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1. 개요
표준어: 북미관계
문화어: 조미관계
영어: United States-North Korea relations
북한과 미국 간의 외교관계.
북한과 중국에선 조미관계(朝美关系), 일본에선 미조관계(米朝関係)라고 표현한다. 남한에선 보통 북미관계라고 하나 미북관계라고 하기도 한다. 북한보다 미국이 더 우방이니 미북관계라 써야 한다거나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므로 당연히 국가인 미국을 먼저 써야 한다는 주장 등이 있다. 후자의 논리로 조선일보, 문화일보, 미래통합당 등 일부 보수언론과 보수정당 측에서 '미북'이란 용어를 고집하고 있다. 물론 모든 보수 언론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고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등의 다른 보수 매체들은 '북미'를 사용한다.
반대로 대한민국 헌법 상 북한은 대한민국의 일부이기 때문에 북미관계라고 쓰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설명해야 북중관계, 북일관계라는 표현도 무리 없이 통일적으로 자연스럽게 설명이 가능하다.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북한이 더 우방이라고 생각해서 중북, 일북 대신 북중, 북일이라는 용어를 쓰는 건 또 아니기 때문이다.[1]
어느 쪽의 이유든지 간에 2020년 현재 사용빈도는 '북미'가 '미북'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2. 상세
현재 북한과 미국은 미수교 상태이다. 따라서 상호 대사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란, 시리아처럼 사실상 적대관계다. 북한은 시리아, 예멘, 소말리아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미국 입국금지 국가로 지정된 국가이다. 미국과 북한은 사실상 직접 연락 채널이 없고 뉴욕에 있는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를 통한 연락채널이 유일하다. 비록 유엔에 주재하는 대표부이지만 미국에 위치하는 유일한 북한 공관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미국-북한과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흔히 '''뉴욕 채널'''이라고도 한다.
뉴욕 유엔 주재 북한 대사[2] 는 예외적으로 유엔 주재 대사로서의 입국 권리를 보장받는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는 완전한 치외법권 지역이고 미국의 어떠한 행정력도 미치지 않고 행정, 보안경비, 관리 모두 유엔 차원에서 관할한다. 유엔은 국가는 아니지만 국제기구로써 국가에 준하는 자체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상 유엔의 영토이므로 비록 미국을 거쳐야 한다 해도 유엔 대사는 유엔본부에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다.
유엔 주재 대사를 포함하여 모든 외국 대사들은 주재국 정부에서 불신임 하지 않는 이상 빈 협약에 따라 외교적 면책특권을 적용받으며, 입국 또한 적대관계든 뭐든 간에 보장된다. 당장 시리아, 팔레스타인등 미국과 적대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뉴욕 유엔본부에 있을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외교적 특권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유엔 차원에서 신분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미국이 입국을 원칙적으로 막을수는 없다. 대신에 북한 대사와 같이 적성국/미수교국(대만 제외) 입국자는 미국 국무부로부터 특별입국허가 별지비자를 받아야 하며 유엔본부로부터 반경 40km이내로 이동범위가 제한된다. 먼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국무부로부터 일일이 이동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미국 외에는 북미간 연락이 주로 한국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한국은 북한과 직접적으로 마주해있는 나라이고 미국과 동맹국이기 때문에 중국, 러시아와 달리 도청 위험이 없으며 주한미군이 주둔해있고 주한미국대사관이 있어 북한과의 회담 결과를 미국 중앙정부에 신속히 보고할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주로 남북간 국경지대인 판문점을 통해 이루어지며, 2018년 북미 비핵화협상도 판문점에서 진행했다. 이를 가리켜 '''판문점 채널'''이라고도 한다.
