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스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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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후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완전한 비주류 경제학으로 전락하여 거의 사멸 직전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결국 오스트리아학파와 인간행동학의 부흥을 보지 못하고 1973년에 세상을 떠나고 1년 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미제스와 함께 경기변동론을 개발한 이유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한다. 억만장자로 유명한 코크 형제는 미제스 이후로 가장 중요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로 거듭난 머리 로스바드를 발견했으며, 라스바드의 대단히 비타협적이고 원칙적인 자유주의 사상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그리하여 코크 형제는 라스바드와 함께 미제스의 경제학과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홍보하기 위해 카토 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의 명칭은 라스바드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는데, 18세기의 카토의 편지를 기초로 하였다. 비록 라스바드가 오스트리아학파에서는 최중심에 있는 핵심 학자일지라도, 비주류 경제학자라는 특성상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 박사라는 고학력에 무색하게 소위 지잡대 혹은 직업전문학교라 불릴 수 있는 학교에서 개인 사무실도 보장받지 못하고, 연봉 서열 최하위라는 대우를 받으며, 자신을 서포트 해주는 어떤 조직도 없이 힘겹게 학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그런 궁핍한 상황에서 자신과 스승인 미제스의 사상을 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억만장자의 조직이 생겨났으니 이는 기적이라 할 만한 인생역전이었다.
그러나 라스바드와 오스트리아학파에는 안타깝게도, 카토 연구소는 미제스와 오스트리아학파의 원칙에서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코크 형제는 카토 연구소가 워싱턴 D.C. 정계에도 영향을 끼치길 원했고, 라스바드는 카토 연구소가 순전히 학술과 교육 영역에만 집중하기를 바랬다. 코크 형제는 학술활동에 집중하고, 학문적 일관성을 비타협적으로 고수한다면 조직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사업가인 코크 형제는 미국 자유당 혹은 공화당의 자유지상주의 성향 정치인을 지원하고, 자유지상주의의 성장을 위해서는 원칙적인 성향을 감춰야 한다고 보았다. 자유지상주의가 '''"더 적은 세금, 더 많은 자유", 혹은 "사회적 진보, 경제적 보수"''' 등의 표어를 내걸면서, 아나키즘, 국가의료보험과 중앙은행의 폐지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학자인 라스바드는, 만약 오스트리아학파와 자유지상주의의 정책적 결론이 국가의 완전한 폐지라면, 자유지상주의 정치인은 당연히 그 원칙적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고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코크 형제와 로스바드 사이의 갈등은, 카토 연구소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가 아니라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핸더슨의 채용을 결정하면서 정점을 이루게 되었다. 카토 연구소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오스트리아학파를 진전시키고자 설립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우파 자유주의 계열이라고 한들 시카고 학파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은, 카토 연구소의 근본이 훼손되었음을 의미했다.
구조상으로 라스바드와 코크 형제는 카토 연구소에 대해 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가난한 학자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억만장자 사이의 파워 게임이 균등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은 전무했고, 라스바드는 카토 연구소 설립 몇년 후 코크 형제에게 모든 지분을 불법적으로 몰수 당하고 카토 연구소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라스바드의 떠돌이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론 폴 하원의원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던 류 락웰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학파 원칙주의자들의 노력 덕택에 1982년에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소가 설립된 것이다. 거대자본의 횡포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세워진 만큼, 미제스 연구소는 상당히 오랫동안 매우 작은 규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후, 미제스 연구소는 온라인 웹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분야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며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으며, 대기업과 정당의 후원 없이 순수하게 개인적 기부에만 의존하여 2019년 기준으로 연 기금 40억원에 달하는 꽤나 규모 있는 비영리 단체로 자리잡았다.
