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야구선수)/선수 경력
1. 개요
두산 베어스 소속 외야수 김재환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이다.
2. 아마추어 시절
인천고 재학 시절.
태어난 곳은 강원도 춘천으로, 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서 많이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속초 영랑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부에 입단했고, 이후 한 달만에 아버지가 강릉으로 발령을 받아 혼자 가족과 떨어져 친척집을 전전하며 야구부 생활을 했다고 한다. 6학년 때 야구를 그만뒀다가 설악중학교에 진학,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3학년 말 무렵 상인천중에서 스카웃했고 가족과 떨어진 인천에 거주하며 이후 인천고로 진학한다. 당시 인천고는 이명기, 김성훈, 김용태, 이재원, 박윤, 김진우 등 우수한 멤버들이 있어 전국대회 성적이 좋았고,[1] 2006년, 2학년 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홈런상을 받았다. 인천고 시절 1년 선배인 이재원에게 밀려 포수 경험이 많지 않았으며, 고1 때 당한 부상의 여파로 1년 유급을 하기도 해 한정적인 포수 엔트리에 경남고 장성우, 광주 동성고 윤도경에게 밀려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3. 프로 경력
4. 프로 지명
두산은 홍성흔의 지명타자 포지션 전향으로 인한 공백에 대비해 2008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김재환을 지명한다.(계약금 1억 5000만원, 연봉 2000만원 총액 1억 7000만원) 본인은 SK에 지명이 될 줄 알고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2] 2008년 프로야구 신인선수 중에서는 김재환 외에도 포수자원이 많은 해였다. 롯데 1차지명 장성우, 한화 2라 이희근, LG 3라 김태군, KIA 5라 백용환, LG 7라 박세혁(고려대 진학 후 2012년 두산 입단) 등. 두산은 2차 1번 김재환 외에도 6라운드에서 청소년 국가대표팀 포수출신 윤도경을 뽑았고, 수비에서 고교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체구가 작아 드래프트에서 저평가된 덕수고의 최재훈을 신고선수로 뽑았다.
신인때부터 상무에서까지 늘 2군을 초토화 시켰다. 매년 전지훈련에서 MVP급 활약을 했으나, 정규시즌 중반만 되면 페이스가 떨어져 2군으로 내려가곤 했다. 후에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입스증후군에 시달리며 수비와 멘탈 불안이 공격에도 영향을 미쳐 번번히 균형이 무너졌다고. 도핑 판정을 받은 2011년을 포함, 데뷔 시즌인 2008년부터 2016시즌 전까지 이렇다 할 1군 기록이 없었고, 데뷔 8년차인 2016년에 드디어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하였다.
4.1. 2008 시즌
14경기, 0.143, 21타수 3안타
2007년 SK 와이번스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해 준우승을 한 후, 다시 한번 칼을 갈던 두산과 당시 김경문 감독은 타격으로는 검증된 신인 김재환을 교육리그, 마무리캠프, 스프링캠프 모두 참가시켰고 시범경기 등에서 뛰어난 타격 능력으로 당시 감독이던 김경문의 총애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유턴파 투수 김선우의 부진으로 2008년 4월 15일에 1군 콜업이 되었고, 4월 18일 SK전에서 9회말 대타로 출장해 김원형에게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3] 이후, 4월 21일 채상병의 부상으로 9회초부터 11회까지 포수 마스크를 쓰며 수비로도 첫 데뷔를 한다. 2008년 여름까지 채상병의 백업포수로 지내다가 6월, LG에서 포수 이성열과 최승환이 트레이드 되어 두산에 왔고, 김재환은 출장 기회를 잃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퓨처스 올스타전에 출전할만큼 신인치고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포수는 아무래도 조련에 시간이 걸리는 포지션이고, 고교 지명 때부터 타격에 비해 수비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 오던 터라, 구단에서는 트레이드 된 최승환과 채상병, 용덕한으로 주전을 꾸릴 수 있어 군 문제를 일찍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김재환을 바로 상무에 입대시켰다. 유급했기 때문에 나이도 입단 동기보다 한 살 많기도 했고, 본인은 일찍 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군대에 갔다고 한다.
4.2. 2009~2010 시즌 (상무 피닉스 소속)
2009년 77경기 0.301 13홈런 49타점
2010년 101경기 0.316 21홈런 124안타 101타점
불사조 시절에 그야말로 2군을 씹어먹었다. 특히 2010년에는 같은 시기 상무에 입대한 두산 동료 최주환과 함께 '''역대 퓨쳐스리그 타점 1, 2위'''를 쓸어담으면서 도장깨기를 시전하고 다녔다.
