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 도메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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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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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출신인 도메네크는 1969년 올림피크 리옹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7년 동안 측면 수비수로 활약해 1977년 RC 스트라스부르에서 1981년까지 뛴다. 이후 PSG를 거쳐 1984년 지롱댕 보르도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감독 경력
3.1.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프랑스 축구협회에서 장기적으로 육성한 전술가'''로 1993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넘게 프랑스 21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맡아왔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2006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자, 은퇴했던 황금세대 멤버인 지네딘 지단과 클로드 마켈렐레, 튀랑을 다시 국가대표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국대를 재정비한 결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커리어 하이를 찍는다. 지단의 영향으로 준우승을 한 것이라는게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론상으로 이상적인 조합이라고 여겨졌지만 막상 실제 경기에 나오면 영 별로였던 비에이라 - 마켈렐레의 중원 라인을 완성시킨 성과는 나름 인정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지단이 다시 은퇴하고 난 첫 메이저 대회인 유로 2008에서는 역시 졸전을 벌이며 1무 2패의 치욕적인 탈락을 경험했다. 그나마 만만한 상대로 꼽히던 루마니아와 무득점으로 비기고, 네덜란드한테도 1-4로 아예 떡실신을 당해 버리면서 1무 1패.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전 대패와 루마니아전 무승부가 된 이탈리아 전에선 프랑스가 지고 광탈했다. 게다가 경기 종료 후 팀이 탈락했음에도 후술할 연인 에스텔 드니에게 고백을 하는 인터뷰를 하며 도메네크를 경질시키자는 여론이 거세졌지만 어찌저찌 2010 월드컵까지 계속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는 세르비아에 밀려 2위를 함으로써 플레이오프로 떨어지고,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전에서 티에리 앙리의 핸드볼 파울로 겨우 1승 1무를 거두어 진출한다.
일명 '''신의 손''' 사건으로 인해 아일랜드를 꺾고 월드컵 본선에 오른 프랑스 대표팀과 티에리 앙리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재경기를 요구했으나, FIFA는 아일랜드를 인정할 경우 다른 나라들이 추가로 항소할 수 있으니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1]
플레이오프를 거치게 되면서 톱시드를 놓친 관계로 1순위에 있는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 등과 엮여 죽음의 조가 탄생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천운이 있었는지 추첨 결과 남아공, 멕시코, 우루과이와 한 조가 됐다. 프랑스의 반응은 이미 16강. 그냥 징크스의 상대인 우루과이와 가볍게 비겨주고[2] 상대 전적에서 몹시 앞서는 멕시코, 홈 팀이라지만 1시드 중 사실상 최약체인 남아공을 이기면 16강은 당연히 올라갈 수 있었다.[3]
이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탑시드인 조에 편성되고 미국, 폴란드와 한조를 먹어 실질적인 탑시드라면서 조별예선 통과는 기정사실이라며 설레발을 치던 당시 포르투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4]
행운의 조 편성으로 기대치가 한껏 올라간 상황이었지만, 프랑스 대표팀은 월드컵을 앞둔 친선경기에서 아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조차도 진출하지 못한 '''중국에 0:1로 패배한다.''' 패배도 패배지만, 경기 내용도 심히 절망적이었는데, 이 경기를 계기로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뭔가 프랑스가 혹시 광탈하지 않을까 예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후술할 불화와 팀 내분으로 삐걱거린 프랑스는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1명이 퇴장당한 우루과이를 상대로 0:0 무승부를 이룬다.[5] 우루과이도 강팀이라고는 하나 오히려 한명 퇴장당한 팀을 상대로 무재배를 켠 프랑스는 이와 같이 막장스러운 경기력으로 프랑스가 독주할 거라는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A조를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이러다간 콩가루 같은 06년 도의 토고 국대가 재현될 것 같다는 평을 받았는데...[6]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차전 멕시코전은 리베리, 아넬카 등의 염원(?)대로 구르퀴프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고 리베리가 공미를 맡았지만, 우루과이전보다도 못한 한심한 경기력으로 0-2으로 패배하면서 제대로 망했어요가 되어 버렸다.[7]