또한 판문점에서 유엔군사령부 - 조선인민군 정전주체간 회담을 통해 북미간 군사회담 채널이 운용중에 있다. 엄밀히 말하면 미군이 아닌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간 연락통로이지만 유엔군 사령부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직을 겸직하고 상당수 인원이 미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군 - 북한군간 군사채널이라고도 할수 있다. 2018년 유해송환 협상때에 유엔사 회담 형식을 빌려 미군과 북한군간 유해송환에 관한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2019년 현재 양국간 교류는 외교적 회담 외에는 없으며 완전히 교류가 차단된 상태이다. 미국인 또한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북한 방문이 금지돼있는 상태이다.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미국 시민의 북한 방문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 정부는 정부 허가없이 북한 입국시 처벌을 받게 됨을 경고했고 북한을 방문하려면 국무부의 허가가 필요하며 사망을 대비하여 미리 보험계약을 하고 유서를 작성해야 하며 가족과 상의해서 유산문제등을 미리 협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미국-평양간 항공노선도 존재하지 않으며 양국간 이동시에는 중국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에서 갈아타야 한다. 김영철 또한 미국에 특사로 파견될때 베이징 국제공항을 거쳐 환승하여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까지 이동했다.
2018년, 역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되었고 앞으로 수십년간 풀리지 못했던 북미 갈등이 해결되어 북미관계가 역사적인 대전환을 맞을지 주목되었으나 아니나 다를까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또 무기한 갈등 중이다.
3. 역사
3.1. 김일성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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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前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
북한의 수도인 평양은 조선 말기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이후 한국이 분단되면서 당시 북부의 정권은 소련의 지휘하에 놓였고 미국에 적대적이었다. 1948년 9월에 북한 정권이 수립됐지만 미국 정부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문에 북한엔 미국의 대사관이 없으며 미국에도 북한의 대사관이 없다. 다만 뉴욕에 주UN 북한 대사가 체류해서 북한의 대외창구 역할을 하기는 한다. 그래서 이 뉴욕에서의 북미 간 접촉 통로를 '뉴욕 채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은 스웨덴 영사가 북한 관련 업무를 맡는다. 스웨덴은 중립국이며 북한과 수교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면서 한국군과 미군은 잠시 북한의 영토에 진입하지만 이내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려나고 전쟁은 소강상태에 빠지다 휴전된다. 그 후 냉전이 끝날 때까지 북한과 미국의 교류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등으로 나타난다. 그 기간 중에 미군 탈영병 일부가 월북하기도 하였다. 찰스 젱킨스(Charles Robert Jenkins) 중사가 대표적.
또한 OH-58의 보비 홀 준위사건으로 북미간의 접점이 생기기도 했었다. 당시 보비홀 준위와 데이비드 하일먼이 몰던 헬기가 실수로 북 영공을 침범했다가 북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를 당했다. 이것으로 데이비드 하일 먼은 현장에서 추락사하고 보비 홀 준위 만이 살아남아 북에 피랍되어 2주동안 억류되어 있다 풀려났다.[3]
위에 서술한 몇몇 사건 외에는 전혀 교류가 없었는데 북핵문제가 나타나면서 북미관계는 점점 세계의 관심을 끌고 북한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어그로를 끌며 korean이란 말의 어감을 확 나쁘게 만든다. 영변 핵시설 북폭이 고려되던 중 지미 카터가 1994년에 전 대통령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카터는 김일성을 만났는데 국빈 취급 받았다. 다만 보름 후에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해보려던 김영삼 입장에선 좀 벙찌게 됐다.
3.2. 김정일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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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前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
2000 남북정상회담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제기한 것에 감사를 나타내고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가 김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대단한 승리라고 칭송하기도 했다.[4]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방미하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면담을 하였으며, 여기서 북미 코뮤니케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합의문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 이후 바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여 미북관계는 다시 냉각된다.
