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도시

 

'''이름'''
이다 도시(Ida Daussy)
'''한글 본명'''
도씨이다노엘다니엘[1]
'''출생'''
1969년 7월 17일 (54세)
프랑스 노르망디
'''국적'''

'''학력'''
르아브르대학교 언어학 학사
르아브르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한국어학 석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박사과정수료
'''가족'''
남편 피에르, 아들 2명[2], 의붓딸 2명[3]
'''경력'''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2012~)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링크'''

1. 개요
2. 한국에 온 계기
3. 가족 관계
4. 주요 방송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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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출신 한국인. 한국 내 외국인 방송인계의 시조새격으로 불리는 인물.
'서혜나'라는 한국 이름이 있지만 정확히 대한민국 호적에 등록된 이름은 아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성씨를 바꾸고 싶지 않아서 귀화할 때 성을 "도시"로 등록하였다. # 두 아들은 前 남편의 성씨를 물려받았으므로 한국의 도시 씨는 대가 끊길 것으로 보인다.[4] '이'로 이름이 시작하다 보니 성은 이씨에 이름은 '다도시'로 바꾼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2. 한국에 온 계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유명한 노르망디의 동쪽 르아브르 근교에 있는 마을인 페캉이 고향이다. 동향 출신으로 스포츠의 한 갈래인 파쿠르의 창시자이자 스턴트 배우로 잘 알려진 다비드 벨이 이곳 출신이다.
프랑스 국제대학원 재학 시절 이다도시는 '아시아 비지니스' 를 전공하고 있었고,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 실습차 방문했었다. 그 뒤 한국 부산에서 보낸 시간들을 추억하며 한국이 그리워졌던 이다도시는 박사 과정을 잠시 미루고 1992년대 초반(만 22세)에 처음으로 한국의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 한국어를 배우려고 유학을 왔다. 이 때만 해도 한국어를 배우려고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이후 연세대 어학당에서 정식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더불어 연세대에서 불어강사를 하였으며 1995년에는 어학당을 졸업하였다. 그 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프랑스인이라는 점 덕분에 EBS불어회화에 프랑스 원어민 보조강사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예능감각이 괜찮다는 호평을 받으면서 점차 방송지평을 넓혔다. 본래 이다도시는 한국어를 공부한 뒤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 박사과정을 밟을 예정이었지만, 한국에 정이 들어서 그대로 머물르게 되었다.
한국에서 살며 불어를 가르치던 7살 손위의 한국인 남성과 연애하게 되었고, 한국에 온 지 1년쯤 되던 1993년(만 23살)에 혼인하였고 장남이 태어났다. 1997년에는 귀화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처가 된 외국인에게 귀화를 원하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던 제도에 의해 한국 국적이 되었다. 이다도시가 귀화할 당시에는 귀화자에게 원래 나라의 국적 포기를 요구했기 때문에 이다도시는 프랑스 국적을 포기하였고 현재 한국 단일 국적이다.[5]
1990년 중후반부터 외국인으로서 유창한 한국어 구사력을 갖춘 점을 내세워 방송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참, 하일과 함께 외국인 출신 귀화 방송인 1세대로 인기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이다도시는 프랑스어 감탄사인 '울랄라!'를 한국에 유행시켰는데, 나중에는 코미디 프로에서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3. 가족 관계


