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마스터

 


1. 개요
2. 현실의 소드마스터
2.1. 실제 소드마스터
2.1.1. 독일
2.1.2. 이탈리아
2.1.3. 프랑스
2.1.4. 스페인/포르투갈
2.1.5. 영국
3. 대중문화 속의 소드마스터
3.2. 각종 매체의 소드마스터
3.4. 데빌 메이 크라이 3·4·5편의 단테의 스타일
3.5.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의 직업
3.5.1. 관련 인물


1. 개요


Swordmaster / Sword Master
검의 달인이나 검술 사범을 통틀어 부르는 호칭으로 보통 마스터가 붙으면 달인만을 나타낸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영어권에선 마스터라는 용어는 오히려 달인이라기보단 사범의 의미가 더 보편화되어 있다. 태권도 사범을 태권도 마스터라고 표현하는게 그 예다.
물론 남들을 가르치는 사범이라면 이미 '''달인이라 불릴 정도의 숙련자'''일테니 달인으로 해석해도 별로 문제는 없고 실제 영어권에서도 상황에 따라 입맛대로 두 가지 뜻을 혼용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표기할 때는 사범을 뜻하고 정확하게 달인이라는 의미로만 표현한다면 'Master of xx(ex. Master of Sword)'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사실 뭘 사용해도 비슷한 뜻이라 상관없다)
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대사부도 있다. 사범들의 사범. 달인중의 달인이란 뜻으로 다른 종목인 체스태권도에도 있는 개념이다.

2. 현실의 소드마스터


소드마스터라는 칭호는 판타지 소설의 클리셰 취급으로 도검제일주의나 양판소들 때문에 까이는 경향이 크긴 하지만, 달인이라는 의미의 소드마스터라는 칭호는 '''서양 검술에 실제로 칭호가 내려진 적이 있는 진짜배기 칭호다.'''
  •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검술 길드인 성 마르쿠스 형제단(Marxbrüder)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로부터 "장검의 달인(Meister des langen Schwerts)", 영어로 하면 'Master of Longsword'라는 칭호를 독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받았다. 독점이라 말해 이해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쉽게 말하면 마르쿠스 형제단에서 인정한 장검 사용자는 상술한 신성 로마 제국이 공인한 칭호를 마르쿠스 형제단에서 받을 수 있었다.
  • 16세기 영국에는 헨리 8세에 의해 공인받은 검술가 단체 'Company of Maisters of the Science of Defence(방어의 과학 마스터회)[1]'가 존재했었는데, 검술 길드와 비슷하게 소속된 구성원의 실력을 시험해 등급 분류를 하고, 검술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2] 제일 하급은 스콜라, 스콜라로 7년 이상 수련하면 그 윗 등급인 프리 스콜라로, 프리 스콜라에서 7년 이상 수련하면 프로보스트가 된다. 프로보스트 등급에서부터 제자를 받고 가르칠 수는 있으나 아직 독립할 정도는 아니었고, 프로보스트에서 까다로운 검증을 통해 입증받은 인물만이 비로소 마이스터가 되어 독립할 수 있었다.
  • 프랑스 역시 1567년 프랑스왕 샤를 9세가 세운 'Académie des Maistres en faits d’armes de l’Académie du Roy', 줄여서 '프랑스 검술 학파'(사실상 길드)는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프랑스 검술 스승의 단체로 명성을 날렸는데, 검술 교실의 독점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루이 14세는 학파의 상급 마스터 중 6인에게 귀족 직위를 부여하기도 했다. 귀족 직위를 받은 마스터가 마스터 자리를 내놓거나 별세하면 길드 소속 다른 마스터에게 귀족 직위가 전해지는 형식이었다. 검의 시대가 저물었어도 결투를 위한 검술을 배워야 했던 프랑스 귀족들은, 평민이나 하층민 계급에게 검을 배우는 것이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라고 여겼기에 자신들의 검술 마스터를 상류층으로 대접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격을 높였다. 루이 14세가 귀족 직위를 마스터에게 부여한 것은 아예 명문화된 케이스다.
  • 스페인 왕은 15세기부터 수석 마스터 심사관(maestro mayor y examinador)이라는 직위를 가진 마스터를 임명해서 왕국 내의 모든 검술 마스터들의 자격 검증을 감독토록 하였다.
  • 다르디 검술 학파(또는 볼로냐 검술)를 위시한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검술 유파에서도 엄격한 사승 관계를 통해 검술을 전수했으며, 스승 된 자격이 있는 검증된 검술의 달인을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다. 물론 르네상스 이탈리아 검술이 워낙 폭발적으로 유행하다 보니 '자칭 마스터'가 흔히 나오긴 했지만, 볼로냐 검술 같은 유명한 유파는 유럽 전역의 마스터들과 마찬가지로 각 도시, 혹은 왕으로부터 검술 교실을 세우기 위한 라이센스를 받아 실력을 검증받은 마스터들이었다.
이러한 전통이 유럽 전체에 쭉 물려내려와 대부분의 유럽 주류 국가에서 검술 스승/검의 달인을 마스터라고 칭했다. 보다시피 검술 스승은 왕가나 귀족과 관련되는 일이 흔했고(직접 가르치거나, 혹은 후원을 받거나) 또한 마스터라고 공인받아야만 사업권(검술 교실 개설권)을 얻을 수 있으므로 검술의 마스터라는 단어는 엄격한 실력 검증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명예로운 칭호였다.
즉 칼 한 번에 일타삼피는 기본으로 행하는 현재 흔한 양판소의 검성관 달리 실제 중세 유럽의 소드마스터는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적은 2~3명 정도였다. 중세 검술의 시조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마라, 넷에서 여섯 명의 적에게 대항하지 마라, 자만심을 억눌러라, 동수의 적과 싸우는 자는 용감한 것이지만 4~6명의 적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 내용에서 알 수 있듯 소드마스터는 만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초인이 아닌 그저 잘 싸우는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2~3명이라고 한 대상은 당연히 동네 불량배가 아니라 '''무기를 든 잘 훈련된 검객/기사나, 실력자들'''을 칭하는 것이다. 즉 자기보다 아래라면 정예 훈련을 받은 기사라 하더라도 2~3명 정도는 혼자서 상대한다는 뜻이다.[3][4]
소드마스터라서 검만 잘 다룰 것 같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검술 유파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일반적인 단병접전, 명예를 지키기 위한 1대 1의 결투 검술, 법정에서의 재판 결투, 암살자의 암습에 대처하는 맨손/단검/급조 무기 무술, 민간 개인 호신 검술과 군용 검술 양자에 두루 쓰이는 한손검과 양손검, 방패, , 도끼(폴암), 쿼터스태프, 레이피어, 단검, 갑주를 입고 싸우는 갑주 전투술, 기마 무술, 집단전투 등등 다양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고, 그래서 실제로는 검 이외의 각종 병장기나 싸움방식에도 능숙해야 했다. 다만 롱소드의 달인 같은 식으로 검술이 대표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검술 시스템이 다른 무기를 포괄하기 좋은 무기술의 근본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도 마찬가지. 항상 옆에 칼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기 소드마스터는 사실상 검이 주전공인 웨펀 마스터라 칭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2.1. 실제 소드마스터



