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 코리안
Roof Korean | 지붕(위의) 한국인
'''루프 코리안'''(Roof Korean) 또는 '''루프탑 코리안'''(Rooftop Korean)[1] 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에 걸쳐 발생했던 LA 폭동 당시, 대부분의 시민들이 패닉에 빠진 가운데 주로 세탁소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던 한국인 이민자들이 폭도들로부터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기로 무장하고 코리아타운을 사수해낸 데서 유래한 유행어이다.
의외의 사실로, 한국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북미에서는 한국인들의 이미지 중 하나로서 꽤 유명한 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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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폭동 당시 경찰 등 공권력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사태가 심각하게 확산되었고, 특히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던 곳이 LA였기 때문에 현지 한인 사회의 피해가 심각해졌다. 일례로 1992년 5월 3일자 LA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한 총포상 점주는 "일대에 경찰차가 4대나 있었는데, 총소리가 나자마자 1초도 안 돼 죄다 도망가서 솔직히 실망했다"고 인터뷰할 정도였다.
2010년대에 만들어진, LA 폭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L.A. Burning(불타는 LA)"에선 당시 한인 타운의 총포상 직원이었던 데이비드 주(David Joo)의 증언이 상세히 담겨있는데, 폭동 발발 당시 고용주였던 금은방 사장 리처드 박(Richard Park)[2] 이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했다.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하자 아무 고민 없이 나왔다고 한다. 막상 그렇게 출동해보니 현장에 경찰차가 몇 대 와있는 걸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으나, 총격전이 시작되자마자 '''경찰은 순식간에 도망갔고''' 결국 자신들이 직접 가게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위의 인터뷰에선 위트 넘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총을 쏘며 방어하면서도 정말 무서웠다고 한다. 중간에 총탄이 머리 근처로 날아오자 머리를 방어하려고 팔을 들어올리기도 하는 등 확실히 공포에 질려있는 모습이 나온다. 다만 오히려 무서웠기 때문에 누가 고개만 내밀어도 제압사격을 가하는 등 더욱 확고하게 대처했다고. 여담으로 데이비드 주의 증언에 따르면 습격은 정작 시위의 주체인 흑인들보다는 생뚱맞은 히스패닉 폭도들이 많았다. 즉 진짜 시위대라기 보다는 시위로 인한 치안 공백의 헛점을 노린 사회 하층민들의 날강도짓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
결국 당시 한인 가게 주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했으며 총기와 탄약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폭도들과 공성전을 벌였다. 뉴스에 방영된 동영상 중 가장 유명한 동영상은 "가주마켙"의 주인과 점원들이 소총과 산탄총, 글록 17 등으로 무장하고 거리를 경비하며 권총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
대개의 가게들이 쇠창살과 안전문이 있었지만, 이것들은 평소의 도둑 하나 둘은 막아줄 수 있어도 무리지어 떼로 덤벼드는 폭동 앞에서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옥상에서 총을 들고 총격전을 하면서까지 강력하게 경비를 서는 모습을 보여주자 폭도들이 알아서 피해갔다. 이렇게 폭동 속에서도 털리지 않고 정상영업을 계속한 가게들은 옥상에서 총 들고 지킨 가게들이었다.
무기들은 실제 민수용으로 판매되었던 AR-15와 AK 계열 화기, 그리고 UZI가 사용되었다. 여기 참조. 원래 AR-15와 AK는 단발사격 전용으로 민수용으로 존재했고, UZI의 경우에는 자동화기로 판매가 되었다가 단종된지 오래되지 않은 때였다. 또한 수출형 민수용 K1 기관단총을 사용하는 사진도 있다.#,#,#
모형 총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 근거는 빈약하다. 당시 국내에서조차 국산 총기의 모형 장난감이 흔치 않았는데, 미국이라고 당시 개발도상국의 총기류를 장난감으로 만들 리 없으니 실총일 것이다. 아래 올라 올 영상의 주인공이자 총포사 주인인 데이비드 주는 LA 폭동과 관련된 한국 유투브 채널에 댓글을 남기기도 했는데,#[3] 한인들이 동원한 총기가 모형총기였다는 소리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부정하였다. 다만 멀리서 볼때 M2 등의 기관총으로 보이게 하려고 플라스틱 파이프 등으로 모형을 만들었다는 말은 있다. 당시 잡화점을 운용하고 있던 엘리자베스 황도 자신의 가게부터 권총과 산탄총으로 중무장했으며 자경단을 이끄는 김영은 자경단이 AK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에선 실총이 모형총보다 훨씬 구하기 쉽단다. 미국은 실제 총기 모양의 장난감은 잘 취급하지 않는데 이는 어린 아이들이 실총과 비슷한 모양의 장난감을 들고 다니다가 오인사격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4] 그래서 미국의 총기 장난감은 너프(장난감)과 같이 실총과는 다른 모양으로 장난감을 많이 만든다. 지금도 미국에서 '모형총기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질문에 인터넷 주문을 제외하곤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데, 그에 비해 실총은 근처 건샵에 가면 얼마든지 있다. 모형총기 이야기가 떠돌게된 것은 실총을 썼다는 점 때문에 한인 사회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현장에서 적당히 둘러댄 것이었을 수도 있거나, 혹은 폭도들을 위협하기 위해 모조총기를 배치하여 총이 많은 것처럼 위장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5]
또한 재미교포들은 피해가 크긴 했지만 대처도 빨랐다. 사건 당시 한인 AM 라디오 채널인 라디오 코리아는 제보를 받으면 "OO에 피해가 생겼으니 가서 도와주십시오"라고 실시간 중계를 했고, 이에 한인청년단과 해병대 전우회로 이루어진 자경단이 지원을 나가는 식이었다. 이 대목은 무릎팍도사 이장희 편을 보면 그 일화가 자세하게 나온다. 이 구호활동으로 인해 당시 가수 이장희가 사장으로 있었던 라디오 코리아는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방문하기도 했다.[6] 여하튼 이런 노력 덕분에 폭도들 역시 시가전을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어서 저항이 거세 자신들이 되려 죽겠다 싶으면 금방 달아났다.
