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넷 잭슨/커리어
1. 개요
자넷 잭슨의 생애 및 활동을 다룬 문서이다. 데뷔 이전과 데뷔 후가 확실히 나뉘는 타 아티스트들과 달리, 자넷 잭슨은 잭슨가 언니 오빠들과 마찬가지로 유년기부터 미국 연예계에서 활동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2. 생애 및 커리어
2.1. 1966~1981: 유년시절 및 방송 데뷔
자넷은 1966년 5월 16일, 인디애나 주 게리(Gary)에서 잭슨 패밀리(Jackson Family)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음악가 집안인 이유로 그녀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진로를 탐색할 틈도 없이 어린 나이부터 가수를 준비하게 된다. 1974년, 8살의 나이에 언니 라토야 잭슨과 처음으로 쇼 무대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 1976년에는 당시 남자 형제들만 출연하고 있었던 TV프로 'The Jacksons'에 언니 레비 잭슨[1] , 라토야 잭슨과 함께 첫 출연한다. The Jacksons는 그녀의 최초의 방송커리어로 이후 1977년 11살의 나이에 시트콤 'Good Times' , 드라마 'Different Strokes' 등에 출연하며 아역배우의 길을 걷는다. [2] 그러던 중 언니 라토야 잭슨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게 되고, 백 코러스를 맡으며 언니의 곡을 따라 부르던 중 아버지 조셉 잭슨의 눈에 띄게 되어 솔로 아티스트로의 데뷔를 권유받는다. 자넷은 당시 변호사나 기수를 지망했기에 거절했지만, 녹음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고는 솔로 가수로의 데뷔를 결심했다고 한다.
2.2. 1982~1985: 가수 데뷔
1982년 A&M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16살의 나이에 1집 앨범《Janet Jackson》을 발매한다. 수록곡은 대부분 디스코/펑크 장르로 구성되었다. 퍼포먼스, 댄스보다는 음악 자체에 비중을 두었다. 싱글 Young Love와 Come Give Your Love To Me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58, 64위에 올랐으나 잭슨가라는 타이틀 외에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이후 1984년 오빠 말론 잭슨이 프로듀싱 한 2집 앨범 'Dream street'를 발매하지만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 실패하며 1집보다 더욱 저조한 반응만 얻는다. 이 무렵 자넷은 어릴 적부터 친해왔던 가수 제임스 드바지(James Debarge)[3] 와 사랑에 빠져 18살의 나이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게 된다.[4] 그러나 결혼 후 가족과 점점 사이가 멀어진데다 남편 드바지는 마약 중독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결국 자넷은 고심 끝에 1985년 이혼을 선택하며 드바지와의 결혼 생활을 끝마치게 된다. 이 시기 자넷은 연이은 앨범 부진과 이혼으로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2.3. 1986~1988: 거대한 성공
1집과 2집의 실패 이후 자넷은 큰 결심을 하게 되는데, 바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그동안 자신의 매니저로서 연예계생활을 뒷받침해준 조셉 잭슨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5]
이후 아버지 밑에서 독립한 자넷은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A&M 레코드의 수석 부사장인 존 매클레인의 철저한 기획과 관리 아래 보컬 훈련, 다이어트, 댄스 레슨을 받는 등 고된 훈련을 받게 되고, 이후 프린스의 밴드 The Time의 멤버였던 Jimmy Jam과 Terry Lewis를 소개받아, [6] 그들과 함께 3집 앨범 'Control'을 프로듀싱한다.
1986년 2월, 자넷은 3집 《'''Control'''》을 내놓는다.[7]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1위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92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대히트를 치게 된다.[8] 또한 세 번째 싱글 When I Think of You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3주 동안 1위를 차지했으며, 앨범에서 컷된 싱글 7개 중 무려 5개의 싱글이 빌보드 차트 Top 5[9] 에 드는 쾌거를 기록한다.[10] 또한 폴라 압둘이 맡은 각 싱글의 안무가 인기를 얻으며 연일 화제가 되었다.[11] 이 앨범의 성공으로 자넷은 언론으로부터 '차세대 도나 서머'라는 타이틀과 함께 평단과 대중 양쪽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특히 3집 앨범 《Control》은 8,90년대 팝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매우 중요한 앨범이기도 한데, 이 앨범이 뉴잭스윙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서 보여준 Funky, R&B스타일의 음악을 기반으로 한 강렬한 댄스 비트 스타일은, 이 앨범 이후로의 많은 흑인 댄스 가수들, 예를 들면 바비 브라운, Lisa Lisa & Cult Jam, Karyn White, Jody Watley를 비롯해 80년대 주류 흑인 댄스 음악의 스타일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길게 보자면 초기 뉴잭스윙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들어도 신선한 사운드는 당시 팝계에 미친 임팩트가 엄청나게 컸음을 보여준다.
또한 당시로서는 드물게 싱글컷한 7개 싱글 중 6개의 뮤직비디오를 모두 제작했는데, 뮤직비디오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자넷은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에 이어 뮤직비디오의 시대 개막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비쥬얼 스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
이 앨범 한 장으로 자넷은 1987년 빌보드 어워즈에서 6관왕을 달성함과 동시에 그래미 어워즈에도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또한 AMA에서는 12개 부문의 후보로 오르며 4관왕을 달성한다.
