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귀

 


1. 생전에 호환을 당한 귀신
1.1. 창귀가 등장하는 작품
1.2. 흡혈귀설에 관해


1. 생전에 호환을 당한 귀신


'''倀鬼'''
흔히 호랑이에게 죽은 뒤 악령이 되어 또다른 호환(虎患)의 피해자를 만드는 귀신을 통칭한다. 같은 한자 문화권에 호랑이가 서식하는 중국과 한국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귀신의 한 종류로 민간에서는 "홍살이 귀신", 특히 태백지역에서는 조금 더 토속적으로 "가문글기"라 한다.[1]
"창귀"는 두 종류의 귀신을 뜻하는데 호랑이에게 죽은(물려 죽건, 잡혀 먹건) 사람의 혼(魂)이라는 뜻과 물에 빠져 죽은 자의 혼(魂)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나뉜다.[2]
그리고 1번의 특성을 사람에게 적용해 누군가의 끄나풀, 밀정역을 하여 여러 사람을 사단에 휘말리게 한 인물을 특정한 낱말.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이따금 이런 뜻을 가진 창귀가 나온다. 중국 쪽에는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도 있다. 위호작창(爲虎作倀), 원 의미는 호랑이를 위해 창귀가 되다란 뜻으로, 악인을 도와 일하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말이다.
명나라의 문인인 도목(都穆)이 지은 청우기담(聽雨記談)에 따르면, “창귀(倀鬼)는 호식(虎食)당한 사람의 영혼(靈魂)으로, 감히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오로지 호랑이의 노예(奴隷)가 된다.”고 했다.
이러한 창귀에 관한 가장 널리 알려진 문헌은 역시 박지원호질이다.
호랑이가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한 번 잡아먹으면 그 사람은 '''굴각'''(屈閣)이란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으며, 그가 호랑이를 이끌어 부엌으로 가서 솥을 핥게 하면 집주인이 배고픈 생각이 들어 부인이 야참을 해 오게 만든다.[3]
호랑이가 두 번 사람을 먹으면 창귀는 '''이올'''(彛兀)이 되어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만약 계곡에 함정이나 쇠뇌가 보이면 먼저 가서 그 기구들을 풀어 버린다.[4]
호랑이가 세 번 사람을 먹으면, 창귀는 '''육혼'''(鬻渾 :'죽혼'인데 육혼으로 읽힌다)이 되어 호랑이의 턱에 붙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죄다 알려 준다.