2.1.1. 독일


  • 요하네스 리히테나워(Johann Liechtenauer)[5]: 14세기 독일의 검술 마스터다. 마스터 오브 마스터, 하이 마스터 또는 그랜드 마스터로 불리던 중세 독일식 검술의 시조다. 후대의 독일 마스터들 중에 리히테나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인물이 없다.

본인이 직접 검술서적을 써서 남기지는 않았으나, 리히테나워가 요결(Zedel)이라는 싯구 형태의 검술의 가르침 요약을 전했으며 그것을 배운 검술 마스터들이 해설(Gloss)하여 상세를 보충한 검술서를 써냈고, 후대 검객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리히테나워의 가르침을 재해석하거나 인용하고 자신의 내용을 추가하는 형태로 검술 전통이 이어졌다. 싯구로 무술의 요결을 전했다는게 왠지 무협지 같지만, 운율을 이용해서 쉽게 전승하기 위한 요령이다.
리히테나워계 독일 검술 서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 Hs. 3227a에서 "마스터 리히테나워는 검술을 올바르고 빈틈없이 배우고 통달했으나, 스스로 이 검술을 창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올바르고 진정한 기예를 배우려는 열정으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찾아다녔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리히테나워가 검술을 창시한 것이 아니라 리히테나워 이전에도 롱소드 검술 자체는 독일과 기타 지역에 있었으며 자신이 배운 가르침을 통합해서 후대에 남겼다는 의미가 된다.
  • 지그문트 링엑(Sigmund Ringeck): 팔츠백(伯)이자 바이에른 공작인 알브레히트 공작의 검술 스승이었던 인물. 리히테나워 검술 계보를 잇는 14세기 혹은 15세기의 중요한 마스터 중 하나. 팔츠백 알브레히트 공작이라는 조건에 맞는 인물이 알브레히트 1세, 3세, 4세가 존재하는데 파울루스 칼이 1470년에 리히테나워 회의 일원으로 링엑을 언급한 것을 보면 4세는 가능성이 낮고, 알브레히트 1세의 후원을 받았다면 14세기 인물이며 어쩌면 리히테나워 본인의 직계일 가능성이 높다. 알브레히트 3세의 후원을 받았다면 15세기 마스터일 것이다.

잘 해석된 현대 번역본 검술서가 (영어로) 출간돼있어서 현대 서양검술계에서도 중요하고 대표적인 리소스로 꼽힌다.
  • 한스 탈호퍼(Hans Talhoffer): 15세기, 독일 슈바벤의 기사 류톨트 폰 코닉시그의 무술 스승으로 고용되었으며, 최소한 여섯 권 이상의 독일 검술 서적을 집필한 검술 마스터. 역시 리히테나워 계보이며, 써낸 책이 여러권인데다 널리 퍼져있는 편이라 현대인 입장에서는 독일 검술 마스터 중에 비교적 잘 알려진 유명인사로 손꼽힌다. 탈호퍼의 검술서 중 어느 판본은 콘라드 카이저의 전쟁 기술 서적인 벨리포르티스를 수록한 것도 있다.