전세계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던 9.11 테러 당시에는 미국의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직감하고는 평소에 하던 대미 프로파간다를 일시 중단하고 테러 단체에 대한 강력한 규탄 성명을 내며 미국을 지지했다.[5]
2007년 11월 4일에 약간 긍정적인 일이 있기도 했는데 주선자는 소말리아 해적이었다. 북한 상선이 소말리아 해적의 공격을 받자 근처에 있던 미합중국 해군이 도우러 온 것. 치료 등의 목적으로 미 해군은 북한인의 승선을 허가했고 이례적으로 북한의 매체는 "미국이 우리 선원들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면서 이 일을 긍정적으로 논평했다. 200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을 방문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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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도움을 받았던 북한 국적의 상선 대홍단호.
북한에 억류된 두 동양계 여기자를 구출하는 물밑 협상을 하러 빌 클린턴이 2009년에 전 대통령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편 카터는 2010년에도 갔는데 김정일은 중국으로 갔을 때라 만나지는 못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미관계는 상당히 나빠지게 된다. 이 후 좁게는 북미관계. 크게는 대 아시아 전략이 전략적 인내라고 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6]
3.3. 김정은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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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북미관계는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이후 북한의 ICBM발사 핵실험등으로 험악해졌다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조금씩 진전, 2018년에는 사상 첫 북미간 정상회담이 열렸다. 2019년 2월 27일과 28일에는 2차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지만 미국의 북한 핵 미사일 폐기 압력으로 성과 없이 결렬됐다.
2011년 12월 김정은 집권 이후 북미간 고위급 회담에서 핵실험 유예를 밝혀 잠시나마 북미관계가 호전되는 듯 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도발은 계속 진행되었고 이는 대한민국의 이명박 및 박근혜 정부와의 남북한관계 악화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전략적 인내 외교정책을 고수한 오바마 정부와도 관계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북미관계는 과거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외교정책은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기 전까지 기다리는 방법이었지만, 이는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7] 오히려 북한이 미국의 별다른 조치 없이 방해받지 않고 핵실험과 지대공 미사일 실험만 지속적으로 허용해준 꼴이 되었다. 분명 남북한관계가 보수 정권 9년동안 악화된 점도 한몫했겠지만 이와 함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도 북한의 지속적인 무장을 막지 못하였다.[8]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2016년 북한 광명성호 발사 사건, 그리고 한미가 사드 배치를 고려하면서 북미관계은 한층 더 부정적으로 변화하였다.
이에 미 국무부에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한다고 밝혔다. # 2016년 가장 최악의 관계에 불구하고 쿠알라룸푸르에서 비공식적으로 대화하였으며,# 역시나 원론적인 주장만 펼치고 있다.#
2017년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전략적 인내'를 강조한 오바마 정부와 달리 강경한 대북선제 타격론이 급부상했다. 한때는 예상보다 대화재개 노력도 빨라지고 있으며,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대화재개 노력에 대해 합의했다고 관측되었다. 그러던 중에 2016년 1월부터 억류되었던 오토 웜비어를 석방하게 되면서 이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다.# 오토 웜비어 씨가 혼수상태로 귀국했는데, 결과가 '''식물인간'''으로 귀국하면서 미국 전역이 북한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미국인의 북한 여행 금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사망하면서 2017년 8월 말부터 미국인의 북한여행은 금지되며 이로써 현재 '''미국 시민의 유일한 여행금지국가'''가 된다.#[9]
2017년 7월에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화성-14형의 개발 완료가 되면서, 이로써 데드라인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대북선제 타격론이 다시 급부상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으며, 한 때 정권교체 얘기까지 나왔지만 미국이 직접 부인하였고, 현재 북한이 오직 미국만 바라보고 있어서 대화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있다.
2017년 9월 북한은 6차 핵실험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수소폭탄이 완성되었다며'''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이 때문에 북미 관계는 더 냉각될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과 북한 원유 송출 차단 등 현재보다 더 강력한 대북제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측된다. 비록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문제는 압박이 아닌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북한을 어느 정도 옹호하고 있기는 하나,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중/러의 옹호 명분은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다.[10]
게다가 국가정보원이 북한의 ICBM급 미사일의 발사 준비 정황을 포착하였으며, 만약 북한이 이것까지 감행한다면 미국이 북한에 현재보다 더 강력한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9월에 들어서는 서로가 막말을 오가며 분위기 긴장을 조성하며, 일본조차 자제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북미 간의 대화를 중재하겠다고 하며, 모스크바 비확산회의에서 회담을 가졌다.
