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종/선수 경력
1. 개요
이형종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다.
2. 아마추어 경력
2.1. 눈물의 에이스
서울고의 우완 에이스 투수이자 4번타자였다. 이형종은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특급 에이스감으로 주목을 받은 재목인데, 양천중학교에서 서울고로 진학하면서 연회비 전액 면제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1] 1년 선배인 임태훈, 이병용[2] 등과 함께 서울고의 마운드를 꾸려 왔으나, 상대적으로 약체에 속했던 당시 서울고 전력 덕분에 성적 자체는 안습. 그러나 고3이 된 후 2007년 봄에 열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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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인 서울고를 결승까지 끌어올려 에이스 정찬헌을 앞세운 전통의 강호 광주일고를 상대로 9회 2사까지 리드를 지켜가지만, 끝내 역전을 허용하며 마운드에서 눈물을 흘리며 공을 던진다.[4][5] 여담이지만 이 때 이형종은 거의 바닥이 다 드러난 상황이었다. 1회전부터 130개의 공을 던지며 많은 이닝을 소화한 이형종은 2회전에서는 무려 '''190'''구를 던지며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린 상황, 덕분에 이형종은 엄청난 피로가 쌓여있었고 결승전에서마저 2학년 투수 안성무가 난조로 무너지자 이형종이 중무리로 등판, 이 경기에서도 '''140'''구를 던졌다. 그야말로 이 악물고 던지고 있던 상황. 이 때 붙은 별명이 '''눈물의 에이스.''' 이것이 이형종의 이름이 제대로 알려진 바로 '''그 경기'''였다.
하지만 이 대회가 끝난 뒤 우승 팀인 광주일고의 정찬헌보다 먼저 LG와 계약을 체결하며 일찌감치 프로행 티켓을 거머쥔다. [6]
여담이지만 이 때 대통령배 결승전 심판은 심수창의 아버지인 심태석이다. 그리고 이형종에게 끝내기를 쳤던 광주일고의 타자는 2016년부터 2차 드래프트로 이형종과 같은 팀에서 함께하게 된 포수 윤수강이다. 감회가 남다를 듯했지만, 윤수강은 2016 시즌 후 LG 에서 방출당했고 포수난을 겪고 있는 NC 다이노스에 영입되어 2018 시즌부터 뛰게 되었다.
또 끝내기 안타 뒤 껑충 뛰며 홈을 밟고 있는 선수는 다름 아닌 서건창이다.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는데, 이 때 이형종에게 슬쩍 화를 내는 모습도 중계에 잡혔다.서건창 앞 타석에서 9회말 두번째 아웃을 당한 선수는 현재 두산에서 뛰는 허경민이다.
3. 프로 경력
3.1. 프로 입단과 짧은 활약
2007년 드래프트 1차 지명자인 이용찬과 마찬가지로 4억 5,000만 원(첫 해 연봉 포함)에 계약을 체결하고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지만, 부상으로 첫 시즌은 1군 데뷔도 못하고 끝낸다.[7]
그리고 2010 시즌에는 팀에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새로 부임한 박종훈 감독이 이형종을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하면서 "아직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자 이에 반발, 미니 홈페이지에 "너랑 싸우고 싶다. 1군도 2군도 가기 싫고 군대나 가겠다"는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8] 당시 이상훈이 구단에 엿먹은 일을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사건, 봉중근 2군행에 대한 봉중근의 와이프의 미니 홈페이지 쌍욕(...)과 함께 그 해 LG의 시즌 초 3대 인터넷 전쟁(...)으로 보도되었다. 이 두 사건이 시즌 개막 후 한 달 내의 일임에 비해 이형종의 일은 개막전을 전후한 일이었는데, 같이 묶이면서 결국 꽤 오래 회자되었다. 안습.
하지만 곧 오해를 풀고 2010년 5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 선발로 등판,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2탈삼진 2실점으로 데뷔 후 첫 승리를 따내며 꽤나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최고 구속은 152km/h. 2010시즌 초반 박종훈 감독의 선발진 구상이 '봉중근+에드가 곤잘레스+박명환+심수창+미지의 5선발'이었기 때문에 대뜸 유력한 5선발 후보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5월 23일 두산전에서는 4⅔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였기에 곧바로 선발자리는 꿰차지 못했다. 그 후 5선발 자리는 김광삼에게 돌아가지만 심수창이 똥같은 구위 를 보이면서 선발진은 커녕 투수도 아닌(...) 활약으로 완전히 이탈하여 또 선발 한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 이후로는 선발이든 뭐든 전혀 등판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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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첫 승을 올린 2010년 5월 16일 경기에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 벤치 클리어링을 펼치는 장면이 나왔다. [9]
3.2. 임의탈퇴, 방황
실은 2번째 등판 이후 부상이 도져서 2군으로 내려가 재활조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재수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그런데 본인은 너무 아파서 못 던지겠다고 주장하고, 구단은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형종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결국 미니 홈페이지에 "힘들어 못해먹겠다"는 글을 올리고 '''잠적'''해 버렸다.
