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유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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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가운데에 있는 안경 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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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本 寛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1974년 9월 1일 출생, (50세) 오사카부 미노오시 출신.
별명은 '''야마칸'''. '칸'은 감독의 일본어 발음인 '칸토쿠'의 앞글자이기도 하고, 이름인 유타카(寛, 훈독)를 음독으로 읽은 것이기도 하다. 참고 삼아 덧붙이면 야마칸(山勘)이란 단어에는 '''사기꾼''', '''요행을 바란다'''는 뜻이 있다.
자신의 심미안에 자부심을 갖고, 주변의 상식을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작품을 사주는 소비자 및 애니메이션 업계를 쓰레기라며 매도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센스를 부정하는 사원들을 쓰레기라고 칭하던 오카노 테츠와 유사하다.
2019년 3월 11일, 파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파산한 이유도 굉장히 충격적인데, Wake Up, Girls!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회사의 금전대차보증으로 인해, 채권자측에서 파산 신청을 한 것이다.
오사카교육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 교토 애니메이션에 입사했다. 참고로 교토대학은 일본에서 도쿄대학와 마찬가지로 구 제국대학이며 칸사이 지방 최고의 명문대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 잘 나가던 커리어 초기에는 교토대 출신 엘리트가 애니도 재미있게 만든다는 식으로 학벌이 이미지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술하는 여러 기행과 말실수가 구설수에 오른 후부터는 '''교토대학 출신(웃음)''' 같은 식으로 더 까이는 단초가 된다.
입사 후에 쿄애니 및 그 자회사 애니메이션Do에 걸쳐 다양한 작품에서 연출을 담당했다. 2001년 경 본격적으로 연출을 다루게 되었으며 키가미 요시지에게 사사했다. 당시 독특한 감각과 센스를 십분 발휘하여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내어 업계 내에서 유능한 인물로 손꼽혔으며 이 당시의 일화로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에서 연출을 담당했을 무렵에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이 "저 녀석보다 재미있게 못 만들면 앞으로 먹고 살기 힘들 거야"(출처 필요)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대학에서의 전공도 그러거니와 기본적으로 연출가 출신인 관계로 콘티 러프 정도 외에 직접 디자인이나 작화를 담당한 경험은 없다. 스스로 그림에 자신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의 <풀 메탈 패닉!>, <AIR> 등을 거쳐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시리즈의 연출을 담당, 작품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만든 '''엔딩 댄스'''씬을 만들어 내는 등 작품 전반에 걸쳐 그의 독특한 연출을 활용하며 지명도를 높였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다음 해인 2007년, <러키☆스타>의 감독으로 기용되지만 4화만에 강판됐다. 강판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추측이 있지만, 제작 스케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방영이 펑크가 나기 전에 잘라버린 것 아닌가 하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때 교토 애니메이션이 감독 강판의 이유로 설명한 '''"감독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후에 감독을 맡게 된 칸나기에서 야마칸 자신이 네타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결국, 그 해 말에 애니메이션 Do에서 퇴사하고 자신과 뜻을 함께한 직원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사 'Ordet(오스)'를 설립한다. 이후 Ordet의 사장을 역임하다 2016년에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연예계 활동, 강연 활동을 병행하며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오카다 토시오와의 크리스마스 대담에서는, 심야 TV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칭 트와일라잇 프로젝트로,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여고생의 키 이미지가 회장에서 공개되었다.
그 밖에 라인 공식 블로그에서 애니메이션 감상, 먹었던 음식 등을 간단한 평과 함께 공개하기도 한다. 주소는 이곳이다.
온갖 인성 문제와 사건 사고로 묻혔지만 야마칸의 연출자로서의 연출력은 업계에서도 인정받는다. 움직임과 표정이 자연스럽고 다양하고 인간다우며 2D 작화로 안무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뛰어나다. 그가 만든 영상은 한때 니코니코 동화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클립만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장편을 못 만드는건 아니다. 프렉탈도 망했어도 재미없단 소리는 듣지 않았다. 연출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콘티도 매우 잘 그리며 안티 팬조차도 "그림 잘 그리네?" 하고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야마모토 유타카는 거의 풀프레임까지 동화를 마구 써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움직임이 역동적이거나 빨리 재생한 것처럼 보인다. 오프닝이나 라이브 신 같은데선 높은 컷 수와 프레임을 사용하고 본편에서는 낮은 프레임을 주로 사용하지만 중요한 장면에선 동화를 몰아 써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넣어 완급을 조절한다. 문제는 이게 별 거 아닌 거 처럼 보이는데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드는 연출이란 것이다. 한 장 한 장을 다 그림으로 채워야 그 움직임이 나오는데 그게다 인건비다. 예로 웨이크 업 걸즈의 1화의 경우는 2분도 안 되는 라이브 신에 다른 TV애니 2편 만들 돈이 들어갔다고. 대사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많다. 이것도 애니메이터의 부담이 심한 연출. 이런 연출은 미즈시마 츠토무나 타케모토 야스히로 자주하는 것인데 이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1]
