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재해)

 

1. 개요
2. 피해 사례 및 사살 사례
2.1. 인간 사냥꾼 호랑이가 적은 이유
3. 한반도에서의 호환


1. 개요


/ Tiger Attack
[명사]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禍).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지만..."'''이라는 말이 90년대 초중반에 출시된 비디오에 나온다. 흔히들 무서운 것을 말할 때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의 호환. 다른 말로 호난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호환으로 인한 피해는 역사가 깊다. 공자는 포악한 정치를 호랑이에 비유했다.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울고 있어서 '왜 우냐'고 물으니 '시아버님, 남편, 자식이 호환을 당했다'고 답했다. 그래서 공자가 '이런 위험한 곳을 왜 안 떠나냐'고 물으니까 '여기는 최소한 벼슬아치에게 세금 뜯길 일은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하자 공자가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의 정치판에 비교될 정도였으니 호환에 의한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1]
늑대사자, 하이에나는 인간이 보이면 어지간하면 알아서 피하는 데 반해,[2] 유독 호랑이는 인간을 자주 습격한다.[3] 호랑이에 의한 인명피해는 근대화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객관적인 자료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3곳이다. 중국푸젠 성, 말레이 반도, 그리고 인도이다.
공자의 일화가 보여주듯 중국 남부에서는 남중국호랑이(북부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인간을 습격했다. 1922년에는 한 해 동안 60명의 사람이 죽었다. 1840년대 싱가포르에서는 '''연간 2,000명 이상'''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인도에서도 1930년대까지 매년 1,00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단 이러한 수치들은 호랑이 연구가인 스티븐 밀스에 의해 의심받고 있는데 밀스의 주장에 의하면, 호랑이가 모종의 이유로 공동체에서 실종된 사람의 행방을 매듭짓는 유효한 도구로 쓰였을 것이라고 한다. 즉, 사고사나 살해당한 사람, 행방불명된 사람의 결말을 적당히 무마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은 호랑이가 물어갔다.'라고 둘러댄다는 것이다.
인도에는 100명 이상의 인간을 죽인 악명높은 '인간 사냥꾼' 호랑이들이 여럿 존재한다. 유명한 인간 사냥꾼으로는 탈라 데스, 로하가트, 차우가르 등이 있다. 모두 100명 내외의 인간을 죽였다. 이중 가장 악명 높았던 개체는 "참파왓(Champawat)"라는 암호랑이[4]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436명의 인간을 죽였다고 한다. 네팔에서 200명을 죽인 후 인도로 쫓겨가 인도의 쿠마온에서 4년간 236명을 더 죽이고 유명한 명사수인 영국 육군짐 코벳 대령에 의해 사살됐다. 이 호랑이는 코벳 대령이 사살한 첫 번째 식인동물이었다고.
현재는 개체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대규모 피해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연간 300명 안팎의 피해가 꾸준히 발생한다. 이중 대부분이 인도의 순다르반스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 지역은 '순다르반스 식인 호랑이'로 악명이 높다.
야생 맹수에 의한 피해가 교통사고나 각종 패륜 범죄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은 이유는, 호랑이의 개체수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개체수는 먹이감 500마리 당 1마리 수준이고, 식인 개체는 호랑이 100마리당 3마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중 하나라도 식인 맹수가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자호랑이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21세기 현대에서도 이런 맹수가 사람을 잡아먹은 사건이 터지면 동물보호고 뭐고 그 일대의 맹수들을 몽땅 쏴 죽이는 일이 터진다. 한번 사람을 공격하거나 식인을 한 맹수는 다시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래에 하술. 이러니 인도 같은 경우 호랑이표범 연구로 유명한 동물학자들이 스스로 총들고 식인 맹수를 쏴죽여야 했다. 안 그러면 다른 애꿎은 맹수가 학살당하기 때문으로, 코벳 대령이 참파왓 사살에 나선 것도 다른 호랑이들이 무고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사실 보통 맹수들은 인간 사냥과 인육을 상대적으로 꺼린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냄새'''. 하술할 신체적인 특징 이외에도, 의외로 인간은 냄새가 무척 심한 동물이다. 스컹크와 같이 냄새를 무기로 삼는 동물조차도 평상시 몸의 체취 지수는 인간보다 낮을 정도다.[5] 인류의 조상인 영장류는 덥고 습하고 각종 냄새가 들끓는 정글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진화했기 때문에 체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할 이유가 비교적 적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은 몸에 털이 난 부분이 적어서 대신 피부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피부를 보호하기 때문에, 인간보다 수십배는 후각이 예민한 식육목 맹수 입장에서 인간의 체취는 강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각종 청결용품(비누, 샴푸, 치약, 향수, 로션 등)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맹수들 입장에선 입맛이 안 당기는 먹잇감이 되는 셈이다.[6][7] 야생 동물은 발달된 후각으로 인간 특유의 냄새를 아주 민감하게 느낀다. 그러나 일단 사람을 잡아보고 사냥하기 쉽다는 걸 깨달은 호랑이(를 포함한 다른 맹수들)는 인간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 첫 번째로 서식지의 파괴와 먹이의 감소이다. 살 땅과 먹을 것이 없어지면 호랑이는 살기 위해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고 가축을 잡아먹다가 급기야는 인간마저도 습격하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말레이 반도와 남부 중국에서 벌어졌던 살육이 이런 양상을 띤다. 일반적으로 이런 유형의 인간 사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인간의 보복을 받아서 살해당하거나, 정말 먹을 것이 없어져서 굶어죽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역 주변에서 살게 되므로 인간 눈에 훨씬 쉽게 띄기 때문.
