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보병사단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2작전사령부 예하 '''제39보병사단'''. 별칭은 '''충무부대'''.[3]
2. 상세
과거 제2군관구사령부 예하부대였으나 2관구가 해체되며 제2야전군사령부로 예속되었다.
부대 마크가 부대원들 사이에서는 콩나물대가리 3개라는 비아냥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사단 예하 기동대대가 붙이는 패치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비아냥의 극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걸 보는 같은 부대원 입장이거나 자신이 기동대대원인 경우겠지만. 마치 콩나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독수리라나 뭐라나? 참고로 제21보병사단의 부대마크와 비슷하게 생긴 관계로 21사단 병사들은 '우리 사단의 짝퉁'이라며 깔보곤 한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21사단은 GOP 접경의 최전방 부대이지만, 39사단은... 그래도 해안경계도 만만치 않다! 사단 예하 부대 중 해안초소를 전담하는 부대도 있다.
2000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를 근거지로 했던 제69보병사단이 해체되며 69사단의 일부 예하부대들을 흡수했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39사단 관할 구역인 경상남도 [4] 에 배치되며 그 외 대구광역시, 경상북도나 부산광역시, 호남, 충청권으로 가기도 한다. 제2작전사령부 예하 지역방위사단이기 때문에 그 배치는 서울 근처까지만 이루어진다. 경우에 따라 수방사예하 지역방위사단으로 배치가 되는경우도 있으며[5] 정말 이례적으로 특수부대 배치를 받기도 한다.[6] 물론 후반기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면 거기서 다시 자대 배치를 받게 된다.
양산시,[7] 창원시 진해구[8] 를 제외한 경상남도를 관할 '''위수지역'''으로 삼고 있는 지역방위사단.
국방개혁으로 인해 2020년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3. 신병교육대
3.1. 위치
3.2. 상세
4. 예하부대
4.1. 사단 직할대
4.2. 제117보병여단
- 여단본부
- 1대대
- 2대대
- 3대대
거제시, 통영시, 고성군,
4.3. 제118보병여단
- 여단본부
4.4. 제119보병여단
- 여단본부
김해시, 밀양시, 창원시(해군 진해기지사령부 관할인 진해구 제외), 창녕군, 함안군, 합천군
5. 출신인물
5.1. 사단장
5.2. 장교/부사관
신병교육대 중대장을 역임했다.
현 제1군단장. 대령시절 118여단장을 지냈다.
현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중령시절 117여단 3대대장을, 대령시절 117여단장을 역임했다.
5.3. 병
- 권용관
- 이경규 - 모 방송에서, 대학 시절 연극 활동 때문에 사투리를 고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으나 군 생활을 창원에 위치한 이 부대에서 하느라 다시금 리셋되었다며 한탄한 적이 있었다.
- 주리온 - 현 유튜버. 2012년 3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취사병으로 복무하였다고 한다.
- 설운도 - 본 사단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였다.
- 민진홍 - 그룹 야다의 드러머. 통신대대에서 근무했다.
- 허일 - 야구선수. 포병대대 차량정비병 출신이다.
6. 기타
6.1. 근무환경
6.1.1. 과거(창원 주둔 시절)
창원시내에 위치하던 시절에는 명실공히 현역으로 가게 되면 최고의 로또 중 하나인 꿈의 사단 취급이었다. 훈련강도는 거기서 거기지만 부대 주변이 죄다 시내인데다가, 창원역이 걸어서 15분밖에 안 걸리며 버스터미널이 택시로 10분, 창원중앙역이 택시로 20분밖에 안 걸리는 등 집에 가기 매우 편하다.
사단사령부 특성상 영내가 겁나게 넓기 때문에 특정 직할대의 경우 사단사령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자기가 돌아다니는 부분만 보다가 전역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특히 본부대, 공병대대 출신이라면 특별한 용무가 있지 않는 이상 언덕에 위치한 정비대에 갈 일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영내에 PX도 3개나 있으나 보수대, 기동대대, 신교대 기간병이 아닌 이상(혹은 부대가 정문위병소와 좀 멀어 돈 뽑으러 가기 힘든 기간병이 아닌 이상)은 본부 PX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크기도 꽤 널찍하고, 바로 옆에 있는 병사휴게실에는 2009년까지 노래방과 당구장, 오락실이 있었는데 잦은 파손 및 도난 사례로 관리담당인 본부대 행정보급관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아예 통채로 본부대로 옮겨버리고 사단 이전 담당 TF가 들어왔다. 다만 바로 코앞에 있는 공병대대를 제외하고는 어느 부대든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짬차면 귀찮아서 잘 안 가게 된다.