이런 재능에도 쿄애니를 나온 뒤로 제대로된 작품이 안 나오는 건 인성때문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터가 없으면 작품을 만들 수가 없다. 야마칸의 인성이 글러먹었고 소문도 이상하게 났으니 같이 일해주는 애니메이터가 없는 것이다[2] . 야마모토 유타카와 자주 일하던 마츠오 유스케, 코바야시 케이스케, 카도와키 사토시는 논란 이후로는 야마칸 작품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당연히 작화의 질이 떨어지고 야마칸이 연출을 아무리 잘 해도 제대로된 작품이 안 나오게 된다. 야마모토 유타카는 웨이크 업 걸즈부터 애니메이터를 공개 모집하는데 인망이 있는 감독이면 알아서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지만 이건 그와 작업하려는 애니메이터가 없음을 의미한다. 급기야 돈을 대주는 스폰서마저 없어졌다. 안 그래도 돈 많이 들고, 실력있는 애니메이터가 필요한 연출을 하고 있으면서 이 두 개를 잃어버렸다. 요컨데 재능은 뛰어나지만 돈이나 인간이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안일하게 생각하며 작업을 해 업계의 신뢰를 잃어버린 그런 인간이다. 애니메이터 뿐만이 아니라 한때 야마칸의 음악적 동지라고 불렀던 코우사키 사토루하고도 사이가 파탄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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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기의 비처녀 논란 이후 오타쿠 박멸을 목표로 하면서 오타쿠를 불쾌하게 하는 고의적인 연출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웨이크 업 걸즈의 부자연스러운 팬티 노출이나, 관객인 오타쿠들의 모습을 추하게 비추는 연출이 대표적. 트와일라잇에서는 여자아이가 생리를 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 야마모토 유타카 말로는 현실을 직시시켜주는 연출이라고. 문제는 이런 연출은 오타쿠만 불쾌한 게 아니라 일반 시청자도 불쾌한 연출이라서 악평에 불을 지르고 있다.
작품 보는 눈이 굉장히 까칠하다. 지금까지 극찬한 작품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이나 에반게리온 구작(EOE 포함), 이 세상의 한 구석에, 너의 이름은. 정도다. 일본 애니메이션 판 전체를 까는데 그 중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안노 히데아키 이 둘은 인정한다. 간혹 이 둘을 까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담아서 까는 정도. 그러나 토미노 요시유키나 오시이 마모루는 퇴물이라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토미노를 매우 싫어해서 토미노 특유의 현실보다 과장된 레이아웃이 일본 애니메이션 계를 망쳤다고 크게 비난했다. 이러한 성향은 이제까지 했던 발언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연출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기부터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건담, 신극장판 에바 [3][4] , 공각기동대, 어른제국의 역습 등 역대 인기작이나 명작 그리고 그 작품들을 담당한 감독들은 죄다 비판하면서도 유독 지브리의 작품과 미야자키 하야오와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 만은 깐 적이 없으며 자신도 지브리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어조의 발언을 자주 했다.
한편으로 이유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디어믹스를 위시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활용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라이트 노벨의 애니화는 갈 데까지 간 애니메이션계의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덧붙여, 자신의 블로그에서 미조구치 겐지나 구로사와 아키라 등 작고한 일본의 명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만약에 케모노 프렌즈 2기 감독을 맡는다면 오모토 타츠키한테 넘기겠다고 말을 하였다.
이러한 강력한 오타쿠 비판의 계기는 2008년 칸나기 비처녀 논란 사건이다. 그 전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마인드였으나 이 야만적이고 충격적이고 어리석은 비처녀 논란 사건을 보면서 이성없는 오타쿠 층과 오타쿠를 생산하는 작품에 더이상 타협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하지만 정작 그가 감독을 맡은 작품들이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 하는 편이다. 2008년 감독작 <칸나기>에서 특유의 댄스 연출을 어필하고 상업적으 했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된 측면이 있다. 더불어 2010년에는 영화 <나의 상냥하지 않은 선배>의 감독을 맡았지만 썩 좋지 않은 평으로 흥로도 좋은 실적을 남기기는행에 실패[5] , 이후 2011년 아즈마 히로키, 오카다 마리 등과 함께 열의를 담아 만든 <프랙탈>이 흥행에서 참패하고 연출이나 서사 등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감독 은퇴 선언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하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세간의 평가는 애니메이션 연출가로서는 그 재능을 발휘할지 몰라도 감독으로서 또한 리더로서의 실력은 지명도에 비해 상당히 낮다. 프랙탈 제작에서도 역시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러키스타, 칸나기 등 그가 감독한 주요 작품들 대부분은 스태프 롤을 세로쓰기로 표기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순수문학 계열에 가까운 철학과를 전공하고 자부심넘치는 일본 애니메이터가 자신과 상성이 맞지 않는 미소녀 동물원과 하렘물이 일본 애니업계에서 인기를 얻는 흐름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순수문학 계열의 메시지 위주로 일본 애니업계를 흥행시켜야 한다는 집착에 애니업계에 한몫하는 일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스스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순수문학 계열의 메시지를 일본 애니메이션 주류로 끌어들일 만한 잠재력이 있는지조차 의문인 것이, 그가 높게 평가하는 신카이 마코토는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이상적인 일본 작가주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데, 야마칸에게 그만한 포텐셜이 있었더라면 품행 문제가 있었어도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확보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대중들에게도 애니업계에도 업계 판도를 흔들 정도의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별도의 언급이 없을 경우 모두 TV 애니메이션이다.
