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1960)
1. 개요
1960년 개봉한 스릴러 영화. 한국의 알프레드 히치콕이라 불리는 김기영 감독의 명작.
매력적인 남자 음악 선생인 동식을 두고 벌어지는 세 여자들의 복잡한 애정 관계, 그리고 묘하면서도 노골적인 섹슈얼리티 코드, 그리고 그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포스터에도 나오듯 개봉한 지 무려 60년 넘게 지난 영화이지만, 지금 봐도 놀라운 수준의 연출력과 미장센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관객이나 평단의 평가 모두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최상위권.
2. 예고편
3. 시놉시스
- 출처: 네이버 영화
4. 등장인물
5. 줄거리
주인공 동식(김진규)은 성실한 아내, 다리가 불편한 딸 그리고 장난꾸러기 아들 창순(안성기)과 함께 살면서 방직공장에서 여공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식은 그를 흠모하던 여공인 선영에게 연애 편지를 받고 이를 기숙사 사감에게 알린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선영은 정직 처분[1] 을 받고, 그녀는 수치심에 일을 관두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한편 이 사건 이후 선영의 기숙사 친구였던 경희(엄앵란)는 동식에게 피아노 개인 레슨을 부탁하고, 동식은 마침 새 집을 짓느라 생활비가 부족한 터라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
시간이 지나 집이 완공되고 동식의 가족은 2층 양옥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리고 이사와 동시에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동식은 경희로부터 아내를 대신해 집안일을 맡길 하녀 하나를 소개 받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동식은 아내가 친정에 간 날 밤, 자신의 제자 경희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게 되지만 그녀의 마음을 완강히 거절한다. 한편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하녀는 경희가 집을 떠나자 동식에게 접근해 그를 유혹해 하룻 밤을 보내게 된다.
그로부터 3개월, 하녀는 임신을 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하녀를 설득해 계단에서 굴러 낙태를 하게 한다. 아기를 잃은 하녀는 점점 포악해지고 결국 동식 부부의 아들 창순(안성기)을 계단에서 떨어져 숨지게 한다. 하녀는 이 모든 사실을 공장에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동식의 아내는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식을 이층에 있는 그녀의 침실로 보낸다. 마침내 쥐약을 먹고 하녀와 함께 자살하기로 한 동식은 계단 위에서 죽어가는 하녀를 뿌리치고 아내의 곁으로 돌아와 숨을 거둔다.
다시 영화는 첫 장면의 신문기사를 읽는 동식과 아내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화면을 향해 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동식의 모습으로 끝난다.
줄거리가 다소 복잡하다. 특히 엔딩에 가서는 내용들이 다소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서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두 가지 이야기가 약간 따로 노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후술된 내용에도 나오지만, 엔딩 부분의 급작스런 스토리 전환과 액자식 구성 마무리는 감독의 뜻이 아니라, 영화 배급 업자들의 항의로 인한 타협안이었던 것.
6. 평가
줄거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영화 내내 등장하는 여러 여자는 주인공 동식을 두고 사랑 싸움을 한다. 얼핏 줄거리만 보면 하렘물의 냄새가 나기도하고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싸구려 플릇이 생각날 법하지만 실제로는 절대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 작품은 당시 산업화와 이촌향도에 따라 시골 출신의 (여성) 노동자들이 중산층 가정에서 식모나 하녀로 일하는 당시의 세태를 반영했고(리얼리즘), 그러한 (여성)노동자들의 가정 내 "침투"에 대한 중산층의 경계심(정신분석학적인 면)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영화 속 연출은 감각적이고 섬세하며 세트나 의상 등의 디자인도 60년이 넘은 영화라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세련미가 넘친다. 음악 또한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고조시켜준다. 영화를 보면 2010년 재개봉 판의 포스터가 허튼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혹시나 오래전 영화라 별로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보자. 하녀 연출 분석 영상
한편 평단의 평과 관객의 평가 또한 굉장히 후하다. 2015년 9월 네이버 기준으로 전문가 평점 8.8점, 관객 평점 8.8점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2010년 작이 전체적으로 전문가에게 괜찮은 평가와 관객에게 박한 평가를 받은 것에 반해 1960 하녀는 관객과 전문가 모두를 사로 잡은 것이 특징.[2]
50여 년이 지났음에도 명작은 명작이란 것을 입증하는 셈. 참고로 평점 짜게 주기로 유명한 소금 평론가 박평식에게 평점 8점을 받았다. 다크 나이트에 박평식이 7점을 주었다는 걸 생각하면 매우 높은 편. 박평식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꽤 높은 편이 아니라 만점에 가까운 호평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생소한 장르였던 고딕 저택물을 본격적으로 토착화해 제시한 영화라서, 한국 영화사 전통에서 저택물을 언급할때 자주 언급되는 영화다. 깊은밤 갑자기, 아가씨(영화), 기생충(영화)이 대표적. 한국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로, '하녀-노동 계급 여성이 현대식 부르주아 저택에 들어가 질서 체계를 뒤흔든다'로 꼽는 평자도 많다.