그런 것 치고는 탈호퍼 개인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알려져있지 않다. 우선, 탈호퍼 개인 문장에 성 마르쿠스 마크가 있어서, 검술 길드 마르쿠스 형제단과 탈호퍼가 어떤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심지어 초창기 멤버이거나 창시자라는 설도 있는데, 길드 기록 상에는 탈호퍼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이 설을 뒷받침할 다른 기록이 없어서 현재로서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파울루스 칼이 기록한 리히테나워 회에 탈호퍼의 이름이 올라가있지 않다는 점에서 탈호퍼가 리히테나워 계열 검술을 배우긴 했으되 직계 마스터로 인정받을 위치는 아니라는(굳이 말하자면 몇 다리 건너서 주워익힌 방계?) 설도 있다. 이는 파울루스 칼과 탈호퍼가 서로 라이벌 관계라서 일부러 뺐다는 설과, 리히테나워 회는 옛 마스터들의 족보이므로 칼과 동시기에 활동하였으며 아직 살아있는, 말하자면 같은 항렬쯤 되는 탈호퍼가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 파울루스 칼(Paulus Kal): 15세기 검술 마스터. 바이에른 공작 루드비히 9세에게 29년간이나 고용되었다. 공작의 사람(아마도 기사와 군인을 포함한 가신)에게 결투를 중점으로 하는 무술을 가르치는 무술 스승으로 고용되었지만, 병력에게 전쟁을 대비한 무장(핸드건, 즉 구식 총기도 포함)을 구비시키고 군사 훈련을 시켜준 비용 또한 지불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 결투 검술만이 아닌 군사적인 훈련 역시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 파울루스 헥토르 마이어(Paulus Hector Mair): 16세기 독일 아우스크부르크의 시정 공무원이었으며, 검술에 미쳐서 검술 서적을 수집하고 그 내용들을 집대성한 독일계 검술 대백과 서적을 만든 검객이다. 하지만 중세 시대에 전 페이지 컬러라는 돈지랄 퀄리티의 초호화 서적을 찍는 것은 큰 돈이 들어야 했고, 결국 시 재정까지 횡령했으며[6] 그 혐의로 교수형됐다. 다시 말해 비리 공무원. 공식적인 마스터는 아니지만, 그가 수집한 방대한 검술 서적 덕분에 리히테나워계와 리히테나워계가 아닌 것을 포함한 독일 검술의 서적 유물 상당수가 현대까지 전해진 공이 크다. 그래서 서양 검술계에서는 애정을 담아 비리 공무원이라 칭송한다.
  • 요아힘 마이어(Joachim Meyer): 16세기의 검술 마스터다. 리히테나워 계보의 정통 독일 롱소드 검술의 말기를 장식한 마스터로, 그가 저술한 책은 이 계보의 검술서적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자세하게 해설한 바 있어 리히테나워 검술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다만 검술서적을 내는데 빚을 많이 지는 바람에, 후원자 구하러 한겨울에 돌아다니다가 병을 얻어 요절한다. 이 양반 요절한 사연 보면 참 후원자 못잡고 흥행에 실패한 검술가의 삶을 대변하는 모습 그 자체라 안타깝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실력이 확실한데 시운이 따르지 않아 실패한 것을 보면 참... 리히테나워계 롱소드 검술 외에도, 당대에 민간에 유행하던 이탈리아식 레이피어 검술 역시 취급했다.[7]
  • 리히테나워 회: 파울루스 칼은 저서에서 리히테나워계 마스터들의 족보인 게셀샤프트 리히테나워(리히테나워 회)라는 단체를 거론했다. 리히테나워부터 시작해서 피터 폰 단지히, 안드레아스 리그니처, 지크문트 링엑, 한스 훈즈펠트, 오트 주드 등등 18명의 마스터들이 거론된다. 이 중에 현재까지 검술 서적이 남지 않은, 그냥 이름만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 많다.
  • 기타 독일 마스터: 한코 되브링어, 요하네스 레크흐너, 한스 폰 슈파이어, 피터 팔크너, 한스 폴즈, 요그 윌할름, 주드 루 등등,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어쨌든 책 하나 정도는 남겨서 세상에 흔적을 남기거나, 다른 마스터들의 서적에서 언급되는 식으로 존재를 교차검증 가능한 마스터들이 많다. I.33의 저자로 여겨지는 독일 수도사인 루테게루스[8] 역시 독일 마스터로 볼 수 있겠다. 글라디아토리아, 코덱스 발러슈타인 등 저자 불명의 중요 검술서 역시 알려지지 않은 여러 마스터들의 존재를 짐작케 한다.

2.1.2. 이탈리아


  • 피오레 데이 리베리: 15세기의 이탈리아 검술 마스터. 귀족 가문의 말예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검술에 흥미를 가져 독일과 이탈리아의 여러 마스터들에게 사사했으며[9] 내란에도 참가하고, 토너먼트에도 나가고, 이탈리아 역사 상에서 유명한 인물들이나 용병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기도 하고, 수차례의 결투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상대를 물리치기도 하는 등 검술 스승이자 군인으로서 흥미로운 삶을 살아온 인물. 그가 쓴 검술서인 플로스 두엘라토룸/피오르 디 바타야(전장의 꽃, 사실은 싸우다 피터지는 피꽃)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식 검술과는 다른, 중세 롱소드 검술 스타일을 가진 이탈리아식 롱소드 검술이고 판본이 많이 공개되어 있어서 독일식 롱소드에 대비되는 이탈리아 롱소드로 많이 연구된다. 그런데 뭐 사실 기본 검리는 이거나 독일식이나, 싸잡아서 유럽 롱소드 검술로 분류해도 별 문제 없다. 상세 명칭이나 스타일의 차이 약간 정도다.[10]

