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부

 

'''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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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울산 울주군)'''
제15·16대
권기술

'''제17~20대
강길부'''

제21대
서범수

'''대한민국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제18대 후반기
김성조

'''제19대 전반기
강길부'''

제19대 후반기
정희수

'''대한민국''' '''건설교통부''' '''차관'''
'''국민의 정부'''
제5대
강윤모

'''제6대
강길부'''

제7대
조우현

'''한국감정원''' '''원장'''
제6대
손선규

'''제7대
강길부'''

제8대
이근식



'''대한민국 제17 ~ 20대 국회의원
강길부
姜吉夫 | Kang Ghilboo
'''
''' 출생 '''
1942년 6월 5일 (81세)
경상남도 울산군 상북면 향산리[1][2][3]
''' 본관 '''
진주 강씨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 학력 '''
상북중학교 (졸업)
언양농업고등학교 (졸업)
[image]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 학사)
서울대학교 (환경계획학 / 석사)
가천대학교 (도시공학 / 박사)
''' 병역 '''
육군 병장 만기전역
''' 가족 '''
배우자 이증선, 슬하 2남[4]
''' 소속 '''

''' 의원 선수 '''
'''4'''
''' 의원 대수 '''
17, 18, 19, 20
''' 경력 '''
제10회 행정고시 합격
주요르단 대사관 건설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건설교통부 도시국장
중앙토지수용회 상임위원
한국감정원
한국감정평가학회 자문위원
건설교통부 차관
경기대학교 교수
제17~20대 국회의원(울산 울주군)
대한민국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 외부 링크 '''
페이스북
1. 개요
2. 정계 입문 전
3. 정치 활동
3.1. 화려한 당적사
3.2. 소속 정당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부동산 투기 의혹
5. 여담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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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20대 국회의원박지원과 더불어 최고령 의원이다.

2. 정계 입문 전


1942년 경상남도 울산군 상북면 향산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에서 태어났다. 1960년 언양농업고등학교(현 언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15회 '''보통고시'''에 합격, 서울 청량리우체국 행정주사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주경야독하여 1969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에 제10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건설부, 건설교통부와 산하기관에서 근무하였다. 국토관리 업무와 지명많은 관심을 드러내었고, 관련 서적도 몇권 출간하였다.
김대중 정부 때 한국감정원 원장, 건설교통부 차관을 역임하고 2001년 4월 퇴직하였다. 2002년 3월 경기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고,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에도 겸임교수로 출강하였다.