역사에서 볼 수 있듯, 미제스 연구소는 오스트리아학파, 자유지상주의, 그리고 아나코-캐피탈리즘(무정부 자본주의)의 원칙을 비타협적으로 고수하고자 한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순수성을 가장 잘 계승한, 오스트리아학파의 대표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중적으로는 최소국가를 옹호하는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적 오스트리아학파가 유명하지만, 사실 학문적으로 계보를 따져보자면 미제스 연구소의 오스트리아학파가 정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에크의 인식론은 1940년대 이후로 오스트리아학파의 선험주의에서 크게 이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보다 강경하게 자유시장과 규제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대기업과는 대단히 안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어느정도 로비와 정경유착을 해야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고,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적 성격을 가져야 더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데, 미제스 연구소의 원리주의는 그런 타협을 허용할 수 없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싫어한다. 웬만한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미제스 연구소 학자 상당수는 하이에크를 사회민주주의자로 생각한다. 물론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하고,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한 공헌도 상당한 만큼 어느정도 존중은 해주고 있지만, 애당초 하이에크류의 신자유주의와 로스바드의 아나코-캐피탈리즘은 서로 화해할 수 없다. 단지 정치적 문제 때문에 하이에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경제학에 대한 하이에크의 공헌 역시 상당 부분 모순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이론으로 유명한 지식의 문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학자들이 미제스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대신해서 머리 로스바드와 한스-헤르만 호페를 밀어준다.
론 폴이 미제스 연구소의 정치적 화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론 폴은 미제스 연구소 설립 초창기부터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애당초 미제스 연구소를 설립한 당사자가 론 폴의 비서실장이기도 하고... 론 폴 역시 미제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Senior Fellow) 지위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미제스 연구소와 함께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미제스 연구소에 가면 론 폴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정보만 살펴보아도 미제스 연구소는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이에크마저도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 판국이니, 한국의 자유한국당같은 일반적인 보수주의자들을 미제스 연구소의 시각에서 본다면 얼마나 반자유주의적일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보통의 보수주의자들은 미제스 연구소를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미제스 연구소를 대단히 경멸하고 사이도 나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막상 한국에서는 친박 및 자유한국당 성향의 보수주의자들이 미제스 연구소를 굉장히 많이 인용하고, 좋아한다. 정규재, 윤서인, 전희경, 반일 종족주의, 전경련, 한국경제신문, 미래한국, 미디어펜, 자유경제원 등으로 대표되는 뉴라이트가 바로 그들이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미제스 연구소가 경멸하는 주류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전형이고, 미제스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5분 정도만 서핑을 해도 이들이 매우 극단적인 아나코 캐피탈리즘(무정부 자본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뉴라이트가 미제스 연구소와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미지를 하도 망쳐놓은 탓에, 한국에서 진정한 자유지상주의 혹은 오스트리아학파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사실 뉴라이트들이 미제스 연구소를 제대로 인용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제대로 미제스 연구소를 인용하면 당연히 자기들이 개발살이 나니 어쩔 수 없지만.. 미제스 연구소의 저서나 연구성과를 왜곡하고 사실관계를 완전히 편집하여 소개하는게 일상이다. 예컨대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치경제학을 대표하는 명저인 한스-헤르만 호페의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를 정규재가 리뷰한 적이 있는데, 영상의 19분 18초를 보면 정규재가 '''"이 책의 저자가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권력은 극도로 제한되고 시장의 힘이 확대되는"''' 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한스-헤르만 호페는 아나코-캐피탈리즘을 완전히 정립했다고 평가받고, 그 중에서도 또 극단적인 것으로 유명한 아나키스트의 그 자체이다.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를 저술한 목적 역시 '''"아나코 캐피탈리즘 사회가 인류의 미래임을"'''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을 통해 증명하기 위해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책의 서문을 보자.
또 뉴라이트들은 로스바드와 론 폴에 대해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거나, 언급을 한다고 해도 왜곡하기 일상이다. 물론 그들을 인용하면 자신들이 불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제스 와이어 라는 웹사이트도 있다. 미제스 연구소에 올라온 칼럼을 번역하기만 하고 따로 미제스 연구소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지는 않는다. 이 사이트에서 번역된 칼럼들은 미제스 연구소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제스 연구소가 지원하는 3개의 언어가 바로 영어, 스페인어, 그리고 한국어다.