호랑이에게 죽어 사역당하는 귀신 '''창귀'''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당나라 시대의 문인 배형(裴鉶)의 전기(傳奇)라는 책이다. "'''마증'''"이라는 사람이 우연히 산에 올라 "마소"라는 사람과 "우진"이라는 사냥꾼의 도움으로 승려로 변한 호랑이와 창귀들을 퇴치한단 이야기다. 조선시대의 어우야담에는 고양이와 호랑이를 비교하며 '''창귀'''를 꼬리를 흔들때 나오는 '''독기'''로 묘사한다. 이 내용도 문화원형백과에 수록되어 있는데 추려보면 이렇다.
  •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면 나무 위 닭을 떨어지게 하고 쥐구멍에서 쥐가 스스로 기어나오게 하는 독기가 흘러나온다.
  • 호랑이의 경우는 고양이가 쥐를 홀리듯 사람이 스스로 앞에 나와 옷까지 벗도록 꼬리를 친다. 꼬리의 독기에 조종당한 사람은 운 좋게 살아남아도 자신이 무슨일을 당했는지 기억이 없다.
국립민속박물관자료에는 이렇게 나온다.
  • 창귀는 호랑이의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상 희생자를 찾는데 가족과 인척들 순으로 찾아간다. 때문에 호환을 당한 집안과는 사돈의 팔촌하고도 혼사를 맺지 않는다. 이런 물귀신 행위를 '다리 놓기'나 '사다리'라 한다. 창귀는 이런 교대를 통해 호랑이에게서 벗어난다.
  • 창귀는 신것을 좋아하여 매실소귀나무 열매를 지나치지 못하고 정신없이 먹게된다.이를 이용해 창귀를 묶어두는 함정을 파면 호랑이의 위기감지 능력이 반감되어 사냥당하기 쉬운 방심상태가 된다고 한다.[5]
  • 소라, 골뱅이[6]도 좋아하여 지나치지 못한다. 효과는 매실과 엇비슷 한 듯.
  • 창귀는 항상 서럽게 울며 슬픈 노래를 부른다. 만일 산 사람이 이유없이 서럽게 울고 슬픈 노래를 부르면 그건 창귀에 씌어서이다. 창귀는 슬픔의 화신으로 사람들을 슬픔에 빠지게 하며 창귀에 씌인 자는 호환의 운명에 점지당한 것이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출처에 의한 특성도 있다.
  • 산간지역에 따라선 밤에 창밖에서 누가 부르면 네 번 부를 때 대답을 한다고 한다. 창귀는 딱 세 번까지만 사람 이름을 부르는데 그 세 번 안에 대답을 하면 꼼짝없이 홀려 범 앞으로 걸어나간다고.[7][8]
이러한 창귀를 예방하기 위한 주술로 '''호식장'''(虎食葬)이란 장례의식을 치른다. 먼저 호환을 당한 시신을 사건 현장 "호식터"에서 바로 화장해 재로 만든 뒤 상자에 넣어 호식터에 안치한다.[9] 그 위에 돌무덤을 쌓고 시루를 엎어 구멍에 물레용 쇠가락을 꽂아둔다. 지역에 따라 식칼을 쓰기도 하고 시루의 9개 구멍에 전부 가락을 꽂기도 한다. 재로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귀신을 없앤단 의미이며 돌무더기는 서낭당의 그것처럼 부정을 누르고 터부를 알리는 표식이다. 그 위의 시루는 철옹성을 뜻함과 동시에 말 그대로 안에 든 것을 쪄 죽인단 뜻이 있다. 그리고 시루에 난 구멍은 하늘을 의미하니 여기 꽂힌 쇠가락은 벼락을 상징한다. 특히 쇠가락은 물레의 부속품이기에 창귀가 물레 돌듯 영원히 시루안을 맴돌라는 이중 주술의 의미가 있다. 이런 무덤을 '''호식총(虎食塚)'''이라 하며 벌초는 커녕 사람이 얼씬도 해선 안되는 금역의 상징이 된다. 옛 사람들이 얼마나 호환에 시달렸는지, 그로인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풍습이다. 태백산 지역에 이런 호식총 유적이 많이 분포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창귀 퇴치법은 원흉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바로 호환 피해자 집안의 장손이 식인을 잡아 그 심장(혹은 생)을 생으로 뜯어 먹어 복수를 완성하면 창귀들은 해방된다.[10]
한편 문화콘텐츠닷컴의 "호랑이 제사"란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있다.
『주역(周易)』에, “구름은 용이 만들고 바람은 호랑이가 일으킨다”고 하였기 때문에 울부짖으면 바람이 생긴다 하는 것이며, 「월령(月令)」에 이르기를 “동짓달에
호랑이가 교미를 시작한다”하였다.
호랑이에게 창귀(鬼)가 있는데 이는 곧 호사(虎飤)라는 것이다. 사(飤)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창귀가 되면 호랑이를 늘 따라다니며 길을 안내하기 때문에 호랑이는 창귀가 가고 멈춤을 보고 행동한다. 호랑의 귀신은 바로 창귀인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낼 때 그 신위가 되는 것이 창귀이며 그 제사를 받아먹고 위복을 베푸는 자 역시 창귀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창귀가 조작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단지 호랑이에게 신령이 있어 화와 복을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악견문록(徐岳見聞錄)」에 보면, 무릇 호랑이한테 죽은 자는 의복과 두건과 신발이 모두 찢겨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데, 이것은 호랑이의 짓이 아니라 창귀가 그렇게 하는 것이라 했다.