3집의 대성공은 잭슨 패밀리의 후광이 아닌, 독립적인 아티스트로서 혼자 당당히 일구어낸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이후의 음악활동에서도 자넷은 가족의 영향력 아래가 아닌,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위해 본인만의 앨범 작사/작곡란에도 성 Jackson을 제외한 이름 'Janet'만 표기하거나, 아예 5집 앨범명을 셀프 타이틀 <janet.>으로 정하는 등 아예 본인만의 독자적 음악 커리어를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1987년에는 Herb Alpert와 함께한〈Diamonds〉가 싱글차트 5위까지 치고 올라가며 성공을 이어간다.
2.4. 1989~2003: 화려한 전성기
3집 앨범이 그녀를 미국 내에서 확고한 스타덤에 올려놓은 앨범이었다면, 1989년 발매한 4집《Janet Jackson's Rhythm Nation 1814》는 그녀를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만드는 계기가 된 중요한 앨범이다.
무엇보다 메시지의 측면에서 앨범이 거둔 성과는 한층 돋보였는데, 3집이 팝스타 패밀리 출신에서의 '홀로서기'에 관한 의지를 표출했다면, 이번 작에서는 개인의 자유부터 사회문제[12] 로 시각을 확대시켰다.
4집은 자넷의 커리어에서도 중요한 앨범이지만, 아티스트로서의 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앨범이다. 특히 팝 댄스 앨범 중에서는 독특하게 전체 앨범의 수록곡들이 Interlude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록명반들에게서 보이는 컨셉 앨범의 성향이 짙은데, 아무래도 이 앨범에서 자넷이 이야기 하고픈 여러 가지 사회 이슈들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이런 컨셉 앨범의 포맷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듯하다. 이와 같이 전곡이 Interlude로 연결되어 '컨셉앨범화' 한 포맷은 이 이후로도 쭈욱 이어지게 되며[13] , 자넷 앨범의 트레이드화 되었으며, 수많은 후대 가수들이 이러한 컨셉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1980년대 기준으로서 이전에 없었던 여성 가수의 밀리터리 스타일, 파워풀한 군무는 굉장히 센세이셔널 했고, 이러한 컨셉은 댄서들은 물론 수많은 후대 아티스트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특히 4집은 빌보드 싱글차트 Top5에 진입한 곡이 무려 7곡인데, 이는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은 어마어마한 기록이다.[14] '''그중 차트 1위 곡은 무려 4곡.''' 지금이야 리패키지로 얼마든지 성과를 낼수 있지만[15] 그냥 한 앨범에서 7곡의 싱글컷을 해서 그 곡이 전부 Top5에 올랐다는 건 실로 엄청난 기록이다.
또한 한 앨범에서 낸 싱글들이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1989년 첫 싱글로 낸 <Miss You Much>가 빌보드 4주간 1위, 1990년 <Escapade>와 <Black Cat>이 1위, 1991년 <Love Will Never Do(Without You)>가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며, 이 앨범 하나로 3년에 걸쳐 Hot 100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앨범을 연말에 발매하는 방식으로 2년 연속 1위 곡을 배출하는 경우는 많지만, 3년 연속 기록은 사실상 자넷 잭슨이 유일하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200만 장 가량 팔렸으며, 특히 미국 내에서만 85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6×Platinum 인증을 받으며 1990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첫 월드투어 Rhythm Nation World Tour 1990를 개최하며 북미를 포함한 일본, 홍콩, 유럽 등을 방문하게 된다.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으면서 투어를 성공시키게 되고, 첫 투어에서 당시 기준 28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게 되는데, 이는 1990년 팝스타 투어 수익 순위에서 5위, 여성 아티스트로는 수익 순위 탑10에 오른 유일한 아티스트이며, 현재까지 첫 투어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아티스트로 기록된다.
이 당시 그녀가 입었던 검정 제복과 바지, 그리고 열쇠 귀걸이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로 인식되고 있다. [16] [17] [18]
90년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며 명실상부한 레전드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이후 91년 A&M을 떠나 버진 레코드로 이적하게 되는데, 이 때 계약금이 당시 최고 금액이었던 4천만 달러였다.
5집 앨범 제작 이전부터 자넷은 큰 고민에 빠졌는데, 자넷 본인은 그 전부터 본인의 건강한 섹시미를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19] ,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특히 아버지) 때문에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20] 하지만 집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스타일을 추구했던 자넷이기에 본인이 5집 활동부터는 이전부터 원했던 '(흑인)여성으로서의 당당한 자신감, 섹시함을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한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 5월, 셀프 타이틀 앨범 《janet.》이 발매되었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총 1400만 장을 판매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키는데, 특히 선공개한 첫 싱글인 <That's The Way Love Goes> 는 부드럽고 잔잔한 멜로디 위에 리듬을 결합시키는 독특한 구성으로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8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인기에 힘입어 약세였던 UK 차트에서도 2위를 차지하게 된다. 총 6개의 싱글이 싱글차트 탑텐에 들어갔고, 첫 싱글과 'Again'이 싱글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이 앨범의 첫 주 판매량이 35만장 이었는데, 당시 여자 가수중 첫 주 판매량 넘버원이었다. 음악적으로는 팝, R&B적인 기반위에 힙합, 스윙재즈, 트립합, 테크노하우스, 록, 클래식오페라, 딥하우스 같은 다양한 요소를 도입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자넷은 이전의 파워풀한 댄스와 더불어 여태껏 시도하지 않았던 섹시 컨셉의 조화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완전히 성공하며, 차세대 섹시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음악적 변화도 컸는데, 이전까지는 빠르고 강렬한 비트의 댄스곡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 앨범은 부드럽고 잔잔한 R&B곡, 힙합 같은 흑인 음악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음악스타일의 변화와 더불어 앨범 주제도 이전의 사회 문제에서 더 나아가 성(性), 사랑 등을 다루었다. <That's the way love goes>에서는 여성의 주도적인 사랑을 주장하였고, <If>, <Anytime Anyplace>, <Throb> 등의 곡에서는 섹스를 대담하게 노래했으며,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음악 노선과 컨셉을 각인시켰다. 당시가 1990년대 초반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굉장한 센세이션이었다. 특히 <Anytime Anyplace>의 뮤직비디오는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기준으로도 굉장히 파격적이다.
