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드라마)

 



1. 개요
2. 등장인물
2.1. 주요 인물
2.2. 주변 인물
2.3. 조정 관련 인물들
3. 에피소드 목록
3.1. 1부
3.2. 2부
3.3. 3부
4. 기타


1. 개요


임꺽정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로 90년대 sbs의 몇안되는 사극이자 제작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들인 작품이다. 44부작으로 1996년 11월 10일 ~ 1997년 4월 6일까지 방송됐는데 1996년 11월 10일 8시 50분부터 1회 ~ 2회 연속 방영됐으며 이런 이유로 그 날 방송될 뻔한 주말극장 행복의 시작은 결방됐다. 이 과정에서 행복의 시작은 1996년 11월 9일 8시 50분부터 32회 ~ 33회 연속 편성됐다.
아무튼, <임꺽정>은 충격적인 연출과 철저한 시대 고증을 표방하며 제작되었는데 1995년 초여름부터 촬영을 한 '''반 사전제작 드라마'''이기도 하다. 특히 작품 특성상 1990년대 기준으로 과격한 격투 장면이나 출혈 등이 묘사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1] 이를 적극적으로 묘사하며 리얼리티를 살린 면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전제작 드라마로 1995년 5월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드라마의 제목은 '임꺽정'이라 임꺽정이 태어나는 장면 및 임꺽정이 처음부터 나오는 것을 연상하기 쉽지만 정작 임꺽정이라는 개인은 3화에 태어나며, 이 드라마의 첫 장면은 구월산에서 최후를 맞기 직전의 임꺽정이 죽은 가족 및 의형제들을 회상하는 장면이고, 실질적으로는 갑자사화가 드라마 줄거리의 최초를 장식한다. 그래서 첫 회에 첫 등장인물 소개는 연산군이 나온다.
유명 배우에 의존하기보다는 실력파 무명배우와 신인배우를 적절히 캐스팅하고 홍명희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져서 내용에 많이 신경을 썼으나 원작이 반쯤 미완이었기에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은 또한 설원에서 임꺽정이 화살을 맞고 죽게되는 이두호 임꺽정과 같은 결말. 드라마처럼 최후까지 무공을 펼치는 극적인 장면은 아니어도 실제로도 임꺽정은 관군에 의해 사살당하니 어느 정도 실제 모습과 유사하다. 결말 외에도 진상봉물 사건이나 여러 에피소드의 구성과 연출 면에서 이두호 임꺽정을 참고한 장면들이 많다. 원작이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 소설이었고 할수 있는 한 고증을 했던 1990년대에 나온 드라마라서 조선 사람이 현대 서울말 쓰는 요즘 퓨전사극들과는 대사가 확연히 차이난다.
먹방으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작품이다. 하루~며칠 굶은 장사가 밥을 보자마자 반찬이 없거나 매우 허술한 상태에서 허겁지겁 먹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오니 원초적인 인간의 생존력을 알 수 있다.
시청률도 좋았고 완성도 면에서 2000년대 이후의 SBS 사극들과 비교해도 훨씬 나은 작품이라서 지금도 평가가 좋다. SBS 사극 중 제대로 된 정통사극 대우받는건 이 임꺽정과 1995년에 방영된 장희빈, 2001년 방영된 여인천하[2] 정도고 야인시대 이후론 거의 모든 작품이 혹평을 들었다. 그나마 뿌리깊은 나무가 퓨전사극이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주제 의식이나 극의 완성도 면에선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정도.
KBS의 레전드 사극 용의 눈물 초반부와 임꺽정 후반부가 방영 시기, 시간대가 겹쳤다. 때문에 용의 눈물은 초반에 시청률 면에서 꽤나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임꺽정이 끝난 후 사극 팬들이 용의 눈물로 몰리면서 용의 눈물 시청률이 매우 높아졌다.
원래 연극배우 출신으로 TV 데뷔가 처음이었던 임꺽정 역의 정흥채는 이 역으로 무명에서 벗어났다.[3] 그러나 이 드라마 최고의 수혜자로 손꼽히는 배우는 다름아닌 임꺽정의 아내 운총으로 분한 김원희. 독특한 4차원 캐릭터와 묘하게 개성있는 표정 연기 덕택에 단숨에 시청자들의 머리속을 지배했다.[4]
조연 캐스팅이 꽤나 화려하다. 카메오로 나온 폭군 연산군을 유인촌이 맡았다.[5] 명종은 이기영의 형 이효정이며 문정왕후는 미스코리아 출신 김청, 보우김학철, 임꺽정의 부친 임돌은 박인환, 누이 섭섭이는 윤유선, 정난정박선영, 임꺽정의 스승 갖바치와 잔나비는 각각 이정길정진이 맡았다. 그밖에도 능통의 정승호나 점쟁이 김륜에 김주영[6], 노밤의 윤문식 등, 캐스팅이 꽤나 쟁쟁하다.
그리고 작 중 임꺽정과 끈질긴 악연을 이어가는 토포사 남치근은 김흥기인데 아이러니하게 당시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으로 출연 중이었다. 쉽게 말하면 동시간대 겹치기 출연.[7]
초반엔 임꺽정의 젊은 시절에 이지함(권성덕 분), 소년 시절엔 조광조(태민영 분) 등의 인물도 등장하는데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드라마상으로 임꺽정은 1521년 생인데, 1517년 생인 이지함과는 비슷한 연배여야 하지만 이지함은 노인으로 등장하며,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세상을 떠났을 때가 1519년이므로 임꺽정이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촬영을 위해서 경기도 양주시의 기산저수지 인근과 철원군 근남면에 세트장을 설치했다. 양주 세트장에서는 한양 남소문 장면을 촬영했고 철원 세트장에서는 청석골 장면을 촬영했다. 양주 세트장은 이후 철거했으며, 철원 세트장은 이후에도 드라마 덕이, 다모 등을 촬영하였다.

