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세대

 

1. 개요
2.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
2.1.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강조하는 세대
2.2. 기성세대
2.3. 투기 신봉
3.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4. 일본의 단카이 세대
5. 중국의 베이비붐 세대


1. 개요


戰後世代 / Post-War Generation
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를 일컫는 말.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6.25 전쟁 이후, 유럽미국,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태어난 세대가 이에 속한다.[1] 다만, 전쟁 이후 경제난이 한창이던 때에 태어나 고생한 세대는 넣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전후 세대는 '베이비 붐' 세대이기도 하다. '베이비 부머'라고도 부른다. 베이비 붐이란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뜻하는 용어다. 어느 나라든 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2.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


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74년 출생자 1758만 여명을 가리킨다.[2] 특히 58개띠가 유명한 편이다.
에코붐 세대를 자식으로 두고 있으며, 이들과 86세대를 합치면 대략 1200만 명 정도로 대한민국 인구의 1/4 수준이다.

2.1.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강조하는 세대


이 세대의 사람들은 대학 진학률은 높지 않았지만[3] 이 세대의 자녀들은 2009년 기준 남녀 모두 대학 진학률 80%를 넘기게 되었다. 이들이 공업고등학교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엘리트들이 회사 임원이나 은행 임원으로 분포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에서 대학 진학은 곧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의미했다. 이 인식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서 부모가 된 베이비 붐 세대는 거의 모두가 자녀에게 대학 진학을 절실하게 갈구하고, 사람을 평가하는 베이비 붐 세대 사람들도 이 인식은 마찬가지라 학력의 정도가 생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학 진학 여부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평가 받는다. 때문에 대학 입학의 기준이 되는 시험인 수능은, 이 시험 하나를 위해 한국 사회의 교통이 올스탑 할 정도의 대사건, 연례행사이다. 본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수능에 지각하는 학생을 위해 움직일 정도로, 한국 사회는 때로 기묘하고 극단적으로 학력을 위해 움직인다. 입시위주교육 참고. 또한 한국은 세계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물론 학교를 잘 나오면 나쁠것은 없으나 학력 인플레, 혐오에 가까운 중소기업 비선호 현상[5], 실무 역량 위주의 채용 문화가 생기면서 대학을 잘 가면 다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고졸, 전문대졸이 틈새시장으로 낮은 경쟁률로 더 취직이 쉽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짜피 대졸자들도 취직이 힘들어서 고졸, 전문대졸이랑 비슷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럴바엔 빨리 졸업해서 어린 나이로 연차쌓는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

2.2. 기성세대


제5공화국의 폭정이 심하던 시절엔 국가 개혁을 외치며 급 진보적인 성향을 보여주었고, 이후 이들의 활약으로 민주주의가 바로서고 사회 구조가 안정화 되자 정치 성향이 중도우파 쪽으로 기울었다. 이들보다 조금 앞선 세대인 노년층은 대개 우파, 일부는 극우 성향을 보인다.
경제-사회-정치적으로 대세인 기성세대이다. 사람이 많아서 이들의 성향에 따라 정치권은 움직일 수밖에 없고, 투표율도 청년층보다 훨씬 높다.[6] 경제적으로도 청년 및 노년층보다 안정화 되어 있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큰 인구 비율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성장시켰고, 한국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대표적 기성세대로서 주축을 이루고 있다. 다만 전후 세대라는 어려운 성장 환경과 헝그리 정신, 보상 심리의 부작용으로 여러 악습을 만들기도 했으며, 이들이 노년층으로 접어들 날이 다가오는 탓에 청년층의 부담 중 하나가 되어 청년층에게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국민연금 문제인데, 국민연금은 베이비 붐 세대가 다 받아가고, 청년층은 돈은 돈대로 냈는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할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크다.[7]