  • 2번째는 질병, 부상, 노화 등으로 인해 쇠약해 지는 것이다. 인간이나 가축은 야생동물에 비해 조심성 없고 연약하다.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지는 호랑이는 쫄쫄 굶게 되고 자연스럽게 쉬운 먹잇감을 노리게 된다. 비록 그것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참파와트의 식인 호랑이도 오른쪽 위아래 송곳니 2개가 모두 부러진 상태였다. 코벳 대령은 총에 맞아 부러졌다고 추정했다.
실은 이 2번째가 가장 흔한 인간 사냥꾼의 발생 패턴이다. 영역다툼에서 패배해 영역을 잃은 수컷은 인간 사냥꾼이 될 확률이 높다.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먹이를 잡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에 특히 그렇다. 늙어서 이빨이 부러지고 무디어진 호랑이는 먹이의 숨통을 끊기가 어려워지는데, 이런 개체들도 인간 사냥의 유혹을 받는다. 인간으로 치면 70대쯤 접어들어 젊을 때보다 달리는 속도도 느려졌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보다는 훨씬 빠르고, 설령 이빨과 발톱이 무디고 빠졌어도 혼자 산에서 돌아다니는 방심한 인간은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냥냥펀치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기 때문.
그리고 갓 독립한 새끼들은 경험이 없다. 사냥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다 무모하기까지 한 이들은 주변에 인가가 있을 경우 무딘 이빨로도 사냥하기 쉬운 인간을 노리기 쉽다.
가장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동물은 호저이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새끼들이 가끔 호저를 공격하는 헛된 노력을 한다. 호저의 가시는 한번 박히면 잘 빠지지 않고 움직일 때마다 점점 깊숙히 들어간다. 호랑이는 대부분의 가시를 빼낼 수 있지만 운이 없거나 너무 깊이 박힌 경우에는 패혈증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직접적인 죽음에 몰리지 않더라도 가시를 빼내지 못한 호랑이는 사냥할 능력을 잃게된다. 삼바사슴이나 멧돼지, 영양 등은 매우 조심스럽고 민첩하다. 부상당한 발로 그들을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비해 숲 가장자리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물소[8]와 목동은 손쉬운 사냥감이다.
코벳 대령의 사냥기에는 모한(Mohan)에서 잡은 또다른 한 식인 호랑이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그 호랑이는 겉보기엔 멀쩡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호저에 찔렸을 것"이라는 짐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코벳이 호랑이를 잡은 후 다리를 갈라내자, 놀랍게도 겨드랑이 안쪽에서 '''30여 개의 호저 가시'''가 나왔다. 가시는 모두 피부 바로 밑에서 부러져 있었고, 어떤 가시는 '''13cm'''가 넘었다. 다른 호랑이를 잡았을 때는 길이가 30cm에 연필만큼 굵은 것도 있었다고. 코벳은 표범이 솜씨좋게 호저의 머리를 공격하여 사냥하는 반면, 호랑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에 의아해하기도 했다.
  • 3번째는 가장 심각한 경우인데, 위의 2가지 경우에서 얻어진 경험을 통해 인간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는 케이스이다. 원래 인간은 호랑이의 식단에 포함되지 않는다. 인간 사냥은 호랑이가 막다른 궁지에 몰렸을 때 최후의 최후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나 선택하는 카드이다. 하지만 경험이 축적되고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 호랑이는 인간고기를 선호하게 된다. 미얀마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갑자기 호랑이 희생자가 급증하는데, 이는 1942년 연합군의 전면철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남겨진 시신과 부상자를 먹으면서 인간 사냥법을 터득한 데다, 위협이 되는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대거 사라지면서, 호랑이들이 이후에도 계속 인간을 죽인 것이다. 최근에는 인도의 순다르반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순다르반스에 서식하는 호랑이 중 일부는 명백하게 인간을 먹이로 삼는다. 우연히 숲에서 조우했을 때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배에서 낚시를 하는 어부를 노리고 강을 건너와 물에서부터 튀어나와 덮친다. 이 지역에서는 매년 50명에 달하는 인간이 호랑이에게 죽는다.
희생당하는 인간들을 살펴보면, 인간 사냥꾼들의 몇 가지 행동 패턴을 알 수 있다. 피해자들은 항상 '''뒤에서 공격받았고''', '''웅크린 자세'''에서 공격받았다. 이것은 호랑이의 사냥법과 관련이 있는데, 호랑이는 등 뒤에서 기습적으로 등에 올라타서 목을 물어 질식시키는 방식을 가장 즐겨 쓴다. 등 뒤를 노리면 반격당할 위험은 낮추고 상대방의 약점을 찌를 확률은 높아지며, 대부분의 동물은 등 뒤에 올라탄 상대에게 제대로 반격할 수 없다. 목을 물어 질식시키는 것은 실패확률과 신속성을 고려했을 때 가장 균형잡힌 살상법이다. 사냥꾼으로서는 최상의 선택이다.
인간이 호랑이와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면 부상이 곧 굶어죽는 것으로 이어지는 호랑이는 가급적 정면승부를 꺼릴 것이며, 인간이 서 있다면 어깨 높이 1m의 호랑이는 어깨높이 1.4m 이상의 인간을 보며 자기보다 큰 것이 아닌가 착각할 수 있다. 그리고 서 있는 인간은 호랑이가 올라탈 자리도 없다.