아래 영상은 전작과는 확연히 달라진 이미지를 한껏 보여준 1993년 MTV Music Awards에서의 That's The Way Love Goes & If 메들리 공연 [21]
이 시기 자넷은 투팍 샤커와 함께 할렘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 <Poetic Justice>의 여주인공인 저스티스(Justice)를 연기하며 영화 배우로도 데뷔한다. 당시 엄청난 라인업으로 큰 화제가 되었지만, 영화 자체는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TLC, 투팍, 어셔 등이 참여한 사운드 트랙이 큰 인기를 누렸고,[22] 앨범 싱글이자 영화 OST로 쓰인 <Again>이 빌보드 싱글차트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자넷이 영화에서 입고 나왔던 청바지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이슈가 되었고 흑인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1993년 9월에는 롤링스톤지 메인커버를 장식하는데, 수위가 엄청났기에 큰 화제가 되었다.후방주의 워낙 파격적이었기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유명한 사진이다.[23][24] 참고로 사진서 자넷의 가슴을 움켜지고 있는 손의 주인공은 프로듀서이자 당시 남편이었던 르네 엘리존도 주니어.
이후 1995년까지 월드투어 <Janet World Tour>를 성공적으로 개최한다.
1995년에는 약 82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 앨범 《Design of a Decade 1986~1996》를 히트시키며 마돈나와 함께 여성 댄스 가수 투톱 체제를 굳건히 유지한다.[25] 베스트 앨범에는 신곡 <Runaway>, <Twenty Foreplay>가 수록되었는데, 싱글 Runaway가 뮤직비디오의 인기에 힘입어 빌보드 싱글차트 3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그녀의 인기를 입증했다. 이 시기 그녀는 마돈나와 함께 'Queen Of POP'이라는 타이틀로 평론가들에게 불리기 시작한다.
동년 95년에는 오빠 마이클 잭슨의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 앨범의 싱글 <Scream>에 참여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다. 뮤직비디오 제작비만 700만 달러가 투입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그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26]
자넷은 2년간의 공백기 동안 감정기복이 심해지며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우울증 극복 이후 좀 더 깊고 성숙해진 감성을 바탕으로 1997년 6집 정규앨범 The Velvet Rope가 발매된다. 매우 어두운 분위기를 띠는 이 앨범은 자아, 인간관계, 감정, 사랑, 심지어 가정 폭력이나 동성애 [27] , BDSM 같은 전작들에 비해 심오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특히 다양한 장르를 한 앨범에 녹여냈던 이전 앨범과 달리, 이 앨범은 당시 강세를 보이던 힙합과 R&B 등 흑인음악이 주를 이뤘으며, 섹스 어필도 전작에 비해서 한층 더 노골적이고 깊어졌다.
이 앨범은 자넷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음악성이 뛰어난 앨범으로 손꼽힌다. 평론가들은 자넷의 앨범 중 가장 고급스럽고 자넷다운 사운드를 담은 앨범이라며 연일 극찬했으며,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의 비대중적인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세계적으로 800만장의 높은 판매고를 올린다.
1997년 9월 발매한 첫 싱글이자 선성글인 <Got Til It's Gone>은 모든 것들은 빈자리가 느껴질 때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감동적인 내용의 곡으로, Q-Tip이 피쳐링 했으며, 당시 트렌드였던 힙합을 바탕으로 한 R&B곡으로, 자넷의 대표적인 Slow Jam으로 손꼽힌다. 눈여겨볼점은 포크송의 여제 조니 미첼의 Big Yellow Taxi를 샘플링 했다는 것. 힙합과 R&B를 접목한 곡에 포크송을 샘플링 했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평단의 극찬을 한몸에 받았다. 또한 뮤직비디오에서 흑인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냄과 동시에 자넷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하며, 그해 그래미 최우수 뮤직비디오 상을 수상한다. 특이한 점은 정규앨범의 첫 싱글임에도 미국 발매를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당시 다이애나비 추모 분위기로 인해 발매하지 않은것으로 추정한다.
아래 영상은 American Music Awards에서 공연한 Together Again 영상, 이 공연에서는 리믹스 힙합버전[28] 으로 완벽한 퍼포먼스로 호평을 받았다.
이후 1998년 4월부터 진행된 월드투어 The Velvet Rope Tour는 당시 기준 33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대성공을 거둔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버스타 라임즈의 싱글 <What's It Gonna Be?!>에 피처링하며 Hot 100차트 최고순위 3위를 기록하였으며, 전작에서 협작하였던 Black Street, 래퍼 Ja Rule과 Eve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또한 리키 마틴과 펩시광고에 출연했다.
[29]
잭슨은 온갖 희대의 명반과 명곡들이 쏟아져 나왔던 시기인 1990년대에, 빌보드에서 최고의 가수 2위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며 화려한 90년대 활동을 마무리 짓는다.