마지막 3차전에서 프랑스는 남아공을 100-0으로 이겨도 만일 멕시코와 우루과이가 무재배라도 하면 16강에 진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8] 그 실낱같은 가능성마저도 승리 이후에나 기대해볼만 것이었지만, 정작 프랑스는 '''승리할 가능성 자체가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6월 22일, 남아공과의 마지막 3차전 경기가 벌어졌고, 선발출장한 구르퀴프가 전반 24분 만에 퇴장당해 이어 전반에만 2골을 먹히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후반 24분에 플로랑 말루다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그게 전부였다.[9]
결국 도메네크의 프랑스는 모래알 조직력으로 A조 최약체임을 인증하면서 조기에 짐 싸는 걸 확정지었고, 남아공은 비록 멕시코에 골득실에서 밀려서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비운의 월드컵 개최국이 되긴 했지만, 프랑스에게 1승을 거두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실제로, 남아공 국내의 여론에서도 '''"그래도 잘 싸웠다"'''처럼 좋은 평가를 받았다.[10]
그야말로 '''남아공 쇼크'''. 결국 프랑스 대표팀은 1무 2패, 1득점 4실점이란 악몽같은 성적표를 쥔 채 일찌감치 파리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프랑스 축구 협회는 '''당신들은 비즈니스 탈 자격도 없다며 '''광탈의 책임을 물어 귀국행 '''비행기 좌석들을 그 악명높은 에어 프랑스의 B777 3-4-3 배열인 이코노미로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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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광탈의 원흉인 도메네크와 사임을 하기로 한 에스칼레트 프랑스 축구 협회 회장은 나란히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대표팀의 분열 원인과 참패 원인을 소명하게 된다. 그리고 국회에서 감독은 언론 탓, 협회장은 선수 탓 하면서 버티다가 국회의원들에게 신나게 까였다. 안습. FIFA는 '''"정치계가 축구에 개입하면 안된다"'''라며 청문회를 연 것을 비판했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내부 사정이니 끼어들지 말라"'''며 FIFA의 요구를 씹었다.
이 최악의 사태는 FIFA 랭킹에까지도 그대로 악영향을 끼쳤다. 2010년 7월 FIFA 랭킹에서 프랑스는 동년 5월과 비교해[11] 무려 154점이나 깎이며 9위에서 21위로 12계단이나 미끄러졌다. 177점이 깎이며 19위에서 40위로 미끄러진 카메룬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항상 거의 최상위권을 지켜온 프랑스에 이는 매우 큰 치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결국 2010 월드컵에서 그 동안 쌓여왔던 프랑스 대표팀들의 문제들이 몽땅 폭발하면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채 남아공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 감독을 사퇴한다. 그 동안의 장대한 기행 및 삽질을 보면 앞으로 다시 대표팀을 맡게 될 일은 없을 듯.
3.1.1. 도메네크의 프랑스는 왜 실패했나?
우선 실패의 원인으로 도메네크의 무능이 컸다. 유로 2008에서 보인 졸전과 기행으로 프랑스 축구 팬들의 경질 여론이 높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 덕분에 도메네크 감독의 생명은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12] 즉, 월드컵에 임하기 전부터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였다는 얘기.
무엇보다도 도메네크 감독이 범한 최악의 실책은 바로 선수단 장악 실패였다. 사실, 도메네크 감독과 프랑스 선수들의 반목과 갈등은 그 역사가 꽤나 길다. 이미 2004년에 감독에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아스날의 무패우승을 이끄는 등 전성기였던 로베르 피레스를 죽어도 쓰지 않으며 갈등을 빚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감독과 지단의 불화, 선수들 간의 갈등은 프랑스 언론의 주요 이슈였다. 그저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 덕분에 묻힌 것일 뿐. 2010년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도 전혀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선수단 구성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였다. AS 로마의 더블 러너업을 이끈 멕세[13] 도 없고, 세리에 3대 골키퍼 프레이도 일치감치 빠져버리고... 물론 저 둘은 유로 2008 때 아주 안습한 경기력을 보이긴 했지만,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펼치는 졸전을 볼 때 과연 멕세와 프레이가 문제였을까? 그나마 빛났던 다비드 트레제게도 끊임없는 갈등 끝에 결국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나름 구심점이 될수 있었던 베테랑 파트리크 비에이라는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무시했다. 아스날 FC에서 나름대로 멋진 활약을 보여준 사미르 나스리는 대표팀 내의 내분 탓에 선발되지도 못했다.
