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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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BC에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월화에 방영한 사극.[1] 조선시대 궁녀 '서장금'이 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장금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드라마이다. 여담으로 이병훈 PD가 MBC를 퇴사한 후 MBC에서 연출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2. 특징
시대 배경은 조선시대 중종대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의녀 '장금'을 주인공으로 하였으나, 장금이 중종의 총애를 받은 의녀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기록이 전무한지라, 모티브만 따왔을 뿐 드라마 내용의 대부분은 픽션이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시대에 궁녀가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 사실 그 당시 수라상은 '대령숙수'라 불리우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졌고, 궁녀는 옆에서 도와주는 보조 요리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궁중요리 붐을 일으켰으니 아이러니.
이병훈 PD의 경력이 묻어나는 연출력과 스토리텔링, 악역마저도 공감이 가는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 메인 스토리인 장금이의 인생역전과 사랑이 서스펜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청률이나 평단의 평가 모두, 국내외적으로 성공한''' 드문 케이스의 드라마가 되었다. 특히 시청률은 궤도에 오른 후부터 마지막 회까지 40~50%대 괴물 시청률을 유지했다.
특히 기존 사극에서 고작해야 왕을 유혹해 권세를 탐하는 발칙한 요부와 같이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지던 궁궐 여성의 이미지를 깨버리고, 넘치는 도전 정신과 집념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역경을 주체적으로 극복해가는 장금의 캐릭터는 여성계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작품성에서 호평받았지만 옥의 티는 있는 편인데, 초반에 '단도리(段取り)'란 일본어를 너무 남발하다 시청자들에게 지적을 당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 장금에게 금영은 언니였는데 성인이 됐을 땐 '금영아'라고 맞먹는 소설과는 다른 설정변경이 있다. [2] 또 소설판에선 금영이 후궁의 자리까지 오르는데 드라마에선 장금과 금영을 계속 라이벌로 남기기엔 후궁과 의녀라는 신분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금영 대신에 연생을 후궁으로 하고, 금영을 수라간 최고상궁으로 설정했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 에피소드는 당시 표절 의혹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만한전석을 이기는 에피소드. 국내명 요리왕 비룡으로 유명한 신 중화일미의 한 에피소드를 표절한 것 아니냐는 것. 게다가 단순히 만한전석이라는 요소가 아닌, '건강식으로 만한전석을 이긴다'는 전반적인 주제가 비슷하고, 당시 시대배경상 만한전석은 존재하지도 않는 물건이라서 더더욱 논란이 된 감이 있다. 다만 만한전석 끌어오면 다 표절이냐는 반론도 있었고, 애초에 해당 에피소드가 국내에 방영된 애니메이션에선 나오지도 않아서 표절 논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2.1. 인기
후술하듯이 당시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대장금> 신드롬은 시청률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전방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모든 언론들은 앞다투어 '장금이 신드롬'을 기사화했으며, 정치권에서도 장금이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장금이가 만들었던 요리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대장금 테마파크도 운영되었다. '장금이의 꿈'이라는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재창조되기도 했다.
숱한 난관과 역경에 시달리면서도 심성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겨내고, 악인을 처리할 기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의 원한을 버리고 용서하며[3] 자신의 길을 정진하는 장금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으며, 결국 장금이를 괴롭혔던 많은 악인들이 쓰러지고 자멸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옛 한국말로 쓴 노래 '오나라'도 대장금의 인지도에 힘입어 크게 히트했다.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간간이 회자되는 곡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는지 2019년 기준 중학교 1학년 음악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2.1.1. 한류 열풍
대장금은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자세한 내용은 대장금/한류 열풍 문서 참조.
2.1.2. 2기 제작 가능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떡밥은 참 쉴 정도로 많이 돌았는데, 현실은 망했어요.
이에 대한 썰로는 우선 어떤 사기꾼이 '대장금' 2기를 만든다고 투자를 받는다는 사기를 치는 바람에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다 MBC에서 2012년 7월 제작을 목표로 대장금 2기를 만들 구상이라는 이야기가 터져나왔지만, 결국 대장금 2기 대신 그냥 이병훈 PD의 신작인 마의를 들고 나와서 일단은 무산되었다. 그러다 2013년 초부터 동년 7월에 다시 방영 예정이라는 얘기가 떴지만, 2013년 3월말 편성 불발 소식이 전해졌다. 게다가 이병훈 감독이 마의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지라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물론 이병훈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 맡아서 할 수도 있겠으나, 이영애가 과연 이병훈 감독이 감독하지 않는 '대장금' 2에 출연할지는 의문. 물론 구암 허준의 사례처럼 주인공까지 바꿔버릴 수도 있지만 애초에 이영애 버전의 대장금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고생을 겪은 후 인생의 정점에 도달한 것까지 보여줘서, 그 이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으니 사실상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 수가 없긴 하다. 이 때문에 이영애는 부모고 딸의 얘기를 '대장금' 2기의 주요 스토리로 한다는 썰이 돌기도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미 '대장금' 같은 이병훈 PD 타입의 사극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최하층인 주인공이 갖은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고, 그걸 일방적으로 시기하는 라이벌에 그런 주인공에게 키다리 아저씨 격으로 지켜주는 남자가 나오는 드라마는, 당장 생각해도 동이와 불의 여신 정이가 대번에 생각날 정도로 레파토리가 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뭘 만들던 시청자들에겐 늘 하던 MBC 사극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MBC 드라마 는 어떤 포맷으로 성공을 하면 그 뒤로도 계속 그 포맷의 드라마로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다. 궁이 성공하자 원작이 없음에도 그 뒤를 이어 궁S나 마이 프린세스, 더킹 투하츠 같은 가상의 한국 왕가를 다룬 드라마가 이어졌듯이 말이다.