한동안의 휴식기 이후, 2000년 인기배우인 에디 머피와 함께 영화 Nutty Professor 2에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OST에도 참여. 트랙 수록곡 중 그녀의 곡 <Doesn't Really Matter>는 같은 해 9월 싱글차트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하며 그녀가 건재함을 팝계에 알렸다. 이곡은 평단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당시 마돈나의 싱글 <Music>과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두고 팽팽하게 경쟁했는데, 이미 레전드가 된 두명의 팝슈퍼스타의 대결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인 2001년, 7집 앨범의 첫싱글 < All For You >가 공개되었다. 당시 에어플레이 수치로만 Hot100 14위로 데뷔하며 컴백의 청신호를 알렸고, 싱글차트 7주 연속 1위[30] 와 빌보드 연간 차트 3위를 기록한다. 이 곡은 자넷의 마지막 빌보드 1위 곡이기도 하다. 이어 발매된 앨범《All For You》는 전작과는 달리, 팝사운드가 주를 이루는 밝은 분위기의 앨범으로, 세계적으로 총 600만 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다시 한번 큰 성공을 거둔다. 특히 이번작에서는 앨범의 수록곡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터부시되던 성(性)과 섹스를 외설이 아닌,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또한 이 앨범까지 15년간 무려 5개의 넘버원 스튜디오 앨범들을 연속으로 배출하며[31] , 자넷은 팝 트렌드를 자유자재로 주도하는 가수라는 평가를 받았고[32] , 특히 당시 하락세를 타던 오빠 마이클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여론도 있었다.
또한 두번째 싱글 <Someone To Call My Lover> 역시 기타리프 사운드를 이용해 신선하다는 평을 받으며 Hot 100차트에서 최고 순위 3위를 기록하며 성공가도를 이어나갔으며, 래퍼 미시 앨리엇과 올드팝 가수 칼리 사이먼이 참여한 세번째 싱글 <Son of a Gun>은 노래 제목의 높은 수위와 어두운 분위기로 인해 전 싱글들보다 아쉬운 28위를 기록하였다.
같은 해 2001년도에는 음악계에 끼친 공로가 인정되어 MTV Icon 어워즈에서 상을 받았다. 특히 여러 쟁쟁한 레전드들을 제치고 1대 MTV Icon으로 선정된 것만 봐도 당시 자넷의 인기와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33]
MTV Icon awards 에서의 어셔, Mya, 핑크가 함께한 트리뷰트 영상
MTV Icon awards에서의 All For You 공연 영상[34]
2.5. 2004~2014: 대형 사건과 하락세
2004년 2월 1일, 휴스턴에서 개최된 제38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자신의 가슴을 노출해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키는데, 이를 세칭 '''니플게이트'''(Nipple gate) 사건이라고 부른다.[36][37] 당시 메인 퍼포머로 출연했던 자넷 잭슨은[38] , 히트곡 <All For You>와 <Rhythm Nation>[39] 을 공연했고, 이후 게스트로 나온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Rock Your Body>를 함께 공연하던 마지막 순간에 저스틴이 자넷의 상의 일부를 뜯어버리며 노출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냐하면 무려 '''1억명이 동시에 시청하는 프로그램'''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슈퍼볼 공연을 기획했던 MTV 측에서는 감독하에 진행했던 리허설 때는 없었던 자넷이 계획한 퍼포먼스라고 주장했고, 자넷 공식 대변인의 발표에 의하면 해당 퍼포먼스는 애초에 자넷 잭슨의 겉옷을 뜯어내서 붉은색 브라를 노출하는 정도로 계획했었지만 뜯겨나간 겉옷에 브라가 함께 딸려서 뜯겨 나갔다고 설명했다. 물론 잭슨 측의 대변인의 발표가 사실인지 변명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옷이 뜯긴 직후에 자넷 잭슨과 저스틴 팀버레이크 모두 당황한 표정이 잡힌 사진과 자넷 잭슨이 황급히 손으로 가슴을 가린 사진이 공개된 것으로 보아, 잭슨 측의 공식 발표가 사실일 가능성도 있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말이 많이 오가는 논쟁인데, 팀버레이크도 연예계에서 오래 활동한 가수인데 독단적으로 대스타이자 선배인 자넷 잭슨의 가슴을 노출시키는 애드립을 할 리가 없었고[40] , 잭슨 측도 노출 퍼포먼스 자체는 기획된 것이 맞다고 밝혔으니 이 해명으로 팀버레이크는 크게 욕을 먹지는 않았다.[41] 문제는 노출 당시 '''자넷잭슨이 화려한 유두장식을 달고 있었다는 것'''. '브라만 노출할 생각이었다'는 해명과는 다르게 여봐란 듯이 가슴에 요란한 장식을 달고 있었으니[42] 대중은 '자넷 잭슨이 화제거리를 만드려고 의도적인 노출을 계획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
슈퍼볼 해프닝 무려 다음날(...)인 2월 2일 선싱글 <Just a Little While>이 공개되었다. 전날밤에 전미를 뒤흔든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으니 당연히 홍보는 커녕 사태 수습과 CBS를 비롯한 여러 방송에 출연해 대국민 사과방송을 하느라 바빴고, 첫 싱글임에도 Hot 100차트 최고순위 45위를 기록하며 자넷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실패한다.
