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한국 대표팀
1. 선수단 구성 및 목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의 한국 대표팀에 대한 문서.
한국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15개 종목 중 13개 종목에 선수를 파견, 동계올림픽 사상 역대 가장 많은 종목에 참가했다. 선수단 규모 역시 역대 최대로 선수 71명과 임원 49명 총 120명이 파견되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보다 참가자격을 얻은 선수가 늘어났고, 지난 대회에 비해서 사상 처음으로 팀 스포츠인 컬링에서 여자선수단이 출전권을 얻은 덕택에 참가 선수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아이스하키와 노르딕 복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종목에 출전했다.
목표는 메달 종합 순위 10위권 이내 유지였다. 일부 언론과 네티즌은 전대회의 순위 5위만 보고 이번에도 종합 순위 5위가 가능하다고 봐서 5위 달성이 목표라고 대중들에게 잘못 알려지기도 했는데, 종합 순위 5위를 달성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보다 종목이 12개나 추가되고, 상위권 국가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되어 전 대회와 같은 순위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전보다 더 많은 메달을 따야 했겠지만,[1] 추가된 종목 중에서 한국이 메달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없던 데다가 전 대회보다 전력이 크게 강화되지도 않아서 전 대회보다 더 많은 메달을 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쇼트트랙 종목에 강했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의외의 선전을 거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몇 개의 메달을 추가하고,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메달을 더한다면, 설상 종목 위주로 종목이 늘어나기는 했어도 빙상 종목만으로도 종합 순위 10위권 이내 유지는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대회 초반에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종목에서 예상했던 메달이 나오지 않았고, 남자 쇼트트랙도 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면서 이미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2. 올림픽 성적
2.1. 빙상 종목
전체적으로 여성 빙상 선수들의 강세가 예상되기는 했는데, 그렇기는 해도 대회 중반까지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의 이상화가 금메달을 딴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대보다 떨어지는 성적을 받게 되었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이던 쇼트트랙 여자 1500m의 심석희가 중국의 저우양에 밀려 은메달을 따고 박승희가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상태가 대회 중반까지 이어졌다. 결국 쇼트트랙에서 남자부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2월 18일,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심석희의 활약으로 설욕에 성공했고, 여자 쇼트트랙 1000m에서도 박승희와 심석희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추가했다.
여러 해 동안 세계 최강으로 꼽혀오던 남자 쇼트트랙은 '''보기 드문 전멸을 당했다.''' 2013-14 월드컵 대회에서 샤를 아믈랭과 '''빅토르 안(안현수)'''에게 밀려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은 있었지만, 그래도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것. 게다가 경기 막판에 뒤에서 상대 선수를 추월한다는 작전만 고집한 탓에 패널티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가 되어 국제망신까지 당했다.[2]
스피드 스케이팅은 12개 전 세부종목에 출전권을 얻었는데 여자 5000m에서는 참가권을 다른 나라에 양도하여 11개 세부종목에 참가했다. 지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의 메달 획득 여부가 큰 관심을 모았다. 이상화는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모태범, 이승훈은 전세계를 경악시킨 네덜란드의 초강세에 밀려 자신들이 전 대회에서 메달을 땄던 종목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네덜란드가 한 종목에서 금은동을 다 차지한 것은 이전까지 단 한 번(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남자 10000m)밖에 없었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무려 4종목(남자 500m, 5000m, 10000m, 여자 1500m)에서 금은동을 싹쓸이했고, 스피드 스케이팅 12개 세부종목에서 모두 메달리스트를 배출하고, 36개의 메달 중 무려 23개를 휩쓰는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의 초강세를 보였다. 특히 모태범과 이승훈이 전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던 500m와 10000m는 모두 네덜란드 선수들 3명에게 밀려 4위를 기록했다. 기록을 보면 둘 다 전보다 기량이 나빠지지 않았다. 도리어 모태범은 500m 합산 기록이 69초68로 금메달을 딴 밴쿠버 때보다 기록이 좋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모태범과 이승훈이 각각 전 대회에서 나란히 1위와 2위를 한 종목들에서 둘 다 이번에는 각각 4위, 12위를 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결국 개인전에서의 메달은 이상화의 금메달이 유일했으며, 대회 후반부에 팀추월 남자 부문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 은메달을 하나 추가하여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받으면서, 지난 대회의 금 3, 은 2에 비하면 메달 개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도 이는 한국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참가 사상 지난 대회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메달을 얻은 것이다. 또한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 6회 연속으로 출전한 이규혁의 노장 투혼이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3]
피겨 스케이팅에는 여자 싱글에서만 3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남자 싱글에서는 출전권 획득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아이스 댄싱은 선수들이 아직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할 정도의 기량까지는 오르지 못했고, 페어는 아직 제대로 된 팀조차 구성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출전권 획득은 요원한 상황이었다. 김연아의 활약으로 이번 대회에서 신설된 단체전 출전 포인트 순위는 9위로 10개국까지 주어지는 단체전 참가권을 획득할 순위에는 들었으나, 여자 싱글에서만 출전권을 얻었기 때문에 단체전에는 당연히 참가할 수 없었다. 여자 싱글에는 김연아, 박소연, 김해진 3명이 참가했다. 기대주인 김해진과 박소연은 각각 16위와 21위로 상당히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었고, 김연아는 금메달을 딸 만한 연기를 펼쳤지만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은메달을 땄다. 자세한 것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 판정 논란 참조.