2. 등장인물



2.1. 주요 인물


  • 임꺽정(아역: 류종원, 소년: 강현종[8], 성년: 정흥채)(1521년 ~ 1562년)
이 드라마의 주인공. 원래 이름은 임놈(...)이었지만 힘이 너무 세서 걱정거리 취급을 받았고 그걸 누나 섭섭이가 서투르게 '꺽정이'라고 따라 부른 것 때문에 이름이 꺽정이가 되었다. 소싯적부터 힘이 장사여서 집안에 가보로 내려오는 활을 어릴 때 부러뜨리기도 한다. 이후 20살쯤 되어 양주팔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백두산에서 운총을 만나 결혼하고 백손이를 얻게 된다. 나중에는 검의 명수가 되어 을묘왜란 때 봉학이와 함께 관군에 지원했으나 백정이라는 신분 때문에 따라가지 못한다. 이후 봉학이가 왜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혼자서 왜군들을 모두 썰면서 봉학이와 관군을 탈출시킨다. 작중 백정이란 신분에 수없이 좌절하고 방황하는데 오랫동안 소잡는 일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았고 아버지 임돌이 나이들어 도축일을 못하게 된 다음에도 밖으로 떠돌아서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 살림이 크게 기운다. 을묘왜변 이후론 본인도 체념하여 마음 잡고 백정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며 살았다. 하지만 유복이로부터 약탈한 진상품을 전해 받았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이웃이 꺽정이네의 재산을 노리고 고발해 버려서 관가에 일가족이 모두 붙잡히게 된다. 결국 관아를 습격해 가족을 탈출시키고 어쩔 수 없이 청석골로 들어가게 된다.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성격에 문제가 많다. 부모와 다투어도 엄청난 효자에 누나와 조카들을 잘 챙기며 미숙아로 태어난 동생을 극진히 보살피는 등 인간적인 면모도 있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사람을 죽여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고 정당화하기도 한다. 특히 양반을 대하는 태도는 자신이 백정일 때 당하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스승 양주팔은 도적질을 할거면 힘없는 백성들 것은 빼앗지 말고 재물은 빼앗더라도 목숨은 빼앗지 말라고 말 한바 있으나 문제는 그가 하나도 안 지킨다. 탑고개 통행세 명목으로 힘없는 양민들 재산 갈취하고[9] 곽오주 필두로 해서 아이와 아녀자들까지 죽이는 묘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때문에 단천령에게 살생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눈 쌓인 산 위에서 혼자서 관군을 상대하다가 최후에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죽는다. 임꺽정이 단신으로 워낙 많은 관병을 죽이다보니 맨처음에는 그를 생포해서 처형하려한 토포사 남치근도 경악하여 이를 포기하고 사살한것이다.
  • 이봉학(소년: 고동현, 성년: 차광수)(1522년 ~ 1562년)
어떻게 보면 성격 때문에 제재는 당했겠지만 무관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인물이 나머지 인물들이랑 엮여서 청석골로 온 케이스. 청석골 두령 중 둘째로 의형제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양반 출신이다. 다만 서자라서 반쪽 양반 취급받는다. 어렸을 때부터 꺽정이, 유복이와 함께 지내서 양반 티는 잘 안난다. 군기를 책임진 총찰두령으로 명목상 산채 2인자지만 영향력은 높지 않다. 발언권으로 볼때 실질적인 2인자는 서림. 그래도 임꺽정이 자리를 비울때는 2인자로서의 역활은 하는 편. 주무기는 활. 어릴적부터 궁술을 익혔고 귀신도 잡는 신궁으로 을묘왜란 때 공을 세우고 아전으로 일하게 된다. 이때 납량특집을 겸하여 잠시 쉬어가는 편으로, 이봉학이 과거에 원한을 품고 죽은[10] 처녀귀신을 만나 거의 죽일뻔하지만 놓아주고 제사를 지내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후 이윤경의 눈에 들어서 무관이 되어 벼슬까지 하게 된다. 좋은 연줄 덕에 글재주는 없지만 초관에서[11] 제주도 정의현 현감, 임진 별장 등을 지내게 된다. 품계로 따지면 6품이니 서림보다는 상계.[12] 그러나 임진 별장이던 시절 꺽정이 일행을 밤배를 내어서 몰래 임진강을 건너게 해줬는데 평소 강직한 그에게 불만이 있던 한 포졸이 이를 알게되어 그를 밀고하는 바람에 파직되어 관직 생활이 끝나게 된다. 이때 압송되는 중 혜음령에서 청석골 패거리에게 구출되었다. 이후 청석골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도적 생활이나 관가를 기습하는 것은 맘에 들어하지 않아 청석골 패거리와 종종 갈등을 겪는다.[13] 정확히는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하는 편. 길막봉 구출 작전에서 참여하지 않지만 나중에 등장해 화살을 날려 길막봉 부부를 구하는 장면은 꽤 명장면. 드라마에서는 최후에 구월산에서 많은 관군을 활로 쏘아죽이며 임꺽정을 훌륭한 활솜씨로 구했다. 그 직후 몰려오는 관군에게 쫓기게 되자 다치고 지친 임꺽정을 살리려고 절벽에서 그를 굴리고 꼭 살아서 좋은 세상 만들라며 외친 뒤 검으로 자신을 찔려 자결한다.
  • 박유복(소년: 문혁 성년: 정규수)(1523년 ~ 1562년)
임꺽정 의형제들의 셋째. 의형제들 중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라 할 만하다. 두령들 중 성격이 가장 둥글둥글하다. 아버지가 죽고 유복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유복'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를 모함해 죽게 만든 양반 '노 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뼘창을 던지는 기술을 연마했다. 뼘창은 한 뼘 길이의 표창으로, 박유복은 스승 양주팔에게 받은 것은 잘 보관해두고 주로 대나무를 깎아 만든 것을 사용한다. 허나 중간에 노숙을 하다 병이 들어 다리를 못쓰게 되어 앉은뱅이로 지내 절망하지만, 어의를 역임했던 어느 노인의 치료로 다시금 걸을수 있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었는지 본인의 목숨을 노리지만 않는다면 굉장히 온건한 사람이 된다. 아버지의 원수인 양반집에 들어가 복수에 성공하고 원수의 목을 아버지께 바친다. 그 후 도망가던 중 장군신에게 바쳐진 여인 '작은년'과 만나 함께 도망을 치다가 청석골에서 오가를 만나, 작은년을 오가 내외의 딸아이로 보내고 그녀와 혼례를 올려 사위로서 지내며 그와 함께 청석골 옆 탑고개에서 도적 노릇을 하면서 '대가지 도적'으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드라마에서의 최후는 임꺽정 옆에서 관군과 끝까지 버티다가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임꺽정 옆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친화력이 좋아서 다른 두령들과 사이가 좋지않은 서림과도 친하게 지냈다. 임꺽정, 오가와 함께 서림에게 가장 잘 대해준 두령. 서림 영입때 오가와 함께 가장 적극적이었다.

