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샤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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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비정상회담의 네팔 대표 패널이다. 성시경은 퍼스트네임만 듣고 여성인 줄 알았다고 한다. 영어권의 여자 이름인 수잔은 '''Susan''', 인도식 남자 이름인 수잔은 '''Sujan'''인데, 철자 하나 차이다.
네팔에서 가장 좋은 명문 트리부반 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고 있었으나 네팔 정세가 나빠지자[1] , 한국으로 유학오게 되었고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도시계획학과 졸업했다. 바이탈 파라슈트라는 낙하산제작 회사를 다닌다. 이 회사 사장님에게 스카우트를 당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후술. 한국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공부를 마쳤다.
서양에서 온 백인, 코카시안계 패널들이 많았던 비정상회담에서 장위안과 테라다 타쿠야에 이은 3번째 아시아인 패널이다. 일일 패널로 잠시 왔던 다케다 히로미츠와 후지타 사유리까지 포함하면 5번째이며, 남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이다.
비정상회담 27회에서 일일 인턴으로 등장했으며, 바로 다음 회 2015년 1월 12일 28회부터 고정으로 출연하다가 52회를 마지막으로 하차했다.
2. 활동
2.1. TV 프로그램
- 비정상회담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출발 드림팀 - 시즌 2
- 이웃집 찰스
- 뉴스룸
- 뉴스&이슈
- 글로벌 정보쇼 세계인
- 꿈을쏘다
- 세계테마기행 #네팔의 데스로드 ‘돌포’
- Bring in on
- Prosumer Lab
- The east sea expedition
- OURS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 대한외국인
2.1.1. 비정상회담
27회 일일비정상 출연분은 여기를 참고.
28회에서 일리야 벨랴코프, 블레어 윌리엄스와 함께 고정 패널로 처음 출연했다.
네팔은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 신자가 많기에 쇠고기를 좋아하는 기욤 패트리가 네팔에 오면 고소당할 수 있다는 드립으로 빵 터뜨렸다. 이에 알베르토 몬디가 "기욤 패트리한테도 신이야, 소가!"[2] 라고 말하고, 기욤 패트리도 "나는 소를 굉장히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떤 것은 덤.
본 토론 중에 패널들이 각자 미래 자신의 아이에게 짜 주고 싶은 방학 생활계획표를 말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수잔의 시간표에는 취침 시간만 무려 '''14시간'''이었다.
어릴 적에 수잔은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고 한다. 자신은 잠이 부족했으니까 자기 자식은 충분히 재우고 싶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자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으며, 토론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다른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리액션이 상당히 좋고 적극적이며, 웃기도 로빈 데이아나만큼이나 꽤 잘 웃는 편이다. 웃을 때의 자막은 '우겔겔' 혹은 '와하학'으로 표시된다.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여러번 했는데, 할머님께서 상당히 포스 있는 성격으로 추정되었다. 수잔의 할머니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네팔편을 통해 공개되었다. 수잔의 말대로 엄청나게 카리스마 있는 분이셨다.
29회에서는 네팔의 최근 이슈를 소개하면서, 5년에 1번 열리는 네팔의 가드히마이 축제에 대해 소개했는데, 이 축제에서 이틀 동안 5천 마리의 물소를 포함한 총 20여만 마리(2009년 당시)의 가축들이 제물로 바쳐진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문화상대주의VS동물학대'라는 대형 떡밥을 놓고 모처럼 패널들끼리 자체적으로 화끈한 토론을 벌였다. 본인은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네팔인으로서 전통 있는(200년이 넘었다) 축제에 자부심을 갖지만 이 축제를 위해 2~3일 동안 네팔 전역에서 오는 가축들은 이미 도살되기 전에 사실상 죽은 것[3] 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등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줬다.
31회에서는 앞머리를 내린 헤어스타일로 바꾸고 출연. 초반에 일리야, 블레어와 했던 신고식에서는 자국 민요를 불렀는데, 중독성이 강했다.
