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오해

 



1. 개요
2. 목록
2.1. 저학력 학교에서 주로 발생하는가
2.2. 저소득층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가
2.4. 서양개인주의 문화 덕에 학교폭력이 덜한 편인가
2.5. 근현대화 이전에는 학교폭력 같은 미성년자 폭력이 없었는가?
2.6. 학창시절에 국한되는가
2.7. 대다수는 일진들이 저지르는가
2.8. 직장폭력같은 다른 사회폭력에 비하면 경미한가
2.9. 당하는 피해자도 문제가 있는가
2.10. 왜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는가
2.11. 가해자는 학생뿐인가?


1. 개요


학교폭력의 원인, 경과, 사후 처리에 관련한 오해를 기재하는 문서. '정확히 알려진 통계나 전문기관에서 발표한 자료, 기사'에 근거하여 적어야 한다.

2. 목록



2.1. 저학력 학교에서 주로 발생하는가


학교폭력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일상이론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역시 흔하다. 성적과 인성은 절대적인 비례관계가 아니며 오히려 성적이 높은 영향력 있는 학생들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존재한다.[1] 이런 경우, 지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단순히 육체적 폭행만 이루어지는 학교폭력 사건들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소위 말하는 권력형 비리, 재벌들의 비리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그 좋은 머리를 써서 더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사건을 은닉하며 법망을 피해가고, 범죄의 규모가 큰 만큼 파장도 크기 때문에 고학력자의 범죄는 저학력자의 범죄보다 더 위험하다면 위험하다. 우범곤이 죽인 사람보다 대우그룹 부도에 연관되어 자살한 사람이 더 많으면 많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남부지검 검사를 자살로 내몬 김대현 전 부장검사의 경우도 그러한 예다. 기사
가장 최근의 예는, 무려 서울시 강남구의 은광여자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박주원 양의 자살 사건이 있다. 유툽링크[2][3]
2012년도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학교폭력으로 인해 2명의 여학생이 자살해버린 대전 D여고 사건도 대전에서 언제나 5위 이내 성적을 유지하고 여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 중에선 1~2위를 다툰다는 명문고로 유명한 둔산여자고등학교에서 발생했다.
그외에도 학교폭력 피해자 누나가 교육부 장관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동생의 고통을 애기한 것이 방송을 탔는데 그 피해자 누나는 그날로 명문학교의 명예를 더럽힌 배신자가 되어 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누나가 자퇴한 이유는 방송을 탄 후 교사,학부모 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선배부터 후배들 까지 누나를 배신자로 낙인 찍고 자퇴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수현, 학교폭력에 관한 연구-고등학생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집(2007)이인석, 학교폭력에 대한 경험과 대처방안- 서울시내 실업계∙인문계 고교생의 비교를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석사학위논문집(2001)은 공통적으로 실업계-인문계 구분과 학교폭력에 큰 차이가 없음을 말하였다.
결론적으로, 위 사실에 입각해서 상위 일반계(인문계)고나 특목고에서 학교폭력이 없다는 건 편견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수도권 중심적인 사회체계의 폐해 중 하나이기도 하다.