애초에 오스트리아 학파 같은 자유지상주의자, 또는 아나코 캐피탈리즘(또는 아나코 자본주의라고도 불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와 인간의 소유물에 대한 자유는 절대적이다' 라고 생각하기에 그 어떤 국가 체제도 '인간의 신체 또는 그의 소유물에 대한 침해'라고 여기는 일종의 우파 아나키스트이다. 미제스 연구소가 창설되었을 때 부터 구성원으로 활약한 월터 블락은 '''미제스 연구소의 99%는 아나코 캐피탈리즘 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사실 경제적 차원에서만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 등도 강력하게 지지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좌파적 분배 등을 외치면 그 사람의 주장을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이 비웃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은 자기 이념에 충실한 한에서, 그 '좌파 인사'가 그렇게 말할 '''자유'''도 소중하기 때문에 그의 입을 막거나 고문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따라서 미제스 연구소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국 뉴라이트가 추종하는 이승만, 박정희 같은 사람은 인간의 자유를 극심히 침해한 사람으로서 규탄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며, 뉴라이트가 미제스 연구소등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사실 '''편파적이고 편향적 인용'''일 뿐이다.
최초의 미제스 연구소는 미국에서 설립되었으며, 미국의 미제스 연구소를 본딴 유사기관이 전세계적으로 다수 설립되어 있다. 예컨대 영국에는 미제스 UK가, 독일에는 미제스 도이칠란트가 있는 식이다. 해당 기관들은 미국의 미제스 연구소와 매우 밀접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긴 하나, 미국 미제스 연구소의 법적인 해외지부는 아니다. 미제스 연구소는 저작권을 부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에 부정적이긴 커녕 매우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그러나 미국외의 미제스 연구소 대부분은 활동이 상당히 저조하다. 예외적으로 영국의 미제스 UK, 독일의 미제스 도이칠란트, 폴란드의 미제스 폴란드, 체코의 미제스 CZ, 루마니아의 미제스 루마니아, 브라질의 미제스 브라질 정도는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미제스 브라질의 규모는 미국 미제스 연구소와 거의 비등한 수준으로 성장한 상태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해외 미제스 연구소는 공통적으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 혹은 철학자 학자집단이 소규모나마 형성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폴란드, 체코가 주목할만 한데, 경제 혹은 학문수준상 아주 선진적인 국가는 아니지만, 상당히 주목할만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다수를 배출한 바 있다. 체코의 경우 Cevro Institute 라는, 전세계에서 몇 안되는 오스트리아학파 전문 교육기관을 보유중이기도 하다.
2020년 1월 1일, 한국에서도 미제스 코리아가 출범하였다. 국내 유일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전문가인 전용덕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가 학술 영역을 책임지고 있다. 이 문서 상단에서 언급되고 있듯, 보수 뉴라이트 세력에 의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및 자유지상주의의 왜곡이 극심하다는 점을 문제의식으로 삼아 설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SFL 한국 지부[1] 초대 대표이자 자유당 창당 멤버인 전계운이 현재 미제스 연구소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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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학파, 자유지상주의, 무정부 자본주의의 중심지이자 전 세계 총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연구 기관이자 비영리 교육 단체.There are two major schools of libertarianism that matter: The moderate Hayekian school pushed by the Cato Institute and the much more radical Rothbardian school pushed by Ron Paul and the Ludwig von Mises Institute.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에는 두 개의 주요 학파가 있다. 하나는 카토 연구소가 주도하는 온건한 하이에크학파이며, 다른 하나는 론 폴과 미제스 연구소가 이끄는, 훨씬 더 급진적인 라스바드학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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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도허티 (Brian Doherty), 리즌 매거진 편집장 출처
2. 역사