이런 도메네크 감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 수준이라,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 선발 시 선수의 별자리를 고려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도메네크 감독은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2006 월드컵 때도 컨디션이 좋았던 로베르 피레스와 루도빅 지울리, 요앙 미쿠를 뽑지 않은 이유가 단지 '''별자리가 좋지 않아서다'''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 내용은 언론에서 약간 과장한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들과 불화가 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14]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은 위험 수준이었다. 트레제게,[15] 프레이는 대놓고 빠지기로 하고 아스날 FC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사미르 나스리는 뽑히지도 않았는데, 윌리엄 갈라스, 프랭크 리베리와의 불화 탓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당시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는 요앙 구르퀴프, 시드니 고부[16] , 프랑크 리베리, 마티유 발부에나, 아부 디아비, 니콜라 아넬카[17] 등은 서로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였다.
대표팀에 뽑히지 않은 사미르 나스리, 카림 벤제마, 벤 아르파의 경우 실력보다는 불화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 안 뽑힌거라는 말도 있었다. 셋은 청소년 대표 동기인데, 나스리와 벤제마는 프랑스 리그 시절 라이벌 팀인 마르세유와 리옹 출신임에도 서로 친하다. 반대로 벤 아르파는 나스리랑도 안 친하고, 벤제마와의 경우 리옹 시절 동료였음에도 사이가 나빴다(…). 그 탓인지 리옹은 벤 아르파를 마르세유로 이적시킨다. 청대 시절에는 아부 디아비와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기도 했다.
특히, 구르퀴프가 프랑스 국대내에서 이른바 '''왕따'''당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구르퀴프가 좀 튀는 성격이라[18] 아넬카 등을 두고 비판을 하였다가 역으로 본인이 비판을 받게 되고 이에 사과까지 했지만, 아넬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따를 주도했으며[19] 여기에 리베리, 발부에나, 갈라스 등이 합세하여 구르퀴프를 비난하고 그러다 보니 좋든 싫든 옆에 있던 나머지들도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 해외파들의 국내파(특히 보르도) 무시, 여기에 도메네크의 총애까지 겹쳐진 탓에 구르퀴프는 소속팀 보르도의 라이벌인 리옹 소속의 '''제레미 툴랄랑하고만''' 같이 말을 트고 훈련도 했다고 한다. 현재 프랑스 대표팀 주장인 요리스도 구르퀴프, 툴랄랑과 절친이다.
상황이 얼마나 개막장이었느냐면 이를 말려야 할 '''주장 파트리스 에브라'''조차도 "구르퀴프랑 말하려면 툴랄랑하고 해라!"라고 하였을 정도. 왜 툴랄랑만이 구르퀴프를 왕따시키는 것에 동참을 하지 않을 수 있었냐면 툴랄랑이 전직 '''복싱선수'''인지라 아무리 성격 안 좋은 아넬카라도 어떻게 할 자신이 없어서... 게다가 원래 구르퀴프와 친했다. 어쨌건 구르퀴프가 라이벌 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인배적 면모를 보여준 덕에 툴랄랑의 주가만 상승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후 구르퀴프가 리옹으로 이적하여 둘은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다. 문제는 왕따 사건의 주범인 발부에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리는지 그 이후 디나모 모스크바로 줄행랑 치듯이 이적했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 때는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 '''지단이 있었다'''는 것(…).[20]
2006년에도 프랑스는 국내파와 해외파의 갈등이 강했지만, 그나마 카리스마 있는 지단이 있었기에 그를 중심으로 뭉쳐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단이 없어진 유로 2008 때부터 영건들인 카림 벤제마, 나스리와 고참인 마켈렐레, 갈라스 등의 갈등이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월드컵 시점에선 손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멕시코와의 2차전 후, 프랑스의 주전 공격수인 아넬카는 월드컵 기간 도중에 팀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 뉴스에 따르면 다른 선수들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패스도 하지 않으며[21] 도메네크 감독에게도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아넬카는 대표팀 은퇴를 하게 되고 이 사건 이후 아넬카는 18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어차피 본인은 이 사건에 관계 없이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위의 사태에 관하여 에브라는 '''좀 사실이긴 한데''', 이 사실이 누설된 것을 보아서 팀 내에 프랑스가 망하기를 원하는 '''배신자'''가 있다고 하였다.