임꺽정 의형제 중 넷째. 파수막 담당. 을묘왜란 때 종군해 이봉학과 솜씨를 겨루기도 한 돌팔매질의 명수. 근거리에선 돌팔매로 싸우기 힘드니 만큼 격투술과 창술도 상당하다. 직감이 매우 발달한 사람인지라 상황판단은 이봉학 그 이상일 정도로 판단능력도 좋다. 비부 노릇도 해봤기에 상황에 따라 양반을 대하는 상황도 잘 대처. 고로 서림이 내는 작전에 가장 많이 투입되는 원정대장. 그러나 품행, 특히 여자 버릇이 굉장히 나쁘다. 천왕동이 말을 빌리면 개차반. 봉산 지경에서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돌아다니다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황천왕동이와 친해진다. 성경의 다윗마냥 돌팔매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괴수. 비부살이를 하다 자기 아내가 주인집 양반과 사통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망신을 준 다음 주인집 마님에게 강제로 입을 맞춘 후 떠돌아 다니다 봉산에서 호랑이를 잡는다. 그 공로로 무명등을 상으로 받고 역졸이 된다. 이후 그 호랑이에게 아들을 잃은 노파에게 대접을 받고 노파의 며느리와 이어져 노파를 양어머니로 모시고 잘 살아보려 하지만 문제는 아내가 이 남자 저 남자를 꼬시고 다니는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였던지라 결혼하고도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알게되어 격분한 나머지 아내와 크게 싸우다가 아내가 사귄 남자와 아내 둘 다 죽이고 말았으며 이로 인해 도망치다 관원들한테 잡혀서 옥에 갇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청석골 패에게 구출되어 도적이 된다. 청석골에서 새 장가를 드는 데 새로 맞이한 아내와는 서로 아껴줄 정도로 금슬이 좋다. 드라마에서는 청석골을 떠나 구월산으로 도피할 때 산채 식솔들을 이동시키는 임무를 맡았는데 도중에 관군과 마주치자 시간을 벌기 위해 홀로 남아 싸운다. 그러나 중과부족으로 창에 찔려 쓰러지는데 먼저 갔던 아내가 남편에게 돌아오다 역시 창에 찔려 쓰러지고 서로 손을 잡은채 눈을 감는다.
  • 황천왕동(김홍표)(1526년 ~ 1561년)
임꺽정 의형제 중 다섯째.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한다. 탈출해서 백두산에 들어가 살던 머슴 부부의 자식이자 운총의 동생. 팔도강산을 유람하던 양주팔과 임꺽정이 백두산에 들어갔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백두산의 원시림을 돌아다니며 야수를 사냥하던 경험 때문에 발걸음이 매우 빨라서 세간에는 축지법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호랑이를 얼룩이, 표범을 바둑이, 곰을 검둥이라고 부른다. 백두산에서 양주팔에게 장기를 배웠고 이후 엄청난 고수가 되었다. 덕분에 장기를 둬서 소문난 미인이던 봉산 이방 집 딸에게 장가도 들고 장인 덕택에 장교가 되기도 했다. 배돌석과 친하게 지냈으며 살인죄 때문에 사형을 당하기 위해 끌려가던 배돌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청석골 패들을 도와주는 바람에 제주도로 귀양간다. 마침 제주도에 부임을 왔던 이봉학이 힘을 써 귀양에선 풀려났으나 임꺽정이 이웃의 밀고로 입산하면서 역시 청석골패에 합류하게 되었다. 청석골 두령 중에선 가장 호인으로 산에서 살아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진한 면이 있다. 원작소설에서는 작품 중간에 청석골패의 관상을 보던 사람이 그가 가장 편하게 노후를 보낼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작품이 연중되면서 그게 어떤 건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게 되었다. 드라마에선 서림의 배신으로 관군에게 포위당해 담을 넘어 도망가는 중에 엉덩이에 화살을 맞고 쓰러져 감옥에 수감된다. 이 부분은 이두호 임꺽정을 차용한 것이다. 임꺽정과 두령들이 그를 구출하려 했으나 그 전에 상처가 도져 죽고 말았다. 서림의 배신으로 인한 첫번째 희생자.[14]
  • 곽오주(문용민)(1532년 ~ 1561년)
임꺽정 의형제들의 여섯째. 수호지의 흑선풍 이규에 비교될만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인간 백정, 살인 9단, 인간 분쇄기. 무고한 사람, 노인, 아녀자, 아이 가리지 않고 죽이는 인물이다. 살인을 먼저 논하지는 않는 다른 두령들관 달리 먼저 온갖 흉악한 말을 입버릇처럼 주워 섬긴다. 쇠도리깨를 무기로 사용한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비참한 일을 겪으면서 살인을 저지르고 비극적인 일을 많이 당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 하지만 젊었을때부터 그러진 않았는데 애처가이면서 순박하면서 힘만 센 순박한 농촌청년이었다. 비슷하게 세상물정 모르는 천왕동이와는 맞형동생이라 티격태격하면서도 죽이 잘 맞는다. 하지만 부인이 난산 끝에 세상을 뜨자 제대로 정신줄 놔버렸다. 이 때문에 아이 울음소리만 들으면 미쳐서 눈에 띄는 대로 아이를 살해하는 증세가 있다.[15] 재물만 뺏는게 아니라 쇠도리깨로 심심하면 팔다리도 분지르고 수틀리면 목숨을 뺏는 '흉악한 쇠도리깨 도적'으로 악명을 떨치는데, 드라마 전체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인물이다. 서림과는 앙숙으로 다른 두령들이 그 꾀를 인정할때도 끝까지 불신했다. 앙숙이라곤 하지만 서림이 처음 청석골 패에 잡혀 올 때, 살기 위해 자신을 임꺽정의 장인이라고 속였던 것을 시작으로 곽오주가 일방적으로 서림에게 딴지를 거는 셈이었다. 오죽하면 서림이 그런 오주의 기를 꺾으려고 산채의 군령을 빌어 벌을 내릴 정도였다. 참고로 북한에서 제작한 10부작 임꺽정 드라마에선 좀 다르게 나와서 툴툴대긴해도 진심으로 싫어하진 않는다. 나중에 서림이 감옥에 갇혔단 소식을 듣고 직접 구하러 갔다가 이미 관군 측에 붙어 배신한 서림의 칼에 찔려 죽는다. 드라마에서 최후에는 배신하고 관군측에 붙어있던 서림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나 이때 서림은 질질 짜는 척 연기를 하며 오주의 발 앞에 엎드려있다가 숨겨둔 단도로 오주의 발을 찔러버린다. 잽싸게 도망친 서림을 쫒아 수십명의 포졸들과 싸우게 되고 결국 숫적 열세로 사망. 이때 포졸을 스무명 정도 쓰러뜨려 관군이 경악을 한다. 사후 시체가 찢겨져 까마귀밥이 되고, 그의 쇠도리깨는 이후 유복이 발견하면서 그가 죽었단 것을 알게 된다.