전반적으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미치광이[11] 와 정상적인 외교를 오가는 수사와 정책을 사용하면서 북한을 혼란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있다면 미국과 북한 양 정상간의 트래쉬 토킹(...)이 기존 외교적 수사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어 우리 국민들이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점? 미국 대통령이 다른 곳도 아니고 UN 총회에서 완전한 파괴를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몇몇 경로로 언론이 보도하는 바에 따르면 현 김정은 정권이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을 헷갈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12] 아무튼 미국의 강력한 압박을 유지하면서 9년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로 했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을 세계 최악의 인신매매국가로 지정하는 등 18년째 최저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미국 정부에서 평양과 워싱턴 D.C.에 연락사무소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건강하다고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또 동시에, 김정은이 크리스마스에 보낸 친서의 원본 내용이 밝혀지면서 트럼프-김정은의 관계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미국 30개 단체 인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주주의와 인권 워킹그룹'이 미 정부와 의회, 대선 후보들에게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8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북한이 미국인과 영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로 뽑혔다.#
3.3.1. 2018년 사상 최초 북미정상회담
그런데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를 통해가 갑자기 한반도 평화를 강조하면서 묘한 분위기가 감돌게 되었다. 이에 기존의 범주를 뛰어넘는 미국과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도저히 견딜수 없어서 북한이 국면 전환을 꾀했다는 점,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범주를 뛰어넘는 인물이라(...) 결국 그나마 말이 통하는 우리를 통해 미국과의 접촉을 노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신 베를린 선언'[13] 을 하는 등, 남한 정권이 북한에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정권으로 바뀌어서 북한이 이에 영향을 받아 자세를 바꾼 것이 아니느냐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양국 사이의 뿌리 깊은 불신의 골짜기가 있기 때문에 개막식 당일에 펜스 부통령은 단일팀이 와도 기립하지도 않았고 그냥 갈 길 갔다.[14] 그리고 올림픽 기간 중 펜스-김여정이 청와대에서 비밀회동을 열리기로 했는데, 막판에 북한이 이를 취소했다고 한다. 폐막식 때는 실무자 접촉만 가지고 이반카-김영철 간 만남은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2018년 3월 중 급작스럽게 양국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그간 미국은 '핵폐기 없는 대화를 위한 대화를 안한다.'는 입장과 함께 물밑으로는 '최소한 핵실험, 미사일 도발 중지'를 대화 조건으로 내건 상태였다. 반면, 북한은 '핵은 협상이 대상이 아니다'고 강경하게 버텨왔다. 그런데 이런 기싸움이 무색하게 김정은이 평양을 방문한 남측 사절단에게 '대화 국면 중 어떠한 무력 도발도 하지 않겠다.'고 말함과 동시에 '체제 보장을 해준다면 핵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플러스 알파를 제안하며 미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심지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한미연합훈련에서도 '이해한다.'는 워딩을 사용했다.[15] 그리고 북한은 미국에게 대화를 원한다는 시그널을 보내며 공이 미국으로 온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5월, 역사상 최초의 2018년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북미정상회담이 사전적으로 조율되던 도중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북한에 억류되어있던 미국인[16] 3명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는 사실상의 북한의 억류 미국인 석방 및 송환 조치라고 판단되며, 북미정상회담이 근래 발생하였던 잡음과는 다르게 조율이 잘 되어간다는 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마이크 폼페이오와 김영철은 물밑 접촉을 꾸준히 해왔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 사이의 논조가 험악해지자,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한 2018년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북미정상회담의 취소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태도가 북한에서 태도를 바꾼다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여지를 남겨두었다.
2018년 5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성명 8시간만에 북에서도 담화를 발표하며 대화를 촉구했다. 5월 26일 깜짝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5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재추진을 선언했다.