이후에도 개막장스런 상황은 계속되어, 도메네크 감독과 코치 간 불화로 코치가 훈련장을 떠나고 선수들은 아넬카의 귀국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훈련을 거부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대표팀 단장은 사임했으며, 내분 수습을 위해 '''체육부 장관'''이 직접 도메네크 감독과 축구 협회장, 주장인 에브라를 만날 계획도 밝혔다. 그리고 체육부 장관에게 이 명령을 내린 사람은 '''사르코지 대통령'''. 실제로 사르코지는 이 사건을 언급하며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단어까지 써갔다.
지브릴 시세 등 몇몇 선수들은 훈련거부에 동참한 것을 후회하면서[22] 훈련거부를 주도한 선수들(파트리스 에브라, 프랑크 리베리, 윌리엄 갈라스 등)과 도메네크 감독을 화해시키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에브라, 리베리, 갈라스, 아비달은 '''경기 출전조차 거부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니 이쯤되면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
3.2. 프랑스 대표팀 이후
2018년 4월 공석이 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지원한 77명의 지원자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감독 자리는 클라렌스 세도르프가 차지하였다.
2020년 12월 23일, 도메네크는 리그 1 15위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FC 낭트와 계약했다. 계약 기간은 잔여 시즌까지. 프랑스 대표팀에서 물러난 후 10년 만에 현장 복귀인 셈. 그리고 특유의 말솜씨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는데 마라도나를 영입하려고 했는데 죽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부임 후 8경기 동안 4무 4패를 기록했고 결국 2021년 2월 11일, 경질되었다. 후임은 앙투안 콩부아레.
4. 기행
선수 기용과 운용이 개판을 넘어 기괴한 수준이다. 그 기행이 너무 많아 분리를 해서 설명해야 할 정도.
일단 2003-04 시즌 아스날의 무패 우승을 이끌며 최전성기를 보내던 '''로베르 피레스'''를 죽어도 쓰지 않았다. 또한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미였던 요앙 미쿠 역시 배제. 때문에 저 두 선수는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대표팀 경력이 완전히 끝났다. 하도 이해가 안 되는 행위라서 추측이 다양한데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저 두 선수가 "사자자리", "전갈자리"라서 안 뽑았다'''는 것(...). 실제로도 전갈자리와 사자자리를 매우 싫어하여 올림피크 리옹 감독 시절에도 7명의 전갈자리 선수를 2명으로 정리한 이력이 있을 정도다. 이래서 별명이 '''점성술사'''.
바르셀로나의 05/06시즌 챔스 우승에 일조한 루도빅 지울리는 에스텔 드니[23] 가 도메네크의 여자친구인줄 모르고 작업을 건 사실 때문에 국가대표 커리어가 종료.
이외에 다비드 트레제게, 필립 멕세, 세바스티앙 프레이와도 사이가 지독하게 좋지 않다. 특히 유럽 최고급 골키퍼로 평가되던 프레이와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던 트레제게는 2008년에 도메네크 때문에 그가 있는 한 국가대표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대표팀 은퇴 선언까지 했다.[24] 때문에 프레이는 A매치가 달랑 2경기 출전으로 끝. 멕세의 경우는 간간히 소집되다가 블랑 감독 체제 이후엔 부동의 주전 수비수로 승격했다.
반면 시드니 고부는 잘하던 못하던 무조건 국가대표로 소집해 '도메네크의 양아들'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이 개판 같은 운용이 결국 곪고 곪아서 터진 것이 '''남아공 쇼크'''. 항목을 읽다 보면 당시 도메네크의 지도력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알 수 있다.