2.2. 컬링
동계올림픽에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여자 컬링 대표팀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력이 급상승하여 해외에서도 다크호스로 꼽히기도 했다. 초반 한일전 승리로 일약 이번 대회에서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들 중 하나로 떠오륵 되었고 홈팀 러시아를 꺾는 등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지만 세계의 벽은 역시나 높았는지 2014년 2월 16일까지 경기 결과 2승 5패로 4강 진출에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2월 17일, 미국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4강 진출의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다른 팀들도 승리를 거두면서 순위가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최종적으로는 3승 6패로 10개국 중 8위로 경기를 마치게 되었다. 그래도 객관적으로는 세계 랭킹도 가장 뒤지고 참가 팀 중 유일하게 올림픽에 처음 진출하여 경험마저 부족했기 때문에 빵셔틀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으나 강호들을 대상으로도 선전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2.3. 설상 종목과 썰매 종목
설상 종목의 경우 사상 최대의 선수를 파견했는데 특히 프리스타일 스키와 스노보드에 출전한 선수들은 대부분 어린 선수들로 당장 메달은 힘들더라도 4년 후 올림픽을 위한 소중한 경험 쌓기에 큰 목적을 두었다. 또 몇몇 종목에서의 성적이 좋게 나왔다. 특히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에 출전하는 최재우는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스키 사상 최고 성적인 5위를 기록하여 많은 기대를 하기도 했으며 올림픽에서는 결선에 오르며 최종 순위 12위를 기록하여 한국 올림픽 스키 사상 개인전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썰매 종목에도 역시 사상 최대의 선수를 파견했다. 썰매 종목에 걸린 세부 종목 중에서는 여자 스켈레톤을 제외한 전종목에 출전했다. 스켈레톤에 입문한 지 20개월밖에 안된 남자부의 윤성빈은 16위에 올라 한국 올림픽 썰매 종목 사상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2.4. 종합 결과
최종 획득메달 수는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금메달 수로 순위를 매기면 종합 13위, 전체메달 수로 순위를 매기면 종합 13위를 기록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 2002년 동계올림픽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올렸다. 초반 몇몇 선수들의 부진 때문에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이후 26년만에 노골드 쇼크[4] 까지 우려되기도 했으나 이상화의 금메달로 노메달과 금메달 갈증은 일단 한 번에 씻어버렸다.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추월 선수들을 제외하곤 메달은 모두 여성 선수들이 획득한 게 이번 올림픽에서 재미있는 점이기도 하다.
3. 비판
3.1. 왜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부진했는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빈 손으로 돌아간 건 한 심판의 오심 때문에 정상참작 사유가 있지만 이번의 사태는 더도 덜도 없이 실력에서 밀린 것이고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파벌 문제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성적만 봐서는 남자 대표팀이 빈손으로 그칠 실력은 아니었다고 보일 수도 있고, 언론에서도 신다운은 2013년 세계선수권 1위를 차지한 선수, 이한빈은 당시 1500m 랭킹 1위, 박세영은 500m-1000m 신예라고 잘 포장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실력면에서 부족했던 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신다운만 봐도 당시 2013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자동 선발이 되었기는 하였지만, 운이 상당히 많이 따라줬다는 평이 많았고, 실제로도 아직 정상급 선수로 보기는 이른 시기였다. 더군다나 같이 함께 경기를 뛰던 선수들이 그당시 남자부 최강자들이라고 평가받던 곽윤기와 노진규였기때문에 신다운이 득을 볼때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을 잘 잡아주던 이 둘이 다음시즌 대표팀에서 아웃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월드컵에서는 1000m와 500m 티켓을 날려먹는데 크게 일조했다. 이한빈은 무늬만 1500m 세계랭킹 1위였지, 사실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과 상대도 되지 않을 실력이었다. 박세영은 세계무대에서 경험이 주니어대회를 빼면 전무했고, 기량 또한 한국대표로 개인전을 뛸 멤버로는 적합하지 않았었다.
