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1989)

 

[image]
'''이름'''
박상우
'''생년월일'''
1989년 1월 2일[1] (35세)
'''ID'''
Sea.Really / seiya [gm]
'''소속'''
eSTRO웅진 스타즈[2]
'''종족'''
테란
'''데뷔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온게임넷 vs eSTRO (vs 이승훈)
'''별명'''
할아범, 자동문테란[3], 김옥균테란[4],
노가카 or 박가카[5], 5할본능[6] 장미(...)테란[7],
당예서 테란[8], 핵상우[9], 박노예, 박상품[10] 등.
1. 개요
2. 경력 사항
3. 전적
4. 활동
4.1. 2007년 데뷔와 신인 시절
4.1.1. 2군에서 보낸 데뷔 1년차
4.2. 2008년 김옥균 테란의 등장
4.3. 2009년
4.4. 2010년
4.5. 2011년
5. 선수 평가
6. 은퇴 선언, 그 이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스타크래프트테란 프로게이머.

2. 경력 사항



3. 전적


'''박상우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방송사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vs 테란
전적없음
8전 2승 6패 (25.0%)
8전 2승 6패 (25.0%)
vs 저그
7전 1승 6패 (14.3%)
9전 4승 5패 (44.4%)
16전 5승 11패 (31.3%)
vs 프로토스
6전 3승 3패 (50.0%)
9전 4승 5패 (44.4%)
15전 7승 8패 (46.7%)
총 전적
13전 4승 9패 (30.8%)
26전 10승 16패 (38.5%)
29전 14승 25패 (35.9%)

4. 활동



4.1. 2007년 데뷔와 신인 시절


2007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eSTRO에 1차 지명되면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전 날짜는 2007년 5월 30일이었으며, 상대는 이승훈. 경기는 패하였고, 팀도 패하였다. 참고로, 팀이 무슨 마라도 끼인건지 eSTRO는 정말로 우울한 팀이었다.
성적은 언제나 최하위권이었고, 이렇다 할 스타 선수도 없었으며[11], 2006년에 드래프트되어 겨우 1년차 넘긴 이 팀의 테란라인을 홀로 책임지고 있었다.[12]
물론 당시 은 독특한 스타일과 팀의 유일무이한 개인리거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음으로 충분히 자격이 있었지만, 언제까지 혼자 테란라인을 다 떠맡을 순 없었다. 게다가 스타일이 전략형인지라 승률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당시 이지호 감독은 안정적인 성적을 내줄 선수를 원했고, 박상우는 그 요건을 충족시키는 그야말로 안정적인 테란 유저였다.

4.1.1. 2군에서 보낸 데뷔 1년차


드래프트를 받은 그 해 내내 박상우는 2군에 있었다. 개인리그 오프라인 예선에는 꾸준히 참가했지만, 그야말로 '신인다운' 성적으로 이기고 지고를 반복했고, 정말 가끔 프로리그에 얼굴을 비췄지만 승수는 전혀 쌓지 못했다.

4.2. 2008년 김옥균 테란의 등장


2008년 시즌이 찾아왔고, 박상우의 노력이 서서히 보답받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는 KTF 매직엔스에서 이적해 온 이병민이 한 시즌도 다 못 채우고 은퇴하고, 이 엄청난 슬럼프에 빠져 스막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기에 테란라인을 보강하는 것을 생각한 이지호 前 감독은 박상우를 1군으로 승격시켜준다.
데뷔 2년차, 드디어 1군으로 승격한 박상우는 진정한 프로게이머 인생을 시작한다.
1군 승격 이후의 자세한 내용은 박상우(1989)/2008년 항목으로...

4.3. 2009년


팀단위 리그에선 꾸준한 승수를 쌓으며 성실파란 이미지로 자리매김했다.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온 선수란 것이 이런 이미지를 고정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유독 리그 단위의 팀전에서만 이 준수한 성적을 유지하여 팬들의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보냈다.
만년 약체팀 소릴 듣는 eSTRO의 선수 중, 꾸준한 리그 참여와 꾸준한 승수로 볼 거리를 제공한다는 평을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박상우(1989)/2009년 항목으로...

4.4. 2010년


자세한 내용은 박상우(1989)/2010년 항목으로...

