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2 농구대잔치
1. 개요
2002년 1월 5일 개막된 당시 최고 권위의 아마추어 농구대회.
명색이 '''"2001-02"''' 농구대잔치임에도 불구, 장충체육관 대관 문제로 2002년 1월에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공식명칭은 '''"세원텔레콤배 2001-02 농구대잔치"'''이다.
이전까지 총 4차례 준우승에 그쳤던 상무가 현주엽의 활약으로 첫 우승을 달성했다.
김주성 입학 이래 대회 3연패 중이던 중앙대는 김주성-박지현 콤비가 졸업반인 시즌에 아쉽게 우승을 놓치고 만다.
2. 참가팀
- 대학농구연맹 소속 10개팀과 상무까지 총 11개팀이 참가하였다.
3. 운영방식
- 조별리그: 2조로 나뉘어 조별 풀리그를 통해 각 조 3위까지 6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부여했다.
- 6강 플레이오프: 각 조 1위는 준결승 직행, 각조 2,3위는 크로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6강전, 준결승전, 결승전 모두 단판.)
4. 대회결과
4.1. 조별 리그
※ 승패 동률 시 승자승으로 순위 결정.
'''A조 리뷰: 중앙대의 최강 확인 & 연세대의 부진'''
- 송영진-김주성 트윈타워 구성 이래, 지난 3년간 대학농구 천하통일을 이루었던 중앙대는, 2001 시즌 초반 마산고출신 콤비 황진원-송영진의 졸업 공백을 느끼며 4월 MBC배 결승에서 성균관대에, 전국체전 결승에선 상무에 각각 대패하며 최강자의 위상이 다소 흔들리게 된다. 대학농구연맹전 1,2차대회를 석권하며 시즌 2관왕에 올라 체면치레를 하긴 했으나, 지난해까지 대학농구계가 1최강(중앙대)-2강(성균관대-연세대)-3중(한양대, 고려대, 경희대)의 구도였다면 2001년 시즌은 중앙대의 전력 약화로 인해 1최강의 자리가 사라지고 중앙대-성균관대-연세대의 3강 구도로 재편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3강팀들이 농구대잔치 조별예선부터 만나게 되면서, 예선전부터 박터지는 대결이 시작되었다.
-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 중앙대, 역시 김주성이었다. 매경기 30점 가까운 득점에 10리바운드 이상의 괴물같은 활약을 올리며 괜히 국가대표 센터가 아님을 증명한 김주성과 더불어, 4학년이 되면서 일약 대학 No.1 가드로 우뚝선 박지현의 노련한 경기운영 덕분에 중앙대는 다른 2강팀 성균관대, 연세대와의 맞대결에서 여유있게 승리하는등 4연승을 달리며 A조 1위로 플레이오프 4강으로 직행한다.
- 4학년이 된 낙생고 트리오 정훈-진경석-이한권의 활약은 여전했고 대학농구팬들을 열광시켰지만, 막상 성균관대의 성적은 늘 2% 아쉬웠다. 2001 시즌 첫대회인 MBC배를 따내며 드디어!! 최강자에 오르는가 싶었는데, 나머지 대학농구연맹전에선 의외로 부진하면서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죽음의 조" A조에서 중앙대엔 다시 패했지만, 연세대와의 맞대결에서 이한권의 결승포 덕분에 82:81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조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 2년전 1999-2000 농구대잔치 준우승의 주역이었던 김동우-박광재-전병석 트리오가 건재하고, 최희암 감독이 대학농구계에 물의를 일으키면서 싹쓸이 스카웃으로 데려온 이정석-최승태- -김종완의 가세로, 연세대는 2000 시즌의 부진을 떨쳐내고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1,2차 연맹전에서 연이어 준우승에 머물긴 했지만, 정상적인 라인업만 가동된다면 90년대 연세대 전성기에 못지않은 스쿼드라 평가받았고, 중앙대-상무와 더불어 2001-02 농구대잔치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슈퍼루키 의 부상이 끝내 회복되지 않았고, 어린 독수리들은 매경기 접전상황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성균관대, 경희대에 각각 1점차, 3점차로 아쉽게 패배, 2년 연속 농구대잔치 예선탈락의 굴욕을 맛본다.
- 2000 농구대잔치 준우승으로 통산 3회 준우승에만 머물었던 상무가 칼을 갈고 나왔다. 기존의 황성인, 표명일, 손규완에 매직히포 현주엽,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 2:2 플레이의 마술사 강혁 등 이 합류하면서 국가대표 상비군 수준의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현주엽은 무릎부상으로 재활을 병행하며 출전했음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었고, 골밑 파트너 정훈종[5] 과 찰떡호흡을 보여주며 정훈종을 일약 아마농구 No.2급 센터[6] 로 키워내기도(?) 했다.
상무는 2001-02 농구대잔치 조편성에서 행운까지 따라주어 대학 3강을 모두 피하고 몸풀듯 5연승으로 예선을 통과, 플레이오프 4강에 직행하였다.
- 3년전인 1998 농구대잔치에서 한양대를 결승까지 올려놓으며[7] 화려하게 데뷔했었던 김태완은 어느새 그냥 키큰 센터로 전락했다. 반면 구리뱅뱅 양동근은 불꽃슈터군단으로 거듭난 한양대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서동용-김성현 등 슈터들을 이끌며 공수에 걸쳐 열심히 뛰어다녔고, 전주고 출신 입학예정자 김학섭은 "천재가드"라는 명성에 걸맞게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주며 한양대가 고려대를 격파한 경기의 주인공이 된다.
- 1990년대 후반부터 2001년까지 청소년대표급 유망주들을 모조리 끌어모았던 중복 스카웃의 명문 고려대는 가드-포워드 포지션의 심각한 중복 덕분에 막상 스카웃한 99, 00, 01학번 선수 절반 이상을 써보지도 못하고 내보내게 된다.
4.2. 6강 플레이오프
4.3. 대회 결산
- 최종 순위
- 우승: 상무 / 준우승: 중앙대 / 3위: 성균관대, 한양대
- 개인부문 시상
[1] 이 해에 고려대에 입학한 선수(원래 00학번으로 입학 예정이었다가 수능 점수 미달로 늦춰진 김동욱은 빼더라도) 중 김일두와 김지훈만 살아남았다. 정상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윤예상, 강민수, 이재혁 등 고교 농구에서 한가닥했던 선수들 다수가 낙마해버렸다.(이를 뒤에 연세대 05학번이 그대로 답습한다.)[2] 연세대 농구부 역대 최악의 학번으로 꼽히는 98학번에서 그나마 가장 많은 출전 시간을 부여받았던 선수. 그러나 정작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지명받지 못했다.[3] 부상으로 농구대잔치 불참[4] 96학번으로, 2학년 마치고 상무에 입대해 병역 의무를 수행한 뒤 복학했다.[5] 여자농구의 레전드 or 레전드 정선민의 동생이다. 키 205cm라 공익근무요원 소집 대상이나, 출전기회 확보 및 기량향상을 위해 상무 입대를 선택했다. 신검에서 4급 판정을 받았더라도 그 사유가 신장(키)과 체중 초과면 상무에 지원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일.[6] No.1은 당연히 김주성[7] 한양대의 농구대잔치 참가 사상 최고 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