유학을 주제로 한 본 토론에서 네팔인들은 대학 진학자의 90% 이상이 유학을 간다며 '''"가볍게는 인도로, 무겁게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간다."'''는 사실을 언급했다.[4]
32회의 <늦었슈>에서는 네팔의 풍습인 '''쿠마리'''[5] 에 대해 소개했는데, 이것이 전통문화로서 존중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아동학대인가를 놓고 역시 토론이 벌어졌다. 쿠마리는 여자 어린이를 '탈레주'라는 여신의 화신인 '쿠마리'로 지정하고 섬기는 네팔의 힌두교 의식이다. 엄격한 기준에 따라 뽑힌 어린이는 사원에 갇혀서 신으로 섬김을 받으며, 참배하러 오는 신도들에게 기계적으로 축복의 의식을 행해야 한다. 이들은 수많은 종교적 금기들에 둘러싸여 생활하며, 이를 어길 시 여신의 지위를 박탈당할 것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채 생활해야 하며, 초경을 시작하면 쿠마리 직을 박탈당한다. 현재는 쿠마리에서 은퇴한 소녀들이 네팔 정부로부터 네팔의 1인당 GDP 2배에 해당되는 연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쿠마리 출신 여성들이 평생 결혼도 못 했으며[6] 편견의 대상이었다. 요즘은 그러한 편견이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쿠마리 출신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쿠마리들은 유년시절부터 사원에 격리되어 자랐기 때문에 세상물정을 알지 못해서, 쿠마리 생활이 끝나도 잘 적응하도록 현재에는 쿠마리가 되면 가정교사도 붙여준다. 한국에 소개된 사례 중 가장 비극적인 경우는 쿠마리 중에서도 드물게 '''초경을 안 한 경우'''인데, 결국 해당 여성은 나이가 60살이 넘도록 쿠마리 자리에서 은퇴하지 못하고 한 평생 사원 안에만 갇혀 기계적으로 참배객들의 기도만을 들어주며 살고 있다. 그런데 패널들 모두 쿠마리에 대해 잘 몰랐던 탓인지, 논점을 벗어난 의견이나 반론을 꺼내기도 했다. 심지어 이 떡밥을 꺼낸 수잔 본인조차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 다만 지금은 네팔인들이 쿠마리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네팔인들 스스로가 공론화하고 있다는 것을 소개했다. 2008년 네팔 대법원의 판결로, 쿠마리들의 교육, 행동, 식사의 자유는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현재 쿠마리들은 사원에서 전부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은퇴 이후에도 이들이 일반인으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받고 있다. 외부인이 없는 자리에서는 부모님이나 또래 친구들과 얘기할 수 있고, 업무 시간 외에는 자유롭게 놀 수도 있다고 한다.
33회 설 특집에서는 제임스 후퍼가 옴 마니 파드메 훔[7] 을 부르자, 출연진들의 '오리지널 버전' 요구로 옴 마니 파드메 훔을 불렀다. 하지만 알베르토 몬디에게 "영국인이 부른 게 더 좋다"며 디스 당했다.
그리고 이 회차에서 레썸삐리리가 또 다시 나왔다.
34회에서 네팔 개그를 했다. 다니엘 린데만에 이어 노잼의 화신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 옆에 있던 기욤 패트리에게 개그를 쳤는데 정작 기욤이 알아듣지 못하는 장면이 나왔다.
35회에서 문희준이 "태극기가 제일 특징 있다"고 하자, 말 없이 네팔 국기를 흔들었다. 네팔 항목에도 나오지만, 네팔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각형이 아닌 국기이다.
36회에서 "히말라야 근처에 있는 ATM은 기계처럼 생겼지만 사람이 돈을 내준다"고 언급했다.
2015년 4월 27일 방영된 43회 오프닝 전 잠깐 26일분 녹화장면에서 조국의 재난 소식에 어떤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2015년 6월 8일 방영된 49화에서는 수잔을 볼 수 없다. 네팔 지진으로 구호 활동을 위해 네팔에 갔기 때문에 촬영에 임하지 못했다.
52회를 마지막으로 비정상회담에서 하차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아직 네팔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데 하차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안타까워 하였다.