2018년 5월 30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국 뉴욕에 방문하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만찬과 회담을 했다.
2018년 6월 2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뉴욕 방문 중 백악관에 들러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 직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2018년 북미정상회담을 '''6월 12일에 예정대로 개최할 것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났다. 두 정상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조성,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에 합의하면서 분단 이후 70년 적대관계의 해소를 약속했다.
2018년 6월 20일과 21일 판문점에서 유해 송환 실무회담을 하였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하였다. 이에 트럼프는 200구의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를 북한이 송환하였다고 말하며, 한반도 비핵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렸다. 조만간 유해가 송환되면 이는 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추념 행사를 하고 하와이로 옮겨 신원 확인 작업을 할 예정이다.
2018년 7월 초 성 김 주 필리핀 대사가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을 갖고 외무성 부상 최선희와 만났다. 여기서 미국과 북한이 북미회담 이후의 후속 조치 및 회담 지속화를 논의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8년 7월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북한 평양을 다시 방문하였다. 비핵화에 대한 실무회담이 이루어 졌으나 미국측의 비핵화의 구체적 실행 조건 요구와 북한측의 종전 선언 요구 등으로 입장의 차이가 좁혀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7월 13일 열리려고 했던 유해 송환 실무회담이 북한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불발됐다. 당일 낮 북한은 유엔사로 전화를 걸어 준비 미숙 문제로 15일로 회담을 연기하고, 장성급 회담으로 다시 열자고 연락하였다. 이는 5년만에 북한과 유엔사 간 직통전화가 다시 이루어지는 것이였다.
2018년 7월 15일 판문점에서 북미는 9년만에 장성급 회담을 개최한다. 이는 북한의 격상조치 요구 및 유해 송환에 대한 논의, 그리고 미국의 요구 수용으로 판문점 실무진 접촉급에서 장성급으로 회담의 격이 올라가게 되었다.
2018년 7월 27일 6.25 전쟁 휴전 65주년을 맞이해 북한이 6.25 전쟁 당시 사망한 미군 유해 55구를 송환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오늘 이뤄진 조치는 북한에 남은 유해 송환 작업과 북한 전장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5300여명의 미국인을 찾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중대한 첫 걸음"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던 유해 송환 약속의 일환을 이행했고 우리는 북한의 행동과 긍정적인 변화를 만든 추진력에 고무됐다"라고 밝혔다. #
북미정상회담 이후 종전 선언을 둘러싸고 협상에서 난항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선 종전선언을 이행하고 미국의 강경파는 선 비핵화 이후 후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이 잘 안되는 이유는 70년 동안 수교를 해본 적이 없으며 외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외교적 신뢰도가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멈추었던 대화가 다시 재개되고 있다.
2018년 9월 24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정상회담 내용 공유 및 김정은 위원장의 비밀메시지 전달, 앞으로 북미 핵협상 방안 논의가 주 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북한과의 대화가 잘 되고 있다며 곧 2차 북미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10월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을 만났다.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곧 제 2차 북미정상회담이 곧 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정은은 FFVD 이행을 위해 함경남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해체할 것이며 이를 위한 시찰단을 초청한다고 의사를 밝힌 것이 미국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서 발표되었다.
10월 내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미간 실무회담을 미국측에서 의사를 밝혔지만 김정은이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트럼프가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내년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11월 미국의 대북제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김정은이 모습을 드려내고 대북제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보여주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미중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바로 외무상 리용호를 친선국가인 중국, 베트남 그리고 몽골로 파견하여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하였다.
12월이 되어도 아직까지 북미관계에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정은의 2018년 연내 서울 답방도 희미해져 가다가 결국 무산되었고, 미국의 회담 요구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는게 현재이다.