1950년대 이후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완전한 비주류 경제학으로 전락하여 거의 사멸 직전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결국 오스트리아학파와 인간행동학의 부흥을 보지 못하고 1973년에 세상을 떠나고 1년 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미제스와 함께 경기변동론을 개발한 이유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한다. 억만장자로 유명한 코크 형제는 미제스 이후로 가장 중요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로 거듭난 머리 로스바드를 발견했으며, 라스바드의 대단히 비타협적이고 원칙적인 자유주의 사상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그리하여 코크 형제는 라스바드와 함께 미제스의 경제학과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홍보하기 위해 카토 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의 명칭은 라스바드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는데, 18세기의 카토의 편지를 기초로 하였다. 비록 라스바드가 오스트리아학파에서는 최중심에 있는 핵심 학자일지라도, 비주류 경제학자라는 특성상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 박사라는 고학력에 무색하게 소위 지잡대 혹은 직업전문학교라 불릴 수 있는 학교에서 개인 사무실도 보장받지 못하고, 연봉 서열 최하위라는 대우를 받으며, 자신을 서포트 해주는 어떤 조직도 없이 힘겹게 학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그런 궁핍한 상황에서 자신과 스승인 미제스의 사상을 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억만장자의 조직이 생겨났으니 이는 기적이라 할 만한 인생역전이었다.
그러나 라스바드와 오스트리아학파에는 안타깝게도, 카토 연구소는 미제스와 오스트리아학파의 원칙에서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코크 형제는 카토 연구소가 워싱턴 D.C. 정계에도 영향을 끼치길 원했고, 라스바드는 카토 연구소가 순전히 학술과 교육 영역에만 집중하기를 바랬다. 코크 형제는 학술활동에 집중하고, 학문적 일관성을 비타협적으로 고수한다면 조직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사업가인 코크 형제는 미국 자유당 혹은 공화당의 자유지상주의 성향 정치인을 지원하고, 자유지상주의의 성장을 위해서는 원칙적인 성향을 감춰야 한다고 보았다. 자유지상주의가 '''"더 적은 세금, 더 많은 자유", 혹은 "사회적 진보, 경제적 보수"''' 등의 표어를 내걸면서, 아나키즘, 국가의료보험과 중앙은행의 폐지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학자인 라스바드는, 만약 오스트리아학파와 자유지상주의의 정책적 결론이 국가의 완전한 폐지라면, 자유지상주의 정치인은 당연히 그 원칙적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고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코크 형제와 로스바드 사이의 갈등은, 카토 연구소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가 아니라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핸더슨의 채용을 결정하면서 정점을 이루게 되었다. 카토 연구소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오스트리아학파를 진전시키고자 설립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우파 자유주의 계열이라고 한들 시카고 학파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은, 카토 연구소의 근본이 훼손되었음을 의미했다.
구조상으로 라스바드와 코크 형제는 카토 연구소에 대해 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가난한 학자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억만장자 사이의 파워 게임이 균등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은 전무했고, 라스바드는 카토 연구소 설립 몇년 후 코크 형제에게 모든 지분을 불법적으로 몰수 당하고 카토 연구소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라스바드의 떠돌이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론 폴 하원의원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던 류 락웰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학파 원칙주의자들의 노력 덕택에 1982년에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소가 설립된 것이다. 거대자본의 횡포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세워진 만큼, 미제스 연구소는 상당히 오랫동안 매우 작은 규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후, 미제스 연구소는 온라인 웹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분야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며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으며, 대기업과 정당의 후원 없이 순수하게 개인적 기부에만 의존하여 2019년 기준으로 연 기금 40억원에 달하는 꽤나 규모 있는 비영리 단체로 자리잡았다.