2.2. 저소득층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가


교육 환경이 좋다는 지역에서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본 문서 위에서 언급된 강남구 소재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도 그렇지만, 양천구 모 중학교에서 일어난 자살 사건도 예를 들 수 있다. 2012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2017년 시점에서도 아직 소송이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이다. 관련기사
참고로 해당 학교의 교장은 피해 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학생들이 애도를 하려고 했지만, 꽃 한 송이도 들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기사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묻혀 버렸다. 게다가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이런 지역의 특성상 집값 하락이나 지역 이미지 하락을 우려해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2명의 학생이 자살한 대전 둔*여고 사건도 해당 학교는 대전에서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둔산신도시의 학생들이 대부분인 고등학교다.
사실, 언론에 보도가 안 되었다 뿐이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서울 양천구 내 일부 국민학교에서도 지금 기준으로라면 학폭위에 넘겨야 할 심각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났었다. 예를 들면 알레르기 비염을 앓는 학생에게 더럽다고 침을 뱉거나 중요 부위에 발길질을 하거나 쓰레기를 쏟아 버리는 식. 이 경우 찍힌 아이 한 명만 표적이 되기 때문에 피해 학생이 입을 닫으면 이슈화되기 어려웠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피해 학생이 스스로 제보를 할 리도 만무했다.
게다가 저 당시엔 한 반에 50~60명인 과밀학급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집단 괴롭힘이 벌어졌을 경우 가해 학생이 기본적으로 한 반에 수십 명 규모이니 호되게 꾸중을 해도 그때 뿐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경우는 80~9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나 해당 지역의 상황이 지금과는 많이 다름도 고려해야 한다. 80~90년대는 지금에 비해 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이 매우 낮았다. 물론 YWCA 같은 학부모 단체에서는 폭력적인 만화 영화가 원인이라며 날을 세웠지만, 비비탄총 같은 위험한 장난감이 문방구점에서 버젓이 팔리던 시절이며, 매일 이런 걸 들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장난질을 하는 개초딩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4]
하지만, 요즈음은 당시보다 즐길 거리가 많아서 얌전히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노는 경우가 많다. 즉 그나마 요즈음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선 전반적으로 순하다 할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예를 든 양천구의 80~90년대는 지금과는 위상이 매우 다르다. 애초에 강남에 비벼 볼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고, 저때 학생들 상당수는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으며, 지역이 발전하면서 교육에 신경 쓰는 주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그나마 물이 많이 좋아졌다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언급된 불미스런 일들이 있다는 게 문제이지만...
"1990년대에 일본에서 들어온 이지메 문화가 원인이다, 맞벌이 증가가 원인이다"라는 의견도 있으나 그 시절 매체에서나 떠들던 얘기지, 공산품도 아니고 그딴 걸 어떻게 수입하나.[5] 1990년대의 반일감정은 지금보다 더 강했을 것이 뻔하므로 딱히 좋은 것도 아닌 걸 딱수입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학생들이 이지메 수입하겠다고 1달 집중연수 다녀온 다음에 전파하고 이래서 수입하고 뭐 이런 것도 아닌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곪을 대로 곪은 문제가 터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말죽거리 잔혹사같은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미 몇 십년전의 과거에도 학교폭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학생이 전파했다는 카더라도 있었지만, 전혀 입증되지 않았으며, 일본 문턱을 밟아보지 않은 아이들도 학교 폭력 잘만 저지르고 다녔다.
또한 이런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과밀 학급이 많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의 생활 수준이 높은 만큼 가해 학생의 부모가 교사 앞에서 갑질을 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공론화되기가 어렵다.[6]
그런데 현실적으로 봤을 땐 저소득층 지역은 한부모 가정이나 결손가정의 비율이 높고 아이들이 부모의 관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친 아이들이 많이 존재하고 아이들의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교육환경이 좋은 지역도 학교폭력이 없는 것은 아니고 위에 서술한대로 학교폭력 사건도 많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교육환경이 좋은 지역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잘 관리하고 가정교육 또한 철저하게 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의 폭력적인 성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또한 교육 환경이 좋은 지역은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는 주민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니, 학부모들도 행동거지를 조심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다만, 그만큼 은따나 이간질 같은 지능적 형태의 정신적인 폭력이 많을 가능성은 있으니 안심할 수만도 없다'''링크

