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에게 고한다

 

원제 <'''アドルフに告ぐ''' (아도루후니 쓰구)>
데즈카 오사무만화.
1. 개요
2. 주제
3. 내용
4. 등장인물
5. 비판과 반론
6. 수상
7. 기타


1. 개요


1983년 1월부터 1985년 5월까지 일본주간문춘에 연재한 작품.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잡지가 아닌 일반 주간지에 만화를 연재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만화 사상 처음으로 문예춘추에 연재된 만화다. 단행본 역시도 만화 코너가 아닌 문학 코너에서 팔렸다.
2009년 10월 17일 한국에도 세미콜론을 통해 5권짜리 책으로 출간되었다. 발매 소식이 올라오자 루리웹 일각에서는 '''이거 일본은 피해국임 징징거리는 만화 아님?''' 식으로 까다가 역관광 당했다. 사실 이 부분은 단순히 이분법적 분별에서 벗어나서, 보다 엄밀하고 심도 깊은 담론적 영역에서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해석에 따라서는 정말로 일본의 피해자 행세라고 해석할만한 내용도 상당부분 들어가 있는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데즈카 오사무의 최고 걸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걸작 투표시 순위권에 단골로 오르는 작품으로 설령 데즈카 오사무 열성팬이 아닌 일반 독자가 읽더라도 재미와 함께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2. 주제


본작의 주제는 전쟁이 아니라 정의다. 데즈카 오사무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결국 국가 간의 정의가 충돌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보았다. 결국 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데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의를 남에게 강요하기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주의를 남에게 강요하는 이러한 정의는 이성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 이 같은 관점은 성전이라고 불렸던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떠올리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서 스스로 미쳐 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본 작품은 어린 시절 전쟁의 궁핍과 공포를 경험한 이후로 평생 전쟁과 국가주의를 증오한 데즈카 오사무의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아톰의 슬픔'이라는 유작 산문집을 보면 그의 생명, 환경, 전쟁, 과학, 미래 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만화 세계는 '''인간 존중과 생명사상, 그리고 인간 존엄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밝힌 바 있다.

3. 내용


주요 스토리는 나치의 흥망기를 배경으로 아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세 사람, 즉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카우프만, 아돌프 카밀의 인생이다. 하지만 주된 이야기는 아돌프 카우프만과 아돌프 카밀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히틀러는 조금 떨어져 있다. 그리고 일본인 특파원인 주인공 도게 소헤이가 이 세 사람의 관찰자이자 화자로서 등장한다.
독특하게 이 작품은 히틀러 유태인 혈통설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히틀러가 유태인 혈통이라는 것은 부정되고 있다. 데즈카 오사무가 이 만화를 그릴 당시에는 히틀러 유태인 혈통설이 한창 논란이 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히틀러 유태인 혈통설 외에도 음모론적 내용이 일부 들어가 있는데 히틀러의 죽음에 관한 부분이 그렇고, 진주만 공습에서도 루즈벨트가 일부러 공습을 모른 척 했다는 음모론을 반영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진주만 공습 항목 참조.
제2차 세계대전이 시대적 배경이니만큼 전쟁에 대한 묘사도 상당하다. 다만 고증이 약간 미묘한데, 가령 1936년의 뉘른베르크 나치 집회 때 있을 수 없는 티거 전차가 나오는 식. 물론 이 정도의 지엽적 오류가 이 만화 전체의 가치를 깎아내릴 정도인 것은 아니다.
나중에 가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문제로까지 시점이 확대되는데, 이에 대한 데즈카 오사무의 결론은 '''니들 다 똑같으니까 그만 싸워'''! 결과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이니 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어불성설이다. 도리어 당시 독일과 일본의 시대상을 아주, 철저히, 잘근잘근 까내리는 개념작이다. 실제로도 데즈카 오사무는 참혹한 전쟁을 겪은 세대의 일원으로서 평소부터 반전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남긴 바 있다.