3. 성향
역사에서 볼 수 있듯, 미제스 연구소는 오스트리아학파, 자유지상주의, 그리고 아나코-캐피탈리즘(무정부 자본주의)의 원칙을 비타협적으로 고수하고자 한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순수성을 가장 잘 계승한, 오스트리아학파의 대표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중적으로는 최소국가를 옹호하는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적 오스트리아학파가 유명하지만, 사실 학문적으로 계보를 따져보자면 미제스 연구소의 오스트리아학파가 정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에크의 인식론은 1940년대 이후로 오스트리아학파의 선험주의에서 크게 이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보다 강경하게 자유시장과 규제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대기업과는 대단히 안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어느정도 로비와 정경유착을 해야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고,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적 성격을 가져야 더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데, 미제스 연구소의 원리주의는 그런 타협을 허용할 수 없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싫어한다. 웬만한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미제스 연구소 학자 상당수는 하이에크를 사회민주주의자로 생각한다. 물론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하고,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한 공헌도 상당한 만큼 어느정도 존중은 해주고 있지만, 애당초 하이에크류의 신자유주의와 로스바드의 아나코-캐피탈리즘은 서로 화해할 수 없다. 단지 정치적 문제 때문에 하이에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경제학에 대한 하이에크의 공헌 역시 상당 부분 모순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이론으로 유명한 지식의 문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학자들이 미제스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대신해서 머리 로스바드와 한스-헤르만 호페를 밀어준다.
론 폴이 미제스 연구소의 정치적 화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론 폴은 미제스 연구소 설립 초창기부터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애당초 미제스 연구소를 설립한 당사자가 론 폴의 비서실장이기도 하고... 론 폴 역시 미제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Senior Fellow) 지위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미제스 연구소와 함께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미제스 연구소에 가면 론 폴의 동상을 볼 수 있다.
4. 한국 보수주의 우파들의 왜곡
기본적인 정보만 살펴보아도 미제스 연구소는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이에크마저도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 판국이니, 한국의 자유한국당같은 일반적인 보수주의자들을 미제스 연구소의 시각에서 본다면 얼마나 반자유주의적일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보통의 보수주의자들은 미제스 연구소를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미제스 연구소를 대단히 경멸하고 사이도 나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막상 한국에서는 친박 및 자유한국당 성향의 보수주의자들이 미제스 연구소를 굉장히 많이 인용하고, 좋아한다. 정규재, 윤서인, 전희경, 반일 종족주의, 전경련, 한국경제신문, 미래한국, 미디어펜, 자유경제원 등으로 대표되는 뉴라이트가 바로 그들이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미제스 연구소가 경멸하는 주류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전형이고, 미제스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5분 정도만 서핑을 해도 이들이 매우 극단적인 아나코 캐피탈리즘(무정부 자본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뉴라이트가 미제스 연구소와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미지를 하도 망쳐놓은 탓에, 한국에서 진정한 자유지상주의 혹은 오스트리아학파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사실 뉴라이트들이 미제스 연구소를 제대로 인용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제대로 미제스 연구소를 인용하면 당연히 자기들이 개발살이 나니 어쩔 수 없지만.. 미제스 연구소의 저서나 연구성과를 왜곡하고 사실관계를 완전히 편집하여 소개하는게 일상이다. 예컨대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치경제학을 대표하는 명저인 한스-헤르만 호페의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를 정규재가 리뷰한 적이 있는데, 영상의 19분 18초를 보면 정규재가 '''"이 책의 저자가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권력은 극도로 제한되고 시장의 힘이 확대되는"''' 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한스-헤르만 호페는 아나코-캐피탈리즘을 완전히 정립했다고 평가받고, 그 중에서도 또 극단적인 것으로 유명한 아나키스트의 그 자체이다.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를 저술한 목적 역시 '''"아나코 캐피탈리즘 사회가 인류의 미래임을"'''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을 통해 증명하기 위해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책의 서문을 보자.
