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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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시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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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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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시절
2.1. FA 1기
3. LG 트윈스 시절
3.1. 2009 시즌
3.2. 2010 시즌
3.3. 2011 시즌
3.4. 2012 시즌
3.5. 2013 시즌
3.6. 2014 시즌
4. kt wiz 시절
4.1. 2016 시즌
4.2. 2017 시즌
4.3. 2018 시즌
5. 은퇴


1.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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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연고지역 1차지명 대상자이자 최후의 선수'''
1997년 외환 위기의 후폭풍으로 재정 상태가 극도로 악화된 쌍방울은 1999년 드래프트 1차 지명자였던 이진영과 지명권 양도로 삼성으로 간 투수 라형진을 제외한 지명자 13명 전원과 계약하지 않았다. 그 중 일부 대학 진학자들은 SK에 지명권이 넘어가 입단했으므로, 이진영을 제외한 고졸 선수들은 사실상 지명권 포기.
입단 당시 모기업의 상황이 어려워 다른 1차 지명자에 비해 적은 금액인 1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으며, 그나마 그 계약금조차 지급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쌍방울은 연봉만 주고 나중에 계약금을 주겠다고 했으나 이진영 아버지가 거절했다. 나중에 계약금을 받았는데 이진영은 주주들이 준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기사
입단 당시에는 최고 구속 150km/h에 이르는 빠른 볼이 주 무기였기에 투수로 쓸지 야수로 쓸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쌍방울 입단 한 달 만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바로 타자로 전향하여, 최종적으로는 외야수로 정착하게 되었다.[2]
마지막 돌격대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서 은퇴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쌍방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기자들이 많이 질문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자기 스스로도 사구에 맞은 후 '썅방울 정신으로 이겨내겠다'라고 말하기도..
kt에서 은퇴를 앞둔 시기 기자와의 대담에서 쌍방울 시절을 추억한 기사.

2.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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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해체 후 신생 팀 SK 와이번스의 감독으로 온 강병철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으면서 지속적인 출전기회를 얻었다. 이 와중에 강병철의 양아들 취급을 당하면서 여러모로 고생이 심했지만, 그가 국가대표급 외야수로 성장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다. 그 시절에는 늦은 밤에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먹으며 무지막지하게 스윙 연습을 했다고 한다.
2002 시즌을 기점으로 타격 포텐이 터지기 시작했고, 2003~2004 시즌부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며 이호준, 박경완과 더불어 SK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했다. 조범현 감독은 홈런타자로 개조하려고 시도했지만 2005년 20홈런에서 더 이상의 거포 포텐셜을 터뜨리는 데 실패하며 타율은 타율대로 까먹었다. 이 과정에서 입은 잔부상이 2007~2008시즌 때 발목을 잡고 말았으며, 김성근 감독의 우익수-1루수 병행 시스템에 묶이면서 팀 내 위치가 어정쩡해졌다.
2007년까지 SK에서의 포지션은 확고부동한 주전 우익수였지만 2008년도에는 팀 사정때문에 1루수로 출장한 날이 더 많았다. 김성근 감독이 박재상-김강민-조동화로 이어지는 발빠른 외야수라인을 선호했던 탓도 있고, 부활한 박재홍을 살리기 위해 우익수로 쓰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1루수 수비를 봐야 할 이호준박정권이 시즌 초반과 중반에 각각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공백이 된 1루를 맡을 선수가 없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에 대해 이진영은 익숙치 않은 포지션이고 빠른 타구가 많이 날아와서 우익수 때보다 힘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3] LG에서도 간혹 1루수를 보기도 한다.
사실 이진영의 외야수비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때 다이빙 캐치로 거품이 많다. 국민우익수라는 별명이 무색한 수비를 자주 보여주는데 어깨와 센스는 좋은데 타구판단이랑 마무리가 안 좋은 편이라서 이상하게 정신줄 놓은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강병철 감독이 SK 재임시절 이진영을 보고 했던 말이 "저놈 참 골때리는 애라서 힘들었어"라고 할 정도였다.

