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정전

 


1. 개요
3. 높으신 분들의 반응은?
4. 그 이후
5. 비슷한 사례?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바로 몇 시간 전에, 제가 그렇게 죽이려고 애썼던 그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정말 굉장하죠?'''

- 크리스마스 정전을 직접 겪은 어느 영국 육군 병사의 편지에서.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수백 명이 넘는 그러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웃고,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어!'''

- 크리스마스 정전을 직접 겪은 영국군 육군 병사, 톰의 편지에서.

'''조국이요? 여기서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아시나요? 하나만 말하죠.''' '''자기 집에서 칠면조나 뜯으면서 명령하는 자들보다 나는 저 독일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져요!'''

-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프랑스군 장교 오드베르 육군 중위가 상관인 자기 아버지에게 항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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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는 영국과 독일 육군 장병들.
당시 영국의 언론지 데일리 미러에 1면으로 실리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개전 초기, 서부전역에서 발생한 암묵적인 정전 사건. 양진영 지도부의 합의 하에 정식으로 이루어진 휴전이 아니라, 최일선 장병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휴전이라는 점에서 영어로는 Christmas Truce(혹은 Ceasefire)이라고 한다. 여기서 Truce나 Ceasefire는 좀더 정치적, 장기적인 의미가 강한 "휴전"보다 "정전"에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에는 크리스마스 휴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뭔가 전장 전설 같은 믿기 힘든 일화이지만,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주요 참전국들에서 분명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참전 용사들의 기록만 해도 무려 30만건이 넘고 수많은 사진 자료까지 존재하는 명실상부한 실화다.

2. 1914년크리스마스


전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최악의 사건 중 하나였던 제1차 세계 대전은 발발 당시만 하더라도 국가를 막론하고 전쟁이 길어야 2~3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국가 지도부와 군 지휘부는 물론이고 전방의 말단 사병들까지도 이에 동의하였고,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전혀 예기치 못한 형태의 전투현상이 발생한다. 구시대적인 관점의 낙관론과는 다르게 고도로 발달된 기술력이 집약된 전장의 새로운 환경은 기존의 관념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강력하고 파괴적인 각종 신무기들에 가로 막혀 진격은 끊임없이 좌절되고, 필연적으로 전선은 고착되어 무의미한 희생만 늘어갔다. 그렇게 참호전이라는 새롭고도 끔찍한 양상의 전장 속에 갇혀야만 했던 대부분의 일선 병사부사관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직속 상관이자 참호 속에서 병사들과 함께 비슷한 생활을 하였던 장교들조차 갈수록 지쳐갈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치열했던 1914년에도 겨울은 찾아왔고,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양측의 장병들은 불과 몇십~몇백미터의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서 서로 대치 중인 와중에서도 참호 속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조촐하게 행사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종파로 갈리긴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를 제외한 모든 유럽 대륙은 기독교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국가를 불문하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념일이었다. 그래서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심각한 상황이 아닌 이상, 부대 내에서 자그마한 행사라도 가지는 것이 관례였다. 더군다나 전쟁 당사자였던 영프독 3국은 가톨릭-개신교의 차이야 있었다지만 같은 라틴-게르만 베이스의 서방 기독교(Western Christianity)[1]를 믿고 있었고 민족, 혈통, 문화적으로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웃나라들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해프닝이었다. 역으로 동부전선의 독일-러시아 사이에서 이런 일화가 없었던 이유는 종교, 민족, 혈통, 문화적 차이점이 서부전선의 영프독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심지어 크리스마스도 러시아 정교는 날짜가 다르다.
그런 가운데 캐롤 소리는 아군의 참호를 넘어 상대측의 참호에까지 전달되었고, 참호 속의 장병들은 비록 서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상대방도 자신들처럼 캐롤을 부르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속은 달랐지만 크리스마스의 정신만은 공유하고 있었다.[2] 그러자 독일 측에서 참호 위로 촛불이나 전등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올려놓기 시작했고, 어떤 독일 병사가 용기를 내어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참호 밖으로 올라왔다.''' 평소라면 이렇게 아무런 엄폐물도 없이 당당하게 나타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고[3], 적군의 돌발 행위에 놀란 영국군 측도 당연히 전투 태세를 취했지만...
'''그런 그를 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것을 발단으로, 양측의 수많은 장병들이 비무장 상태로 참호 밖으로 올라왔다. 이윽고 대치선의 한가운데서 서로를 마주본 그들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며 담소를 나누었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서로 간의 부대 휘장이나 계급장, 군모 등의 소소한 기념품(?)이나 식량, 술, 담배 등 간단한 기호품을 교환하며 우정을 나눴다. 병사들의 이러한 매우 파격적인 일탈행위를 코앞에서 지켜보던 부사관, 장교들도 대부분 분위기에 동참하여 상대측 지휘관과 만나 신사적으로 조약을 맺고, 당분간 교전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다. 이때 양 진영 참호사이의 무인지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어 대치 중 수습이 어려웠던 시체들도 제대로 수습할 수 있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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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크리스마스 정전, 영국군 4사단 11여단 장병들과 독일군 작센 104, 106연대 장병들, IWM Q11745#
이 일시적이며 자연적으로 발생한 정전 상태는 특히 영국군과 독일군이 주로 대치했던 벨기에의 이프르 전역에서 많이 나타났다. 이외의 다른 서부전선 전역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크리스마스 정전이 발생했다고는 하나, 영국군과 독일군의 이러한 정전 행태를 지켜보던 벨기에군과 프랑스군 병사들은 동참은 커녕 오히려 분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벨기에는 전 국토가 침략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벨기에의 강간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전쟁 중 독일에게 가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프랑스도 전선의 대부분이 프랑스 영토 내에 형성되어 국토가 유린당하는 와중이니 적국 독일인들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없던건 아니다. 프랑스군 사병들 사료에도 독일군과 크리스마스 교류로 담배나 신문을 교환하곤 했다고 나온다. 벨기에 지역도 비슷했는데 벨기에군이 독일군들에게 자신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전해다라며 참호를 오간 기록도 있다. 독일측 사병들 중에서도 이를 군인정신이 어디갔냐며 불쾌히 여긴 기록도 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일화를 두고 독일의 치욕이니 위대한 프로이센 군인정신은 어디갔느니 하면서 불평한 일기를 남겼다.