6.1. 평론가 평
'''김기영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걸작'''
- 김봉석 '''(★★★★)'''
'''한국영화의 ‘야성’을 깨우다'''
- 박평식 '''(★★★★)'''
'''극장에서 안 본 애들, 표 끊지 않고 뭐하니?'''
- 이용철 '''(★★★★★)'''
'''괴작의 포스마저 풍기던, 그때 그 영화'''
- 황진미 '''(★★★★)'''
'''아직도 안 봤나? 니 죽고 싶나'''
- 김종철 '''(★★★★★)'''
7. 복원
1960년 개봉되었던 하녀가 지금의 온전한 모습을 찾게 된 데는 우여곡절이 있다. 하녀가 개봉한 1960년대엔 영화는 예술이라기보단 오락 거리의 일부로 취급되었고, 당연히 필름의 보존과 관리도 부실했다. 그 결과 우리 나라의 많은 고전 영화 필름들이 소실되었고, 하녀 또한 그 과정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던 중 1982년 국내에서 총 8개의 릴 중 5번째와 8번째 릴이 사라진 상태로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발견했고, 1990년 에 남은 필름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해외 영화제 출품용으로 만든 것이고 네거티브 필름이 아닌데다가 오역된 부분이 많고 필름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저 완성된 필름을 만들었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하녀가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해외에서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던 영화 프로듀서 겸 교수인 김경현씨는 우연한 기회에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등으로 유명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영화 하녀를 보여주게 되었고, 마틴 스콜세지는 자신이 이끄는 영화 복원 지원단체인 WCF재단(World Cinema Foundation)의 첫 복원작품 중 하나로 하녀를 선정했다. 당시 마틴 스콜세지는 불완전한 하녀의 필름을 보고도 꽤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WCF는 이 영화의 복원 비용 1억 7600만원 중 1억 2천 여만원을 지원했으며 2008년 복원을 목표로 국내에서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복원 작업은 꽤 힘들었다고 한다. 버스터 키튼 복원작업에도 참여했을 정도로 유명한 이탈리아 복원 업체인 시네마테크 볼로냐와 경쟁 끝에 겨우 국내 복원을 추진하게 되었지만 [3] 필름의 상태가 만만치 않았다. 해외 출품용으로 만들어졌던 필름은 영상의 3분의 1을 자막이 채우기도 했고, 음성도 불완전하고 보관 상태도 영 좋지 못했다. 게다가 자막은 오역 투성이에 손으로 갈겨 쓴 것이라 어디 하나 쓸 만한 구석이 없었다. 결국 국내에서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괜찮은 상태로 필름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고생 끝에 복원이 끝난 필름은 2008년 칸 영화제 클래식 부문에서 상영되어 큰 호평을 받았고, 2010년 임상수감독의 하녀 개봉 시기에 맞춰 국내에서도 완전 복원판이란 이름으로 재개봉했다.
이후 2010년 DVD를 발매했다. 2010년 DVD판에선 영화 평론가 김영진과 영화 감독 봉준호의 음성해설이 들어있다.
2013년엔 고전 영화를 복원하는 것으로 유명한 크라이테리온에서 블루레이로 발매했다. WCF재단 복원 프로젝트에 선정된 다른 영화들 (지브럴 좁 맘베티의 투키 부키, 아흐메드 엘 마안누니의 트랑스, 프레드 진네만과 에밀리오 고메즈 뮤리엘의 더 웨이브, 리트윅 가탁의 티타샤라는 이름의 강, 이롤 타스와 울비 도간의 메마른 여름)과 함께 박스셋으로 발매되었다.
