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터키 관계
1. 개요
러시아와 터키의 관계. 러시아와 터키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전쟁을 치렀다.
2. 역사적 관계
2.1. 제정 러시아부터 소련 시기까지
터키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러시아 제국와 대립 관계에 있었던 역사적 경험에서 러시아 - 소련의 위협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두 세력의 기나긴 투쟁의 역사에 관해서는 러시아-튀르크 전쟁, 크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의 문서를 참고하라. 터키의 한국전쟁 파병은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더하여 냉전 구도에서 확실하게 미국측에 서려는 의도도 있다. 그래서 한국전쟁에서는 아시아 대륙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했다.
터키는 유럽 국가중에 소련의 전세계 앞마당화 공세를 가장 강력하게 맞받아친 나라였다. 당장 나토 남유럽 사령부가 이즈미르에 있으며 터키 육군은 유사시 소련 및 발칸 위성국들로부터 남동유럽을 방어할 최전선에 위치해 있어 상당한 지원을 받아 대규모 병력을 유지했다.
참 비범하기도 하고 이렇게 보면 양대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에 겁먹지 않은 터키가 대단한 나라인것도 같지만...[1] 사실 역사상 러시아 제국의 팽창으로 가장 많이 피해를 본 나라가 바로 오늘날 터키가 조상으로 받드는 오스만 제국이다. 16세기부터 시작한 러시아-튀르크 전쟁은 400년간 13차례나 치러졌다.
본래 러시아의 최종 목표는 이스탄불을 넘어 지중해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통해서 제대로 된 바다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2] 게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은 러시아의 국교 수준으로 자리잡은 정교회의 성지이자 중심지였으며, 무엇보다 러시아가 자처하는 '제3의 로마'를 확고하게 증명하기 위해선 이스탄불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다. 수도가 그 이스탄불이었던 터키로서는 당연히 절대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표트르 대제 이전 까지만 해도 터키는 러시아의 국력을 압도했으나, 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가 급진적인 서구화와 영토 확장, 인구 증가를 시작하며[3] 점점 성장하자 터키는 계속 러시아에게 조금씩 털린다. 구소련에 포함되었던 중앙아시아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등등은 모두 오스만의 번국이거나 속령이었지만, 러시아 제국이 성장하면서 족족 빼앗긴다. 크림 전쟁이 되어서야 영국과 프랑스의 힘을 빌려 겨우 러시아의 남하를 일단 저지하지만, 크림전쟁 이후 벌어진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참패하여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를 빼앗기게 된다.
일반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몰락은 1683년 제2차 빈 포위의 패전과 헝가리 상실 이후로 수세에 들어갔다고 보지만, 사실 18세기에도 헝가리 상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추가적인 오스트리아의 남하 시도는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여전히 지역 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했다. [4] 이런 오스만의 국력을 본격적으로 허리를 부러뜨리며 대내외적으로 확실하게 오스만 제국이 약체화가 되었다는 걸 알린 건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맹활약하며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를 영구히 상실한 1774년의 쾨즉 카이나르카 조약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쇠퇴의 첫 테이프를 끊은게 오스트리아 쪽이라면 그 허리를 아예 부러뜨려버린 건 러시아였단 소리. 오스만 입장에서도 사실 오스트리아와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일대를 상실한 이후 별로 크게 국경 변동이 없었던 반면, 유럽의 병자 소리 듣고 다니던 19세기 중 제국을 가장 집요하게 괴롭히고 충돌했던 건 러시아 쪽이었다. 게다가 체르카스인 대학살이나 크림 타타르인 강제 추방, 발칸 속주 독립 이후 집중적인 약탈과 학살을 겪으며 비참한 꼴로 남아 있는 오스만 영토로 몰려 온 무하지르 난민들을 통해 러시아의 악랄함을 속속히 전해 들었으니 19세기 오스만 측 자료에서는 '''천하무도한 무슬림의 학살자 러시아 야만인들''' 같은 소리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지금의 소치부근에 살던 우비흐인들은 러시아 제국과 전쟁을 치뤘지만, 패하게 되면서 대부분이 오스만 제국으로 추방 및 이주했다.