3. 높으신 분들의 반응은?


반면에 양측 군 수뇌부는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져서, 이를 이적 행위로 규정하고 주동자를 색출한답시고 헌병대로 부대를 뒤집어 놓고 몇 명을 본보기로 처벌하는 등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간혹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높으신 분들이 전선 시찰을 나오기도 했는데, 양측 사병들과 초급 장교들이 이를 눈치채고 서로 간의 합의를 통해 일종의 연기를 했다.
예를 들어, 영국군 진지에 시찰이 뜬다는 정보가 돌면, 열심히 싸우는 척을 하기 위해 독일군 참호와 협의하여 한두 명 정도의 독일 병사들이 초병 임무를 수행 중인 것처럼 서 있다가, 영국군 시찰단이 나타나면 영국 병사들이 그 독일 병사를 향해 공포탄을 쏘거나 혹은 소총을 빗나가게 사격하고, 그 독일 병사는 총에 맞은 척하며 사라지는 식이었으며, 의외로 잘 먹혔다고 한다.
그리고 적과 친해지는 상황을 막는다고 참호에 배치되는 부대의 전환 배치를 주기적으로 실시했는데, 원래부터 참호 근무는 참호에서 일정 기간 근무 후 후방으로 배치시켜 휴식 기간을 주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한국군의 GP 근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며 전방의 근무 환경이 열악하니 일정 주기로 인원들을 교체해 휴식 및 재정비시킨다.
안 그래도 병력 부족으로 이런 순환 배치 주기가 점점 늦어져서 병사들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는데, 이 사건 이후 실시된 전환 배치는 전방 참호에서 후방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원래의 참호에서 다른 참호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즉, 장병들만 더욱 피곤해졌다. 당연히 이런 식으론 참호 생활에 지친 장병들의 사기가 되살아날 리 없었다.