물론 운이 없었던 점도 있는데, 1500m 준결승에서 1위로 달리던 신다운이 넘어져 이한빈까지 같이 넘어진 것을 시작으로 계주 준결승 실격, 500m 준준결승 박세영 실격 등 유독 실격이 많았다. 특히 쇼트트랙의 소치 쇼크의 가장 큰 원인은 사실 1500m 최강자였던 노진규는 암투병, 에이스 곽윤기는 부상으로 낙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운으로만 생각하기에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 역시 아쉬웠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그동안 좋은 성적으로 묻혀가던 파벌 문제만이 쇼트트랙 대표팀의 부진을 야기시킨 것은 아니다. 파벌 문제가 원인 중 하나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팀의 핵심이 되어줘야 했을 노진규와 곽윤기가 2014년에 국가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파벌 때문이 아니라 암투병과 부상 때문이다.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이 둘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자 대표팀이 부진했던 것이다. 다만 30줄에 접어든 선수들도 제 기량을 유지하며 메달 경쟁을 하는 미국이나 캐나다, 러시아[5] 와는 달리 이호석이나 김동성, 성시백, 진선유 등 많은 선수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20대 중반만 넘어가도 기량이 쇠락하고 불의의 부상 한 번 당하는 날에는 커리어 자체가 흔들리는 미비한 지원 실태와 인프라는 제대로 된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 빙상연맹의 책임이 크며 쇼트트랙 육성 정책이 어린 선수 위주로 밀어주기를 하는 탓에 나이 든 선수들이 안현수처럼 충분히 재기할 수 있음에도 그냥 방치되는 문제도 심각하다.
즉, 이번 대표팀의 부진을 파벌만 척결되면 해결되는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국내 쇼트트랙 인프라와 육성 정책, 빙상협회 행정 체제에 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까놓고 말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지원하는 탓에 큰부상 한번은 고사하고 잔부상만으로도 업계 내부에서 퇴물 취급 받기 쉬운 한국 특성상 안현수가 성남시청 해체 안해서 계속 한국에 남았으면 별메달은 고사하고 국대선발 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당장 김동성과 아폴로 안톤 오노가 겨우 2살 차이인데 분명 실력으로는 한 수 위인 김동성이 2002년 올림픽과 몬트리올 세계선수권 이후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나버린 채 연예계도 갔다가 하며 방황하다 2005년에 은퇴한 반면 오노는 2010년까지 메달 따며 스케이트 잘 탔다. 설마 오노가 금강불괴라 한 번도 안 다쳐서 그랬겠는가? 좀 더 멀리 보면 2002년 올림픽에서 안현수에 밀린 후 부상을 당해 쓸쓸히 사라진 비운의 천재 민룡 같은 경우도 있다. 민룡도 세계선수권을 평정할 만큼 대단한 선수였으나 안현수가 등장한 후 부상을 당하자 걸레처럼 버려졌다. 그리고 안현수도 비슷하게 흘러간 셈.
