소속팀에서 실력이라면 몰라도 성격 면에서는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9] 구르퀴프의 성격에 대해서는 너무 곱고 바르게 자라서 자기 주장이 강하지 못하다는 것이 주된 평가인데, 물론 프랑스 대표팀 내에서라면 이것도 충분히 튀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0]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후 구르퀴프는 리옹으로 이적하여 둘은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다.[11] 지단도 마르코 마테라치를 상대로 '''희대의 박치기를 시전할 만큼''' 한 성깔 한다. 압도적인 실력과 경력으로 팀을 장악했던 만큼 팀을 결승까지 멱살캐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현재 기준의 한국 국대에게 대입을 해보면, 해외파와 국내파 간의 갈등이 벌어졌을 때 박지성 급의 고참이 국대로 돌아와서 팀을 휘어잡는 셈.[12] 아넬카는 실제로 다른 동료들, 특히 구르퀴프에게는 패스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같이 왕따를 하던 리베리는 백패스라도 했고, 구르퀴프도 리베리에게 프리킥으로 패스해주는 모습을 보였다.[13] 구르퀴프, 위고 요리스, 바카리 사냐 등은 즉석에서 반대하였지만 오히려 까일 뻔하고 데꿀멍했다고 한다.[14] 당장 프랑스 본인들이 직전 대회에서 이겼던 토고조차도 경기 중에 서로를 불신하여 패스를 주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15] 특히 오프사이드 트랩이 삐끗해 치차리토를 자기네 진영에서 혼자 놀게 하다가 골까지 허용한 장면은 정말 가관이었다.[16] 멕시코와 우루과이가 비기면 우루과이가 승점 5점에 골득실 +3, 멕시코가 승점 5점에 골득실 +2로 조별리그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둘이 1, 2위를 가져가 버리니 끽해봐야 승점 4점인 프랑스는 가능성을 따지지도 못하는 것.[17] 골이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패스 플레이는 상당히 좋았다. 남아공의 수비진들이 아무리 집중해도 따라가지를 못했을 정도.[18] 상술했듯이 남아공 입장에서는 개최국임에도 자기네들보다 강한 전력의 팀만 걸린, 그야말로 총체적 불운인 상황이었지만 프랑스 팀의 삽질 덕에 결과적으로는 프랑스가 걸린 게 오히려 행운이 되고 만 것이다.[19] 사실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 때부터 무승부를 많이 하는 등 엄청 고전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본선 진출조차도 지단과 같은 베테랑을 다시 불러서 가능했던 것. 그리고 그렇게 준우승을 거두고 돌아온 뒤 프랑스 대표팀 환영식에서 프랑스 국민들이 결승전 승부차기를 실축했던 트레제게를 격려하며 사회적으로도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흐름 속에 도메네크 감독의 실책을 흐지부지 넘긴 것이 프랑스 축구 연맹의 엄청난 실수였다.[20] 다만 멕세는 그 시즌에 폼이 급속히 떨어져 니콜라스 부르디소한테 주전 자리를 밀릴 정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물론 독일 월드컵 당시에는 멕세 대신 3B의 일원 중 한 명인 장 알랭 붐송을 뽑은 걸 보면 리그를 씹어먹었어도 안 뽑았겠지만.[21] 이런 음모론은 과거 UEFA 유로 2000 당시 최악이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있었다. 로타어 마테우스를 둘러싼 내용이었는데, 한쪽은 선수들이 만으로 39세인 마테우스가 아직도 대표라며 불만을 품었다는 내용, 다른 한쪽은 에리히 리베크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불화로 선수들이 단체로 마테우스에게 "차라리 당신이 감독을 해달라." 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다.[22] 이것에 비하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쇼크 직후 한국 대표팀이 비난받은 것은 장난이었다. 헤엄쳐 오라는 비난은 있었을지언정 진짜 비즈니스석을 박탈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23] 극우파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장마리 르펜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에도 프랑스 대표팀에 흑인이 너무 많다느니,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이 국가를 부를 줄 모른다느니 같은 인종차별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24] 2010년 6월은 월드컵 본선 기간이라 FIFA 랭킹 업데이트가 없었다.[25] 나이지리아도 프랑스처럼 1무 2패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나이지리아 역시 프랑스처럼 조 편성은 아르헨티나를 빼면 해 볼만한 조였지만 첫 경기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털리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유럽에서도 약체여서 최고의 먹잇감이나 다를 게 없었던, 그것도 전에 한국에게 2:0으로 털린 그리스를 상대로 패배를 기록해서 탈락 위기에 처했으며, 세 번째 경기에서는 한국을 상대로 2:2 무승부를 거둔 채로 승점을 1점만 획득하면서 탈락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