임꺽정 의형제들의 막내. 곽오주와 함께 탑고개 담당. 청석골 패 중에서는 임꺽정 다음가는 장사. 소금장수 출신으로 양주를 지나가다 임꺽정과 팔씨름 대결을 벌이며 친해졌다. 이후 곽오주한테 맞아서 반쯤 병신이된 매형의 원한을 갚기 위해 청석골을 덮치고 곽오주와의 힘 대결에서 승리했으며, 곽오주를 끌고가 관가에 넘기려다가 임꺽정과 다시 만나게되었다. 이후 곽오주와 화해하고 호형호제하게 되었다. 이후 아내를 얻고 데릴사위 노릇을 하게 되었으나 장인의 형에게 밉보이며 청석골로 쫓겨나듯 들어가 두령이 되었다. 무기는 쇠방망이. 처가집 식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관군한테 잡히기도 하는 등 이래저래 팔자가 험한 인물. 실제 사료에 임꺽정 수하의 두령이 안성에서 잡혔는데 임꺽정 패가 쳐들어와서 구출해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길막봉 구출의 모티브가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청석골을 떠나 구월산으로 옮겨 갔을때 관군의 포위를 뚫고 식량을 구해오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었고 관군이 추격해오자 시간을 벌기 위해 최후미에서 맞서 싸우다 화살에 맞아 전사. 길막봉의 전사 이후 두령 급은 초반부 부터 임꺽정과 함께 했던 이봉학과 박유복만 남게 되었다. 직감도 장사치고는 상당해서 곽오주와는 달리 작전수행능력도 좋다. 배돌석과 짝을 이뤄 원정을 나가도 작전을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임꺽정 이외의 인물로는 오가와 함께 유이하게 사서에 이름이 남은 임꺽정 패거리. 청석골 종사관으로 산채의 실질적 2인자. 원래는 평양감영의 수지국 장사[16]로 이봉학과 더불어 청석골패 중 양반 생활을 한 유이한 인물. 수지국 장사는 7품으로 이봉학보다는 약간 낮은 품계였다. 사람이 머리를 잘 굴리기는 하는데 좀 간교한 면이 있어서, 공금을 횡령한 뒤 노모의 병세가 위중해 약을 구하려고 했다고 둘러댄다든지, 중국으로 진상하는 공물 중에서 몇 가지를 빼내 자신과 가까운 기생에게 주다가 걸려서 달아난다든지[17] 하다가 한 건 크게 터뜨리고 청석골에 오게 되었다. 잔머리와 허세에 능하고 특히 첫 만남 때 임꺽정 장인 행세를 한 탓에 곽오주는 서림을 매우 싫어한다. 온갖 계책으로 청석골을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도적패로 만들었으나 '엄가이' 라는 가명으로 암행어사 행세를 하며 주색잡기에 소일하다가 이를 수상히 여긴 관군의 밀정에게 고발을 당해 출동한 관군한테 체포된다. 후에 자신과 두고 왔던 가족들이 살기 위해 남치근의 앞잡이가 되어 임꺽정을 죽음에 몰아넣는다. 마지막 회에서는 토사구팽을 당했는지 거지 차림을 하고 반쯤 미친 모습으로 임꺽정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임꺽정을 잡아 죽였다고 소리친다. 대부분 야비한 캐릭터로만 나오던 서림이 여기선 좀 더 입체적으로 나온다. 탐욕이 많고 비겁하긴 하지만 사실 임꺽정 휘하에 있을 땐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며 책사 임무를 정말 충실히 수행했다. 그래서 알고보면 임꺽정의 조선 최고의 도적으로 만든 일등 공신.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청석골패는 어중이 화적떼로 남았고 임꺽정은 그냥 소나 잡다 인생 마쳤을 것이다. 죽을 용기가 없어 배신을 하긴하나 죄책감은 어쩌지 못해 남치근에게 잡힌 황천왕동이가 부상을 당했을때 당장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임꺽정의 처남이니 써먹을 데가 있을 거라는 구실로 처형을 미루고 부상 후유증으로 다 죽어가는 천왕동이를 어떻게든 살려볼려고 애썼다. 오가가 사로잡혔을때도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회유해서 살려보려 했다. 임꺽정이 죽은 후에도 그를 배신했다는 후회와 두려움을 못이겨 광인이 된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임꺽정 노래를 부르며 노는 아이들에게 '임꺽정은 죽었다. 내가 죽였다'며 설교하는 모습으로 등장. 그러나 아이들은 임꺽정은 살아있다며 그 설교를 부정하고 계속 노는데, 서림은 이를 보고 실실거리며 퇴장하고, 이를 마지막으로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흔히 오가라 불린다. 청석골의 터줏대감. 원래 청석골에 살던 화전농으로, 도적도 겸하고 있다. 복수를 한 뒤 도망 중이던 박유복을 털어먹으려다가 실패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와 아는 사이가 되며, 한동안 유복이와 함께 탑고개에서 도적질을 한다. 이후로도 전투 외 업무에서 활약한다. 주된 업무는 산채의 재물과 살림살이 관리. 젊었을 때에는 꽤 날렸다고 하는데, 곽오주한테 밀려서 절벽에서 떨어졌어도 살아난 걸 보면 정말로 상당한 고수였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죽은 뒤 사람이 변해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소설에선 자모산성으로 패거리가 거점을 옮길 때 자기 혼자 청석골에 남겠다고 한다. 이후 버려진 청석골에서 오가를 보좌하기 위해 남겨진 부하들이 흩어지는 것을 방관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청석골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인물. 드라마에서는 관군이 청석골을 습격했을 때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숨어있는 동굴이[18] 관군에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내가 임꺽정이다" 하고 외쳐서 관군을 유인하다가 붙잡혀 참수된다. 서림은 남치근을 설득해서 그를 살려주려고 했지만, 임꺽정 패를 위해 살기를 포기한 오개도치는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임꺽정 외의 인물로는 서림과 함께 유이하게 패거리 중에서 사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소개되는 그의 이름은 개도치이고, 정사에는 서림의 진술에 의해 '임꺽정의 형 가도치'라고 기록되어 있다. 공에 눈이 먼 관리가 그를 체포하고 임꺽정이라고 거짓 보고를 올린 바 있다.