2009년에는 2년차 포수를 주전으로 기용하는 상무의 관례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의 이정식에게 밀려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2010년이 되어 주전 포수 자리에서 뛰나 싶었더니, 이번에도 삼성 라이온즈 출신의 이지영에게 밀려 포수 및 1루수, 지명타자 자리를 오가면서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타격만은 확실해서 2010 시즌 북부리그에서 홈런 21개, 101점을 기록하며 타점왕에 올랐고 두 차례의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상무 감독의 부탁으로 원소속팀 복귀 전 사기 진작을 위해, 잠실 구장에서 싸이클링 히트에 대한 기록상을 따로 시상했다.
제대 즈음하여 대륙간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타순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지명타자 자리에서 홀로 분전하며 4할대 타율과 홈런 3개를 기록하였다. 2군 투수들의 실력이 1군 투수들의 실력과 차이가 커, 1군 적응 기간을 잘 거친다면 하드웨어도 탄탄하고 어깨도 훌륭하여 주루를 뺀 4툴 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평가받았다.
대륙간컵 국가대표 시절
4.3. 2011 시즌
1군 30경기 0.185 54타수 10안타 2홈런 4득점 8타점
퓨처스 40경기 타율 2할8푼4리 9홈런 24타점
2011시즌 제대 후 복귀 한 두산의 포수 포지션은 사정이 많이 달라져있었다. 홍성흔, 채상병 이후 안방을 김재환에게 맡기려 했던 두산은 직전해, 하위 라운더(2006년 드래프트 2차 8라운드 59순위)였으나 공수 양면에서 수준급 실력을 갖추고 등장한 신인왕 양의지가 용덕한 마저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다. 본인이 포수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팀에서도 어떻게든 활용도를 높히려 했으나, 주전 양의지-백업 용덕한을 굳힌 두산은 김재환의 타격을 살리는 쪽을 선택한다. 2011년 4월 13일 롯데전에서 데뷔 첫 타점을 기록했고, 이튿날 '''4월 14일 롯데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고, 팀은 7:6으로 승리하며 그 날 수훈선수로 선정되었다. 허용투수는 브라이언 코리.. 그러나 데뷔시즌 처럼 여름 쯤 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이 시기에 입스가 왔다고 밝혔다.
신인 때부터 심리적인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긴장되고 불안해서 땀이 날 정도였다. 스스로 ‘고쳐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벗어나기 위해 죽어라 연습을 해도 이게 잘 던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못 던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몸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르더라. 좌절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포수를 했기 때문에 쉽게 놓고 싶지 않았다.
2011년 시즌은 두산베어스 구단 역사상 가장 최악의 한 해 중 하나였다. 각종 추문과 스캔들로 감독이 사임하고, 안팎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김재환은 제대로 기용되지 못했고 결국 2군에서 코칭스탭의 포지션 변경 요구에 포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쳐야했다.
2011년 10월 도핑 양성 반응이 나왔다.
4.4. 2012 시즌
1군 13경기 0.128 39타수 5안타 1홈런 7득점 1타점
무기한 훈련정지로 인해 비활동기간에 배명고등학교 야구부와 함께 훈련했다고 한다.[5] 약물에 대한 징계 치곤 (심각할 정도로) 빨리 해제되었지만, 스프링캠프에 참여도 못하고, 겨울을 통째로 날린 탓에 시즌 초반, 부상과 부진으로 일찌감치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었지만, 1차전 스코어 8:5로 지던 10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임재철의 대타로 나와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되고 2, 3, 4차전에서는 출장하지 못했다.
4.5. 2013 시즌
1군기록 없음
퓨처스 32경기 타율 2할2푼4리
부상, 출전 기회 부족 등으로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던 시즌이다.
시즌 중 1군 콜업이 단 한번도 되지 않았다. 없던 종교도 가지고, 여행도 다녔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4.6. 2014 시즌
1군 52경기 0.306 85타수 26안타 3홈런 12득점 13타점
포수출신 송일수 감독 부임과 코치진(배터리 코치 강성우)의 권유에 따라 2년만에 다시 포수 수비 훈련을 받았다. 김재환으로서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어린시절부터 평생을 써왔던 포수 마스크를 다시 쓰게 되었다. 2013시즌 양의지의 백업으로 포스트 시즌 최고의 활약을 한 최재훈이 포스트시즌의 홈 충돌로 인한 어깨부상으로 수술과 그 재활이 길어짐에 따라 양의지의 백업포수 및, 외국인 투수 니퍼트의 전담포수로 출장했다.
5월 27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추격의 2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이 때 기아 K5 홈런존 구조물을 직격하는 홈런을 때리면서 기아 K5를 얻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6] 이후 최재훈이 복귀하면서 19일자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 7월 13일에 투수 강동연이 말소된 자리에 다시 등록되었다. 양의지와 최재훈 둘다 부상을 안고있기 때문에 대비 차원이었다.