4. 그 이후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 정전은 1914년 크리스마스 한번으로 그쳤으며, 이듬해에도 일부 전선에서 크리스마스 정전이 재차 시도 되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양군 수뇌부는 상대방 진영에서 캐롤 소리가 들린다는 보고를 받으면 즉시 집중 포격을 명령했다. 하지만 1918년까지도, 기나긴 참호전 와중에 비교적 격전이 적었던 곳에서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기념일 같은 때에는 암묵적으로 무기를 내린 곳이 있었다고 한다. 높으신 분들 중 상당수도 다른 날 많은데 하필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까지 굳이 싸워야 하냐고 거부감을 느낀 경우가 없지 않았기에, 별도의 공세 같은 것이 예정되지 않은, 일반적인 참호 생활이 이어진 곳에선 그날만큼은 1914년처럼 대놓고 만나진 않아도 암묵적으로 상부의 묵인 혹은 거짓 보고 하에 교전 행위를 접기도 했다. 확실한 정전이 성립된 것은 1914년의 크리스마스 한 번 뿐이었지만, 이후에도 종종 이날 교전을 자제하는 편이었으며, 일부 장병들이 개인적 혹은 소부대 단위로 만나 기념품 교환 정도 하고 헤어지는 정도였다 한다.
팃포탯에 대해 설명한 로버트 클레이슨의 저서 <협력의 진화>에서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세력에서도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례로 크리스마스 정전을 포함한 참호전 도중의 휴전 사례를 들었다. 팃포탯을 설명하는 인디 게임인 신뢰의 진화에서도 첫 서두에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5. 비슷한 사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엔 워낙 양국이 박터지게 싸웠고 서로 간 관계도 더럽게 안 좋았기에 없었을 것 같지만, 1944년 벌지 전투의 크리스마스에도 비슷한 실화가 하나 있었다. 게시글 형태로 보기 다만 극소수 병사들만의 거의 개인적인 정전이라 조금 경우가 다르다. #[5]
월드 오브 탱크 홈페이지에서도 소개되었다.#
믿기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전국 시대일본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이유로 정전한 사례가 있다고 전해진다. 주인공은 마츠나가 히사히데로 1566년 미요시 3인중과 싸우던 중 크리스마스를 이유로 정전했다는 것. 코에이노부나가의 야망 천도에서도 이벤트로 재현되어 있다.[6] 당시 키나이키리시탄 신앙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고 나름 독실한 신자들도 형성되었기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다만 히사히데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정전을 시행했다는 기록이 1차 사료에선 적혀있지 않아서 실화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조정래의 소설인 태백산맥에서는 한 빨치산 무리가 국군 토벌대와 마주쳤는데, 빨치산은 6명, 토벌대는 7명이라 다 죽을 게 분명한데도 빨치산 대장이 기지를 발휘해 토벌대장에게 서로 발사하면 모두 죽을 게 분명하니 담배나 한 대식 나눠 피자고 하여 토벌대와 빨치산이 서로 담배를 나눠 피며 건빵도 나눠먹는다. 심지어 토벌대장은 빨치산에게 잘 가라고 말해주고 빨치산 대장은 몸조심하라며 안부 인사까지 하고 간다.
축구전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이쪽은 감동이라기보다는... 어쨓든 자세한 것은 항목참조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이 회사는 크리스마스마다 가족애 등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정신에 입각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TV 광고를 내보내는 전통이 있는데 2014년이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100주년이기도 하여 크리스마스 휴전을 다루게 됐다. Nostalgia Critic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광고 top 12 중 이 광고를 1위로 선정했다.
  • 로봇 치킨에서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톰슨을 들고 온 산타가 독일군을 학살한다. 관련 영상