피오레 계보의 마스터로 필리포 바디가 있다. 하지만 바디를 마지막으로 볼로냐 검술 학파의 약진에 묻혀 피오레 계열 이탈리아 롱소드 전통은 사라진다.
  • 아킬레 마로초: 16세기의 이탈리아 볼로냐의 다르디 학파의 검술 마스터다. 사이드소드 검술을 중시하지만 여전히 폴암이나 양손검 또한 가르치는 볼로냐 검술의 전형을 드러낸다. 다르디 학파 마스터들중 가히 제일 유명한 마스터다.
  • 기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볼로냐 검술 계보: 앞서 말한 마로초 외에, 다르디 학파를 설립한 리포 바르톨로메오 다르디, 안토니오 만촐리노, 안젤로 비자니, 조반니 달라고끼에, 그 외 익명의 볼로냐 마스터 (실제로 Anonimo Bolognese- "익명의 볼로냐인" 이라고 서적에 적혀있다! 실제로 검술서를 썼고 그 유물이 남아있기는 하는데 명확하게 이름은 밝히지 않은 다르디 학파의 검술 마스터들이 존재. 한 명도 아니고 여러명일 가능성이 크다.) 등이 있다.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이탈리아 마스터들이 유난히 찌르기를 강조하며 찌르기의 유리함에 대해 역설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와 더불어 사이드소드 검술이 레이피어 검술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 카밀로 아그리파: 16세기 밀라노 출신 검객, 수학자, 공학자, 건축가. 1/2/3/4번째 포지션의 개념[11]을 도입하고, 프레데리코 기슬리에로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기하학적에 기반한 이론을 사용하기 시작하며, 볼로냐 검술의 온갖 기본 자세들을 간략화했다. 이후의 이탈리아 마스터들 뿐만 아니라 데스트레자의 창시자인 카란싸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이 사람 말고도 찌르기를 강조하며 페러다임을 바꾼 사람은 많이 있지만 이 사람의 여파가 매우 큰 것도 사실이다.
  • 프레데리코 기슬리에로: 16세기 볼로냐 출신 마스터지만 볼로냐 학파는 아니다. 역시나 검객일 뿐만 아니라 군인이기도 했으며, 화기와 공성전에 대한 저서들도 남겼으나 대부분 소실되었다. 카밀로 아그리파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기하학적인 설명을 선보였다.
  • 빈첸티오 사비올로: 16세기 파도바 출신 마스터. 영국으로 건너가서 도장을 경영했다. 그 레이피어 검술을 악평한 조지 실버의 서적에서 이 사람의 영국 활동을 언급하며, 조지 실버가 본 레이피어 검술이 바로 이 사람이 선보인 그것일 가능성이 높다.
  • 살바토르 파브리스[12]: 16~17세기 북부 이탈리아 파도바의 검술 마스터.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의 검술 스승이었으며, 여러 곳에서 레이피어 검술을 가르쳤다. 리돌포 카포페로와 더불어 본격적인 레이피어가 등장하고 민간 검술의 주무장이 되던 시기를 대표하는 마스터. 피격 면적을 줄이기 위한 극단적으로 상체를 낮추고, 찌르기 방어와 거기서 나가는 런지를 염두에 두어 허리를 빼는 독특한 검술 자세가 조금 유명하다. 스페인식 레이피어 (데스트레자) 의 복잡한 보법과 기하학과는 달리, 비교적 직관적(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어느 정도 기하학이 등장한다)이며 역동적이지만 그만큼 체력과 운동신경이 좋아야 소화할 수 있는 형들이 많다.[13]

폴란드-스웨덴 왕 지기스문트 3세 바사에게 고용되어, 후에 칼 9세가 되는 칼 공작의 암살행에 고용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칼 공작이 관람하는 연극에 칼잡이 역할로 스며든 다음 칼싸움 장면에서 진짜 검을 뽑아들고 객석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암살행이 있을거라고 정보가 새는 바람에 실패, 그리고 암살자는 도망쳤고 그 암살자가 파브리스 본인인지는 불명확하다.
  • 기타 16~17세기 다르디 학파가 아닌 이탈리아 마스터들: 자코모 디그라시, 프란시스코 알피어리 등등.
  • 피에트로 몬테: 스페인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살고 활동했던 15세기 후반의 마스터. 사실상 이탈리아계 검술 마스터로 본다. 여기서는 검술가로서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당대의 철학자로 이름난 인물. 검술서는 한손검, 양손검, 검과 망토, 장대무기, 단검(특히 중세식 역수 단검과는 구분됨), 대갑주 전투술 등등 대부분의 기술을 두루 다루었다. 검술의 근본 검리도 탄탄하고 합리적인 동시에 페인트 기술을 중시하는 등 조금 독특한 면도 있어서 연구할만한 마스터.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에도 궁정인들에게 검술을 가르친 인물로 등장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친분이 있어서 단검 투척술(혹은 다트)을 가르치는 등 이런저런 인맥이 엄청난데다 당대에 대단히 이름난 마스터였던듯 하다. 하지만 검술적으로는 후대에는 거의 영향을 남기지 못한 점은 좀 기이하다.