이후 최종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제1차대전의 캅카스 방면 전역에서 러시아가 우세했지만, 두 제국 모두 멸망 크리를 맞게 되었고.. 이후 생긴 후계국인 소련과 터키 공화국은 둘다 서방에선 개쌍놈 취급..[5]
이래서 한동안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던 소련과 터키는 동병상련으로 사이좋게 지낸다. 터키와 소련은 서로 상대를 외교적으로 인정해준 첫번째 국가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 둘이 으르렁거리던 것도 많은데 터키의 친척 민족쯤 되는 아제르바이잔을 강제합병하던 소련이 친터키적인 아제르바이잔 인사들을 마구 학살하거나 터키로 추방했기에 이스마트 이뇌뉘 터키 대통령이 스탈린에게 항의하던 일도 있다. 또한 터키의 국민 감정도 완전히 풀리지 않아 핀란드의 만네르하임 장군이 소련과의 겨울전쟁에서 연전연승하자 터키인들은 쾌재를 불렀다.
1952년 터키가 NATO에 가입하며 두 나라는 다시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된다. 터키는 소련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NATO 국가[6] 였으며, 강대한 소련군을 제1의 가상적군으로 두게 된 터키군은 이를 막기 위해 육군이 비대해진 기형적 구조를 가지게 된다. 게다가 소련의 요구 내용은 냉전을 떠나서 터키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련이 요구하기를....
이런 요구에 대해 터키는 경악을 하며 '''협의 자체를 전면거부하고''' 터키 내 18만명의 예비군에게 언제든지 비상동원령을 내릴 것을 준비하는 한편, 총리인 메흐메트 쉬크뤼 사라졸루는 직접 '''만약 소련이 터키의 독립을 침해할 경우 승산이 적더라도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전쟁드립을 날려대며 뻗댔다. 이후 미국도 대대적인 개입에 들어가며 경고하자 소련은 데꿀멍하며 바로 요구 철회하고 없었던 일로 했다.
그렇지만 키프로스 전쟁 이후로는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
2.2. 소련 붕괴 이후
소련 붕괴 이후 아르메니아와 영토분쟁을 벌이던 아제르바이잔에게도 러시아가 아르메니아 편을 들어주면서 아제르바이잔을 같은 튀르크계로 더 옹호하던 터키에선 반러 움직임이 거세기도 했다. 한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과 철천지원수인 아르메니아는 친러성향이 강해졌다. 한편 터키 서쪽 유럽 방향으로 눈을 돌려보면 터키의 제1원수 그리스, 그리고 역시 터키와 그리 친하지는 못한 불가리아도 일단 서방진영으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같은 정교회 계열 국가라고 은근히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려는 성향이 있어서 터키를 사방에서 견제하고 있다.
터키는 범튀르크 세계의 큰형님 노릇을 하고 싶어하는데, 중국의 통치하에 있는 위구르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튀르크계 국가는 러시아(옛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고 이쪽 지역은 지금도 러시아의 영향이 꽤 크기 때문에[7] 중앙아시아 쪽에서도 은근히 두 세력의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2.3. 2010년대
2015년 11월 24일에 터키군이 러시아 전투기(Su-24)를 격추시켰다. 터키의 입장은 전투기가 터키 영공을 침범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국가 사이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
11월 25일, 러시아의 발표에 따르면 터키 전투기의 경고 방송이 없었으며 러시아 공격기가 격추당한 곳은 터키 영공이 아닌 시리아 영공이었다. 즉 러시아 입장에선 터키가 시리아 영공에 있는 자국의 전투기를 격추시킨 셈이다 #. 자세한 내용은 2015 러시아 공군기 Su-24 격추사건 항목 참고. 관계가 악화되고 있음에 따라 터키에 대한 제재착수도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에르도안이 11월에 일어났던 러시아 공군기 격추사건에 대해 2016년 6월 27일에 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관계정상화를 보이고 있다.##
2016년 7월 20일, 위키리크스에서 터키의 여당인 정의개발당의 메일에서 문서를 유출한 결과 터키와 러시아, 시리아가 대 테러 전에서 협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동맹이지만 10여년 넘게 집권 중인 에르도안을 탐탁치 않게 여긴 반면, 러시아는 독재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국가이기에 2015 러시아 공군기 Su-24 격추사건을 계기로 양국의 관계는 그동안 심각했지만 외교부와 정치인들이 물밑 접촉을 하면서 러시아와 시리아의 중간 지점이자 중동과 유럽으로 가는 첫 관문인 터키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연합, NATO 입장에서는 앞마당을 내준 격이라 발칸 반도와 남부 유럽, 중동은 우크라이나 내전보다도 유사시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번 터키 쿠데타가 미국의 사주로 일어났다는 설이 터키 내에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으며, 에르도안의 정적을 보호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러시아에게 터키를 빼앗긴거 아니냐는 추측이 많다(...) 터키 외무부에 따르면 터키 쿠데타 진압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러시아 라고 한다. 첩보장비를 통해 터키 군부의 쿠데타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했고 이를 터키 정보부에 알려줘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기습당하기 전에 피할수 있게 해주고 쿠데타를 진압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