2.3. 투기 신봉


전후 세대가 노년층이 되었을 때 청년이 짊어지는 부담이 크긴 하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하고 오히려 전후 세대가 만들어내고 고착화시킨 한국의 악습이 훨씬 큰 비판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부동산''' 문화. 베이비 붐 세대가 너도나도 부동산에 투기를 하면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집값 폭등 현상은 한국의 암 덩어리다. 오르기는 마구 치솟는데 내리는 건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발악을 해도 안 내려간다. 집을 사는 곳(live)이 아니라 사는 것(buy)으로 만들어버린 세대가 전후 세대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아파트의 값은 서울 기준으로는 3~4억원.[8] 어느 정도 일자리가 있는 지방도 1억 중반을 기본으로 한다. 대기업에 취직해 저축을 이어가더라도 필수생활비를 제외하고 한푼도 쓰지 않아야 6년 정도에 지방에 있는 아파트를 부채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월세를 살자니 월세 비용이 치명적이다.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는데 바늘 꽂을 공간만 겨우 마련된 쪽방에서 월세를 30~50만원씩 내면서 사는 청년층이라면 기성 세대에 대한 분노와 회의감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집세로 이익을 볼 목적으로 집을 구매하여 확실히 본인의 재산이 된 집을 이용해 수익을 내는 것이니 '목돈 내고 집 산 다음, 별다른 지출 없이 고정적인 불로소득을 벌기 위해', '재테크' 하기 위해 청년층의 경제력을 노동 생산성만 남겨놓고 싹싹 긁어먹고 있는 것이다. 기성 세대 입장에선 '''돈이 돈을 버는 것'''인데, 이들이 기를 쓰고 차지하려는 '돈이 돈을 버는' 부동산 수익이 당장 거처가 필요한 청년층의 의식주를 딱 굶어죽지 않을 정도까지만 갉아먹는 짓이기 때문에 현재 청년층의 추진력이 부족함은 기성 세대의 투기 문화를 빼고 논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짓을 빚까지 져가며 하느라 하우스 푸어가 양산된다. 사실상 베이비붐 세대가 자기 목을 걸고 부동산을 쥐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건드리기도 힘들다. 정부가 버블을 터뜨리려 하면 죽는다 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펀드를 비롯한 은행 파생상품도 정확한 조사 없이 하나쯤 들어놓자는 식으로 선호하며, 심지어 투자가 붙어 있는 보험상품까지 나오는 등 베이비 붐 세대는 투자를 빙자한 투기를 정말 선호하는 세대이다. 주식, 비트코인 등, 온갖 투기 상품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수많은 베이비 붐 세대가 개미떼처럼 모여들어서 관심을 갖는다. 돈이 돈을 벌어다 준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냐만, 무엇보다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인도 아니고, 경제적 지식도 전문인이 아닌데, 자칭 전문가들의 사탕 발린 말에 혹해 마냥 도전해보는 경향이 강하다. '''겁도 없이''' 돈 놓고 돈 먹기를 믿는 것이다.
주식 투자(펀딩)는 '너한테 돈을 줄테니, 나중에 성공하면 내가 준 돈 이상으로 갚아야 해' 개념으로 투자 대상의 경제적 활동력을 넓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부동산 투기는 '내가 가진 집을 빌리는 대가를 줘야 해. 난 이 집을 사는데 많은 돈을 투자했어. 그만큼 많은 돈을 내.' 개념이다. 자본의 흐름이 일방적이며 청년의 잔고를 빨아서 이득을 볼 뿐 청년의 경제적 활동력을 거세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순기능이 없는 착취다. 다른 투자와는 질적으로 다르며 국가 경제에 악순환을 일으킨다. 기성 세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들은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청년층의 미래와 가능성을 빨아먹어 통장 잔고를 채우고 있다. 이러면서 청년들한테 아프니까 청춘이다, 노력이 부족하다, 의지가 부족하다는 소리만 하며 타박이나 하고 있으니 청년들은 그들에게 분통이 터지고 속도 탈 수밖에 없다.[9]
대한민국에서 자살자 수가 가장 많은 세대이다. 특히 남성은 여성의 2배 수준으로 자살한다.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이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남성은 나이 및 이전의 경력과 무관하게 사실상 무가치한 존재로 평가 받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이며[10], 무한경쟁적 사회 특성상 복지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쩡쩡한 사전조사와 부족한 안목으로 자영업을 시작하거나 함부로 고위험 투자 상품에 거금을 투자하거나 사업을 크게 불리다가 폭삭 망해서 죽음을 택하는 사례는 흔해빠진 이야기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남성 자살자 수는 무려 여성의 2.6배나 되었다. 이는 경제적 무능력함에 대한 압박감과 상실감, 경제력 저하에 따르는 가정, 사회의 외면 때문으로 보인다. 나쁘게 말하면 자살공화국, 자국 혐오, 헬조선의 원인제공자이자 주범이고, 좋게 말하면 이 세대도 참 안타까운 세대이다. #