그리고 2010년 8월 10일 임의탈퇴 공시되어 최소 1년 간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없게 되었다. LG 팬들은 1차 지명 잔혹사를 다시 떠올렸다(...).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인정받았고 실제로 1군 기록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팀 내에 이런 선수도 있어서 비교가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형종의 재활에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안타깝다고 하였다.
이후 싸이월드에 다른 운동을 시작한다는 뉘앙스의 코멘트가 올라오고 지인드립까지 합쳐져서 골프로 전향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야갤이 잠시 술렁이기도 했다.
자신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팔이 정말 좋아진다면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스포츠조선의 기사(링크)에서 야구선수로서의 복귀가 아닌 골프 선수로 전향을 하기 위해 훈련 중이고 9월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를 한다고 밝혀졌다.
그런 와중에 이번에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와 팬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심경의 변화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도 있지만 너무 생각없이 내뱉고 말바꾸고 한다고 까이기도 했다.
와중에 2011년 8월을 기점으로 박종훈 감독의 무능&혹사&삽질&안 좋은 얘기 등이 더해지며 이형종 & 서승화 등이 왜 박종훈 감독에게 반발을 했는지 동정론이 늘기도 했다.
2011년 12월 21일 복귀를 원한다는 인터뷰 기사가 떴다. 실제로 골프를 준비했었던 모양. 조브 클리닉에서 두 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10]
그 후 공익근무로 복무하였으며, 공익 퇴근 후에는 과 함께 몸을 만들고 있다는 페이스북이 올라왔으며, 이 이형종의 멘탈을 잡아주는 훈훈한 풍경이 페이스북에 잡히기도 했다.
3.3. 복귀
팔꿈치 수술이 성공하여 이형종이 시속 150km/h를 상회하는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을 본 LG는 이형종을 2013년 6월 18일에 정식 선수로 등록했다. 원래는 2014시즌에 정식선수 등록을 할 계획이었지만 차명석 투수코치의 요청으로 등록이 빨리 이루어졌다.
역시 빙빙 돌아(...) LG로 오게 된 류제국이 2013년에 선발로 출장하며 야잘잘을 몸소 보여주면서, 이형종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2014 시즌에는 신고선수로 전환되었고, 시즌 중반에 김효남이 방출되면서 공석이 된 40번을 가져가게 되었다.
2014 시즌이 끝나고 타자로 전향한다는 기사가 나왔다.기사 타격과 외야 수비 훈련을 받고 있다고. 그리고 등번호도 다시 107번으로 바꿨다.
2015년 2군 3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5, 13타점, 14득점, 5도루를 기록했다.
3.4. 2016년
2016년 1월 6일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배번은 서울고 시절에 달던 36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그리고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으며, 애리조나에서 열린 팀 내 청백전 두 차례 경기에서 첫 번째 경기에는 결승타 포함 2안타, 두 번째 경기에는 3안타를 쳤다. 기사
2월 22일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경기에서 임훈 타석에서 대타로 출전한 뒤 3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경기 중 타순을 착각하여 손주인의 타석에 서는 해프닝이 있었다. 영상
3월 13일 롯데와의 시범경기에서 정대현을 상대로 홈런을 떄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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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개막전 로스터 진입에는 실패하였다. 따라서 2016 시즌 시작은 2군에서 하게 되었다.
4월 10일 SK전을 앞두고 1군으로 올라왔고 이 날 7번타순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게 되었다. 첫 타석과 두번째 타석은 모두 범타로 물러났지만 세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면서 데뷔 첫 안타를 신고했다.
4월 12일 엘꼴라시코에서 역전 적시타 포함 2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인생경기를 했다.
4월 24일 넥센전에 1번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선발투수 라이언 피어밴드에게 꽁꽁 막혀 한 번도 출루하지 못했다. 하지만 8회 초, 무사 13루 찬스에서 김상수에게 안타를 뽑아내면서 타점을 기록했다.