이 인물의 지명도는 사실 약력이나 작품보다는 언행에서 유래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인치고 상당히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낸다는 긍정적인(?) 평도 있지만, 이것이 대단히 독선적이고 기이한 탓에 좋지 않은 이유로 구설수에 오르는 원인을 제공하며 덩달아 그가 맡은 작품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개중 사건사고 급으로 분류되는 수준의 기행은 별도 항목에서 다루며 여기에서는 논란이나 애교(?) 레벨의 언행을 정리했다.
별도 문서로 분리할 정도로 긴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은 일어나는 족족 인터넷에서 '''이놈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예사다. 여러가지 의미로 멘탈이 상당히 강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은 덤이다.
그가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데 대한 세간의 평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감독을 맡아서 '''실적을 낸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힌다. 쿄애니를 나와서 직접 감독을 맡기 시작한 게 2008년부터인데도 작품 중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2020년 시점까지도 '''2008년'''에 나온 <칸나기>가 유일하다. 아울러 작품 전반적으로 늘 말하는 '이상적인 작품'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여기에다 스스로 일으킨 수많은 트러블에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프랙탈>은 그 정도로 망할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판 이런저런 무덤에 의해 상업적으로 대실패했고, 실적 부재와 언행으로 인한 악평이 악순환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 그 결과 본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더 악의적인 해석이 더해지며 비웃음거리로 전락 → 맡은 작품에 안 좋은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15년 시점까지 이 쳇바퀴는 계속되었으며 이런 점들을 따지고 들면 '''감독의 영역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쫓아낸 교토 애니메이션의 판단은 당시에는 어쨌거나 대국적으로 옳았다는 의견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허나 변명하자면, 본인은 나름대로 90년대 이후의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해서 일종의 회귀주의와 개혁관을 가지고 있는 모양. 대략 80년대 전후로 발생한 오타쿠 문화를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을 좀먹는 편향적인 세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독선적인 사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처신에 대한 충고를 해도, 비판과 반감에 취해 기행적인 망언을 일삼는다. 하지만 이는 여론의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길은 본인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완전히 작가주의적인 예술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감독으로 돌아서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건 또 본인이 대중문화에 대한 미련이 강해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2010년 이후에 내놓는 썰들을 보자면,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아즈마 히로키 워너비 같은 인식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상은 강하지만 현실이 못 미치는,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 맡게 될 작품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여지는 너그럽게 보자면 존재한다.
그러나 애니업계를 자기 자신이 떼돈을 버는 것을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흑심을 품은 적이 있다고 본인이 밝히면서 지금까지 나름 애니업계를 걱정하는 모습조차 스노비즘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생겼다. 이는 야마칸 본인의 언급으로는 교토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퇴사 이후에도 자기를 유일하게 걱정해준 스승인 키가미 요시지와 여전히 교류를 나누고 있어 왔는데, 러키☆스타 애니화로 떼돈을 벌어 비싼 차를 타며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스승님한테 '그딴 걸 하기 위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거냐?'라고 한 소리를 들은 점에서 비롯되었다. 이 부분에서 열악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상 애니 제작 자금을 횡령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이 받는 편인데 애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터와 달리 대체 불가 인력이라 꽤 많은 페이를 받으며 [15] 유명 애니 감독이 좋은 차를 타는 건 금기시되지 않았으므로 횡령했을 가능성은 없다. 있었더라면 이미 대형사고로 번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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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山本 寛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1974년 9월 1일 출생, (50세) 오사카부 미노오시 출신.
별명은 '''야마칸'''. '칸'은 감독의 일본어 발음인 '칸토쿠'의 앞글자이기도 하고, 이름인 유타카(寛, 훈독)를 음독으로 읽은 것이기도 하다. 참고 삼아 덧붙이면 야마칸(山勘)이란 단어에는 '''사기꾼''', '''요행을 바란다'''는 뜻이 있다.
자신의 심미안에 자부심을 갖고, 주변의 상식을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작품을 사주는 소비자 및 애니메이션 업계를 쓰레기라며 매도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센스를 부정하는 사원들을 쓰레기라고 칭하던 오카노 테츠와 유사하다.
2019년 3월 11일, 파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파산한 이유도 굉장히 충격적인데, Wake Up, Girls!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회사의 금전대차보증으로 인해, 채권자측에서 파산 신청을 한 것이다.
2. 상세
2.1. 약력
오사카교육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 교토 애니메이션에 입사했다. 참고로 교토대학은 일본에서 도쿄대학와 마찬가지로 구 제국대학이며 칸사이 지방 최고의 명문대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 잘 나가던 커리어 초기에는 교토대 출신 엘리트가 애니도 재미있게 만든다는 식으로 학벌이 이미지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술하는 여러 기행과 말실수가 구설수에 오른 후부터는 '''교토대학 출신(웃음)''' 같은 식으로 더 까이는 단초가 된다.