영내가 겁나 넓기 때문에 유격훈련과 혹한기훈련도 영내에서 다 치뤄냈다. 게다가 이 지역은 혹한기훈련 시기라 한들 '''평균최저기온이 영하 1도 수준이다'''. 심지어 좀 구르다 보면 땀까지 난다. 유격훈련도 훈련시설은 영내에 다 있는데, 다만 유격장 입소행군은 영외로 나가서 한다. 사격장이 북면에 있는데, 보통은 북면사격장까지 걸어서 찍고,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된다. 단, 사단 사령부 내 충무 사격장이 있어서 대대장 짬이 높거나 사전 예약을 했던 경우 사단사령부 내에서 사격을 실시하고 끝내기도 했다.
부대내 복지시설들도 빵빵한 편으로 정문 위병소 바로 옆에 있던 복지회관에서는 치킨(치킨이 피흘림)과 피자를 팔았다. 2층의 식당에서는 오리바베큐와 삼겹살까지 먹을 수 있었다. 특히 본부대 병사들은 복지회관 관리병들이 같은 본부대 소속이기 때문에 주말에 복지회관에서 분대회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지금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고, 여기에는 웬 거대한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선 지 오래라 이제는 흔적도 찾기 어렵다.
6.1.2. 현재(함안 이전 완료 이후)
'''위에서 설명한 창원 시절의 이야기들은 사단이 이전하기 전인 2015년 6월까지의 이야기였다.''' 이전한 곳은 당연히 시골이다. 그러나 도회지 사람 기준으로 시골이라고는 해도 '''면소재지가 코앞이다.'''[12] 전방 현역들 기준으로 설명해보면 인제, 양구, 원통보다는 크고 연천읍내보다 약간 작다. 게다가 모든 무궁화호 열차가 다 서는 역도 존재한다. 창원까지는 기차든 버스든 30분 내외로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 닿는다. 시간 잘 맞추면 외박이나 외출시 창원에 나가서 놀다가 복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이곳은 과거 군 시설이 있던 곳이 아니라 집 몇 채 드문드문 있던 논두렁 와지선[13] 을 싹 밀어버리고 사단본부 전체를 이전해 오는 것이므로 '''당연히 모든 시설은 2015년 현재의 최신 사양으로 지어졌다.'''[14] 창원시내 한복판에 박혀 있던 시절만은 못해도 여전히 꿀의 전설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사단 직할대만 해당된다. 지역방위사단답게 예하 3개 여단의 대대는 동에서 밀양 서로는 함양, 남으로는 남해에서 북으로는 거창까지, 어디의 촌구석으로 들어가 박힐지 모른다. 시 단위 행정구역에 있는 예하부대라고 해도 보통은 시내버스를 타고 꽤나 달려가야 하는 곳에 있는 건 당연지사. 그리고 남해안에 있는 행정구역[15] 에 배치를 받으면 전방 철책부대와 흡사한 근무조건의 해안초소가 기다리고 있다. 즉 직할대가 아닌 이상은 그냥 평범한 제2작전사령부 예하 경계/예비군훈련 부대의 환경이라는 이야기.
자대 배치는 사단 사령부 외에도 경상남도 전역에 있는 3개의 여단에 배치받게 되는데 이 3개의 여단는 1개 여단 전부와 다른 여단 일부가 해안 경계를 맡고 있다. 각 대대 예하 해안 중대에서 소대별로 돌아가면서 약 3개월간 해안 소초 생활을 하게 된다. 한 연대는 전부 내륙 부대라 주로 예비군 훈련을 맡는다. 해안 소초에 투입될 경우 3개월간 휴가[16] , 외박을 할 수 없으며 소총 분대일 경우 교대로 매복을 나가게 된다[17] . 하나 더 추가하자면 해안중대는 침대식(분대식) 생활관을 사용하고 있다. 해안소초도 동일하다. 예비군 훈련을 전담하는 내륙 부대로 갈 경우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에는 그 날 일과 전부가 예비군이다. 하지만 도시급 부대와 군급 부대에 들어오는 예비군의 수가 꽤 차이가 나서 군급 부대에서는 하루에 예비군이 한두명밖에 안와서 그냥 돌려보냈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여담으로 일개 부대는 토요일 오전에도 일과[18] 가 있는데 그것에 대한 보상 휴가를 9박 10일[19] 정도 준다. 즉 해안소초를 3번 모두 갔다오면 보상 휴가를 12박 13일이 붙는다는 소리(어디까지나 21개월 기준이다.)