2.2. 주변 인물


'봉단편'의 주인공. 연산군 시대에 교리 벼슬을 지내다가, 연산군에게 간언을 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자 함경도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백정 양주삼(양주팔의 형)의 딸 봉단이와 결혼했으며, 양반 나으리가 농민한테 개겼다고 다구리를 당한다든가 등 봉변을 엄청나게 당한다. 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자 한양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을 얻게 된다. 귀한 몸이 되었다고 해도 어려운 시기에 얻은 아내를 버리지 않고 정처로 삼은 의리있는 인물. 작중에서 중종에게 "네가 나보다 낫다."는 말을 듣는다. 참고로 중종은 공신들의 성화 때문에 왕후를 폐출해야 했다. 이후로 잘 살다가 죽는다. 드라마에서 임꺽정이 태어나기 전 1,2화의 주인공 격인 인물이다. 임꺽정과는 친척 관계. 봉단이가 임꺽정의 당고모이다. 모티브는 연산군 시대의 실존인물인 '이장곤'.
봉단의 친척으로 이교리가 다시 출세하게 되자 봉단과 같이 상경해 갖바치 노릇을 하며 살게 되었다. 별명이 '백정학자'로 세상물정에 통달해 있므며 한동안 조광조와도 친하게 지내는 등 뭔가 비범한 인물. 어린 꺽정이, 유복이, 봉학이를 돌보기도 했다. 후에는 출가해 꺽정이와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다 칠장사에 머무르며 생불 대접을 받았고 입적한 이후로도 계속 추앙을 받았다. 모티브는 중종, 인종, 명종조 야사에 등장하는 갖바치[19]로 인종이 그를 정승으로 등용하려 했다든지 조광조의 친구였다든지, 정난정의 스승이었으나 정난정이 흑화하자 인연을 끊었다 하는 숨은 현인으로 야사에 등장한다.
꺽정이의 아버지. 양주팔의 친척동생으로 등장하며, 3화부터 애기에게 장가들면서 꺽정이를 낳는다. 성격이 영락없는 꺽정이의 아버지고 부인을 여의자 후처를 들이는듯 젊은 시절엔 막장이었지만, 후처가 바람을 피자 정신을 차린다. 집안에서는 폭군이지만 언제까지나 집안이고, 백정이 근본이니만큼 시달림을 많이 받는 인물. 서림의 활약으로 턴 봉물짐 때문에 불려가 관가에서 볼기를 맞은 후 사망. 꺽정이가 청석골로 입산하는 계기가 된다.
  • 임백손(소년:전역산, 청년:정준)(1541~?)
꺽정이의 아들. 어릴 적부터 꺽정이처럼 당돌한 면이 있었다. 청석골에 관상쟁이가 왔을 적에 그를 보고 후에 병사 벼슬까지는 올라가겠다고 예측했는데, 연재를 시작할 때 홍명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그는 청석골패가 전멸한 다음 백손이의 행적까지 쓰려고 했던 것 같다. 드라마 마지막회에서 임꺽정이 관군들과의 최후의 일전을 준비할 때 남아 같이 싸우려 했지만 안 식구들을 돌보라는 임꺽정의 말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헤어진다.
임꺽정의 아내이자 황천왕동이의 누나. 꺽정과 만나기 전엔 백두산 곰들이 벌벌 떨던 여자 사냥꾼이었다. 임꺽정과 혼사를 올렸지만 한양에 간 뒤 한참동안이나 돌아오지 않는 임꺽정으로 인해 마음 고생을 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임꺽정이 주력과 함께 산채를 비웠을 때 관군들에게 기습을 당하자 거칠게 저항하다 자결한다.
한양에서 한가닥하는 장물아비. 임꺽정이 도적이 되기 전부터 알던 사이다. 원작에서는 한첨지와 그 아들 한온으로 두 사람이 등장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아버지 이름을 한온으로 하여 분량을 몰아주고 아들은 단역으로만 잠깐 나온다. 임꺽정이 빼앗아온 사치품을 깨끗하게 세탁해 돈으로 만들고 무기, 약재 등 청석골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해 준다. 더 나아가서 중앙에 뇌물을 찔러줘서 임꺽정을 보호하는 인물. 그러나 남치근에게 꼬리를 밟혀 임꺽정 일파인 것이 들통나 사로잡힐 뻔 했으나 극적으로 한양을 탈출해 임꺽정에게 달려간다. 이 와중에 임꺽정의 애첩 중 한 명은 관군에 의해 죽음을 선택하고 나머지 둘은 관비가 되었다는 것을 임꺽정에게 알려준다. 이후 청석골에서 지내지만 임꺽정이 관군들을 급습하기 위해 주력들과 산채를 비웠을 때 이를 예측한 서림의 안내를 받은 관군의 공격을 받아 처참하게 죽는다. 42화에 등장한 이 기습 장면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군대가 힘없는 양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장면을 처절하게 묘사해낸 명장면이다. 사람을 파리잡듯 죽이는 게 어떤 건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곽능통(정승호)
청석골 패의 일원. 두령이 아닌 일반 부하들 중에선 가장 비중이 높은 편이다. 본래는 소작농이었으나 흉년에 꾸어온 쌀을 갚지 못해 터전을 잃고 20여명의 부하들을 이끄는 화적이 된다. 본래는 여느 화적과 다를바 없이 살았으나 양주팔을 만나 설법을 듣고 나름 의적 행세를 하며 살았다. 이때 양주팔에게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와 언젠가 그가 찾아올 것이란 예언을 듣는다. 관가에 사로잡힌 길막봉을 구하러 어물장수로 위장한 채 이동하던 임꺽정 일행을 털려다 임꺽정의 괴력에 제압당하고 협력하게 된다. 길막봉을 구출한 후 그대로 청석골 패에 합류. 대장 직속 부하가 된다. 임꺽정의 전속부관 쯤 되는 인물. 약삭 빠르고 칼솜씨도 괜찮아서 임꺽정이 한양으로 한온을 만나러 갈 때나 황해도의 화적패들을 규합할 때 곁에서 수행했고 관군 진영 정찰이나 도시에서 소식을 알아보는 일도 곧잘 맡았다. 드라마에서는 두령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갈 때도 살아남아 마지막 구월산 전투까지 참전하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한다. 그래도 주인공 임꺽정과 이봉학, 박유복 3명을 제외한 다른 두령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음란마귀[20]에다 입이 싸고 무게감 없는 찌질이인 데다 윤문식의 특유의 구수한 연기로 드라마의 재수없지만 감초 역할을 하는 캐릭터. 애꾸눈의 도적으로 처음에는 임꺽정 행세를 하며 임꺽정을 협박하며 등장, 이후 진짜 임꺽정을 알아보고 깨갱하며 임꺽정을 쫓아다닌다. 이후 한온에게 빌붙어 서울에서 노름이나 하며 재산을 탕진하고 주색잡기를 하다가 임꺽정이 서울에 왔을 때 뒤를 미행하던 남치근의 부하 백치수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다.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청석골에 관한 사항을 모조리 불어버린다. 서림을 잡는 데도 앞장섰으며 남치근이 토포사가 되어 출병할 때 졸개로 종군한다. 그러나 청석골에서 비싼 재물을 몰래 빼돌리다가 발각되어 가뜩이나 인성이 막장인 그를 혐오하던 남치근이 이를 보고는 분노하여 그의 손에 의해 충공깽스럽게도 남은 눈 하나를 뽑히고 참수당한다.