넌씨눈스러운 발언과 쓸데없는 도발로 욕을 먹기도 한다. 유로 2008 '''조별 예선 탈락'''의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라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당연히 "여자친구 신경쓰느라 경기가 눈에 들어오긴 했겠느냐?"면서 죽도록 까였다.
여기에 더해서,
라는 말은 덤.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주제 무리뉴 감독에게도,
라고 도발했다가...무리뉴는 주위를 도발해 왔지만 이제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라며 역관광당하고 본전도 못 찾았다.나는 도메네크의 유로 2008 이후 기자회견을 듣고 눈물을 흘려버렸다. 그의 말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2015년 7월 5일 뜬금없이 맨유 더 이상 빅클럽 아니야. 토트넘과 다를 바 없는 맨유라고 맨유를 깠다. 하지만 토트넘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체제에서 BIG6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던 클럽이었고, 2019년에는 창단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그런데 '''하루(...) 뒤에''' 같은 국적의 미드필더 모르간 슈네데를랭에게는 '''맨유로의 이적을 추천했다.''' 링크 공교롭게도 슈네데를랭의 생일은 11월 8일. 즉, '''전갈자리'''다.
2016년 1월 8일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감독이 지단이 되자 "지단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단은 이에 응수라도 하듯 불과 넉 달 뒤에 레알 마드리드의 11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듬해 챔스 개편 이후 최초로 2연패와 라리가 우승을 한 것도 모자라 2018년에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2016년 3월 20일에는 맨시티가 꿈에서도 파리를 못 이긴다며 극딜했다. '''그리고 맨시티가 이겼다.'''
2017년 3월 9일에는 파리와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시청한 이후 "메시는 끝났다."라며 유달리 혹평했다. 참고로 메시는 17-18 시즌 팀을 이끌다 못해 라 리가를 씹어먹고 있다. 그리고 2019년에는 6번째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2021년에는 고인이 된 마라도나를 가지고 고인드립을 치는 정신나간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대체 프랑스 축구협회가 무슨 약을 먹고 이런 인간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번이나 뽑았는지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1] 이후 피파가 이 사태를 덮기 위해서 아일랜드에 거금의 뒷돈을 줬다는 말이 나왔다.[2] 우루과이가 사실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까지 2번이나 우승한 국가였기는 하였지만, 이것도 엄청 먼 과거의 얘기였고, 이후로는 남미에서도 중위권 수준의 팀으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게다가 2002년 대회는 오랜만에 진출하기는 하였지만 프랑스와 함께 아쉽게 동반 광탈하였고, 2006년 대회 때는 '''호주'''에게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 이렇다 보니 2010년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승후보에는 아예 못 미치는 팀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더구나 2002년에 프랑스가 유일하게 지지 않았던 상대가 우루과이였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우루과이도 승점자판기 정도로 보일 만했다'''.[3] 반대로 남아공 팀은 '''톱시드인데도 왜 받아먹지를 못하니''' 급의 불운을 조 편성에서부터 맛보았다. [4] 다만, 포르투갈은 한국, 미국과 마지막 3차전까지 경합했다. 그 결과는 한국 7점 - 미국 4점 - 포르투갈 3점. 다만, 프랑스는 1무 2패로 승점 1점 밖에 못얻어 더 처참하게 탈락했다.[5] 우루과이의 로데이로가 퇴장당했기에 망정이지 그 전에는 탄탄한 우루과이에게 한참 밀리던 참이었다.