12월 1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1월이나 2월 중 열릴 예정이고, 회담 장소는 항공기 비행거리 내 국가 3곳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12월 11일 미국 재무부가 북한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며 최룡해, 정경택 그리고 박광호에 대한 독자 대북제재를 실행하였다. 그리고 12월 15일 트럼프가 트위터로 북한 문제와 협상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12월 19일에는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한미워킹그룹과 회의를 가졌다. 여기서 비건은 인도주의적 대북지원 검토 및 남북협력사업 대북제재 면제 그리고 미국인 북 여행금지 완화 검토 등 북한에게 유화적인 메세지를 전달하였다.
12월 30일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 및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연하장 성격의 친서를 보내었다고 한다. 이로서 2차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3.3.2. 2019년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
2019년 1월 1일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북미관계에 안정화를 요구하며, 자칭 비핵화에 상응되는 조치를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1월 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이 조만간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열릴 것이라고 말하였다.
1월 5일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대사대리가 잠적하였으며 미국 망명을 요청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번 망명설이 북미관계에 어떤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평이 여러 나왔다.
1월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은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장소를 협상하고 있으며 아마 아주 머지않아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최 장소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미국 하와이, 한반도 비무장지대(DMZ)를 뽑았다고 한다. 이들 국가 중 베트남이 회담 장소 유치에 가장 호응하고 있는 추세이다.
1월 7일 김정은은 철로를 이용하여 방중하였다. 방문 기간은 1월 7일부터 10일이라고 밝혔으며 제2차 북미정상회담 전 중국을 방문하는 제4차 방중이 된다. 이로서 제1차 북미정상회담의 상황과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1월 8일 미국은 이집트, 캄보디아, 미얀마 등 북한과 협력중인 국가들에 원조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임박한 만큼 여러 후보지가 계속 올라오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후보지에서 몽골을 제외하였다고 한다. 이와중에 베트남 다낭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국 뉴욕에 방문하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접견하고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김영철이 대동한 북측 인사들은 김혁철, 최강일, 박철, 김성혜였다. 김영철이 트럼프를 접견했을 때 대북제재의 즉각적 해제를 요구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밝혔다. 또한 이번 방미에서 전 스페인 대사였던 김혁철이 대미특별대표로 다시 등장하며 그의 입지와 존재가 부상하게 되었다.
김영철의 방미 이후 1월 19일부터 22일 동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남북미간 협의가 진행되었다. 학홀름순드 콘퍼런스 안에서 대한민국측에서는 이도훈 본부장이, 북측에서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그리고 미측에서는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참석하였다.
1월 31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북미정상회담의 개최지 및 날짜를 2월 5일에 발표한다고 밝혔다. 개최지는 베트남 다낭이나 하노이 둘 중 한 곳으로 확정된 것 같다. CNN 기자의 다낭에 관련된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말끝을 흐린 것을 봐서는 다낭이 유력하다는 평도 있다.
2월 2일, 국회 정보위에 따르면 제2차 북미정상회담 공동선언문 조항이 조율되고 있다고 한다.
2월 4일에는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김혁철 대미특별대표와 판문점에서 회동을 가질 예정이였으나 2월 6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서 회동을 가졌다.
2월 말 27~28일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2019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양 정상이 합의문을 조율하는데 불발함으로서 회담은 결렬되었다.
합의문 도출 실패 이후 북한은 다시 강경 대미 기조를 보이고 있으며, 최선희 외무성 부상 및 대외 기관지를 통해 불편한 심기를 미국에 드려내고 있는 중이다. 이에 미국은 대북제재망을 더욱 강화하며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기업을 제재망에 올리고 있다.
3월 10일에는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는데 이례적으로 김정은이 선거구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대신 새로이 최선희, 김여정과 리용호가 이름을 올렸다. 이에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수행단 중 김혁철이 명단에 올라오지 않은 점도 포착되었다.
3월 22일에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며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비난 및 힐책하였다.