한달 후, 3월 칸예 웨스트와 작업한 8집 Damita Jo[43] 가 발매되었으나, 라디오 DJ들과 MTV를 비롯한 각종 매체들 역시 자넷의 신곡들을 보이콧하는 바람에 새로 나온 앨범의 프로모션 역시 제대로 꼬이고 말았다. 약 3년 만에 발매되는 자넷의 신보였기에 기대도가 한참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토크쇼를 쫓아다니며 사과 발언을 하는데 방송 활동을 전부 쏟아부어야 했고[44] 앨범 판매량 또한 전작이 전 세계 6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던 거에 비해 8집은 미국에서 100만장, 월드와이드 200만장 정도의 낮은 판매량을 거두는데 그쳤다. 특히 3집부터 7집까지 지속적으로 넘버원 싱글들을 배출해왔던 재닛의 신화가 깨졌다. 싱글들은 모두 빌보드 싱글차트 Top 10은 커녕 Top 20 진입에도 실패했다. 자넷은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처음으로 SNL에 메인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45]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미 돌아선 여론과 대중 매체는 차가웠다. 이후 4번째 싱글로 내정되어 있던 <R&B Junkies>는 보이콧 여파 + 반대 여론으로 인해 뮤직비디오 촬영도 못한 채 활동을 마무리 해야만 했다. 또한 그 해 예정되어있던 빅토리아 시크릿 공연이 취소되었으며 디즈니월드에 있는 리듬네이션 의상을 입고있던 미키 마우스 동상도 철거되었고(...) 그해 그래미 초청도 취소당했다.[46] 자넷의 이미지가 얼마나 폭락했는지 보여주는 부분. 요약글 게다가 2004년 구글 검색어 키워드 1위가 "자넷 잭슨"이었다고. 놀랄만한 사실은 이 영상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Jawed Karim 이라는 사람은,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서 동영상 공유 검색 서비스 '''YouTube''' 를 개발했다고(...) 이 사건의 엄청난 파급력을 볼 수 있다.
니플 게이트 사건이 2021년 2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뒤 재조명되면서 SNS에서 며칠간 몰매맞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사과문을 게재하며 자넷에게도 사과했다. 기사
이 사건 이후로 미국의 주요 지상파 생방송 경기를 이런 사건 등의 이유로 딜레이 생중계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슈퍼볼 측은 현역 팝스타 초청 공연을 중단하고 사고를 낼 일이 없는 올드팝 스타들로 선회하는 등, 커리어 내내 물의없는 깨끗한 사생활과 예의바른 태도로 정평이 난 가수였던 잭슨의 이미지는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말았다.
참고로 미국에서 이러한 노출 사고가 큰 이슈가 됐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것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먼저 미국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국가라 의외로 개방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보수적인 면들이 꽤 많은데, 특히 아이들에 관한 면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다. 이러한 점에서 어린이들도 자유롭게 시청가능한, 전 국민이 시청하는 슈퍼볼에서 노출 사고가 일어나면 자연스레 큰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별별 이슈를 다 불러 일으키는 가수들이라도 슈퍼볼에서만큼은 어그로를 자제한다.[47]
다만, Damita Jo 앨범은 보이콧 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랐을지언정, 음악적인 측면을 놓고 봤을땐 자넷의 커리어 중에서도 Sexual innuendo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며[48] 동시에 자넷의 앨범 중에서 본격적으로 힙합 색채를 끌어올린 앨범이라는 점을 작품성으로는 보통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 한편, 8집 활동은 팬들에게는 굉장히 아쉬움으로 남는 활동인데, 7집의 대성공 후 3년만의 컴백이었기에 기대가 한참 높았고, 칸예 웨스트가 프로듀서로 참가한 만큼, 앨범의 퀄리티 자체도 어느정도 보장된 셈이었다. 또한 1억명이 시청하는 슈퍼볼 하프타임쇼인 만큼 공연이 제대로 마무리 되었다면 엄청난 홍보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서 신보도 중박 이상은 쳤을 것이기 때문.
그래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UK 싱글차트에서는 의외로 나름 선방했다. 3개 싱글 모두가 Top20에 진입한 것이다. 자넷의 커리어에서 UK 차트 파워가 비교적 약했다는 걸 감안하면 준수한 성적이다. 이로 보아 월드 차트에서는 자넷의 네임밸류로 지속적인 인기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8집 활동이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 부분.
14년 후, 2018년 저스틴이 다시 슈퍼볼 하프타임 쇼 무대에 오르게 되며, 자넷도 슈퍼볼 무대에 오를 자격이 있다는 뜻의 #Justice for Janet(자넷에게 정의를)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있다.
Damita Jo 앨범과 그 다음 앨범인 20 Y.O.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2위가 최고 성적일 정도로, 자넷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실패...하고 만다.
2006년, 20주년 기념으로[49] 나왔던 9집 앨범 20 Y.O는 기존의 평론가들의 평가마저 안 좋아 몇몇 곡들을 제외하곤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자넷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앨범 임과 동시에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대부분의 수록곡에 샘플링을 적용하여 지루하다는 평이 주류였고, 그나마 인기를 누린 싱글 <Call on me>도 넬리의 <Dilemma>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평이었다. 앨범은 세계적으로 15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2007년에는 영화 <Why did I Get Married>에 주연 패트리샤 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쌓는다.
2008년도에 나온 10집 앨범 Discipline은 기존의 프로듀서였던 테리루이스와 지미잼 체제에서 벗어나 니요, 스타게이트, 로드니 저킨스와 같은 신세대 프로듀서들과 같이 작업하고 나온다. 특히 이번 작은 자넷이 작사/작곡/프로듀싱에 참여하지 않았고 일렉트로 장르가 주를 이루는 등,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이 나왔다. 출반 당시 여성 R&B 댄스 앨범 중에 이만큼 진지하고 트렌디하게 음반을 뽑아낸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기에 평론가들의 평 또한 매우 좋았으며[50] , 우수한 완성도를 보인 앨범으로서 All For You 앨범 이후로 7년만에 앨범차트 1위를 달성하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선공개한 싱글 < Feedback >이 높은 스트리밍수 및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됨과 동시에 빌보드 싱글차트서 19위를 차지하며 간만에 Top20에 들게된다. 국내에서도 평이 좋았고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후 2번째 싱글 < Rock With U > 부터 반응이 미적지근해지자, 새로 옮긴 소속사인 데프잼 레코드는 더욱 프로모션 지원에 박차를 가해야 할 판에 프로모션 행사를 통으로 취소해 버리는(...) 막장 행각를 보였다. 결국 자넷 잭슨이 직접 사비를 털어 프로모션을 돌아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상태에서 프로모션을 해야 했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70만 장 정도 팔리며 실패하게 된다...
