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음반
1. 개요
'''장시간 음반'''(長時間音盤)은 음반 포맷으로 하나로, Long Playing Record를 줄여서 LP 음반이라고도 한다. 당시의 널리 쓰이던 SP(Standard Playing Record)나 EP(Extended Playing Record)등에 비해 훨씬 긴 재생시간을 가지고 있어서 LP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발표된 1940년대 말의 센세이션은 DVD가 블루레이로 업그레이드된 것에 비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크기는 지름 12인치(30cm) 내지는 매우 드물게 10인치고, 무게는 일반적으로 110 ~ 180 g 정도이다.[5] EP, LP 등 레코드 판의 재질이 비닐(플라스틱)로 제조되므로 영어권에서는 모두 바이늘 레코드(Vinyl Record)라고 일컬어서 부르며[6] 국내에서는 LP가 주로 유통되었으므로 LP가 레코드 판의 대명사가 되었다. LP가 진화한 것이 CD이다. 레이저디스크[7] 는 CD기술로 진화한 것이다.
LP는 말 그대로 장시간 음반이라는 뜻이지만, 제대로 된 싱글 시장이 없었던 대한민국 내에서는 EP나 7인치 싱글까지도 포괄해서 LP라고 부르고 레코드판과 LP, 바이늘을 동의어로 쓰는 경향이 있다. 다만 EP는 엄연히 규격이 다르므로 구분해야 한다.
EP가 원래는 음반 매체의 이름이었다가 이제는 매체와 관계 없이 수록곡이 4~7곡인 음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과 비슷하게, 해외에서는 CD건 디지털 음원이건 관계 없이 정규 앨범을 그냥 LP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2. 역사
2.1. 연구와 개발
직경 25cm SP가 한 면 당 3분, 30cm SP도 4분 30초를 넘기기 힘들던 수록 시간에 대한 불만은 이미 SP가 한창 장사가 될 무렵부터 있어왔다. 이 때문에 수록 시간을 늘이기 위해 온갖 개량과 실험이 행해졌는데, 이들 중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1931년에 미국의 RCA 빅터에서 음반 회전수를 종래의 78rpm에서 33rpm으로 떨어뜨려 한 면당 15분 정도 녹음이 가능한 디스크를 내놓아 화제가 되었는데, 이것도 재질의 한계와 재생 시간 연장으로 오히려 축소된 녹음/재생 가능 주파수 대역, 음질 불량 등의 이유로 채 1년을 못넘기고 버로우했다.
이 실패를 직접 겪은 당시 RCA 빅터 사장 에드워드 월러스타인은 결국 회사를 퇴사해 콜럼비아 레코드로 이직했는데, 그러면서도 장시간 재생이 가능한 레코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당시 콜럼비아의 모회사였던 CBS의 기술연구소에도 월러스타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전자공학자 피터 골드마크가 있었는데, 골드마크는 월러스타인에게 연구와 개발을 승인해 달라고 했고 월러스타인도 바로 결재해 1941년에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시작될 무렵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미국이 2차대전 참전국이 되면서 갑자기 연구가 답보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전세가 호전되고 연합군의 승리가 확실하게 된 1945년부터 다시 제대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군수 산업과 연계된 중화학공업의 엄청난 발전으로 오히려 성공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다만 이 시기에 입안자인 골드마크는 컬러 텔레비전 개발 부서로 옮겨갔기 때문에, 월러스타인은 그 때 막 제너럴 일렉트릭을 퇴사한 기술자 빌 바흐만을 스카웃해와 연구와 개발을 재개했다.
바흐만은 전쟁 중 생산과 이용이 활성화된 새로운 고분자 물질인 플라스틱에 주목했는데, 플라스틱은 기존에 레코드의 제조에 많이 쓰인 일종의 염료 물질인 셸락보다 더 유연하고 가벼웠다. 그리고 고분자 물질인 만큼 좀 더 세밀하고 좁은 소릿결을 새겨넣어도 될 만큼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계속 실험을 진행했다. 특히 염화비닐수지(PVC)가 적합하다고 여겨졌고, 이와 병행해 정밀하게 소릿결을 새겨넣을 수 있는 프레스 기기와 좀 더 가벼운 픽업의 개발도 병행되었다.
2.2. 발표
이렇게 해서 약 3년 뒤인 1948년 봄에 새로운 음반의 양산이 실용화 단계까지 올라갔고, 콜럼비아는 1948년 6월 21일에 뉴욕의 월도프 아스트리아 호텔에서 Long-Playing Record, 약칭 LP의 발표와 시연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 시연회에서 기술 설명과 시연을 담당한 이는 실질적으로 LP 연구와 개발을 주도한 바흐만이 아니라 골드마크였고, 덕분에 사람들은 골드마크가 LP를 개발했다고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훗날 월러스타인은 '골드마크가 아이디어를 냈고 연구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LP 개발을 한 사람은 바흐만이다'라고 밝혔다.
