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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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수상경력
3. 전적
4. 상세
5. 관련 문서


1. 소개


스타크래프트의 전 프로게이머이자 前 eSTRO의 '''前''' 감독. 1984년 2월 26일 생.
아이디는 kOs. 현역시절 종족은 테란. 현역 시절 별명은 기면쥔(기본), 신데렐라 테란, 무변김, 제노스카이(...), 제노킴.

2. 수상경력




3. 전적


'''김현진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방송사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vs 테란
8전 3승 5패 (37.5%)
14전 4승 10패 (28.6%)
22전 7승 15패 (31.8%)
vs 저그
18전 9승 9패 (50.0%)
23전 14승 9패 (60.9%)
41전 23승 18패 (56.1%)
vs 프로토스
12전 4승 8패 (33.3%)
7전 5승 2패 (71.4%)
19전 9승 10패 (47.4%)
총 전적
38전 16승 22패 (42.1%)
44전 23승 21패 (52.3%)
82전 39승 43패 (47.6%)

4. 상세


아이디얼 스페이스에 입단하여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하였고 데뷔시즌은 KPGA TOUR 4차리그로 메가매치에서 1위를 하며 로얄로더의 길[1]을 걷다가 리그 챔피언십에서 조용호에게 일격을 맞고 통합 3위로 마감했다. 당시 KPGA투어에서는 테란 트로이카라 불리며 이윤열-서지훈-김현진은 경기에 테란이 등장하면 반드시 언급할 정도로 밀어주는 분위기였지만 챔피언십 3,4위전 경기를 중계하는 중계진이 김현진이 이기고 있음에도 "게임스타일의 변화가 없다." 며 변화가 없다면 이후 시즌에서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그대로 적중하였다.
이후 IS가 동양 오리온(현 SKT T1), SG 패밀리(前 위메이드 폭스), Plus(前 화승 오즈)로 분할되자 동양으로 이적하여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다. 제노스카이 사건에 묻혀서 그렇지, 그래도 2002년~2003년 무렵까지는 임요환, 최연성과 함께 T1 테란의 한 축이었던 선수이다.
그러나 한빛 스타즈(前 웅진 스타즈)와의 프로리그 2004 1라운드 결승전 7세트의 그 유명한 제노스카이 사건 이후로도 부진을 거듭하다가[2][3] 2005년 초에 팀 개편을 결정한 SKT T1에서 방출되었다. 결승전에서의 부진 등으로 인해 2004~2005년 이 시기쯤에 스갤에서 김현진을 진짜 미친듯이 깠는데, 이 시기가 지난 후 스갤러들이 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지들이 생각해도 못할 짓을 했다 싶었는지(...) "저희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는 짤방을 한동안 유행시키기도 했으며, 당시 스갤에서는 '무변김'(무섭게 변해버린 김현진) 꾸준글을 밀면서 '무변김'이라는 별명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 별명은 김현진의 신분 변동에 연동되어 '코변김'(코치로 변해버린 김현진), '감변김'(감독으로 변해버린 김현진)으로 변해갔다. 김정민의 별명인 해변김(해설자로 변해버린 김정민)은 무변김의 어레인지 버전.[4]
그 후 2005년 상반기 드래프트에 참가, 헥사트론 드림팀 (前 eSTRO)에 입단하여 다시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지만 2006년에 코치직으로 옮겼다. 이후 2년 뒤인 2008년에 군 문제로 은퇴했다. 헌데, 김현진 위의 형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집안의 생계를 챙길만한 사람이 없었던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생계를 이유로 입대가 연기되어''' 반년 후 감독 대행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이후 이지호 감독이 물러난 2008년 후기리그부터는 정식 감독이 됐다. 참고로, 프로게이머 출신 2호 감독이다.[5]
14연패의 나락으로 빠지면서 부진을 겪던 eSTRO도 뭔가 "된다!"라는 느낌을 받게 할 정도로 eSTRO를 바꿨지만 가끔 뜬금없이 김성대를 출전시켜 욕을 먹기도 했다.(근데 김성대가 컸다! 오오 제노킴 오오.)
참고로, 이스트로가 계속해서 에결까지 가는 데에는 주훈이 걸은 제노스카이의 저주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여담이지만, 프로리그 신맵으로 제노스카이가 다시 쓰인다면 현역으로 복귀, 또는 5세트 에결일 경우에 출전한다는 개그(...)가 있다.
12/9일, 2009 대한민국 e스포츠 어워드에서 스페셜포스 원년리그에서 eSTRO를 우승시킨 공로로 스페셜포스 감독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도중에 사회자가 '''생각보다 동안이시네요''' 라는 말을 해서 잠시 장내가 폭소의 도가니가 되었었다.[6] 09-10 시즌 들어서 점차 eSTRO팀의 주가가 상한선을 치고, 키우던 신예 신재욱, 김성대. 08-09 시즌 이전부터 죽어라 굴리던 박상우가 대박을 치면서 팀은 상위권에 랭크. 스갤을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 유저들 사이에선 명장의 반열에 올려야한다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훌륭히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9월 17일, 이스트로의 스폰서인 IEG가 팀 운영을 포기함으로서 팀 운영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해 팀이 해제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팀 매각을 위탁했지만 아직도 이스트로를 매입한다는 스폰서는 없는 상태. 