지역방위사단의 공통점이긴 하지만 훈련소에 들어가 보면 상근이 절반, 현역이 절반이다. 그래서 현역으로 온 사람들은 상근인 동기 훈련병들을 볼 때마다 그저 피눈물만 흘린다. 역으로 그걸 노려서 '어차피 집에 가는 녀석들 주제에 ㅉㅉ' 하면서 장난섞인 비아냥을 해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 중 해안경계만을 전담하는 부대는 준 격오지로 처리되어 군 내에서도 GOP급 다음 대우를 받는다(!) 실제로 신형군복 보급이 전방과 특수작전부대에 이어 2순위로 처리되어 상당히 빠른 기간에 신형군복이 전 병력에게 보급되었다. 사단 내에서도 장교 진급 코스로 유명하여 일부러 이쪽으로 발령받기 위해 해당부대 간부와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으며, 실제 정년퇴직 직전 고위간부가 진급하는 사태도 일어난 적이 있다. 물론 '''딱 중대장까지만 진급코스이며 대대장 이상은 진급코스가 아니다.'''
6.2. 전설의 사단, 그러나 장교에게는 무덤인 곳
다른 지역방위사단도 다 그렇지만 이곳도 대개 진급코스는 아니다. 병으로 오면 지상천국(해안경계부대만 아니면)이지만 장교로서는 장기복무 생각이 있다면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 좋은 부대이다. 게다가 부대위치 역시 후방도 거의 맨 밑의 후방인지라 여기로 부임하면 전방의 다른 유명 사단과 비교해 보았을 때 진급과는 멀어지게 된다. 사실 해안경계부대라 진급에 가산점이 부여될 것 같지만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비사단이 죄다 휴전선에 몰려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결국 진급서열은 '''무조건 휴전선에 배치된 부대 또는 특수작전부대 위주로 돌아가고 그들에게 다 돌아가고 남은 자리가 이 부대에 오게 되는것'''이다. 대대장이나 여단장을 이 부대에서 복무하고 장성진급을 한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흔치 않은 케이스다.
그리고 애초에 장성으로 진급할 영관장교들은 죄다 전방(또는 제7기동군단 예하사단) 위주로 보직을 주기 때문에 최소 두 번 하는 지휘관 보직을 둘 다 전방(또는 7기동군단 예하사단)이거나 하나는 전방, 하나는 특전사 이런 식으로 주지 장성으로 쓸 재목을 절대 후방 따위로 빼지 않는다. 장성들 중에 상당수가 월계윙을 달고 다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 특히 전두환 시절 특전사는 주요 장성 진급 코스 중 하나다.
그리고 장교 특성 상 보직과 진급이 출신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학사장교나 ROTC의 경우는 이런 곳으로 보직되어도 국방부에서 어느 정도 봐주지만 육군사관학교출신이 여기로 왔다면 '''얄짤없다.''' 여기 사단장이라면 모를까 육사 출신이 영관급 장교에서 여기로 왔다면 '''여기로 온 그 계급으로 전역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장교는 출신별로 진급 루트가 매우 다른데, 육사는 빨리 진급하는 대신 불필요한 보직은 하면 안되지만 비육사는 늦게 진급하는 대신 보직을 많이 거친다. 결론적으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진급을 빨리 한다고 좋은 게 아닌 것이다. 물론 사단장이라는 보직 자체가 요직이기 때문에 여기 온다고 해서 그 이유로 진급이 누락되진 않는다.
다만 이 지역 출신 영관급 이상의 일부 간부들은 전역 후에도 나름 지역유지[20] 로 사는 경우도 있다. 대민지원과 지역행사에 많이 참여하기에 부대장이 지역에서 많이 알려지곤 한다. 그 이유는 지역방위사단 위수지역이 전방의 군단 위수지역보다 넓은 탓이다.
예를 들자면 전방의 경우 같은 '시,군' 내에 2개의 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지역방위사단은 하나의 시, 도 단위에 한 개 사단이 주둔한다. 이렇다 보니 지역방위사단장은 상비사단장과 달리 지역 내 모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 따라서 대대장, 연대장, 부사단장이 지역행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장성이 아닌 영관급 장교도 지역언론에 자연스럽게 노출이 많이 이루어져 지역 내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장교와 부사관의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사단 신교대에서 중대장을 맡았고 예하부대 주임원사로 여생을 즐기던 원사 한 분이 급작스럽게 사령부 주임원사로 불려가자마자 합참주임원사로 발령받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해당 항목 참고.