3.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Baby boomers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11] 소련을 넘어뜨리고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호황을 이끌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때 아이들이 얼마나 나왔는지 어떤 병원에선 복도에서 분만을 했을 정도다. 다만 세대 권역이 굉장히 넓어서 앞의 사람(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들은 징병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지만 뒷세대들은 징병제 폐지로 군대에 안 가기도 했다. 히피들의 상당수가 베이비부머들과 겹치고 펑크도 많다.
2010년대 들어서 일단 은퇴하고 있는데 사실 상당수가 은퇴를 미루고 있어 미국의 취업난을 가중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지탱하던 각종 연금 등도 이들이 빠지면 엄청난 손실이 예정된다고 할 정도. 코난 오브라이언2011년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식 강연에서 베이비부머들 덕분에 졸업생들의 취직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12]
2019년 들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청소년 사이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에게 고압적으로 굴 때 "OK Boomer" 라고 쏘아붙이는 밈이 뜨고 있는데, 예상되겠지만 한국의 틀딱 드립과 1대 1로 대응된다.[13] 게다가 '부머는 세대가 아니라 마음가짐(mindset)'이라며, 단지 정말 베이비 붐 세대에 해당하는 노년층뿐만 아니라 나이가 젊더라도 이들과 다름없는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boomer'라 불린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OK Boomer 문서 참조.

4. 일본의 단카이 세대


団塊の世代(だんかいのせだい)
일본에선 1차 베이비붐 세대라 하는데 종전 후인 1947년부터 1949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1947년에 267만 8792명, 1948년에 268만 1624명, 1949년에 269만 6638명이 태어나 3년 동안 806만명이 태어났다. 다만 타 국가와는 다르게 베이비붐은 3년 정도로 짧게 끝났고 좀 넓게 봐도 1953년생부터는 출생자수가 200만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14] 이후로는 베이비붐 세대에 끼어들지 못한다.[15] 한국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전체 인구구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단카이 이후 세대인 시라케 세대 중 50년대 후반 이전에 태어난 세대를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묶기도 한다.
386세대와 비슷한 점이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 사회운동의 동력으로 1940년대생 단카이세대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다만 대학 진학률이 15% 수준이라 모든 단카이 세대가 전공투 등의 운동권에 동조했다고 보기는 어렵고,[16] 이들이 본격적으로 유권자가 된 이후에 자민당의 득표율이 상당히 떨어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다란 정치적인 변혁이 일어났던것도 아니다.[17] 비권에 해당하는 논뽀리(ノンポリ,Non-Political)도 많았고. 다만 다른 세대에 비해 리버럴한 경향이 비교적 강하기는 하며 아사히 신문을 많이 읽는다.[18]
1980년대에 회사의 중간관리직에 오를 시점에 이들은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를 겪었다. 구매력도 갖춘 나이대에 버블까지 겹쳐서 소비는 실컷 해본 세대이고 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면서 버블경제의 종결과 사회의 우경화를 바라보게 되는 세대도 되었다.
2020년으로 단카이 세대는 모두 70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5. 중국의 베이비붐 세대


