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
1. 개요
文法 / Grammar
말을 사용할 때의 규칙의 종류.
문법을 영어로는 grammar라고 하는데 어원은 그리스어 Γραμματική(Grammatikê), 즉 '문자를 쓰는 기술'이라고 한다.
2. 이론언어학에서의 문법
이론언어학에서는 문법을 그 목표와 관심사에 따라 처방 문법(prescriptive grammar), 기술 문법(descriptive grammar), 설명 문법(explanatory grammar)의 세 유형으로 나눈다.
처방 문법은 규범 문법(normative grammar)이라고도 한다. 처방 문법은 언어 사용자가 발화하는 여러 문장들 중에서 무엇이 '옳은' 문장이고 무엇이 '옳지 않은' 문장인지 판가름해주는 것을 그 주된 기능으로 한다. 국립국어원이나 지상파 방송사에서 종종 벌이는 바른 우리말 캠페인 등이 이 처방 문법에 해당한다. 처방 문법은 일상인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문법"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정작 현대 이론언어학에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기술 문법은 어떤 문장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어 화자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이라면 모두 동등하게 "옳다"는 전제하에 연구하는 문법이다. 즉 기술 문법은 언어 사용자들을 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상 언어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 연구하는 문법이다. 구조주의 문법, 생성문법, 인지문법 등 모든 이론 문법(theoretical grammar)이 이 기술 문법에 해당한다. 큰 분류로는 '''통사론(統辭論; Syntax)'''의 주요 골자다.
설명 문법은 언어학이 해당 언어의 문법을 "기술"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되며, 해당 언어가 왜 그러한 문법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원인"까지 밝혀 주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나타난 개념이다. 그러나 설명 문법의 개념은 아직 모호하며 학파별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아직 "설명 문법"이라고 보편적으로 동의할 만한 문법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설명 문법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로 제안된 사항들을 아래에 든다. 단, 아래 개별 조항들이 설명 문법의 필요 조건이라는 데에 모든 언어학자가 동의하고 있지는 않다.
- 하나의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에 적용될 수 있는 문법 이론이어야 한다.
- 언어 수행(language performance)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language competence)도 설명할 수 있는 문법 이론이어야 한다.
- 언어학 내적으로 정합적일 뿐만 아니라 심리학, 인류학 등의 언어 연구 성과에도 부합하는 문법 이론이어야 한다.
3. 문법이 없는 언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법 없는 언어란 존재할 수가 없다'''.
간혹 국내외를 불문하고 특정 언어나 언어 집단을 가리켜 ''''문법이 없는 언어(languages without grammar)''''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좁은 의미로는 중국어를 두고 하는 소리이고, 좀 더 언어의 근원을 파고드는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타이카다이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등의 소위 '남방계' 언어군을 두고 문법이 없는 언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인도유럽어족, 그리고 튀르크어족, 몽골어족 등의 알타이 제어 등의 소위 '북방계' 언어군을 두고 문법이 있는 언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문법'이라는 것을 잘못 정의해 발생한, 오개념에 따른 분류이다. 근본적으로 이 같은 오개념은 현대의 언어학이 서구의 언어학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서구의 언어학은 특히 영어 등의 일부 인도유럽어족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터라, 각종 언어학적 지식 및 방법론들이 인도유럽어족에 최적화되어 있는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이들의 잣대를 사용하면 인도유럽어족은 체계가 잡혀 있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지지만, 다른 언어들은 도무지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듯이 엉망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인도유럽어족 등 북방계 언어군은 굴절 및 접사 첨가 등의 활용 현상이 나타나지만 남방계 언어군의 상당수는 이 점이 미약하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같은 북방계 언어라도 서구의 인도유럽어족은 문법적 성, 수, 격에 따른 굴절이 있지만 한국어, 일본어 등의 비인도유럽어족 북방 언어군은 다른 활용이 나타나지, 서구식 활용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 때가 대부분이다. 이로 인해 서구식 언어학에 바탕을 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인도유럽어족을 제외한 나머지 언어들은 문법이 체계가 잡혀 있지 않거나(알타이 제어) 없다(중국어 등 남방계)'라는, '''서구 중심으로 치우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비단 지난날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라, 그러한 언어학의 사조를 그대로 받아들인 타 문화권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당장 원어민 중국어 강사 우지평(于知平)만 해도, 중국어에는 원래 문법이 없었고, 영문법의 영향으로 문법이 비로소 생겼다는 잘못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전 세계의 학풍이 얼마나 서구 중심적인 시각으로 돌아가는지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예이다.
애초에 '''문법 없는 언어란 존재할 수가 없다'''. 문법이라는 것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일정한 관습적 체계 전반을 가리키지, 특정한 현상, 이를테면 성·수·격에 따른 곡용이나 시제·태·법에 따른 활용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중국어, 현대 영어 등의 고립어에서 나타나는 어순만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의미의 변별력을 확보하는 문법이고, 성조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문법이다. 더 넓게는 맥락에 맞는 태도(말투)를 선택하는 것 역시 문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언어가 문화 현상의 한 양상인 만큼, 문법과 문화는 칼로 자르듯이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소통의 변별력 확보라는 차원에서 문장 부호 역시 문법이 될 수 있고,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문장 부호를 잘못 쓰는 것 역시 중대한 문법 오류로 본다.