여기선 호환의 원흉을 호랑이가 아닌 창귀로 보고 있단점이 재미있다.
그런가 하면 호정문에서는 '''"창귀"'''가 덫을 놓아 호랑이를 잡으려는 "'''홍공'''"(홍씨 성을 가진 성명 미상의 인물.)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꾸짖는 뭔가 산신령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꾸짖는 이유인 즉, 인간은 죄 없는 돌과 나무를 쪼개고 동물과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모자라 같은 동족 끼리도 싸우니 인간은 호랑이 보다 더 잔혹하단 것이다. 이 글은 조선 중기의 문인 유몽인(柳夢寅)[11]의 어우집(於于集) 5권에 수록된 것으로 후에 박지원의 호질에 까지 영향을 끼친 풍자우화로 평가받는다.
창귀 전승에는 일부 경험적 근거가 있는데, 실제 식인 맹수들의 사례를 보면 한 놈이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을 잡아먹는 경우도 많을 정도로 심각한 인명 피해를 입힌다. 옛날부터 인간들의 생활권(특히 도시 지역)과 호랑이나 사자 같은 대형 동물의 생활권은 그다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랑이는 인간을 사냥의 주된 대상으로 삼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을 한 번 잡아먹게 된 호랑이는 인간이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학습하기 때문에 이후에도 인간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한 번 식인에 맛들린 맹수가 계속 식인을 한다는 것은 생태학적으로도 그럴듯한 이야기이며 처음엔 사냥하기 쉬운 야참을 만들던 아낙내를 노리던 호랑이가 호환을 막으려 사냥꾼들이 설치한 함정들을 창귀 덕분에 파괴하며 나중엔 창귀에게 아는 이름들을 듣게되어 희생자가 발생된 근방[12]에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킨다는건 약해진 맹수가 처음엔 사냥하기 쉬운 노약자를 노리다 사냥에 적응하면 막대한 희생을 발생시키는 실제와 비슷하다.[13]
호랑이에 의한 피해가 워낙 막심하다보니 과거 동아시아인들은 '저번에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가 계속해서 사람을 잡아먹는 원인이 무엇일까? 혹시 잡아먹힌 사람들이 창귀가 되어 길안내를 하는 통에 희생자가 늘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이 창귀를 어떻게 하면 퇴치할 수 있을까 하고 호랑이에 의한 피해 방지를 위해 경험적으로 고양잇과가 싫어하는 것이 확인된 신냄새가 나는 매실을 창귀가 좋아하니 길거리에 뿌려둔다고 해석하며 고양잇과가 소라의 내장을 먹어서 생기는 가려움증을 유발하기위해 소라를 뿌려두는등 실질적으로 창귀를 지칭하나 실제론 호랑이의 고양잇과 특징을 이용해 견제하는 경험적 사실과 호랑이가 가지는 실질적인 특성을 창귀라는 영적인 해석을 거쳐 풀이하고 내려온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야담집인 파수록에는 창귀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이 실려 있다. 중국으로 떠나는 조선의 사신 일행에 맨손으로 무려 수천 마리의 호랑이를 찢어죽인 용사(勇士)가 있었는데, 그 사신 일행이 중국으로 가던 와중에 폐사군 지역의 길에서 노숙을 했는데, 젊고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하얀 깃발을 가지고 눈 위를 걸어오더니, 누워서 자고 있는 사신 일행을 둘러보다가 잠든 용사의 머리카락에 꽂고는 달아나자, 아직 잠들지 않았던 사신 일행의 상사가 그 하얀 깃발을 빼버렸는데, 얼마 후에 두 눈을 번뜩이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사신 일행을 찾아와서는 일행들을 두리번거리며 한참 훑어보다가 떠나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젊은 여자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그 호랑이의 종 노릇을 하게 된 창귀였는데, 아마 창귀는 자기 주인인 호랑이를 위해서 그 호랑이가 잡아먹으려는 인간을 표시하기 위해 일부러 하얀 깃발을 꽂은 것이었으며, 그리고 창귀 여인이 사라진 뒤에 나타난 호랑이는 용사에게 동족을 잃고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왔을 것이다.#

