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영화 감독)

 

''' 이안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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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image]
'''감독상'''
''' 제77회
(2005년) '''

''' 제78회
(2006년) '''

''' 제79회
(2007년) '''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

마틴 스콜세지
(디파티드)

''' 제84회
(2012년) '''

''' 제85회
(2013년) '''

''' 제86회
(2014년) '''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아티스트)

'''이안'''
('''라이프 오브 파이''')

알폰소 쿠아론
(그래비티)

---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image]
'''감독상'''
''' 제57회
(2000년) '''

''' 제58회
(2001년) '''

''' 제59회
(2002년) '''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 이안
(와호장룡) '''

로버트 올트먼
(고스포드 파크)

''' 제62회
(2005년) '''

''' 제63회
(2006년) '''

''' 제64회
(2007년) '''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

마틴 스콜세지
(디파티드)

---
''' 역대 베니스 영화제 '''
[image]
'''황금사자상'''
''' 제62회
(2005년) '''

''' 제63회
(2006년) '''

''' 제64회
(2007년) '''
마이크 리
(베라 드레이크)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

자장커
(스틸 라이프)

''' 제62회
(2006년) '''

''' 제63회
(2007년) '''

''' 제64회
(2008년) '''
자장커
(스틸 라이프)

'''이안
(색, 계)'''

대런 애러노프스키
(더 레슬러)

--
''' 역대 베를린 영화제'''
[image]
'''황금곰상 '''
''' 제42회
(1992년) '''

''' 제43회
(1993년) '''

''' 제44회
(1994년) '''
로런스 캐즈던
(그랜드 캐니언)

'''이안
(결혼 피로연)'''
셰페이
(향혼녀)

짐 셰리던
(아버지의 이름으로)

''' 제45회
(1995년) '''

''' 제46회
(1996년) '''

''' 제47회
(1997년) '''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미끼)

'''이안
(이성과 감성)'''

밀로스 포먼
(래리 플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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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홍콩 금상장 시상식'''
[image]
'''감독상'''
'''제19회
(2000년)'''

'''제20회
(2001년)'''

'''제21회
(2002년)'''
두기봉
(미션)

'''이안
(와호장룡)'''

주성치
(소림축구)

---
''' 역대 대만 금마장 시상식'''
[image]
'''감독상'''
'''제29회
(1992년)'''

'''제30회
(1993년)'''

'''제31회
(1994년)'''
왕동
(무언적산구)

'''이안
(결혼 피로연)'''

차이밍량
(애정만세)

'''제43회
(2006년)'''

'''제44회
(2007년)'''

'''제45회
(2008년)'''
천커신
(퍼햅스 러브)

'''이안
(색, 계)'''

천커신
(명장)


''' 이안
李安 | Ang Lee '''

'''이름'''
'''이안(李安 , Lǐ Ān, Ang Lee)'''
'''국적'''
[image] 중화민국[1]
'''출생'''
1954년 10월 23일 (현재 70세)
핑둥 현 차오저우 진
'''학력'''
뉴욕 대학교 (MFA)
'''데뷔'''
1991년 영화 <쿵후 선생(推手)>
'''가족'''
부인 제인 린(林惠嘉), 장남 한 리(李涵), 차남 메이슨 리(李淳)
1. 개요
2. 활동
3. 작품 특징
4. 필모그래피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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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 핑둥 현 태생의 영화감독.[2] 중국어 이름은 李安 (Li An)이고 영어 이름은 Ang Lee이다.[3] 한국에서는 그의 중국 이름의 한자 표기를 우리나라 식대로 읽어 '이안' 감독이라고 부른다.
'''베를린 영화제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최고작품상을 각각 2번씩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감독상을 2번 수상'''한,[4] 세계 영화계에서 정상급의 아시아계 감독 중 한명이다.[5] 미국 할리우드의 큰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시아계 감독 중 하나이기도 하다.[6]

2. 활동


초기 작품인 《쿵후 선생》,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까지는 대만에서 찍다가 할리우드로 건너가 1995년에 제인 오스틴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감독했는데, 이 작품이 상당한 호평을 받아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까지 수상'''하며 단박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2000년 《와호장룡》이 북미에서만 '''1억 달러'''나 버는, 할리우드의 외국어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하면서 할리우드 영화계에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고, 2006년에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까지 수상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인 영화감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7] 이는 아시아 출신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첫 사례였다.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번째 감독상을 수상, 기립박수를 받았다. 문제는 해당 작품의 CG 외주업체가 가격 후려치기로 인해 도산했고 시상식장 밖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이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진 못할 망정 CG 비용에 대한 절감을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CG 업계 종사자들에게 한동안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고 한다.[8]
2016년에는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라는 영화를 120fps 프레임으로 촬영해서 개봉시켰는데,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120fps란 이유로 혹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고 혁신적이라 당분간은 2D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한다. 링크 차기작으로 무하마드 알리 관련 영화인 '스릴라 인 마닐라'도 라이프 오브 파이,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처럼 3D로 제작한다고 한다.
그 이전에 먼저 제리 브룩하이머X파라마운트 픽처스가 협업한 SF 스릴러 제미니 맨 연출을 맡는다.