어쨌든 골드마크는 발표회장에서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긴 수북한 SP 더미들과 자신이 품에 안은 LP 레코드들을 비교해 보여주고는 '이 SP들은 제가 안고 있는 새 음반들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라면서 LP의 우월한 재생 시간을 선전했고, 또 시연회에서는 SP보다 월등히 향상된 음질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기존의 SP가 최종 개량 때까지 30~12000Hz까지만 녹음/재생이 가능했던데 비해, 이 LP는 15000Hz까지 고음역대를 넓혀 소리의 명료도를 한층 향상시켰다. 게다가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적은 신소재 덕에 표면 잡음도 엄청나게 감소해 듣기에도 훨씬 편했다.
SP 시절에는 거의 레코드 하나당 한 개씩 수시로 갈아줘야 했던 바늘 문제도 대부분 해결되었는데, 새로 선보인 LP 턴테이블의 바늘은 부식의 위험도 있고 내마모성도 떨어지던 종래의 철 같은 금속 대신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를 가공한 것이라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오디오 시스템의 발달로 사운드박스가 필요없게 되자, 손잡이와 지지대만 간단하게 달린 훨씬 가벼운 픽업으로 대체되면서 음반을 눌러대던 압력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콜럼비아는 발표회 후인 8월에 바로 시장에 LP를 내보냈고, 동시에 새로운 레코드 재생기(턴테이블)도 필코 사에 위탁해 발매했다. 다만 기존의 SP도 재생이 가능하도록 턴테이블에는 LP의 재생 속도인 33과 1/3rpm 외에 78rpm 기능도 그대로 들어갔다. 이 새로운 음반과 턴테이블은 엄청난 속도로 보급되었고, 1년 뒤에는 미국의 거의 모든 음반사가 LP로 음반을 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콜럼비아와 달리 라이벌이었던 RCA 빅터는 1949년 2월에 45rpm 음반을 내놓아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했는데, 이 음반은 재질이나 재생 기술은 LP와 거의 동일했지만 레코드를 꽂는 구멍이 도넛처럼 상당히 커서 '도넛 판'이라고도 불렸다. 한 면 당 재생 시간은 5분 가량이었는데, 음질은 확실히 SP보다 향상되었지만 한 장에 불과 10분 정도밖에 담지 못하는 수록 시간 때문에 결국 1950년 초에 LP를 주력 음반으로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45rpm 음반도 대중음악의 싱글 발매에 계속 쓰였고, 이후 EP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2.3. 보급과 전성기
LP는 발매 후에도 꾸준히 개량되었는데, 초기 LP는 한 면 당 수록 시간이 22분 30초 정도였지만 이후 버라이어블 피치 커팅이라는 신기술이 개발되어 30분 이상까지 수록이 가능하게 되었다.[8] 여기에 LP 발매 2년 전인 1946년에는 독일에서 압류해온 초기형 오픈릴 테이프 녹음기인 마그네토폰의 개량형이 미국에서 실용화되었고, 예전처럼 원판에 직접 녹음하느라 삑사리 등의 실수를 수정하려면 판을 새로 갈아서 녹음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그리고 1950년대 중반에는 스테레오 녹음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LP와 SP의 위치는 넘사벽으로 벌어졌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음반임에도 제작 단가나 과정은 오히려 SP보다 저렴하고 간소화되었고, 이 때문에 종전에 음반 제작과 판매를 주저하던 군소 음반사나 뉴비 음반사들도 쉽게 레코드를 제작해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흥한 회사로 필립스가 있었고, 이외에도 웨스트민스터나 콘서트 홀, 레밍턴, 복스 등 수많은 음반사들이 난입해 엄청난 양의 음반들을 쏟아냈다.
또 재생 시간의 연장 덕에, 그 동안 음반화가 매우 더뎠던 오페라의 전곡 음반도 LP가 발명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발매되기 시작했다. 특히 연주 시간이 평균 3~5시간에 이르러 SP로는 수십 장이나 필요한 바그너의 후기 오페라들이 큰 혜택을 입었고, 그 동안 채산성과 음반 숫자 문제로 녹음되지 못한 여타 대규모 작품들이 계속해서 음반으로 나왔다. 연주 시간이 10~30분 혹은 그 이상에 이르는 대규모 모음곡들을 발표하던 재즈 빅 밴드의 본좌 듀크 엘링턴도 LP의 발매 후 해당 작품들을 재녹음했다. 팝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프랭크 시나트라의 In the Wee Small Hours가 12인치 LP 발표된 이후, 팝계에도 정규 앨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반에는 패전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독일과 일본에서도 LP의 제작과 유통이 시작되었고, 이후 SP는 끝없이 매출과 생산이 줄어들면서 1963년 경 전세계적으로 생산이 중단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LP는 그 이후에 도입된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음반 포맷의 대표 격으로 거의 40여 년을 군림했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 초중반에 최초로 국내 생산을 시작했고, '''몇곡 안 들어가는 SP나 EP보다 더 곡이 많이 들어가는 LP가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SP와 EP생산은 찬밥신세가 되고 LP생산이 '''국가 주도하에'''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비록 EP가 수록 시간 때문에 맥을 못췄다고 해도 싱글용 음반으로 계속 살아남은 것에 반해, 이러한 편견은 결국 한국의 EP 시장을 고사시킴과 동시에 싱글 음반이라는 존재 자체를 희귀하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대중음악 음반을 주로 발매하는 음반사들에서는 오직 타이틀 곡 뽑는 데 혈안이 되어 다른 앨범 수록곡들을 듣보잡화하는 괴상한 관행이 퍼져나갔고, 이 여파는 전체적으로 대중음악 시장의 기형적인 성장이라는 악영향으로 돌아왔다. 물론 세기가 바뀐 뒤에는 MP3 같이 곡 단위로 구입 가능한 디지털 음반 시장이 주류가 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이다.