2001년도 All For You 투어 이후 7년 만에 진행하게 된 Rock Witchu Tour 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성기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투어 규모와 판매율로 씁쓸함을 맛봐야 했다.[51] 그래도 화려한 퍼포먼스와 40세가 넘은 나이에 춤과 노래를 완벽히 소화해내는 자넷의 모습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앨범을 발매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또한 자넷의 투어를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52]
2009년도에는 자신의 활동 곡들을 집대성한 베스트 앨범 Number Ones/The Best를 발매하였고 이후에는 2011년까지 Number Ones, Up Close and Personal 투어를 발표하며 가보지 않은 도시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미를 포함해 오랜만에 유럽, 중화권 및 동남아을 방문했고, 투어는 총 2650만 달러의 쏠쏠한 수익을 거두었다. 물론 전성기를 한참 지났기에 과거에 비해 티켓 판매와 반응이 저조했지만, 많은 나이에 무대 퍼포먼스와 라이브를 완벽히 소화하는 자넷의 모습은 언론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10년에는 2007년 본인 주연의 영화였던 <Why did I Get Married?>의 후속작 <Why Did I Get Married Too?>에 주연 패트리샤 역으로 다시 한번 출연했다. 또한 영화 사운드트랙인 'Nothing'을 발표한다.
2011년 즈음에는 카타르의 억만장자 갑부인 위삼 알 마나(Wissam Al Mana)와 열애 후 결혼해서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결혼 생활하며 본인도 가수로서의 생활에 별로 미련이 없어보이는 듯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팬들도 격려를 보내고 있었는데 14년도 8월 쯤해서 주변인으로부터 "다음 앨범을 준비 중에 있다."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단순한 찌라시일수도 있지만 자넷 최측근인데다가 자넷의 남편 측근으로 부터도 같은 소식이 들려와 자넷의 팬들은 대환호 중.
2.6. 2015~2016: 성공적인 복귀
2015년 5월 16일 드디어 복귀를 선언했다. 복귀와 동시에 월드투어를 발표했다. 앨범은 기존의 프로듀서였던 테리루이스와 지미잼이 총 프로듀싱을 맡았다. 특히 이번작에서는 전작들에서 드러나는 섹시 컨셉을 과감히 버리고, 과거 90년대의 영광을 연상케 하는 R&B, 댄스 곡들과 오빠 마이클 잭슨을 그리는 등 베테랑 가수로서의 보다 성숙하고 차분한 노선을 택했다.
6월 22일 첫 싱글 <No Sleeep>을 발표했는데 점수 짜게 주기로 유명한 피치포크에서 bnm을 줄정도로 평이 괜찮다!
또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며 최고 63위를 기록했다.[53] 특히 음악적으로 이번 작은 '자넷 잭슨 만의 음악스타일과 90년대 풍으로의 회귀'를 멋지게 표현함으로서, 아티스트로서의 감각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20년 전 사운드를 요즘에 맞게 적절히 리파인한 곡들과 자아성찰을 보여주는 깊이있는 가사가 호평을 받은 듯.
10월 2일 앨범 'Unbreakable'을 발표했다. 메타크리틱 평점이 무려 75점으로 매우 좋은 평을 얻고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도 흥하고 있는데 무려 '''초동 116,000장을 기록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만들어냈다.'''
결국 이 앨범으로 자넷 잭슨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40년대에 걸쳐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 여성 아티스트'''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인 2016년 5월 4일 싱글 <Dammn Baby> 를 발매했다. 감성 R&B곡인 <No Sleeep>과 달리 강렬한 리듬의 트렌디한 댄스곡으로, 곡의 브레이크 다운 (Break Down) 파트에 특이하게도 본인의 곡인 <I Get Lonely>를 샘플링 하였다.
2008년 Discipline 이후 무려 7년 만의 신작으로서 성공적인 복귀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54]
이후 2016년 5월 임신 소식을 발표하며, 11집 활동과 예정되었던 유럽 투어를 잠정 중단하게 된다.
2.7. 2017~2021: 전설로의 도약
2017년 9월 출산 후 복귀해 State of the World 투어를 진행 중이다. 노산 후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전성기 시절의 댄스실력을 뽐내며 관객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2018년 5월 23일에는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아이콘 어워드을 수상했다. 더불어 축하공연에서는 Nasty, If, Throb 등 과거 히트곡을 휼륭하게 소화해내 극찬을 받았으며, 더불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55]
8월 17일에는 대디 양키와 콜라보 한 싱글 Made For Now가 공개되었는데, 1일만에 유튜브 조회수 400만을 달성하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번 싱글이 주목 받는 이유는 자넷의 음악커리어 중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라틴 장르곡이기 때문. BET 시상식 참가 외에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았던 11집 활동시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지미 팰런쇼, 각종 라디오 방송 및 인터뷰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홍보로 인한 화제 덕분인지 빌보드 싱글차트 88위를 기록하였고, 빌보드 댄스차트에서 1위를 달성하였다. 또한 유튜브에서 줌바 댄스곡으로 쏠쏠한 인기를 얻고 있다.