결국 2010년 10월 12일, 이스트로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KeSPA는 IEG의 운영포기 선언 후 두 달 동안 유예기간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팀 해체를 결정하며 그도 자동으로 감독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2011년 7월 26일 입대했으며[7], 날짜로 보아 아마도 2013년 7월 말 정도에 전역한 듯 하다. 김현진 이전 이스트로 감독이었던 이지호 감독은 금융업계에서 종사하다가 현재 PC방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김현진 감독의 경우 송호창과 함께 전직 프로게이머/e스포츠 감독 치고는 묘하게 전역 후의 행보/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총평하자면 꽤나 젊은 나이에 한 팀의 감독생활을 했고 선수를 발굴/육성하는 등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나이를 생각해 보면 선수들 통솔하는 데 조금 우려가 있지 않나 싶었지만, 그 우려도 기우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팀 해체 이후 야인이 되어 버렸으며, 나름대로 능력도 있었던 감독이었지만, 지금은 e스포츠계에서도 오래 잊혀져 근황조차 전혀 알려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무엇보다 김도우, 백동준, 원이삭[8], 주성욱 등 과거 이스트로 소속 선수들이 스타 2로 전환된 후 여러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량을 만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스타 2에서도 감독/코치 역할을 잘 소화했을 가능성도 있었으니 더더욱이라고 생각했으나...
훗날, 당시 3군 연습생이였던 임홍규[9]아프리카 개인방송에서 푼 의 내용에 따르면 출근 시간에 제대로 출근하지도 않고 가끔씩 연습실에 와서 1시간 정도 둘러본 게 다였다면서 감독으로서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고 한다. 또한 숙소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밤마다 을 마시며 놀고 재워주기까지 하면서 마치 자기 집인 마냥 사용하는가 하면, 연습생들에게 가끔씩 용돈을 주면서 이것 저것 심부름을 시키는가 하면 당시 코치직을 맡고 있었던 신정민도 연습 시간에 주전 선수들과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등 연습실 분위기도 그야말로 개판이었다고... 연습실에서 임홍규가 이걸 목격하자 입막음까지 시전했다는 이야기로 보아 팀을 책임져야 할 감독과 코치가 이 모양 이 꼴이었으니 성적이 제대로 날 리가 없었고, 당시 에이스였던 신모씨가 베팅에 손을 대고 있었던 걸 제대로 파악했을 리도 만무하다.
애초에 eSTRO의 후원사가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와 연관되어 있었던 곳이며[10], 하이트 스파키즈, MBC GAME HERO 등처럼 협회에게 발언권 얻으려고 창단한 팀이었던 만큼 방송사 팀들이 페이가 정해져 있었거나 큰 성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해도, 이 정도로 팀 분위기가 개판이었으니 공군 ACE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프로리그, 팀리그, 위너스 리그 포스트시즌 진출/우승, 개인리그 우승자 및 결승진출자 배출조차 하지 못하고 만년 꼴찌였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을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SKT T1도재욱은 이스트로 1군은 발로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까지 있을 정도이니... 그나마 말기에는 좋은 신인 선수들을 육성해 가면서 포스트시즌 진출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전력이 강화되었으나, 엠히처럼 해체는 절대 없을 거라며 선수들에게 휴가를 보낸 뒤 해체 기사를 내는 등의 이야기로 인하여 그 동안의 좋던 이미지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려 버렸다.
실제로 서기수, 김원기, 박문기, 등 중기 선수들을 제외하고 이스트로 후기 1군 출신 선수들 위주로 보아도 박상우, 신대근, 김성대 등처럼 APM이 어마무시하게 높거나 신상호, 신재욱, 최지성, 김도우 등처럼 전략성이 뛰어나도 다른 팀과 달리 기본기가 정립되어 있지 않았던 경우가 다수다. 예를 들자면 전설급 저막이던 박상우가 웅진 이적 이후의 저그전을 전성기인 이스트로 시절에 보여줬으면 개인리그에서도 어느 정도 활약하면서 신상문, 염보성 급에 근접하는 테란으로 역사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번뜩임을 보여줘도 프로리그에서나 간간히 활약할 뿐 개인리그에서는 꾸준한 성적을 통 낼 수가 없었고, 스타리그 4강, MSL 8강에 각각 한 번 올랐던 을 제외하면 이 선수들 중 그나마 개인리그에서 올린 의미 있는 성적이라고는 김성대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8강 한 번이 전부이다. 즉 이 선수들이 다른 팀 2군부터 시작해서 체계적으로 육성되었다면 스타판의 역사를 꽤 달라지게 했을 만한 유망주들이라는 소리.
하지만 단순히 신인 지명, 드래프트의 결과가 좋지 않았던 등의 불운만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AMD 드림팀-헥사트론 드림팀-이네이쳐 탑 시절에도 과거부터 주축 선수들인 장진남, 장진수, 기욤 패트리,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조정현 등만을 너무 믿었던 나머지 연습생들을 제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등 전통적으로 선수 육성이 소홀했으며, 무엇보다 스타 2 전환 이후 GSL의 초대 우승자인 김원기부터 시작해서 최지성과 김도우, 주성욱, 백동준, 원이삭 등까지 만년 꼴찌팀 출신의 1군과 2군 연습생 선수들까지 가리지 않고 스타 2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활약했다는 소리가 이스트로 자체가 이런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을 전혀 키워내지 못했다는 소리다.