장남의 이름은 유진, 차남의 이름은 태진인데, '한국 수다로 풀다'라는 본인의 저서에서 한국 이름과 프랑스 이름으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이라서 일부러 그렇게 지었다고 하였다.
두 아들을 낳고 알콩달콩 잘 사는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기도 했으나, 결혼 16년 만인 2009년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 당시 대장암에 걸려서 아픈 남편을 버린다는 둥의 악플이 만연했지만 (전)남편의 대장암은 결혼생활이 한창일 때였던 2006년에 진단을 받아 2007년경에 이미 완치된 상태였다. 이혼과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부갈등이 심했고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데다가 결혼생활조차 충실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무관심했는지 이혼 후 연락조차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방송에서 이혼 후 이다도시가 고향 프랑스를 방문하는 과정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두 아이와 한 인터뷰에서 이혼한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첫째는 그래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둘째는 아예 한국어로 말하기조차 싫어하는 것을 보면 아주 크게 상처받은 듯하다. 이다도시는 이혼 후 한동안 방송활동을 중단했다가 아픔을 이기고 다시 싱글맘 캐릭터로 방송활동을 재개하였다.
이후 다시 방송에서 나온 중학생이 된 둘째는 이것이 부모의 이혼이었으며, 자신과 대한민국의 이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서툴지만 다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6] 자신이 여전히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며 한국인 친구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첫째는 서울 프랑스학교를 졸업하고 파일럿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프랑스로 대학 진학을 하였다.
2005년 8월에는 프랑스의 유력지 <르 피가로>에도 기사가 실렸다.관련 한국기사
2013년 6월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 교수이자 한불상공회의소 이사로 재직하였으며 예전만큼 방송활동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이따금 종편 방송에 패널로 나온다.
2019년 8월 10일에 프랑스인[7] 남성과 고향 노르망디의 시청에서 재혼했다. 한국에서 혼인신고도 마쳤다. 프랑스인 남편도 이다도시처럼 한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2019년 결혼 당시 기준으로 한국에서 25년 거주했다고 한다.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하였으니 이다도시가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서 살거나 또는 기러기 부부로 살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다도시 부부는 모두 대한민국에서 살고있다.
그리고 이후 2020년 8월 16일 SBS 스페셜에 출연해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이다도시의 한국인 전 남편은 무려 '''10년 동안 양육비 지급 판결을 이행하지 않아 배드파더스에 신상정보가 공개(온라인에 게재)된 상태'''이며,#기사 관련 법적 다툼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 내용과 관련된 사항은 방송활동 항목에 후술.

4. 주요 방송활동


SBS 토크쇼인 이홍렬쇼에 함께 출연한 하일(로버트 할리)과 벌인 개고기 쟁론에서 개고기를 경멸하는 발언을 했다가 하일에게 '달팽이도 친구'라는 비유로 반박을 당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SBS 이홍렬쇼에서 위와 같은 대담이 방영됐던 1997년은 '보신탕'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던 해였다. 그 이유는 전년도인 1996년에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가 결정되었는데, 이 결정이 난 이후 프랑스동물보호주의자브리지트 바르도가 자신의 재단홈페이지에 개고기와 관련된 사진들을 올리고는 한국이 '''야만스러운 보신탕을 못 먹도록 압력을 넣자'''라며 주장을 한 것이 국내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8]기사 참조 그래서 1997년에는 PC통신뿐만 아니라 TV나 신문 모든 언론매체에서 '보신탕' 관련 이슈가 화제였다. 비슷한 시기 다른 방송들도 보신탕 관련 소재를 다루었으며, 신문에는 각종 보신탕을 옹호하는 기사들이 실리던 시기이다. 자세한 기사 링크 등은 하일 문서 참고.
이러한 오해가 생긴 까닭은 이다도시가 이홍렬쇼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SBS 시트콤 미스&미스터에서도 개고기에 기겁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이홍렬쇼의 저 대담은 '''대본에 의해 연출된 풍자일뿐 절대 실제 상황이 아니었다'''. 이다도시는 브리지트 바르도로 대표되는 문화의 상대성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동물보호론자 또는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캐릭터 자체를 연기한 것'''이다.
이런 '''오해''' 때문에 불까들의 구설에 오르기도 하나, 이다도시는 정말 한국을 좋아한다. 한류 열풍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던 1990년대 초반에 별다른 목적도 없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직접 유학을 왔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랑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다.[9] 애초에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프랑스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으로 귀화[10]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거기다 인종이나 국적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애초에 한국인 남성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이 보신탕을 못 먹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브리지트 바르도의 헛소리로 말미암아 국민여론이 뜨겁던 시절, '멍청한 프랑스 여자' 캐릭터를 스스로 풍자하면서 연기한 이다도시가 훨씬 대인배라면 대인배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한국 관련 책을 펴내 조금 인지도가 있다. 프랑스 TV에 출연해서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 차이를 설명하면서 좋게 이야기하였으며, 자신의 불어판 저서에서도 한국에 대한 좋은 시선을 유지하였다.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된 '개고기 대담'을 나오게 만든 브리지트 바르도의 행태를 반대하는 의견을 '''직접''' 책에서 피력한 바도 있었다.
프랑스 출신이어서 그런지 인사할 때 볼에 뽀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그 때문에 하일은 이다도시를 만날 때마다 난감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쥬는 한국에서도 난감한 문화지만 미국에서도 역시 이상한 문화인지라[11], 영화배우 윌 스미스는 러시아 행사에 참석했다가 비쥬 인사에 당황해서 리포터의 뺨을 때린 적도 있다. 자세한 사항은 윌 스미스 참고.