실제로 장성이 되기가 전방이나 특전사보다 힘들다 뿐이지 대위→소령[21] , 소령→중령, 중령→대령[22] 진급에 있어 영향력 있는 디스어드벤테이지는 없다.
6.3. 사단가
'''푸른물 굽이치는 남해의 기슭'''
'''충무혼 이어받은 겨레의 사자'''
'''지축을 울리면서 뭉치어 섰다'''
'''우리는 조국간성 향토의 역군'''
'''나가자 씩씩하게 노도와 같이'''
'''이나라 지켜나갈 삼십구사단'''
'''- 39사단가'''
7. 사건사고
2017년 6월, 문병호 사단장(육사 43기)이 폭행과 가혹행위가 드러나면서 보직해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문병호 소장의 비리까지 포착됐는지 군검찰에서 수사하더니 재판에 회부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속상관이자 선배인 박찬주는 본인과 부인의 갑질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한술 더 떠서 구속수감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결국 39사단장과 제2작전사령관은 싸악 학군출신으로 물갈이 되었다.[23]
8. 여담
분명 육군 소속 보병사단인데도 해군식 시간개념인 "30분 전, 15분 전, 5분 전, 1분 전" 개념[24] 을 쓰고 있다.[25] 심지어 육군에서 쓰는 말인 '일과' 대신 '오전과업' '오후과업'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고(과업은 해군 용어다), 은근히 기본제식을 빡시게 하는 등 해군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데 아마 진해 통합사령부의 후방부대격이라 그런 듯? 거기다가 육군 속의 해군인 육군경비정도 운용한다.
사단 내에 예비군훈련을 병행하는 부대도 있다.[26] 예비군 훈련만 맡아서 하는 부대도 있고, 보병 부대임에도 예비군 훈련을 병행하는 부대가 있다. 그래서 해안경계만 하는 부대와 예비군 훈련만 하는 부대의 상황은 아주 천차만별. 예비군 훈련을 하는 부대로 배치받았다면 부대장의 성향에 따라 개꿀 군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해안소초 부대로 빠진다면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닐 것. 그도 그럴 것이 해안소초 부대들이 거의다 외진 시골에 있기 때문에 내륙의 예비군 부대들이 외출 나가서 사회의 편의시설을 누리는 걸 보고 듣게 된다면 조금 빡칠 것이다.. 대신 GOP처럼 휴가를 내륙 부대보다는 두 배 이상 받긴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를 것. 동원훈련 때에는 자신의 주특기 담당 조교가 된다. 동원 훈련장은 사단 내 위치한 세 곳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 중 두 곳은 새로 지어져서 시설도 괜찮고 깔끔한 반면 나머지 하나는 매우 좋지 않다...
창원 시절 39사단 소재 어느 책상이나 의자(특히 정병관) 낙서를 유심히 보면, 전쟁 발발 시 사단장이 연병장에 그랑죠의 피닉스 마크를 그으면 마산만에서 피닉스가 나타난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꼭 써져 있었다.
진해 해군해양의료원에 입원하는 병사들 중 육군이 있다면 대부분 이쪽 병사라고 봐도 된다.[27] 물론 창원 지역 타 부대가 몇개 더 있기 때문에[28] 그쪽 사람들도 있겠지만 주로 파도 마크를 단 육군들이 많이 보인다.
부산의 제53보병사단과 함께, 눈이 거의 연례행사마냥 1년에 한두 번 정도 살살 오기 때문에 오밤중에 자다 말고 눈 치우는 불상사는 없다.[29] 눈이 오면 병장이 신나서 제설하고 이등병이 논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30] 특히 태풍 매미 당시 대민지원은 참 처절할 정도였는데, 경남대 앞 댓거리 상가침수 때 해일에 쓸려온 통나무 들어내고 시신 건지고 쓰레기 치우던 인력 중에 이쪽 병력들도 있었다. 특전동지회 예비역들도 근 보름간 같이 노가다를 뛰었다. 시신 나온 이후로는 도저히 맨정신에 깜깜한 지하실로 내려가기 힘들어서 다들 막걸리 한 사발씩 하고 얼얼한 술김에 내려가서 일했다.
매우 후방에 있는 부대이지만, 1980년대에 남해안 지역으로 무장공비가 침투한 사건 때 여러 장병들이 교전 중 전사한 적이 있다. 물론 해군력이 발달한 현재는 남해까지 간첩선이 침투할 일이 없어 해안경계는 의미 자체가 없어졌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간첩선 교전 뉴스가 지역 방송에 나올 정도였다.