2.1. FA 1기


2008년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고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당시 계약 총액수는 비공개였으나 LG에서 받은 연봉과 기타 수당을 고려했을 때 최소 4년 40억 원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SK는 30억도 제시하지 않은 듯.[4] 반면 LG는 이진영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대기를 탔고 원팀우선협상시한이 끝나자마자 바로 연락하는 등 이진영을 영입하는데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SK 입장에선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당시 SK 입장에서는 이진영의 빈 자리를 조동화박재상, 박재홍을 로테이션으로 기용하며 메우려 했지만 세 선수 모두 심각한 공격력 난조를 극복하지 못했다. 비록 2009년에는 좌익수 박재상과 우익수 박정권이 타격면에서 터졌지만 박재상은 그 후 다시는 2009년 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하며 플루크 시즌이었음을 증명했고, 박정권은 이호준이 지명타자가 되어버리면서 그대로 1루수 붙박이가 되었다. 거기다 박재홍도 2009년 이후 매년 하락세를 타면서 SK의 중견수 김강민을 제외한 나머지 외야수들은 더이상 방망이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조동화는 발만 빠르지 공격력에서는 노답이였고 이후 2013년부터 중용된 이명기[5]와 한동민은 매서운 타격을 보이고 있지만 수비능력으로는 이진영은 커녕 평균에도 미치지 못해 대타나 지명타자가 더 어울리는 안습한 상황. 이래저래 이진영을 잡지 않은 것이 SK에는 두고두고 큰 독이 된 셈.

3.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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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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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WBC 국가대표 시절
유리몸 기질 때문에 빠지는 날도 많았지만 나오면 어느 정도 밥값은 해주었다. 그리고 한 해에 병살을 두자릿수도 때리지 않던 선수가 병살 2위(19개. 1위는 같은 팀의 최동수)를 기록했다.[6] 덕분에 박용택의 별명이던 찬물을 이어받았다. 팬들은 이를 보고 완벽한 LG화라고 비꼬았지만 같이 FA로 온 정성훈과 함께 흔치않은 FA 성공사례로 꼽힐 정도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2회 WBC 대회에서 그가 쓴 일기의 반응이 무척이나 좋았다. 국제대회에서 일본전만 되면 꼭 결정적인 활약을 공수 양면으로 해줘서 일본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이대형 다음으로 많이 까였다. 이유는 수도없이 터지는 병살 때문인데 그냥 많이 치는것도 아니고 '''중요한 순간에''' 병살을 자주 치기 때문. 대표적인 경기는 8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로 패색이 짙던 상황을 1점차까지 따라붙고 1사 만루인 상황에서 병살타로 경기를 끝내버린 적이 있다. 이 경기 이후로 완전 비호감으로 정착. 정작 그 다음날 역전만루홈런을 날렸지만 까방권이 되지 못하였다.(…) 실제로는 최동수에 이어 2009 시즌 병살타 '''2위'''지만, FA 첫 해라 기대치가 꽤 높았다.

3.2. 2010 시즌


시즌 초에는 잠시 1루수를 보다가 이택근이 빠지자 다시 우익수로 들어섰다. 부상 탓인지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지만 타율 .331 출루율 .396 장타율 .493 OPS .888 홈런 7타점 46을 기록하며 잉금님과 함께 LG타선의 중심을 이루었다.
하지만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 선수단에서는 국가대표 우익수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탈락했다. 추신수도 있기 때문에 탈락된 듯.