2.4. CD, MP3,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과 쇠퇴
아무리 LP가 SP보다 우월했다고 해도, 이 새로운 음반에 대한 청자나 평론가들의 불만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SP의 셸락보다 훨씬 가볍고 유연하며 충격에 강한 염화비닐 수지를 소재로 만들었다고 해도, 그 유연성이 오히려 단점이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질이 나쁜 바늘로 재생하거나 실수로 픽업 바를 레코드 표면에 긁었을 때 흠집도 잘 나고, 열에도 약해 난로 옆에 실수로 뒀다가 시망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합성수지의 원죄라고 할 수 있는 정전기 때문에 음반 표면에 먼지가 너무 쉽게 달라붙고, 심지어 소릿골에 박히는 경우도 다반사여서 아무리 공들여 닦고 틀어도 가끔씩 튀는 잡음이나 바늘과 음반의 마찰로 생기는 필연적인 surface noise(표면 잡음)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녹음과 재생 기술의 발달은 LP의 이러한 단점을 오히려 강조하는 모양새를 낳았고, 결국 기술자들은 LP의 바늘이나 카세트 테이프/비디오 테이프의 헤드 같이 음반이나 영상물 표면에 특정 물체가 직접 접촉해 마찰하는 식으로 소리를 읽는 기존 방식 대신 간접적인 재생 방식을 계속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1980년대 초반에 CD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LP와 EP는 꾸준히 내리막을 걷게 되었다. 아무리 초기 CD와 그 플레이어의 값이 비쌌다고 해도, 음반의 크기와 음질, 잡음의 현저한 감소와 재생 가능 음역의 확대, 수록 시간의 증가[9] 라는 이점은 LP 등 기존의 음반 포맷을 버로우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디지털 녹음의 보급과 함께 LP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최신 녹음들이 CD로만 나오는 등, LP의 입지는 굉장히 좁아졌다.
하지만 82~80년도 중반에 마이클 잭슨의 전설적인 음반 Thriller의 영향으로 LP가 잠깐 소생하는 듯 했으나, 반짝하는 정도에 그쳤다.
결국 LP의 생산량은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가파른 내리막을 걷게 되었고, 세기가 바뀐 뒤에는 그냥 한정판 음반의 제작 정도에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도 1994년을 끝으로 CD,TAPE와 같은 메인 매체로서의 LP생산은 막을 내렸고, 2004년에 마지막 LP 공장을 운영하던 서라벌레코드가 사업을 접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공식적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후 2012년 한국에서 LP팩토리라는 기업이 출범해 LP 생산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2015년경 폐업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유행세를 타게 되면서 2017년 6월, 새로운 LP공장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마장뮤직앤픽처스다. 홈페이지 본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장은 성동구 성수동, 래커 커팅 스튜디오는 성동구 마장동에 있다.
최근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탄생하여 '''CD마저 입지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와 mp3, flac 파일 등이 붐을 일으켜 CD 음반 판매율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010년대 이후 K-pop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오히려 음반 시장이 다시 확장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사인회나 랜덤 포토카드 등 프로모션 요소가 가미되어 굿즈의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같은 앨범을 여러 버전으로 발매하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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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가다 LP 내지 CD 모양의 음악 플레이어 앱 아이콘이 존재하는데, 2000년대 후반 태어난 아이들은 음악 앱이 왜 저런 모양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10] 참고로 위의 앱은 Phonograph이다.
이렇게 잊혀져 가는 LP이지만 아직도 소수 매니아층에선 이를 즐겨듣는다.