3. 정치 활동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한나라당 울산시장 경선에 도전하여 박맹우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04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42.63%를 득표, 41.46%를 득표한 현역 국회의원 한나라당 권기술 후보를 가까스로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울산광역시당 위원장,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2005년 3월 열린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는 정치신인이던 임동호에게 시당위원장 경선에서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던 바 있다.
이후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강세가 이어지자, 2007년 11월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후신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였다. # 이는 지역정서 때문이라고 한다.[5] 2008년 1월 당시 국민중심당을 탈당한 정진석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 '여당'을 사랑하는 철새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채익 전 남구청장[6]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하자, 한나라당을 다시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 48%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이채익 후보(36% 득표)를 누르고 여유있게 당선되었다. 같은 해 6월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이후 친이계에 속하였다. 2010년 한나라당 울산광역시당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진보당 이선호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울산광역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김기현에 밀려 패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자 컷오프[7]로 인해 공천을 받지 못하고, 김두겸 전 남구청장이 공천되자 울주군 시ㆍ군의원들을 이끌고 동반탈당하였다. 무소속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울주군이 남구 뒤치다꺼리하는 곳이 아니다", "울주군의 아들ㆍ일꾼을 지지해달라", "나는 계파싸움의 희생양이다" 등 영남에 위치한 울주'''군''' 지역구에 적합한(?) 인정ㆍ감정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을 펼쳤고, 새누리당 김두겸 후보(28%)ㆍ민주당 정찬모 후보(22%)ㆍ국민의당 권중건 후보(7%) 등을 40%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6월 새누리당으로 복당하였으나, 동반탈당하였던 울주군 시의원ㆍ군의원들의 복당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6년 12월 검찰이 선거법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으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검찰은 여기에 대해 항소했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6년 12월 22일 비박계들의 새누리당 탈당에 참여, 바른정당 창당에 합류하였다. 2017년 3월 1일 바른정당 울산시당 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됐다. #
2017년 11월 6일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강길부 의원과 동반 탈당하였다가 선거 후 복당시 복당이 불허되었던 울주군지역 시의원ㆍ군의원들도 일괄 복당되었다.[8]
2018년 1월 7일 자유한국당 울주군 당협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현 울주군수인 신장열 군수가 연임제한에 걸려 출마를 하지 못하고, 다음 총선 때는 강길부 의원이 고령으로 출마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거 공천권을 가진 당협위원장직이 지역정가에서는 아주 중요한 자리인데, 당협위원장직에서 축출된 김두겸 전 당협위원장은 이에 극렬히 반발하였다. 바른미래당에서 김두겸 전 당협위원장을 울산시장 후보로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결국 김두겸은 자유한국당에 남는 것을 택했다. 이 때, 김두겸을 눌러 앉히기 위해 당에서 약속한 것이 몇달 뒤의 지방선거에 김두겸 계열의 후보들이 공정히 경선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고, 이 약속이 이후 전개의 복선(?)이 된다.
결국 김두겸 전 위원장과 강길부 의원의 갈등은 2018년 4월에 파국으로 치달았는데, 김두겸 전 위원장은 울주군수 공천을 약속대로 경선으로 정하자고 주장했고, 강길부 의원은 경선으로 정하면 같은 당 후보들끼리 소모전만 될 뿐이니 전략공천을 하자고 주장하며 극렬하게 대립했다.[9] 울주군수 경선이 화약고가 되자 이 안건이 자유한국당 지도부까지 올라갔고, 결국에는 김두겸 전 위원장의 뜻에 따라 경선을 치뤄 친 김두겸 계열로 알려진 이순걸 씨가 친 강길부 계열 한동영 씨를 제치고 후보로 확정되었다. 강길부 의원은 4선 중진이자 당협위원장인 자신의 위상이 무시당했다 느껴 상처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고작 군수 자리를 두고 국회의원이 저렇게 열을 내나 싶겠지만, 울주군은 군 단위의 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레벨의 위상을 자랑한다. 인구가 22만으로 전국에서 2번째로 많고[10], 군 중에서 유일하게 5개 읍을 밑에 두고 있다. 그리고 온산국가공단이 있어서 돈도 많다. 재정규모가 군단위 지자체로는 유일하게 1조원을 넘어선 1조 816억 원이다. 재정자립도 또한 44.80%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어지간한 시장 자리 보다 괜찮은 자리인 셈이다. 또한 울주군이 울산 내에서도 보수적인 지역으로 인식되다 보니 공천이 곧 당선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11]였기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살벌해진 것이다.
5월 3일 홍준표 대표의 여러 극강경보수적인 돌발발언을 문제삼아 홍 대표가 사퇴하지 않으면 중대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선언했다. 공식적으로는 울주군수 경선과는 관계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아무래도 그냥 탈당하기보다는 명분을 좀 쌓아 보려는 행동이라는 게 주변의 추측이다. 이에 홍준표 대표가 "탈당과 복당을 지금 몇 번째 하는 거냐"고 비난하자 도리어 '''"당적을 무려 16번 변경한 분을 (충남지사로) 공천한 분은 홍준표 대표님이시지 않냐"'''라고 반박하며 이인제 전 의원을 돌려까기도 했다. #
결국 2018년 5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유한국당 탈당 선언을 했다. # 강 의원은 당분간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말했지만, 그간 화려한 행적을 보면 이번 탈당은 결국 요즘 최전성기를 맞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 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시선이 우세하다[12]. 그렇게 되면 10년 만에 다시 민주당계 정당으로 돌아오는 셈이 된다. 울산 지역, 특히 울주군에서 강 의원이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강 의원의 입당이 울산 지역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동시에 42년생으로 나이가 많은 강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아 당내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철새행위가 바른정당 탈당 사태처럼 오히려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시각도 있으며[13], 만일 역풍이 잦아든다 해도 오랫동안 더불어민주당을 지킨 당원들의 반발이 관건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후보 지지선언을 하였다.# 사실 송철호와의 인연도 이런 행보에 한몫한 것으로 보이는데, 17대 총선 당시 강길부를 열린우리당으로 영입한 인물이 바로 송철호이기 때문. 이어서 더불어민주당 울주군수 후보인 이선호[14] 후보 지지 선언을 하였다. # 사전투표 때는 울주군민들에게 이선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도 돌렸다.
울산 지역 정가에선 이런 지지선언들이 2018년 지방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송철호, 이선호 후보가 당선되고 자유한국당이 울산 전역에서 참패하면서 탈당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추가로 울주군 광역의원, 기초의원까지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탈당 당시 지방의원들이 따라오지 않았던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특히 울주군수 선거는 5000표 이내로 민주당이 신승했는데, 여야를 초월하여 강길부의 고정표가 어느 정도 있는 지역이었으므로 강길부의 공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애초 강길부가 어딜 가느냐에 따라서 그 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았기 때문이다(...)[15] 지방선거 승리에 공이 있고 지역 민심이 여당에 기울었다고 확인한 만큼, 여당으로 들어갈 명분도 어느 정도 생겼다고 할 수 있다.[16]
만일 민주당계 정당더불어민주당으로 입당을 한다면 당 상임고문직 같은 걸 맡으면서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대로 정계 은퇴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입당 고려까지 했지만, 민주당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아 민주당과의 연대정도밖에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울산시장울주군수 당선에 기여한 바가 있어서 몇가지 조건 하에 복당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원들도 있다. 당원들의 반응은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하여 비난을 했던 이용호보다는 낫다는 평이 다수. 애초에 이용호는 남원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자신의 주도하여 무소속 연대를 만드는 등 민주당과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여왔다.
2020년 3월 23일,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아마 고령이기 때문에 더 이상 출마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모양.