2016년 8월초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에 방문해 푸틴을 만날 계획이라고 하니 사이가 더욱 밀접해질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약진, 핵 협상 성공으로 경제재재가 풀린 이란(+내전 중인 아사드의 시리아)까지 가세하여 러시아는 유사시 서유럽과 중동에 군사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활로를 완벽하게 확보한 셈이다. # 그리고 러시아와 터키는 흑해 해저 가스관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군사, 정보협력에 합의했다.## 2016년 11월 7일에는 군사분야에서 협력을 재개하기로 합의하는 등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에르도안은 유럽 연합가입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며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터키는 러시아제 첨단 미사일 S-400을 구매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상에 나섰다.# 2017년 4월 28일에 터키 외무장관은 러시아와 터키가 러시아제 미사일의 터키 공급 문제와 관련한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터키와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시리아 평화협상회담에서 전투축소설정안에 합의했고,# 러시아와 이란, 터키는 시리아내의 안전지대설치안에도 합의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터키는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가스관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측은 터키에 대한 일부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그리고 터키는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30억달러어치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에르도안이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하는 협정에 서명하자 미국측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2017년 11월 22일에 터키의 국방장관은 2019년부터 러시아제 미사일을 도입하겠다고 밝히자 터키-서방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2018년 4월 3일에 푸틴 대통령은 터키를 방문하면서 양국간에 밀착관계를 나타내고 있고 거기에다 터키측은 2019년에 S-400을 인도받기로 합의했다.## 2018년 4월 16일에 시리아 공습으로 러시아와 터키를 분리했다는 마크롱의 발언에 대해 터키는 반발했다.#
하지만 시리아를 놓고 서로 엇갈린 이해관계를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시리아 북서부에서 시리아군 동맹의 공세에 인명피해가 속출하자 터키측은 러시아와 이란에 항의했다.#
2018년 7월 30일에 러시아와 터키, 이란은 쌍방 죄수교환에 합의했다.# 그리고 터키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자 러시아, 중국과 함께 새로운 경제동맹을 맺을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러시아와 터키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자 협력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와 터키, 이란은 시리아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2018년 9월에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경제 관련 터키스트림 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56&aid=0010372186&date=20161013&type=1&rankingSectionId=104&rankingSeq=4
그러나! 2016년 12월 19일 러시아 대사가 터키에게 전직 경찰관에게 총에 맞아 암살당하는 사건이 터져 두 나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자세한 건 주 터키 러시아대사 암살 사건 문서 참고.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군의 오폭으로 터키군 3명이 사망했다 연합뉴스
2018년 8월 24일에 스테판 데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 특사가 유엔 주최로 내달 11∼12일 열리는 시리아 개헌위원회 관련 회의에 러시아와 이란, 터키를 초청했다.# 그리고 이들리브 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와 터키측은 2018년 9월 17일에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이들리브를 비무장지대로 설정하는 것을 합의했고,# 최근 정상회의에서 결정한 시리아 북서부 '비무장지대' 경계선에 합의했다.# 2018년 11월 19일에 러시아와 터키를 잇는 흑해 가스관의 해저구간이 완공되었다.#
2019년 2월 14일에 소치에서 러시아, 이란, 터키는 시리아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2019년 4월 30일에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과의 대화에서 양자협력, 시리아 사태 등을 논의했다.#
터키는 미국과 EU와 외교갈등을 빚으면서 러시아와 점점 밀착화되고 있다.# 그리고 EU가 터키의 키프로스 부근의 해역에서 시추한 것을 두고 제재를 결의하자 러시아측은 반대했다.#