그런데... 2014년 3월 20일, 중국 유명사이트인 알리바마, 바이두 등에서 약 300억~350억 가량의 투자금액을 받고 '대장금' 2 제작을 결정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전작에 출연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다시 캐스팅될 것으로 보이고, 극중 장금의 라이벌이었던 금영의 딸을 장금이가 수제자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7월부터 중국 현지 로케이션 촬영에 들어가 10월경에 보도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하지만 이영애가 출연을 최종적으로 고사하면서 이영애가 없는 작품이 나올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제작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2.2. 고증
- '대장금'을 통해 널리 알려진 '생각시' 는 원래 지밀과 침방, 수방의 각시들만이 해당되었으며, 수라간은 생머리를 드리지 않은 그냥 각시들이었다.
- 수라간에서 궁녀들이 한 일은 잡다한 일이나 음식을 데우는 정도(특히 소주방)였으며, 실제 음식의 조리는 남자 숙수들이 도맡아 하였다.[4] 따라서 수라간도 거의 허드렛일을 하는 곳으로 취급하였다.
- 대장금의 시대 배경은 16세기 초 조선시대 중종대인데, 대장금에서의 복장들은 조선 후기 18세기 쯤에 나타나는 형태이다. 대장금에서 의복의 저고리가 짧은 편인데 원래 조선 초기에는 저고리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차차 짧아지게 된다. 게다가 극중 상궁, 대비, 중전, 후궁들을 비롯한 궁중여성들도 죄다 당의를 입고 나오는데,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이 당의는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치세 때부터 나왔던 저고리 형태였고, 그 전까지 궁중여성들은 주로 장저고리나 장삼 등을 주로 입었다. 조선 후기의 형태만 한복이라고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있어 현대의 개량 한복은 저고리를 짧게 만들기 때문에 용의 눈물과 같은 조선 초기 한복을 다룬 사극은 드문 게 현실이다.
- 6회 9~10세로 보이는 효혜공주가 밥을 거부하는 에피소드와 11~12회 무렵 유치원생 정도로 성장한 원자(인종)가 마비되는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왕비가 장경왕후인데,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7일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했고, 2년 후 효혜공주 7살, 인종 3살때 문정왕후가 왕비에 책봉되므로, 6회부터 문정왕후가 나와야 맞다.
-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최 상궁이 만한전석을 대접하는데, 만한전석은 사실 이때부터 약 200년 후인 청나라 강희제 때 만들어진 것이다. 차라리 이병훈 PD의 후속작인 이산에 만한전석이 나왔다면 그 때는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가 청나라를 통치하던 시기였으므로 맞는 고증이 되었을 것이다.
- 명나라 사신의 복색을 묘사할 때 한국 사극의 고질병인 어떻게든 조선의 관복과 차별화를 둘려는 발상인 긴머리와 기괴한 사모뿔 형상이 그대로 묘사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 작품에서는 아예 명나라 사신의 관복 색상을 황색으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행태까지 저질렀다.[5]
* 50회에서 출산 직후 심정지가 온 연생이를 대장금이 흉부압박법을 통해 소생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CPR/흉부압박 등이 체계화된 시기는 20세기 중반이다...(의학사에 혁명을 일으킬만한 사건?)
3.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대장금/등장인물 문서 참조.
4. 시청률
당시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2003년 9월 15일 19.8%를 시작으로 한 시청률은 방송 1개월만인 9부에서 30%를 넘었으며, 결국 2003년 11월 10일 17부에서 40%를 돌파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40%의 시청률 고공행렬을 기록하다가 2004년 3월 극중 대반전과 최 상궁이 죽었던 48부에서는 기어이 51.4%로 50%의 벽을 뚫고 만다. 49부와 50부는 시청률이 40%대로 떨어졌지만 51부부터는 다시 50% 시청률에 복귀. 결국 종영 때까지 계속 50%를 기록하였으며 2004년 3월 23일 54부 마지막 회에서 최고시청률 '''57.8%'''를 기록하였다. 최종 평균시청률은 45.8%였다.
5. OST
주제가는 오나라.