2.3. 조정 관련 인물들


첫화 첫 등장인물로 이름을 올린 인물. 여기서는 역사 그대로 신하를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막장짓만 골라서하다가 폐위된다.
조선의 제11대 왕, 봉달이 편에서 잠깐 나와 이교리의 아내를 백정의 신분에서 양반의 부인으로 격상시켜준다.
  • 명종(이효정)(1534~1567)
조선의 제13대 왕, 취급이 영 좋지 않다. 어린 시절 문정왕후에게 뺨까지 맞는 안습한 모습으로 나온다.[21] 성년이 돼서는 35화부터 처음 등장하는데 조정의 대신들이 임꺽정에 대해 왈가왈부 논할때 골머리를 썩히는 모습을 나온다. 이후 남치근을 토포사로 임명하고 임꺽정을 토벌하라 명한다 특징이라면 극중 명종의 나이가 20대 중~후반인데 당시 이효정 은 30대중반이라 심히 노안. 극중에서도 동생인 이기영의 배역인 배돌석이 명종보다 10살 더 많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유명한 원로 배우지만 이 작품에선 찌질한 연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걸 보여준다. 문정왕후의 사주를 받고 김륜과 함께 인종을 저주하다 임꺽정에게 걸려서 먼지나게 두들겨 맞고 싹싹 빌어서 빠져 나온다. 권력을 쥔 이후론 임꺽정에 대해 골머리를 썩히며 때로는 징징거리는 모습도 나온다.
  • 이억순(신귀식)
단천령이라는 호칭을 가진 왕족이자 임꺽정을 옹호하는 조정의 청렴한 관리. 후에 홀로 유람을 떠돌아다니다가 임꺽정의 부하에게 생포됐으나 그가 피리를 잘부는 이임을 안 임꺽정 앞에서 피리를 분다. 이때 임꺽정은 그 피리를 듣자 과거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회한에 사로잡혀 눈물을 보인다. 임꺽정의 호의로 무사히 돌려보내진다. 떠나기전 임꺽정에게 살생을 자제하라는 충고를 남겼다. 역사적으로는 임꺽정이 만난 단천령이란 인물은 기록마다 엇갈린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왕실의 종실 단산수 이수라는 인물이고,후대의 인물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는 1560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과 함께 종실 출신의 주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금연주자로 기록했다. 단천령 이억순은 박동량의 기재잡기에 등장한다. 아무튼 셋다 종실 출신의 피리를 잘 부는 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억순은 사족으로 오리 이원익의 숙부였다.
조정이 내린 보낸 토포사. 냉정하며 엄격한 무인. 사사건건 임꺽정을 체포하기 위해 계략을 꾸미며 점점 그의 숨통을 죄어온다.
9화에 첫 등장. 백두산에 온 임꺽정과 조우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운운하며 세상에 나와 천하의 중들을 내려다 보겠다는 야심을 드러내지만 임꺽정에게 고작 만만한 중들만 내려본다고 하냐며 핀잔(?)을 듣는다. 이후 임꺽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양주팔을 만나게 된다. 양주팔이 빈대를 잡는 걸 보고 왜 절에서 살생을 하냐고 따지지만 양주팔은 본인이야 고작 빈대나 잡지만 보우는 장차 사람을 잡을 인간이라는 평을 한다. 이후 석가의 일화를 들어 얘기를 하지만 양주팔은 그 의미가 본인을 모욕하면 아귀나 축생이 된다는 말 아니냐고 따지면서 이런 땡중들이 자주 쓰는 말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대꾸한다. 뒤이어 법화경 3천번도 읽지 못한 놈이 불법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려 한다고 꾸짖는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나머지 양주팔을 살해하지만 도망쳐나오면서 마주친 건 자신을 노려보며 꾸짖는 양주팔이었다. 양주팔은 중생을 계도하겠다는 승려가 사람을 해치려 하냐며 꾸짖는다. 이어 목침을 하나 내주면서 그걸 어리석고 용렬한 너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원래 있던 절로 돌아가 수행에 전념하라 이른다. 하지만 양주팔이 직후 세상이 또 한번 어지럽겠다며 한탄한다. 이후 문정왕후와 가까이하며 국사를 논하는 간신이 되는데 여론은 좋지 않은 모양. 이후 12화에서 제법 호화롭게 행차를 하다가 양주팔에게 걸려 또 다시 망신을 당한다.
서림 편에서 나오는 평안감사. 한양에 봉물을 보내지만 털린다.
20화에 등장. 서림과 한 때 같은 일을 했다. 서림의 허물을 가지고 서림을 곤경에 빠뜨린 전적 때문에 서림의 미움을 사 누명을 쓰게 된다. 이후 평안감사의 명을 받고 봉물을 운송하는 무리의 행수가 되지만 청석골 패에게 걸려 봉물 짐을 모두 날려 먹는다.
  • 김양달(김영인)
21화에 등장. 임꺽정 만큼의 용력과 무예를 지닌 강직한 무인이지만 주색잡기를 좋아하는 게 문제다. 청석골 패에서도 그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를 봉물 짐 행렬에서 떼어놓으려고 별 짓을 다했다. 이도저도 안 통하다가 결국 송도지역에 굿판이 열리는 곳으로 유인하여 봉물짐이 있던 객주로 떼어네는 데 성공하고, 본인은 무당에게 홀랑 넘어가 한눈을 파는 사이 예방이 납치되었고 이 혼란 속에 다시 예방을 구하러 가는 사이 봉물 짐이 모두 털린다. 이후 자책하다 자살한다.
36화와 37화에 등장. 봉산 군수에 임명되자 남치근에게 임꺽정을 백정놈의 자식이라며 적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은 다른 보신주의 사또들과 다르게 임꺽정을 잡을 것이라고 호언장담 한다. 이 과정에서 남치근의 신경을 긁는 바람에 남치근의 목소리가 경박한 어조로 변한 게 개그 포인트. 이후 봉산군으로 부임하러 가는데, 도적에게 부모의 목숨을 잃었다는 한 여인을 수하로 두게 된다. 이후 그 여성의 미인계에 넘어가 배돌석 일당에게 납치되는 신세가 된다. 결국 추격을 따돌리고자 서림에 의해 강물에 버려지는데, 이 때문에 감기에 걸려 안절부절하게 된다(...). 이후 오개도치와 이봉학이 양반으로 변장해 방문하는데 임꺽정을 자신의 활솜씨로 잡겠다느니 임꺽정의 수염을 뽑아버리느니 하며 허세를 계속 부린다. 다음날 이봉학의 도발[22]에 넘어가 약수터로 유인 되었고, 배돌석과 곽오주로부터 망신을 당하게 된다. 결국 임꺽정에게 잡히지만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는 굴욕을 보여줬고 곽오주에게 수염을 몽땅 뽑힌다. 이렇게 망신을 당하자 결국 봉산 군수에서 잘린다. 허세가 쩔어주지만 실상은 허당개그 캐릭터.
명종 시절이라 어린 이순신이 등장한다. 한양을 찾은 임꺽정이 앞으로 있을 큰 난리에서 나라를 구할 인물이 건천동에 살고있다는 양주팔의 예언을 떠올리고 이봉학과 함께 건천동을 찾았을때 등장.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습진놀이를 하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이순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차용하여[23] 진에 걸어들어온 임꺽정과 이봉학을 두고 진을 범하는 자는 군법에 따라 죽여마땅하니 활로 쏘라고 지시한다. 물론 애들이 쓰는 장난감 활이라 아무 일도 없었다. 어린 게 괘씸하기도 하고 당돌한 모습에 흥미도 동한 임꺽정이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혼내준다고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자 어린 이순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임꺽정의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수염이 참 좋소라는 명대사를 날린다. 이에 임꺽정은 껄껄 웃으며 보내준다.