2014년 말에는 국내에서도 블루레이로 발매되었다. 한국영상자료원 첫 블루레이 출시작이기도 하다. 평론가 이동진과 영화 감독 박찬욱의 음성 해설이 들어있다.
8. 흥행
개봉 당시 100,000명의 관객을 동원해 1960년 당해 국산 1위 흥행 영화를 기록했고, 21세기에 들어서 재개봉 등으로 8,938명의 관객을 모았다.
기생충의 국제적인 성공 덕분에 해외 인지도도 오르는 추세다. 2019년 이후 해외 평에서는 기생충 때문에 보게 되었다는 언급도 있을 정도. 2020년엔 일본에서 블루레이로도 발매되었다.
9. 기타
- 지금도 유명한 엄앵란이 주인공을 사모하는 여공 경희 역으로, 안성기가 맹랑한 아들 역할로 출연한다. 국민학생 안성기의 아주 제대로 된 개초딩 연기를 볼 수 있다.
- 2013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한 한국 영화 100선 중 영광의 공동 1위를 차지하였다. 나머지 두 작품은 오발탄, 바보들의 행진.
- 김기영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중산층을 모델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급조차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시대를 다룬 작품인지라, 실질적으로는 현대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자를 지칭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영화 내에서도 "마을에서 우리집이 제일 부자"라는 아들 역 안성기의 대사가 나온다. 당시에는 영화적 배경이 되는 '2층 양옥집'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전형적인 부유함의 상징으로 통용되었다. 실제 영화에서도 부유층으로의 편입이나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의 상징으로서 '2층 양옥집'과 '계단'이 사용된다.
- 1950년대 말 즈음, 해외의 문물이 일부 부유층을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하던 모습을 볼 수 있다. 흑백 텔레비전, 인스턴트 커피, 피아노, 카레라이스 등이 등장한다. 이는 보통 주한미군 부대를 통해서 암암리에 반출되거나 일본을 통해 밀수로 국내에 들어오던 물건들인데,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 또한 매우 비쌌으므로 지극히 일부 부유층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다.
- 하녀로 출연한 이은심은 사실 배우에 그다지 꿈이 있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녀 촬영 이후 얼마 안있어 결혼하고[4]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 현재는 브라질에 거주하는 중이라고 한다. 기사보기
- 복도와 계단에서 여주인공 하녀가 동식의 다리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장면은 명장면이다. 이 장면은 2010년 리메이크판에서는 리바이벌되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해에 나온 손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뮤직 비디오에서 오마쥬되었다.
- 2015년 11월17일 CGV 명동 씨네라이브러리 점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GV와 함께 재상영되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엔딩을 두고 검열 때문은 아니라고 설명할 때, 김기영 감독의 아들인 김경호(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제작)가 직접 현장에서 이를 설명했다. 당시 영화의 판권을 판매할 때 지방의 극장에는 따로 팔아야 했다. 지방의 극장주들을 모아놓고 상영을 했는데 하녀와 주인공이 죽는 엔딩이 너무 끔찍하니 흥행이 우려된다며 항의가 거셌다고 한다. 그대로 영화를 판다면 원래 값의 절반밖에 쳐줄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극장주들을 달래기 위해 주인공이 스크린 밖의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엔딩을 급조할 수 밖에 없었지만, 김기영 감독은 늘 이를 후회했다고 한다. 만일 완전판으로 복원해서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다면, 해당 장면을 잘라내는 방향으로 고려하는 중이라고 김경호가 밝혔다. 간단히 말해 상업적 검열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
- 조선일보 1960년 11월 4일자 보도에 따르면 하녀의 이야기는 실제로 금천에서 있었던 하녀의 주인집에서 일어난 유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10. 관련 문서
11. 바깥 고리
12. 둘러보기
[1] 유부남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이유. 지금과는 다소 다른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건이다.[2] 2010년 판에 대한 평론가 평이 관객평보다 높은 이유는 일부 평론가들이 애초에 1960년 작과 비교를 거부한 것에도 있다... 물론 임상수 감독이 1960년 판과 다른 스타일로 만든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문가 평을 보면 원작은 어차피 뛰어넘질 못하니 비교하지 말잔 식의 평가도 꽤 있다.[3] 복원은 HFR에서 담당했다.[4] 남편은 장군의 수염으로 유명한 감독 이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