입사 후에 쿄애니 및 그 자회사 애니메이션Do에 걸쳐 다양한 작품에서 연출을 담당했다. 2001년 경 본격적으로 연출을 다루게 되었으며 키가미 요시지에게 사사했다. 당시 독특한 감각과 센스를 십분 발휘하여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내어 업계 내에서 유능한 인물로 손꼽혔으며 이 당시의 일화로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에서 연출을 담당했을 무렵에 미즈시마 츠토무 감독이 "저 녀석보다 재미있게 못 만들면 앞으로 먹고 살기 힘들 거야"(출처 필요)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대학에서의 전공도 그러거니와 기본적으로 연출가 출신인 관계로 콘티 러프 정도 외에 직접 디자인이나 작화를 담당한 경험은 없다. 스스로 그림에 자신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의 <풀 메탈 패닉!>, <AIR> 등을 거쳐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시리즈의 연출을 담당, 작품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만든 '''엔딩 댄스'''씬을 만들어 내는 등 작품 전반에 걸쳐 그의 독특한 연출을 활용하며 지명도를 높였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다음 해인 2007년, <러키☆스타>의 감독으로 기용되지만 4화만에 강판됐다. 강판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추측이 있지만, 제작 스케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방영이 펑크가 나기 전에 잘라버린 것 아닌가 하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때 교토 애니메이션이 감독 강판의 이유로 설명한 '''"감독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이후에 감독을 맡게 된 칸나기에서 야마칸 자신이 네타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결국, 그 해 말에 애니메이션 Do에서 퇴사하고 자신과 뜻을 함께한 직원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사 'Ordet(오스)'를 설립한다. 이후 Ordet의 사장을 역임하다 2016년에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연예계 활동, 강연 활동을 병행하며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오카다 토시오와의 크리스마스 대담에서는, 심야 TV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칭 트와일라잇 프로젝트로,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여고생의 키 이미지가 회장에서 공개되었다.
그 밖에 라인 공식 블로그에서 애니메이션 감상, 먹었던 음식 등을 간단한 평과 함께 공개하기도 한다. 주소는 이곳이다.
2.2. 연출 특징
온갖 인성 문제와 사건 사고로 묻혔지만 야마칸의 연출자로서의 연출력은 업계에서도 인정받는다. 움직임과 표정이 자연스럽고 다양하고 인간다우며 2D 작화로 안무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뛰어나다. 그가 만든 영상은 한때 니코니코 동화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클립만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장편을 못 만드는건 아니다. 프렉탈도 망했어도 재미없단 소리는 듣지 않았다. 연출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콘티도 매우 잘 그리며 안티 팬조차도 "그림 잘 그리네?" 하고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야마모토 유타카는 거의 풀프레임까지 동화를 마구 써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움직임이 역동적이거나 빨리 재생한 것처럼 보인다. 오프닝이나 라이브 신 같은데선 높은 컷 수와 프레임을 사용하고 본편에서는 낮은 프레임을 주로 사용하지만 중요한 장면에선 동화를 몰아 써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넣어 완급을 조절한다. 문제는 이게 별 거 아닌 거 처럼 보이는데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드는 연출이란 것이다. 한 장 한 장을 다 그림으로 채워야 그 움직임이 나오는데 그게다 인건비다. 예로 웨이크 업 걸즈의 1화의 경우는 2분도 안 되는 라이브 신에 다른 TV애니 2편 만들 돈이 들어갔다고. 대사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많다. 이것도 애니메이터의 부담이 심한 연출. 이런 연출은 미즈시마 츠토무나 타케모토 야스히로 자주하는 것인데 이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1]
이런 재능에도 쿄애니를 나온 뒤로 제대로된 작품이 안 나오는 건 인성때문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터가 없으면 작품을 만들 수가 없다. 야마칸의 인성이 글러먹었고 소문도 이상하게 났으니 같이 일해주는 애니메이터가 없는 것이다[2] . 야마모토 유타카와 자주 일하던 마츠오 유스케, 코바야시 케이스케, 카도와키 사토시는 논란 이후로는 야마칸 작품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당연히 작화의 질이 떨어지고 야마칸이 연출을 아무리 잘 해도 제대로된 작품이 안 나오게 된다. 야마모토 유타카는 웨이크 업 걸즈부터 애니메이터를 공개 모집하는데 인망이 있는 감독이면 알아서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지만 이건 그와 작업하려는 애니메이터가 없음을 의미한다. 급기야 돈을 대주는 스폰서마저 없어졌다. 안 그래도 돈 많이 들고, 실력있는 애니메이터가 필요한 연출을 하고 있으면서 이 두 개를 잃어버렸다. 요컨데 재능은 뛰어나지만 돈이나 인간이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안일하게 생각하며 작업을 해 업계의 신뢰를 잃어버린 그런 인간이다. 애니메이터 뿐만이 아니라 한때 야마칸의 음악적 동지라고 불렀던 코우사키 사토루하고도 사이가 파탄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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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기의 비처녀 논란 이후 오타쿠 박멸을 목표로 하면서 오타쿠를 불쾌하게 하는 고의적인 연출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웨이크 업 걸즈의 부자연스러운 팬티 노출이나, 관객인 오타쿠들의 모습을 추하게 비추는 연출이 대표적. 트와일라잇에서는 여자아이가 생리를 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 야마모토 유타카 말로는 현실을 직시시켜주는 연출이라고. 문제는 이런 연출은 오타쿠만 불쾌한 게 아니라 일반 시청자도 불쾌한 연출이라서 악평에 불을 지르고 있다.