2.3. 폭력적인 오락 매체가 원인인가


폭력적 매체와 폭력성의 인과관계는 심리학계에서 거진 50년 동안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떡밥이다. 이에 대해서는 관찰학습 문서 및 게임 중독 문서를 참고할 것. 연구 내적으로는 가상매체 속 폭력에 대한 무감각성이 실제 폭력성으로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지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가 있고, 연구 외적으로는 정히 그렇다고 치더라도 과연 이 주제가 "학교폭력" 이라는 한정된 케이스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가 있다. 물론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의 경우에는, 이를 실험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선 연구진들을 모독하는 것에 가깝다.
적어도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아직 어느 쪽으로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라는 쪽으로 일반화 및 적용하려는 일부 인사들이나 시민단체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으로서의 학교폭력, 왜곡된 사회의 부조리가 여실히 반영되는 현상으로서의 학교폭력이라는 문제를 깔끔하고도 손쉽게 "폭력적 매체" 라는 원인으로 돌리려는 지적 안일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끝내면 학교폭력은 너무나 단순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비판하는 측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폭력적 매체에 원인을 돌리는 측도 제정신 박힌 사람들은 이게 영향을 끼친다는 거지 이게 원인의 전부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환경적 요인만 따져보더라도 영아기의 양육(child-rearing) 같은 변수부터 시작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경제적 지위(SES),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호위대(social convoy) 모델, 청소년 소집단의 또래문화, 지역사회 및 학교의 역할과 청소년 비행에 대한 관습적 대처방식, 교내 문제에 있어서의 교사의 임파워먼트, 지역 치안 환경, 소년법과 같은 법적 환경, 청소년정책의 효과성, 당국의 교육철학 등등...작정하고 따지고 들어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 매체"가 인과성이 입증된 변수라고 하더라도 변수가 너무나 많아서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면, 폭력적 매체가 인과성이 입증된 변수면 당연히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타당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
2000년대 이후의 학폭에서 게임은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게임을 하고 나니 사람을 때리고 싶어졌다.' 식은 아니고 게임이 연관된 사건이 학폭에서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게임 캐릭터를 키워놔라.', '폰 게임 할 거니까 와이파이 셔틀해라.', '게임 캐쉬 충전할거니까 문화상품권 내놔.' 등이 있다. 즉 게임이 학폭에서 '착취'의 한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게임의 문제점이 뭐냐면, 게임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고 어느 순간부터 노가다성 요소로 충만해졌기 때문에, 과거라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헤어지고 나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현재는 끊임없는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옛날에도 있던 숙제 셔틀 같은 경우 그냥 숙제 하는 김에 시간 더 들여서 조금씩 바꿔 써서 숙제 하나를 완공하면 끝나지만 게임은 끝이 없다. 이건 분명히 게임의 잘못은 아니지만, 노가다성 온라인 게임 핸드폰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 중 하나다. 90년대에서 00년대 초까지 유행하던 철권이나 kof나 위닝, 피파, 스타크래프트 등은 아무리 대신 시켜봤자 피해 학생의 실력만 늘어나지 별 의미가 없으니.
학교폭력의 원인을 폭력적 매체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도 타당하지 않다고도 말하기 어렵지만, 있어 봤자 그 영향력이 크지 않은 시점에서 가장 큰 부작용을 심하게 말하자면 그 정보의 수용자들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맘에 들지 않는 젊은 놈들 욕이나 이참에 한 번 더 하고 잊어버려야겠다" 정도의 감정을 갖고 있다. 이 문서에도 조금 서술되어 있지만 한국의 사회문제에 관해 괜히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쓸데없이 별 관련도 없는 일본이나 유교 같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화풀이용 샌드백이 그 원인이므로 제거해야 된다고 실컷 때려놓고 아 정신적으로 속 시원하니 잊어버려야겠다 하며 돌아서는 정도의 효과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폭력적 매체에 관심을 쏟는 것에 관해 그 기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렇게 매체가 사람의 심신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사고는 전통적으로 미학의 영역이라는 설도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을 제외한 한자 문화권은 매체가 사람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을 중요시하고 높게 봤다.
법치를 낮게 보고 덕치를 높이 보며, 교화를 최고의 수단으로 생각했으며 그 수단이 바로 노래와 소설류 같은 예술매체들이다. 한자 문화권은 이와 같은 예술 매체를 관이나 학에서 알맞은 방향으로 통제하는 것을 통해 백성들의 심성을 잘 갈고 닦아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다시 말하면 심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예술 매체는 전통적으로 처벌과 검열의 대상이었다. 이를 또 다시 말하자면, 예와 술에 속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도를 향한 부속품 정도로, 심성을 아름답고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아예 인지 자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전면 부정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미학관이다. 요러하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매체를 대하는 자세는 지적 안일함도 아니고, 00년대 들어서 게임이 학교폭력의 주된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이고 수준 높은 미학관에 근거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이 한자 문화권의 깊은 전통 속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의식하고 검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한국은 전통적으로 높은 인문학 수준을 유지했지만 동양철학 기준이고 일제 강점 이후 서양 철학과 인문학의 발달은 답보 수준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미학관의 수입 대신 전통적인 미학관을 고수하는 가운데 기독교, 그중에서도 장로교 윤리관을 조금 도입한 상태에서 검열과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7]
결론적으로, 학교폭력의 실체와 실태를 정확히 알려줌으로써 시각을 넓히고 문제의 다층적인 복잡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학교폭력을 "폭력물에 빠져 버린 일부 문제아들의 개인적인 문제" 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사회의 일원인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란 결론에 닿는다. 학교폭력이 일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다만 학술적인 문제를 떠나 실질적으로 게임이나 영화, 격투기 장면 등을 따라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긴 하며, 국가에 따라서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현실을 들어 미디어에 대한 검열 및 통제가 옳다고 보는 여론이 대다수다. 물론 없애다시피 심해서는 안되겠지만... 폭력적인 매체를 따라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이 계속 발생한다면 이러한 여론이 쉽게 수그러들기는 힘들 것이다.