3.1. 화려한 당적사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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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열린우리당[17]
2012년 새누리당
2016년 개혁보수신당(바른정당) 창당선언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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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자유한국당 복당 당시
2018년[18]
이인제, 김한길 정도는 아니어도 짧은 기간동안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며 정당을 많이 바꿔왔다.[19] 횟수는 적지만 이인제보다 훨씬 늦은 2002년에 정계에 입문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화려하게 느껴진다. 다만 당내 비주류로서 공천 탈락 - 무소속 출마 - 당선후 복당을 두 번이나 반복한 바람에 당적 변경이 4번이나 이루어졌고, 정당의 흡수통합이나 당명변경도 철새행위라 보기는 힘들다. 이 중에 비판을 많이 받는 당적변경은 좌우를 넘나든 1, 3+4번과 탈당 후 1년도 안돼서 다시 복당한 11번, 복당 후 6개월도 안돼서 다시 탈당한 12번이며, 이는 철새라 비판할만하다. 그러나 당적과 상관없이 울주군울산역, UNIST, 동해선 광역전철 등등의 발전이 계속되는 호재와 지역구 관리를 잘 하여 무난하게 당선되었다.[20]

3.2.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2 - 2003
정계 입문

2003 - 2004
열린우리당 입당을 위한 탈당

2004 - 2007
입당

2007
합당[21]

2007 - 2008
탈당[22]

2008
복당

2008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

2008 - 2012
복당

2012 - 2016
당명 변경

2016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

2016
복당

2016 - 2017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탈당

2017
창당

2017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7 - 2018
복당

2018 -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인한 탈당
보시다시피 화려하다(...)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부동산 투기 의혹


채널A 보도에서 강길부를 필두로 같은 의혹으로 밝힌 인물만도 국회의원 여상규, 이용주, 이철규 등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위 강남 3구라고 불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3곳에 골고루 아파트,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송파구 석촌동에 20억 이상의 토지, 평당 1억 아파트로 유명한 아크로리버파크 34평, 20억 이상의 시세를 보이는 개포시영(래미안 포레스트) 입주권 34평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정작 본인의 지역구인 울주군에는 전세로 살면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상당히 이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MBC PD수첩에 따르면 그의 아들들도 25세 26세에 강남 재건축 아파트(현 논현아크로힐스, 테헤란 아이파크)를 매수하였는데, 강길부 의원 일가의 시세 차익만 20년동안 80억원에 달한다.