3. 에피소드 목록



3.1. 1부


1화 광풍
2화 봉단이
3화 백정의 아들
4화 혜화문 갖바치
5화 삼형제
6화 주정뱅이 스승님
7화 이나라 이강산
8화 백두산 야생마
9화 난세
10화 여인천하[24]
11화 사랑
12화 사나이 눈물
13화 천궁[25]

3.2. 2부


14화 표창의 명수 박유복(상)
15화 표창의 명수 박유복(하)
16화 쇠도리깨 도적 곽오주(상)
17화 쇠도리깨 도적 곽오주(하)
18화 소금장수 길막봉
19화 축지법도사 황천왕동
20화 돌팔매의 귀신 배돌석(상)
21화 돌팔매의 귀신 배돌석(하)/신궁 이봉학(상)
22화 신궁 이봉학(하)
23화 천하모사 서림(상)
24화 천하모사 서림(하)

3.3. 3부


25화 백정일가
26화 입산
27화 청석골
28화 칠형제
29화 결의
30화 거짓말쟁이 노밤이
31화 영웅호색
32화 무주공산
33화 대두령
34화 산채
35화 황해도땅
36화 암행어사
37화 올가미
38화 복수
39화 의적
40화 배신
41화 평산쌈
42화 토포사
43화 형제여
44화 구월산의 메아리

4. 기타


희한할 정도로 TV 드라마에 대한 심의가 관대한 시절에 나온 작품인지라, 요즘 기준에서 보면 심의에 저촉될만 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은근히 잔혹한 묘사가 많은 편인데, 주인공들부터가 범죄자인 도적인데다가 작가가 굳이 그 행실을 쉴드쳐주지도 않아서 온갖 비행을 심심치않게 저지른다. 곽오주가 정신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다른집의 갓난 아기를 억지로 빼앗아서 우물에 던져 죽여버리거나, 오개도치가 처형당한 후 그 목이 잘려 효수되는 등[26] 하드코어한 장면이 넘쳐난다. 노밤이 첫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산속에서 도적에게 강간, 살해당한 여인의 시체를 노밤이 겁탈하려다가 임꺽정에게 걸려서 호되게 혼이 나는 등 요즘 기준으로도 쇼킹한 에피소드가 심심치않게 튀어나온다. 일단 사람 써는 장면은 매 화 나온다고 보면 된다.
잔혹한 장면 외에도 원작소설의 대사 등을 살리는 차원에서 일종의 해학 측면에서 그대로 살린 남자들간의 음담패설스러운 대사들을 그대로 살려 요즈음의 PC(정치적 올바름) 지향적인 추세라면 나오지 못할 수위의 걸쭉한 대사들도 자주 나온다. 등장인물들이 간밤의 잠자리 소재로 나눈 농담 등이 요즘 사극에선 보기 힘든 수위. 그리고 민망할 정도의 노출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탐관오리나 지방토호의 행패 등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일부 선정적인 장면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가령 양반이 자기 집 종을 겁탈한다거나 하는 장면 등. 대장금, 동이, 옥중화 등 여성 주인공이 부각되는 이병훈표 사극이후 많은 사극이 순한맛으로 변해버린 요즘 사극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조금 하드코어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요소.
연출자인 김한영 PD가 MBC 출신이어서인지 조연/단역배우 중 MBC출신 연기자들이 상대적으로 KBS 출신보다 많이 보인다. 김한영 PD는 전원일기 초창기 연출진 중 한 명인데, 그 때문인지 응삼이를 비롯한 전원일기 출연진 여럿이 청석골패 졸개들로 나오는 등 전체적으로 MBC 출신 연기자들이 많이 출연했다.
사계절을 담아내고 인원도 많이 투입한 대작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도 영상미 등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이는데, 오히려 같은 SBS에서 더 일찍 방영했던 김종학 PD의 모래시계와 비교해도 촬영이나 연출이 좀 촌스러운 느낌은 있다. 모래시계는 방영은 SBS에서 한 거지만, 제작은 스타PD 김종학 PD의 외주프로덕션이었는데, 임꺽정은 자체 제작이었고, 사실 2000년대 이전의 개국 초창기 SBS의 제작능력은 경쟁사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요즘의 종편이나 케이블처럼 거액으로 스타 PD를 스카웃해서 화제작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래시계가 특이한 경우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요즘의 종편이나 케이블도 개국 후 몇년은 맨땅에 헤딩하는 기간이 있다. TVN도 응답하라 시리즈로 자리잡기 이전에 선정적인 tvNGELS 같은 포맷으로 버티던 초창기와 비슷하다. 더구나 요즘의 종편/케이블은 이미 방송산업이 많은 부문 외주화되었고, 촬영장비의 소형화, 디지털화 등으로 제작기술과 인프라 등이 상당부문 평준화된 시점이라 스타작가와 연출자 정도만 스카웃해도 바로 고품질의 드라마를 뽑아낼 수 있지만, 당시 새로 개국한 SBS는 KBS나 MBC에서 인력 빼오기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상당기간 제작인력이나 기술진 들의 노하우가 경쟁사보다 좀 처지던 시절이었다.