2.4. 서양개인주의 문화 덕에 학교폭력이 덜한 편인가


보통 한국의 왕따를 비롯하여 일본의 虐め(이지메), 중국의 霸凌[8], 欺凌, 欺負같은 단어 때문에 학교폭력은 공동체주의 성향이 강한 동양권이 강하고,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권은 개인주의라 없거나 덜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올베우스(Dan Olweus)[9]교수가 있는데, 1970년대부터 학교폭력의 과학적 접근 및 해결법을 연구한 1세대 학자로 유명하며, 'Bullying'이라는 단어가 보편화 되는 것에 일조한 사람이니 그 이름값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학문적, 제도적 접근은 서양에서 먼저 시작했다. 기실 근현대 교육, 현행 학교 제도의 기틀이 서양에서 잡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Bullying(영국, 미국), Harcèlement scolaire, Schikane, Mobbning(유럽 각국)과 같이, 학교폭력을 의미하는 서구권 언어의 단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학교폭력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서구권의 경우 인종주의, 총기 소유와 겹쳐 더 상황이 심각한 경우도 많다.#, #, #, #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법, 제도적 차이와 엄격함 외에는 거의 없고, 비교적 학교폭력을 일찍 연구하고 대책을 강구했기에 서양 쪽이 동양에 비해 보다 나은 편이나,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조차 초창기에는 올베우스의 연구를 보고 배우기에 바빴을 정도이니 실상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에선 학교폭력과 무관하다 볼 수 없는 총기 난사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 오하이오 소재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기사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미국 사회도 긴장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지만 대비책은 영 신통치 않다.
서양권 문화 영향을 많이 받은 홍콩도 학교폭력이 꽤 문제다. 아예 중학교를 무대로 한 초급학교패왕[10]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 정확히는 일본과 서양의 학교폭력 문화가 합체한 모양새이다. 오토바이 타는 폭주족도 꽤 많아 경찰과 크로스하버 터널 등에서 자주 실랑이 벌이고는 한다.
일본대만같은 경우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철저히 격리시킨다고 한다. 그에 비해 중국은 아직 대책이 미흡한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도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되자 빨간 불을 키고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북미는 확실히 처벌이 한국에 비하면 넘사벽이다. 그쪽은 인종이 섞여서 인종차별 문제로 끌고 갈 수도 있고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당연하고도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원칙을 잘 지키기 때문에.
당장 서양 어린이~청소년층들이 즐기는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만화들만 봐도 불량해보이는 양아치나 무식하게 힘만 세고 덩치 큰 운동선수(jock), 겉모습을 예쁘장하게 꾸민 치어리더와 상위 클리크의 날라리분위기가 풍기는 일진 여학생들이 자기보다 만만해보이고 약해보이는 애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면서 괴롭히거나 가끔 캐비닛에 가두는 장면이 한번쯤은 꼭 나온다.[11] 랄프 위검을 봐도 장애인을 매우 존중한다던 선진국에서도 정신장애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은 현실에서도 있다. 많은 장애와 정신병들이 대부분 발견된 곳인 구미권 사람들도 동양보다 인식지수가 높을 뿐이지 일상적으로 정신병에 대해 무지하거나 편견을 가지는건 똑같다. 아스퍼거 증후군 같이 드물게 알려진 장애들에 대해서 서양인들도 대부분 모른다.
실사영화판 스파이더맨을 봐도 주인공 피터 파커가 학창시절 때에 나쁜 애들의 괴롭힘 때문에 아싸로 살아온 모습이 보이는데, 나중에 스파이더맨이 되고나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놈에게 자기도 모르게 쭉빵 한대로 와장창하고 박살냈더니 오히려 주변에서 무섭다며 더욱 아싸로 몰아갔다. 이런 묘사를 보아 서구권 명문 학교에서도 왕따아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미국 혹은 핀란드처럼 총기를 소유 가능한 나라들의 경우 간간히 학교 총기난사 사건도 일어나는 막장스런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좋은 예로서 해외에도 지잡대 같은 고만고만한 대학이 있긴 있지만 애초에 대학 입시 방식이 한국과 딴판이다. 거기다 버지니아 공대는 주립, 즉 일개 나라로 치면 국립으로 절대 지잡대가 아니다. 그런 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정도다.

2.5. 근현대화 이전에는 학교폭력 같은 미성년자 폭력이 없었는가?