2019년 10월에 터키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지역을 공격하자 쿠르드족들은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시리아 정부군은 쿠르드족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러시아측은 안전지대에서 쿠르드족들이 물러나는 것에 대해 터키측과 합의했다. 터키군은 11월 1일에 시리아 북부의 완충지대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공동 순찰을 실시했다.#
터키와 러시아는 투르크 스트림 개통을 계기로 2020년 1월 8일에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2.4. 2020년대
푸틴 대통령은 1월 8일에 터키를 방문해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 회담을 가졌고 투르크스트림 개통식에도 참석했다.#
시리아 정부군이 북서부 지역의 반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한 가운데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가 휴전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하일 보그다노프 외무차관은 2월 8일에 시리아 북서부의 이들리브의 무력 충돌과 관련, 조만간 터키와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러시아 국방부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훌루시 아카르 국방장관이 시리아 이들리브 상황에 관해 협의했다고 발표했다.#
3월 5일에 푸틴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 이들리브에서 휴전에 합의했다.# 3월 14일에 러시아와 터키는 시리아 북서부에 휴전준수를 감시하기 위한 협력센터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터키의 하기아 소피아 박물관의 모스크 전환 움직임에 러시아 정교회도 반발했다.#
12월 7일에 터키에서 허가 없이 드론 제조 시설을 촬영한 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기자 2명이 석방됐다.#
2021년 1월 17일에 터키 북부 흑해연안에서 러시아 선박선이 침몰해서 선원 17명이 구조됐다.#
2월 18일에 푸틴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하고 코로나19 공동 대응을 비롯한 양자 협력과 국제 현안 등을 논의했다.#
3. 러시아인들의 터키 관광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제일 많이 가는 해외 여행지가 바로 터키인데, 터키는 이집트와 함께 러시아인들이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중해 국가이며 물가도 러시아인들 주머니 사정에 맞게 저렴하기 때문이다. 유럽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 터키로 가는 항공권도 많이 저렴한 편이다. 지중해에 접한 해안도시 안탈리아가 특히 각광받는 휴양지이다. 2017년에는 471만명, 2018년에는 596만명의 러시아인들이 터키를 방문했다.
오늘날의 터키 영토가 옛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곳이 많은 만큼 정교회 성지순례 차원에서 터키 여행을 하는 러시아인들도 많다. 그리고 타타르인 등 러시아 내 무슬림 소수민족들은 이슬람 성지순례 차원에서 터키 여행을 하기도 한다.
4. 대사관
양국 모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앙카라에는 주 터키 러시아 대사관, 모스크바에는 주 러시아 터키 대사관이 있다.
5. 관련 문서
- 터키/외교
- 러시아/외교
- 러시아-튀르크 전쟁
- 크림 전쟁
- 크림 반도 - 크림 반도가 러시아의 영토가 되면서 터키에서도 경계하고 있다.
- 러시아/역사
- 터키/역사
- 러시아/경제
- 터키/경제
- 러시아인 / 터키인
- 러시아어 / 터키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1] 물론 실질적으론 터키가 소련을 이기기는 매우 힘들기에 미국의 지원과 개입이 있어서 소련이 어찌못한것도 있다.[2] 지도상으로 보면 러시아도 바다와 접한 영토가 상당히 많아보이지만 따지고보면 북극해는 백해 쪽 일부를 제외하면 내내 얼어있는 부분이 많아서 항해가 힘들었고 발트해나 흑해는 큰 바다로 나가려면 여러 강대국 앞바다를 허락받고 지나야 하는 반쪽짜리 바다, 카스피해는 호수에 불과했고 동해와 태평양은 그나마 러시아가 차지한 열린 바다였으나 동유럽 본토에서 너무 멀고(그래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만들었다) 그나마도 최남단 블라디보스토크마저도 완전한 부동항은 아니다.[3] 러시아의 인구는 오스만 제국이었던 터키의 인구를 넘어섰다.[4] 전술적인 차원에서 유럽 국가들의 기술적 우위는 17세기 후반에 들어가면 명백해졌지만, 헝가리 해방 이후 오스트리아측 또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야전에서 승리할 수는 있어도, 이보다 더 가까운 발칸반도 내부는 오스만 제국이 충분히 방어할만한 역량이 있다는 점이 거듭 된 베오그라드 공략 실패에서 드러났다. 헝가리 상실 이후 실제로 발칸 반도의 제국 열강간 국경선은 거듭된 오스트리아의 남진 시도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 민족주의 열풍이 불때 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5] 소련이야 그렇다 쳐도 터키는 왜? 싶을 텐데 서방은 터키가 전쟁으로 세브르 조약을 파기한 것을 안 좋게 봤던 것이다.[6] 노르웨이-소련 국경은 길이가 짧고 북극권 안쪽에 있어서 충돌 위험성이 터키-소련 국경보다 훨씬 적었다.[7] 타지키스탄을 제외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아제르바이잔이 튀르크계 국가이며, 타지키스탄 또한 이란계 백인인 타지크인이 주류이지만 문화적으로 튀르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현재도 튀르크계 민족인 우즈베크인이 대표적인 소수민족이다. 이 나라들은 독립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러시아어만 알아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