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권 군주제
非主權君主制
Non-sovereign monarchy
1. 개요
군주이지만 주권자, 즉 국왕(국가원수)은 아닌 경우. 한 국가에서 국가원수 외에 또 다른 군주가 재위하였지만 국가원수의 자격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일단 즉위하긴 했다는 점에서 왕위 요구자와는 다르다. 물론, 왕위 요구자인 비주권 군주도 엄연히 있다. 명목 상으로만 주장하는 작위를 제외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 그 나라 정부로부터 군주 대접은 받지만, 일단 군주제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때, 비주권 군주가 그 나라 전체의 군주를 자칭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청나라 소조정 시기의 아이신기오로 푸이[1] 나, 현대 몬테네그로와 루마니아, 알바니아 왕실이 대표적이다[2] .
본국이 군주제인지 공화제인지는 상관이 없으며 대표적으로 독일 제국, 말레이시아 등 연방제 군주국의 지방 군주들이나 프랑스의 해외 영토인 왈리스 퓌튀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국가의 처우에 따라 어느정도 참정권 또는 자치권을 가지거나 명예직에 불과한 신세가 되기도한다.
비주권 군주가 나오는 이유는 전통적인 이유가 있거나 연방 군주제이거나 또는 다민족 국가에서 원래 자신들이 모셨던 군주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민족과 갈등이 생겨 이에 대한 방안으로 생겨난 경우 등이 있다. 괴뢰국 군주의 경우는 명목상 주권은 있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 입헌군주제와도 헷갈릴 수 있지만, 입헌군주제는 권리와 권력만 국민과 정부에게 주어졌을 뿐, 주권은 여전히 국왕[3] 에게 있다는 차이가 있다.
2. 사례
2.1. 오늘날
2.1.1. 가나
가나 공화국 안에 아샨티 제국이 명목상으로 존속하고 있다.
2.1.2.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는 공화국으로 지역마다 부족별로 족장이 존재하며 자치를 행할 정도로 어느 정도 권한이 있는 편이다.
2.1.3.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국명대로 공화국이지만 줄루족의 왕이 존재하며, 이 외에도 다른 부족의 왕이나 여왕이 존재한다. 로베두족의 여왕인 모자지가 유명.
2.1.4.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명목상 영국 국왕이 동시에 뉴질랜드 국왕으로서 군림하는 영연방 왕국인데, 과거 유럽계 백인들과 마오리족의 오랜 충돌 과정에서 북섬 중부의 마오리 부족들을 중심으로 영국 국왕처럼 자신들의 군주를 내세워야겠다는 운동(Māori King Movement)이 일어나 1858년에 와이카토족의 족장 포타타우가 첫 군주로 선출되었다. 마오리 왕은 뉴질랜드 정부에서 그 나름대로의 존중을 받지만, 뉴질랜드 국왕과는 달리 뉴질랜드 내에서 어떠한 법적 지위를 가진 것이 아니다.
마오리 왕이 서거하면 장례식장에서 부족장들이 새 왕을 선출하는 선거군주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세습군주제다. 현 7대 왕 투헤이티아 파키(Tūheitia Paki)도 전 여왕의 아들이었다.
2.1.5.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연방 입헌군주국으로서 9명의 지방 군주들이 있으며 선거군주제이기에 차기 국왕 후보로 출마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즉위한다.
2.1.6.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는 공화국으로 2011년 7월 12일 의회에서 왕실 재건하고 공화국의 틀 안에서 제한된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법률을 통과시켰다.
2.1.7. 스페인
스페인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아스투리아스 주에 스페인 왕위계승자로서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아스투리아스 공)이 있다. 즉 스페인 국왕의 자녀로 국왕이 퇴위하면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2.1.8. 아랍에미리트
아랍에미리트는 연방제 전제군주국이다. 국가원수의 호칭이 대통령이고 5년 임기로 연방 최고 평의회에서 선출하여 공화국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연방 구성 국가인 토후국 별로 아미르라고 하는 지방 군주들이 존재한다.
2.1.9. 우간다
우간다는 공화국으로 여러 자치 왕국이 존재하지만, 해당 왕국의 군주는 통치권이 없는 입헌군주제다. 독재자 이디 아민에 의해 한때 폐지되었지만 1993년 복고됐다.