화승총을 주로 쓰던 제정 러시아 시절, 사냥꾼들은 신참 사냥꾼들에게 호랑이의 은밀한 접근과 기습에 대한 공포를 이렇게 표현하여 경고하기도 했다.

''' 설원에서 호랑이를 볼 수 있는 순간은 오직 한 순간뿐이다. 호랑이가 너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을 때.'''

한국이나 중국의 민담에는 호랑이와 눈싸움을 해서 이겼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이야기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담겨 있는데, 주로 사냥꾼들을 통해 구전되는 이 이야기에서 호랑이는 인간이 조금이라도 주눅들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 공격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직립자세를 유지한 채 정면으로 대치한다면 호랑이는 매우 혼란스러워 할 것이며, 잘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일단 위험을 피하기를 선택하고 물러났을 가능성도 있다. 마사이족이 식사하는 사자에게 당당히 걸어가는 걸로 혼란에 빠진 사자를 내쫒고 먹이를 삥 뜯는 걸 보면 호랑이의 사례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마사이족들도 사자가 이 방법에 익숙해지면 위험해지기에 정말 최후의 비기로 남겨두기도 하고. 더불어 원래 호랑이가 사냥할 때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시작하기 때문에, 호랑이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면 정말 만만해서 정면승부를 걸어도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고 봤거나 그냥 그 때 배가 부르거나 해서 고기 생각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특성들을 이용하여 몇몇 장비들이 고안되었다.그 중 하나가 허수아비 전기충격기였으나, 호랑이들이 허수아비와 인간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던지라 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뒤통수에 쓰는 가면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뒤통수에도 눈이 있어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호랑이들이 대부분 오른손잡이임을 이용해서 오른쪽 어깨에 스파이크를 달았는데, 이것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2명 이상 짝을 지어 다니는 행동강령도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물론 호랑이가 바보가 아닌지라, 가면이나 스파이크 등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맹수에 의한 살인이 벌어지면 군경이 출동하여 아주 뒤집어 놓는다. 2000년대에 아프리카인도에서 호환이나 사자나 표범이 사람을 여럿 잡아먹자 육군이 출동해서 보이는 맹수는 죄다 쏴 죽여버렸다. 호랑이고 나발이고 총에는 장사가 없고, 민수용도 아니고 군용으로나 쓰이는 자동소총을 들고 긁기 시작하면 코끼리조차 사살 가능하다. 더불어 이 맹수들은 전세계에서 계속 사살당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식인사건이 벌어지면 사냥꾼들이 우르르 달려들기도 한다. 거기에는 혼란을 틈타 한 몫 벌어보려는 밀렵꾼도 있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보이는 대로 쏴죽인다.
사람이 한 번 물려갔다 하면 인근의 사자나 호랑이들은 보이는 족족 다 보복당하기 때문에, 20세기 말부터 사자나 호랑이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는 원래 이들이 살지도 않던 미국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이 애완동물로 사람이 키우고 있기에 숫자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주마다 금지하기도 하고 동물학대라고 논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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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나 맹수들의 빠르기를 보자면 전문 호랑이 사냥꾼이 아닌 이상[9] 인간이 상대를 할 수가 없다. 동물원에서 사람에게 길들여져 키우는 호랑이가 이 정도인데 야생, 앞뒤 구별이 안가는 밀림이라면 아무리 총이 있다 한들 이렇게 빨리 오는 호랑이를 잡기가 어찌 쉽겠는가. 총을 들기도 전에 이미 호랑이가 당신의 목을 물고 있을 것이다.

2. 피해 사례 및 사살 사례


2009년 5월 27일 뉴질랜드 왕가레이 섬에 있는 지온 생태 공원(Zion Wildlife Gardens)에서 사육사인 달루 은쿠베(Dalu Mncube, 남아공 사람으로 당시 26세)가 맡아 돌보던 백호 아부에게 참혹하게 물려 사망했다. 아부는 이후 동물원 측에서 총으로 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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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루 은쿠베.
당시 사살당한 수컷 백호 아부의 생전 사진.
사육사 달루를 보고 멍청하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2009년 2월에 이 백호 아부와 다른 암컷이 다른 사육사를 공격하자 빗자루만으로 제압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얼마든지 막을 것이라며 평소와 다름없을 거라 착각하고 저렇게 들어갔던 것이다. 실제로 사육사가 간단하게 호랑이들을 제압하고 훈련시키는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흔하다. 어릴 적부터 돌봐서 건드리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10]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고, 결국 저렇게 끔살당했다. 이 참극으로 이 동물원은 특별감사를 받았는데 열악한 관리 상황이 드러났다.