동시에 본인만의 레코드사인 '''Rhythm Nation Record Label'''를 출범하며 레이블 소유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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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최종 헌액되었으며, 연사는 자넬 모네로 결정되었다. 이로써 잭슨가는 잭슨파이브, 마이클 잭슨, 자넷 잭슨까지 한 집안에서 무려 3팀이 대중음악계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8년 12월 14일 홍콩에서 열린 MAMA에 출연하여 인스피이레션 부문을 수상했다. 예상치 못했던 한국 팬들은 몹시 당황(...)[56] 아쉽게도 공연은 하지 않았고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대기실에서 방탄소년단과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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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부터 8월까지 라스베가스 레지던시 공연인 Janet Jackson: Metamorphosis를 진행했다. 비욘세, 켈리 롤랜드, 릴 킴, 매직 존슨, 메리 제이 블라이즈 등 수많은 셀레브리티들이 공연을 관람하러 오기도 했다.
또한 9월부터는 Rhythm Nation 1814 앨범 발매 30주년을 기념해 북미, 오세아니아 투어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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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SNS를 통해 5년만의 정규 앨범 발매 예정 소식과 북미 투어 일정을 발표했다. 새로운 앨범 제목은 '''Black Diamond'''. 앨범 발표 기념으로 지미 팰런 쇼에도 출연하였다. 앨범은 6월 중 공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하여 투어와 앨범 발매 모두 미뤄진 듯 하다.
2021년 2월 7일, 3집 Control이 발매 35주년 기념을 위한 팬들의 노력으로 미국 아이튠즈 앨범차트 1위를 달성하였다. 자넷은 기뻐하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1] 잭슨가의 장녀이다.[2] 이 당시 그녀는 또래의 흑인 청소년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백인 위주로 돌아가던 당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현실을 볼 때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가 방송에서 하고 나오던 헤어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을 모방하던 흑인 여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3] 80년대에 인기를 끌던 가족 밴드인 Debarge의 멤버이다. 잭슨가와 마찬가지로 나름 유명했던 흑인 음악가 집안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깝게 지냈을 것이고, 그렇게 자넷과 드바지도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4] 이 시기 Thriller 투어 중이었던 마이클은 한참 후에야 자넷의 결혼소식을 접했다고.[5] 자넷 이외에도 모든 잭슨가의 사람들은 아버지 조셉의 손에 의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 이때 일화가 있는데 아버지 조셉 잭슨이 Jimmy Jam과 Terry Lewis에게 '내 딸의 음악이 프린스 같이 들리지 않도록 해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인 즉슨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노래는 만들지 말라는 엄포인 듯. [7] 앨범 타이틀이자, 타이틀곡 이름이기도 한 Control은 한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독립'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가사의 내용을 보면 '내 인생은 내 것이니,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컨트롤 하겠다'라는 당차고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8] 이 당시 작업했던 프로듀서인 테리 루이스와 지미 잼은 이 앨범의 성공을 시작으로 이후 앨범 작업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준다.[9]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 4위, Nasty 3위, When I Think of You 1위, Control 5위, Let's Wait Awhile 2위, The Pleasure Principle 14위, Funny How Time Flies (When You're Having Fun) UK 59위[10] 당시 동생 자넷이 노심초사 끝에 낸 앨범이 대성공하자 마이클은 소리지르며 기뻐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자넷은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고.[11] Nasty,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였다.[12] 'Rhythm nation', 'State of the world', 'Knowledge' 등에서 인종 차별주의와 교육 문제, 여성 차별, 아동 학대 등의 심각한 문제의식을 보여줬다.[13] 이후 2008년 10집까지 모든 정규 앨범들이 컨셉 앨범이다.[14] 이 앨범서 성적이 가장 좋지 않았던 싱글이 무려 '''4위'''(...)[15] 대표적 사례로 케이티 페리의 앨범 Teenage Dream이 있다.[16] 참고로 이 제복 패션은 그녀의 오빠 마이클 잭슨이 고안해 낸 것이라고 한다.[17] 이것 때문인지 코난 오브라이언이 DMZ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 군인 복장을 보고 자넷잭슨 백댄서 같다고 한 적이 있다.[18] 당시 국내에서도 가수 나미가 무대의상으로 차용하기도 했다.링크[19] 전작의 마지막 싱글이었던 <Love Will Never Do> 뮤직비디오에서 그러한 의도를 살짝 드러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곡만 전반적인 앨범의 컨셉에서 벗어나있다. 그리고 1990년 VMA에서의 <Black Cat> 공연 중 입던 셔츠를 열어제끼는 파격적인 공연 등을 한 걸로 보아 그 당시부터 섹시 컨셉을 크게 염두해둔 듯 하다.