사실 처음에 한인들 사회에서도 가게를 지켜야 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총격전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를 지키려면 결국 총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총기 규제가 강한 지역이라 한인들 내부에서도 그러다 독박쓰는 거 아니냐는 여론과 우리는 권리가 있다는 여론이 맞선 것이다. 한인들은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등이 섞여 있어 권리 숙지가 안 되었고, 무기 소지에 대해 모두 같은 입장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먼저 언급된 라디오 코리아에서도 맞서 싸우라는 방송을 내기 전까지 상당한 숙고가 필요했으며, 그걸 시행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건물들이 불타고 다수의 한인들이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에게 약탈당한 후였다.
LA 폭동이라고 하면 보통 두순자 사건 때문에 미국 내에서 한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시절에 한인 타운의 자경 활동을 직접 봤던 미국 경찰관들에게는 의외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공공기관 중에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 경찰서와 소방서였는데,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에 폭도들이 총을 쏴서 '''불 끄러 가는 것을 막았던 일'''까지 있었다. 폭도를 잡는게 아닌 '''단지 불 끄러 가는 사람'''에게 그런 짓을 했던 것이다. 결국 각급 소방서들은 선별적으로 장비와 인원을 파견해서 방어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인 자경단들이 총을 들고 와서 이들을 지켜주었다. 즉, 자경단을 구성해 폭도들의 침탈과 난동에 공동 대응하면서 '''가게를 정상 영업해 일상을 지켜나가는 행동'''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공포감에 사로잡혔던 미국 경찰관들의 감성을 자극할 정도였다.
이 당시 여러 인종들이 고루 피해를 입었지만 유독 한인이 이렇게 강경하게 대응하게 된 것은 자기 가게를 지켜야 한다는 업주로서의 입장도 있겠으나,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이라는 적성세력의 존재로 치안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강한 보수성을 지닌 한국 문화의 특성도 크게 작용했다.
폭도들을 향한 무장 저항은 한인 사회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고, 히스패닉계 마을에서도 텃밭을 지키려는 갱단들의 저항에 의해 폭도들이 잽싸게 물러났다. 다만 원래부터 총 쏘는 불량한 갱단들이 자기 지역을 지키려고 저항하는 것보다는, '착하고 선량한 준법시민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들고 일어났다'는 쪽이 훨씬 더 극적이기 때문에[7] 별로 주목받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LA 해병 전우회 회장의 인터뷰. 자경단은 예비군들에 의해 군대식으로 운용되었으며 개중엔 월남전 참전자들도 많았다. 1분 3초부터 인터뷰가 시작된다.[8]
데이비드 주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총격전이 끝나갈 무렵의 영상으로 방송사가 영상을 찍기 전 더 격렬한 총격전이 있었다.
당시 한인타운의 한인들의 총격전 영상.[9] 이 당시 한인들은 징병제로 인해 대부분의 성인 남성들이 군 복무 경험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참전 경험자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시가전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10] 한편 이 영상 앵커는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한국인 가게 주인들이 총기를 들고 '''자신의 가게를 지키는''' 상황인데 이 앵커는 그들(영상의 한국인들)이 폭력 사건을 벌이고 있다는 식으로 흥분하여 소리치고 있다. 예컨대 "그들은 마구 총을 쏴대고 있습니다!" 이런 뉘앙스로. 덕분에 영상 댓글도 앵커의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욕하는 것이 태반.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동차를 방어물로 쓰고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좀 더 체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 지붕 위에 올라간 사람은 UZI 기관단총을 소지하며 경계하고 있다.
왜 한국인들이 스스로 무장해야 했는지 호의적인 관점에서 조명하는 영상이다. 한인 사회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회고와 당시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려있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도 담겨있다.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이 쓴 책을 보면 당시 일본 방송은 한국인들이 총을 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줬다며 비판한 적이 있다. 사실 일본 방송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 방송에서도 한인 가게가 약탈당하는 모습은 거의 보도하지 않고, 옥상에서 총을 쏘는 한인들의 모습만 찍어서 논란이 됐다. 하지만 NRA(전국총기협회)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에서는 흑인들을 까내리고 총기소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인들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NHK의 기자들은 한국인 슈퍼마켓 앞에서 전격 취재를 했는데, 이 장면이 집중적으로 보도되었다.#
1988년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11] 라는 다큐멘터리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재미교포 영화감독 크리스티나 최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4.29 사이구(영어 제목도 Sa i Gu)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당시 많은 가게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보험 처리로 팔리지 않던 재고 몫까지 보상받아 오히려 이득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탈세 등의 목적으로 판매기록을 엉터리로 조작하던 가게들은 신고한 만큼만 보상받아서 큰 피해를 입었다.