2.1.3. 프랑스


  • 앙리 드 셍디디에: 16세기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귀족 가문의 일원이자, 프랑스 검술 마스터. 검술 자체는 당대에 유행하던 이탈리아식 검술의 영향을 받은 결투에 초점을 둔 한손검을 다루는 검술이다. 고로 이탈리아식 검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단 프랑스 마스터이며, 프랑스 검술 전통의 압장에서는 프랑스식의 선조로 간주한다.
  • 샤를 베나르: 17세기 프랑스 검술 마스터. 베기는 아예 사라지고, 기본 공격은 런지 형태, 두박자 방어, 왼손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현대 펜싱과 거의 다를바 없는 공격 라인과 자세 등 이탈리아 식 길고 무거운 레이피어에서 프랑스 식 가벼운 에페(프랑스 말이니 에페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스몰소드) 검술로 옮겨가던 시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식 스몰소드 검술 마스터다. 참고로 르네 데카르트의 검술 스승이었다.
  • 무슈 라바: 17세기 후반 프랑스 툴루즈에서 활동한 펜싱 마스터다. 역시 스몰소드 검술 시대의 전형적인 프랑스 마스터이다. 현대 펜싱과의 많은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패싱 스텝이나 왼손 사용 같은 레이피어 검술 시대의 기술도 여전히 보여준다. (스몰소드 검술은 스피드가 너무 올라가서 이런 기술이 크게 효용이 없다.)
  • 기타 프랑스 마스터들: 프랑수아 당씨, 리용쿠르, 귀욤 다네, 필리베르 데 라 투셰 등등.

2.1.4. 스페인/포르투갈


  • 제로니모 산체스 데 까란싸: 16세기 스페인 검술 마스터다. 이탈리아식 레이피어나 프랑스식 스몰 소드와 차별되는, 스페인식 레이피어 검술인 '라 베르다데라 데스트레싸'[14]의 창시자이다. 까란싸로부터 비롯한 스페인식 검술인 데스트레싸는 상대에게 쭉 뻗은 롱포인트 자세로 견제하고, 대각선과 측면 이동으로 상대 공격을 회피하는 동시에 공격하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공격을 유도하는 검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검술 이론을 전개할때 간합과 이동과 공격의 상관관계를 기하학적으로 해설하는 스패니시 서클[15] 때문에 마법진 검술로 더 악명높다. 사실 기하학적인 검술 이론 해설 자체는 이탈리아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루이스 파체코 데 나르바에스: 16~17세기 스페인 검술 마스터.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검술 스승이었다. 까란싸의 제자로 데스트레싸를 배웠으며, 초년에는 까란싸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갔지만 후에 연구를 거듭하여 독자적인 기풍을 세운다. 이로 인해 데스트레싸 검객들은 까란씨스타(까란싸 스타일을 유지)와 파체퀴스타(파체코 나르바에스를 따르는 자)로 나뉘게 된다.

파체코는 1608년에 당대의 시인이자 검객인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와 결투를 했는데, 한 칼에 파체코의 모자가 벗겨져버리는 꼴사나운 결과가 나왔고 케베도는 이를 두고두고 놀려먹으며 두 사람은 평생의 원수지간이 된다. 케베도의 소설에서 '숙련된 군인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수학적 계산을 동원하는 검객' 운운하는 이야기가 데스트레싸 검객인 파체코를 놀리는 것. 참고로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가 바로 알라트리스테에 나오는 안경낀 시인 그 양반이다.
  • 디오고 고메스 데 피게레도: 17세기 포르투갈의 군인이자 외교관이며 검술 마스터다. 젊은 시절부터 까란싸 계열 데스트레싸를 배웠고 실제로 첫 검술 서적은 데스트레싸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들어 포르투갈 독립을 지지하는 열정적인 포르투갈인의 성향을 드러냈으며, 군인으로 포르투갈 독립 전쟁에 참여했고 검술 역시 스페인의 영향이 강한 데스트레싸를 버리고 고전적인 몬탄트(이베리아 지방의 양손검) 검술서를 저술하였다.

테스트레싸 일변도인 이베리아 지방에서 보기드문 양손검 검술이라 참고할만하다. 또한 검술의 기술 자체도 간결하면서 상당히 특이한 점이 많아 재미있다. 창대를 뛰어넘으며 공격하는 점프 회전베기라든지, 전후방 포위 상태를 가정하는 것, 직선 통로에서 다수를 상대로 쭉 밀고나가는 법, 여성을 등 뒤에 놓고 보호하는 기법, 발치에 쓰러진 동료를 보호하는 기법 등등. 자세히 보면 은근히 포르투갈 봉술 조고 도 파우와 관련있어보인다. 조고 도 파우가 좀 심하게 폴짝거리기는 하지만...
  • 기타 스페인/이베리아 마스터: 기랄드 티바울트, 프란시스코 로렌초 데 라다, 니콜라스 타마리즈 등등. 대부분 데스트레싸 검객인데, 스페인에서는 데스트레싸가 대두된 이후 300년간 검술계를 주도해나가면서 구식 검술의 전통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피게레도가 한때 데스트레싸 검객이기는 했으나 전통식 양손검 검술을 알아서 데스트레싸 일변도를 벗어난 형태를 보여주고, 그 외에도 하우메 폰스, 페드레 데 라 토레, 프란시스코 로만 등의 비-테스트레싸 검객이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발굴되는 검술 사료를 통해 데스트레싸 이전의 스페인계 검술[16]를 복원하려는 시도 역시 존재한다.

