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

 


[image]
韓丙起
1931년 6월 8일 ~ 2017년 4월 21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이다. 본관은 청주(淸州)[1]. # 호는 동효(東曉), 청농(靑農)이다. 종교불교였다가 개신교개종하였다. 박정희와 첫째 부인 김호남 사이에서 태어난 박재옥이 그의 부인이다. 따라서 박근혜에게는 이복형부다. 슬하에는 2남 1녀를 두었다.[2]

2. 생애


한병기는 1931년 6월 8일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에서 아버지 한승연(韓承連)[3]과 어머니 순흥 안씨 안여옥(安如玉)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4]# 평안남도 평양부 승호고등보통학교,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미국 페어 레이 디킨슨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6.25 전쟁갑종장교로 참전하였다. 장인어른박정희 장군의 전속부관이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 비서를 지내다가 원대복귀하여 대한민국 육군 대위로 예편하였다. 그리고 1962년 주 뉴욕 총영사관 영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건설공제조합 이사장, 삼양항해 사장, 대한선주협회 회장, 설악관광(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김종호 대신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아 강원도 양양군-속초시-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한 이후로는 주칠레대사, 주유엔대사, 주캐나다대사를 역임하였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김종필이 민주공화당 총재가 되자 김종필의 보좌역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3년 해금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김덕룡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강원도 양양군-속초시-고성군-인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송훈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7년 4월 21일에 숨을 거두었다. 향년 85세. 여담으로, 사망 당시 언론에서는 '박근혜의 이복 형부 한병기 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라고 아주 짤막하게 언급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은 방송사도 있었을 정도로 존재감이 별로였다(...). 더군다나 당시가 박근혜가 공식 탄핵을 당하고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간이어서 정계에 대한 관심이 대단할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주목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인 박재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박근혜의 다른 이복형제들에 비해 존재감이 매우 작고 한병기 본인도 정계 등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은 인사이다 보니 이런 '푸대접'을 받은 듯하다. 3년 후인 2020년 7월 8일, 부인 박재옥도 별세하였다. 향년 84세. #

[1] 문정공파 34세 병(丙) 항렬을 쓴다.[2] 아들 한태준(전 중앙대 교수)·한태현(설악케이블카 회장), 딸 한유진(대유몽베르CC 고문), 사위 박영우(대유위니아그룹 회장)씨가 있다.[3] 일명 한승구(韓承九).[4] 청주 한씨 제7교 대동족보에는 한승연의 아들로 한병기만이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