1.1. 창귀가 등장하는 작품


왜냐하면 덮친 상대가 하필이면 무송, 그렇다 수호지의 그 무송이다. 오행선생이 무송을 처음 만났을 때 식인호가 있으니 호랑이 쫓는 부적을 써주겠다고 했지만 무송이 그런 거 필요없다고 거절한다. 뒤에 무송이 호랑이를 때려죽이자 오행선생이 놀라며 과연 당신은 호랑이 쫓는 부적이 필요없고 오히려 호랑이가 당신 쫓는 부적이 필요하겠다고 말한다.
  • 호랑이형님(네이버 웹툰) - 전반적인 모양새는 까마귀원숭이를 합친 것에 눈구멍과 입구멍이 있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다. 일반적인 전승에 등장하는 창귀와는 달리 사람을 죽여서 창귀로 부릴 수도 있는 모양이다. 이때 만들어진 창귀는 일반적인 창귀와는 달리 오히려 호랑이를 조종한다.[14] 게다가 창귀에게 조종당하는 범은 힘이 갑절은 세진다. 하지만 황요같은 혼령을 다룰 줄 아는 술사가 있어야지 창귀를 호랑이에 빙의시켜서 창귀호로 조종할 수 있다. 창귀가 범을 조종할 수 있는 것도 황요가 창귀에 대해 연구하다 알아낸 것. 좀 더 자세한 것은 호랑이형님/종족 항목을 참고.

1.2. 흡혈귀설에 관해


용재총화에서 나오며 기아 등으로 죽은 아이의 주검 곁에 고양이가 머물러 있다가[15] 그 영혼이 고양이에게 물들어 탄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탄생한 창귀는 고양이처럼 쭉 째진 눈을 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된다고 한다.[16]이런 계열의 창귀를 막으려면 창귀가 다니는 길에 쌀알 등을 흩어놓아 창귀가 쌀알을 세는 사이에[17]동자신을 보내 달래거나 강력한 호법신 등으로 제압해야 한다.
헌데 이 창귀=고양이 눈의 흡혈귀 설은 아무래도 2009년도에 나온 "전설의 고향" 혈귀편을 통해 퍼진게 아닌가 한다.....그리고 이게 2010년 기찰비록흡혈창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지식백과나 사전등을 찾아봐도 용재총화와 연결되는 "흡혈귀"의 존재를 검색 할 수 없기 때문. 거기다 흡혈귀 괴담을 설명하는 글을 보면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괴담집이라는 '속요담'을 언급하는데, 속요담이라는 문헌은 해당 괴담에서만 언급되는 것으로 실제로 속요담이라는 책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거기다 애초에 한국 전통설화의 대부분의 공격적인 요괴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정도로 묘사될 뿐, 흡혈귀로 볼 만한 존재 자체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 디지털진주문화대전에 나온 "매구".
특히 어린아이 흡혈귀를 거론할때 나오는 것이 "아장살이",혹은 "애기살이"란 무덤인데 그 형태가 시루와 물레가락이 없단것만 빼면 호식총과 빼닮은 돌무덤이다. 하지만 이 아장살이는(사전에는 "애총", "아총兒塚") 오픈지식에 이렇게 나와있다. "대게 어린아기가 죽으면 그 부모님들은 아기를 작은 항아리나 도자기에 안치를 하고 한밤중에 야산에 올라 구덩이를 파고 항아리를 묻고는 작은 돌로 무덤을 만들었는데[18] 이 무덤을 아장살이라고 이름하였다 ." 이런 아장살이에 묻힌 아이의 혼령이 나중에 흡혈귀나 창귀가 된다는 자료는 유독 "고양이 눈을 한 어린아이 흡혈귀"를 다룬 글에서만 보인다.
참고로 아장살이에 관한 오픈지식은 2007년도 작성, 흡혈창귀가 작성된 글 중 가장 오래된 자료는 2009년 3월에 작성된 루리웹 괴담 갤러리이다.(만약 더 오래된 자료가 있다면 수정 요망) 사전에 등재된 창귀의 뜻은 위에도 나오지만 호환에 의한 귀신과 물귀신 두 종류만 있지 흡혈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용재총화와 어우야담의 괴물들을 정리해 놨다는게렉터 괴물백과 사전에도 흡혈귀에 해당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고양이의 혼과 융합되었단 점에선 차라리 홍콩할매귀신과의 근연종적 요소가 보인다. 즉, 현대에 들어 창작된 도시괴담일 가능성이 크다.
위쪽에 첨부한 "호랑이 제사"에 나온 용재총화 관련 글은 오히려 호랑이를 제물로 삼아 기우제를 지내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사한단(司寒壇)은 동빙고에 있어, 얼음을 저장해야 하는데 겨울이 너무 따뜻하거나 눈이 오지 않으면 춥기를 빌어 제사를 지낸다. 용단(龍壇)은 한강 가에 있으니 가물면 호랑이 머리를 물속에 넣어 제사지내고 비를 빌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런 풍속은 후대에도 전승되었다.
기우제 때 비를 비는데, 호랑이의 머리를 저수지에 넣거나(경기도), 그 대신 개의 머리를 물속에 넣고 지내는 것은(『동국여지승람』), 모두 호랑이의 위풍을 빌어 일종의 으름장을 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KOF 시리즈의 기술