[20] 더군다나 80년대 후반에 언니인 라토야 잭슨이 플레이보이지 누드 파문을 겪고 집안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자넷 입장에서는 이런 급작스러운 섹시 컨셉이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21]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습 그대로를 재현,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영상을 보면 비욘세와 유사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비욘세가 이 시기의 자넷을 보고 배우면서 기량을 키웠다고 한다.[22] 자넷의 경우 동년에 5집 janet.의 싱글 Again이 트랙으로 쓰였다.[23] 참고로 YG 엔터테인먼트 녹음실에도 대짝만하게 걸려있다고 한다. 사진 [24] 레이디 가가가 Applause 뮤직비디오의 의상으로 참고하는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모티브를 얻어 재해석하기도 했고, 본의아니게 수많은 패러디짤을 양산하기도 했다..그 중 제이미 폭스 버전이 제일 압권이다. 링크 [25] 이 당시 그녀의 백업댄서로 유명했던 사람은 제니퍼 로페즈, god의 박준형, 일본의 R&B계의 자존심 A.I 등이 있다. 로페즈와 박준형의 경우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하였다.[26] 2020년 현재까지도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뮤직비디오 1순위다.[27] 수록곡 Free Xone은 동성애를 다룬 곡이다.[28] 이 리믹스 버전의 정식 명칭은 Together Again (DJ Premier 100 in a 50 Remix)로써 해당 곡의 싱글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29] 제작비만 약 240만 달러가 투입된 뮤직비디오로, 현재까지도 가장 제작비가 비싼 뮤직비디오 중 하나로 꼽힌다.[30] 당시 Independent Woman으로 대박을 치고, 3집 앨범으로 컴백한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첫싱글 Survivor는 자넷의 All For You에 밀려 몇주간 2위에만 계속 머물러있다 차트에서 물러났다...[31] 심지어 정규앨범들을 짧은 시기에 몰아서 발매한 것도 아닌, 3-4년 간의 긴 공백을 두며 꾸준히 발표하였다.[32] 실제로 팝스타 중 5개의 넘버원 정규 앨범을 배출한 가수는 드물 뿐 더러 15년간 지속적인 전성기를 누린 가수는 더욱 드물다. 90년대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마저도 이 시기 하락세를 탄 것만 봐도 알수있다. 다만 머라이어의 경우 2005년 'The Emancipation of Mimi' 앨범으로 화려하게 재기하며 이후 여러 앨범들을 히트 시키는 등 2000년 대에도 큰 인기를 누렸다.[33] 당시 어워즈에 마이클을 제외한 잭슨 형제들이 직접 참석했는데, 스케줄 때문에 바빴던 마이클은 자넷에게 영상메시지를 통해 축하메시지를 보냈다.[34] 여담으로, 백댄서들이 입고있는 의상들은 모두 자넷의 뮤직비디오 코스튬들이다.[35] 사건은 11:10부터[36] '게이트'는 워터게이트처럼 거대 정치스캔들에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 미국 연예계 역사상 게이트라는 표현이 붙은 사태는 니플게이트를 포함 딱 2회이다. 참고로 다른 하나는 2015년 아리아나 그란데의 도넛게이트.[37] 여담으로, 당시 매치업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대 캐롤라이나 팬서스로 경기 자체는 나름 명승부로 경기 마지막에 필드골로 승부가 결정났다.[38] 게스트로는 제시카 심슨, 넬리, P. Diddy, 키드록,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참여했다.[39] 당시 하프타임쇼 메인주제가 Choose or Lose. 투표 독려였기 때문에, 그 상징성으로 사회문제를 다룬 Rhythm Nation을 선곡했다.[40] 이런짓을 독단으로 벌였다가는 전 국민들에게 성추행범으로 찍혀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동시에 수많은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이 걸린다.[41] 참고로 팀버레이크는 침묵을 유지하다 2년 후인 2006년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사회는 유색 인종인 여성들에게 가혹하다'는 입장을 표명한다.[42] 코메디언 롭 슈나이더가 영화 시사회에서 자넷과 똑같은 유두장식을 달고 패러디를 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누가 봐도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붙였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스트리퍼들이나 쓰는 화려한 디자인이다.[43] 자넷의 미들네임 Damita Jo에서 따왔다.[44] 오죽했으면 마이클 잭슨마저도 그만 좀 사과하라고 할 정도.[45] 여기서 니플게이트로 셀프 디스를 하기도 했다.영상[46] 오죽했으면 마돈나마저도 자넷 잭슨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을 정도다.[47] 마돈나도 슈퍼볼 공연 때 같이 참여한 MIA가 F워드 제스처를 취하는 바람에 이미지 손상이 엄청났고 이에 대해 MIA를 크게 비난했다.[48] 섹스가 테마였던 7집에서 한층 더 수위가 높아졌으며(...) 수록곡을 들어보면 굉장히 직설적인 표현이 많다...[49] 사실 자넷의 가수 데뷔는 1986년이 아닌 1982년이나, 본인의 음악 스타일과 주체를 보다 확고히 한 3집 앨범을 기점으로 한다고 말했다. 1,2 집 활동은 본인도 흑역사 취급하는 듯. 실제로 그 시절 활동을 잘 언급 하지 않을 뿐 더러 1,2집 수록곡은 콘서트에서도 잘 부르지 않는다.[50] 반대로, 당시 트렌드를 답습한 앨범이었기에, 자넷의 색이 부족하다는 비평도 많았다.[51] 그러나, 어디까지나 투어 규모에서 마돈나와 쌍벽을 이뤘던 전성기 기준이다. 공연일정이 상당부분 취소되었음에도 17회 공연으로 120만달러의 준수한 수익을 올렸다.[52] "신곡 Womanizer의 안무에 많은 영감을 얻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브리트니는 자신의 콘서트 스텝에 자넷 잭슨의 스텝을 고용을 하기도 하는 등 많이 감명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53] 자넷의 나이, 대중 노출도를 감안하면 휼륭한 성적. 또한 프로모션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동년 컴백한 마돈나의 싱글 Bitch I'm Madonna가 84위 였던걸 생각해보자.[54] 참고로 자넷의 앨범 발표 주기는 보통 3~4년으로 다른 가수들에 비해 휴식기가 긴 편이다.[55] 특히 시상식에 방탄소년단이 참석했기에 국내에서도 관심을 갖고 본 시청자들이 꽤 많았다.[56] 사실 이전까지 자넷은 내한공연도 없었고, 한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