2.1.5. 영국


  • 조지 실버: 16~17세기 영국 검객이다. 마스터로 보기는 좀 그런게, 런던의 컴패니 오브 마스터 소속도 아니고 전문 검술 강사도 아닌, 검술 좋아하는 젠틀맨 계급의 신사였다. 당대에 유행하던 이탈리아식 레이피어 검술을 지독시리 싫어했으며, 전통있는 영국식 소드 앤 버클러 검술을 칭송하고, 검술에 대한 글 2편을 써서 아가리 파이팅과 실제 대결을 통한 현피를 뜨기도 했다. 당대의 유행에 역행하기는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검술 시스템은 대결, 길거리 싸움, 전장 모두에 적합하고 아주 합리적인 것이라서 읽어둘만하다. 사실 아주 극단적인 취향 문제인 부분을 제외하면 그가 한 말 중에 별로 틀린 부분은 없다.
  • 도미니코 안젤로: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 마스터다. 이탈리아 사람이 프랑스식 스몰소드 검술을 영국에서 가르쳤다는 점에서 어느 계열로 구분해야 할지 미묘하다. 당시 영국에서 대륙식의 우아한 스몰소드 검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대륙까지 찾아가야 했으나 도미니코가 검술 교실을 열면서 영국 내에서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영국 왕실의 검술 스승이기도 하다.

아들이자 마찬가지로 검술 마스터인 헨리 앤절로를 통해 영국 내의 검술 전통에 상당히 큰 영향을 남겼다.
  • 기타 영국 마스터: 스코틀랜드식도 포함해서, 조지프 스윗넘, 윌리엄 호프, 도널드 맥베인, 토머스 페이지, 헨리 앤절로, 토머스 매슈슨, 제임스 밀러, G. 싱클레어, 앨프리드 허턴, 잭 처칠 등등.

또한 실버 이전의 중세-르네상스 초 검술 사료 3점이 존재해서 이를 통해 영국식 중세 검술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다.

3. 대중문화 속의 소드마스터


소드마스터라는 명칭은 종종 허접한 양판소에서나 쓰이는 것으로 종종 오해받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 검술 스승이나 검의 달인을 가리키는 칭호로 쓰였으며, 중-근대 소설에서도 틈틈이 쓰이기도 한 선례가 있는 전통있는 용어로 몽테크리스토 백작 완역판에도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파리의 소드마스터를 죄다 꺾어버렸다는 대목[17]이 나오며.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퍼스트 버전)에서는 3레벨 전사의 칭호(1레벨: 워리어, 2레벨: 베테랑, 3레벨: 소드마스터)기도 하다.
양판소가 널린 일본이나 한국이나 잡다한 양판소에서 볼 수 있으며 소드마스터 시리즈에서 카메라에 잡힌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국내 양판소의 소드마스터의 시초는 카르세아린으로 여겨진다.
이말년씨리즈에서도 나왔다. 취급이 좋지는 않지만.
온갖 무기에 통달했던 현실의 소드마스터처럼 다른 무기의 칭호를 붙여도 문제는 없지만... 압도적인 간지 차이 때문인지 스피어마스터나 액스마스터, 메이스마스터, 보우마스터 같은 게 나오는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블레이드 마스터는 있지만 그게 그거다.

3.1. 판타지 소설에서의 소드마스터


판타지 소설의 소드마스터는 해당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3.2. 각종 매체의 소드마스터


단지 몇 개월 배우는 것만으로 용자검법 제1초식을 사용하여 후방의 3명을 단칼에 베어 옷만을 자르고 단순 나무막대로 무를 순식간에 능지처참시키는 등 대단한 검술의 실력자이다.

3.3. 던전 앤 파이터에 등장하는 직업


소드마스터(던전 앤 파이터) 문서 참고.

3.4. 데빌 메이 크라이 3·4·5편의 단테의 스타일


정식 명칭은 Swordmaster Style. 이름답게, 근접 무기 사용의 베테랑이 되어서 싸우는 스타일이다. 주로 추가되는 기술은 무기의 장점을 살리거나(e. g. 3편 리벨리온의 1:1 특성을 살린 Dance Macabre) 단점을 보완한(e. g. 4편 길가메시의 1:1위주 싸움에서 벗어난 SHOCK!) 기술들이다. 물론 단점 보완의 경우 그 외에도 아예 근접무기라는 특성 자체를 초월하는 경우도 있다.
근접 특화 스타일답게 다른 스타일에 비해서 제일 기술이 내실있어서, 회피 특화인 트릭스터와 함께 가장 많이 쓰게 될 스타일. 건슬링어 스타일에서는 비슷한 원리로 총에 기술을 달아서 더 쓸만하게 만들어주지만, 그 맞히기 힘든 아르테미스의 애시드 레인[19]을 제외하고는 소드마스터 스타일의 기술에 필적할 만한 기술이 거의 없다. 그리고 원래 기술 자체가 적다. 원래 데빌 암의 기술 자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데빌 암의 기술을 따져보면 반 이상이 소드마스터 스타일 기술'''[20]일 정도니 말 다했다.