[6] 당장 프랑스 본인들이 직전 대회에서 쳐발랐던 토고 축구 국가대표팀조차도 '''경기중에 서로를 불신하여 패스를 주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7] 특히 오프사이드 트랩이 삐끗해 치차리토를 자기네 진영에서 혼자 놀게 하다가 골까지 허용한 장면은 정말 가관이었다.[8] 멕시코와 우루과이가 비기면 우루과이가 승점 5점에 골득실 +3, 멕시코가 승점 5점에 골득실 +2로 조별리그를 마무리지을수 있었다. 둘이 1, 2위를 가져가버리니 끽해봐야 승점 4점인 프랑스는 개기지도 못하는 것.[9] 골이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패스플레이는 상당히 좋았다. 남아공 수비들이 아무리 집중해도 따라가지를 못했을 정도.[10] 상술했듯 남아공 팀 입장에서는 개최국임에도 자기네들보다 강한 전력의 팀만 걸린, 그야말로 총체적 불운인 상황이었지만 프랑스 팀의 삽질 덕에 결과적으로는 '''프랑스 팀이 걸린 게 오히려 행운이 되고 만 것이다'''.[11] 2010년 6월은 월드컵 본선 기간이라 FIFA 랭킹 업데이트가 없었다.[12] 사실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 때부터 무재배를 많이 하는 등 엄청 고전하는 등 무언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본선 진출조차도 지네딘 지단과 같은 베테랑을 다시 불러서 가능했던 것. 그리고 그렇게 준우승을 거두고 돌아온 뒤 프랑스 대표팀 환영식에서 '''프랑스 국민들이 결승전 승부차기를 실축했던 트레제게를 격려하며''' 사회적으로도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흐름 속에 도메네크 감독의 실책을 흐지부지 넘긴 것이 프랑스의 엄청난 실수였다.[13] 다만, 멕세는 그 시즌에 폼이 급속히 떨어져 부르디소한테 주전 자리를 밀릴 정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긴 했다. 물론 독일 월드컵 당시 멕세 대신 3B의 붐송(....)을 뽑은 걸 보면 리그를 씹어먹었어도 안뽑았겠지만....[14] 물론 본인은 극구 부인하며 루머에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프랑스 언론들 또한 도메네크 감독에 우호적이지 않아서,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럴 바에는 지네딘 지단을 다시 불러오는 게 낫다'''며 비판에 여념이 없었다.[15] 이미 유로 2008 때부터 레몽 도메네크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16] 특별한 장점이 보이지 않음에도 레몽 도메네크는 계속 그를 중용해서 혹시 양자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17] 아넬카는 트레제게 다음으로 티에리 앙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앙리 또한 아넬카의 이번 사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참고로, 아넬카는 그가 뛰었던 거의 모든 소속팀에서 실력이라면 몰라도 성격 면에서는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18] 구르퀴프의 성격에 대해서는 너무 곱고 바르게 자라서 자기 주장이 강하지 못하다는 것이 주된 평가인데, 물론 프랑스 대표팀 내에서라면 이것도 충분히 튀는 성격이랄 수 있겠다(…). 다만, 경기력이 계속 부진한데도 중용되는지라 애초에 주위의 불만이 많았다.[19] 아넬카 본인이 레알 마드리드 시절 라울과 이에로의 주도로 왕따당한 사실은 잊고 있는 듯(…).[20] 지단도 마르코 마테라치를 상대로 '''희대의 박치기를 시전할 만큼''' 한 성깔 한다. 압도적인 실력과 경력으로 팀을 장악했던 만큼 팀을 결승까지 멱살캐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현재 기준의 한국 국대에게 대입을 해보면, 해외파와 국내파간의 갈등이 벌어졌을 때, '''박지성''' 급의 고참이 2011 아시안컵 후 은퇴를 번복하고 국대로 돌아와서 팀을 휘어잡는 셈.[21] 아넬카는 실제로 다른 동료들, 특히 구르퀴프에게는 패스하는 꼴을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같이 왕따를 하던 리베리는 백패스라도 했고, 구르퀴프도 리베리에게 프리킥으로 패스해주는 모습을 보였건만...[22] 구르퀴프, 요리스, 사냐 등은 즉석에서 반대하였지만 까일 뻔하고 데꿀멍하였다 한다.[23] 도메네크보다 25세 연하인 프랑스 방송 진행자이자 도메네크의 연인.[24] 원래는 저 정도가 아니었지만, 트레제게가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지막 2번 키커로 나와 실축하면서 프랑스가 준우승을 했고, 이때부터 도메네크는 트레제게를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