5월 11일 삼성전에서 6회말 데뷔 첫 홈런(쓰리런)을 때려냈다!!! 팀도 16:2로 대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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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공은 경기장에 있던 어떤 '''한화 팬'''(?!)이 잡았으나, 구단에선 그 팬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보상을 해주고 공을 받아왔고, 양상문 감독이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를 공에 적어주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12일 임훈이 콜업되면서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양상문의 인터뷰에 따르면 팀 구성상 어쩔 수 없다는 듯. #
그러다가 7월 23일 두산전을 앞두고 두 달만에 1군에 등록되었다.
7월 26일 롯데전 7번타자로 나와 2안타 1볼넷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7월 28일 롯데전에서 이천웅의 대타로 나와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3루타 하나에 단타 하나. 그리고 오늘 경기까지 올 시즌 현재 롯데전 타율이 무려 '''.818'''이다.(!!!)
9월 11일 롯데전에서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맞는 2사 만루상황에서 윤길현을 상대로 2타점 결승 적시타를 작렬, 결정력을 보여주고 롯데 상대로 엄청난 강세를 이어갔다.
10월 11일 열린 KIA와의 와일드카드 2차전에서 좌익수로 선발출전하여 생애 첫 포스트시즌 경기에 출전하였다. 결과는 3타수 무안타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이후 작뱅, 이준형, 정주현 등과 함께 미야자키로 출국, 남은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올라오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타구의 질도 좋고 장타력도 있는 모습을 보인다. 김용의와 채은성의 재발견으로 팀의 외야 라인업이 안정되다 보니 팀과 팬, 선수 모두 성적에 부담감을 갖지 않고 장기적 육성을 도모하는 모습이다. 이 팀은 원래 무턱대고 주전 준다고 해서 유망주인 선수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게 증명된 팀이다 보니, 이형종과 그 동료들에겐 이런 성장 환경이 유리할 수도 있다.
3.5.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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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로서의 풀타임 첫 시즌. 그리고 그는 광토마라는 별명을 얻으며 데뷔 첫 세자리수 안타까지 쳐냈다.
3.6. 2018년
광토마의 계속 된 질주. 첫 3할, 두 자릿수 홈런, 규정타석을 기록하며 트윈스의 톱타자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체력 문제로 후반기는 너무나도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팀의 DTD를 막지 못했다.
3.7. 2019년
미디어데이에서 머리를 기르고 있음을 밝혔으며, '우승할 때까지 기르겠다'고 말했다. 주루 시 휘날리는 머리가 말 갈기를 연상시키며 광토마라는 별명에 임팩트를 더하고 있다.
2019년 3월 23일 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펼쳐진 KIA타이거즈와의 원정 개막전에 나와 양현종을 상대로 1회초 1번 타자로 나와 2019년 KBO 리그의 첫 안타를 기록했다.[11] 다음 날도 6타석 5출루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3월 27일 SK전 9회 무사 1,2루에서 깔끔하게 번트를 성공시키는듯 했으나, 파울라인 안으로 뛰면서 새로 개정된 쓰리피트 규정을 위반하며 번트실패처리가 되고 말았다. 다음날 문승원에게 리드오프 홈런을 기록했지만 이후 타격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다.
4월 초에는 자신의 큰 스윙에 공이 맞지 않으며 찬스를 끊어먹고 있다.
부상으로 4월 6일 2군으로 내려갔고, 30일에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5월 24일 사직 롯데전에서 만루포를 때려냈으나 팀은 결국 역전패하면서 빛이 바랬다...
하지만 다음날 8회 극적인 2타점 동점 적시타와 그 다음날 승리에 쐐기를 박는 쓰리런을 포함해 롯데와의 3연전에서 9타점을 기록하며 위닝시리즈의 1등공신이 되었다.
6월 6일 잠실 kt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7대6으로 지고 있던 9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정성곤에게 동점 솔로포를 치며 5타점을 기록한 김현수와 함께 시리즈 싹쓸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6월 9일 대전 한화전 연장 11회 정우람을 상대로 위닝을 결정짓는 시즌 5호 투런포를 기록하였다.