[image]
일단 그림만 봐도 그런 소리 못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오늘날의 한국 학교에 해당하는 서당같은 곳에서는 유교 정신이 매우 깊었으므로 미성년자들간의 폭력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다면 "얼라리 꼴라리~"[12]가 언제 나온 건지부터 알아보고 잘 생각해보자. 또한, 그 시대에 나쁜 쪽으로 찍히면 또래들로부터 현대의 린치와 유사한 일도 일어났으며, 신고식 등으로 사람이 죽거나 병드는 일도 일어났었다. 근대도 물론 예외는 아닌 게, 동서양 막론하고 근대 기숙사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에게 다구리를 날리거나 물세례를 뿌려서 괴롭히는것, 혹은 싸움 도전장을 보내서 강제로 1:1 맞다이를 까는 것쯤은 귀여운 일로 치부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중세시대의 학교에서도 학교폭력에 준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현재는 대다수가 과거의 모습에서 개선된 것임을 항상 기억하자.
근현대화 이전은 아니지만 흔히 높으신 분들나 때는 안 이랬는데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과거의 학교폭력 문제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말죽거리 잔혹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있다. 추억보정 혹은 심의문제 때문에 약간 미화되어 나왔을 뿐, 실제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집단괴롭힘이 암암리에 이루어져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착하다는 편견을 버리자. 또 하나의 반례로, 학생들 간의 폭력은 아니지만 학교 내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으로 청주고 야구부 사건이 있다. 현재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당시 만연했던 공동체주의 및 부실한 통신망 때문에 쉬쉬했던 과거의 문제점이 인터넷 등의 전자통신매체의 발달로 인해 쉽게 드러나게 된 것일 뿐이다.
또한, 과거 학폭의 대표라 하면 다른 학교와의 패싸움을 꼽을 수 있는 반면 현대 학폭의 대표는 단연 집단괴롭힘이다. 과거에는 '내 편 아닌 사람'에게 학폭을 가했다면 현대에는 그냥 '만만한 사람'에게 학폭을 가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 외에도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삭막해진 가정 때문에 수법이 잔인해지고 지능화되며 갈취와 착취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2010년대 들어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하게 된 것이다.

2.6. 학창시절에 국한되는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13] 2항[14]에 따르면, 초ㆍ중등교육법상의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만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적으로 볼 때, 고등교육법에 해당하는 교육기관(대학) 내외의 폭력은 학교폭력으로 보지 아니하며, 미성년자 간의 폭력사건이라도 당사자가 학생이 아니라면 역시 학교폭력으로 보지 아니한다. 학생이 가해자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학생이 아니라면 이 역시 학교폭력으로 보지 아니한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볼 때, 학교폭력은 학창시절에만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성인인 만큼 당연히 형법에 의해 처벌받고, 소년법 및 미성년자 양형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성인이 되면 몸을 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뒷담화,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따돌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똥군기를 부리는 사례가 종종 보이나, 피해자 쪽에서 신고 및 고소하면 상해죄, 강요죄, 폭행죄 등이 구성되어 얄짤없이 처벌받는다.

2.7. 대다수는 일진들이 저지르는가


물론 일진들도 학폭을 많이 저지르나, 어느 정도 서열정리가 끝나면 '다들 알아서 기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학폭 사례가 줄어드는 편이다.
만화 크로우즈에 나오는 스즈란 고등학교 같은 사례는 일진들끼리 치고받는 것이지, 소위 '양민'에 해당하는 평범한 학생은 건드리지 않으며, 과거에 '''남자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대수롭지 않게 인식했던 것도, 이처럼 싸움 좋아하는 애들끼리 서열정리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상습적인 금품갈취, 언어폭력은 계속해서 저지르기 때문에 육체적 폭력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이버 폭력도 포함되며 금품갈취 역시 당연히 포함되는 학교폭력의 완전한 정의로 치면 일진들이 학폭에서 높은 비율을 가져가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러나 학폭은 일진들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학생들이 개입되었을 때가 더 위험하다면 위험한데, 집단괴롭힘이 적용되기 때문이고, 가해자를 특정짓기 어려워 법적 처단도 어렵다.
진위 여부는 논란이 있으나, 현재 논란이 되는 유명인 학투 사례들이 이런 경우다.
즉, 일진들과는 달리, 끼리끼리 치고받고 싸운 게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이며, 일반 학생으로 분류되는 애들이 가해자라서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으로 여론몰이가 쉽다는 게 문제다.
또한 괴롭힘과 폭력에 집단적 동조와 같은 군중심리가 발생하여 일진과 같은 소수 그룹의 주도적 괴롭힘보다 증거와 증언을 구하기도 어렵고, 학폭이 일어나는지 자체를 알기가 어렵다. 피해자는 혼자고, 가해자는 다수이기 때문이다.