이 후 171회에서 정말 오랜만에 일일 패널로 재출연하였다.
2.1.2.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벨기에편인 6회부터 투입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간 유럽 여행이라 그런지 굉장히 들떠서, 자타공인 오리 줄리안 퀸타르트마저 지치게 만들었다. 줄리안 누나의 벨리댄스를 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 증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8] , 영어를 거의 못하는 유세윤이나 장위안에게 간간히 통역해주기도 하였다.
체력이 정말 뛰어나서 운동 관련으로도 돋보이는 편이다. 리에주 계단 오르기에서 1등을 차지하고, 엄청난 계단 수를 자랑하는 종탑도 잘만 올라갔다. 거기에 자전거도 잘 타고 말도 잘 탄다.
여담이지만 버킷리스트에 실'짱'님이라고 되어있다. 모르고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줄리안의 외할머니를 만났을 때 자신의 할머니를 생각했다고 한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지, 벨기에에 있을 때 폰카로 계속 사진 찍는 모습을 보였다.
네팔편에선 '''네팔 유재석''', '''갓수잔'''으로 등극했다. 친구들이 직접 쿠마리를 만나 보면서[9] 오해가 상당수 풀렸다. 방송에 함께 나온 쿠마리의 부모님도, "딸이 또래 아이들처럼 놀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영광"이라는 말을 했다. 이 방송에는 제작진들이 전직 쿠마리 출신 여성과 인터뷰한 영상도 나왔는데, 이 사람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전세계에 네팔의 쿠마리 문화를 알리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쿠마리 문화를 보는 부정적 관점을 여러모로 씻어낼 수 있었던 방송이었다.
이탈리아 편에는 네팔 대지진 때문인지 참석하지 않았으나, 캐나다 편에 다시 출연했다. 이후 오랫동안 행방불명 상태였으나, 뉴질랜드편에서 다시 출연하였다. 비정상회담 출연을 그만 둔 상태였기에 수잔을 다시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은 반기는 분위기이다.
2.1.3.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2.1.4. 대한외국인
샘 오취리, 럭키와 같이 고정출연하고 있다. 주로 8단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2. 라디오
-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 월드투데이 글로벌 토크박스(일리야 벨랴코프와 함께)
- 다문화 음악여행
2.3. 토크
- 멀리서 온 정상급 미남들과 수다(로빈 데이아나, 블레어 윌리엄스, 샘 오취리, 일리야 벨랴코프, 줄리안 퀸타르트)와 함께
-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Lovely talk(마크 테토, 알베르토 몬디와 함께)
- 글로벌 프렌즈쉽 페스티벌
- 유니세프토크콘서트 네팔(마크 테토와 함께)
2.4. 광고
- 오글오글 영어교실(기욤 패트리, 다니엘 린데만, 안드레아스 바르사코풀로스, 알베르토 몬디, 유세윤과 함께)
2.5. 모델
2.6. 홍보대사
- 관광협회중앙회 글로벌 홍보대사 네팔 대표
3. 기타
- 유독 자신이 메인으로 활약했던 방송 중 안 좋은 사건들을 겪은 편이다. 2015년 4월 18일부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네팔편을 방영했는데, 그로부터 딱 1주일 뒤인 2015년 4월 25일 네팔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천만다행히도 카트만두에 있던 가족들은 모두 무사했으며, 수잔은 Pray for Nepal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현지 네팔인들의 무사 기원과 시름에 잠긴 네팔인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호소하였다. JTBC 뉴스룸에도 출연하여 자신이 들은 현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10] 그로부터 3년 후인 2018년 8월 2일에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네팔편에 메인 패널로 등장하여 방송에 출연을 하였으나, 그로부터 8일 뒤인 2018년 8월 10일에 부친상을 당하고 말았다.[11] 그리고 해당 방송 말미에 수잔 아버지가 수잔에게 보내는 생전 마지막 영상편지를 방영[12] 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게 하였다.