그러자 3월 23일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던 트럼프가 대북 추가제재를 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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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대한민국 판문점에서 남북미정상회동이 열려 북미간 협상이 재개되는 듯 싶었으나, 북한은 연이은 미사일도발과 트래쉬 토킹을 통해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에맞서 미국은 북한의 블러핑을 틀어막기 위한 한일 핵무장이라는 초강수를 던진다. #
그러다가 7개월만에 10월 4일과 5일에 걸쳐서 북유럽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서 북미간 실무협상이 진행되었으며,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스티븐 비건의 카운트파트로 모습을 드려냈다. 그러나 두번의 만남에서도 북미 실무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못하였다.
회담과는 별개로 2019년 8월 6일, 미국 정부는 자국의 사증 면제 프로그램인 ESTA 발급 제한 대상 중 하나로 '''2011년 3월 1일 이후 북한을 방문한 사람'''을 추가했다.
2019년 12월이 되고 연말이 다가오자 북한은 박정천 총참모장, 리수용 당 국제부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 외무성 고문,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 국무위원회 및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를 이용하여 미국을 연일 압박중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서해위성발사장을 복구하고 ICBM 엔진 실험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미국도 질세라 12월 11일에 유엔 안보리를 소집할 계획이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명의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중이다. 12월 15일에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가 한국을 방문하였고 북한에게 회담을 요청하였지만 북한이 비건을 바람맞혔다.
최근 미국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을 하였고 북한은 이에 대한 불쾌감을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다시 드려냈다. 2019년이 끝나감에 따라 북한이 연말 도발을 할지 안할지가 관심을 끌고 있다.
3.3.3. 트럼프의 재선 실패와 바이든의 등장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조 바이든 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북미관계가 더욱 불투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례적으로 북한은 미 대선 결과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재직 당시 북한 폭격을 주장하는 등 대북 강경파로서 향후 대북제재가 더욱 강화되어 김정은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올 듯 하다.
또한 바이든의 성향이 트럼프의 탑다운이 아닌 바텀업 방식이기 때문에 트럼프와 탑다운 딜을 추구해온 김정은의 대미 외교정책에 큰 지장일 뿐만 아니라 민주당자체의 입장이 핵, 생물학 무기+인권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로서는 굉장히 난감해하고 있는듯 하다.
북한 당국이 유럽의회와의 접촉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바이든측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은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를 통해서 강화된 ICBM과 SLBM을 선보였으나,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 자체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담당 인물들[17] 이 모두 대북 강경파인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북미관계가 더 난항을 겪게 될 가능성도 없다고 볼수는 없다.
4. 특징
대체적으로 북미관계의 위기가 올 때마다 미국이 투 트랙(Two-Track)을 활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투 트랙은 양면전략을 의미하며 채찍과 당근, 대화와 전투를 동시에 적용한다는 뜻이다. 1994년 북핵 위기때 지미 카터가 김일성을 만나는 것도 대표적인 예이며, 2016년 쿠알라룸푸르에서의 비공식 회동도 그러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6자회담도 교착 상태고 미국과 정식으로 수교하는 게 매일 미제에게 죽음을!을 외치고는 있지만 북한의 입장에선 상당히 절실한 일이긴 하다. 실제로도 북한은 안보 문제를 생각하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한 실정이기도 하다. 더욱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이 그나마 유일하게 외교정상화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국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납치사건과 핵문제 때문에 정상화가 어렵고, 한국이나 유럽연합과는 인권과 핵문제로 인해 원만한 관계를 만들기가 어렵다. 사실 미국도 마찬가지로 북핵과 인권 문제가 걸려 있으나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인권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핵무기 문제를 우선 해결하자는 취지로 접근하여 회담이 성립된 모습을 보인다.