서문만 봐도 이 책이 오스트리아학파의 아나키즘 이론서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사용하려는 용어는 자연적 질서이다. 동일한 현상을 언급하기 위한 다른 용어로는 질서잡힌 아나키, 사유재 아나키즘, 아나코 캐피탈리즘, 자율정부, 사법(private law) 사회, 순수 자본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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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뉴라이트들은 로스바드와 론 폴에 대해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거나, 언급을 한다고 해도 왜곡하기 일상이다. 물론 그들을 인용하면 자신들이 불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제스 와이어 라는 웹사이트도 있다. 미제스 연구소에 올라온 칼럼을 번역하기만 하고 따로 미제스 연구소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지는 않는다. 이 사이트에서 번역된 칼럼들은 미제스 연구소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미제스 연구소가 지원하는 3개의 언어가 바로 영어, 스페인어, 그리고 한국어다.
애초에 오스트리아 학파 같은 자유지상주의자, 또는 아나코 캐피탈리즘(또는 아나코 자본주의라고도 불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와 인간의 소유물에 대한 자유는 절대적이다' 라고 생각하기에 그 어떤 국가 체제도 '인간의 신체 또는 그의 소유물에 대한 침해'라고 여기는 일종의 우파 아나키스트이다. 미제스 연구소가 창설되었을 때 부터 구성원으로 활약한 월터 블락은 '''미제스 연구소의 99%는 아나코 캐피탈리즘 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사실 경제적 차원에서만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 등도 강력하게 지지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좌파적 분배 등을 외치면 그 사람의 주장을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이 비웃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은 자기 이념에 충실한 한에서, 그 '좌파 인사'가 그렇게 말할 '''자유'''도 소중하기 때문에 그의 입을 막거나 고문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따라서 미제스 연구소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국 뉴라이트가 추종하는 이승만, 박정희 같은 사람은 인간의 자유를 극심히 침해한 사람으로서 규탄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며, 뉴라이트가 미제스 연구소등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사실 '''편파적이고 편향적 인용'''일 뿐이다.
5. 미제스 글로벌
최초의 미제스 연구소는 미국에서 설립되었으며, 미국의 미제스 연구소를 본딴 유사기관이 전세계적으로 다수 설립되어 있다. 예컨대 영국에는 미제스 UK가, 독일에는 미제스 도이칠란트가 있는 식이다. 해당 기관들은 미국의 미제스 연구소와 매우 밀접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긴 하나, 미국 미제스 연구소의 법적인 해외지부는 아니다. 미제스 연구소는 저작권을 부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에 부정적이긴 커녕 매우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그러나 미국외의 미제스 연구소 대부분은 활동이 상당히 저조하다. 예외적으로 영국의 미제스 UK, 독일의 미제스 도이칠란트, 폴란드의 미제스 폴란드, 체코의 미제스 CZ, 루마니아의 미제스 루마니아, 브라질의 미제스 브라질 정도는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미제스 브라질의 규모는 미국 미제스 연구소와 거의 비등한 수준으로 성장한 상태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해외 미제스 연구소는 공통적으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 혹은 철학자 학자집단이 소규모나마 형성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폴란드, 체코가 주목할만 한데, 경제 혹은 학문수준상 아주 선진적인 국가는 아니지만, 상당히 주목할만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다수를 배출한 바 있다. 체코의 경우 Cevro Institute 라는, 전세계에서 몇 안되는 오스트리아학파 전문 교육기관을 보유중이기도 하다.
5.1. 미제스 코리아
2020년 1월 1일, 한국에서도 미제스 코리아가 출범하였다. 국내 유일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전문가인 전용덕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가 학술 영역을 책임지고 있다. 이 문서 상단에서 언급되고 있듯, 보수 뉴라이트 세력에 의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및 자유지상주의의 왜곡이 극심하다는 점을 문제의식으로 삼아 설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SFL 한국 지부[1] 초대 대표이자 자유당 창당 멤버인 전계운이 현재 미제스 연구소 대표로 있다.
6. 관련 문서
[1] SFL(Students For Liberty)는 최소국가주의를 지지하는 자칭 자유지상주의 단체로서, 아나코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자유지상주의 정치 철학자 한스헤르만 호페 교수에게 자주 Stupids For Liberty라고 조롱 당한다. 미제스 연구소는 최소국가주의를 거부하고 아나코 자본주의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