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
1. 개요
世代差 / Generation gap
유행이나 교육과정의 변화 등으로 말미암아 세대간 공감의 정도나 특정 대화 소재에서 차이가 나는 현상. '세대 차이'라기도 한다.
2. 설명
일상에서는 '세대 차(이)가 난다', '세대 차(이)를 느낀다' 식으로 쓴다. '세대 차'는 보통 "너희 세대엔 그 사람을 몰라? 세대 차이 난다." 식으로 가볍게 쓰이는 말이다. 그것이 이념이나 사상적으로 차이가 나면 세대 갈등이 되기에 관련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나,[1] 아래의 예는 세대 갈등과는 다소 무관한 가벼운 예들이다.
대개는 5~10년 나이 차이가 있는 경우 세대 차이가 벌어지는 편이다. 가정 환경이나 지역 환경별로도 개인적 경험 차이가 클 수 있기에 1~2년 정도는 변동이 있을 수 있다.
3. 예시
3.1. 유행의 변화
-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면 떠오르는 노래
- 'Ronaldo' 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2]
- 1980년대생 이전: 호나우두
- 1990년대생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문희준
- 1980년대~1990년대생: 2000년대 초중반의 문희준이 국민 조롱거리가 되어 안티가 많았던 것을 잘 알고 있다.
- 2000년대생: 문희준이 누구인지는 알지만 문희준에게 안티가 많았던 것을 모른다.
- 2010년대생: 아예 문희준을 모른다.
- 기억에 남은 어린이 프로그램
3.2. 사회적 변화
- 군 복무 일수
육군 기준으로 1953년부터 1984년까지 무려 30개월 복무했으나[6] 80년대부터 복무 일수가 줄어들어 2020년까지 18개월로 단축되었다. # 1968년에는 김신조 사건으로 36개월, 무려 3년을 꽉 채워서 복무했으니 정말로 길었던 셈. 현행 방침으로는 그것의 딱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해당 단어가 생긴 시절에는 단기 연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했었기에 1955년(단기 4288년)을 가리켰지만, 1962년부터 서기를 국가의 통용 연호로 사용하고 단기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이 늘어나면서 1988년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경제 활동 및 비대면 서비스의 이용
- 고령층~1960년대 초반생: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이 편하고, 인터넷 및 모바일 뱅킹 등의 비대면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한다.
- 1960년대 중반생~1970년대생: 현금과 신용카드를 번갈아서 사용하고, 간단한 은행업무는 비대면, 복잡한 업무는 시간 내서 대면으로 이용한다. 음식점의 비대면 서비스는 매장식사의 경우 키오스크를 다소 복잡함을 느끼나 자주 이용하는 매장은 어느 정도 사용 방법을 알고 있다.
배달음식 주문은 상황에 따라 앱으로 주문하기도 하고 전화로 주문하기도 한다. 단골집은 전화 배달주문을 하는 편.
- 1980년생 이후: 신용카드 및 NFC, QR코드 결제, MST(삼성페이 등) 결제가 보편적이며, 현찰만 받는 곳을 꺼린다. 현찰은 신용카드 결제가 법적으로 안 되는 복권 살 때, 선불교통카드 충전할 때나 쓰는 편.
은행 없이도 간편결제 및 송금 서비스, 비대면 서비스에 매우 익숙하다. 음식 주문 역시 매장식사는 키오스크 사용이 매우 능숙하며, 배달식사도 배달 앱으로 배달원에게 카드나 현금을 건네지 않고, 앱 내에서 결제까지 하고 시켜먹는다.
- SI 단위 준수 여부
부모님 혹은 조부모 세대는 육류(고기)를 살때 근, 금 거래 시엔 돈, 부동산 거래 시에는 평이란 단위를 사용하는 반면, 최근의 세대는 그냥 고기를 사든 금을 사든 g(그램)을 사용한다. 다만, 부동산 거래나 집의 면적을 볼 때는 예전 세대를 따라 젊은 세대도 평이라는 단위를 그대로 쓰는 편이다.