3.3. 2011 시즌


4월 13일까지 0.242 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13일 경기에서 정줄 놓은 타격으로 병살에 찬물 끼얹기를 하며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는 바람에 타율이 팍 줄어 버렸다.
5월 1일 넥센 전에서 6타수 5안타 3타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타격쪽에선 맹활약을 펼쳤으나, 수비에서는 송구에러로 진루를 허용하는 등 공수 양면으로 대활약 아닌 대활약(…)을 보여줬다.
5월 13일 넥센 전에서는 강병식의 홈런성 타구를 기가막히게 캐치하는 호수비를 보였으나 펜스에 쿠션 하나 없는 상태의 철판이나 다름없는 곳에 그대로 부딪혀서 부상으로 2주간 2군크리를 맞고 만다. 잠실같은 구장에서 뛰다가 목동에서 저런 거 당하면 치명타일 듯. 서용빈 코치가 펜스를 두드려 보고 그 딱딱함에 의아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표정을 보건데 상당히 어이없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6월 11일 이제야 배트를 다시 잡고 티배팅을 하는 단계까지 회복했다. 부상이 잦은 몸상태인데다 회복이 늦는 모양인데 이대형 & 작은 이병규와 함께 빨리 돌아오길 고대하는 팬들이 많다. 이들이 오기전에 부상선수가 한명이라도 더 나오면 정말 라인업 짜기도 힘들어질테니깐 말이다. 15일부터 2군경기에 참가, 두번째 경기에서 2안타를 터뜨리며 타격감을 조율했는데 아직 수비는 들어가지 않았다.
6월 21일부터 1군 등록이 예정되었고 넥센 히어로즈 전에 복귀한 후 선발 출전해서 3타수 무안타 '''2타점(?)'''을 기록하면서 안타는 못쳐도 타점으로 밥값은 했다. 우익수로 복귀하면서 외야진도 안정된 수비진을 갖추게 되었고 여러차례 호수비를 보여줬다.
8월 1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우익수로 출장했는데 날아오는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으려 했지만 실패. 결국 3루타를 헌납하는 굴욕을 당하고야 말았다. 아, 참고로 3루타를 헌납한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대호'''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있나.
8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전 경기에서 3회말 이대수의 우측 뜬공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담장에 정면충돌, 왼쪽 팔꿈치를 다쳐 4회초 타석때 김태완으로 교체되었다. 그나마 큰 부상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3.4.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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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에 말 그대로 '''최악의 삽질'''을 보여주며 LG 트윈스 팬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다. 배팅은 물론이거니와 그나마 장점으로 꼽히던 수비마저 막장이 되어, 굴러가는 볼을 제대로 내야로 연계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 상대 타자들은 이진영에게 타구를 보낸 후 자유롭게 한 루씩 더 진루하였다.
타격은 살아날 기미가 안 보였으며, 쳤다 하면 땅볼인 수준. 4월 15일 KIA 타이거즈 전이 끝난 시점에서 24타수 중 2루 땅볼을 10개나 기록하며 엄청난 2땅률을 보였다. 홍현우, 진필중, 박명환 등으로 이어지는 먹튀라인에 한 자리를 예약해 놓은 듯 싶었으며, LG 트윈스FA로 함께 입단한 정성훈은 4번타자로 맹활약하고 있어 팬들에게 더욱 맹공을 당하였다.
하지만 4월 17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이 홈런은 이진영의 시즌 1호 홈런.[7] 이 날 기록은 5타수 3안타(1홈런) 2타점 1득점. 그리고 다음 날인 4월 18일에는 5타수 3안타 1득점을 기록[8]하여 최다안타 공동 6위에 오르고 타율은 .324가 되었다.
5월 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6:3으로 뒤처진 7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2루수 허경민의 호수비로 아웃당하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본인도 분했는지 헬멧을 벗어서 땅에 패대기. 이날 4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며 팬들로부터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
5월 20일 두산 베어스와의 3차전 마지막날, 오심과 실책으로 경기가 엉망진창이 되며 5대 5로 팽팽히 맞선 연장 11회초 2사 2, 3루 상황에서 임태훈이 앞서 연속 볼넷으로 내보낸 3루주자 오지환과 2루주자 박용택을 불러들이는 결승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뽑아내며 팀 승리와 두산과의 주말 3연전 싹쓸이에 큰 공헌을 하였다.
6월 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9차전에서 1회 초 이대수의 타구를 잡으려 다이빙 캐치를 하다 오른쪽 햄스트링 파열 부상을 입었다. 5할 수성을 하려는 LG에게 비상이 걸린 상황. 7월이 되며 다시 복귀하였으나, DTD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9월 초중반에는 권혁에게 '''이 18놈 너 D질래'''라는 말을 했다가 아내에게 된통 까이고 말았다.[9]
9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 중 3회 초 자신의 타구가 내야안타가 아닌 3루수 김민성실책으로 기록된 것에 분노하여 경기종료 후 '''기록원실 문을 쾅 찼다'''.[10] KBO에서는 그의 행위에 상벌위를 열어 이진영에게 엄중경고의 제재를 부과했다.
9월 30일 통산 1천 5백 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하였고, 시즌 마지막 날인 10월 6일 극적으로 규정타석을 채웠다.
11월 12일, 마찬가지로 LG에서 FA로 풀린 정성훈과 같은 계약 기간 4년, 총액 34억 원에 재계약을 했다.