요컨대, 문법이란 서로 소통하며 명료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모든 언어적 수단 및 현상을 의미하며, 그 방식은 관습적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문법이 없는 언어란 곧 소통이 불가능한 무언가, 즉 언어가 아니라는 뜻이므로 세상에 문법이 없는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4. 언어 학습에서의 문법
실제로 세계 대다수 국가의 외국어 교육은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개발된 외국어 교육 교수 방법을 따르는데, 그중 가장 교사 수급이 쉽고, 외국어 교육 초기에 이용된 방식이 바로 문법 번역식 교수법이었다. 문법 번역 교수법의 경우엔 교사를 양성하기도, 교사가 지식 우위를 점하기도 가장 쉽기 때문. 회화 교육의 경우 교사가 오히려 달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러나 GTM은 사장된 교수 방식인데 무려 500여 년 전, 라틴어 해석을 주 목표로 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교수 방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외국어 교육은 해석만 할 줄 알면 당연히 시망. 1980년대 이후부터는 언어 소통 교수법이 권장되는 외국어 교육 방식이지만 여전히 한국을 비롯 여러 국가에선 GTM식의 문법 교육을 외국어 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로 가르친다. 이러한 문법 위주 교육은 독해는 줄줄 나와도 작문이나 회화에는 한없이 약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21세기 들어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 문법을 저 멀리 어딘가에 던져버리고 회화에 치중한 적이 있었지만 이러한 교수법은 그저 부실 공사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현재는 문법과 회화를 적절하게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대세.
자신의 모국어에 관한 문법적 지식이 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문법이 외국어를 배울 때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법을 안 배우고 그대로 외국어 환경에 노출되면 말이 트일 때까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못 듣는 사태가 벌어진다. 조금 알아두면 즉석에서 써먹을 수 있고, 그만큼 말이 빨리 트이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문법 하나도 몰라도 언어생활을 잘 한다는 통념에도 다소의 오해가 있다. 왜냐하면 높은 수준으로 모국어를 활용하는, 즉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문법적 지식도 상당히 가지고 있다. 직접 교육과정에서 배웠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많은 독서와 작문을 통해 문장구조에 대해 직관적인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중등교육에서도 알게 모르게 문법을 계속 배워왔다. 지금 기억을 못 해서 그렇지, 아주 어릴 때 했던 받아쓰기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에서부터 국어교육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부 위키러는 국민학교에서 배웠을지도 모른다.
같은 어족끼리는 유사한 문법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문법이 비슷한 튀르크어족, 퉁구스어족, 몽골어족, 한국어와 일본어을 같은 어족으로 보는 소위 알타이어족 이론이 19세기까지 득세했으나 지금은 사장되었다. 현재에는 문법만으로 어족을 판단하지 않는다. 한 예로 중국어와 티베트어는 같은 어족이지만 문법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기본적인 어휘의 유사성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한국어에선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쉼표나 쌍온점(:), 쌍반점(;)을 정확히 쓰는 법도 영어에서는 문법의 일종이다. 부호를 잘못 쓰면 '''문장을 잘못 쓴 것이나 다름없다.''' 아예 뜻이 완전히 달라지거나('예?'와 '예!'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영어판 왈도체나 근성체가 된다고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교육 과정 내내 이걸 배우는 일이 없다. 그나마 쉼표는 조금 배우는 편이지만 완전히 가르쳐주진 않고, 콜론과 세미콜론은 언급도 안 한다. 단, 선생님에 따라서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4.1. 아이들은 문법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인가?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로 아이들은 문법을 따로 배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들도 문법 교육 및 교정을 엄연히 받는다. 당장 위 항목에서도 밝혔듯,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알게 모르게 문법 교육을 받는다. 유치원 수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법 교정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올바른 문법'''을 습득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아이에게 언어를 들려주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정확한 문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것은 관계성이 결여된 문법에 한정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개입하는 문법은 이마저도 답이 없다. 이 경우, 해당 문법을 접할 기회가 되지 않는다면 '''철저히 외부의 개입으로 문법 교정하거나 인위적으로 문법 주입'''을 한다.
실제로 어느 가정에서는 첫째가 딸이고 둘째가 아들인데, 아들이 윗사람인 누나가 친척 언니에게 하는 말을 듣고 다닌 바람에 자기 누나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쓴 사례가 있다. 자기 손윗형제가 여성이고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친척들 중에서도 '누나'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없었기에 결국 이 아들의 입에는 '누나' 대신 '언니'가 붙었다. [1] 그 결과, 아이의 어머니가 직접 개입해 아이의 문법을 수시로 교정했다.