3. 현재의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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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아직도 연간 460만장의 LP 음반이 팔리고 있을 정도다. 이는 힙스터 문화와 관련이 높은데, 10년 넘게 백만장 근처를 왔다갔다 하던 연간 LP 총 판매량이 2007년 이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13년에는 무려 6백만장을 찍었다. 참고 전체 음반판매량의 2퍼센트 정도만을 차지하는 수치이지만 눈여겨볼 만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유럽도 비슷해서, LP판만을 취급하는 음반가게가 힙스터, 인디 문화 성지와도 같은 런던, 베를린 등에 존재하거나 2010년대 들어 인디 레이블에서는 LP 버전의 앨범만을 내는 경우가 잦아지기도 하는 등, 인디판에서 상당한 떡밥(?)인 것은 사실. 미국내 판매량은 2019년에는 1884만장을 팔아, 닐슨 사운드 스캔에서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심지어 33년만에 cd판매량을 넘은 것으로 추측된다.(추측인 이유는 국내 기사에서는 정확하게 통계가 잡히기 전인 1월달에 기사를 냈기 때문이다.기사)
그래서 아직까지 LP 수집가들의 수는 무시못할 정도로 많고, 중고음반 시장에 유통되는 LP의 양과 가짓수도 상당히 많다. 복고 열풍으로 2013년 국내 유일의 LP 생산 기업이었던 LP팩토리(2014~2015년경 폐업)는 연간 3만장을 생산했다. 2017년 6월 마장뮤직앤픽처스 LP 공장에서 다시 생산 개제, 조동진 6집 '나무가 되어', 요한나 마르치 '바흐 :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3종' 등 가요, 팝, 클래식, 재즈, 국악 LP 타이틀들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인디밴드 뿐만 아니라 해외의 유명 가수나 밴드들도 LP를 출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차별화 때문인지 한정판으로 출시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 감상을 위해 구입하는 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심미성을 위해 대부분 컬러 LP로 생산된다. 어차피 CD도 이제는 음악 감상 매체라기보다는 소장용&커버 감상용이 되었는데, 기왕 소장할 거면 음반 커버아트를 더 큰 사이즈로 볼 수도 있고 멋도 나는 LP를 소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인디 밴드들도 LP판을 소량 찍어내기도 한다.
2016년 국내의 LP 판매량은 28만장, 매출액은 98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아날로그 음반의 부활… "아이돌 'LP'도 곧 나올 것"
SP와 마찬가지로 생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몇몇 음반들의 경우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경우도 많은데, 이 때문에 몇몇 LP 수집가들은 적게는 몇십 만원, 많게는 천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음반 한 장의 구입에 쓰기도 한다. 특히 LP 초기에 난립한 군소 음반사들 중에는 회사의 파산 등으로 원본 녹음 테이프의 소재가 불명확하거나 심지어 파기된 경우까지 있어서, 이들 녹음을 들으려면 LP 외의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까지도 있다(...). 심지어 이건 한국 뿐만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편이다. 한국보다는 덜하지만... 이 경우 상태 좋은 LP를 디지털화해서 올려놓거나 CD로 재발매하는 경우가 많다.
CD의 보급 이후에도 턴테이블과 함께 디제잉의 필수요소이기도 해서 DJ들이 LP를 구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쓰기도 했는데, 이것도 컴퓨터 음악과 편집의 발달로 인해 입지가 굉장히 좁아졌다. 2011년 3월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 소재한 클럽 중 DJ 박스에 턴테이블이 설치되어 있고 최소한의 방진 대책까지 마련해둔 클럽은 다섯 곳을 넘지 못한다고 기록되었다. 서울이 이 정도면 다른 지역의 클럽과 나이트에서 LP 디제잉은 전멸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며, 심지어 소규모의 저예산 클럽들을 위주로 보급된 CDJ(DJ를 위한 CD플레이어)마저 퇴출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11] 이것은 애플의 맥북과 에이블튼 라이브로 대변되는 랩탑 디제잉의 영향으로 보인다. 물론 힙합쪽의 턴테이블 리스트 들은 아직도 LP와 턴테이블을 쓰긴 한다. CDJ로도 스크래치를 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다른 게 많다.
라디오 방송에서 가끔 LP를 틀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LP를 턴테이블에 얹어 그대로 재생하는 경우도 있지만[12] 대부분 방송사고의 위험 때문에 LP의 소리를 다른 매체에 옮겨담은 것을 사용한다.[13] 특히 KBS처럼 방송국에서 자체적으로 LP를 재생해 잡음을 최대한 제거한 뒤 wav 파일로 변환시켜 하드디스크나 CD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재생하는 경우도 있다.
KBS 2FM 나얼의 음악세계(매일 새벽 2~3시)는 LP 음반을 방송국에 있는 턴테이블로 직접 틀어주지만 문제는 녹음방송이라는 것(...).[14]
SBS 파워FM의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매일 오후 10~12시)에서는 매주 수요일, 양평 LP바라는 코너를 운영중인데 장기하와 얼굴들의 객원 멤버인 하세가와 요헤이 본인이 수집한 LP를 직접 틀어주는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이 코너를 위해 SBS에서도 턴테이블을 구입했고 현재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시간 LP를 들을 수 있는 코너로서 본 방송의 간판 코너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KBS 1FM에서 오후 2시부터 방송되는 명연주 명음반이 주말 특집으로 LP 음반 수록곡을 송출하고 있다.