그 밖에 2008년 11월 13일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청소부 1명이 3마리 백호에게 습격받아 사망했다. 관련 동영상을 보면 사람이 빗자루와 바구니를 들고 호랑이 똥을 치우러 우리로 들어가는데 '''우리에 있던 호랑이가 난데없이 습격한다.''' 초반부만 보면 단순히 장난을 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후반부까지 자세히 보면 '''우리의 구석으로 끌고 가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중간에 관객들이 'Get in the water(물 속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외치는데, '''부질없는 짓이다.''' 애초에 저 영상에서도 물 속으로 피한 사육사를 '''끌어내서(!)''' 습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촬영하고 목격한 관광객들은 이 당시 가이드 투어로 온 프랑스인 관광객 8명이었다. 동물원측은 그 청소부가 사고 당일에 작별을 암시하는 말을 계속 했고, 동물들에게 물건을 던지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11] 백호들은 사살당하지 않고 각각 2012, 2014, 2017년 병에 걸려 안락사될 때까지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살았다.[12]
2013년 11월 24일, 과천 서울대공원에 위치한 서울동물원에서 시베리아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어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뜨려 결국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해당 호랑이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선물한 것'''으로 '호랑이숲'이란 새로운 우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존 호랑이사를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눈표범 우리에 임시로 전시한 개체 중 하나로, 당시 호랑이 격리를 위한 보안 장치(전자 잠금장치 등)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또한 사고 경위 조사 과정에서 해당 사육사는 원래 맹수 전문가가 아닌 '''곤충 전문가'''였으나 본인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랑이 사육사로 배치한 부분, 그리고 관련 매뉴얼 또한 여러 가지로 헛점이 많은 등 '''예고된 인재(人災)'''였음이 드러나 비판거리가 되고 있다. 이 에피소드는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도 나왔는데 거기선 해당 호랑이가 결국 안락사당했다. 상세한 내용은 서울동물원 문서의 호랑이사 사육사 사망 사건 문단 참조.
앞서 언급한, 20세기 초에 인도 참파왓 지역에서 코벳 대령이 1년간 인간 사냥꾼 참파왓을 추적, 사살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나온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참파왓은 엄청 빠르고 게다가 머리도 영악해서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잠적한 곳은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코벳은 냄새에서부터 흔적을 없애고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13]
20세기에 들어서 호랑이의 서식지가 줄어들어 인간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두 종족이 만나는 곳에서는 호랑이에 의한 인명피해가 제법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도의 순다르반스. 매년 수십 명의 사람이 죽는다. 1981년에도 사람을 100명 이상 잡아먹은 식인 호랑이가 2마리나 나타났다가 이번에는 인도 호랑이 연구의 권위자인 랄지 무파니야트 싱 박사가 2달에 걸친 추격 끝에 2마리 다 사살했다. 하지만 싱 박사는 호랑이 보호에 기여한 인물이었고, 그가 식인 호랑이를 추격한 것도 이 호랑이 때문에 다른 호랑이까지 마구잡이로 사살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코벳 대령이 동물 애호가임에도 참파왓 사살에 적극적이었던 이유와 같다.
이 지역은 불법으로 공원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꽤 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의 호랑이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데, 바다를 헤엄쳐와 배에 타고 있던 경비원을 물어간 일도 있다. 불법 채집꾼은 물론이고 공원 경비원까지 공격한다. 이빨이나 턱을 다쳐 큰 사냥감을 잡지 못하는 호랑이들은 높은 확률로 식인 호랑이가 되는데, 이는 인간이 잡기도 쉽고 먹기도 편하기 때문으로 이는 식인 사자나 표범에게도 해당된다. 위에 나온대로 참파왓 식인 호랑이나 200명 이상을 잡아먹은 쿠마온 식인 호랑이들도 대부분 이빨이 부러지거나 충치등으로 훼손되어 사냥하기 어려워 결국 사람을 잡아먹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영화 고스트 앤 다크니스의 실제 식인 사자 2마리도, 지금 남은 머리뼈와 이빨을 보면 도저히 사냥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호랑이는 으로도 잡기 쉬운 동물이 아니다. 순다르반스 감시원의 말에 따르면 호랑이가 달리기 시작하면 총알을 몇발을 쏘건 소용없다고 하는데, 이는 고양이과 동물들의 신체구조와 관련이 있다. 정면을 향했을 경우 피탄면적이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고, 부풀린 털 때문에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 따라서 급소인 미간을 정확히 노리고 사격했을 때 열에 아홉은 이마의 털만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를 몰랐던 많은 사냥꾼들이 사자에게 역공을 당해 죽었다. 호랑이를 사냥할 때는 측면에서 배나 옆구리를 노리는 것이 정석인데 그래도 한 방에 죽는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 호랑이를 사냥하던 엽사들이나 밀렵꾼들이 가장 많이 사망했던 원인도 총상을 입힌 후 역공을 당해서였다고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호랑이도 죽지만 그 전에 달려와서 원펀치를 날리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식인 호랑이를 11마리나 잡은 코벳 대령이 전설적인 명포수로 추앙받는 것.