한인들 사이에서는 교포들의 피해를 걱정하면서도, 인종차별 이슈 또한 이해한다는 태도가 공존했다. 오히려 교민들 사이에서도 일부 여론이 흑인들을 무시했던 정황에 대한 반성이 많이 나왔다. 고립적인 태도만으론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유도 "당연한" 공존의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한인교회는 그동안 다른 커뮤니티와의 교류 차원에서 여러 봉사활동을 많이 했으나 이후 봉사활동 등을 더 늘린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비판되고 있는 것은 역 인종주의, 즉 흑인들이 다른 소수민족에 대한 공격성을 보이는 태도를 두고 지적하는 경향은 강해졌다. 사실 흑인 커뮤니티는 한인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아직 비주류였던 히스패닉[12] 및 다른 소수인종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대응도 일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경찰들은 한인 자경단을 가게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고 무장보복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오인했던 것인지는 모르나, 단순히 가게를 지키려고 했던 몇몇 이들을 체포했고 무기를 압수했으며, 방어하고 있는 상점에서 해산시켰다. 그리고 그 상점은 방어자들이 해산된 다음에 불타버렸다(…).[13] 사실 당시 공권력의 대응 방식은 전체적인 불신으로 이어졌고, 2014년 퍼거슨 소요 당시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다 보니 자주 까이는 소재가 되었다. 물론 퍼거슨 소요 당시에는 미국 대통령이 주방위군 육군 투입을 미루라고 한다든가 하는 이런 저런 이슈가 있었지만 약탈당한 가게들 입장에선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사태를 보는 시각에는 '''LA나 퍼거슨이나 정부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종주의는 이상이지만, 문제는 그 흑인들의 분풀이가 행해지는 대상은 백인들이 아닌 다른 소수인종들인 사태가 소규모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LA 한인들이 만든 LA 폭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LA 폭동을 겪었던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어 당시 대응상황을 볼 수 있다. 영어 버전도 있다.
산탄총으로 무장하고 지붕 위에서 경계를 하고 있는 한인.
반면 다문화주의와 흑인 인권 운동을 지지하는 리버럴 진영 네티즌들은 이 밈을 '힙스터 인종차별(Hipster racism)'[14] 이라 여기고 "백인 권력이 한인과 흑인이 싸움 붙은 걸 밈으로 소비하면서 미국적 가치 운운한다.", "근본적인 원인인 인종 문제에 대한 담론은 어디 가고 폭도들 총으로 쏴 죽이자는 이야기만 하고 있냐?"고 매우 싫어한다.
2020년에도 총기 관련 유튜버들에 의해 '(총기를 방어 목적으로 사용했던) 루프 코리안' 이야기가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이 밈에 대한 찬사는 물론 '한국인들이 용감하고 멋있게 활약했다'는 칭찬이지만, 한편으로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었다는 데서 씁쓸한 면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 일개 시민이 공권력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어 자위(自衛)에 나서야 했다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며, 경찰들이 백인 지구를 우선적으로 방어하고 코리아타운의 치안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당시 미국 주류 사회의 동양인 사회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가 점점 격화됨에 따라, SNS 등지에서는 ''''미니애폴리스는 이 사람들이 필요하다''''라는 농담과 진담이 섞인 글이 올라오고 있다. 여튼 그와는 별개로 미국 전역에서 몇몇 한인 점포는 '''또''' 불탔고,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총기 구매율이 높아졌다는[15] 기사가 쏟아질 때부터 루프 코리안이 언급되기 시작했으나, 폭동이 LA로도 퍼져나가자 루프 코리안은 30년만에 '''또 다시 가게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reddit의 해당 스레드에는 "SJW들 논리라면 흑인들은 법질서 다 무시하고 상점 약탈하고 경찰서 방화해도 되는 거냐?", "쟤들이 말하는 사회 정의가 뭐냐?"는 식의 코멘터리가 잔뜩 달렸다.
해당 밈이 재생산되는 것에 대해서 현지 한인 커뮤니티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흑인들이 소요를 일으킬 정도로 날을 잔뜩 세운 상황에서, "옛날처럼 한국인 용병들 불러와야겠네!"[16] 와 같은 밈이 유포되는 와중에 이에 동조하면 자칫 "백인의 똘마니", "자기들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인 놈들"이라고 인식해 분노의 화살이 한국인을 향할지도 모른다는 것. 밈 유행 자체가 흑인의 백인에 대한 분노를 다른 소수민족인 한인들에게 돌릴 수도 있다는 예측이 있다. '''92년 LA 폭동 당시 LAPD의 갈라치기로 폭도들이 한인타운으로 몰려와 큰 피해를 입었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반성없이 이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애도하며 평화적인 흑인 커뮤니티와 연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밈이 소통의 방해물로 작용하고 있다.