4. 등장인물



5. 비판과 반론


다만 이 정도의 스탠스에 대해서도 반감은 상당한데, 이는 데즈카 오사무 또한 일본의 전쟁 경험으로 그러한 비참함을 모든 전쟁에 일반화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갈등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각자 자기 민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이에 대해 "자신의 정의를 서로에게 강요하기 위해서 싸운다" 라고 단정하고 "니들 다 똑같으니까 그만 싸워" 라고 하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해답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일전쟁에서도 "니들 다 똑같으니까 그만 싸워"라는 말이 일본군에게는 의미가 있었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던 중국인들에 대해 '중국인의 정의를 일본인들에게 관철시키기 위해서' 일본과 싸우고 있었다고 하면서 "니들 다 똑같으니까 그만 싸워"라고 한다면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일본은 명백히 가해자 측인데도 전쟁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지 않고 양쪽 모두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니들 다 똑같으니까 그만 싸워라고 훈계하는 것은, 사실 이 이야기를 보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어이없을 뿐이다. 후반부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관련 전개를 당사자한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비슷한 스탠스를 지닌 스티븐 스필버그뮌헨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으로부터 까였다는걸 기억하자. 오히려 뮌헨은 역사적 상황 그 자체보다는 그 역사적 상황에 참여한 (그리고 말려든) 개개인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이 정확하지 않은 면이 있으며, 사실 상당히 객관성이 잘 갖추어진 작품이므로 극단주의자들의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역사적 흐름 자체를 조망하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입장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거기에 미군이 일본에서 폭격하자 등장인물 중 유태인인 카우프만이 공습으로 어머니가 죽자 공습하는 미군보고 너희들도 유태인이 있는데 왜 공습하느냐라고 울부짖는데 이건 이뭐병같은 설정이 아닐지. 그러나 단순한 전쟁에서의 민간인 희생 문제가 아니라, 폭격이라는 행위가 지닌 폭력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속성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폭격만큼 제국주의와 서구중심주의, 인권유린을 상징하는 행위도 없다. 왜 일본에서 교토가 원폭 투하에서 벗어났는지 그 일화를 생각해 보라. 또한 이 대사는 지식인의 주장이 아니라 가족의 죽음에 대한 울부짖음에서 나온 주장이므로 인간의 속성상 고증(?) 자체는 맞다.
또한 독일에 대해서는 국민들 대부분이 철저하게 나치즘에 동조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일본에 대해서는 소수의 권력자들만이 군국주의자이며 국민 대부분은 단지 그들에게 속거나 휘둘렸을 뿐이라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독일의 나치즘 역시 독일국민들에게 해악을 끼쳤다는 걸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는 반론이 있으나 "독일 국민이 나치즘에 동조했다"와 "독일 국민이 나치즘에게 해를 입었다"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전혀 반론이 되지 못한다.
물론 이 작품은 일본 민중이 100% 피해자라고 그리지는 않는다. 2~3권에서 주인공인 일본인 기자를 따돌리는 보통의 인간들이 나오며, 권력 측의 인물들 중에는 100% 가해자 인간으로 출연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집단으로서 군국주의적 가치 자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측면은 대단히 약하며 단순히 막연하게 지배층을 따르는 수준에 불과하다. 즉 일본 민중은 군국주의를 내세운 지배층을 막연히 지지할 뿐 군국주의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는 어느정도 유리된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독일 민중은 유대인을 죽이라고 소리치면서 직접 폭력까지 행사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즉 독일 민중은 '나치즘을 내세우는 지배층에게 속아서 끌려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나치즘을 지지하고 있으며, 독일 지배층은 단순히 지배층-피지배층의 관계에 있을 뿐 나치즘 지지 측면에서 독일 민중과 특별한 차이가 없다. 이렇다보니 아무리 나치즘의 해를 입었다고 해도 직접 나서서 유대인을 죽이려고 하던 독일 민중들을 단순한 피해자로 분류하기는 불가능하다. 반면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묘사에서는 군국주의를 내세우는 고위층과 그에 속아서 끌려간 민중의 입장이 분명하게 구분되며, 속았을 뿐인 일본 민중들은 이 작품에서는 피해자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들이 피해자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들이 피해자라는 전제에 의문을 품지 않은 상태에서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실 따지자면 당시의 일본 민중의 교육수준이나 의식수준이 독일 민중의 의식수준보다 훨씬 모자랄 수밖에 없는 역사적 단계에 있었고, 시민들의 자발적 조직체나 형식적 민주주의도 히틀러 등장 시기의 독일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기에 역사적으로 틀린 묘사만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미개하고 무지몽매한 일본국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 꼭 미화라고 볼 수도 없다(...) 반면 히틀러 등장 시기의 독일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좌파 정당 둘이 존재할 정도로 나름 시민세력이 주체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사실 그랬었기에 더더욱 히틀러 등장이 역사의 수수께끼이자 아이러니가 되는 것이다.)
이 만화를 보면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면 은연중에 일본의 시각에 지나치게 경도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본 사회 전체의 문화로서의 군국주의의 문제는 외국인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며, 무엇보다도 일본의 가해자로서의 입장을 무시하고 '다 똑같으니까'를 내세우는 것은 바로 그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한국인으로서는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루리웹에서 "이거 일본은 피해국임 징징거리는 만화 아님?" 하는 말이 나온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해당 비판 자체는 정확하지는 않은데, 이는 일본 민중은 군국주의의 피해자로 묘사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를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 것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1]
또한, 소위 '반성적'인 일본 매체 대부분이 엄밀한 독해와 비판을 거친다면 피해자연하는 태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점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딧불의 묘 같은 유명사례도 있거니와, 오에 겐자부로 역시 비슷한 비판을 받은 적 있다. 우익단체 등쌀에 못 이겨 호주로 피신한 카리야 테츠맛의 달인 역시, 제대로 읽으면 전쟁 당시와 전쟁 직후의 일본 대중에 대한 자기연민이 상당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일본 반전, 반 제국주의, 반성만화의 끝판왕쯤 되는 맨발의 겐 조차도 자기연민과 피해자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이런 작품의 작가들 자신도 일본인으로써, 일본인의 입장이나 관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것이다.
모든 논란을 떠나서 분명한 점은 이 작품에서는 군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 결코 옹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군국주의에 대해서 일반 일본인들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지 '막지 못하고 휘둘린' 간접적인 책임이 있는지의 문제가 있을 뿐 군국주의 자체에 대한 태도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또한 전쟁 전부터 일본사회가 막장으로 치닫는 사회적 분위기를 묘사한 부분도 있고, 전쟁 중 일본인들이 만주에서 저지른 잔학무도한 일들에 대한 묘사도 빠지지 않는 점을 보면 군국주의의 책임을 덮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전쟁을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자전적 만화를 그린 적도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인의 입장에서' 불만스러운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사실 데즈카 오사무 정도 되니까 만화로 이런 얘기를 술술 풀어낸거지, 까딱 잘못했으면 말년에 카리야 테츠처럼 우익단체 등쌀에 스트레스 받을 뻔했다.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80년대에 연재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웃긴 점은 이 만화는 일본에서는 재평가되어 일본을 극악무도한 가해자로 묘사하였다며 우익 세력에게 공격 받는다.