인류가 총을 무기로 가지고 나서야 겨우 대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총 가진다고 압도적으로 호랑이를 잡는 게 아니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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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인도 제국에서 호랑이를 잡고자 동원된 사람 수. 영국 부유층 귀족이 인원을 대거 고용해 호랑이를 사냥하러 나선 거라 이 많은 사람을 동원했던 게 가능했다. 이 사진에선 이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달랑 1마리 잡은 걸로 보이지만, 밑을 보면 이런 인해전술로 비로소 호랑이가 학살당하게 된 거다. 당연하지만 엄청나게 노련한 호랑이는 이런 사람의 인해전술에 얼씬도 안 한다. 위에 나온 참파왓 식인 호랑이만 봐도, 수백여 명을 동원했으나 제대로 찾지도 못했던 걸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식인 호랑이는 거의 잡히지 않고 애꿎은 호랑이가 학살되기 일쑤였다. 물량이 많다 보니 보이는 족족 죽이면 어느샌가 잡긴 잡겠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무분별한 사냥으로 생태계 아작내기 십상이다. 이런 사냥법에 대하여 거부감을 보이고 몇몇 소수 인원을 이끌고 아예 호랑이와 1:1로 싸워 사살한 코벳 대령이 그야말로 괜히 전설이 된 게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인해전술이 호랑이 학살에 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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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코끼리도 동원하고 사람들을 가득 무장시켜 나서면서 호랑이들은 마구잡이로 학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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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호랑이는 가죽과 박제감으로 장식 대상이 되는 게 허다했다. 19세기 제국주의 팽창으로 아프리카아시아 각지에서 유럽 백인들이 편하게 사냥을 즐기며 마구잡이로 학살했다. 본인이 진짜 사냥 실력이 대단한 경우가 아니면, 고용한 사냥꾼이나 보조자들이 몰이꾼 역할을 해 고용인 근처로 사냥감을 몰아붙이면 쏴서 죽이는 것만 고용주가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여흥으로 즐기는 사냥도 아무나 할만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경제적 여유가 되는 부자들이 사냥을 즐기면서 호랑이표범이나 많은 맹수들이 세계 각지에서 마구잡이로 학살되었다. 호랑이가 아무리 총으로 잡기 힘든 동물이라고 해도 명중시키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총으로 죽일 수 없을 정도의 맷집을 가진 건 아니었기에 사냥꾼들이 단체로 총알을 퍼부어버리면 얄짤없었다.
베트남 전쟁때 시신을 먹어 인육 맛을 느낀 호랑이들이 미군들을 습격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결국 이 호랑이들 때문에 작전에 지장을 주게되자 이에 미군은 호랑이들을 닥치는대로 사냥했을 정도.
그렇긴 해도 그 시절과 다르게 총알 위력이 더더욱 강해진 현대에서도 아무리 좋은 총이 있다고 해도 초보자가 멋대로 까불 상대가 아니다. 한 가지 실화만 봐도 알 수 있는데, 2005년 러시아에선 어느 사냥꾼이 갑자기 호랑이의 습격을 받았다. 그는 6발을 호랑이에게 쏴서 대부분을 맞혔다. 그러나 호랑이는 일절 속도가 떨어지지 않고 달려왔고, 재장전할 틈도 없던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호랑이는 나무 위로 좀 올라오며 발톱으로 몇 번 공격하다가 서서히 쓰러져 죽었다.
사냥꾼의 신고로 현장에 와서 이를 조사하던 러시아 동물학자들은 충격에 빠졌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사냥꾼을 공격한 것은 이미 사람에게 당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엑스레이로 발견된 것에 의하면, 호랑이 머리에 총알이 3발이나 박혀 있었던 것. (아마 소구경 탄환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사냥꾼이 쏜 게 아닌 다른 누군가, 아마도 밀렵꾼으로 추정된 이가 먼저 쏜 것에 호랑이는 부상당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나중에 지나가던 그 사냥꾼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밀렵꾼은 적어도 중상을 면치 못했으리라 추정되는데, 호랑이 발톱에 사람(사냥꾼의 것이 아닌) 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호랑이에게 끔살[14]당했을지도 모르는 일. 머리에 총알이 박힌 지 한참 지나고도 이렇게까지 사람에게 덤빈 걸 봐도, 호랑이가 장난 아니게 잡기 어려운 걸 알 수 있는 경우이다.
인도의 아삼 주에서 가축을 해치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코끼리와 엽총으로 무장한 경비대가 출동한 일이 있었다. 그때 궁지에 몰린 호랑이가 '''코끼리에게 정면 돌격해와[15] 3m 이상 점프하여 코끼리에 타고 있던 대원을 앞발로 가격'''한 후 달아났고, 그 대원은 중상을 입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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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코끼리가 맞긴 했는데 다행히 그리 치명상은 입지 않은 듯 하다.
이 장면이 바로 그 실제 상황이다. 호랑이의 점프력은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다. 거기다가 저 정도로의 가격으로 대원이 중상을 입을 정도면 파괴력도 엄청나다. 호랑이가 앞발을 휘두를 때의 힘의 크기가 800kg 정도는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물소 같은 대형동물의 두개골이나 척추를 일격에 산산조각낼 수 있으니, 문제 동영상 장면에서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 대원은 이후 회복해서 계속 경비대원으로 일했다. 이 사람의 인터뷰가 들어간 호랑이 보호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한국에 방영되어서 국내 방송도 탔다.
야생에서 자라지 않고 인간에게 사육된 코끼리는 호랑이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원래 코끼리가 신중한 동물인데다가 공격 본능이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덤으로 인도에 서식하는 코끼리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코끼리와 달리 덩치가 작은 편에 속한다. 성체의 경우 호랑이는 쉽게 막지만 새끼는 기습에 취약하다. 아예 새끼와 어미가 같이 있는데도 새끼를 덮쳐서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저 위 동영상에서 공격받은 경비원만 해도 코끼리 위에 타고 있는 상태였었다. 사실 호랑이를 상대하려면 훈련된 군마로 들이받는 식의 공격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 훈련된 군마의 경우 호랑이가 목을 공격하지 못하게 주인이 무기로 막아주기 때문에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돌진한다. 가속이 붙은 군마의 돌격은 소형 트럭에 치이는 정도의 충격력이 나오기 때문에[17] 아무리 호랑이가 튼튼한들 치이면 최소 중상, 심하면 치명상을 입고 죽게 된다. 직접 들이받지 않더라도 활이나 총을 쏴서 죽일 수도 있다.