사실 아무리 생방송에서 방송국 턴테이블로 직접 LP 음반을 재생한다고 해도 직접 현장에 가서 방청하는 게 아닌 한 청취자가 최종적으로 듣게 되는 것은 방송국-송신소 간 전용회선망을 통해 256kbps급[15] 으로 손실압축된 디지털 오디오를 거친, '형식'만 아날로그인 FM음. '''결코 순수 아날로그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턴테이블을 컴퓨터 사운드카드에 직접 연결하여 곧바로 MP3 256~320kbps 파일로 녹음한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또한 2020년 기준으로 아날로그 송출 장비는 거의 없는데, FM 송신기 내부의 DSP가 신호를 만들어낸다. 이 신호는 양자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라기보다 디지털에 가깝다.[16]
LP 음반 중 대부분은 순수 아날로그 제작이지만, 2010년대 들어서 복각되고 있는 LP 음반의 상당수는 순수 아날로그이기 보다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샘플링 수준은 CD급인 44.1kHz 16비트급이 아닌 192kHz/96kHz 24비트급이다. 2000년 이전에 발매된 오리지널 LP 음반 중에 간혹 디지털(PCM) 방식의 릴 테이프가 마스터 테이프인 경우가 있다. 이건 한국에서 발매된 음반 사이에서는 없다고 보면 되고[17] , 선진국에서 발매된 일부 음반에서나 그런 경우가 있다.
아예 못 쓰는 레코드판은 오븐용 그릇에다 넣고 적당히 가열하면 그릇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 단, 뜨거운 것은 넣으면 그릇이 녹아 버리기 때문에 주의할 것. 이는 로하스[18]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에 로하스 운동가들이 많이 사용한 방법이며 스펀지(KBS) 298회에도 소개되었다. 물론 열에 약한 열가소성 PVC이므로 환경호르몬 문제가 있기 때문에 드라이플라워나 과일 정도만 담아두거나 화분받침 같은 장식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다.
LP를 즐기는데는 비용과 셋팅이라는 큰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현재 시장에서는 중고 턴테이블이 많이 유통되고 있지만 년식이 오래되어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아 수리비를 감안해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정확한 재생속도를 지닌 신품 다이렉트 드라이브형 턴테이블들은 대체로 30만원대 정도인데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아 직구해야 하며 좋은 음질이 보장되는 카트리지(바늘을 포함한 LP에서 소리를 읽어들이는 부분)는 10-15만원부터 시작한다. 이미 시작 단계에서 50만원 내외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외 올바른 셋팅을 위해 수평 맞추는 법을 비롯해 공부할 것과 노하우를 쌓아야 할 것이 많은 편. 현재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상당히 고비용을 요구하는 재생매체인 셈이다.
2019년부터 HD 비닐이 발매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HD 비닐의 경우 무조건 디지털 마스터를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아무래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듣는 과정이 번거로운지라, LP 구매시 MP3 다운로드 코드가 동봉되는 경우도 많다. 아마존은 아예 직영 판매처로 물리 음반 구매시 아마존 MP3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해준다(AutoRip). 단 한국에서 해외직구 시에는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4. CD와 바이닐 레코드의 음질
이들 애호가들 중에는 CD가 너무 날카롭고 딱딱하며 압축된 느낌의 음질인데 반해 LP는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며 LP를 고집하는 이들도 많다. 유명인 중에선 만화가 허영만이 있다.[19] 하지만 이에 대해 전체적인 음질은 CD가 LP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고, 레이저로 표면을 읽어서 깨끗한 소리를 뽑아내는 CD가 마찰에 의한 마모로 소리의 열화가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LP에 비해 나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들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LP 애호가들을 놓고 비과학적인 주장을 한다거나 지나친 추억팔이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LP 좋아하는 사람들은 CD는 디지털이라서 차갑게 들린다거나 원음을 왜곡한다고 까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CD와 LP는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음색 차이'''가 있다. 다만, 실제로는 LP가 특성상 원음 왜곡이 많이 된다.[20] 즉 왜곡된 것은 CD라기 보다는 LP쪽이며, '따뜻한 소리'란 '왜곡된 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디지털 음반 역시 에일리어싱과 양자화 잡음 같은 아날로그 음반에서는 있을 수 없는 고유의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유명 음악 프로듀서들 중에서도 아날로그 음원의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아날로그 및 디지털 음원의 음질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레코딩의 비교(위키피디아) 문서를 참고 바란다.