  • 닥터후 2017 크리스마스 스폐셜 'Twice upon a Time에서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장교와 간단한 여행을 한 이후 다시 그 날로 데려다 주는데 그 날이 딱 크리스마스라서[7] 양측의 병사들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고 휴전을 하며 축구 등을 하고 휴식을 갖는다.
  • 차트를 달리는 남자 53화, '세상을 뒤흔든 음악' 편에서 소개되었다.[8]
  • 베르됭(게임)에서도 크리스마스 당일에 크리스마스 정전 모드를 플레이 할 수 있다.
  • 배틀필드 1에서는 발매한 해인 2016년과 2017년 크리스마스 모두 공방 곳곳에서 유저들이 싸우는 걸 멈추고 아군 적군이 한데 모여 수다를 떠는 크리스마스 정전을 유저들이 행하기도 했다.#
  • Warhammer 40,000에서는 사기가 땅에 떨어져있던 가드맨이 용기를 내서 오크와 정전을 하는 척 하다가 기습적으로 돌격하여 오크를 전멸시켰고, 오크가 남겨놓은 스퀴그로 축구를 한 미담으로 왜곡되었다. 이 이야기가 미담인 이유는 가드맨의 사기가 그 정도로 떨어질 때까지 내버려둔 지휘관들이 처형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1대 100 2011년 크리스마스 특집 4단계 문제에서 당시 부른 노래를 문제로 출제했으며 다른 보기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징글벨. (23명 탈락, 적립금 161만 원)
  • 리인액트먼트를 하는 사람들끼리 이걸 재현하기도 한다.#
  • 영화 고지전에서 한국전 휴전이 결정된 직후, 바로 전날까지도 애록고지를 두고 박터지게 싸우던 남북한 병사들이 계곡에서 무방비상태로 마주쳤으나 서로 '잘 가라' 인사하며 훈훈하게 헤어진다. 하지만 협정서의 효력이 시작되는 아침까지는 전쟁이 유효했고 상부의 지시로 휴전 전야 벌어지는 마지막 전투에서 남북한 병사들이 짙은 안개를 사이에 두고 같은 노래를 입맞춰 부르면서 크리스마스 정전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침까지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면 전투가 없이 끝났겠지만 안개는 걷혀졌고 전투가 벌어지며 주역 대부분이 사망한다. 이 영화가 의도하고 오마쥬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내용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정전의 실화를 연상시킬만한 느낌으로 진행된다.
  • 도미네이션즈에서 축구공이 전설 유물로 등장한다.
  •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 각 국가들간 협의로 진행되었다.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함이 큰 이유였지만 이면에서는 프랑스에 대한 겨울폭풍 작전 준비를 위한 것도 존재했다.
[1] 실제로 이런 위키 표제어가 있는데, 로마 가톨릭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를 묶어 그리스-슬라브 문화권의 정교회, 그리고 여타 非 니케아-칼케돈 교파들과 대비되는 의미로 서술되었다.[2] 거기에 영어와 독일어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언어인 만큼 상당부분 유사한 점이 많다. 거기에 노래까지 똑같으니 그 시너지가 장병들에게 미친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문서 아래쪽에 있는 광고영상에서도 영국군과 독일군이 각각 영어와 독일어로 인사를 하는데 서로 못 알아듣는다는 분위기가 전혀 없다. 심지어 들어보면 발음마저 매우 유사하다.[3] 실제로 전쟁이 심화되면서 지옥도와도 같은 참호전의 끔찍한 환경을 견디다 못한 일부 병사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현세의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자살이나 자해를 기도하기도 했다.[4] 어느 부대는 그 시체들을 치운 빈 땅에 축구장을 급조하여 팀을 나눠서 같이 축구를 즐겼다. 경기 결과는 3-2로 영국이 독일에게 역전패했는데, 영국 측은 이를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다고 하지만, 독일 측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는 양자의 기록이 있다.[5] 이원복의 사랑의 학교에도 수록되었다. 단 휘르트겐 숲 부근이 베를린 부근으로, 중년 부인과 아이가 할머니로 왜곡되어 있다.[6] 범용 이벤트이기 때문에 군주가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아니어도 일어난다.[7] 정확히는 닥터가 타임 프레임에 손을 대 몇 시간 뒤에 찾아올 크리스마스를 앞당겼다.[8] 다만 이쪽은 캐럴을 소개하기 위해 예시로 든 이야기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