2.3. 성향
작품 보는 눈이 굉장히 까칠하다. 지금까지 극찬한 작품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이나 에반게리온 구작(EOE 포함), 이 세상의 한 구석에, 너의 이름은. 정도다. 일본 애니메이션 판 전체를 까는데 그 중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안노 히데아키 이 둘은 인정한다. 간혹 이 둘을 까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담아서 까는 정도. 그러나 토미노 요시유키나 오시이 마모루는 퇴물이라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토미노를 매우 싫어해서 토미노 특유의 현실보다 과장된 레이아웃이 일본 애니메이션 계를 망쳤다고 크게 비난했다. 이러한 성향은 이제까지 했던 발언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연출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기부터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건담, 신극장판 에바 [3][4] , 공각기동대, 어른제국의 역습 등 역대 인기작이나 명작 그리고 그 작품들을 담당한 감독들은 죄다 비판하면서도 유독 지브리의 작품과 미야자키 하야오와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 만은 깐 적이 없으며 자신도 지브리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어조의 발언을 자주 했다.
한편으로 이유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디어믹스를 위시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활용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라이트 노벨의 애니화는 갈 데까지 간 애니메이션계의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덧붙여, 자신의 블로그에서 미조구치 겐지나 구로사와 아키라 등 작고한 일본의 명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만약에 케모노 프렌즈 2기 감독을 맡는다면 오모토 타츠키한테 넘기겠다고 말을 하였다.
이러한 강력한 오타쿠 비판의 계기는 2008년 칸나기 비처녀 논란 사건이다. 그 전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마인드였으나 이 야만적이고 충격적이고 어리석은 비처녀 논란 사건을 보면서 이성없는 오타쿠 층과 오타쿠를 생산하는 작품에 더이상 타협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하지만 정작 그가 감독을 맡은 작품들이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 하는 편이다. 2008년 감독작 <칸나기>에서 특유의 댄스 연출을 어필하고 상업적으 했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된 측면이 있다. 더불어 2010년에는 영화 <나의 상냥하지 않은 선배>의 감독을 맡았지만 썩 좋지 않은 평으로 흥로도 좋은 실적을 남기기는행에 실패[5] , 이후 2011년 아즈마 히로키, 오카다 마리 등과 함께 열의를 담아 만든 <프랙탈>이 흥행에서 참패하고 연출이나 서사 등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감독 은퇴 선언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하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세간의 평가는 애니메이션 연출가로서는 그 재능을 발휘할지 몰라도 감독으로서 또한 리더로서의 실력은 지명도에 비해 상당히 낮다. 프랙탈 제작에서도 역시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러키스타, 칸나기 등 그가 감독한 주요 작품들 대부분은 스태프 롤을 세로쓰기로 표기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순수문학 계열에 가까운 철학과를 전공하고 자부심넘치는 일본 애니메이터가 자신과 상성이 맞지 않는 미소녀 동물원과 하렘물이 일본 애니업계에서 인기를 얻는 흐름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순수문학 계열의 메시지 위주로 일본 애니업계를 흥행시켜야 한다는 집착에 애니업계에 한몫하는 일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스스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순수문학 계열의 메시지를 일본 애니메이션 주류로 끌어들일 만한 잠재력이 있는지조차 의문인 것이, 그가 높게 평가하는 신카이 마코토는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이상적인 일본 작가주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데, 야마칸에게 그만한 포텐셜이 있었더라면 품행 문제가 있었어도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확보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로 대중들에게도 애니업계에도 업계 판도를 흔들 정도의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2.4. 감독 작품
별도의 언급이 없을 경우 모두 TV 애니메이션이다.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나의 상냥하지 않은 선배(영화)
- 2011년
- 2012년
- blossom[7]
- 2013년
- 미야카와가의 공복#s-2.1(WEB 애니메이션)
- 전용. 1&2기
- 2014년
- 2015년
- 2019년
- 트와일라잇(薄暮)(극장판)
- 2020년
2.5. 여담
- 러키☆스타 이전 작품 관련
자신이 담당하는 애니메이션에 자신의 모습을 꼭 닮은 캐릭을 꼭 넣어 둔다.[11] 이전부터 암암리에 알려져 있던 사실이지만 칸나기에서 거하게 드립을 치면서 다시 주목받은 경우다. 포인트는 안경 캐릭에 특유의 미역머리 유명한, 쿄애니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지라 이후 쿄애니와 갈라진 걸 생각하면서 다시 보면 미묘한 느낌이다.