한국의 그 좁은 체육계에 학연, 지연으로 인한 이해관계 없는 집단이 어디 있겠으며 단 두 명만 있어도 의견이 갈리는 게 인간인데 파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집단이 어디 있겠는가.[6] 그러나 4대 구기종목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어려운 비인기종목도 세계를 통틀어 해당 종목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선수를 한 물 갔다며 해외로 보내버리진 않는다. 귀화야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니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그 지경이 이르도록 방치한 것은 엄연히 빙상연맹의 책임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사실 메달을 많이 따기 어려운 나라'에서 '애국심'을 위해 메달 따기용 공무원을 육성하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라는 평도 있다. 자생할 수 없는 양궁, 쇼트트랙 같은 종목을 오로지 올림픽 하나만 바라보고서 한국 시민들의 필요 이상으로 육성하기에 나온 문제고, 빅토르 안이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에 대한빙상경기연맹이 큰 비난을 받은 것도 '금메달 지상주의' 때문이라는 것. 링크 1, 링크 2. 그렇다고 한국이 중국처럼 엘리트 체육인들에게도 시장이 충분하게 될 수 있는 대국도 아니다. 그러니 조금만 삐끗하면 나라가 지원을 끊고 그렇게 되면 선수가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빅토르 안이 귀화한 것도 단순히 파벌 문제 하나 때문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만 해도 파벌 경쟁으로 졌다는 생각보다는 (당시) 안현수처럼 대단한 선수가 한 번 부상으로 삐끗했다고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점을 가장 나라에게 아쉬운 점으로 뽑았다. 대회 자체는 공정했다고 생각했다고. 축구, 야구 등과는 달리 나라가 올림픽 상비군으로 편입시켜주지 않으면 사실상 선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소규모 종목 선수들의 비극이 건국 이래 드라마틱하게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일은 쇼트트랙, 마라톤 등등 많은 비인기 종목 특급 선수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빅토르 안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뿐. 양궁은 비교적 이런 일이 적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결승보다 어려워서 선수들은 더 힘들다. 다른 나라로 귀화한 양궁 선수로는 호주 양궁 국가대표로 활약한 스카이 김(김하늘)과 일본 양궁 국가대표로 활약한 하야카와 나미(엄혜랑), 하야카와 렌(엄혜련) 등이 있다. 스카이 김의 경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국가로 귀화한 케이스이며, 하야카와 자매의 경우 딱히 올림픽 출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어머니의 재혼을 계기로 이민 후 자연스럽게 귀화를 한 케이스다.
4년, 아니 2년마다 반복되는 올림픽 금메달 애국 열풍과 그 이후의 비인기 종목에 대한 무관심이 만든 비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 번쯤 해봄직하다.
3.2.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밴쿠버, 소치 동계 올림픽 세대의 주축 선수들이 체력 문제가 생기는 20대 말~30대 초반이 되므로 은퇴를 하거나, 2014년 현재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기에 걱정된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이들이 몸관리를 꾸준히 해서 현재의 기량을 거의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2018년에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들은 이들보다는 2014년 현재 시점에서 10대 말~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다.
2014년 현재 이 두 종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어린 선수가 몇 명 없기 때문에 이런 의견이 나온 것인데, 하지만 약 2년 정도 지나면 새로운 에이스가 등장할 가능성도 높고, 현재 활동하는 20대 초반 선수들의 기량이 성장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특히 쇼트트랙은 인재풀이 넓은 편이라서 2018년 즈음이면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새롭게 나타날 가능성이 다른 종목보다 더 높다. 안현수(현 빅토르 안)만 해도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한 것 때문에 난데없이 대표팀에 선발되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나갔으니까...
하지만 김연아 한 명에만 의존하던 피겨 스케이팅과 빙상 이외의 종목들은 문제가 심각하다. 김연아는 이미 소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선언했다. 그리고 빙상 이외의 종목들은 '''대부분 투자조차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 스키점프와 봅슬레이가 주목을 받게 된 건 사실이지만, 이들은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이 아니라 영상 매체의 재조명 등으로 유명해진 것이다.[7] 이런 종목의 경우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누가 어느 (비인기) 종목에서 어떻게 했냐''''보다 ''''어느 종목에서 이 메달을 땄느냐''''와 ''''(유명한) 누구누구가 얼마나 잘했냐'''', 즉 성과물과 특정 몇 명에게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안 알려진 것보다는 낫지만, 당장 메달권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빙상종목에 비해선 투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이번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몇몇 비인기 종목이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아예 이번 올림픽이 처음 출전이었던 여자 컬링만 큰 주목을 받았을 뿐으로 이런 사실은 대중들에게 별로 알러져 있지 않다. 우연찮게 비인기 종목의 슈퍼스타가 혜성 같이 등장하거나, 현 성과와 상관없이 일단 지원을 해주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전자의 경우 확률이 너무 희박하고 후자는 한국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부자 나라가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무리다. 