5. 관련 문서


[1] 당시엔 신데렐라 테란이라 불렀다.[2] 김현진은 희대의 테란맵이었던 펠레노르에서 저그에게 패한 유일한 테란이기도 하다. 참고로 그 경기에서 김현진을 이긴 저그는 김근백. 또한 김현진은 역시 악명높은 테란맵이던 어나더데이에서도 저그에게 패배한 유일한 테란이다(vs 홍진호).[3] 아이러니하게도 제노킴 사건 이후 프로리그에서는 2라운드 때 변은종을 이기고 리그 꼴지 멸망전에서 헥사트론의 안석열을 잡아내며 팀을 수렁에서 건지는 등 활약이 나쁘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결정되는 고비였던 3라운드 KTF전에서 김정민을 잡아냈다면 극적인 반등도 가능했으나 결국 패배하고 팀이 광탈하면서 흐지부지.[4] 김정민의 경우 스동갤 관문 영상이었던 '마린보이즈' 영상도 있는지라 더더욱 해변김 별명과의 싱크로가 높았다.[5] 1호는 삼성전자 칸김가을 감독.[6] 2009년 당시 김현진 감독은 26세였다. 모든 게임단 감독 통틀어 제일 막내였다. 그 때 현역이었던 임요환과 홍진호보다도 어렸다![7] 군대는 현역으로 가지 않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간 것으로 추정된다.[8] 원이삭의 경우 eSTRO 시절에는 정식 선수가 아닌 연습생 신분이었다.[9] eSTRO 해체 후인 2011년에 T1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였다.[10] 참고로 이 회사는 eSTRO 해체 후에도 SPOTV를 통해서 게임 방송을 하다가 훗날 게임 전문 채널인 SPOTV GAMES를 개국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