2000년대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인간에 의해 사육되는 호랑이는 2만여 마리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에 남아있는 야생 호랑이 숫자보다 많다. 하지만 호랑이가 크면 안 귀엽다고 일부러 성장 억제제를 먹여 호랑이 몸 상태가 엉망인 경우도 허다하다. 당연히 몸 상태가 극도로 불안하고 이런 억제제를 먹인 호랑인 성격이 갑자기 난폭해질 수 있다. 그래서 종종 이런 호랑이가 조금만 기분 나빠도 사람에게 덤벼드는 경우가 있다.
TV 동물농장에서도 맹수를 주로 담당하는 미국 동물보호원에서 이런 호랑이를 구조하여 맡는게 나온 바 있는데, 어느 가정집에서 집주인을 크게 다치게 하고 여기로 온 호랑이가 나왔다. 그 호랑이 상태가 털이 좀 나다말다하고 겉으로 봐도 뭔가 이상한 상태인데, 성장억제제를 과용시킨 결과라고 한다. 당시 방송에 나온 호랑이는 자신을 그렇게 만들며 키우던 사람을 공격하여 수백바늘을 꿰매게 만들고 여기로 왔다고 한다.

2.1. 인간 사냥꾼 호랑이가 적은 이유


호랑이가 인간을 자주 습격한다고 하여 태생적으로 인간을 좋은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래 호랑이가 살고 있던 영역을 인간이 침범함에 따라 습격의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 것뿐. 호랑이 역시 다른 맹수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처음 본 순간에는 그리 좋은 먹잇감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과 호랑이의 강인함을 생각할 때, 그 많은 호랑이 가운데 어째서 단 몇 마리의 호랑이만이 인간 사냥꾼이 되는지가 더욱 신기하게 여겨져야 할 것이다. 호랑이는 우거진 숲이나 정글에서 이기지 못할 자가 없으며, 같은 호랑이가 아니라면 여간해서는 겁을 집어먹을 이유가 없다. 약하고 힘없는 먹잇감인 인간을 보자마자 바로 습격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야생 호랑이 연구가인 스티븐 밀스의 해설이 신빙성이 있다. 호랑이의 키는 1m, 몸길이는 3m 정도이다. 때문에 인간의 키가 1.8m라 할 때 호랑이의 눈에는 그것이 '''정면의 키가 1.8m이니 실제 몸 크기는 한 4~5m 될 것이다'''라고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는 것이다.[18] 이는 실제 많은 사족보행 동물의 착시를 설명할 때 흔히 인용되는 내용이다. 하여 감당키 힘든 먹잇감이라 생각하고 습격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 호랑이는 사냥을 할 때 먹잇감의 등 위에 올라타서 목줄기를 물어뜯는데, 인간은 이족보행의 짐승이므로 우선 그 올라탈 등이 없다. 때문에 호랑이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런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간한 맹수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인도 등지에서 호랑이에 의해 피해를 당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쪼그리고 앉아 있거나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는''' 것이 이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에선 과거 심마니들이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엎드려 절하고는 호랑이가 물러갈 때까지 그대로 엎드려 있는 대처법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런 대처법이 생긴 이유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조선시대엔 호랑이는 산의 왕으로 인정받았기에 '왕에게 절을 해주면 기분이 풀려 돌아갈 것이다.'라는 민간 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그래서 한국에서 호환이 많았나"라든가, "눈 앞에서 엎드린 거라 호랑이가 생소해서 움찔해 물러간 건가" 등등의 추측이 많지만 전문적인 연구나 실증이 없으니 그저 추측의 영역이다. 여러 명의 심마니가 엎드린 경우 한 명만 잡아가고 나머지 사람은 살 수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혹은 눈 앞에서 만난 키 1.6m, 몸길이 6m의 괴생물이 갑자기 엎드리는 것을 보고 도약 공격을 하려고 웅크리는 것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물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든가.
스티븐 밀스 자신도 호랑이를 탐구하느라 정글을 돌아다닐 때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은, 숲 속에서 용변을 보던 때였다고. 호랑이는 고양이과 동물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가까이 다가오기까지 인간의 청력으로는 결코 그 접근을 알아차릴 수 없다.

3. 한반도에서의 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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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과장된 "호환 상상도" 정도쯤 되는 그림이지만 한반도는 예전부터 호랑이가 무서운 곳으로 유명했다.
과거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았고 더불어 인구밀도도 현대 국가 못지 않게 높았기 때문에[19]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호환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담아 호랑이를 산군, 산신령이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지방 행정력이 상대적으로 미비했던 신라고려시대는 조선처럼 정책으로 호랑이 전담 사냥팀을 구성하고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숫자의 호랑이가 서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 고을에 수령을 파견하는 등 지방행정력이 한결 강해진 조선 시대에 들어선 체계적인 호랑이 사냥이 가능해졌다. 백성을 해치는 호랑이를 제거하는 일은 조선의 국시인 유교이념에 부합하며, 호랑이 사냥을 위해 산과 들을 누빔으로서 자연스럽게 군대 기동훈련을 겸할 수 있어 권장되었다. 조선 중기 때부터 호랑이 사냥만을 담당하는 부대인 착호갑사를 둘 정도로 집중적으로 호랑이를 사냥했고, 호랑이 퇴치를 위해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국왕의 사전 재가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다못해 호랑이를 많이 잡아서 종4품('''중령 ** ''') 벼슬을 얻은 사례도 있을 정도.