[1] 사실 1980년대 ~ 2000년대는 케이블 채널 방영 영화에서도 흉기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2010년대보다 심의가 자유로웠다.[2] 사실 여인천하도 지나친 방영 기간 늘려잡기 등 문제가 꽤 많은 사극이었음에도 그 뒤의 사극 퀄리티들이 워낙 처참해서...[3] 애초 이 배역에는 최민수 유동근 김영철 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이들 중 유동근은 KBS 2TV 조광조 담당 연출자 엄기백 PD의 설득에 <임꺽정>에서 <조광조>로 방향을 바꿨으며 <조광조> 집필자 정하연 작가는 <임꺽정>과 경쟁한 작품 중의 하나이자 유동근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 KBS 1TV 용의 눈물 집필자로 낙점되었으나 <조광조>를 끝낸 지 얼마 안 돼 사극을 쓰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고사했으며 <임꺽정>은 당초 연극인 이윤택 한테 각색을 맡겼지만 "작품 해석상 차이" 때문에 김원석 작가로 전격 교체됐다.[4] 하지만 <임꺽정> 뿐 아니라 SBS 일요 예능 프로그램 <코미디쇼 대단한 일요일>, 97년 1월 시작된 자사 주말 드라마 <꿈의 궁전> 등 동일 채널 3회 중복 출연 때문에 따끔한 눈초리를 사야 했다. 이게 잘 와닿지 않는다면... 일요일 6시부터 11시까지 sbs프로그램에 쉬지않고 김원희가 출연한 거다.[5] 참고로 유인촌은 이미 1987년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연산군'에서 연산군 역할을 연기했었다.[6] 아래 김흥기와 같이 이쪽도 겹치기 출연. 용의 눈물에서 회안대군 이방번을 맡았다.[7] 다만, 이 시기에는 겹치기 출연이 크게 문제되진 않았다. 물론 긍정적인 시선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어느정도 연기력과 흥행이 보증된 배우는 이곳저곳에서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후 2000년대에 연예기획사들이 크게 성장하여 동일한 연예인이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하는 상황이 이슈가 되었고, 연예기획사와 방송사 간 갈등이 발생하면서 사실상 겹치기 출연은 불가능해졌다.[8] 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성인 김수남 역을 맡았으며 이후 프로 게임 구단 감독을 맡은 그 사람 맞다.[9] 그리고 이 통행세 기준은 징수하는 수하들 마음대로라서 좀 귀한 물건보이면 별도로 가로채 꿀꺽하는데 의적이라기보단 조폭이다. 드라마가 주인공패를 절대선으로 묘사하지 않고 균형을 잘 잡았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실제 임꺽정도 이렇게 양반은 물론 평민까지 도적질을 일삼았다.[10] 관아에서 일하는 기녀였지만 다른 하인에게 강간당하고 목을 맸다.[11] 조선시대의 초급장교이다.[12] 하지만 후술할 서림과 더불어 이 작에서는 품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13] 관직에 있을 때는 도적이 된 박유복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14] 사실 황천왕동이 캐릭터는 원래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아서 임꺽정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인물이었다. 그런데 황천왕동의 배우 김홍표가 촬영중 부상으로 목발을 짚게되어 어쩔수 없이 죽음으로 하차하게 된것이다. 배우인 김홍표도 아쉬운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기 캐릭터가 이 황천왕동이 캐릭터였는데, 부상으로 하차해서 인기를 이어갈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15] 이 증세는 청석골이 토벌당한 이후 충격을 받아 나았는지, 울고있는 아이를 안아 달래주는 모습을 보인다.[16] 지방의 행정 업무를 하는 사무직. 종7품이었다.[17] 조선에서 공물을 횡령하는것은 중죄였다.[18] 이 동굴은 과거 오개도치가 도적을 토벌하러 온 관군으로부터 아내와 함께 몸을 숨기곤 했던 곳이라 하였다. 중반에 한번 임꺽정과 두령들에게 이 장소를 소개하기도 했다.[19] 가죽신발을 만드는 장인을 뜻한다.[20] 얼마나 색을 밝히는 게 심한지, 산속에서 도적들에게 강간살해당한 여자의 시신을 보고는 겁탈하려다 임꺽정에게 걸려서 쓰레기 취급당하는 장면도 나온다.[21] 다만 명종은 문정왕후가 가장 아끼는 자식인터라 명종의 빰을 친것은 실화가 아닌 야사이다.[22] "저래 가지고서야 임꺽정이를 어찌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23] 징비록에 기록된 어릴때 나무를 깎아 활을 만들어 전쟁놀이에 열심이었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른이 있으면 활로 눈을 쏘려고 했다는 일화.[24] 공교롭게도 5년후에 이 제목으로 한 드라마가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되었으며, 문정왕후정난정이 등장하는 등 시대적 배경도 같다. 물론 양쪽 모두 월탄 박종화의 소설 제목에서 따왔으므로 우연은 아니다.[25] 도축장을 당시는 그렇게 불렀다.[26] 심지어 오가 역의 배우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중견배우 임현식 이다. 순돌이 아버지가 목이 잘려 매달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