10월 12일 LG 트윈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6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했으나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부터 말까지는 '''송일수 감독이 타격 능력이 좋지않은 최재훈은 계속 기용하고 대타로 나와서 홈런을 때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준 김재환은 2군에 박아놓거나 1군에선 벤치에만 앉아놓게 해서 애증의 존재'''가 되었다. 오죽하면 20인 보호명단에 최재훈을 풀고 김재환은 풀지 말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2014 시즌이 2016년 이전 데뷔 후 가장 많은 출장 경기수를 보장 받은 해였고, 성적도 좋았다.''' 본인은 직전 해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있었고, 선수로서의 미래도 불투명하던 상황에 포수로서 한번 더 기회를 받고 자주 타석에 나갈 수 있어 만족한다고 평한 시즌이었다. 그만큼 팀 안팎으로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던 김재환은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4.7. 2015 시즌
1군 48경기 0.235 153타수 36안타 7홈런 24득점 22타점
시즌 전 김태형 감독에 의해 '''오재일과 주전 1루수 후보로 낙점'''되었다.[7] 더 이상 포수 포지션에 남은 미련도 없다고 밝히며 본격적인 1루수 주전 싸움을 위해 전지훈련 때부터 많은 노력을 했다.
3월 28일 개막전에서 NC 다이노스의 투수 임정호에게 시즌 1호 홈런을 때려냈다. 4:4에서 4:5가 되는 영양가 만점 역전 홈런.
3월 29일 NC 다이노스 와의 개막 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1:0으로 앞서고있는 5회 무사 2,3루 위기 상황에서 테임즈의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깔끔하게 호수비로 처리하며 선발투수 장원준이 두산에서의 이적 후 첫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김재환, 역전을 막아내는 환상적인 점프 캐치''' 만약 이 타구를 잡지 못했다면 최소 2루타는 되었을 것이며, 두산은 역전을 당했을 것이다. 다만 공격에서 3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이 날 두산은 4:1로 승리를 거두었다.
5월 9일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9회말 동점타를 때려냈는데, 송구가 빗나가서 3루에 도착한 홍성흔이 냅다 홈으로 달려서 끝내기가 되었다.[8]
그러나 후반기 들어서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고, 오재일에게 경쟁 포지션에서 밀려나면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가 시즌을 마무리 해야 했다. 때문에 2015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하며 우승반지를 얻지 못하였다. 이 당시, 김태형 감독이 김재환의 말소에 대해 '도저히 칠 것 같지 않다'라고 발언하여 김재환의 2015 시즌은 '도칠않'이란 별명도 생겼다.
4.8. 2016 시즌
시즌 초에는 그냥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공백을 메꿔줄 후보 유망주에 불과했지만 4월 초 12타수 3안타 중 2개가 홈런일 정도로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 타석''' 이후 발전된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하며 두산의 주전 좌익수 자리를 차지한 동시에 두산 베어스 좌타자 역대 첫 30홈런 100타점을 달성[9] 하고 본인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커리어를 기록했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의 약물복용이 다시 논란이 되면서 타팀팬들에게는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지 못했다.'''김재환 선수는 정말 이렇게까지 잘 해줄지는 솔직히 정말 몰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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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즌 우승 다큐멘터리에서 시즌을 돌아보며 김태형 감독의 인터뷰 中 #
4.9. 2017 시즌
작년에 터진 포텐이 한층 더 발전하여 좋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성적이 좋아질수록 과거의 금지 약물복용으로 인한 논란은 여전했다.
4.10. 2018 시즌
타이론 우즈 이후 20년만에 잠실 홈런왕 탄생을 알렸으며, KBO와 두산 베어스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갔다.[10] 그러나 생애 첫 MVP의 영예를 안았음에도 전세계 프로스포츠 최초로 금지약물 복용 전과자로서 시즌 MVP를 수상한 선수가 되어버리며 논란이 생겼다. 결국 금지약물 복용 사실 때문에 대부분의 야구팬들에게 축하받지 못했다.
4.11. 2019 시즌
타율 0.283, 15홈런, 91타점이라는 전년도 대비 초라한 성적을 내며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다.[11] 한국시리즈에서도 시리즈 내내 '''9삼진'''을 적립하는 등 극도로 부진하다 4차전 연장전서 점수 차를 벌리는 적시타를 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음에도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신청했으나 실패했다.[12]
4.12. 2020 시즌
개인 4번째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며 19시즌의 부진을 어느정도 만회해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플레이오프에서는 맹활약을 했지만,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2018년 한국시리즈의 박건우에 비견될 정도의 내부의 적으로 전락했다. 감독은 믿음의 야구를 이유로 끝까지 4번에 넣었지만 결국 역대 한국시리즈 4번타자로서 최저 타율(0.043)을 기록하고 말았다.