2.8. 직장폭력같은 다른 사회폭력에 비하면 경미한가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이며, 미성년자는 사회적 보호와 관심의 대상임을 망각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남이 맞고 참는다고 해서 나도 그래야 할 이유도, 당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미성년자는 오죽할까. 인권은 상향평준화의 대상이지 하향평준화의 대상이 아니고, 범죄는 막아야 할 것이지 더 심한 범죄가 있다고 해서 다른 경미한 범죄가 용서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다행이니? 히틀러였으면 가스실로 보냈어.', 강도 피해자에게 '야 넌 운이 좋다. 오원춘이었어봐. 넌 죽었어.' 같은 헛소리를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저열한 발언이다. 그냥 없어져야 할 것은 없어져야 할 뿐이다.

2.9. 당하는 피해자도 문제가 있는가


피해자에게 문제가 없어도 학교폭력은 일어날 수 있으며,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든 없든 간에 학교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폭행의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후,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면 백이면 백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면 그만 아니냐?'라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그 결과 반 학생이 30명인데, 29명이 그 학생과 말을 섞지 않고, 눈도 안 마주친다고 생각해보자. 각 개인이 불쾌감을 표출한 결과, 결국 집단 따돌림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피해자도 문제 있다.'는 말은 책임 전가의 한 형태로 쓰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만만해 보이니까.', '집이 못 사니까.'[15] 심지어는 '얼굴이 못 생겼으니까' 식의 같 잖은 이유 때문에 학폭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비교가 힘들 정도로 더 많다. 더불어 설령 상대가 저런 문제점을 가졌다 해도 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16] 거기다가 이런식의 책임 전가를 하는 머리가 된다는 것은 "이딴 짓 해봤자 처벌받을 짓이니 절대 해선 안된다" 정도는 생각할 머리가 된다는 소리니 말도 안되는 변명에 불과하며 고작 피해자에게 문제있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행사한다면, 이는 곧 가해자 자신 또한 문제가 있는 사람임을 자인하는 것이요, 결국 고작 '피해자의 문제' 때문에 아예 성폭력, 살인 등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대놓고 저지르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거기다가 문제가 있는 사람을 직장상사[17]로 만났을 때 과연 대처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는데 문제가 있는, 즉 직장 상사에 관해서 극복할 수 있는 건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로 인한 문제를 해쳐나올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사회에서 제일 살아남기가 유리한 건 상식이다.[18]
거기다가 피해자 문제를 빌미로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들은 갖가지 핑계거리를 만들어내 필요 이상으로 가해를 일삼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피해자도 문제있다'는 가해자의 변명은 결국엔 책임 전가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뒷받침해준다.
2018년 한 학생이 사망한 사건에서 피해자가 친모가 러시아인이고 한국인 아버지가 없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것을 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괴롭히다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며칠 전 가해 주동자 아버지를 욕해서 폭행했다고 핑계를 되는 등 사망한 피해자에게 사건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전 세계에서도 아직 간혈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도 역시 가해자(가해 집단)의 이런 책임 전가 논리에서 나온 비극적인 사례다. 결론적으로, 어떤 경우에서든 폭력은 정당화 될수 없다. 남의 결점을 핑계로 폭력을 일삼는 자들은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2.10. 왜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는가


"짐작은...간다. 모든 게 맘에 차지 않았겠지. 서울식과는 많이 다를 거야. 특히 엄석대가 급장으로서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못돼먹고... 거칠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이 곳의 방식이다. (중략) 봤지? 오늘 60명 중에 네 편은 단 하나도 없었어. 네가 꼭 석대를 급장 자리에서 쫓아내고... 우리 반을 서울에서 네가 있던 반처럼 만들고 싶었다면... 먼저 그 아이들을 네 편으로 만들었어야지. 석대가 이미 그 아이들을 휘어잡고 있어서 어찌해 볼 수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는 내게 달려오기 전에 먼저 아이들부터 먼저 네 편으로 돌려놨어야 했어. 그게 안 되니까 내게 왔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리고... 아이들이 어리석으니까 선생인 내가 고쳐 놔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틀렸어. 아이들의 그 지지란 것이 실상은 석대의 위협이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간 거짓된 것일지라도... 마찬가지야. 나는 어쨌든...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석대의 힘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 지금껏 흐트러짐 없이 잘돼가던 우리 반을... 막연한 기대만으로 흩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지. 거기다가... 어쨌든 석대는 전학년에서 가장 공부 잘 하고... 통솔력 있는... 모범적인 급장이다. 무턱대고 비뚤어진 눈으로만 보지 말고... 그의 장점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새로 시작해 보아라. 석대와 경쟁하고 싶다면... 정당하게 경쟁해라... 알겠니?"