5. 여담


  • 2012년, 당시 70세의 나이로 비자카드 광고를 패러디한 울산공업센터 지정 50주년을 기념하는 1분짜리 영상이 있다. 각종 복장으로 열연했는데, 자기 지역구의 KTX 울산역은 물론이고 UNIST 학생들까지 참여하였다. 총선 대비 홍보성 영상으로 추정된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울주

'''31,979 (42.63%)'''
'''당선 (1위)'''
'''초선'''[23]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33,227 (48.89%)'''
'''재선'''[24]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51,470 (63.66%)'''
'''3선'''[25]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0,945 (40.27%)'''
'''4선'''[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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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2] 진주 강씨 집성촌이다.[3] #[4] 장남1975년 생이고, 차남1976년 생이다.[5]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해당 지역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절 노사모/탄핵 역풍 등으로 열린우리당이 인기를 끌자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소속을 갈아탔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종료 및 열린우리당 해체시점에 다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변경한 사례가 적지않게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런 분 이라던지...[6] 18대 총선 낙선 이후 보상으로 울산항만공사 사장에 임명된다. 19대, 20대 총선에서 남구 갑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된다.[7] 공식 프로필상 1942년 6월 5일생으로 8.15 광복 전 출생이다. 20대 총선일 기준 만 73세 10개월 8일이다. 고령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되었겠지만, 오랜 동안 당내 비주류로 지내온 것을 고려하면 친박에게 밀려 공천을 놓쳤다는 본인의 인식에도 일리가 있다. 당장 친박의 좌장이었던 서청원은 강길부보다 고작 1살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받았다.[8] 다만 일부 울주군의원들은 19대 대선 직전에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였다. 기사 참조[9] 당의 방침에 따라 울산 내의 다른 지역구에서는 당협위원장이 재량권을 크게 발휘해 공천을 정하였는데, 울주군만큼은 무조건 경선을 해야 한다는 결정이 못마땅하였을 것이다. 물론 김두겸의 입장에서도 위에서 설명한 대로 약속이 있었으니 지켜 달라고 주장하는 본인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10] 1번째는 달성군이다.[11] 결국엔 김칫국 마신 꼴이 되었지만.[12]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울경 지역에선 보수정당진보정당에 당적을 가졌던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부울경 지역의 경기침체와 비정규직 증가로 인해 보수 지지층이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자유한국당에게서 등을 돌리고, 진보정당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잘게 분열되면서 노조 기반을 매우 빠르게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몰락하고 나니 남은건 더불어민주당밖에 없었고, 이들은 자연스레 민주당행을 택하게 된다.[13] 게다가 강길부가 자유한국당을 탈당할 때, 관할구역 하에 있는 지방의원은 단 한 명도 따라오지 않았다. 심지어 강길부가 군수 후보로 지원하였던 한동영 전 시의원도 자유한국당에 남았다.[14]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쟁한 통합진보당 후보와 동일인물.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 이후 정의당으로 옮겼다 다시 더민주로 옮겨왔다.[15] 쉽게 말해서 강길부가 선택한 정당이면 그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지지층이 움직인다고 한다.[16] 잊고 있을 사람이 많겠지만 어차피 국회의원도 무소속으로 당선된 거라 어느 당에 간다고 해서 뽑아준 사람들의 민심을 져버렸다고 말하기도 힘들다.[17] 선거홍보물을 제외하고 찾을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열린우리당 시절 사진이다.[18] 무소속을 유지한 채 지지 선언만 했다.[19] 그래서 몸담았던 정당 수는 적은 편에 속한다.[20] 물론 조경태처럼 민주당내에서 분란을 일으키다가 끝내 자유한국당으로 이적했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원래 성향 자체가 보수이기 때문.[21]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22] 이명박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23] 2007.11.3 대통합민주신당 탈당 2008.1.17 한나라당 입당 2008.3.20 탈당 (공천불복)[24] 2008.7.16 한나라당 복당[25] 2016.3.22 탈당 (공천불복)[26] 2016년 6월 16일 새누리당에 복당. 2016년 12월 새누리당 탈당 후 바른정당 이동. 2017년 11월 바른정당 탈당 후 자유한국당 복당. 2018년 5월 자유한국당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