4.5. 2011년


1월 9일에는 MBC GAME을 상대로 선봉으로 출전하여, 이노인을 상대했다. 초반부터 계속 우위에 있었고, 이재호의 막판 승부수, 클로킹 레이스를 배틀크루저와 발키리 조합으로 무찔러 승리했다. 상대 차봉 박수범에게는 바카닉을 시도했지만 상대의 다크 템플러에 흔들려 스캔을 낭비해 패배했다.
1월 12일에는 공군을 상대로, 3킬한 윤용태의 뒤를 이어 나왔으나, 김경모의 러커에 당했다.
1월 16일에는 4세트에서 STX의 선봉 김동건을 무찌르고 팀을 올킬당할 위기에서 구원했다. 김동건의 레이스 활용에 좀 당했지만 대신 압도적인 지상군을 확보하여 이를 바탕으로 김동건의 확장 두 곳을 동시에 부숴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5세트에서 이신형과 벌처 초반 싸움에서 대패하고 결국 GG를 쳤다.
이후 1월 24일에는 T1전에서 정윤종, 1월 26일에는 KT전에서 이영호, 1월 30일에는 하이트전에서 장윤철에게까지 패배하며 어느새 4연패.
2월 12일, 대 삼성전자전 4세트에서, 김민철을 잡아낸 차명환을 물리치고 매치포인트를 만들었으나, 5세트에서 송병구에게 곧바로 격퇴당했다. 그래서 4세트에서 벌처로 난전을 펼치며 베슬을 모아 역전하는, 집중력과 끈기가 돋보인 경기였다. 5세트에서는 송병구의 여러 차례 공격을 잘 막았으나, 결국은 리콜 한 방에 훅 가버렸다.
2월 15일, 대 위메이드전에서는 3세트에서 2킬한 박성균을 잡아냈다. 그러나 이어 나온 전태양과의 경기에서는 레이스로 전환하는 타이밍에 받은 전태양의 드랍 공격에 그대로 패배하고 말핬다. 팀은 박상우 빼고 죄다 져서 1:4로 패배.
2월 21일, 대 STX전에서 6세트에 출전해, 2킬한 상대 조일장을 무찌르고 팀의 승리를 확정지었다. 전진 배럭이 막혔지만 발리오닉으로 뮤탈리스크를 막고, 한방 병력으로 그대로 밀어버렸다.
2월 28일 하이트 엔투스전에서 3:0으로 올킬에 임박한 신노인을 벙커러시로 밀어버리고, 곧이어 나온 신상문도 이겼지만, 진영화의 캐리어에 패배...
이로써 2011년 초반 토스전 5연패째를 기록했다.
저막은 이미 벗어났다고 할 만 하지만, 이번엔 반대로 토스전이...
3월 17일에 열린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5조 경기에서 고강민, 김도우를 연달아 이기고 2연승으로 MSL 32강에 진출했다.
4월 21일에 열린 ABC마트 MSL 32강 H조 경기에서 김구현, 이영한을 연달아 이기고 2연승으로 16강으로 진출했다. 바로 지난 시즌 MSL이었던 피디팝 MSL 32강 H조에서 당시 김구현, 이영한에게 연달아 패하여 광탈했던 것을 곧바로 복수함과 동시에 처음으로 MSL 16강에 진출했다. 그런데 상대가 하필 최종병기.
4월 30일에 열린 ABC마트 MSL 16강 1세트에서 이영호에게 패하였다.
5월 4일 SKT T1과의 경기에서 6세트에 출전했으나 도쟁구에게 졌다. 벌쳐 견제를 위해 다수 벌처를 운용하다가 다수의 드라군에 탱크들이 잡아먹히고, 마인 안 박고 견제 가다가 아비터 나오기도 전에 주력 병력과 제 2멀티가 밀리는 등 어째 토막화 되어가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5월 5일 ABC마트 MSL 16강 2, 3세트에서는 절치부심하여 2세트를 따내면서 동점을 만들었으나, 3세트에서 하필이면 탱크 컨트롤을 하다가 탱크가 미네랄에 끼여 버리면서 전투에서 탱크가 1개 부족하게 돼버렸고, 워낙 불리한 상황이여서 gg를 선언, 16강에서 탈락했다.
5월 9일 화승 OZ와의 경기에서 백동준을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6월 17일에 열린 마이 스타리그(진에어 스타리그 2011) 오프라인 예선전에서 강현우에게 0:2로 패하여 광탈하였다.
가뜩이나 페이스가 안 좋아지던 와중에 6월 21일에는 화승 OZ와의 경기에서 하필이면 이제동과 싸우게 되었다. 결과는 원사이드하게 밀리며 무난하게 패배. 연패 숫자가 7로 늘어나 버린 것은 .
6월 29일 CJ전에서 상대의 몰수패로 7연패를 끊어냈다. 어?[13]
7월 5일 위메이드전에서 전상욱을 상대로 장기전 끝에 승리했다. 참고로, 이 경기는 박상우 본인이 프로리그 99승을 찍은 경기이며, 또한 상대 전상욱은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그런데 박상우는 100승에 딱 1승을 남겨두고 은퇴했으니 아쉬울 따름. 더불어서 박상우에게도 마지막 프로리그 출전 경기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작된 프로리그 준준PO에서 삼성전자 칸과의 1차전에서 유병준에게 패배하면서 팀도 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날 2차전에서 팀이 3:2로 따라잡힌 상황에서 김기현을 이기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준플레이오프전 KT와의 경기에서는 1차전에서 황병영을 만나 승리했지만, 하필이면 2, 3세트 연속으로 을 만나는 바람에 2연패하고 말았다. 덤으로 팀도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
8월 2일에 열린 2011 MSL 시즌 2 서바이버 토너먼트 11조 1경기에서 김재훈, 김경모에게 연달아 패하여 2연패로 광탈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자신의 팬카페에 은퇴를 선언하는 글을 남겼다.

