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롤 현상
1. 개요
'''스프롤 현상'''(Urban Sprawl)은 도시, 그 중에서도 교외(suburb) 지대가 무계획적이고 비효율적으로 팽창하는 현상을 비판할 때 쓰는 용어이다. 도시공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다.
스프롤 현상은 매우 모호한 용어로써, 엄밀히 따지면 사용을 지양해야할 불량한 표현이다. 스프롤이 대체 무엇이냐 묻는 다면 이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릴 방도가 없다. 스프롤은 난개발과 달리 저층건물이나 단독주택이 비효율적으로 땅을 뒤엎는 '불쾌한'[1] 수평확장에 더 중점을 둔 뉘앙스가 강하다.
도시 불량 팽창의 원인은 수도 없이 많다. 도심의 부동산 가격이 비싸짐에 따라 교외지역으로 주거와 산업이 밀려나거나, 교외에 계속 단독주택 단지가 뒤죽박죽으로 생기는 경우[2] , 용적율이 무한히(?) 증가하는 경우, 도시 지구들의 흥망성쇠에 따라 땅만 차지한 낙후지대가 무한정 불어나는 경우[3] , 녹지라는 개념을 없애버리는 경우 등, 대충 도시가 팽창하는대 그게 불쾌하면 불량 팽창이고, 전부 스프롤 취급된다.
2. 상세
해당 표현의 원조는 미국이다. 1950년대 도심 생활을 답답하게 느낀 백인 중산층들이 '여유롭고 탁 트인 공간'을 찾아 교외에 단독주택을 짓고 대거 이주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교외지역이 팽창하기 시작했다.[4] 미국 중산층 대다수가 단독주택에 살면서 주관적인 삶의 질은 나아졌으나, 도시공학적으로 교외 팽창은 녹지를 지나치게 많이 잡아먹어 전체적인 미관상 보기 흉한데다 자가용 이용률을 폭증시켜 에너지 낭비, 환경오염, 높은 비만율 등 여러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불쾌한 도시 팽창에 대해 스프롤이란 표현이 등장하였고, 스프롤은 적절한 도시계획 없는 난개발을 의미하는 용어 쯤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쨌든 불쾌하게 느껴지는 도시 팽창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도시계획을 말아먹은 난개발의 증거이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스프롤이란 말 자체가 애매모호한 말이다보니 스프롤 타령은 많지만 정작 유의미하고 생산적인 논의는 잘 되지 않는다.
반대로 서울이나 홍콩, 뉴욕 맨해튼의 사례처럼 용적률이 무한히 증가하는 형식의 도시 팽창도 스프롤로 불리는대, 이 경우에는 고층건물이 계속 불어나면서 일반인 기준에서 보기 답답해지고 녹시율(綠視率)[5] 이 매우 낮아지는 것이 문제가 된다. 도시 자체의 심각한 인구 수용량 초과를 불치병으로 달고 있는 세계의 유명한 초거대도시들 (특히 수도)에서 자주 보이는 현상.
대한민국의 경우 땅이 좁고 산지가 많은데다 인구밀도가 매우 높아 (초)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므로 2020년대 기준으로 보면 미국과 유사한 스프롤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1960년대~1990년대 초까지는 단독주택이나 저층 다세대주택이 주류였으므로 수평확장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저층주택은 빠르게 노후화되고 '가난한 동네의 상징'으로 전락했으며 이를 고밀도 초고층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으므로 대한민국의 도시들은 세계적으로 보면 오히려 '''압축도시(compact city)'''의 선구자요 모범적 사례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서울, 부산, 대구, 인천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도시가 크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영등포나 영동 지역을 개발하고, 서울 지하철과 수도권 전철 사업을 하였다. 지방에서도 각 지방 도시철도 및 고속도로 사업 등을 벌이고 있으나 21세기 현재까지 일부 지역에서 스프롤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그린벨트는 도시 팽창을 강제로 막는 유용한 도구이나, 인구 유입이 많이 잦아든 21세기 들어서는 조금씩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신도시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용적률 낮은 노후화된 주택가들을 전면 철거하고 깔끔한 초고층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뉴타운 사업 등으로 과거의 스프롤 현상을 정리하고 있다.
그린벨트 규제가 없는 국가들의 경우 저밀도 팽창과 고밀도 팽창이 동시에 일어나는 난개발이 벌이지기도 하는데, 인도의 뭄바이나 일본의 사이타마, 미국의 뉴저지 주 등이 매우 심각한 편이다.