- 러키☆스타 관련
2012년 12월 31일, 러키☆스타의 2013년 최신 전개에 대한 힌트가 작품의 성지인 '와시노미야 신사'에 봉납된 에마에 있으니 체크해 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에마는 원작자 요시미즈 카가미 선생과 야마모토 유타카 감독의 연명으로 '미야카와 가의 공복 애니메이션화 기획중.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었지만 이후 공개된 오프닝 송 "Kachigumi"가 러키☆스타 본편 주역 코나타와 카가미의 성우인 히라노 아야와 카토 에미리가 불렀음에도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루리웹에서는 표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었지만 이후 공개된 오프닝 송 "Kachigumi"가 러키☆스타 본편 주역 코나타와 카가미의 성우인 히라노 아야와 카토 에미리가 불렀음에도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루리웹에서는 표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Wake Up, Girls! 관련
2012년 9월 10일 열린 'avex×81produce Wake Up, Girls! 오디션' 행사에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Wake Up, Girls!의 감독으로 발표되었다. 동 작품의 각본과 구성은 마치다 토우코, 음악은 코우사키 사토루, 스페셜 서포터는 카토 에미리와 후쿠하라 카오리.관련 기사 참고로 이 애니는 2014년 봄 방영 예정이었는데 2013년 말에 2014년 1분기 방영 애니로 확정 발표되어 아슬아슬하게 같은 아이돌 애니메이션 장르이면서 이미 입지를 다진 TVA 러브라이브! 2기와 겹치는 걸 피했다. 이전에는 2014년 4월 방영 예정으로 알려졌는데 러브라이브! 2기가 이때 방영하기 때문이었다.
방영 전부터 그간 쌓인 감독 본인의 악평을 극복해낼 정도로 잘 만들어낼지가 관건으로 꼽혔으며 초반 평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래도 코미케에서 연 악수회는 성황이었다는 모양이지만 행사 팜플렛에 실린 그의 발언이 알려지며 지탄 받는 등이 있었다. 이런 모양새는 방영 개시 후에도 이어졌지만 그나마 점차 본인이 자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그럭저럭 작품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다만 본인이 손을 뗀 신장에서는 트위터를 통해서 비판의 수준을 넘어선 비난에 가까운 부정적인 트윗을 리트윗 하고 본인을 옹호하는 트윗을 리트윗하는 등, 본인의 본성이 어디 안 갔다는 걸 다시 보여줬다.
방영 전부터 그간 쌓인 감독 본인의 악평을 극복해낼 정도로 잘 만들어낼지가 관건으로 꼽혔으며 초반 평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래도 코미케에서 연 악수회는 성황이었다는 모양이지만 행사 팜플렛에 실린 그의 발언이 알려지며 지탄 받는 등이 있었다. 이런 모양새는 방영 개시 후에도 이어졌지만 그나마 점차 본인이 자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그럭저럭 작품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다만 본인이 손을 뗀 신장에서는 트위터를 통해서 비판의 수준을 넘어선 비난에 가까운 부정적인 트윗을 리트윗 하고 본인을 옹호하는 트윗을 리트윗하는 등, 본인의 본성이 어디 안 갔다는 걸 다시 보여줬다.
3. 언행
이 인물의 지명도는 사실 약력이나 작품보다는 언행에서 유래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인치고 상당히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낸다는 긍정적인(?) 평도 있지만, 이것이 대단히 독선적이고 기이한 탓에 좋지 않은 이유로 구설수에 오르는 원인을 제공하며 덩달아 그가 맡은 작품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개중 사건사고 급으로 분류되는 수준의 기행은 별도 항목에서 다루며 여기에서는 논란이나 애교(?) 레벨의 언행을 정리했다.
- 2010년 7월 26일 영화 <나의 상냥하지 않은 선배>의 시사회 인터뷰
시사회 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애니메이션 업계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조만간 비즈니스로서의 애니메이션은 사라지고 귀족이나 부자의 후원으로 생존하는 예술가의 시대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대단히 암담한 예측을 내놓았다. 특히 지나치게 작화 퀄리티에 집착하는 업계 풍토를 비판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화보다 '재미'를 추구하고 '브랜드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출처 번역본
- 2010년 8월 9일 발표한 성명문
그 내용은 "애니메이션계는 이제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을 지금까지 키워준 업계에 보답하고자 딱 하나만 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이 작품이 실패하면 은퇴도 불사하겠다." 여기에서 언급한 작품은 2011년 1월 방영한 <프랙탈>이다. 성명의 내용으로 미루어 본인은 암울한 애니메이션계에 빛을 가져다줄 사명의식으로 이 작품의 제작에 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칸나기 이후 이어진 일련의 소동으로 인해 세간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냥 이번 기회에 미련없이 성불하라며 유작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마저 있었을 정도다. 결국 프랙탈은 미묘한 평가와 참담한 실적을 남기며 종영.