그리고 디지털 음원의 마스터링 관점에서 고려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CD나 MP3 파일들은 음반 업계의 트렌드인 '음량 전쟁(Loudness War)'에 대다수가 희생되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마스터링 작업을 할 때 불필요할 정도로 음량을 늘리고 컴프레서를 통해 다이내믹 레인지를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치 음질이 더 깨끗해진 것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 이퀄라이징을 통해 고음과 저음을 부스팅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작업 결과, 실제로 리스너가 듣기에 음원이 훨씬 덜 다이내믹해질뿐만 아니라 심지어 음이 뭉게지기[21] 까지 한다는 것이다.[22] 특히 리마스터를 할 때, 이런 고음량의 앨범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고음량 앨범 제작을 옹호하는 마스터링 엔지니어 입장에서 고음량 앨범은 전체적인 음량을 높이면서 노이즈 필터를 거치므로 다이내믹 레인지(SNR)가 오히려 개선된다. 저음량 앨범을 재생할 때 앰프를 통해 고음량 앨범과 같은 볼륨 수준으로 맞추면 저음량 앨범의 노이즈가 고음량 앨범의 노이즈보다 더 커지므로 당연한 소리. 즉, 고음량 앨범 제작 행위 자체가 다이내믹 레인지를 개선한 것이므로 음량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고음량 앨범이 거시적인 다이내믹 레인지를 보존하고 있고 저음량 앨범에 비하면 오히려 개선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이지만, 고음량 앨범은 미시적인 다이내믹 레인지를 컴프레서 등으로 손상시키기 때문에 청자가 이를 직접 느낄 수 있고, 따라서 음질이 저하되었다고 느낀다고 재반박되고 있다. 따라서 음량 전쟁과 음질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음량 전쟁으로 인한 고음량 앨범이 음질을 실제로 손상시킨다는 의견이 학술적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미시적인 다이내믹 레인지라는 개념을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덕분에 외국 포럼을 서핑하다 보면 리마스터 음반의 향상된 음질을 기대하고 구매하여 들어봤더니 음질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쓰레기가 됐더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2000년대 중반에 가장 심화되어 가요나 팝, 록 뿐만 아니라 재즈 음반에서도 확산되는 추세였고 2010년대 초중반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음량 전쟁 이슈가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마스터링 엔지니어들도 다이내믹 레인지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하였고, 지나치게 볼륨이 높은 마스터링을 자제하게 되면서 음량 전쟁 이슈도 수그러들게 되었다.
물론 링크된 영문 위키백과의 음량 전쟁(Loudness War) 문서에서 예로 나오는 ABBA 의 Super Trouper 음량 분석을 보면 1980 년 LP 판의 경우 peak 수준을 한참이나 남겨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좁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LP 같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날로그인 시스템은 (고급 시스템이 아닐 경우) 음량을 기호에 따라 크게 맞출 경우 덩달아 잡음 문제도 커진다. 즉, 이 경우는 SNR이 너무 작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음반의 SNR이 작으면 음질이 좋지 않은데, 이를 개선하겠다고 지나칠 정도로 SNR을 높이면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Loudness War가 주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LP에 담긴 음악들 역시 '음량 전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LP 특성상 음량을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CD가 주요 음반 매체가 된 90년대 그 이전에는 음량 전쟁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따라서 LP의 경우 전체적인 음량 자체는 작을지언정 실제 연주를 거의 그대로 담아 다이내믹 레인지가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LP도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재발매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다이내믹 레인지는 CD에 비해 잘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음량 전쟁에 희생된 특정 앨범을 사랑하는 팬들이 CD나 mp3를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며, 해당 앨범을 LP로 구매해서 듣는 케이스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실제로 음량 전쟁의 대두는 장기 침체 중이던 LP 레코드 산업 시장이 2010년대 이후 다시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런데 사실 '실제 연주를 거의 그대로 담아 자연스럽다' 는 내용의 경우 옛날 옛적에 발매된 LP 판 한정이다. 그때야 사운드 프로세싱 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으니, 한 방에 악기 연주자랑 가수랑 다 집어넣고 공연을 거의 그대로 녹음해서 약간의 볼륨 조정만 한 후 LP 판으로 찍어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그렇게 음반을 만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것은 다이내믹 레인지나 음질의 문제가 아니라, 원음을 살린 공연실황(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느냐 vs. 부분 녹음과 사운드 프로세싱을 통해 저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한 완벽한 결과물을 추구하느냐의 접근법 차이일 뿐이고,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후자가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원음 중심의 아날로그 LP 역시 최근에 신규 발매되는 LP 판들은 대부분 걸러야 한다. 아무리 LP 가 다시 유행이라고 한들 여전히 전체 시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LP 만을 위해서 녹음과 후처리를 별개로 한 경우는 드물 것[23] 이고, 대부분 똑같이 사운드 프로세싱을 거친 결과물에서 LP 의 좁은 다이내믹 레인지를 고려해서 클리핑이 나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불륨만 낮췄을 것이기 때문이다.