[image]
KOF 시리즈에서 쿠사나기 쿄-1이 사용하는 필살기. 한자로는 蒼鬼이며 1번 문단과는 전혀 관계 없다.
KOF 99에서 첫등장을 했으며 212식 금월 양 1타 모션으로 돌진해서 독물기 없이 바로 벌읊기 모션으로 공격한다. 모션만 보면 신고의 무늬가르기와 흡사하다.
99당시의 성능에 대해서는 좋은 평을 내리기가 힘들다. 사용처를 적는다면 한다면 농차가 안맞는 키 작은 친구들에게 앉아약발을 위시한 지상연속기로 쓸 수 있다는 것과 카운터 모드때 앉아약발-약손-창귀-대사치가 가능하다는 정도. 모션만 보면 예측형 대공기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겠으나 함정이고 금월 양 1타 모션이 안맞으면 벌읊기 모션이 안나온다. 벌읊기 모션도 판정은 평범하다는게 두번째 함정. 칠십오식 개에서 연속기로 들어가긴 하나 난이도가 높은데다 안정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추가타 불가능형 띄우기라 맞춰도 큰 이득이 없다. 들어가는거라곤 108식 어둠쫓기 하나뿐. 사실 그마저도 어디까지나 어둠쫓기에 다운공격 판정이 붙어서 그런것이고, 그것도 낙법하면 안 맞는다. 그리고 근접 거리가 아닌 이상 제대로 히트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딜레이도 커서 봉인기 수준이다.
2002 UM에서는 약으로 사용할 경우 어느 정도 거리에서도 안정적으로 히트하는지라 상당히 안정적인 기술이 되었다. 또한 99의 카운터 모드때와 마찬가지로 1~2타에 슈퍼 캔슬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드콤보 외엔 그냥 안쓰는 게 나은편이다. 대신 1~2히트가 지상에서 히트하는지라 모콤의 MSG같은 필살기가 된 게 다행. 그리고 99시절과 같이 상대가 앉아있으면 농차가 히트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경우에도 창귀를 쓰게 된다.