3.5.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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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다음날 경기에서 정현욱을 도와주는 호수비를 보여주었다. 4월 5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2:0 상황에서 안타를 치고 나가 동점 득점을 만들었고, 3:2로 뒤진 상황에서 2루타를 친 뒤 상대 유격수의 실책으로 다시 동점 득점을 기록했으며, 7회에는 땅볼로 1타점을 올렸다.
4월 2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첫 경기에서 팀이 4:3으로 지고있는 9회말 2사 1,3루 상황에서 끝내기 2루타를 날려 팀을 구원했다!
5월 4일 두산전에서 3루에서 홈으로 들어오다 포수와 충돌. 왼쪽 무릎을 다쳐서 6주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진영의 부상으로 외야진에 공백이 발생하여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병규가 1군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예상보다 회복이 빨랐는지 5월 31일부터 1군 복귀를 하게 되었다. 아직 완전하게 몸이 회복 되지는 않았는지 1군 복귀 후에는 대타로 자주나왔으며 602 대첩때는 볼넷으로 출루한 후 대주자 임정우로 교체 되었다.
5월 16일 넥센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앞선 2회 1사 3루 상황에서 앤디 밴 헤켄을 상대로 시즌 2호 홈런을 때려내었다. 스코어 팀도 5:4으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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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전에서는 10회말 1사 1,2루에서 끝내기 역전타를 때려 팀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우익수 겸 3번타자로 출장하여 14타수 2안타 3볼넷 1도루 1타점, 타율, 장타율 .143, 출루율 .294로 부진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시즌 후 모 예능 프로그램 저녁재료 맞추기 게임에서 재료를 하나도 못맞추었다...[11]

3.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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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신년 하례식에서 열린 주장 투표에서 180명 중 96표를 얻어 주장에 선임되었다. 기사
3월 30일 경기에서 개인 통산 5호 그랜드슬램을 때려내며 좋은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계속 2루땅볼만 쳐 댄다고 까이고 있다.
심지어 타격성적은 4월 22일 기준 5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타점은 8개..(만루홈런을 제외하면 단 4타점)이라는 스탯질로 일관하며 LG 트윈스 갤러리에선 콱대괄[12]로 불리는 등 시즌 초반 정성훈과 함께 싸잡여 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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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경기 전에 이대형의 타격폼을 흉내내며 큰 웃음을 선사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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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연타석 홈런을 때리고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
6월 13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7차전에서 선발 우익수 겸 3번타자로 출장하여 상대 선발 투수인 로스 울프를 상대로 '''3연타석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 3연타석 홈런은 데뷔 첫 기록이자 한국프로야구 통산 33번째이다. 게다가 잠실구장에서 한 경기 3연타석 홈런은 '''국내 선수 중 최초'''다.[14] 외국인 선수까지 포함하면 2009년에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잠실에서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날 9회초에 등판한 봉중근이 역전을 허용하여 이진영의 활약이 묻힌 데다다가 오지환이 9회말에 동점 내야안타와 10회말에 끝내기 안타를 치는 바람에 3연타석 홈런을 치고도 MVP를 받지 못했다(…). 팀은 스코어 9:10으로 재재재재역전승했다.
8월 10일까지 아직 8월에 '''안타'''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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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휴식기 이후 10월 잔여경기 시리즈에서 NC, 삼성, KIA를 상대로 3경기 연속 결승 타점을 올렸다. 이중 NC, KIA전은 끝내기였다.
9월 이후로는 타율 0.246으로 부진하였다. 하지만 팀은 막판 SK의 추격을 뿌리치고 4위 자리를 지켜내어 2013년에 이어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였다.
NC 다이노스와의 201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전 경기를 선발 5번타자 겸 우익수로 출장하여 17타수 5안타 1볼넷 2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294, 출루율 .333를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4년 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5번타자, 4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2타수 3안타 1볼넷 2타점, 타율&장타율 .250, 출루율 .30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진영은 2014년 포스트시즌에서 29타수 8안타 2볼넷 4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276, 출루율 .323를 기록했다.

3.7.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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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kt wiz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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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로 kt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팀을 옮기면서 팬들에게 고맙다는 인터뷰를 했다. 팬들 역시 앞으로도 응원하겠다는 의견이 거의 대부분이다.
며칠 뒤 마음을 추스린 이진영은 앞으로의 다짐과 '''LG팬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담은 인터뷰를 했다.'''

그러게요.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후회가 많았습니다. 제가 올시즌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꾸준히 제 몫을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떤 점 때문에 LG에 남을 수 없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답을 찾지 못했어요. 찾을 필요도 없었고요. 분명한 건 제가 더 이상 이 팀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의 정서는 선수와 구단의 관계가 비즈니스보다는 정에 움직이는데 흥미로운 건 '''구단이 필요할 때는 정을 내세우고, 구단이 필요 없을 때는 비즈니스를 앞세운다는 거죠.'''