5. 보관과 관리 시 주의사항
LP의 표면 잡음은 재생하기 직전에 초극세사 천에 전용 세정액을 살짝 적셔서 닦아주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전용 세정액이 없을 경우, 새로 붙는 먼지를 방지하는 기능은 없지만 그냥 깨끗한 물로 닦아도 된다. 간혹 목공풀을 이용해서 먼지를 없애기도 하며 효과는 좋지만 실패시 음반하나를 날려 먹기 때문에 큰 주의가 필요하다. 먼지가 많은 LP를 그대로 재생시킬 경우, 소리만 지직거리고 끝나는게 아니라 바늘이 소릿결을 따라 움직이는 것까지 방해해서 음반과 바늘 사이의 마찰을 심하게 일으키거나, 심할 경우 퍽 튀며 소리를 씹게 만들기도 하므로 원칙적으로 피하는게 좋다.
또 CD보다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휘어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똑바로 세워두지 않고 벽이나 책장에 기대어 둘 경우 장기적으로는 판이 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판이 휘면 재생 시 바늘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좋은 판 다 긁어먹으니 무거운 것으로 눌러 가열해 어느정도 복원해 주는것이 좋다. 커버가 종이이므로 습기와 곰팡이에 취약하고, 벌레가 꼬일수도 있다. 관리를 정기적으로 해 주자. 속지는 종이와 비닐 두 타입이 있는데, 종이 속지는 주로 80년대 초반까지 흔했으며 그 뒤로는 서서히 비닐 속지로 바뀌었다. LP매니아들을 경악시킨 손상으로는 투명한 PVC 재질의 LP 보호 커버와 LP음반의 접촉으로 인한 화학반응이 있었다. 이것은 표면의 화학반응 때문에 회복 불가능한 잡음을 낳게 된다. 매니아들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음반에 커버를 씌웠기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컸다.
반면 LP 자체는 웬만해서는 소리가 난다. LP가 아무리 더럽고 기스가 많아도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소리가 잘 나는 경우가 많으며 튀는 음반도 적당히 닦아주거나 하면 넘어갈 수 있다.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음반 전체를 못듣게 되는 CD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면도 있다. 단 표면이 더러운 경우 매니아들 사이에서 가치가 하락하므로 잘 관리하는 것이 당연히 좋다. 또 CD는 부식되는 경우도 있어 장기 보관이 어렵지만 LP는 60년대 중반 양산 이후 만들어진 LP들은 지금도 일상적인 청취에 아무 문제가 없다.
LP는 CD에 비해 확실히 뭐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힘들다. 종이 케이스 귀퉁이도 CD보다 훨씬 얇아서, 여러 장을 두껍고 튼튼한 케이스에 담은 오페라 전곡반이나 여타 전집류가 아닌 낱장의 경우 수록곡이나 연주자도 작은 글자로 인쇄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도 주의해야 한다. 이걸 대단찮게 여기고 아무렇게나 쑤셔박다가 좀 규모가 큰 LP 가게나 집의 LP 보관용 장에서 자기가 듣거나 구입하고 싶은 음반을 쉽게 못찾아 한참을 꺼내고 집어넣고 하는 생고생을 하기 십상이다. 소장자 나름의 분류방법을 잘 고민해서 관리해야 한다. 예전에 방송국 등에서는 작곡가별이나 장르별, 연주자별 등으로 분류한 견출지를 살짝 튀어나오게 붙여서 관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6. Lp 관련 커뮤니티
Dcinside의 마이너 갤러리. Lp 관련 커뮤니티 중 평균 연령대가 가장 젊다. 올라오는 장르는 흑인음악, 일본음악(시티팝), 한국 대중음악, 록, 재즈 등등 굉장히 다양하다. 턴테이블 구매 관련해서나 음반 관련해서 뉴비에게 친절히 대해줘 이것저것 물어보면 열심히 알려주며, 특히 선 검색 후 질문하면 더욱 좋은 답변을 기대할 수 있다.