이것은 쿠데타 위기시와 더불어 국왕의 재가가 필요없이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허용된 몇 안 되는 경우로, 조선시대 인조반정, 이괄의 난의 경우 이 점을 이용했다. 호랑이 잡으러 간다고 부대를 모았지만 반정에 쓰일 거라고는 생각 못한 것. 달리 말하면 '''반란죄에 악용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호랑이 사냥을 선조치 후보고로 운용해야 할 정도로 호랑이로 인한 재난이 심각했다는 뜻'''으로 봐도 된다. 유럽에서도 제보당의 괴수 사건을 봐도 알겠지만, 이런 연쇄살인 식인동물 사건에 국왕 명령으로 군대가 출동한 걸 생각하면 대충 파악이 될 만하다. 이런 체계적인 사냥이 200여년간 지속되면서 조선 개국후 200년 이상이 지난 인조 시기에 이르면 한반도의 호랑이 개체수는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고 호랑이와 경쟁적 배제 관계에 있는 늑대의 개체수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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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엽 조선 포수 사진.

조선의 호랑이들은 시베리아의 대호와 크기도 거의 비슷하고 습성도 같다. 그러나 따뜻한 날씨 탓인지 털은 더 짧다. 작고 좁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산에도 호랑이가 살고 있을 정도로 호랑이가 많다. 그러므로 자연히 호랑이 포수가 많은데, 이 나라의 사냥꾼들은 놀랍게도 관통력과 유효 사정거리가 60야드에 불과하며 당장 박물관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믿어질법한 16세기 구식 화승총으로 호랑이를 사냥한다. 나는 조선의 숙련된 호랑이 포수들이 호랑이가 20야드 가까이 와도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자연히 이들의 화승총 숙련도는 내가 아는 유럽의 어느 총기전문가보다도 뛰어난데, 만약 이들에게 최신식 라이플을 쥐어준다면 어느 누구라도 조선의 포수들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러시아의 위대한 호랑이 사냥꾼, 게오르게 양코프스키[20]

--- 그리고 변방 백성 중에 조총(鳥銃)을 잘 쏘는 자를 보건대, 호랑이가 3, 4간(間)쯤에 있을 때 비로소 총을 쏘는데 명중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없으니, 묘기(妙技)라 할 수 있습니다. -영조 즉위년 갑진(1724) 10월 15일(을유) , 승정원일기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조선인 및 일본인, 외국인[21] 포수뿐 아니라 육군 병력까지 동원한 일본의 해수구제사업과 토목공사, 6.25 전쟁 등으로 인해 서식처와 개체수가 멸종에 달해 남한에서는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덩치가 큰 동물인 호랑이뿐만 아니라 덩치가 작은 다른 동물들도 모조리 씨가 말라서 외국에 비해 매우 단조로운 생태계가 되었다. 어쩌다 언론에 보도되는 호랑이 목격담들은 대부분 다른 동물을 보고 착각한 경우다. 북한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듯하다.
호환으로 인한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태백산 일대에는 호식총(虎食塚)이라는 돌무덤이 약 160기 존재한다. 이는 호랑이가 먹다 남긴 사람의 머리[22]와 뼈를 수습해 만든 무덤이다. 옛날 사람들은 호환의 희생자는 호랑이의 종 노릇을 하면서 또다른 사람을 호랑이의 먹잇감로 삼게 하는 창귀(倀鬼)가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창귀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화장을 하고, 창귀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돌무덤에 가두어두고, 쇠꼬챙이를 꽂아 창귀를 제압하고자 했다. 이러한 풍습을 호식장(虎食葬)이라고 하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호환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호질에도 이런 창귀들이 나와 호랑이 옆에 붙어선 호랑이에게 이런 저런 사람들을 잡아먹을 걸 추천한다.
또한 한반도에는 표범 역시 '''엄청''' 많이 살았고 이 표범에게 당한 사람들도 호환으로 같이 묶였기 때문에 더더욱 호환의 땅으로 유명했다. 표범이 덩치는 호랑이만 못해도 사람 죽일 스펙은 차고 넘치는데다 은밀성은 더 뛰어나고 분포도 더 넓은걸 감안하면[23] 호환사례 중 진짜 호랑이보다 표범에게 당한게 더 많을 수도 있다.[24] 거기다 언급이 적지만 한반도가 엄연히 늑대도 존재했던 곳이라 이 늑대에 의한 인명피해 역시 상당했을 것이며 이 또한 호환이라 여겨졌다. 걍 맹수한테 당한 사람이 나오면 죄다 ''호랑이가 물어갔나벼''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진짜 호환 자체도 매우 많기는 했다.
여담으로 호남지역에서는 '호랭이 씹어 갈 XX'라는 욕이 있다. '호랑이가 씹어(물어) 가다' 는 호환을 의미한다. 호환이 욕으로 나올정도로 호환은 한국에서 엄청난 재해 였고 이런 호환을 토대로 한국에선 ‘육발이’라는 호랑이 요괴가 나오기도 한다. 육발이는 발여섯이란 말그대로 다리 여섯달린 호랑이를 말하며, 사람을 엄청나게 먹은 호랑이는 다리가 여섯이되어 보통 호랑이보다 더 빠른 속도와 지혜 여기에 높은 도력을 갖춰서 사람으로 변신해서 사람을 유인하기도 한다. 육발이는 특이하게 바둑이나 투전같은 게임을 아주 잘하는데, 사람으로 변신한 육발이는 사람을 꾀어서 바둑과 투전을 제안하고 이에 응한 사람이 이기면 육발이는 큰돈을 주지만 지면 육발이에게 얄짤없이 잡아먹힌다.