6. 미디어 믹스
6.1. 뮤지컬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다. 2007년 초연은 드라마를 그대로 옮겨놓은 버전이었는데 흥행은 신통치 못했다. 2008년 대폭 수정을 거쳐 경희궁 숭정전에서 '고궁 버전' 이라는 이름으로 올렸는데 제목만 '뮤지컬 대장금'이지 '뮤지컬 조광조'. 그래도 원 버전보다는 흥행에 성공했으며, 2009년 3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는 최우수재공연상과 남우신인상(강태을)을, 15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는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했다. 근데 강태을은 돈주앙 때문에 탔는지 대장금 때문에 탔는지 애매하다. 사이트에도 돈주앙/대장금으로 나와있다.
6.2. 애니메이션
2기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나온 장금이의 꿈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대장금과는 틀만 같고 다른 전개로 진행되지만,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 치고는 꽤 수준이 높은 데다 살짝 귀여운 분위기도 있어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한 작품이다. 덕분에 만화화 되기도 했다.
7. 기타
- MBC가 유튜브에서 전편을 공개하고 있다. 본래 2014년경에 네이버 TV가 주요 방송사와 독점계약을 하면서 한국에 지역제한이 걸려서 볼 수 없었지만,[6] MBC가 2017년 경에 2006년 이전 영상의 지역제한을 풀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7.1. 캐스팅에 관해
- 홍리나가 분한 최금영 역은 당초 강성연이 낙점됐으나, KBS 2TV 월화드라마 '그녀는 짱'에 갑작스럽게 캐스팅되면서 고사하여 MBC 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강성연은 '대장금' 출연이 좌절됐다. 당시 '그녀는 짱'에는 강성연 외에도 김정은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8]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해 버렸다. 강성연이 '대장금'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고 선택한 '그녀는 짱'은 미스캐스팅도 있었으나 폭력 장면을 여러 차례 다루어 물의를 샀으며 반복된 간접광고로 2004년 1월 15일 연예오락 제1심의위원회에서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이 때문에 한 자릿수 시청률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으며, 강성연 외에도 정선경이 물망에 올랐지만 MBC 귀여운 여인 캐스팅으로 거절했다. 참고로 둘 다 시청률은 쪽박이었다.
- 최 상궁 역의 견미리는 당초 한 상궁 역이었으나, 최 상궁 역으로 낙점됐던 송채환이 개인사정으로 인해 드라마에서 하차하자 양미경이 한 상궁 역 대타로 들어갔고 견미리는 최 상궁 역이 됐다.
[1] 2005년 11월 5일부터 2007년 2월 23일까지 'MBC 명작드라마'로 재방영되었는데, 2006년 11월 4일까지는 토요일 오전 9시 44분, 2006년 11월 10일부터 마지막회까지는 금요일 낮 12시 35분에 방송되었다. 사실 지금도 케이블에선 종종 편성되고 있다.[2] 방송 당시 홈페이지에 매번 같은 위치에서 맞붙어야 하는데 나이차이가 있으면 품계는 물론 진급에도 금영이가 먼저 진급하는 등 차이가 나서 지금 우리가 보는 전개대로 할 수 없어서 나이 설정을 변경한다는 공지가 올라왔었다.[3] 근데 드라마 보면 알겠지만, 장금이 캐릭터는 마냥 착해서 쉽게 남을 용서해주고 이런 캐릭터는 아니다. 실제로 제주도 유배 후 처음에는 복수심에 불타는 모습을 보여주어 정운백에게 크게 혼나는(이 때 장덕이 자신도 복수심에 침을 잡았다며 대신 쉴드를 쳐주기도 했다.) 모습도 보인다. 장금의 용서는 의녀로 재입궁해서 여러 일을 겪으며 상당히 치열한 고민을 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개연성이 있다.[4] 궁중요리는 정교한 불조절이 요구되는 메뉴가 많았으며, 당시엔 버너가 없었기에 불조절이 엄청난 육체노동이었다. 따라서 당시 통념으로 3D 업종이었던 궁중요리를 여자들에게만 맡기기엔 무리가 따랐다.[5] 당연히 황색은 오직 황제의 황룡포에만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이었다. 일반 관료가 관복에 황색을 사용할 경우 반역죄로 처리당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의 중죄이다.[6] 유튜브의 광고 수익 배분은 전세계 공통 55%로, 방송사들이 이에 불응하여 광고료 협상을 하였으나 합의되지 않고, 국내 사이트에 90%로 계약한 것. 링크, 링크 2, 링크 3.[7] 김현주, 송혜교 등도 서장금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김현주는 당시 송혜교가 여주인공으로 나온 KBS 2TV 가을동화의 유력한 여주인공이었다고 한다.[8] 김정은은 '그녀는 짱' 뿐 아니라 '대장금', '그녀는 짱'이 끝난 뒤 시작된 SBS 화요 예능 프로그램 '최수종쇼' 보조 MC 출연을 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