[1] 채널 A 거인의 어깨 11화에 출연하여 한국 주민등록증에 등록되어 있는 한글본명을 인증했다. '도시'는 성이고(도'''씨'''로 등록되어 있음), '이다'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 이름, 미들네임으로 '노엘'은 엄마 성함, '다니엘'은 대모님의 이름이다. 한국식으로 성씨와 이름의 순서만 바꾸어서 귀화했으며 한국 이름 표기법대로 이름에 띄어쓰기는 없다.[2] 장남은 귀화 이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과 프랑스의 이중국적이고 차남은 귀화 이후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 단일 국적으로 추정된다. 기사에서 귀화할 당시에는 아들 한명만 있던 상태라고 언급하였다.[3] 재혼한 프랑스인 남편에게는 한국인 전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딸이 2명 있다. 기사[4] 2019년 프랑스인 남편과 재혼했기 때문에 만약 새 자녀가 태어난다면 한국의 도시 성씨를 잇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가능해졌다. 외국인 부, 한국인 모의 자녀는 한국 출생신고를 할 때 한국인 어머니성씨로 등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다도시 부부는 만혼이며 이미 아들이 모두 있으므로 아마도 새로운 막내 자녀가 태어나지는 않을 듯하다.[5] 2011년부터는 한국인과 혼인신고하고 2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 배우자는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는 조건 하에 본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복수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6] 이다도시의 저서에 따르면 두 아들은 창의력을 강조하는 프랑스식 교육이 훌륭하다는 부모의 판단 하에 유치원 때부터 공교육 과정 모두 서울프랑스학교에 재학했다. 학교에서는 백퍼센트 프랑스어로 교육받고 한국인 아버지나 한국 친척과는 어릴 때부터 헤어져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가 서툴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이다도시는 두 아들에게 방과 후에 일대일로 국어 과외를 받게 하는 등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7]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167회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한국인 전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이 2명 있는, 한국 대기업의 회사원이라고 한다.[8] 브리지트 바르도는 보신탕과 관련하여 그 전인 1994년경부터 질리게 딴죽을 걸었다.[9] 그 시기에 온 다른 귀화 한국인들, 이참이나 하일 등은 일단 한국에 종교 목적을 가지고 왔다가 정착한 사람들이다.[10] 게다가 과거 1997년 이다도시가 귀화할 당시의 한국은 현재만큼의 선진국이 아니었다. UN이 공식적으로 한국선진국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7년이다.[11] 난감해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 한국에서는 인사할때 볼에 뽀뽀하는 것 자체가 연인이 아닌 이상 좀 이상한 행위지만, 미국에서는 친한 동성에게는 포옹, 친한 이성에게는 포옹 혹은 볼에 가벼운 뽀뽀를 한번 하는 경우가 많다. 안 친한 상대에게는 성별 불문하고 악수. 즉, 한국인에게 비주는 "헐...뽀뽀를 해?" 정도라면 미국인은 "헐...이 여자 뭔데 친한 척이지?" 정도 의미. 물론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은 문화라고 생각하고 받아줄 수도 있다. 사실 후술되는 윌 스미스는 동성 리포터인데다가 관련 루머가 있어 조금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이지 상당수 미국인들은 이성의 비주 정도는 (사전지식이 없어도) "아 유럽식이구나"하고 받아준다. 어디까지나 동성끼리 볼 키스가 좀 당황스러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