[1] 현재 정립된 창귀의 이미지는 토속 귀신인 가문글기가 중국에서 전래된 창귀와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 가물글기, 호질, 산횡사(山橫死)귀신, 뫼귀신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모양.[2] 익사자의 원혼 역시 일가친척들을 물로 유인해 목숨을 앗아가는 악령으로 유명하다.[3] 범이 밥을 지으러 나온 여자를 잡아먹게 하는 것.[4] 실제로 현대의 호랑이도 사냥꾼이 설치한 무인총기 트랩을 우회해서 박살내는 걸로 유명하다.[5] 창귀는 신맛을 좋아하니, 매실을 호랑이 다니는 길에 뿌려 두면 창귀가 이것을 주워 먹고 취해 사물을 보지 못하니, [6] 소라와 골뱅이가 신 맛이 날리 없으니 이건 창귀의 입맛이 보다 다양한 것일 수 도 있다. 참고로 호랑이가 사는 산간지역에서의 골뱅이와 소라는 민물고둥=다슬기를 뜻할 확률이 높다.[7] 버전마다 세 번 이내라는 설도 있고 다양하다. 1990년대 전설의 고향 《호환》편에도 이 소재를 다룬 적이 있다.[8] 호랑이는 고양잇과의 사냥 습성상 사냥감을 산 채로 잡아가는데 잡혀가는 사람이 멀어지면서 부르는 소리가 없어지는 걸 사람이 아니라 창귀였다고 핑곗거리를 만들어 살아남은 사람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단 설이 있다.[9]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으면 몸통만 먹고 머리와 굵은 뼈는 남겨놓는다고 한다. 자료에 따라선 팔, 다리와 몸통만 먹고 머리만 남겨놓는다고도 한다.[10] 영화, 괴물에서 전직 엽사로 추정되는 박희봉(변희봉 扮)이 손녀 현서가 괴물에게 잡혀가자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간을 내서 씹어먹어야 한다"는 대사를 한다.[11] 조선 중기의 문신. 인조반정으로 벼슬을 내놓고 전전하다 역모로 몰려 결국 아들과 함께 사형당한다. "어우야담", "어우집"등을 남겼다.[12] 특히 씨족 중심의 마을을 형성하는 과거 사회의 특성 상, 희생자의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을.[13] 생태계 차원에서 보자면, 마치 외래종인 황소개구리가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 때는 천적이 없었으나, 토종 생물들이 낯설기만 하던 황소개구리에 대해 학습해 황소개구리나 그 올챙이를 새로운 먹이로 삼게 된 것과 비슷하다.[14] 이런 이유로 이 만화의 범은 인간을 죽이지 않으며,죽인 범은 질 떨어지는 잡범 취급을 받으며 천대당한다. 이 때문에 만화 초반부에 황요에 의해 창귀에 조종당한 일반 호랑이들이 산군에게 자기들에게 창귀가 붙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자신들은 인간을 잡아먹지 않았는데 그게 왜 붙냐며 경악한다.[15] 또는 무덤을 뛰어넘는 경우도.[16] 흡혈귀와는 상관없지만 전통 상례와 관련한 미신이 있다. 고양이가 초상집 구들장에 들어가거나 시체의 허리를 넘어가면 그 시체가 벌떡 일어서기에 아궁이와 굴뚝을 짚단으로 막는 풍습이 지금도 시골에 남아있다고. 시체를 다시 눕히는 방법은 시체의 왼 뺨을 신발로 세 번 가격 한다...... [17] 한국의 야광귀망의 구멍을 세는데 강박이 있단 전승이 있다. 헌데 이 어린애 창귀의 숫자세기 강박증은 서양의 흡혈귀 문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국의 창귀 중에 "고양이의 혼에 물든 어린아이 흡혈귀"가 있다란 전승의 진위에 의심을 더하는 부분.[18] 구미호 문서에 소개된 구전들 중에는 이 아장살이(애총)를 훼손하는 여우의 이야기가 두어개 등장한다. 어린 아기의 무덤을 이렇게 특별히 만든 이유는 호식총과 달리 오래 기억하고 귀신으로 나마 부모 곁에 아이가 남아있길 바라는 기원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