일단 LA 경찰과 주방위군은 이번에는 절대 LA 폭동 당시와 같은 차별적 관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찰들과 군인을 한인 거주지역에 대거 배치시켜 방어하고 있으나, LA같이 큰 규모의 한인타운이 없어서 지역 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다른 지역의 한인들은 자체적으로 무장을 하고 경계하는 상황이다.[17][18]
국내에서는 나무위키를 포함해 미국에서 루프 코리안 밈이 유행한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부터 LA 폭동 중 한인들의 자기 방어 활동에 대해 잘 알려져 있었으며,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위기 상황에서의 한국인의 단결력, 군필자들의 활약, 정당한 자기 방어적 관점 등을 통해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한 한국인의 단결력과 함께 미국인들의 호의적인 평가들이 첨부되었으며 이는 인종차별과 같은 무거운 주제와 담론보다는 '한국인의 대단함'의 관점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이후 루프 코리안 밈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지고 주요 언론을 통해 기사화된 지금도 당시 루프 코리안들의 용기와 단결력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매한가지나, 밈으로서의 활용에 대해서는 국내 또한 이런저런 시선이 뒤섞여 있다. 대체적으론 한국인들의 단합력과 용기에 대해선 좋게 평가하나 민감한 인종갈등에 활용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 편이며,[19] 반대로 시위의 변질된 폭력성에 대해 주목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의 보수주의 네티즌들과 비슷한 시각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다.
1. 개요
'''루프 코리안'''(Roof Korean) 또는 '''루프탑 코리안'''(Rooftop Korean)[1] 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에 걸쳐 발생했던 LA 폭동 당시, 대부분의 시민들이 패닉에 빠진 가운데 주로 세탁소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던 한국인 이민자들이 폭도들로부터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기로 무장하고 코리아타운을 사수해낸 데서 유래한 유행어이다.
의외의 사실로, 한국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북미에서는 한국인들의 이미지 중 하나로서 꽤 유명한 밈이다.
2. 유래: LA 폭동 당시 한인 자경단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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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폭동 당시 경찰 등 공권력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사태가 심각하게 확산되었고, 특히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던 곳이 LA였기 때문에 현지 한인 사회의 피해가 심각해졌다. 일례로 1992년 5월 3일자 LA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한 총포상 점주는 "일대에 경찰차가 4대나 있었는데, 총소리가 나자마자 1초도 안 돼 죄다 도망가서 솔직히 실망했다"고 인터뷰할 정도였다.
2010년대에 만들어진, LA 폭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L.A. Burning(불타는 LA)"에선 당시 한인 타운의 총포상 직원이었던 데이비드 주(David Joo)의 증언이 상세히 담겨있는데, 폭동 발발 당시 고용주였던 금은방 사장 리처드 박(Richard Park)[2] 이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했다.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하자 아무 고민 없이 나왔다고 한다. 막상 그렇게 출동해보니 현장에 경찰차가 몇 대 와있는 걸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으나, 총격전이 시작되자마자 '''경찰은 순식간에 도망갔고''' 결국 자신들이 직접 가게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위의 인터뷰에선 위트 넘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총을 쏘며 방어하면서도 정말 무서웠다고 한다. 중간에 총탄이 머리 근처로 날아오자 머리를 방어하려고 팔을 들어올리기도 하는 등 확실히 공포에 질려있는 모습이 나온다. 다만 오히려 무서웠기 때문에 누가 고개만 내밀어도 제압사격을 가하는 등 더욱 확고하게 대처했다고. 여담으로 데이비드 주의 증언에 따르면 습격은 정작 시위의 주체인 흑인들보다는 생뚱맞은 히스패닉 폭도들이 많았다. 즉 진짜 시위대라기 보다는 시위로 인한 치안 공백의 헛점을 노린 사회 하층민들의 날강도짓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
결국 당시 한인 가게 주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했으며 총기와 탄약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폭도들과 공성전을 벌였다. 뉴스에 방영된 동영상 중 가장 유명한 동영상은 "가주마켙"의 주인과 점원들이 소총과 산탄총, 글록 17 등으로 무장하고 거리를 경비하며 권총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
대개의 가게들이 쇠창살과 안전문이 있었지만, 이것들은 평소의 도둑 하나 둘은 막아줄 수 있어도 무리지어 떼로 덤벼드는 폭동 앞에서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옥상에서 총을 들고 총격전을 하면서까지 강력하게 경비를 서는 모습을 보여주자 폭도들이 알아서 피해갔다. 이렇게 폭동 속에서도 털리지 않고 정상영업을 계속한 가게들은 옥상에서 총 들고 지킨 가게들이었다.