2018년 6월 초 기준으로 내용을 갱신하자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북한을 봐주는 배후국이라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이고, 일본과는 오히려 일본쪽에서 내부 정치때문에 북한과의 대결 구도를 원하는지라 개선이 불가능하고, 러시아는 유럽과 미국의 제재로 관계 개선이 더 진전 된다고 해도 북한이 누릴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다. 유럽쪽은 이란, IS, 러시아, 터키만으로도 힘든데 브렉시트로 대표되는 결속력 문제까지 연달아 불거져 북한에 대해서는 유엔 제재만 유지 하고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가 러시아보다 중국을 위협으로 느끼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여 중국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려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2018년에 들어서 새로이 생긴 북미관계의 특징은 바로 남북한관계와 연계된다는 점이다. 또한 북미관계는 북중관계와도 동시적으로 연계된다. 북한은 대한민국 및 미국과의 회담 이후 중국을 방문하여 조언을 얻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18]
다만 현실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3대로 이어지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정권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반미 프로파간다가 북한 국민들에게는 깊이 뿌리 박혀 있다.
물론 위대한 지도자동지의 교시라면 죽고사는 북한 세뇌상 관계적대관계에서 유의미한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늘 그렇듯이 바꿀것이다.
5. 관련 문서
- 남북한관계
- 미국/외교
- 북한/외교
- 6.25 전쟁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 EC-121 격추 사건
- 북한의 핵개발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북아메리카 국가
[1] 사실 미국이 우방이라거나 국력이 더 위라는 이유로 ‘미북’이라고 쓰는 건 북한을 미국과 외교적 입장상 대등한 상대'국'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2] 현 북한 대사는 김성 대사이다.[3] 이때 찍힌 보비홀 준위의 손을 든 사진과 영상이 반미교육 당시 미제의 말로라는 것으로 굴욕을 얻는다.[4] 김대통령 핵,미사일 등에 대해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전화[5] 그 때 미국은 단단히 빡쳐서 건드는 모든걸 때려 부수려 드는 파괴신 그 자체가 되기 직전이었다. 당시에 북한이 대미 프로파간다라도 하다 걸렸다면 진작에 북 지역은 잿더미가 됐을 것이고 재수없으면 3차 대전이 났을 것이다.[6]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오바마 정부 출범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이 비핵화와 수교, 평화협정을 추진하고자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 협력을 세 차례 요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하면서 전략적 인내로 방향을 선회하였음을 주장한 적이 있다.#[7] 전략적 인내의 대북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고립과 이로 인한 붕괴였겠지만 전략의 전체적인 틀이 망가지면서 동아시아 정세는 혼란에 빠졌고, 북한은 고립상황에 따른 위기를 오히려 핵무장의 기회로 여기게 된다.[8] 오히려 이러한 전략적 인내관계 속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관계가 미일관계보다 덜 중요해졌다는 평가도 있다.[9] 이전에는 몇 국가가 지정되기도 했었다.[10] 현재는 미국의 세력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구실로서 이용되고 있는것일 뿐에 불과하다. 근묵자흑이라고 사고뭉치와 같이 지내봐야 한통속으로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미국이 아직까지 세계최강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경제재제라는 압박을 가하는 판국에 개긴다면 도매금으로 얻어터질 각오를 해야한다.[11] 단순히 민간이나 언론 수준이 아니라 무려 대통령 후보였던 유승민 마저도 트럼프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완화되었지만 충분히 오해받을만한 표현으로 비난한 적이 있었다.[12] 재미있게도, 트럼프는 대총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전에 한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해 볼수는 있으며, 실패해도 뭐 손해볼 게 있나?'같은 대답을 한 적이 있다.[13]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면 북한과 경제적 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힘쓰겠다 등의 내용, 주요 내용으로는 1.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 2. 휴전선의 총성을 멈추자. 3. 이산가족 상봉 하자. 4. 평창에 북한을 초청하고 싶다. 등이 있다.[14] 다만,펜스 부통령이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에 WP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대화를 하겠다고 한다면 하겠다."라고 언급했다.[15] 그런데 김정일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란 발언을 한 일이 있었다.김정일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용인[16] 셋다 한국계 미국인이다.[17] 대표적으로 토니 블링컨 국무부장관이 있다.[18] 다만 미국은 중국이 끼어드는 것 자체를 껄끄럽게 여기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