5. 선수 평가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개발을 꾸준히 해 2군에서 1군으로 승격한 뒤 꾸준한 성적으로 고정팬들을 확보한 성실파 플레이어. 다만, 팀단위 리그에서만 활약을 보여 팬들은 그저 속이 타다 못해 숯이 되어 버린다. 2009년 이후 소속팀인 eSTRO의 테란유저 중 출전 빈도가 가장 높고, 꾸준한 승리를 보장하는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팀의 한 축을 맡고 있던 이 조작 사건으로 영구제명된 이상 사실상 이스트로 테란의 유일한 전력이 되었었다.(...) 김성대가 성장할 때까지 한동안 신대근과 고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이스트로 해체 후 웅진 스타즈로 이적한 후에는 잉여라인으로 유명한 웅진테란의 희망이었다. 다만, 팀에 이스트로의 5할 기질을 전염시켰다는 농담이 돌았었다. #
플레이스타일은 한마디로 테란판 도재욱, 혹은 양산형 최연성. 무지막지한 생산력과 최적화로 차별화된 물량을 뽑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타입이다. 메카닉 테란에 능하며 특히 프로토스전의 저승사자로 군림했는데, 한때 이영호와 더불어서 테프전 12연승 타이 기록도 보유했던 선수이다. 양민학살은 따라올 자가 없었고, 당시의 육룡 또한 잘 때려잡았으나, 그 중 택뱅에게는 매우 약해서 연승 기록에도 불구하고 이영호와 정명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14]
테란전은 역시나 물량과 탄탄한 운영을 기반으로 평범한 A+급 테란으로, CJ 테본라인의 하위호환에 가깝다. 승률이 준수하며 전태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최상위 테란들에게까지 최소 1승 이상씩은 거뒀다. 특히 이영호의 테테전 22연승을 깬 것으로 유명하다. 이영호와의 최종 전적은 3대8로 몹시 밀리지만, 한 번 우위를 잡은 경기는 그 이영호를 상대로도 몇 번 굳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상문에게도 4:0까지 밀리면서 한때 매우 약했으나 그래도 막판에 4대2로 2경기나 따라잡았다. 그래도 어쨌든 최종적으로 밀렸다는 것은 팩트. 박성균에게도 4:0으로 밀리다가 내리 4경기를 연속으로 따내면서 4:4로 깔끔하게 맞춰졌지만 초중반에 상대를 흔들어놓고 멀텟으로 주도권을 굳혀나가는 타입이었던 전태양에게는 5:0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비슷하게 메카닉을 잘하고 바이오닉을 못하는 같은 팀의 과는 사실 전혀 다른, 아니 아예 정반대의 스타일로 시너지가 제로. 서로의 장점을 배운 적이 없다. 다만, 박상우 입장에서는 중요한 순간 와룡의 빌드 추천으로 본인의 다소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한때 프로리그에서 중반에 이영호와 다승 공동 1위까지 찍어본 비결.
하지만 도저히 답이 안 보이던 저막 기질과 은근히 롤코 기질이 심하다는 게 약점으로 지목되었었다. 저그전은 정명훈처럼 메카닉을 쓰지도 않으면서 대부분 생바이오닉으로 하다가 털리는 게 정석. 특히 뮤짤에 대처가 불가능해서 박상우 상대로는 뮤탈 찍으면 이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이스트로 말기 온갖 테막저그 선수들에게 돌림빵을 당하며 테저전 11연패를 갱신. 다소 뻣뻣한 플레이스타일 탓에 양학이 잘 되지만 날빌 또한 잘 당했고, 멘탈이 약해서 의외로 연승과 연패가 잦았다.
그러나 2010년 하반기, 웅진으로 이적한 이후 임진묵 덕인지[15]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개막전에서 홍진호를 상대로 벙커링으로 테저전 연패를 끊으면서 저막은 벗어난 반면 나이로 인한 노쇠화 탓인지 아니면 트렌드에 뒤쳐진 탓인지, 그 잘하던 토스전이 반대급부로 망가져 버리며 토막이 되어 버렸다.[16]
은근 이제동손주흥처럼 '''게이드립'''이 많았다. 주 상대는 이스트로 시절에는 신대근이었고, 현재는... 참조(...).
김명운ABC마트 MSL 4강 진출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자기 잠자리가 마음에 안든다고 김명운 침대에 와서 같이 자려고 했단다(...).
그리고 나중에 또다시 박상우X김명운 드립이 나와 버렸다(...).
여담이지만, 은근 닮은꼴 별명이 많다. 탁구선수 당예서부터, 노태우를 닮았다 해서 가카,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배우랑 닮았단 소리도 듣기도 한다.(...) 심지어 에이핑크가 ABC마트 MSL 결승에서 축하무대 공연을 할 때 '''박상우가 김명운을 위해서 투잡뛴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참고로 손주흥의 대표적인 천적. 상대전적은 6:0으로 박상우의 압도적인 우세이다.