- 2011년 1월 노이타미나 발표회
이 발표회 자리에서는 대담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참석자로 고지되어 있던 그가 도망가 버렸다. 자세한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좌담회 자리에 나가이 타츠유키와 아오키 에이 감독이 한 자리에 있었기에 도망갔다는 후문이 있다.
- 2011년 11월 트위터 발언
이 시기 자신의 트위터에 유태인 섬멸 등을 운운하며[12] 모 애니메이션을 감상한 뒤의 소감을 올린다. 일련의 트윗 내용을 유추해 보면 아무래도 이 작품을 언급하려다가 만 것 같다는 추측성 견해가 다수였으나, 진실은 야마칸 본인만이 무덤까지 끌어 안고 갈 듯하다.
- 2011년 11월 26일 교토대 애니메이션 동아리의 초청 강연회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는 포스트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에바 이후 15년간 사회현상이라고 불릴 만한 애니메이션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루히나 프랙탈이 그 수준이 못된게 유감.
- 인터넷에서의 악평과 조작에 영향을 받지 않고 최악의 경우 인터넷에서 봐도 좋으니 편견 없이 자신의 작품을 보아줬으면 한다. 그래도 재미없었다면 어쩔 수 없다.
- 자신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서, 하지만 업계에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
- 2020년 3월 21일 공식 블로그 글
3.1. 사건사고
별도 문서로 분리할 정도로 긴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은 일어나는 족족 인터넷에서 '''이놈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예사다. 여러가지 의미로 멘탈이 상당히 강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은 덤이다.
3.2. 요약
그가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데 대한 세간의 평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감독을 맡아서 '''실적을 낸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힌다. 쿄애니를 나와서 직접 감독을 맡기 시작한 게 2008년부터인데도 작품 중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2020년 시점까지도 '''2008년'''에 나온 <칸나기>가 유일하다. 아울러 작품 전반적으로 늘 말하는 '이상적인 작품'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여기에다 스스로 일으킨 수많은 트러블에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프랙탈>은 그 정도로 망할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가 판 이런저런 무덤에 의해 상업적으로 대실패했고, 실적 부재와 언행으로 인한 악평이 악순환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 그 결과 본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더 악의적인 해석이 더해지며 비웃음거리로 전락 → 맡은 작품에 안 좋은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15년 시점까지 이 쳇바퀴는 계속되었으며 이런 점들을 따지고 들면 '''감독의 영역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쫓아낸 교토 애니메이션의 판단은 당시에는 어쨌거나 대국적으로 옳았다는 의견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허나 변명하자면, 본인은 나름대로 90년대 이후의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해서 일종의 회귀주의와 개혁관을 가지고 있는 모양. 대략 80년대 전후로 발생한 오타쿠 문화를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을 좀먹는 편향적인 세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독선적인 사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처신에 대한 충고를 해도, 비판과 반감에 취해 기행적인 망언을 일삼는다. 하지만 이는 여론의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길은 본인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완전히 작가주의적인 예술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감독으로 돌아서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건 또 본인이 대중문화에 대한 미련이 강해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2010년 이후에 내놓는 썰들을 보자면,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아즈마 히로키 워너비 같은 인식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상은 강하지만 현실이 못 미치는,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 맡게 될 작품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여지는 너그럽게 보자면 존재한다.
그러나 애니업계를 자기 자신이 떼돈을 버는 것을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흑심을 품은 적이 있다고 본인이 밝히면서 지금까지 나름 애니업계를 걱정하는 모습조차 스노비즘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생겼다. 이는 야마칸 본인의 언급으로는 교토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퇴사 이후에도 자기를 유일하게 걱정해준 스승인 키가미 요시지와 여전히 교류를 나누고 있어 왔는데, 러키☆스타 애니화로 떼돈을 벌어 비싼 차를 타며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스승님한테 '그딴 걸 하기 위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거냐?'라고 한 소리를 들은 점에서 비롯되었다. 이 부분에서 열악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상 애니 제작 자금을 횡령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이 받는 편인데 애니메이션 감독은 애니메이터와 달리 대체 불가 인력이라 꽤 많은 페이를 받으며 [15] 유명 애니 감독이 좋은 차를 타는 건 금기시되지 않았으므로 횡령했을 가능성은 없다. 있었더라면 이미 대형사고로 번졌을 것이다.
4. 기타
- 미소녀 동물원이란 말을 창시했다.
- MONACA의 코우사키 사토루와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한 사이였으며 이러한 인연으로 쿄애니 시절부터 야마모토가 맡은 작품의 사운드 트랙 작업에 자주 동참하였고, 이런 인연으로 Ordet 설립후에도 칸나기, 프랙탈, Wake Up, Girls!에 참여하여 작업하였지만 Wake Up, Girls! 신장에서 강판된 것을 계기로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서 야마칸은 일방적으로 디스하고 코우사키 사토루는 무시하는 관계로 변했다.
- 2014년 3월 12일, 트위터 은퇴를 선언하였지만 언제나처럼 지켜지지 않았고, 2019년까지 타인의 디스 → 블락을 반복하고 있다.