무기들은 실제 민수용으로 판매되었던 AR-15와 AK 계열 화기, 그리고 UZI가 사용되었다. 여기 참조. 원래 AR-15와 AK는 단발사격 전용으로 민수용으로 존재했고, UZI의 경우에는 자동화기로 판매가 되었다가 단종된지 오래되지 않은 때였다. 또한 수출형 민수용 K1 기관단총을 사용하는 사진도 있다.#,#,#
모형 총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 근거는 빈약하다. 당시 국내에서조차 국산 총기의 모형 장난감이 흔치 않았는데, 미국이라고 당시 개발도상국의 총기류를 장난감으로 만들 리 없으니 실총일 것이다. 아래 올라 올 영상의 주인공이자 총포사 주인인 데이비드 주는 LA 폭동과 관련된 한국 유투브 채널에 댓글을 남기기도 했는데,#[3] 한인들이 동원한 총기가 모형총기였다는 소리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부정하였다. 다만 멀리서 볼때 M2 등의 기관총으로 보이게 하려고 플라스틱 파이프 등으로 모형을 만들었다는 말은 있다. 당시 잡화점을 운용하고 있던 엘리자베스 황도 자신의 가게부터 권총과 산탄총으로 중무장했으며 자경단을 이끄는 김영은 자경단이 AK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에선 실총이 모형총보다 훨씬 구하기 쉽단다. 미국은 실제 총기 모양의 장난감은 잘 취급하지 않는데 이는 어린 아이들이 실총과 비슷한 모양의 장난감을 들고 다니다가 오인사격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4] 그래서 미국의 총기 장난감은 너프(장난감)과 같이 실총과는 다른 모양으로 장난감을 많이 만든다. 지금도 미국에서 '모형총기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질문에 인터넷 주문을 제외하곤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데, 그에 비해 실총은 근처 건샵에 가면 얼마든지 있다. 모형총기 이야기가 떠돌게된 것은 실총을 썼다는 점 때문에 한인 사회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현장에서 적당히 둘러댄 것이었을 수도 있거나, 혹은 폭도들을 위협하기 위해 모조총기를 배치하여 총이 많은 것처럼 위장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5]
또한 재미교포들은 피해가 크긴 했지만 대처도 빨랐다. 사건 당시 한인 AM 라디오 채널인 라디오 코리아는 제보를 받으면 "OO에 피해가 생겼으니 가서 도와주십시오"라고 실시간 중계를 했고, 이에 한인청년단과 해병대 전우회로 이루어진 자경단이 지원을 나가는 식이었다. 이 대목은 무릎팍도사 이장희 편을 보면 그 일화가 자세하게 나온다. 이 구호활동으로 인해 당시 가수 이장희가 사장으로 있었던 라디오 코리아는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방문하기도 했다.[6] 여하튼 이런 노력 덕분에 폭도들 역시 시가전을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어서 저항이 거세 자신들이 되려 죽겠다 싶으면 금방 달아났다.
사실 처음에 한인들 사회에서도 가게를 지켜야 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총격전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를 지키려면 결국 총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총기 규제가 강한 지역이라 한인들 내부에서도 그러다 독박쓰는 거 아니냐는 여론과 우리는 권리가 있다는 여론이 맞선 것이다. 한인들은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등이 섞여 있어 권리 숙지가 안 되었고, 무기 소지에 대해 모두 같은 입장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먼저 언급된 라디오 코리아에서도 맞서 싸우라는 방송을 내기 전까지 상당한 숙고가 필요했으며, 그걸 시행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건물들이 불타고 다수의 한인들이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에게 약탈당한 후였다.
LA 폭동이라고 하면 보통 두순자 사건 때문에 미국 내에서 한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시절에 한인 타운의 자경 활동을 직접 봤던 미국 경찰관들에게는 의외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공공기관 중에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 경찰서와 소방서였는데,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에 폭도들이 총을 쏴서 '''불 끄러 가는 것을 막았던 일'''까지 있었다. 폭도를 잡는게 아닌 '''단지 불 끄러 가는 사람'''에게 그런 짓을 했던 것이다. 결국 각급 소방서들은 선별적으로 장비와 인원을 파견해서 방어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인 자경단들이 총을 들고 와서 이들을 지켜주었다. 즉, 자경단을 구성해 폭도들의 침탈과 난동에 공동 대응하면서 '''가게를 정상 영업해 일상을 지켜나가는 행동'''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공포감에 사로잡혔던 미국 경찰관들의 감성을 자극할 정도였다.
이 당시 여러 인종들이 고루 피해를 입었지만 유독 한인이 이렇게 강경하게 대응하게 된 것은 자기 가게를 지켜야 한다는 업주로서의 입장도 있겠으나,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이라는 적성세력의 존재로 치안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강한 보수성을 지닌 한국 문화의 특성도 크게 작용했다.
폭도들을 향한 무장 저항은 한인 사회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고, 히스패닉계 마을에서도 텃밭을 지키려는 갱단들의 저항에 의해 폭도들이 잽싸게 물러났다. 다만 원래부터 총 쏘는 불량한 갱단들이 자기 지역을 지키려고 저항하는 것보다는, '착하고 선량한 준법시민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들고 일어났다'는 쪽이 훨씬 더 극적이기 때문에[7] 별로 주목받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LA 해병 전우회 회장의 인터뷰. 자경단은 예비군들에 의해 군대식으로 운용되었으며 개중엔 월남전 참전자들도 많았다. 1분 3초부터 인터뷰가 시작된다.[8]
데이비드 주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총격전이 끝나갈 무렵의 영상으로 방송사가 영상을 찍기 전 더 격렬한 총격전이 있었다.