3.5.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의 직업


클래스로서는 파이어 엠블렘 성전의 계보에서부터 등장한 검보병 직업으로 그 유래는 초기작인 암흑룡과 빛의 검(문장의 수수께끼)의 등장인물인 장발의 킬 소드 검사 나바르를 이미지한것으로 추정된다.[21]
같은 검보병 상급직인 용자에 비교하면 속도와 기술면에서 우수…하다고 되어있지만 실제 게임 내에서는 용자보다 더 강했던 적이 많았다. 그야말로 소드마스터 최강전설. 뭐, 최근작으로 갈수록 하향세가 되었지만.
첫 등장한 성전의 계보에서는 기술과 속도가 최대상한치인 30에 달하는것도 모잘라 힘 상한도 27이나 되었고, 소드마스터 직업이 되는 아군 캐릭터들은 전부 이자크가의 혈통만이 가질수 있는 오의 유성검을 개인스킬로 보유한 관계로 한번 걸린 상대는 거의 확실하게 골로 보낼 수 있기에 그야말로 무적에 가까운 강력함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공격모션이 폭풍간지인지라 전투 보는 재미도 있고 대우 받을 수 밖에 없었던 클래스다.
트라키아 776에서는 전 직업의 능력 상한치가 20으로 고정되면서 능력치면에서는 자중되었지만 연출의 폭풍간지는 여전. 유성검을 보유할 수 있는 캐릭터는 마리타밖에 없지만 될 수 있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유용한 개인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GBA시리즈에서는 스킬 시스템이 사라지고 용자에 비해서 힘과 수비력은 낮지만 속도는 높다는, 능력치면에서의 확실한 차별화를 꾀했지만, 초기작인 봉인의 검에서는 소드마스터 직업이 갖게 되는 필살 +30 보정이 흉악해서 다시 소드마스터 최강전설을 뽐냈다. 이후 열화의 검에서는 필살보정이 +15로 약화되고, 성마의 광석에서는 아예 힘 상한치와 성장률을 20 넘을락말락하게 줄여서 약체일변도를 걷는다.
약체화는 창염의 궤적에서도 계속되어 오의로 익힐 수 있는 유성에 1타당 대미지 절반의 페널티가 붙고 유성 중에는 다른 스킬이나 필살이 발동할 수 없게 되는 등 그야말로 똥직업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새벽의 여신에서는 최상급직의 개념이 추가되어 소드 에스카토스(검성)이 될 수 있게 되었고, 오의인 유성의 대미지 페널티가 없어져 다시 체면을 회복했다.

3.5.1. 관련 인물


  • 성전의 계보: 아이라, 샤난
  • 트라키아776: 에벨, 샤남
  • 봉인의 검: 루트거, 카렐
  • 열화의 검: 기이, 카아라, 로이드 리더스
  • 성마의 광석: 마리카
  • 창염의 궤적: 루키노, 소운발케, 타시요리아
  • 각성: 렌하, 사이리

3.6. 판타지 마스터즈의 카드


등장 에피소드: 에피소드 3
카드 속성: 금속
덱 수량제한: 1U
카드 희귀도: 유니크
구매 GP: 700
구매 SP: 15000(트레이드 불가)
구매등급: 나이트
카드 발매일: 2003-02-28
[image]
종류: 장비
종족: 휴먼
소속: 소드맨
레벨: 4(유소울 1 무소울 3)
특수능력: 크로스카운트(자신 파괴시, 자신 AP만큼 상대의 다음 행동할 유니트에 물리데미지.)
드래곤로드(자신 파괴시 자신을 파괴한 적 유니트 파괴)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름 좋은 유닛. 하지만 석화나 매료에 당해 공격력이 0이 되어버리면 슬프다.
성능은 그냥 그럭저럭이지만 적당한때 파괴되지않으면 유지비가 문제가 된다.
판타지 마스터즈 시즌2에 들어선 4레벨로서 능력치가 인플레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거의 쓰이질 않는다. 갓 나이트 찍은 유저가 멋모르고 그냥 써보다간 슬피 울 것이다.