인터뷰 도중 LG 프런트에게 서운함을 보이기도 했다.[15] 자신은 팀에서 은퇴하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LG에 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기도 했으며 결국 발표난 뒤에는 혼자 술을 많이 먹었다고...

4.1.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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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시작하자마자 또 깨졌다. 4주 동안 결장이라고한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2901345
4월 3일 LG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신재웅으로부터 결승 3점포를 쏘아올렸다.
4월 6일 삼성전에서 2호 홈런을 쏘아 올렸지만.. 팀은 4회 대멸망해버리고 결국 11-6으로 패배.
4월 13일 넥센전에서 달아나는 3호 홈런을 쏘아올렸다.
4월 14일 현재 타율은 .312이며 3홈런 9타점을 기록중이다.
초반에 계속해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으며 5월 7일, 유한준이 불의의 부상으로 전력 이탈하면서 대신 4번타자로 출장해 3타수 2안타를 기록하여 한화전 승리에 앞장섰다.
5월 13일 NC전에서 5회 이재학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을 쳤다. 벌써 시즌 7호.
그런데 그 이후 9월 초 현재 무려 4달 동안 홈런이 '''1개도 없다!'''그래도 팀내에서 중심타자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32에 10홈런 123안타 72타점 출루율 0.403 장타율 0.480 OPS 0.883. 커리어로우였던 지난 시즌에서 탈피해서 다시 리바운딩에 성공했다. 이제 세 번째 FA 시즌을 맞게 된다.

4.2. 2017 시즌


1월 26일 드디어 kt와 2년 15억에 재계약을 했다.
6경기를 치르며 2할대의 타율과 3할 초의 출루율로 3안타 ops 5할대로 타격감이 잘 올라오지 않고 있다. 그와중에 7일 삼성전에서 7회말, 9회말 두 차례나 희생번트를 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타격감이 떨어진 것인지 2할 중반대로 타율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5월 6일 한화전에서 5회 무사 1,2루에서 초구 희생번트로 1사 2,3루를 만들었다. 이후 추가점을 하나 더 만들어 3대 0을 만들었으나 7회 팀은 역전당해 패배.
5월 7일 송은범을 상대로 1회 무사 2루에서 중전 안타를 때려 이대형을 홈으로 불러들였고, 이것이 경기의 결승타가 되었다.
6월 14일 우규민을 상대로 4회 2사 1,2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타[16]를 쳐냈다. 프로통산 1998안타.
6월 16일, 역대 9번째 20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2000안타'''를 기록하며 성구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된 시점에서도 '''홈런이 없다''' 김주일도 응원할때 홈런이 없으니 안타로 응원하라고 얘기할 정도.
시즌 마수걸이 홈런은 시즌이 다 끝나가는 9월 1일에 첫 홈런을 쳤다. 9월 4일에도 대타로 출격해서 시즌 2호 홈런을 쳤다.
9월 19일에 시즌 3호 홈런을 칠 뻔했지만 비디오 판정 후 2루타로 정정되었다. 성적은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LG에게만은 극강이라 시즌 말미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막는 고춧가루 선봉장으로 활약중이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2경기 284타석 76안타 2홈런타/출/장 0.290/0.336/0.420 ops 0.756을 기록했다. 타율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으나 출루율과 장타율이 많이 떨어지며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4.3. 2018 시즌