(중략)

만약 그가 소리 높여 꾸짖었다면 나는 어떻게든 맞서 나를 주장하려 들었을 것이다. 아니 성난 얼굴이었거나 조금이라도 나를 미워하는 기색이 있었더라도 기억에서처럼 그렇게 조용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한 그 목소리와 진정으로 나를 염려하는 듯한 그의 눈길은 내게서 그런 기력마저 빼앗아 버렸다. 나는 넋나간 사람처럼 무정하고 성의 없는 담임 선생의 이상한 논리 앞에 앉았다가, 이윽고 쥐어짜다 만 빨래 같은 몸과 마음이 되어 거기서 풀려났다.

(중략)

담임 선생에 대한 기대를 온전히 거둔 뒤 나는 먼저 아버지에게 내가 빠져 있는 외롭고 힘든 싸움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무력감으로 전같지 않게 비뚤어져 있던 아버지[19]

는 무정하고 성의없는 담임 선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못난 자식, 누구 일을 누구보고 해 달라는 거야? 힘이 모자라면 돌도 있고 막대기도 있잖아? 그보다 공부부터 이겨 놓고 봐. 그래도 아이들이 안 따르나..."

내가 감정을 앞세워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한 것도 있고, 아버지가 내 일을 아이들 세계에 흔히 있는 사소한 다툼쯤으로 쉽게 여긴 탓도 있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 같은 역정에 더 어떻게 말해볼 기력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나를 이해하려고 안달하고 부지런을 떤 것은 어머니였다. (중략)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다시 은근한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결국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너는 애가 왜 그렇게 좀스럽고 샘이 많으니? 그리고 공부는 또 그게 뭐야? 도대체 너 왜 그래? 거기다가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오늘 네 담임 선생님 만나 두 시간이나 이야기했다. 엄석댄가 하는 걔도 만나 봤지. 순하면서도 아이답지 않고 속이 트인 애더구나. 공부도 전교에서 일등이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한 반 시간을 담임 선생과 비슷한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나 내 귀에는 그 이상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절망이 아닌 허탈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문열이 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한병태의 5학년 담임과 부모님이 한 말. 한병태는 담임과 부모님에게 엄석대 문제로 도움을 청했으나 소용없자 엄석대에게 굴종하는 걸 선택했다.

만화나 영화처럼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한번 제대로 저항하면 가해자들이 건들지 않는다는 것은 다 픽션이다. 소위 싸움 잘하는 일진들의 기선잡기가 아닌 한, 학교폭력은 처음부터 강한 폭력과 심각한 괴롭힘으로 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은 장난으로 피해학생의 성향을 분석한 후에 점차 심각한 폭력으로 발전되는 것이 대다수 학교폭력의 유형이며, 가해자의 수가 다수인 경우가[20] 대부분이다. 닫힌 사회에서 벌어지는 집단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피해학생은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한편, 육체적 상흔이 남는 물리적 폭행을 제외하면 증거를 수집하는 것조차 어렵다. 저항한 피해자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기도 한다.
반 학생 대부분이 피해학생을 인간 쓰레기통 취급하는 지경까지 오게 되면 어지간한 수준의 저항은 '찐따의 재미있는 발악' 수준으로 격하되기에 저항 자체의 의미도 사라진다. 각잡고 중상해,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행각을 벌여야 먹히는데, 선량한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히 독기있는 학생도 벌이기 어려운 일이다.[21] 외부 공권력, 언론, 단체가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개입하거나, 아예 더한 폭력을 사용해서 틀어막아야 하는 상황이므로 피해 학생을 겁쟁이 등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무개의 경험를 들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수업끝나고 종례시간에 '''앞으로 불러 괴롭히지 말라고 선언한 경험이''' 있을 정도다.[22]

2.11. 가해자는 학생뿐인가?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
즉,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학생 뿐만이 아닌 학교 측이 될 수도 있다.