당시 한인타운의 한인들의 총격전 영상.[9] 이 당시 한인들은 징병제로 인해 대부분의 성인 남성들이 군 복무 경험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참전 경험자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시가전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10] 한편 이 영상 앵커는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한국인 가게 주인들이 총기를 들고 '''자신의 가게를 지키는''' 상황인데 이 앵커는 그들(영상의 한국인들)이 폭력 사건을 벌이고 있다는 식으로 흥분하여 소리치고 있다. 예컨대 "그들은 마구 총을 쏴대고 있습니다!" 이런 뉘앙스로. 덕분에 영상 댓글도 앵커의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욕하는 것이 태반.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동차를 방어물로 쓰고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좀 더 체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 지붕 위에 올라간 사람은 UZI 기관단총을 소지하며 경계하고 있다.
왜 한국인들이 스스로 무장해야 했는지 호의적인 관점에서 조명하는 영상이다. 한인 사회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회고와 당시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려있으며 그들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도 담겨있다.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이 쓴 책을 보면 당시 일본 방송은 한국인들이 총을 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줬다며 비판한 적이 있다. 사실 일본 방송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 방송에서도 한인 가게가 약탈당하는 모습은 거의 보도하지 않고, 옥상에서 총을 쏘는 한인들의 모습만 찍어서 논란이 됐다. 하지만 NRA(전국총기협회)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에서는 흑인들을 까내리고 총기소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인들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NHK의 기자들은 한국인 슈퍼마켓 앞에서 전격 취재를 했는데, 이 장면이 집중적으로 보도되었다.#
1988년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11] 라는 다큐멘터리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재미교포 영화감독 크리스티나 최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4.29 사이구(영어 제목도 Sa i Gu)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당시 많은 가게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보험 처리로 팔리지 않던 재고 몫까지 보상받아 오히려 이득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탈세 등의 목적으로 판매기록을 엉터리로 조작하던 가게들은 신고한 만큼만 보상받아서 큰 피해를 입었다.
한인들 사이에서는 교포들의 피해를 걱정하면서도, 인종차별 이슈 또한 이해한다는 태도가 공존했다. 오히려 교민들 사이에서도 일부 여론이 흑인들을 무시했던 정황에 대한 반성이 많이 나왔다. 고립적인 태도만으론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유도 "당연한" 공존의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한인교회는 그동안 다른 커뮤니티와의 교류 차원에서 여러 봉사활동을 많이 했으나 이후 봉사활동 등을 더 늘린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비판되고 있는 것은 역 인종주의, 즉 흑인들이 다른 소수민족에 대한 공격성을 보이는 태도를 두고 지적하는 경향은 강해졌다. 사실 흑인 커뮤니티는 한인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아직 비주류였던 히스패닉[12] 및 다른 소수인종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대응도 일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경찰들은 한인 자경단을 가게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고 무장보복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오인했던 것인지는 모르나, 단순히 가게를 지키려고 했던 몇몇 이들을 체포했고 무기를 압수했으며, 방어하고 있는 상점에서 해산시켰다. 그리고 그 상점은 방어자들이 해산된 다음에 불타버렸다(…).[13] 사실 당시 공권력의 대응 방식은 전체적인 불신으로 이어졌고, 2014년 퍼거슨 소요 당시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다 보니 자주 까이는 소재가 되었다. 물론 퍼거슨 소요 당시에는 미국 대통령이 주방위군 육군 투입을 미루라고 한다든가 하는 이런 저런 이슈가 있었지만 약탈당한 가게들 입장에선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사태를 보는 시각에는 '''LA나 퍼거슨이나 정부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인종주의는 이상이지만, 문제는 그 흑인들의 분풀이가 행해지는 대상은 백인들이 아닌 다른 소수인종들인 사태가 소규모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LA 한인들이 만든 LA 폭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LA 폭동을 겪었던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어 당시 대응상황을 볼 수 있다. 영어 버전도 있다.
산탄총으로 무장하고 지붕 위에서 경계를 하고 있는 한인.
3. 결과와 영향
4. 인터넷 밈으로서
루프 코리안은 2010년대 들어 미국의 보수주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재발굴되었는데, 특히 미국의 총기규제 논란과 관련하여 규제 찬성 측에서 "수정헌법 2조는 서부 개척 시대에나 유효했던, 구시대적인 조항이다."는 주장에 반대파들이 "오늘날에도 제 기능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면서 이 루프 코리안을 예로 들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상남자들이야말로 헌법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한 참 미국인(true Americans) 아니냐?"며 동화주의에 기반한 '미국적 가치'를 역설하기도 한다.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반면 다문화주의와 흑인 인권 운동을 지지하는 리버럴 진영 네티즌들은 이 밈을 '힙스터 인종차별(Hipster racism)'[14] 이라 여기고 "백인 권력이 한인과 흑인이 싸움 붙은 걸 밈으로 소비하면서 미국적 가치 운운한다.", "근본적인 원인인 인종 문제에 대한 담론은 어디 가고 폭도들 총으로 쏴 죽이자는 이야기만 하고 있냐?"고 매우 싫어한다.