그러나 그린벨트가 있다고 반드시 불량 팽창이 억제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만 해도 미국, 일본과 같은 노골적인 연담화가 없는 대신 개구리 뜀뛰기형으로 도시권이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인다. 경기도 시흥시, 남양주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대중교통 정책을 세우기가 심히 난감해진다. 도시철도를 깔더라도 중간 미개발지 구간 수요가 거의 없어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지는 데다가 비슷한 구간을 다니는 버스와 소요시간에서 크게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6] 도시철도 건설 시 B/C 값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시내버스 운영 역시 난감해지는데 중간 수요가 거의 없어 장거리 승객들이 많아서 겉으로 보기에는 가축수송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수익성은 형편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요즘 들어 이럴 경우에 아예 완행시외버스나 간선여객열차 수준으로 운임을 비싸게 받아버리거나 경부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등 간선철도 기반의 전철노선들처럼 지하철보다는 예전의 비둘기호에 더 가까운 식(15~6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기차나 화물열차와 선로를 공유하고 시간표 보고 타야 하는 열차)의 운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간선철도 베이스로 굴리게 되면 그나마 B/C값이 잘 나오기는 한다. '''(옛날옛적 비둘기호 타고 옆 도시 왕래하는 것과 형식상 거의 유사하니) 이용하기는 불편해지지만.'''
운임을 올리는 케이스는 신분당선이나 광역급행버스. 물론 그 둘도 상당수가 적자이긴 한데 이건 사실 서민복지를 위시한 정치적인 이유로 운임을 억지로 묶어둔 탓이 더 크다. 애초에 한국은 도로고 철도고 흑자가 나는 인프라가 거의 없다. 이러한 접근방식이 갈 대로 간 게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계획이라고 보면 된다. 아예 무궁화호 스타일의 고급화된 크로스 시트배치에 그정도 수준의 요금과 극단적으로 줄어든 정차역, 높아진 표정속도와 회전율 등. 뒤집어 말하면 그냥 '''지하로 다니는 통근형 무궁화호.''' 츠쿠바 익스프레스도 비슷한 식이고... 이 경우 인프라 유지비용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으나 결국 이용자가 부담을 더 떠안는 구조다.
스프롤 유무에 따라 한 나라의 점포 문화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편의점도 빌딩에 있는 것이 당연시되고 대형마트는 대개 주차장이 위층이나 지하층으로 포함된 형상이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단층 대형매장에 매우 널찍한 야외 주차장을 갖춘 경우가 흔하다. 이 탓에 미국의 마트에서는 엘리베이터, 무빙워크를 보기 매우 힘들다.
3. 국가별 스프롤
3.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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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미국 네바다 주의 주거 지역이다. 사진 출처.
미국의 교외 스프롤 현상은 2차대전 이후 호황기인 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심화되었다. 저렇게 저밀도로 주거계획을 짜면 학교, 상점 등 편의시설을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고등학생때부터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 근본적 이유. 마트 가서 1주일~1달치 생필품을 날잡고 한꺼번에 사 두는 쇼핑 문화나 양문형으로 된 가정용 대형냉장고가 일찍 보편화된 것도 이러한 주거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국토 대비 인구밀도도 낮고 대도시에 살지 않는 이상 단독주택 및 자가용[7] 을 선호하는 현상이 강하고, 기름값이 한국과 비교해 싸기 때문에[8] 이런 형태의 주거 지역이 많은 편이다. 사실 이러한 식의 저밀도 주거계획은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면도 크며, 그 유명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구상이기도 하다.(근거) 여기에 더불어 시 단위에서 개발 계획을 승인하는 지방 자치 구조의 문제 역시 이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저밀도의 단독주택가에 비해 고밀도의 저렴한 주택을 유치하면 세수는 크게 늘지 않지만 교통, 상업 등등의 인프라 부담이 심해지기 때문에 시 단위에서는 주거 부담을 가급적 다른 시에게 떠넘기는 데에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이다.
교통이 발달한 2000년대 이후의 계획도시 같은 경우는 아예 인근 대도시에서 약 100km 떨어진 곳에 만들며, 대부분의 단독주택단지들은 치안을 위해 높은 담장과 삼엄한 경비시설로 무장된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형태로 만든다. 출퇴근에 한 시간 이상을 투자해서라도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에 널찍한 개인주택을 가지고 싶은 부유층 수요의 산물이다. 미국처럼 땅이 넓은 나라일 경우 중산층에게도 수요가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미국 대도시 근교 위성도시 주민들은 종주 대도시로의 행정구역 편입(Municipal Annexation)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경우가 많다. 대도시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시 승격을 추진한 사례도 있다. 물론 요새는 한국도 편입된 곳들의 부정적인 면을 많이 봐서 과거보단 편입에 적극적이진 않다.