7월 이후 타격감, 특히 득타율이 4월 박용택마냥 개판이다. 그런데도 박용택이나 채은성 대신 이형종을 기용해야 한다는 팬들의 의견이 많다. 특히 7월에는 클린업인 3번이나 5번으로 주로 출장했으나 득타율 1할대를 기록하며 이천웅과 김현수가 주자를 쌓아놔도 흐름을 끊는 현상이 지속되었다. 지명타자 박용택의 복귀 이후 넘치는 외야 자원때문에 주전 경쟁에서 밀려 얼굴 보기가 힘들다.하지만 자신이 강한 삼성전에서마저 삼성에약한 채은성 이천웅에게 밀리자 팬들의 반발이 극심해졌다
8월부터는 다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1루 수비를 2번이나 나서며 김현수의 1루 알바의 피로를 풀어주고있다.
올 시즌 문제는 나름 빠른 발을 가졌음에도 주자가치가 마이너스이다. 지난 시즌 주자가치가 2.47이었던 만큼 수준급의 주자인데 올해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9월 3일 발표된 프리미어 12 예비엔트리에서 탈락했다.강견의 우타 우익수가 부족함에도 왜 떨어뜨렸는지는 미스터리.[12]
9월 15일 두산전에선 싹쓸이 2타점 3루타, 희생 플라이, 투런 홈런으로 한 경기 개인 최다 타점(5타점)을 기록하고 팀의 10대 4 잠실시리즈 대승에 큰 역할을 했다. 더불어서 적시 3루타때에는 팀 20,000타점을 달성하는 영광까지 얻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이천웅이 출루하면 이형종이쓸어담으며 2타점으로 팀 승리의 주역이되었다. 이천웅과이형종 외 구본혁의 안타 박용택의 희플로 총 3점을냈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선 김현수와 함께 신나게 잔루를 남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상 김현수 고우석과 함께 엘지의 가을야구를 말아먹은 역적.그러나 이부분에 대해서 이후 인터뷰에서 언급한바로는 내가 못하면 교체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라고한다.
3.8. 2020년
부상으로 시즌 출발이 늦어 시즌 타율 0.296 17홈런으로 마무리지었다. 144경기 환산하면 32+ 홈런이므로 부상이 너무나 아쉬웠던 시즌.
3.9. 2021년
등번호를 36번에서 13번으로 바꿨다는 사실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했다.
[1] 중학교 시절 구속이 130km/h 정도였다[2] 2007년 삼성에 지명받았으나 방출된 후 원더스를 거쳐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 2015 시즌 이후 다시 방출[3] 백색 운동화를 신은 투수는 장민재. 당시이름은 장민제[4] 패배가 결정된 뒤 운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울면서 투구. 소년만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5] 이때 눈물을 흘린 이유가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당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때문이라고 한다.[6] 그 후 당초 당연히 연고 팀인 KIA의 1차 지명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 정찬헌이 낙마함에 따라, 2006년도에 최하위(...)를 기록한 LG는 정찬헌마저 2차 1순위로 지명하여 입단시킨다. 당시 KIA가 정찬헌을 버리고 선택한 카드는 군산상업고등학교의 사이드암 투수 전태현이었지만.... 전태현은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7] 얼핏 이닝과 투구수만 봐서는 혹사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문제는 짧은 등판 간격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대통령기에서 무리한 후의 이형종은 그 전의 이형종과는 확연히 다른, 지친 모습을 보였다.[8] 여담으로 우규민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것으로 유명한 신족지가 덧글로 또 한 번의 족지레터를 시전한 바 있다. 링크 [9]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난 이유는 이렇다. 1루 주자 문규현이 2루에서 포스 아웃 당하며 경기가 끝나는데 이 과정에서 스파이크를 박용근에게 들이대며 슬라이딩을 하였다. 그리고 문규현은 사과도 없이 롯데 덕아웃으로 가는데 박용근이 매우 빡친 나머지 욕설을 하면서 문규현에게 다가갔고 이에 양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왔던 것이다.[10] 여담으로 이 당시 이형종은 한창 방황하며 욕을 먹던 시절이었고, LG의 어수선한 상황까지 겹쳐서인지 댓글들이 하나같이 험하다(...). [11] 여담으로 18시즌 후 러브기빙데이라는 LG 팬 대상 행사에서 개막전 첫 타석에서 초구를 칠 것이냐는 임찬규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적이 있다.[12] 박건우, 민병헌 등이 있지만 박건우는 이번 시즌 들어 보살이 적으며 민병헌은 장타력이 회복이 안 되고 있다.아마 이형종의 기복을 우려해 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