- 도로명주소에 대한 인식
고령층은 동/리와 번지를 이용한 기존 지번주소가 더욱 익숙하다. 지번주소가 익숙한 터라 도로명주소로 알려주면 지번주소로 다시 알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내 집 도로명주소는 알고 있다.
1991년의 소련 해체로 인해 소련이 15개의 공화국으로 해체되면서 소련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의 영향으로 어르신들은 가끔씩 러시아를 '소련'으로 부르는 반면에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관심이 없다면 소련이 어떠한 나라였는가를 모르거나 러시아가 과거에는 소련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7]
아울러 소련이었을 시대에는 산하 공화국들이 개별 국가가 아니어서 뉴스나 교과서 같은 데에도 자주 나오지 않았기에, 1990년대 이전 사람들은 발트 3국, 중앙아시아의 독립국들의 국명을 생소해하는 편이다.
아울러 소련이었을 시대에는 산하 공화국들이 개별 국가가 아니어서 뉴스나 교과서 같은 데에도 자주 나오지 않았기에, 1990년대 이전 사람들은 발트 3국, 중앙아시아의 독립국들의 국명을 생소해하는 편이다.
- 중국, 북한에 대한 적대감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반일 정서가 강하나 2000년대 즈음부터 사드 국내 도입 논란, 중국발 미세먼지, 독재 체제, 중국 위협론, 화웨이의 국내 진출에 관련된 논란, 코로나19 등에 따른 여파로[8] 90년대 중반생 이후 세대는 반일감정 못지않게 반중감정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줄곧 적대적이었다. 1990~2000년대에 잠시 온정적인 시선이 나타난 바 있으나 2010년대에는 북핵 관련 및 대남 도발로 인해 반북감정이 다시 우세해졌다.
북한에 대해서는 줄곧 적대적이었다. 1990~2000년대에 잠시 온정적인 시선이 나타난 바 있으나 2010년대에는 북핵 관련 및 대남 도발로 인해 반북감정이 다시 우세해졌다.
3.3. 교육상의 변화
교육상의 특성상 학년도(매 해 3月부터 다음 해 2月까지)로 적용된다.
1996학년도부터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3년생까지는 국민학교 졸업생이고,[9] 1984년생부터 1988년생까지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명칭을 모두 경험해 본 세대이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1941년부터 쓰였고, 그 이전에는 보통학교(1911~1938년), 심상소학교(1938~1941년)라고 했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1941년부터 쓰였고, 그 이전에는 보통학교(1911~1938년), 심상소학교(1938~1941년)라고 했다.
- 기술가정: 6차 교육과정까지는 기술산업/가정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994학년도 중학교 신입생[11] 까지 기술산업은 남자만, 가정은 여자만 배웠다.
- 교련 수업: 1968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 군사적 훈련을 포함한 본격적인 교련 수업이 이루어졌고, 1997년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격하되며 그 위상이 크게 낮아진데다, 수업 내용도 응급처치 등 非군사적인 측면이 강해졌다. 이후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과 자체의 삭제가 결정되어 늦어도 2014학년도까지 전 학교에서 폐지되었다. [12]
- 바른 생활,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 1960년대생~2005년생까지 해당.
- 초등학교 때 배웠던 국어 교과서 이름
- 기성세대 ~: 말듣
- ~ 2001년생(빠른 2002년생 포함): 말듣쓰
- 2002년생 ~ 2005년생: 듣말쓰
- 2006년생 이후: 국어활동
- 수학 교과과정
- 1998년생 ~: 2009 개정 교육과정 각론이 적용됨에 따라 교육과정의 내용량이 30%이상 크게 감축되었고, 그 결과 고등학교에서 행렬을 포함한 많은 개념들을 배우지 않았다.