-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아주 잘지내고 있다. 일리야 벨랴코프, 기욤 패트리, 마크 테토, 안드레아스 바르사코풀로스와 제일 친한 듯하다. 2016년에는 독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 비정상회담에서는 개인적 면모가 그리 부각되지 않는 편이었지만,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눈치가 굉장히 빠르고 센스 있는 성격이라 갓수잔으로 등극했다. 일리야 벨랴코프가 페리스코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수잔은 완벽 그 자체라고 한다.
-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본 경험이 있고, 한국인 관광객들 통역과 인솔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도 한 적 있다. 여기서 알게된 한국인이 이후 한국에서 취직한 낙하산 회사의 사장님이라고 한다. 수잔이 마음에 들어서 눈여겨 보다 수잔이 한국에 오자 자신의 회사로 부른것. 수잔 말에 따르면 에베레스트에서 진짜 귀찮을정도로 자신의 신상에 대해 캐묻던 한국인 아저씨가 알고 보니 사장님이었고 그게 일종의 면접이었다고 한다.
- 체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실제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벨기에편에 첫 등장해서, 줄리안의 제안으로 느닷없이 하게 된 리에주 374계단 빨리 오르기 경주에서 압도적인 체력과 스피드로 1위를 하였다. 당시 수잔의 복장이 혼자만 풀정장 차림에 급하게 빌린 스태프의 운동화로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외의 방송에서 공개된 걸 보면 자전거와 말도 잘 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 인터뷰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한국인과 인연이 있었다.[13] 또한 한국에 와서도 좋은 인연들을 만나 대학 졸업 후 바로 한국 회사에 취직을 하는등 비교적 순탄하게 한국 생활을 한 편이라고 한다. 다만 대학 재학 중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무개념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1] 네팔 왕실 참극 이후로 갸넨드라 국왕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2] 그리고 '''밥상의''' 신이라는 자막이 나왔다.[3]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4] 사실 네팔에 대학이 너무 적다.[5] 쿠마리를 소재로 한 웹툰 시타를 위하여가 있다. 그 외에 한국에서 쿠마리 자리에서 은퇴한 여성들의 비참한 실정에 관한 다큐나 방송 등이 몇 번 방송된 바 있다.[6] 사람들이 쿠마리 출신 여성과 결혼하면 재수가 없다고 피했다. 남편이 일찍 죽는다는 미신도 있다.[7] 옴 마니 반메 훔은 잘못 전달된 발음이며, 성철 스님이 1950년대에 옴 마니 파드메 훔으로 개정하였으나 아직까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8] 사실 네팔은 물론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대에서 대학을 갈 정도면 영어는 이미 기본으로 할 줄 하는 사람들이다. 즉 우리보다 레벨이 넘사벽급으로 높다는 것이다.[9] 쿠마리는,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 방송국에서 취재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만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수잔의 아버지가 인맥을 동원해서 어렵게 성사된 자리였다. 방송에서 만난 쿠마리는 당시 시험기간이었지만 공부하는 시간을 비워줘서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10] 사족으로, 트위터에서 팬들이 보내주는 멘션에 모조리 관심 글을 눌러준다. [11] 이로 인해 8월 23일에 방영된 네팔 마지막편은 수잔이 부친상으로 네팔로 출국하였기 때문에 스튜디오 촬영을 할 수 없었기에 방송 사상 처음으로 스튜디오 촬영없이 순수하게 가족 여행 장면 만을 방영하게 되었다.[12] 원래 제작진이 찍어서 가져온 영상인데 수잔과 수잔 가족들의 동의하에 이 영상을 마지막에 방송으로 보냈다.[13] 네팔에 관광을 왔던 한국인이 가게에서 계산을 헤매는 것을 보고 수잔의 아버지가 잘 처리해줬는데, 이에 감동한 한국인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고 간 뒤 선물을 갖고 수잔의 집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이후 꾸준히 네팔에 들릴때마다 수잔의 집에 선물과 아이들 용돈을 주고 머물다가 갔다. 수잔의 유학 문제를 두고 부모님이 고민할 때 그 분이 한국을 추천하였고, 수잔 부모님을 한국으로 초대해 일주일 관광을 시켜주자 만족했던 부모님은 한국 유학을 결심하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