창원 시절의 39사단은 상술하다시피 위치가 하필 창원시내 한 가운데의 노른자 땅이나 다름없던 곳인지라[31] 수십년간 이전 추진이 일었고, 2015년에 기어이 함안군으로의 이전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옛 사단 부지에 조성되는 창원 중동 유니시티는 (토양 오염 논란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분양 접수에만 20만 명이 넘는 기록적인 인파가 몰리며 이러한 인식을 다시한번 각인시켰다.
구 39사단 부지인 창원과 39사단 이전 부지인 함안에서 각각 문화재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39사단 이전 부지에서 다량의 유물과 유구가 쏟아졌고[32] 함안박물관은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특별전까지 개최했다.[33] 군북역 문서 보면 알겠지만 여기는 역 앞에 고인돌이 있는 동네다(...) 최소한 청동기 시절부터 사람 살던 곳이라는 뜻. 뻑하면 범람해서 늪지를 생성하던 남강변에서도 적당히 떨어져 있고 구릉과 평지가 혼재되어 쌀이나 기타 작물 생산력이 높은 지역이다.
함안 이전 부지(정확히는 사단본부대)에 원래 있던 동네 이름은 순한글 지명인 '''"붕듸미"'''이다. 서류상으로는 동촌리, (구)소포리에 걸쳐 있어서 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부분. 현 군북역 위치가 동촌이고 가야읍 쪽으로 도로 따라 고개 넘어가는 부분이 소포다.
함안 이전 후 연병장에 M107자주포와 M48전차가 전시되어 있다.
전체 부지 중 가장 양지바르고 목 좋은 곳에 군 골프장이 있다(...). 일명 함안대 골프장이라고 하는데, 과거 소포리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의외로 민간인 상대 장사가 잘 된다는 듯 하다. 군 골프장 특성상 라운딩 비용이 저렴한데(대신에 캐디가 없다) 인근의 창녕군이나 김해시의 CC들이 죄다 부킹으로 터져나가는지라 여기도 덩달아 그렇다는 듯. 군 장병보단 사실상 민간인 레저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1] 53사단 담당구역인 양산시와 해군 담당구역인 창원시 진해구는 제외[2]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었으나, 2015년 6월 말에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으로 사령부와 직할대가 이전했다. 현재도 창원쪽에 39사단 예하부대가 몇개 있다.[3] 파도부대에서 개칭, 별칭의 유래는 다들 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할 때의 그 충무가 맞으며, 역시 같은 충무공인 김시민 장군과도 관련이 있는 듯. 일동 묵념 할 때 읊어주는 내용을 들어보면 23전 23승과 진주 대첩을 언급한다.[4] 거창군, 고성군, 산청군, 김해시 등등. 양산시는 53사단 관할 임으로 제외.[5] 실제로 자기가 39사단에 그대로 자대배치 받을줄 알았던 훈련병이 화살부대로 가버린 적이 있었다.상당히 놀랐었다고.[6] 간혹 훈련소에 특공여단 간부가 수료한 훈련병들 데려가려고 면접보러 오는 경우도 있다[7] 양산시는 제53보병사단에 대대급이 주둔하고 있다. 대대급이라 해봐야 지역방위사단인지라 상근예비역을 제외한 현역은 전방 보병사단의 중대급도 안 된다.[8] 해군진해기지사령부 관할이다.[9] 해당문서 참조.[10] 후술할 갑질 사건으로 인해 보직해임당했다.[11] 2017년 9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사단장을 역임하다가 합동참모본부 민군작전부장으로 영전하였으며 2019년 11월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금오공고에서 3년 금오공대에서 4년간 군장학금을 받고 학군 26기로 임관하였으며 의무복무기간(9년 4개월)이 육사와 비슷하게 되면서 소령달 때까지 의무복무기간을 채우고도 현재까지 비교적 진급이 잘된 군장학생의 끝판왕이다.[12] 그냥 냇물 하나 건너면 바로 읍내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보급되던 1990년대 말에 이미 PC방마다 100Mbps급 광랜이 깔려있었다. 군청소재지인 함안(가야읍)이 아직 10Mbps급이던 시절이었다.[13] 산과 들이 만나는 경계를 의미하는 군사용어.