3. 작품 특징


전반적으로 1990년대 등장한 감독들 중에서도 고전적인 성향이 강하며, 요새 보기 드문 만능형 감독에 가깝다. 서부극에서 에로틱 스릴러, 홈 드라마, 사극, 무협에 슈퍼 히어로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포괄하며, 대중적으로도 먹힐만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 그리고 영화 속 캐릭터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잘 표현하는 걸로 유명하며 영상미 역시 훌륭하다. 단점이라면 작품의 수준에 다소 기복이 있다는 것. 이런 면에서는 리들리 스콧과 닮았다.
제임스 카메론처럼 CG를 활용한 영상미에도 상당히 능하며,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라이프 오브 파이 이후에 기술에만 신경 쓴 나머지 각본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이 지적되고 있다. 이런 비판은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제미니 맨에서 많이 생겼다.

4. 필모그래피



'''연도'''
'''제목'''
'''역할'''
'''비고'''
'''제작'''
'''연출'''
'''각본'''
'''편집'''
'''기획'''
1992
쿵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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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결혼 피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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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음식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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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센스 앤 센서빌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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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아이스 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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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라이드 위드 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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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와호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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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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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브로크백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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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색,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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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테이킹 우드스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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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라이프 오브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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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빌리 린스 롱 하프타임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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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아이 앰 히스 레저





조연 -본인 역
2019
제미니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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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색, 계에서 양조위탕웨이섹스신을 11일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6년 간 살림을 도맡아 하며 시나리오만 집필했으며, 당시 교사였던 아내가 생계를 꾸려 나갔다고 한다.(아내 제인 린은 저명한 미생물학자) 이때 아내가 '당신은 영화감독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해' 라고 이야기했고, 그 후 대만계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어 선견지명 아내의 성원에 확실히 보답했다.
정치적인 성향이 중국높으신 분들에 눈 밖에 나서 그런지 중국에서의 감독작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웃긴점은 영화가 극찬을 받거나 수상을 할 때면 대만인 이안을 중국인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점.
아들인 메이슨 리는 1990년생으로, 영화배우로 활동 중이다. 주연을 맡은 영화는 없고, 루시와 행오버 2에서 조연을 받은 바 있다.
《영화천재 이안》(원제: ''Being Ian'')과는 상관없다. 캐나다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는 EBS에서 방송하였다.
디즈니로부터 뮬란 실사판의 감독제안을 받았으나 본인이 스케줄때문에 고사했다고 한다.
포커스 피처스 CEO었던 제임스 샤머스가 자주 그의 영화들에 각본 작업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만인으로써 세계를 알린 공로로 2013년에 정부가 景星勳章을 수훈하였다. 景星勳章 훈장은 수상자 목록보면 대부분 정치인들이 받는 훈장이라는 감안하면 민간인으로 최고의 영예를 받은 셈이다.

[1]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다.[2]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영화팬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 자식들도 모두 미국 태생의 대만계 미국인이다.[3] 영미권에서의 이름 표기 및 호칭이 좀 깨는데, 표기가 '''Ang#s-2''' Lee. 발음으론 '앵 리'가 된다. 앵그리(Angry)와 발음이나 표기가 유사한 탓에 솔직한 예고편헐크(영화) 편에서 '''"Don't make him Ang Lee"''' 드립을 친다.[4] 이런 화려한 수상기록을 가진 감독은 서구권에서도 찾기 힘들다. 한마디로 세계적으로 그 실력과 명성을 인정받는 영화감독.[5] 일부 평론가들은, 중국 사극부터 미국 서부극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장르를 어색함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독은 이안 감독 말고는 찾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6] 그 외 아시아계 감독으로는 '''제임스 완''' , 저스틴 린, M. 나이트 샤말란 등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다만 이들 셋은 태어나자마자 이민을 가서 서양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이안 감독과는 배경이 다르긴 하다. 헐리웃에서 제대로 감독을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함은 부정하기 어려우니.[7] 다만 해당 작품으로 작품상까지 받을 것이라고 보는 시선도 많았으나, 크래쉬가 작품상을 수상하며 불발. 크래쉬도 좋은 영화지만 이 영화가 브로크백 마운틴을 꺾고 작품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의아하게 보는 시선도 많다. 아마도 동성애를 다룬 영화다보니 보수적인 당시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주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8] 사실 이 건에 대해서는 이안 감독은 좀 억울한 부분이 없지는 않은데, CG 외주업체가 도산한 이유는 라이프 오프 파이 때문이 아니라 그 이후에 진행했던 <R.I.P.D.> 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그 영화를 진행하면서 모종의 이유로 현금 흐름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결국 도산하게 된 것. 사실 그 업체는 예전부터 업계에서 직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대우를 후하게 주기로 유명했고 계약직이 아닌 정식 스태프는 거의 공무원 수준의 철밥 그릇으로 모두의 부러움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경쟁이 심화된 업계가 다들 살빼기에 노력하는 와중에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태되어버린 대표적인 케이스. 물론 그 업체가 진행한 라이프 오프 파이가 아카데미를 휩쓸던 절묘한 시기에 도산을 하고 그 명백히 대비되는 미묘한 분위기를 무시한 채 경솔한 발언을 한 이안 감독에게도 책임은 있지만, '업체를 쥐어짜서 만든 영화로 자신만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 라는 항간의 소문은 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