6. 수상




7. 기타


2019년 프랑스 언론 르몽드에서 발표한 '일본의 걸작 만화 20개의 작품' 중 하나로 선정됐다.#[2]
계약 당시 일반적인 어린이 만화가 아닌 어른들도 볼수 있는 극화이자 대하소설로 만들어달라는 요청때문에 개그 요소나 스타 시스템과 약간 떨어져 있다. 아톰이나 수염 아저씨등이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데즈카 오사무 만화의 악역인 아세틸렌 램프와 헴 에그는 출연하는데 전자는 나치 고위간부[3]와 고등계 형사로 출연한다. 주인공인 일본인 기자를 잘근잘근 괴롭히는 악당중에 악당 역할.
데즈카 오사무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누더기 해골도 단 한장면 나온다. 조르게 사건에 대한 높으신 분들 회의때 쓰레기통에서 굴러나오는 장면.
일본인 기자를 사모하던 게이샤가 탄 택시 운전사는 작가의 오너캐
일본인 기자 캐릭터는 마그마 대사 OVA판에서 일본 정보국의 높으신 분으로 출연한다.
원래 구상한 결말은 아돌프 카우프만의 일본인 교사는 장님이 되고 카우프만과 카밀의 최후의 대결에서 둘다 죽는(....)[4] 결말로 구상했고 카우프만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넣으려고 했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지금의 결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덧붙여 이 작품의 극중에서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네오 나치 간의 커넥션이 형성된다는 그런 상황이 묘사된 바 있었는데(자세한 내용은 진영논리 항목의 서술을 참조), 사실 현실에서도 뮌헨 올림픽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은 정말로 네오 나치지원을 받았었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가 이 작품에서 묘사했었던 그런 상황이 '''정말 현실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진영논리의 극한을 보여준 사례. 뭐 인류 역사에 이런 건 굉장히 많았지만. 이득 앞에서는 어제의 죽일 적도 아군이 되듯이. 당장 킬링필드로 악명을 떨친 크메르 루주를 나중에 미국베트남 견제한다며 물리적 지원을 하던 것이다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던 게 미국이었던 과거를 생각해보자.
이 작품을 집필했었을 당시의 데즈카 오사무가 뮌헨 올림픽 참사 당시 있었던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만큼[5] 작가의 통찰력을 엿볼수있는 부분이다.

[1] 실제로 전쟁으로 일본 민중이 이득을 본 것은 없다. 오히려 큰 피해를 보았지... 어리석음의 댓가이기는 하지만... 전쟁, 반전주의 항목에도 나왔듯이 전쟁은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강자(현대라면 자본가나 정치인)들의 이득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합리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증오와 적대감, 선동과 오해 등이 결부된다..[2] 다른 작품으로는 드래곤볼, 나루토, 관동 평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총몽, 철콘 근크리트, 나나, 란마 1/2, 데스노트, 몬스터, 슬램덩크, 베르사이유의 장미, BECK, 러브히나, GTO, 시티헌터, AKIRA, 퀸 에메랄다스, 헌터x헌터가 있다.[3] 나중에는 히틀러를 직접 처리한다!!!![4] 정확하게는 카밀은 바로 죽고 카우프만은 집에 와서 죽고.[5]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네오 나치 간의 커넥션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식 기록이 공개된 것은 21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데즈카 오사무가 생전에 그 기록을 접할 수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