3.7. 판타지로망스의 서번트 소드마스터 파이파이




[1] 당대 유럽의 검술가들은 검술이 지극히 합리적인 원리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검술을 두고 Science of Defence, 방어의 과학, 호신의 원리 정도의 의미로 불렀다. 기하학으로 검술의 원리를 해설하는 것도 그런 관념에 기반한 유행이었다.[2] 이는 외국계 검술가가 영국 내에 난립하면서 무술적/문화적 침공을 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하지만 헨리 8세에 의한 독점권과 인증을 받기는 했으되, 컴패니 오브 마스터는 국가 공인 길드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또한 17세기,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반독점법으로 컴패니 오브 마스터의 독점권한을 빼앗음에 따라 그 영향력을 잃고 서서히 사라져 간다.[3] 만화나 애니에서나 수십명의 적을 쓸어버리는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현실은 그런거 없고 그냥 하나라도 더 많은게 장땡이다. '''다구리가 최고의 필살기라는 말'''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양날검이었을 서양의 소드에 숙련된 검사들을 상대로 2~3대 1이 가능했다는 말은 차원이 다른 괴물이었다는 소리다. 잘 감이 오지 않는다면 한국사 최고의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척준경도 기록상 뒤에 병사 한명 없이 완전한 1대 다수 상황에서 한번에 '''죽인''' 최대 적은 3~4명이었다. (물론 그분은 10명 이상과 상대하면서, 생채기 하나 나지 않고 서너명을 죽인 것이긴 하다.)[4] 물론 서양의 소드 마스터는 어느정도 주기로 계속 배출되는 공무원 같은 개념이고 척준경은 한 나라의 역사를 통틀어 손꼽이는 전설적인 무장이기에 직접 비교하기는 애매하다. 애초에 이분은 뒤에 병사들이 따라오는 전시 상황에서는 단신으로 무장병사 십수명을 베어 쓰러뜨린 기행까지 선보인 기록이 있다[5] 또는 한스 리히테나워 등으로 읽을 수도 있다.[6] 정확히는 책 만드는데 본인과 가족의 재산을 다 소모했는데, PHM 본인부터 상당히 호화롭게 사는 타입이라서 횡령한 돈은 아마 생활과 유흥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7] 특히 안젤로 비자니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8] 가명이고 저자의 실체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현재까지로는 일단 가설 수준이다.[9] 특히 저기 언급된 독일 마스터가 리히테나워 본인일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혹도 있다[10] 요즘에는 간편하게 독일식, 이탈리아식, 프랑스식, 영국식, 그리고 스페인식 등등으로 나누지만 실제 중세시대때는 독일식에서도 스타일마다 차이가 많았다. 마치 김치에 어떤 가족은 설탕을 넣거나, 매실을 넣거나, 아니면 아예 안 넣는 것처럼, 독일식 검술에도 다 가르치는 사람의 개개인의 스타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사실상 유럽 검술은 수천가지가 넘는 독일식, 이탈리아 등등의 스타일이 넘쳐난다. 단지 지금 남은 것은 문서로는 몇가지 스타일 밖에 없어서 현재 검술인들은 그것을 참고하고 배운다. 하지만 남은 기록 또한 좀 애매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현대의 스타일도 중세시대의 검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자면 12 poste (12개의 자세) 들이 피오레 데이 리베리 쓴 책에서 나오는데 자세를 어떻게 해야되는 것은 자세히 나와있지만 그 transition이 자세히 안 나와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사람마다 약간 다르다.[11]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1번: 칼을 쥔 오른손 손바닥을 오른쪽으로 틀며, 손을 어깨높이 정도로 들어올리며, 다르디 학파의 유니콘 자세, guardia d'alicorno 와 비슷하다. 2번: 손바닥이 땅을 향하게 한다. 3번: 손바닥이 왼쪽을 향하게 하며, 손을 고간 높이 정도로 내린다 다르디 학파의 좁은 철문 자세, porta di ferro stretta 와 비슷하다. 4번: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며, 칼을 높이 들어올린다. 다르디 학파의 얼굴막기 자세, guardia di faccia 와 비슷하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 펜싱의 포지시옹인 프림, 스꽁드, 띠에르쓰, 껭뜨로 등으로 이어진다.[12] 표기에 따라 살바토레, 살바토어 등으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13] 이 사람의 콘트라템피, 즉 한 박자에 바로 역공하는 형들은 대각선으로 한 발자국 밟아주고 상반신을 눕히거나 숙여서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는 형들이 많다. 뛰어난 균형감각과 하반신의 힘과 유연성이 필요하다.[14] 번역하면 진정한 기예 정도에 해당한다. 데스트레싸는 영어로 Arts이며, 여기서는 무술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였으므로 진정한 검술이라고 써도 무방.[15] 98년작 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에서 주인공이 검술을 배우는 방식이다.[16] 일명 에스그리마 꼬뮨, 또는 에스그리마 불가. 천민의 검술, 천박한 검술이라는 뜻. 중립적으로는 에스그리마 안티과, 옛 검술이라고 칭한다.[17] 물론 한번에 꺽은게 아닌 각 소드마스터에게 도전하거나 도전을 받으며 1대1로 승리한 것.[18] 단순 드립으로만 볼 수 없는 게, 가시고기의 갈비뼈 한 개얼음별을 지배하는 우주해적 대장 바요킹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으며, 국자로 해골 부하 한 명, 고드름 하나로 부하 한 명을 처리한 엄청난 무술 실력의 소유자다. 게다가 검술은 왕년에 홍콩영화로 독학했다고. [19] 이 기술은 DMD에서 아그니&루드라의 체력을 '''50%''' 깎을 수도 있다. [20] 단적인 예로 3의 리벨리온은 스팅어, 헬름 브레이커, 하이 타임, 드라이브가 원 기술이고, 스타일 액션이 프롭, 슈레더, 에어리얼 레이브, 소드 피어스, 댄스 머카브르, 크레이지 댄스까지 뻔질나게 많은 액션 수를 자랑한다.[21] 정작 암흑룡과 문장 내에서의 나바르는 용병으로 분류되어있어서 오그마와 능력치(성장률) 이외엔 차별화가 되지 못했다. 이후 리메이크작인 신암흑룡에서는 나바르가 검사로 변경되면서 차별화에 성공. 물론 그대로 클래스체인지 시키면 이미지 그대로의 소드마스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