[1] 지금은 해체한 일본의 테크노 팝 밴드 P-MODEL의 1집 앨범인 'IN A MODEL ROOM' (1979) 앨범이다.[2] 해당 앨범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이다.[3] 참고로, 얇은 필름에 소리골이 새겨지는 방식이라서 픽쳐 디스크는 일반 LP와 비교해서 음질이 떨어진다.[4] 레이저 턴테이블은 이론적으로는 바늘로 재생하는 턴테이블의 온갖 단점들을 보완해준다. 그러나 레이저 턴테이블은 음반의 그루브 사이의 먼지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다. 먼지가 전혀 없다면 바늘로 읽는 턴테이블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깔끔한 사운드를 자랑하지만, 먼지가 조금만 끼어있더라도 거의 음악 감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음질이 저하된다. 따라서 레이저 턴테이블로 음악을 재생할 때에는 반드시 음악 감상 전에 먼지를 거의 완벽하게 제거하여야만 한다. 심지어는 새 음반을 막 개봉하였더라도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는 먼지를 일단 제거해야 할 정도이다. 실제로 ELP社는 음악 감상 전에 LP 전용 진공 청소기로 먼저 음반을 반드시 철저하게 닦아 먼지를 거의 완벽하게 제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런 까다로운 단점과 지나치게 비싼 가격 때문에 레이저 턴테이블은 LP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5] 보통 140 g이 일반적이며, 중량반의 경우에는 180~210g이다. 일반적인 10인치 디스크가 110 g 정도 한다.[6] SP의 경우 shellac이라는 재질로 생산되었다.[7] 메카니즘은 다르지만 판의 크기는 동일하다.[8] 대신 한 면 당 30분 이상의 곡을 수록할 경우, 그루브 사이 간격이 지나치게 줄어들기 때문에 음질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타협하여야만 해서 음질이 저하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LP 레코드 디스크 하나는 러닝타임이 5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음질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코미디 앨범 같은 경우에는 한장에 70분 이상 녹음을 하기도 한다. 실제 어느 바이늘 마스터링 엔지니어의 말을 인용하면 일반적으로 음질을 타협하지 않는 선에서 한 사이드당 최대로 수록할 수 있는 시간은 18분 정도라고 한다. 18분이 넘어갈 경우 초과 분당 1 데시벨 정도의 손실이 생긴다고 한다. 참고 바람[9] 기본 74분이었으나 트랙 간격을 좁히고 미세화하면서 80분까지 늘어났다. 디지털 방식의 기록이라 LP와 달리 음질 저하도 없었다.[10] 이 점은 디스켓도 마찬가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는 오래지만, 지금도 수많은 프로그램들은 "저장"을 뜻하는 아이콘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왜 디스켓이 저장을 뜻하는 아이콘으로 쓰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같다고 한다.[11] 정확히 말하자면 "CDJ" 장비가 퇴출되는게 아니라 "CD"가 퇴출되는거다, USB를 저장매체로 쓸뿐이지, 여전히 Pioneer 사의 CDJ시리즈는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클럽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탠다드 장비이다. 그리고 CDJ를 잘못이해한 거 같은데, CDJ는 클럽스탠다드 장비인 만큼 소규모의 저예산 클럽을 위주로 보급된 장비가 아니다. 물론 보급형 CDJ도 있긴 하지만 2016년 기준, 주로 클럽 스탠다드라고 한다면 고가의 CDJ2000nxs, CDJ 2000, nxs2를 지칭하기 때문. 오히려 DDJ SX2 같은 하이엔드 컨트롤러가 소규모의 저예산 클럽들에 더 적합한 장비다.[12]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렇게 틀어준다.[13] 실제로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에서 45RPM EP 앨범을 재생할 때 턴테이블 세팅을 33 1/3 회전에서 바꾸지 않아서 늘어지는 음이 나간 방송사고가 있었다(...) 조금 재생 후 바로 깨닫고 속도를 바꿔서 넘어갔다.[14] KBS의 경우 녹음방송은 48kHz 16비트의 비압축 웨이블 파일이다. 그리고 방송국-송신소 간 회선망은 APT-X 코덱.(256kbps급)[15] 보통 APT-X 코덱이 많이 쓰인다.[16] 물론 양자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아날로그는 맞다. 특히 LPF를 거치기 때문에 거친 고조파 왜곡은 대부분 소멸된다.[17] 1990년대까지는 한국에서는 CD로 발매되는 일반 대중가요 음반의 마스터 테이프가 아날로그 방식의 오픈릴 테이프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1994년에 발표된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의 마스터 테이프는 아날로그 릴 테이프이다.[18]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 사회적 규모로 웰빙을 추구하는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19] 식객을 통해 "시디는 차갑고 레코드는 따뜻하다"란 말을 많이 했다. 인터뷰한 사람의 의견을 그냥 옮긴 걸 수도 있다.[20] LP에 쌓인 먼지, 그리고 그걸 읽는 바늘 등 원음 왜곡할 게 CD보다 많다.[21] 클리핑이나 디스토션을 의미한다.[22] 극단적인 예시로 Red Hot Chili Peppers의 Californication과 Metallica의 Death Magnetic이 곧 잘 인용된다.[23] 실제로 아날로그 마스터 판을 구하려는 LP 애호가들이 많은 편이다. 새로 찍어내는 음반 중 그러한 판은 매우 드문 편이며, 새로 찍어냈음에도 아날로그 마스터링을 거친 음반인 경우 아예 그러한 정보를 대놓고 홍보하는 음반도 있다. 심지어는 트리플 A 판이라고 해서 레코딩과 믹싱, 마스터링 3가지 프로세스 모두가 아날로그 방식임을 천명하는 음반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