- 미적분을 배우지 않은 문과생: 제7차 교육과정의 적용에 따라 2002~2008학년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인문계생들은 미분과 적분을 대부분 배우지 않았다. 2006년 수학과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됨에 따라 이후 원상 복구.[13]
- 학교에서 영어를 처음으로 배운 시기
국민학교 당시까지는 영어가 정규 교육 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원 등 사교육상으로 배운 경우가 많다. 이 당시에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가 편성되어 이 시기에 A, B, C 알파벳부터 배웠다. 1997년 교육과정이 일부 개정되면서 현재와 같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교과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 과거 학교에 토요일까지 등교를 했던 사람들 중 처음세대(불명)부터 2004년생까지의 토요일에 학교 갔나요?라는 질문[15]
- 기성세대 ~ 1986년생 : 당연히 갔다.
- 1987년생 ~ 1993년생 : 매주 가다가 한 달에 한 번 빼고 가다가 2주에 한 번씩 갔다.
- 1994년생 ~ 1997년생 : 매주 가다가 한 달에 한 번 빼고 가다가 2주에 한 번씩 가다가 아예 안 갔다.
- 1998년생 : 한 달에 한 번 빼고 가다가 2주에 한 번씩 가다가 아예 안 갔다.
- 1999년생~2004년생: 2주에 한번씩 가다가 아예 안 갔다.
- 2005년생 이후: 가지 않습니다. 토요일은 노는 날 아닌가요?[14]
- 좌측통행 교육 여부
- ~ 2003년생: 좌측통행
- 2004년생 ~ : 우측통행
4. 관련 문서
[1] 관련 자료: 세대차이 2년...급격한 세대변화.갈등, 광장 내몰린 어르신들 … 정치가 부추긴 ‘세대 게임’ 희생자(적대적 공생 관련 글), [대중문화의 겉과 속\], [트렌드 코리아 2019] 1020세대는 왜 '뉴트로'에 열광할까?(계획적 구식화, 복고 관련 글)[2] 다만 현재는 피파 온라인 시리즈의 유행으로 인해서 차이가 거의 없는 편이다.[3] 과거, KBS Kids에서 텔레토비를 방영하던 시절이 있었다.[4] 뽀로로의 경우,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서 2010년대생들도 뽀롱뽀롱 뽀로로 접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5] 최근 이문세 콘서트에 가족 단위로 가는 경우가 많아져서 마지막에 이 노래를 부를 때 잠깐 빅뱅 버전으로 갔다 오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에 비해 세대 차이는 줄어든 편. 참고로 빅뱅의 붉은 노을을 원곡자가 극찬하였다고 한다.[6] 대신 대학생 때 교련 수업을 추가로 들어 복무 개월을 두어 달 정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7] 단, 최근 20대층 중에서도 반공 성향이 높은 사람들 중 일부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일부러 소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한을 일부러 북괴(北傀)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8] 90년대 중반생 이후 세대의 경우는 비인가 게임 프로그램(핵)을 사용하는 중국인을 게임에서 자주 만나는 등의 이유로 반중감정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9] 이 시기 사람들은 농담조로 자기는 '초딩'이 아니고 '국딩'이었다고들 그런다. 실제로는 '고딩'에서 시작된 '-딩' 류의 유행어는 '국민학교'가 사라지고 나서야 유행하기 시작했기에 당시에는 '국딩'이라는 말을 쓰진 않았다.[10] 1954년 이전까지는 '셈본'이라고 했다.[11] 1981년생[12] 꽤 최근까지 있었기 때문에 설립된 지 어느 정도 된 고등학교 체육 준비실에는 교련용 도구가 있는 경우도 있다.[13] 1986년~1992년생.[14] 병설유치원 한정으로 2007년생까지 2주에 한번씩 가다가 아예 안 갔다. 병설유치원은 일반 유치원보다 취학시기가 1년 늦어 4세(5살)부터 입학 가능하며 일부는 5세(6살)부터 허용하는 곳이 있어서 2008년생은 병설유치원에서 놀토를 안 겪었다.[15] 1987년생~2007년생 사이의 경우 놀토가 뭔지 아나요?라는 질문에도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