- 2019년 4월경부터 온갖 독설을 일삼던 라인 블로그는 삭제되었고, 트위터는 일시정지 되었다가 2019년 3월에 계정을 새로 파서 '(4대)'라는 타이틀을 뒤에 붙여놓고 활동 중이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남을 헐뜯거나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
- 2020년 9월 14일에는 뜬금없이 그 자신이 맡아 망쳐놓고 부활시키자고 웨이크 업 걸즈 부활 여론 조사를 했더니 일본 트위터 팬들이 과반수로 반대한다고 투표하자, 리갈하이의 주인공 코미카도 켄스케의 '민의(民意)'를 비판하는 대사를 간접적으로 인용하면서 '요즘 일본 오타쿠들은 민의가 없어' 드립을 치고 있다. # 당연히 쿄애니 화재희생자에게 고인드립한 자신이 정당한 민주주의를 행사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이 비뚤어진 민주주의를 행사한다는 뻔뻔한 말투에 사람들의 비판은 거세지는 중.
[1] 야마모토 유타카는 2020년 블로그에서 타케모토 야스히로를 자신의 스승이라 부르고 있다.[2] 야마칸 본인의 언급으로는 교토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퇴사 이후에도 자기를 유일하게 걱정해준 스승인 키가미 요시지와 여전히 교류를 나누고 있어 왔는데, 러키☆스타 애니화로 떼돈을 벌어 비싼 차를 타며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스승님한테 '그딴 걸 하기 위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거냐?'라고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를 사랑하는 스승조차 그의 평소 행실을 안 좋게 보는 것이다.[3] 신 극장판을 까는 이유가 에바를 까는 게 아니고 신극장판의 변경점이 구 TV판보다 못하다고 까는 것이다. 이 인간은 구판 원리주의자다.[4] 어처구니가 없는 건 이 인간은 인터넷에서 시비걸고 다니다가 익명으로 활동하는 스즈키 슌지를 못 알아보고 싸움을 걸었다. 스즈키 슌지는 에반게리온을 그린 사람이다.[5] 그래도 TAMA 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수상하고 영화예술에 거론되는 등,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을 얻었다.[6] 시리즈 연출이지만 감독 작품에 서술하는 이유는, 이 작품은 총감독과 감독을 두는 시스템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애니메이션보다 시리즈 연출의 비중이 높고, 따라서 감독에 버금가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7] 토호쿠 대지진 피해자를 위한 자선 목적에서 기획된 숏 애니메이션. 오피셜 페이지.[8] 크라우드 펀딩 글을 올렸는데 하필 그가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희생자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부패한 애니업계를 마법소녀들이라는 자기 자신작으로 정화하겠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바람에 고인드립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다. 번역본 물론 그는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정신승리하며 자신을 비판하는 자를 썩어빠진 아오바 신지 같은 악질 방화범 같은 오타쿠와 쿄애니 직원들이라고 비하하고 있다.[9] 게다가 그답지 않게 독창성이 없는 마마마에 영향받은 흔적이 많이 보이는 마법소녀물인지라 언행을 빼놓고 봐도 영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10]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해 그에게 충성도가 높은 100명 정도의 팬들이 한 달만에 약 300만엔을 모금하여 종료했지만, 그가 싫어하는 오타쿠들이 많이 모이는 크라우드펀딩 작품이 1000만엔 달성이 기본이라는 걸 생각하면 오타쿠들을 등진 댓가로 자금조차 모이지 않는 듯하다(대표적인 예시로 도호쿠 이타코, 츠이나 쨩, 코하루 릿카의 VOICEROID화에 목표 금액이 겨우 몇십 분에서 한 달만에 달성되어 각각 2400만엔, 1500만엔, 2500만엔이 모금되었다.). 오타쿠와 상관없는 문제라 쳐도 이미 그가 스폰서 투자 자금을 비싼 차를 사는 데에 횡령하는 수준으로 과소비하고 자금 관리를 제대로 못해 한 번 파산 직전까지 간 걸 생각하면 과연 모금한 돈이 온전히 애니제작에만 쓰일지 의문이 갈 지경이다.[11] 중요하지 않은 내용으로 대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야마칸이 직접 말하지는 않고 다른 성우를 쓴다.[12] 앞뒤 내용을 따져볼때 실제로 유태인을 비하하려는 뜻은 아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이 발언의 해명 트윗이 더 가관이라.[13] 당연하게도 니시고리 아츠시는 야마모토 유타카와 달리 애니업계에서 사회에서 도의적 논란을 일으킨 적이 없다. 아마 자기 밑에 있던 유능한 애니메이터 마츠오 유스케와 아카이 토시후미를 니시고리 아츠시가 데려갔기 때문에 원한이 있는 모양.[14] 暴れん坊. 보통 망나니라는 뜻이며 한국어로 치면 지랄맞은 새끼라는 욕설이다.[15] 그래서 의외로 외제차 타는 감독도 꽤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경우는 자동차 매니아라 차를 자주 바꾸는 것으로도 유명했다.[16] 2012년에 새로이 만들어진 레이블로 대표작으로는 유미즈루 이즈루의 인피니트 스트라토스가 있다. [17]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동명 영화에서 스튜디오 명을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