사실 설상종목과 컬링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주관하지 않지만, 이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4. 성과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을 찾자면 서두에 서술했듯이 역대 가장 많은 종목에 가장 많은 규모의 선수단이 파견되었다는 점, 즉, '''동계스포츠 전반적인 저변이 확대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 전 같으면 다른 나라 잔치였던 스노보드나 프리스타일 스키, 컬링 같은 종목에서 한국 선수들이 활약하게 되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컬링 여자대표팀이나 모굴스키의 최재우 등의 선전은 비록 메달을 따지 못했더라도 지금보다 더 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다른 빙상 종목의 메달 하나보다 더 대단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보면 '''평창 세대'''라고 불릴 만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어린 선수들도 많이 발굴되었다. 전술한 최재우만 해도 약관의 나이에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결선 진출의 쾌거를 이루어냈고, 여자 스키 모굴의 서지원(20세), 남자 스키 하프파이프의 김광진(19세), 남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의 이광기(19세), 남자 스켈레톤의 윤성빈(20세) 등 어린 선수들이 생소한 종목에서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면서 다음 평창 올림픽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에선 김보름(21세)이 선배들보다 좋은 성적을 보여주며 장거리 간판 선수가 될 가능성을 보였고,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추월에서 이승훈과 호흡을 맞춰 은메달을 획득한 주형준, 김철민과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의 신다운, 박세영은 20대 초반이고, 릴레이 금메달을 되찾아온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에서는 5명 중 3명이 미성년이라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어쨋든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여왕님이 금메달을 빼앗긴 걸 중심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며 전체적으로 지난 밴쿠버때보다 성적이 너무나도 부진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지만 4년뒤 드디어 우리 안방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에서는!!
5. 그 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은 지난 부진을 어느 정도는 만회했다. 남자는 금 1,은 1, 동 2을 얻었으며, 여자 쪽은 금 2을 얻었다.
또한 아시아 최초로 스켈레톤 남자부에서 금메달이 나왔으며, 빙속에서도 금 1, 은 4, 동 2을 얻으면서 어느 정도 선방했다. 그 밖에도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과 봅슬레이 4인승, 컬링 여자부에서도 은메달을 수상했다.
반대로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던 빅토르 안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약물 도핑 논란으로 아예 나오지 못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소치 쇼크에 대한 게 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쇼트트랙도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으며, 스켈레톤과 빙속 등 메달권 근처에 가지 못했던 종목들에서 깜짝 메달들이 나오면서 한국도 동계 올림픽에 대한 인프라를 넓히는 올림픽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동계 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 (18개) 이라는 엄청난 결실을 맺게 되어 지난 88 서울 올림픽때처럼 개최국으로써 대한민국 스포츠의 자랑스러운 저력을 다시한번 펼칠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팀추월에서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면서 일부 비난을 받는 일이 있긴 했다. 또한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비롯한 체육계의 각종 파벌 문제 및 어두운 부분은 계속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빙상계에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면서 정상적인 스포츠 육성으로 발전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 실제로 대회가 끝나고 보니 종합 6위를 한 독일도 전 대회에서 한국이 5위를 했을 당시보다 더 많은 메달을 땄다.[2] 2월 15일에 열린 쇼트트랙 경기에선 여자 선수 두 명, 남자 선수 두 명이 패널티를 받아 실격했다. 그 날 경기에 참가한 선수 중 실격당하지 않은 건 심석희 뿐. 쇼트트랙의 부진에는 에이스들의 불참, 불의의 충돌 같은 요소도 있지만 코칭 스태프의 잘못된 전략수립 탓도 크다.[3] 다만, 시간이 흘러서 건국 이래 최악의 정치 스캔들에 연루되는 바람에 위신이 땅으로 추락했다.[4] 초반에 몇몇 선수들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기는 했어도 '''사상 최악의 성적은 결코 아니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이전에는 1988년 동계올림픽에서 배기태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5위를 한 것이 그 전까지 최고 성적. 때문에 사실 역대 동계올림픽 참가 사상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횟수가 오히려 더 많다.[5] 샤를 아믈랭만 해도 안현수보다 1살 많으며 1000m에서 은메달을 딴 러시아 선수도 한국 나이 30줄이다.[6] 재정자립도 가장 높고 할 일도 충실히 하고 선수 육성이나 지원도 잘해주는 축협도 현대가를 중심으로 한 여당, GS를 중심으로 한 야당으로 나눌 수 있다... 는 것은 2010년대 이전까지의 얘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과정에서 GS그룹은 야당을 대표했던 허승표와 선을 그어버렸다. 허승표 자체가 반축협 세력들이 띄운 것과는 달리 문제가 많았던 인물이기도 하다.[7] 스키점프는 영화 '''국가대표''', 봅슬레이는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