2.1.10.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공화국이고 각 주들은 선출직 주지사가 통치하는 공화제지만, 지역의 상징적인 군주(주로 술탄)가 존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욕야카르타의 경우 특별히 세습 술탄이 주지사직을 독점하는 것을 인정받아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2.1.11. 프랑스
프랑스는 공화국이지만 해외 영토 중 왈리스 푸투나의 우베아, 알로, 시가베 이 3개의 섬에서 각자의 군주를 옹립하고 있다. 그러나 세습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왕이 자주 바뀐다.
식민제국 시절에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점령해 각지의 군주들을 자국의 비주권 군주로 유지한 바 있다.
2.1.12. 볼리비아
볼리비아 흑인 군주
2.2. 과거
2.2.1. 독일 제국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 여러 독일계 제후국들이 프로이센 왕국을 중심으로 뭉쳐서 형성한 나라가 독일 제국이었다. 그래서 말이 하나의 나라지, 거의 여러 독립국들의 집합체였던 신성 로마 제국[4] 과는 달리, 독일 제국은 일체화가 매우 강했다. 그래서 이 시기부터 독일인들 사이에서 독일 전체의 군주는 황제고, 각지의 군주들은 지역 유지 정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즉, 황제가 명실상부한 주권자가 된 시기가 바로 독일 제국 시기다. 독일 11월 혁명으로 독일 황제뿐만 아니라 각 제후국의 국왕도 모조리 폐위되었다.
2.2.2. 일본 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제국 멸망 뒤 일본 정부는 옛 황실을 왕공족으로 지정해 예우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헌법에는 구 황실을 우대하는 것을 명시한 조항이 있었다. 이는 1910년대까지는 남아있던 복벽의 영향인데, 다만 그 영향력이 하도 안습해서 대한제국으로의 회귀가 아닌, 그냥 공화정 체제를 인정하는 전제 하에 구 황실에 대한 대우만 인정받았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고종과 의친왕의 상하이로의 망명 시도가 실패함과 더불어, 고종이 사망한 후에 대한제국 황실이 독립운동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탓에, 결국 해방 후에 성립된 이승만 정부는 황실을 전혀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냉대하였다.[5] 국내에 남은 황족 의친왕은 영양실조로 죽었고, 일본에 끌려간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국도 불허하여 이들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집권할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그나마도 영친왕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서 돌아왔으며 덕혜옹주는 조현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다.
2.2.3. 중화민국
중국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청나라는 멸망했다. 중화민국 정부는 민심을 우려한 것인지 선통제를 외국의 군주로서 우대한 바 있다.
3. 애매한 경우
일본의 덴노는 많은 내외국인들 사이에서 일본의 국왕으로 여겨지지만 정작 일본국 헌법에는 덴노를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만 규정하고 있으며 그 어디에도 국가원수라는 조항이 없고 주권이 일본 국민들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점만 본다면 덴노를 주권자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법률 공포와 내각총리대신 임명, 중의원 해산 등 여러 국사행위가 (비록 형식상이지만) 덴노의 명의로 행해지기 때문에,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른 군주와의 차이점은 이러한 국사행위를 명목으로라도 자의적으로 수행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해뒀다는 점이다.
19세기 미국에서는 노턴 1세라고 황제를 자칭한 인물이 있었고 그가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진지하게 황제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미국 연방정부는 커녕 캘리포니아 주 정부와 샌프란시스코 시 자체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기에 굳이 정의하자면 마이크로네이션에 가깝다.
4. 가상의 비주권 군주
- 크레용 신짱에서 가랑이라는 모로다시 공화국(다바껴바 공화국)의 왕자가 등장하는데 이를 보아 모로다시 공화국에 비주권 군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주인공 이설은 대한민국에서 구 대한제국의 적통을 이은 순수 명예직 비주권 군주로 추대된다.
[1] 이 당시 중국 대륙의 지배자는 중화민국 정부였다.[2] 사족으로, 왜 정부로부터도 인정받은 동유럽 국가의 왕실이 아직도 명목 상의 군주 신세를 못 벗어나냐면, 정부에 돈이 없어서 그렇다(...). 경제가 어려워서 당장 급한 문제도 아닌 왕정복고 문제를 뒷전으로 미룬거다.[3] 민주주의가 확립된 국가라면 이것도 명목에 불과하다.[4] 처음부터 이렇게 따로국밥인건 아니었지만 30년 전쟁의 패전으로 인해 제후들이 사실상의 독립 군주가 되면서, 나라가 뿔뿔이 분열되었다.[5] 비록 이승만이 전주 이씨 출신이지만 오히려 황실로 부터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 황실 우대를 박탈하는 최종적인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