5. 국가대표 경력
도핑 양성반응 전력이 있음에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등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국제대회 참가를 하면서 도핑에 걸린 것이기 때문에 국가대표로 다시 발탁되리라곤 거의 예상이 없었고, 포털 댓글이나 엠팍과 같은 야구 사이트의 예상 대표팀 명단에도 언급되지 못했다.[13] 그의 대표팀 발탁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과, 그래도 김재환 정도면 뽑힐만 했다는 의견 대립이 있었다.
현재 연금점수 22점.
5.1.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이전 무명시시기에 대륙간컵(2010), 야구 월드컵(2011) 대표팀에 선발된 경험이 있지만, 최정예 A대표팀은 사실상 커리어 처음이다.
사실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경험 때문에 김재환의 대표팀 합류에 대한 설왕설래가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결국 최종 선발했음뿐 아니라 대회내내 대표팀의 주전맴버로 기용했다.
김재환 역시 선동열 감독의 이러한 믿음에 보답했다. 모든 대표팀 타자들이 빈타에 허덕인 대만전 4타수 2안타 맹타를 휘두른 것을 시작으로, 대표팀이 치룬 6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맹타를 휘둘렀다. 이러한 김재환의 활약으로 대표팀 역시 중국, 일본을 연파하고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5.2. 2019 WBSC 프리미어 12
2019년 3할-20홈런-OPS 8할 셋 중 아무것도 못했는데 프리미어 12 대표팀으로 선발됐다.(...) 수비가 좋은 것도 아니고 발이 빠른 것도 아니고 좌익수 자리는 김현수도 뽑았는데 굳이 홈런수가 급감한 김재환을 뽑은 것에 대해 팬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거기다 작년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뽑혔을 때도 금지약물 복용 선수 발탁으로 논란이 됐었고, 대회에서 성적도 미국전을 빼면 그리 좋지 않아 오히려 욕만 먹었다.
11월 1일 프리미어12 평가전 푸에르토리코전에 투런홈런을 쳤다.
조별 예선 2차전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6회 2사 만루 찬스에서 결승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고, 이 날 경기 MVP를 수상했다.
조별 예선 3차전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5회 1사 1,2루 찬스에서 1타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슈퍼라운드 미국전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첫 타석 2사 1,3루 상황에서 쓰리런 홈런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대회 첫 홈런을 신고했다. 이 홈런은 그대로 결승포가 됐고, 이 날 경기 MVP를 수상했다.
슈퍼라운드 일본전 3번 좌익수로 선발출장해 2타수 1안타 기록 후 5회 대수비 김현수로 교체되었다.
결승전 일본전 3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고,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1] 2005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최우수 고교야구대회 우승. 다만 이때 김재환은 저학년이어서 주전 포수로 자주 출전하지는 않았다.[2] 다만 김재환은 당시 고교 진학을 앞두고 속초에서 인천으로 전학을 온 전학생 신분이었고, 무엇보다도 고교 시절 부상으로 인해 1년을 유급한 덕분에 1차 지명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당시 SK 1차 지명 선수는 황건주, 2차 1번으로 뽑힌 선수는 모창민이었다. 두산은 1차 지명으로 진야곱을 뽑았다.[3] 그러나 주루미스로 2루에서 주루사했다. 사인대로 했는데 스타트가 늦었다고.[4] 별달리 보여준 것 없는 신인시절에 언론 인터뷰나 예능 프로그램에 대표로 나가기도 했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닉쿤과 빅토리아의 시구 시타를 가르쳐 주던 선수가 김재환이다.[5] 인천고등학교 출신이지만 자택이 경기도 남양주인 관계로 잠실 배명고등학교의 배려로 훈련할 수 있었다고.[6] 자동차는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7]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2014년 12월,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둘이 그토록 친할지도 모르겠다.[8] 끝내기 세레머니로 V4 손모양을 했는데 V 싸인을 손가락 뒤에 그리는 바람에 4V가 되었다(...).[9] 김현수가 2015 시즌 달성 가능성이 있었으나 28홈런으로 2개 모자라 달성하지 못했다.[10] 베어스 한시즌 최다 홈런 경신, 베어스 토종 타자 최초 40홈런, KBO 역대 최초 '3년 연속 300루타, 3할-30홈런-100타점-100득점'[11] 공인구 교체 탓만 할 수는 없는 것이, 6~7월 한창 부진할 때는 장타를 떠나 아예 컨택과 수싸움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또한 정작 시즌초에는 홈런 1위를 기록하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따라서 결론은 공인구 교체라기보단 심리적인 영향과 타격자세의 무너짐 때문 인 것으로 보인다[12]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는 거포 유망주 외야수라면 마이너리그에도 많은데, 굳이 김재환을 큰돈 들여 영입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해 김재환은 15홈런 밖에 치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성은 더욱 낮았던 것이다.[13] 마찬가지로 도핑 전력이 있는 진갑용이 대표팀 코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었으나 설마했지 진짜로 뽑힐거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