[1] 주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들 역시 동참하는 경우도 존재한다.[2] 피해자 박주원 양의 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박 양은 진선여자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 박 양의 부모님이 진선여중에 항의를 몇 번 했지만, 계속 무시당했다고 한다.[3] 여담으로 이때 이사장은 나중에 새누리당 후보로 구로구 갑에 나와서 더민주 후보에게 탈탈 털렸다.[4] 지금은 어린이들이 이러한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게 법을 개정해서 사라진 현상이다. 여담이지만 정인이를 학대한 양부가 사용한 물건이 이 비비탄총이다. 즉 어린 시절에 이런 물건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커서 아동 학대범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5] 정확히 말하면 "일본놈들 이지메 문화가 심각하다, 무섭다, 이 원인은 세대 간의 단절이 어쩌고 지나친 서구화가 어쩌고 우리 사회도 일본의 사회 양상에 몇 년 뒤처져서 따라가는 만큼 우리에게도 이미 그 전조가 나타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같은 취재 기자 지금 나가 있습니다 네 취재 기자 XXX입니다" 뭐 이런 정도인데 찌라시로 갈수록 수입했다는 인간들이 많다.[6] 실제로 목동의 고급 아파트 주변에 있었던 모 카페에선 '제발 카페에서 기저귀 좀 갈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붙었던 적도 있었는데, 카페 위치의 특성상 타 지역 고객의 소행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엄마가 학부모가 될 경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7] 그러나 이는 조금 무리한 해석이다. 서양에서도 스테인드 글라스의 사례처럼 종교적, 사회적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았으며 의외로 1950년대까지는 영화나 만화 검열 수준도 서양이 동양보다 낫다고 할 처지조차 못되었다. 서양에서 현재와 같은 미학관이 갖춰진 것은 68혁명으로 일컬어지는 1960년대의 급진적인 사회 변화 탓이 크다.[8] 한글로는 '패릉'이라고 읽는다.[9] 스웨덴 출신의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 교수.[10] 스트리트 파이터의 영화판으로 악당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판사를 학창시절로 타임머신 타고 가서 암살할려고 한다는 내용으로 학교 짱에게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이 나온다.[11] 오죽하면 캐비닛 제조 업체에서 비상탈출장치를 달아놓는 경우도 있다. 그래봐야 밖에서 줄 같은 것으로 고정시켜두면 나올 수 없고, 공공기관 물품은 쉽게 교체되지 않아 의사결정권자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12] "얼라리 꼴라리"할 때 '얼라리'가 원래 '어린 나리'에서 유래되었다. 얼나리깔나리로 생각해보면 얼추 비슷한 발음임을 알 수 있다.[13]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ㆍ유인, 명예훼손ㆍ모욕, 공갈, 강요ㆍ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ㆍ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ㆍ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14] "학교"란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초등학교ㆍ중학교ㆍ고등학교ㆍ특수학교 및 각종학교와 같은 법 제61조에 따라 운영하는 학교를 말한다.[15] 여기서 못산다는 것은 조금 못사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기초생활수급자, 결손가정, 재혼가정 등 아주 어려운 집 또는 특수가정에서 자랐거나 혹은 보육원 출신 아이라면 부잣집 아이들보다 더 못 건드린다. 이런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온갖 쓴맛피맛을 다 봤고 잃을 것도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공격이 들어오면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필사적으로 반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16] 더욱이 앞서 서술되어 있듯이 피해자가 '자신의 행동 교정' 혹은 '자신의 질환 치료'에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가해자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반성과 개선이 자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17] 정부의 고위 공무원직 혹은 사법기관의 고위직도 해당.[18] 실제로 학창시절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이가 사회에서 가해자보다 더 좋은 배려를 받으며 살고 있는 사례와 관련된 경험담들은 종종 나올 뿐만 아니라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선 경우이긴 해도 가해자가 징역형에 처한 경우도 있다.[19] 서울에서 일하던 공무원인데 상관에게 아부하지 않아서 지방으로 좌천당했다.[20] 처음부터 여럿이 괴롭힐 수도 있으나, 맨 처음 시작한 가해학생에게 피해학생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합세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21] 설령 가해자에게 중상을 입히거나 살인해도 끝은 좋지않다. 지금 당장이야 무시안할지 몰라도 짧은 시간내에 가해자 주변 사람들이 보복해서 죽일 각오로 패기 때문이다. 거기서 또 저항을 해서 이기더라도 전보다 더 세게 보복을 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피해자가 당할 수 밖에 없다.[22]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으며, 그 학생은 5년가까이 더 심하고, 적극적인 폭력에 시달리다가 전학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