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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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궁 배치도

1. 개요


彰義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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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사진으로 본 창의궁 터 현재 자리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 순화방(順化坊), 즉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9 일대[1]에 위치했던 별궁이다. 영조가 연잉군이던 시절 살던 잠저(潛邸)로서 정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화억옹주, 효장세자, 화순옹주가 태어난 이며, 말년의 숙빈 최씨가 궁에서 나와 살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 곳은 효종의 4녀 숙휘공주의 남편 인평위 정제현의 옛 집이었는데 숙종이 이 곳을 사서 4남 연잉군에게 준 것이다. 숙종은 건물 하나의 이름을 양성헌(養性軒)이라 짓고 까지 지어 현판으로 걸어 아들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3] 1721년(경종 1년)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어 궁궐에 들어와 살면서 기존의 연잉군 사저는 근처의 '창의문(彰義門)[4]' 이름을 따 '창의궁(彰義宮)'이란 이름을 받게 된다. 영조는 창의궁 정당(正堂)에 '건구고궁(乾九古宮)'이란 현판을 걸었는데 《건구공궁 소지(小識)》에 따르면 건구(乾九)는 《주역》에서 온 말로 승천하지 않고 숨어있는 , 즉 잠룡을 뜻하며 이 되기 전의 자신을 투영해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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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구고궁 현판
연잉군영조로 즉위한 이후, 한성부 좌윤[5] 홍석보의 주청에 따라 왕의 잠저 당시 호적을 따로 떼어다 이 곳에 보관했으며 후에 장보각(藏譜閣)을 짓고 영조초상화 2본과 어필 및 서찰 등을 모시기도 했다. 옛 집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한 영조는 어머니 사당인 육상궁을 참배하고 나서 종종 신하들이 말리는데도 여기서 하룻 밤 자고 온 적이 많았고 1754년(영조 30년)에는 이 곳에 일찍 죽은 아들 효장세자와 손자 의소세손사당을 두었다. 정조사도세자초상화를 이곳에 수용하면서 주기적으로 참배하였고 가끔 머물면서 전교를 내리기도 했다. 순조 때는 일찍 죽은 효명세자의 사당도 있었다. 고종 때까지 존재하다가 1908년(융희 2년) 일제에 의해 헐리고 그 자리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사택이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8.15 광복 이후 적산(敵産)으로 분류된 뒤 재분할되어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다.

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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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궁 터 근처의 백송
  • 창의궁 터 부근 통의동에 백송이 있었다. 는 16m였고 한 때 한국에서 제일 오래 된 백송이었으며 나이는 600여 년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1994년에 분석한 결과 1690년 경에 심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건 설이긴 하지만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는 거의 안자랐다고 한다. 1990년 7월 17일에 폭우를 동반한 강한 바람에 쓰러졌다. 청와대와 가까이 있는 나무가 죽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라는 소문이 돌자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는 나무를 살려내라고 지시했다. 서울특별시는 '백송회생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나무를 쓰러진 상태라도 일단 보호하여 살리기로 하고 경찰관을 3교대 근무로 배치하여 보호했다. 그래서 이듬해 새싹이 나는 등 살아나는 듯 했으나 나무를 탐내는 사람들이 몰래 제초제를 뿌리는 등 훼손하여 회생불가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1993년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뒤 결국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었고 그 해 5월 13일에 나무가 잘려 나가 현재는 밑동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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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궁 비석
  • 창의궁 근처 적선방에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그의 남편 월성위 김한신이 살았던 월성위궁이 있었다. 월성위궁이 곧 창의궁이라는 설도 있으나 왕실 사당으로 쭉 기능했다는 창의궁 관련 기록을 보아 잘못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한신의 일가에서는 창의궁 = 월성위궁이라 하고 있어 아직 확실한 것은 모른다고 봐야한다. 이 김한신이 바로 추사 김정희증조할아버지이다.[6] 그래서 이나 답사 등에서 통의동 - 창의궁을 설명할 때 십중팔구 김정희가 반드시 한 번 이상은 언급된다.
  • 창의궁 바로 건넛골목인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70번지에서 조선시대 왕비의 도장이 발견되었다.#

[1]지번주소 종로구 통의동 35번지 일대.[2] 경희궁 북쪽 높은 지대에 위치한 전각이다.[3] 높은 누각 넓기도 한 것이, 임금수레 전에도 왔다네. 광명전[2] 바로 저긴 것이, 때때로 올라가 마음 위로 하리라.[4] 자하문이란 속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5] 현재의 서울특별시 부시장 격.[6] 단, 친 증조부손 관계가 아닌 양자 관계로 이어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