3.2. 영국
현대적인 개발제한구역 개념을 처음 제시한 나라임에도 런던 근교를 찍은 위성사진 등을 보면 생각보다 스프롤 현상이 심하게 이뤄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영국이 평야 위주의 지형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다, 영국의 그린벨트는 한국과 달리 상업용 건축물의 신축만 제한되며 실거주 목적의 단독주택을 건축하는 데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3.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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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수도권의 항공촬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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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의 노후 목조주택 밀집지역(갈색 부분)
일본의 경우, 근대화 시기부터 이촌향도로 인한 스프롤 현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일어났다. 2차대전 이후 타마 뉴타운 등 계획적인 신도시를 건설하여 스프롤 현상을 억제하려 했으나 지진이 잦아 공동주택보다는 개인주택을 더 선호하는 일본인의 정서 탓에 실패했다. 도리어 1970~80년대 경제 호황기에는 대형 사철 회사들이 앞다투어 철도선 인근 지역을 무계획적으로 개발하는 바람에 지평선 끝까지 시가지가 들어찼다.[9] 이러한 문제는 도쿄 수도권뿐 아니라 게이한신권과 주쿄권 등 일명 '태평양 벨트'로 불리는 대도시권의 공통된 특징이며[10] 심지어 고베시와 나가사키시처럼 분지 지형이라도 2층집이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는게 전형적인 일본의 스프롤 현상이다.
그러나 일본 대도시의 주택은 단독주택이라 하더라도 미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좁아서[11] 미국보다는 대도시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다. 또한 개발이 옛날부터 이루어지다보니 도로폭이 좁고 한국의 1980~90년대 주택가처럼 재래시장, 편의점 등 소규모 편의시설이 군데 군데 박혀있는 식이라 미국처럼 과자 한봉지 사려고 자가용 몰고 멀리 가야 할 수준까지는 아니며, 차 모는 것부터 쉽지가 않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경차와 자전거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일본에서도 '로드사이드 점포'(ロードサイド店舗)라 해서 진짜 미국식으로 된 편의시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주로 소도시나 시골에 있다.
초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이촌향도 현상이 진행될 대로 진행된 교외 지역에서는 동네 주변의 상업시설이 모두 없어져서 고통받는 주민들이 상당한데, 이들을 '쇼핑 난민'(買い物難民)이라 부른다. 그래서 한국과 정반대로 많은 도시에서 백화점, 대형마트 셔틀버스가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백화점, 대형마트 셔틀버스가 2001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전면 금지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4. 기타
제인 제이콥스(1916~2006)가 1961년에 쓴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란 책은 르 코르뷔지에식의 인위적인 도시계획을 비판하는 책인데, 지나친 고밀도 개발을 지양하고 어느 정도의 스프롤 현상은 용인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현실주의적으로 반박하는 책이 바로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다.
비디오 게임 데드 스페이스 2의 주요 배경이 '스프롤'로 불리는데 무대인 타이탄 정거장의 시가지가 굉장히 스프롤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이버펑크에서의 필수요소로 등장하는데 이때는 마천루로 빽빽히 가득차 있으며 뉴로맨서의 묘사를 빌리자면 '''미국 동부의 대부분'''이 도시화가 이루어졌다고 묘사된다. 대개는 구룡성채로 묘사되거나 네온사인으로 가득찬 최첨단 하이테크 도시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중에서도 SF물에서 절정을 달하는 것이 행성도시다.
5. 관련 문서
[1] 이게 핵심이다. 다만 '불쾌하다'는 개념은 도시공학에 종사하는 사람들 기준이며 일반인의 입장은 국가 및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2] 이쪽이 원조. 스프롤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사례.[3] 이 경우에는 아예 슬럼이 생겨나기도 한다.[4] 이에 관해서는 찰스 몽고메리의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행복한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의 절박한 탐구의 기록들》을 참고.[5] 사람 눈높이에서 녹지나 자연적 요소들이 얼마나 바로 보이는가 알 수 있는 척도.[6] 고양시 대곡역 일대 구간을 생각해 보면 된다. 버스도 쌩쌩 달린다.[7] 그것도 세단보다는 적재량이 좋은 왜건이나 SUV, 픽업트럭이 선호된다.[8] 원래 싸기도 하고, 유류세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수준으로 낮다. 대략 리터당 25센트에 불과한 수준.[9] 일본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신도시를 계획하는 것이 굉장히 드물다. 지금도 일본의 대형 사철 철도선 인근의 건물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 해당 사철의 부동산을 거친 경우가 많다.[10] 게이한신권의 경우 오사카부 양쪽으로 서쪽은 효고현, 동북쪽으로는 교토부와 연담화됐다. 다른 지방도시권의 경우 산지가 많아 다른 현과 연담화되는 경우는 없으나, 중심도시와 주변의 위성도시가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현상은 흔하게 일어난다.[11] 미국의 단독주택은 2층집에 널찍한 마당, 2~3대 정도 차가 들어갈 공간이 딸려 있지만 일본 대도시의 단독주택에는 대체로 2층집에 차 한 대 세울 공간만 있다.[12] 미국 백인 주거지의 스프롤화는 사실 도심에 거주하는 흑인을 피하려 한 인종차별적 이유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