4월 19일 SK전 9회 1점차로 뒤진 2사 1,2루의 기회에서 황재균의 대타로 나왔으나 범타로 물러났다. 그 이후로도 대타로도 써먹기 힘든 지경으로 득점권에서 이닝을 끝내버리기만 한다.
5월 19일 NC전 9회말 동점인 2사 1,2루의 기회에서 이창진의 대타로 나와 단타를 때렸는데 상대 좌익수의 실책성 송구로 졸지에 끝내기 안타가 터지고 말았다. (...)
5월 25~27일 LG 트윈스 3연전에서는 3경기 중 2경기에서 결승타를 기록해내며 여전히 LG 트윈스를 상대로는 강한 모습을 이어나갔다.
6월 17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9회 대타 결승 홈런을 뽑아내며 팀의 기나긴 연패 탈출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9월 4일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는 박기혁, 강백호가 출루한 상황에서 깨끗한 번트를 대며 무난히 1사 2,3루 상황을 만들어주는 줄 알았으나 서상우의 송구실책(...)이 갑자기 터져나오며 의문의 끝내기를 적립했다.
대타로 나오면서 3할 5푼이 넘는 타율과 함께 시즌 타율도 3할을 넘으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5.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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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종료 직후 FA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10월 19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서 쌍방울 레이더스 최후의 소속 선수는 모두 은퇴했다.[17]
이에 대해 이진영은 "'''팀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고참으로 책임감을 느끼는 한편, 젊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으로 ‘은퇴’라는 결단을 내렸다”'''며, “'''선수생활을 마치는 것은 아쉽지만, 프로 생활 20년 동안 최선을 다했고, KT를 비롯한 그동안 소속 구단과 항상 응원해준 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다른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서서 야구계에 도움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기사
이후 인터뷰에 의하면 다른 팀으로 간다 해도 고작 1,2년 선수생활 연장하기 위해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는 건 아닌 거 같아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다만 콱팬들은 그의 은퇴 후 타선이 식물 수준이 되어버리면서 이진영을 왜 내보냈냐고 성토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9년 7월 28일 수원 kt 위즈 파크 LG 트윈스 전에 은퇴식을 치룰 예정이라고 한다.기사 데뷔를 쌍방울에서 하였고 SK 시절이 좀 더 길었지만 전성기를 LG에서 보냈기에 친정팀과 해 감회가 남다를 듯.
은퇴식전 기자회견을 통해 "'''내가 20년 동안 야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표팀에서의 영광들, SK 시절에 우승 순간들, LG 시절에 포스트시즌 갔던 기억들, 그리고 KT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이었다. 창단한 지 얼마 안 됐지만 KT가 좋은 성적 내는 명문 구단이 되도록 도움을 주는 게 목표였다. 그런 게 나에게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많은 일을 했구나 하는 자부심도 생기고, 20년이란 시간이 참 길었다."''' 라는 소감을 밝혔다.
경기전과 5회 클리닝 타임때 은퇴식을 진행하였다. 이진영 "국민 우익수 별명 좋아해...찬스에 강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이진영은 은퇴 후 박찬호의 주선으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전력분석원으로 활약 중이다.

[1] 가장 왼쪽의 사진은 2003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투런홈런을 친 직후.[2] 그 이유인지 굉장히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다. [3] 이진영이 SK를 떠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 SK 말기에 프런트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적 당시에 김성근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이적을 논의했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김성근 감독과의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듯.[4] 김성근 관련 서적 중에 이진영의 LG이적 당시 비화가 있는데 LG의 보장 금액이 SK보다 10억 이상 많다는 전화 통화 내용이 있다.[5] 2017년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어 간다.[6] 앞의 주자가 로베르토 페타지니였다는 걸 생각해보자. 실제로 2009년의 이진영은 최동수와 같이 5~6번을 번갈아 봤다.[7] 그러나 아쉽게도 팀은 6:7로 재역전패.[8] 팀은 6:1로 역전승.[9] 당시 빈볼이냐 아니냐였다.근데 상황 봐서는 '''빈볼 상황은 아니었고,권혁 본인도 실투였다는 제스처를 했다.'''[10] 참고로 소싯적 양준혁도 똑같은 짓을 했다가 벌금을 문 경력이 있다.[11] 첫째,둘째 판에는 공이 빗나갔고,세번째 판에는 열받아서 그냥 강속구를 던져버렸다.... 5분 40초부터.[12] 그리고 진짜 kt로 갔다.[13] 결국 이 둘은 2016년에 kt wiz에서 2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14] 여러 날에 걸친 3연타석 홈런은 마해영과 최희섭이 기록한 바 있다. 한 경기 3연타'수' 홈런은 2011년 최진행이 기록한적이 있다.[15] 팀 자체에 대해 애정이 꽤 컸던 모양.[16] 정확히는 1타점 2루타+좌익수 송구실책[17] 이진영의 은퇴 후 쌍방울에게 지명을 받은 선수까지 포함하면 박정권이 있으나 박정권은 쌍방울 '''소속'''이었다고 보기엔 애매한 것이 2000년 고등학생 시절 지명을 받긴 했지만 프로 입단 대신 대학에 진학했고 실제로 선수로 뛰게 된 건 쌍방울이 해체된 뒤 선수단이 SK로 인계된 후였다. 박정권은 쌍방울 유니폼을 입은 적도 없다. 당시에는 '''고졸 선수가 지명을 받은 후 대학에 진학해도 지명권이 유지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