마오쩌둥은 다산을 장려해 베이비붐이 발생하고, 강력한 의료 정책으로 사망률이 급감하고 평균수명은 급증하면서 1982년에 3차 인구조사와 산아제한 도입 때에는 인구가 1950년 5억 5천만 명에서 10억명으로 증가한다. 게다가 공산정권 특유의 분배 시도와 집단화를 통한 생산력 증가가 수반됐기 때문이다.(대약진운동과 같은 대참사 시기 감소만 제외하면) 당시 세계 인구 대비 비율은 23%였다. 즉, 마오쩌둥이 1976년에 사망해서 약간 오차는 있지만 그가 집권한동안 인구는 30년만에 2배가 된 것이다.대약진 운동 직후 베이비붐이 정점일 때 1963년 출산율은 자그마치 6.50명까지 증가했고, 1950~ 70년대 초반까지 출산율은 4~6명, 출생아수는 2천 5백만명~ 3천만명 좌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60년대 후반에는 출생아 수의 절정기를 맞으며 0~4세 인구가 1억 4천만 명에 근접하던 시절도 있었다. 인도가 현재 출생아수가 2천 5백만명인데, 중국은 당시 현재의 인도 인구 규모보다 작았을 때 더 많은 출생아수를 기록한 것이다. 출산율 7~8명대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일부 중동 이슬람 국가와 사하라 이남 나이지리아와 같은 일부 다산 문화가 장려되었던 국가들이 기록한 수치였다.중국 베이비붐 포스트
[1] 따라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외국의 세대보다 5~10년 정도 더 어리다. 기준이 되는 전쟁이 외국은 2차 대전이지만 한국은 그보다 늦은 6.25 전쟁이기 때문이다.[2] 다만 공식기록상 한국의 최대 출생자는 1971년생들이다. 1970년부터 공식집계를 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임기 여성 수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71년도가 더 많아서 그런 것. 1971년생은 약 100만을 넘겼다.[3] 통계청에 따르면 1979년 기준 남성 29%, 여성 20% 수준이었다. 그 뒷세대긴 하지만 진학률에서 그리 큰 변화는 없는 386세대의 경우 대학생이 아닌 사람이 많아 386세대 담론이 엘리트적이란 얘기도 있다.[4] 실제 여성가족부는 본래 양성평등을 위해 탄생한 부서인 주제에 양성평등은 개나 줘버린지 오래고 지금은 남자들이 적용받는 규정을 여성도 동일하게 적용받는 것을 '''여성의 신체조건에 맞추지 않았으므로 성차별'''이라고 보는 진성 극 래디컬 페미니스트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5] 다만 이는 정부와 중소기업의 잘못도 의외로 꽤나 큰데, '''둘다 청년층의 요구 복지수준을 따라갈 재정적 능력 자체가 안되면서 그러한 현상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일절 않고 오로지 "청년 더뽑아라->그럴돈 없으니 지원금좀 달라->지원금 줄 돈 없으니 알아서 해라->배째라의 루트를 반복'''하고 자빠져 있으니, 청년실업 문제가 개선될 리가... 심지어는 저기서 정부가 지원금 줄돈 없는 것도 다 자기들이 다른 쓸데없는데(예를들어 지원금 줘봤자 별 효과도 없는 분야에 지원금을 퍼주거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신이 버렸음에도 그런 부서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조단위의 예산을 들이붓다가 욕만 먹거나[4] 하는거) 낭비 다 해놓고, 그걸 커버하기 위한 조치랍시고 하는게 국민들 더 쥐어짜서 세금 더받아 처먹을 생각만 하고 각종 국책사업 등을 통해 민간기업과 직접 경쟁할, 시대적 상황에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업종의 국영기업을 만들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함께 변화하는 형태로 경영하는 등의 합당한 방법으로 벌 생각은 안하니까 생긴 일인건 덤.[6] 다만 이때문에 정치권에서 청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고 전후 세대의 표만을 바라고 그들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어(특히 보수정당이 가장 심하다. 진보 정당 역시 전후 세대의 표를 중요시 여기는건 마찬가지다.) 당장에 필요한 진보적인 정책 실시와 만연해 있는 악습과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악법 폐지에 소극적으로 나온다. 이로 인해 한국은 세대 갈등이 심하며 청년층의 기성 세대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심하다.[7] 더 큰 문제는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보니 직업이 없는 청년층이 많아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8] 그나마도 재건축 안된 상태로 노도강 등 서울 외곽지역에 있는 주공들 이야기다. 그나마 이런 주공들도 건축연한이 30년을 넘으면서 뼈대는 어떻게 보수해서 유지한다 쳐도 은마아파트처럼 거주공간으로써의 인프라는 수명이 다해가고 있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재건축 혹은 리모델링을 위한 안전진단을 추진중이다.