2020년에도 총기 관련 유튜버들에 의해 '(총기를 방어 목적으로 사용했던) 루프 코리안' 이야기가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이 밈에 대한 찬사는 물론 '한국인들이 용감하고 멋있게 활약했다'는 칭찬이지만, 한편으로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었다는 데서 씁쓸한 면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 일개 시민이 공권력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어 자위(自衛)에 나서야 했다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며, 경찰들이 백인 지구를 우선적으로 방어하고 코리아타운의 치안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당시 미국 주류 사회의 동양인 사회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4.1.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가 점점 격화됨에 따라, SNS 등지에서는 ''''미니애폴리스는 이 사람들이 필요하다''''라는 농담과 진담이 섞인 글이 올라오고 있다. 여튼 그와는 별개로 미국 전역에서 몇몇 한인 점포는 '''또''' 불탔고,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총기 구매율이 높아졌다는[15] 기사가 쏟아질 때부터 루프 코리안이 언급되기 시작했으나, 폭동이 LA로도 퍼져나가자 루프 코리안은 30년만에 '''또 다시 가게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reddit의 해당 스레드에는 "SJW들 논리라면 흑인들은 법질서 다 무시하고 상점 약탈하고 경찰서 방화해도 되는 거냐?", "쟤들이 말하는 사회 정의가 뭐냐?"는 식의 코멘터리가 잔뜩 달렸다.
해당 밈이 재생산되는 것에 대해서 현지 한인 커뮤니티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흑인들이 소요를 일으킬 정도로 날을 잔뜩 세운 상황에서, "옛날처럼 한국인 용병들 불러와야겠네!"[16] 와 같은 밈이 유포되는 와중에 이에 동조하면 자칫 "백인의 똘마니", "자기들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인 놈들"이라고 인식해 분노의 화살이 한국인을 향할지도 모른다는 것. 밈 유행 자체가 흑인의 백인에 대한 분노를 다른 소수민족인 한인들에게 돌릴 수도 있다는 예측이 있다. '''92년 LA 폭동 당시 LAPD의 갈라치기로 폭도들이 한인타운으로 몰려와 큰 피해를 입었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반성없이 이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애도하며 평화적인 흑인 커뮤니티와 연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이 밈이 소통의 방해물로 작용하고 있다.
일단 LA 경찰과 주방위군은 이번에는 절대 LA 폭동 당시와 같은 차별적 관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찰들과 군인을 한인 거주지역에 대거 배치시켜 방어하고 있으나, LA같이 큰 규모의 한인타운이 없어서 지역 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다른 지역의 한인들은 자체적으로 무장을 하고 경계하는 상황이다.[17][18]
4.2. 한국에서의 반응
국내에서는 나무위키를 포함해 미국에서 루프 코리안 밈이 유행한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부터 LA 폭동 중 한인들의 자기 방어 활동에 대해 잘 알려져 있었으며,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위기 상황에서의 한국인의 단결력, 군필자들의 활약, 정당한 자기 방어적 관점 등을 통해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한 한국인의 단결력과 함께 미국인들의 호의적인 평가들이 첨부되었으며 이는 인종차별과 같은 무거운 주제와 담론보다는 '한국인의 대단함'의 관점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이후 루프 코리안 밈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지고 주요 언론을 통해 기사화된 지금도 당시 루프 코리안들의 용기와 단결력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매한가지나, 밈으로서의 활용에 대해서는 국내 또한 이런저런 시선이 뒤섞여 있다. 대체적으론 한국인들의 단합력과 용기에 대해선 좋게 평가하나 민감한 인종갈등에 활용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 편이며,[19] 반대로 시위의 변질된 폭력성에 대해 주목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의 보수주의 네티즌들과 비슷한 시각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다.
5. 대중매체에서
- 1992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억새바람>[20] 후반부에서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었는데, 해당 부분은 원작 소설에 안 나오는 오리지널 에피소드다.
- 2010년작 SBS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 손혁(차승원)이 윤혜인(수애)를 이 사건 때 만난다.
- 더 퍼지 시리즈의 한 비디오에서 권총을 들고 다른 사람을 쏘는 퍼지 비디오가 LA 폭동 당시의 한인들의 모습이다.