[1] 물론 이 일화가 생겨날 당시에는 누구나 쉽게 아는 호환의 무서움을 이용해 정치판의 무서움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호환은 없어졌으나 정치판의 더럽고 추잡함은 널리 알려졌기에 오히려 반대가 된 것.[2] 인간은 무리를 이루는 맹수들에게는 공격당하는 경우가 적다. 이들은 무리 생활의 이점과 강함을 잘 알아서인지 어지간히 굶주리지 않는 한 인간을 잘 공격하지 않는다.[3] 사실 호랑이는 다른 중대형 맹수에 비하면 인간 사냥꾼이 되기 좋은 조건을 다 갖춘 편이다. 늑대나 사자 등은 무리를 지어 살아서 잘 공격하지 않는 편이고, 호랑이의 하위 호환인 표범은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다른 더 작은 먹이로도 살 수 있다. 또 곰은 잡식성이라 사냥에 적극적이지 않고. 반대로 호랑이는 혼자 살고+덩치가 크면서도 기습 사냥에 뛰어나기 때문에 인간을 사냥하는 맹수 중에서는 호랑이의 비율이 높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다른 맹수들에게도 쉬운 먹잇감이나 영역을 침입한 적으로 여겨지면 당연히 끔살이다.[4] 참파왓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5] TV 동물농장에서 방영된 내용이다.[6] 이건 인간의 입장에서도 당연한 일이다. 비누나 샴푸 냄새가 나는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향신료, 특히 고수처럼 인공 세제의 향이 난다고 여겨지는 식재료들이 있긴 있지만 일반적으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7] 다만 이런 냄새가 오히려 을 꼬이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 달콤한 냄새로 착각한 도 찾아온다고.[8] 가축화한 물소는 야생 아시아물소보다 작고 연약하다.[9] 이들은 장비, 노하우, 사냥개의 후각 등으로 커버하는 것이다.[10] 당장 우리나라 TV동물농장을 봐도 사자나 하이에나. 호랑이가 다 커도 빗자루 들고 사육사가 떽! 화내면 쫄아서 물러서는 경우가 종종 나오듯이, 전세계적으로 동물원 사육사들이 자주 이렇게 군다. 사실 호랑이를 우리 바깥으로 따로 보내는 것도 제법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기에, 이렇게 사육사가 들어가서 청소하는 것도 있다.[11] 사건 당시 영문 기사. 세 호랑이의 이름은 Omar, Winnie, Jippie 이다.[12] 2017년 6월에 Omar가 셋 중 마지막으로 죽었다.[13] 출처는 <명포수 짐 코벳과 쿠마온의 식인 호랑이>.[14] 호랑이를 해부했으나 사람 살점은 없었기에 식인 호랑인 아니었다.[15] 측면에서 공격해온 것도 아니고 코끼리의 정면에서 공격한 것이다! 거기에 코끼리가 저 코끼리 1마리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호랑이가 뛰어오르기 전 부분도 충분히 공포스러운데, 넓디넓은 초원 한가운데에 코끼리 위에서 카메라를 찍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호랑이가 10m쯤 떨어진 곳에서 예고도 없이 튀어나와 암살을 시도하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다. #[16] 몇몇 사이트에선 이 사건을 두고 저 호랑이가 새끼를 사람에게 잃어서 복수했다느니 하는 그야말로 소설을 쓴 사례도 있다. 전혀 그런 거 아니고 먹이가 부족한 듯한 호랑이가 가축을 습격해 잡아먹은 걸 추적한 것뿐이다. 저걸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션으로 나온 것이다.[17] 말의 평균 몸매는 380~1000kg으로 호랑이의 2~5배에 달한다. 더해서 제대로 된 군마는 최대 1톤에 달하기도 한다.[18] 성체 아프리카 물소 수컷이나 검은코뿔소의 어깨높이가 1.6m 정도 된다. 두마리 다 사자 혼자서 공격할 엄두도 못 내는 놈들.[19] 1910년 기준 78명/km²으로 2010년대 그리스스페인의 인구밀도와 비슷하다.[20] 1879~1956 이상하게도 영어 발음인 조지(Geoge)로 알려져있다. 폴란드계 러시아인으로 원래 폴란드 성씨인 얀코프스키였으나 아버지 미하일가 러시아로 귀화하면서 양코프스키로 이름을 바꿔었으며 러시아에서 사슴농장을 연해주에 운영했으나, 1910년대 청이 멸망하고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가 된 연해주 국경에 중국 비적들이 허구한 날 쳐들어와 그들을 쏴죽이는 일도 많았다. 이런 일이 지겨운 양코프스키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와서 사냥을 했으며 한국 사냥꾼들과 친하게 지내며 한국 사냥꾼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후손들은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거나 러시아에 남아 살고 있다.[21] 중국이나 러시아인 포수들도 꽤 많이 고용되었다.[22] 호랑이는 사냥감의 머리 부분은 대개 먹지 않는다고 한다.[23] 호랑이가 영역으로 삼기에는 부족한 작은 산에도 표범은 살 수 있다.[24] 일제시대의 통계를 보면 호랑이 8마리 잡히는 동안 표범은 '''100마리'''가 넘게 잡힐 정도였다. 한반도는 상징성 거르고 실제 개체수와 분포로 따지면 호랑이의 땅이 아니라 표범의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