[9]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의 투자 환경상 '''부동산 이상으로 매력적인 투자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형적인 산업 환경상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는 완전히 도박이나 다름이 없고 대기업들도 오너 리스크가 매우 심해서 무턱대고 한국 기업에 투자했다가 돈 말아먹기 딱 좋다. 거기다 후술할 복지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겹쳐 이들은 부동산 재테크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거의 필수가 되어버렸다. 괜히 이들이 부동산 투기에 목을 매는 게 아닌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내수와 복지를 소홀히 한 한국의 잘못된 경제구조가 가져온 문제점이다.[10] 그렇다 보니 20~30대에 취직을 못하는 자식들을 부끄럽게 대하여 집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나마 딸은 30대까지는 시집을 보낼 수 있다는 이유로 유예가 허락되기도 하지만, 아들은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장애라도 없는 한 정규직에 취업 못하면 진짜 부모와의 관계를 파탄내지 않기 위해 짐싸서 독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자식들과의 불화가 커져서 가정불화와 패륜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 제공을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패륜 범죄가 가정 내에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취업 문제로 폭언에 가까울 정도의 질책을 하다가 역으로 폭행당하거나 살해되는게 많다.[11] 이 시절에 미국의 신생아 숫자는 연간 400만을 넘었다. 참고로 1980년대 이후로는 400만명 이상을 웃돌았는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으로 이후에는 390만명대로 떨어졌다.[12] 오브라이언 본인도 1963년생으로 베이비부머의 끝물이다.[13] 좀 더 정확한 어감은 네다틀에 가깝다.[14] 이후에 1971년부터 1974년생까지 출생아수가 다시 200만을 넘기게 되었다.(이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을 2차 베이비부머, 이전의 단카이 세대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단카이 주니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후에는 출생아수는 대체적으로 꾸준히 감소되고 있는추세이고 2000년대 중반에 출산율이 저점을 찍은 이후에도 이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15] 1949년부터 시행된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매우 단시일내에 떨어졌다. 1950년대 후반 들면은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은나라는 헝가리 정도 수준일 정도다.[16] 사실 이건 386 세대도 어느정도 마찬가지인게 1980년대에는 한국의 대학진햑률이 30%는 커녕 10% 후반-20%대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수준이라서 대학에 간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반대로 지방이나 저소득층 지역에서는 고등학교가 지금보다 훨씬 정치적이었다. 가난해서 대학교를 못가는 사람이 많았던 만큼 고등학생만 돼도 공부를 하는 학생 취급받았고, 가난해서 일반계를 못가고 상고, 공고에 가는 소년들도 많았다. 그래서 이들은 재학중에도 사상공부를 하여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이들중 일부는 고등학교 졸업후에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대학생들과 교류하며 사상공부를 하면서 좌파 성향을 갖게된다. 이들이 실질적인 대한민국 1세대 노동조합운동의 시작이었다.[17]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지방선거에서 혁신지자체장이 상당히 탄생하기도 했고, 자민당이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지만 야당들이 (따로 놀아서 정권이 교체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그나마 당시 유일하게 정권교체 기회가 있었던 1980년 중참의원 동시선거도 오히라 수상 사망으로 날려먹었다.[18] 예를 들자면 14년 도쿄지사 선거의 경우 좌파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60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