[image]
[1] 대개 전자가 쓰인다.[2] 영상에서 아킴보로 권총을 소지하고 쏘는 모자 쓴 남성. 데이비드 주가 일하는 총포상과 더불어 금은방도 동시에 운영했다. 사실 이렇게 총기도 판매하면서 다른 물건도 판매하는 상점이 미국엔 흔하다. 대표적으로 전당포(Pawn shop)가 그러하다.[3] 해당 영상의 삭제로 댓글 이미지로 대체함.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채널을 운용하는 데이비드 주 본인의 댓글.[4] 영화 다이 하드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 LA 경찰 소속 파웰 경사가 순찰을 도는 이유가, 밤에 어린애가 모형 총을 들고 나온 것을 진짜 총을 든 것으로 오인, 사살하는 바람에 보직변경된 것이라고. 2005년경에는 미국의 한 초등학생이 장난감 총을 검은 페인트로 칠하고 장난삼아 경찰에게 겨누다가 실총으로 오해되어 사살당한 사건이 있었다.[5] 아래 뉴스 영상들 중 하나를 보면 한국인들이 합법적인 총기 사용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을 제기하는 등, 운이 없었으면 정당방위를 위해 총을 들었음에도 가해자로 몰려서 이미지가 나빠졌을 수도 있다.[6] 여담으로 이장희는 1970년대 대마초 사건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1989년에 라디오 코리아를 세웠다.[7] 미국은 영국의 압제를 견디다못해 들고 일어나 독립한 국가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불의에 맞서 들고 일어난 올바른 폭력'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람보 시리즈, 인디펜던스 데이 시리즈 같은 미국 액션 영화들의 특징은 '은퇴한 군인인 주인공이 한적한 마을에서 평화롭고 조용히 살려 했으나 마을을 집어삼키려는 악당들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 무기를 꺼내든다'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 한인들중에는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참전용사 출신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 클리셰에도 부합한다.[8] 4분 10초~4분 14초를 보면 순찰대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람한테는 총 쏘지마!'''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있다. 이들의 무장이 어디까지나 방어가 목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직후 "그때 총을 쏘고 그래도 저희는 사람을 겨냥하진 않았어요. 방어용이지." 라고 인터뷰한 게 나온다.[9] 이 영상은 영화 "프리덤 라이터즈"의 극초반부에 삽입되기도 했다. 영화 ''더 퍼지''의 소개 영상에서도 나왔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인상 깊은 사건이였다는 반증.[10] 1992년이면 한국전쟁 이후 40여 년, 베트남 전쟁 이후 20여 년이 지났을 때이다. 가게를 지키던 40대 이상의 중년 한인들이라면 충분히 참전용사 출신들이 있을 수 있다.[11] 1982년 해고된 두 미국 백인 자동차 기술자들이 술집에서 우연히 한 동양인을 일본차만 보고 일본인으로 여기며 죽인 사건. 그러나 죽은 빈센트 친은 중국인이었다. 그리고 사건은 무죄로 끝나면서 중국 및 동아시아 이민 단체들의 격렬한 항의에 부딪힌 일을 다루었다. 지금도 범인 2명은 모두 잘만 살아있다. 그나마 30년이 지난 2012년 범인 중 하나인 로널드 에벤스는 친을 죽인 게 잘못이란 인터뷰를 했지만 그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파직한 크라이슬러 모터스에 다시 복직했으나 소송당하고 성깔있던 터라 회사에서 결국 다시 잘렸다. 또다른 범인은 마이클 니츠는 어떠한 인터뷰도 피하며 잠적하듯이 살아있다.[12] 멕시코계 미국인은 원래 캘리포니아나 뉴멕시코, 애리조나, 텍사스 등의 지역이 멕시코 영토였으며, 미국으로 넘어와 수가 많았으나 그때는 세력화되진 못했다.[13] 위에서 총기 관련해서 대부분이 사실 권총 같은 게 아니라 AR15 등 소총 계열로 무장했단 주장이 나온 근거로도 한 가게가 방어력이 취약해 털려서라고 나온다. 보석 가게가 털리자 그 보석 가게 사장이 자신이 운영하던 총포상에서 총을 싸게 뿌렸고 한인들이 단체로 그걸로 무장했다는 것.[14] 밈, 풍자, 만평 등 유머러스하거나 가벼운 농담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은연 중에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용어.[15]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따른 보복성 범죄를 우려해 중국계들이 방어용으로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중국인으로 자주 오해받는 몽골계, 일본계, 한국계 등도 덩달아 무장하게 된다.[16] 당연하지만 당시 한인들은 용병은 아니었다. 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고 가게를 지킨 사람들은 아니었을 터. 오늘날에 와서 네티즌들이 "내 집/가게에 루프 코리안 고용해서 지키고 싶다"라고 농담 섞인 한탄을 하는 것이다. 곳곳에서 극심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데 경찰들도 인력이 부족해서 모든 민간인들을 지켜주기 못하고 있기 때문.[17] 전국적으로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이라 원래도 경찰 인력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부족해서 자경단의 도움을 받는 판인데, 시민들이 경찰 불복종을 하고 있으니 치안공백으로 범죄자들이 어부지리를 얻는 것. 트럼프의 주장대로 폭동에 배후가 존재하고 군이 투입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맞다면 경찰들 인력이 결코 여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경찰들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은 분명하다.[18] 물론 한인 가게들만 무장을 하고 사람들을 경계하는 건 아니다. 다른 가게들도 폭도들에게 털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 하지만 폭도들 상당수는 저소득층이라 자기들에게 익숙한 가게부터 먼저 털려고 들기 때문에, 그런 곳에 가까이 있는 소수인종 자영업자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19] 주요 방송사들이 유튜브 채널들을 통해 해당 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영상들을 제작해 수십만의 조회수를 얻으며 호응을 끌었다. 다만 밈 자체가 한국인들을 조롱하며 가볍게 여기는 인종차별적인 밈으로서 보여지고 소비되고 있다 하였으나 인종차별이란 무거운 담론에 루프 코리안들이 이런식으로 소비되는것이 옳냐,그르냐에 대한 문제일뿐 미국의 보수주의 네티즌들이 루프 코리안을 칭송하는건 진심이므로 잘못된 접근이라 할 수 있고,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 1991년에 김유미 작가가 지은 소설이 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