6. 은퇴 선언, 그 이후...


2011 MSL 시즌 2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2연패로 광탈한 다음날인 2011년 8월 3일 새벽 2시 45분, 자신의 팬카페에 짧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은퇴를 선언하는 글을 남겼다. #
프로리그 통산 99승을 거두고 100승째를 눈 앞에 둔 상황이었던터라 은퇴가 더욱 아쉽다.
다음은 팬카페에 올린 글 전문.
오래 생각과 고민끝에 이제 은퇴 합니다.
먼저 팬분들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 전하고 싶네요.
게이머경력도 4년차인데 내세울만한 타이틀도 따지못했고 여러모로 약간의 아쉬움은 들긴 드네요. ㅎㅎㅎ
제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웅진팀에 와서 성적을 내지 못한 부분과 이스트로때 잘한 시절도 있었는데
그 부분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한점이 아쉽네요.
그리고 오늘 서바이버경기 준비도 조금 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릴려고했는데
생각처럼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도 만족한 부분은 오랜만에 게임을 웃고 즐기면서 했다는점이에요^^
아무튼 . . . 실망도 많이 안겨드렸는데 계속 응원 해주신 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웅진 팀 많이 응원 해주시고 특히 웅진갤러리분들 그만좀 까셨으면좋겠어요 ㅋㅋㅋ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__
은퇴 이후 웅진또또데이라는 팬미팅에 참여했다. 프론트의 초대로 참여했다고 한다. #
그리고, 2012년 3월 6일, 의정부시306보충대로 입소하였다. # 그 뒤 2013년 12월 5일전역하였다.
이후 e스포츠 국제 심판으로 전직, 2015 IESF 월드 챔피언십에서 심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SPOTV GAMES의 스타2 옵저버 활동을 하고 있다고 모두의 유채꽃에서 밝혔다.
동시에 아프리카TV에서 2016년까지 개인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같은 eSTRO 팀원이었던 김성대신상호 방에 출현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후 해외에서 롤코치 제의가 와서 잠깐 하다가 그만 두었고, 2019년 이후는 근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후에 신상호가 전태규와의 합방에서 eSTRO 썰을 풀었는데, 먹고 놀기 좋아해서 성적이 안 나오는 eSTRO에서 유일하게 놀지 않고 연습을 하는 선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에결 전담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고... 또한 김성대가 eSTRO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게이머였다고 인정까지 했었다. 근데 막상 연봉은 신상호가 더 높았다고 하니... 그저 안습.