[14] 엄밀히 말해 아예 군부대와 연관이 없던 곳은 아니고, 조그마한 소대(분대)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내무반 막사 크기는 보급창고 하나 수준, 연병장은 마사토에 골대 두 개 덜렁 있던 군북면 공설운동장을 그대로 썼고, 당시 부임 중이던 소대장이 토끼를 기르고 일병이 장터에 걸어가서 사료를 사 짊어지고 오는데 소포리 사는 동네 할배 경운기 얻어타고... 그야말로 할 일 없이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지던 곳 이었다.[15] 고성, 통영, 거제[16] 다만 한 번 갔다올 때마다 보상 휴가 1박 2일이 붙는다. 21개월 시절 기준 군생활 중 최대 3번은 투입되므로 총 3박 4일의 휴가가 붙는다.[17] 당신이 화기 분대이거나 소대본부 M60 기관총사수/부사수인 경우라면 24시간 기준 하루 2시간 총 3번 6시간 정도 탄약고 근무를 서게 된다. 소초마다 입초를 서는 경우와 동초를 서는 경우가 있다. 참고로 해당 주석을 단 위키러는 고성 출신이었는데 5중대가 담당하는 맥xx 소초는 입초, 6중대가 담당하는 버xx 소초는 동초였다.[18] 일과라 해봐야 별것 안 한다. 진지공사나 병기본 같은 큰(?) 일과는 일체 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 제초작업은 했다. 중식을 먹기 직전 내무사열이라는 것을 실시하는데 그냥 연대장님 오셨다는 마음으로 인심쓰고 내무반 청소한 후 각 중대 중대장이 검사하고 잔소리 좀 하다 끝난다. 다시 청소하라고 해도 완전 개또라이이거나 그날 지통실장인 중대장이 아닌 이상 본인도 퇴근해야하므로 재검사 따위 하진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19] 단 자대배치 받자마자 이 정도 주지는 않고 말년 병장 때 되면 이 정도 쌓여 있다.[20] 지역구에서 출마해 정계로 진출하기도 한다. 물론 그래봐야 국회의원, 도지사까지는 힘들고 보통 시,군의원, 도의원, 정말 잘해봐야 시장, 군수 정도까지다. [21] 다만 이 경우는 대개 전방으로 올라간다. 만약 못 올라간다면 다음 진급에 데드락이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22] 이쪽은 정확히 말해서 임관루트가 더 영향을 미치겠지만, ROTC 같이 비주류 임관출신은 여기를 거쳐도 패널티가 거의 없지만 육사 출신이라면 출신을 등에 업고도 여기로 온 것이므로 준장은 커녕 대령진급도 힘든 경우가 많다.[23] 이후 제2작전사령관은 2018년 10월에 3사 20기의 황인권 대장이 부임하였으며, 39사단장은 2019년 5월에 육사 46기의 박안수 소장이 부임하였다.[24] 군함은 정시에는 출항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예비령과 같은 개념. 특히 5분 전에는 모든 준비를 완료하여야 하고, 1분 전에는 무조건 튀어나가야 한다...[25] 39사단 신교대에서 훈련받게 되면 집합 oo분 전이라는 말을 지겹게 듣는다. 지겹게 복창하는 것은 덤.[26] 지역방위사단의 주요 일과가 예비군 훈련이다.[27] 국군대구병원과 가까운 예하 대대 및 여단급 부대거나 해양의료원에 진료과목이 없다면 그쪽으로 간다. 해양의료원이 시설은 좋은데 진료과목이 많이 부실하기 때문. 예를 들자면 어지간한 육군 사단급 의무대에도 다 있는 치과 군의관이 없어서 다른 군 병원으로 보내거나 휴가나와서 그냥 민간병원에서 진료 받을 정도. 장병들 사이에선 대구통합병원을 줄여서 대통이라 부른다.[28] 52군수지원단, 육군 종합정비창, 항공기정비단, 항만단등등... 하지만 저 부대들은 대부분 기행부대라 병사가 얼마 없다. 39사단도 전방보다는 병력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저들 부대에 비할바는 아니다.[29] 없진 않은데 장병들 대부분이 눈이 거의 오지 않는 경상도 출신이라 눈이 오면 신기해 한다. 병장들은 눈싸움도 하더라[30] 실제로는 눈이 1cm만 와도 도시가 마비되기때문에 대민지원을 나가고 제대로 된 제설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아 힘들다.[31] 원래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창원군 변두리였는데, 국가시책으로 계획도시가 조성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32] 출토 유물이 무려 3000여 점. 함안 역사상 최대규모의 매장문화재 조사였다고 한다.[33] 185점의 유물을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