한국어의 특수한 문법 체계 중 하나인 높임말과 관련해 이와 같은 인위적인 문법 교정은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그 예로 아이가 웃어른, 특히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반말 또는 부적절한 어휘('드시다', '주무시다' 등을 써야 할 자리에 '먹으시다', '자시다' 등을 쓴다든가)를 썼을 때, 부모가 아이의 언어 사용을 지적하며 아이의 문법을 교정하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쓰는 반말을 듣고 자라기 때문에 자연스레 반말을 습득하게 된다. 간혹 어머니나 아버지 본인은 아이에게 반말을 쓰면서 정작 아이가 반말을 쓰면 혼내는 사람이 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니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위키러 중 그런 사람이 있다면 반성하자. "나는 바담 풍 할 테니 너희는 바람 풍 해라." 하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아이에게 인위적으로 문법 교정 및 주입을 하는 영역은 앞서 말했듯 복잡한 관계가 설정되는 영역, 그리고 불규칙 영역이다. 당장 위에서 예로 든 존댓말에서의 특수한 어휘만 보더라도 일반적인 한국어의 규칙인 '-시-'를 사용하는 어법에서 벗어난 불규칙적인 영역이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는 일어난다. 영어권 국가의 경우, 아이가 불규칙 동사 및 불규칙 명사를 잘못 사용하면 부모가 수시로 교정해 준다. 이러한 교정은 단지 학교에서 단어 시험을 보고 상벌을 받는 것과 그 구체적인 방식만 다를 뿐, 기본적인 틀은 똑같다. 그러므로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언어의 문법을 익힌다느니 하는 얘기는 어디까지나 규칙적이고 일관된 영역에만 국한될 뿐, 복잡한 문법은 결국 외부의 개입을 요구한다.
5. 일상에서의 문법
대화 중 다른 사람의 문법적인 오류를 고쳐주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끔 도를 지나쳐 꼴불견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영미권에서는 '''문법 나치'''라고 한다.
언어에는 '감'이 있어서, 모국어라면 누구나 머릿속 문법 직관에 따라 말하고 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법을 사용하는 것과 설명할 줄 아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국문법에서 '이/가'는 격조사이고 '은/는'은 보조사이다. '이/가'를 쓸 것인가 '은/는'을 쓸 것인가는 해당 명사구가 새로운 정보인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인지의 여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에 대해 한국어 화자는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해도 일상에서(감으로) 자연스럽게 구분해 쓰지만 외국인은 그럴 수 없다. 한국말에 대하여 이러한 감이 없는 외국인은 구분하기 어려워한다. 유학생이 한국 일기를 쓰면 시작 부분에 "내가 오늘 일어나서~"와 같이 '가'를 쓰는 수가 많은데 이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대부분 한국인은 시작부에 '나는'과 같이 '는'을 쓰기 때문이다. 이는 일기장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므로 '나'에 대한 정보가 전제되어 있기에 구(舊)정보 표지인 '는'을 쓰는 것이다.
언어의 규칙이니만큼 언어마다 문법의 뼈대가 다른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교과 과정에서 문법 요소를 본격적으로 배우는 것이 영어의 문법이기 때문에 영문법이 국문법에 그대로 대응된다고 착각하거나 더 나아가 국문법이 체계적이지 않고 뒤죽박죽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각 언어의 문법 체계를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예를 들면 한국어의 부사, 보어는 영어의 부사, 보어와 기능이 다르지만, 영문법과 섞이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한국어에서는 서술어 자리에 형용사도 쓰지만(주어-서술어), 영어에서 서술어에 해당하는 자리에는 무조건 동사만 쓰고 아예 서술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주어-동사). 더 나아가 비문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도 영문법의 원칙을 그대로 한국어에 적용하여 멀쩡한 한국어를 한국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1 #2 #3 #4 첨언하면, "한국어는 topic-prominent language이기 때문에 술어와 호응하지 않는 성분이 있어도 괜찮다"라는 주장은 얼핏 보기에 그럴싸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논거와 주장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topic-prominent language이기 때문에 저런 문장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저런 문장을 한국어 화자가 사용하기 때문에 topic-prominent language로 분류되는 것. "문법학자들이 topic-prominent language로 분류하건 말건 한국어 화자가 쓰는 표현이라면 그 자체로 아무 변명 필요없이 옳다"는 것이 기술 문법의 정신에 더 부합하는 진술일 것이다. 차라리 일반 언어학적 관점을 가지고 온다면 모를까...
6. 언어별 문법
7. 문법 용어
8. 언어 단위
9. HTML 및 위키에서의 문법
10. 관련 문서
- 어휘
- 독해
- 청해
- 문맥 자유 문법
- 반어법
- 영어 문법 용어
- 맞춤법
- 문장
- 비문(문법)
- 단어
- 띄어쓰기
- 나무위키 문법
- 통사론 - 문법에 관한 '이론'을 다루는 학문
- 한국어/문법
- 언어 관련 정보
[1]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으로 고쳐지는 경우도 있지만, 잘 안 고쳐진다. 그리고, 이는 만일 반대로 첫째가 둘째에게 이름을 계속 부를 때, 셋째도 둘째를 첫째를 따라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