[1] 최연식생년월일이 같다.[2] 소속팀인 eSTRO가 해체됨에 따라 드래프트 절차를 거쳐 웅진으로 이적하게 되었다.[3] 나중에 생긴 별명 중 하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공군 ACE와의 경기에서 박정석을 상대로 경기를 펼치던 중 들이닥치는 병력 앞에 배럭스를 들어주는 실수를 범했다.[4] 3분 동안 반짝했다는 뜻, 도재욱을 한 번 이기고 에이스 결정전에 재차 출전했으나 패스트 리버에 그만 GG.[5] 노태우 대통령이랑 외모가 비슷해서... [6] 말 그대로 승률이 50%에 가깝다는 뜻. 이런 성향은 위너스 리그 때 두드러졌다.[7] 신대근에 이어 김명운을...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8] 여자 탁구선수 당예서와 뭔가 미묘하게 닮아서 붙은 별명.[9] 언젠가 경기 중 자신이 무조건 이긴다고 판단되면 뉴클리어 사일로를 건설했었다.(...)[10] 이제동빅파일 MSL 조지명식에서 자신이 마땅히 옆에 둘 상대가 없자, 박상우 이름표를 들어서 '''가져가실 분'''으로 상품화했다. 이제동한테는 여간 만나기 싫은 상대였던 듯. 무슨 상품 팔리듯이...[11] 저그 쪽의 김원기가 그나마 유일한 스타 플레이어 급으로 홀로 팀을 이끌다시피 하고 있었지만, 그도 2007년 시즌 즈음에 집안에 우환이 생겨 거의 참여하지 못한다.[12] 물론 뒷받침 해줄 선수를 안 뽑은 게 아니다. 당시 2006년 드래프트에 들어온 임진묵을 1차 지명했고, 임진묵은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이에 보답하는 듯 했으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예의 '그 사건'으로, 임진묵은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 임진묵은 2007년 하반기에 웅진 스타즈에 재입단하였다.[13] 참고로, 이 경기는 '''그 상대의 데뷔전이었다'''. [14] 사실 육룡 중에서 박상우가 강한 모습을 보인 멤버는 김구현 뿐이며, 4:1로 박상우가 강세였다. 허영무와는 3:3으로 동률이었으나, 송병구, 김택용에게는 각각 4:0으로 완벽하게 압살당했고, 도재욱에게도 1:6으로 첫 경기에서 승리 후 내리 6연패, 윤용태에게도 0:3으로 약했다. 육룡과의 전적은 생각보다 좋지 못한 편.[15] 실제로 당시 아직 입대하지 않았던 임진묵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정도 뮤탈과 러커 잡는 컨을 익히자 그 물량이 저그전에서도 효과를 발휘해 의외의 상급 저그전 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트렌드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던 레이트 메카닉은 끝끝내 흡수하지 못한 건 아쉬운 점. 아마 박상우의 기본 스타일 상 레이트 메카닉 흡수는 포기한 듯 하다. 사실 과거 경기들을 보면 저그전에서 메카닉을 꺼내든 경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전부 패배한 경기들인 것으로 보아, 저그전 메카닉을 자신의 스타일과 접목시키지 못해 저그전 메카닉 운영 자체에 자신감을 잃은 게 큰 듯 하다. 다만, 신기의 컨을 가진 특급 저그들에게는 얄짤없이 개털렸다.[16] 굳이 따지면 트렌드를 따라가긴 했는데, 잘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상우가 토스전 두자리수 연승도 기록하며 잘 나가던 때는 타이밍 러쉬로 재미를 많이 봤으나, 이후 정착된 업테란 운영은 적당히 하기는 하는데 잘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인이 전략을 제법 즐겨썼던 것에 비하면 상대의 기습 전략을 잘 못막는 편이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 마이크로 컨트롤이 부실하지만, 매크로 컨트롤이 좋은 스타일이었는데, 기습 전략을 막으려면 마이크로 컨트롤이 좋아야 한다. 박상우가 유독 매치포인트에서 토스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이 영향을 주었다. 2인용 맵, 앞마당 구조 등등이 타이밍 러쉬를 하기에 최적이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