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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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image]
'''감독상'''
''' 제46회
(1974) '''

''' 제47회
(1975년) '''

''' 제48회
(1976년) '''
조지 로이 힐
(스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2''')

밀로스 포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각색상'''
''' 제44회
(1972년) '''

''' 제45회
(1973년) '''

''' 제46회
(1974년) '''
어니스트 타이디먼
(프렌치 커넥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리오 푸조
('''대부''')

윌리엄 피터 블래티
(엑소시스트)

''' 제46회
(1974년) '''

''' 제47회
(1975년) '''

''' 제48회
(1976년) '''
윌리엄 피터 블래티
(엑소시스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리오 푸조
('''대부 2''')

보 골드먼
로렌스 하우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각본상'''
''' 제42회
(1970년) '''

''' 제43회
(1971년) '''

''' 제44회
(1972년) '''
윌리엄 골드먼
(내일을 향해 쏴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에드먼드 H. 노스
('''패튼 대전차 군단''')

패디 차옙스키
(종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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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image]
'''감독상'''
''' 제36회
(1979년) '''

''' 제37회
(1980년) '''

''' 제38회
(1981년) '''
마이클 차미노
(디어 헌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로버트 레드포드
(보통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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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칸 영화제 '''
[image]
'''국제영화제 그랑프리'''[9]
''' 제26회
(1973년) '''

''' 제27회
(1974년) '''

''' 제28회
(1975년) '''
앨런 브리지스
(하수인)
제리 셰츠버그
(허수아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컨버세이션)'''

모하마드 라크다하미
(불타는 해의 연대기)

'''황금종려상'''
''' 제31회
(1978년) '''

''' 제32회
(1979년) '''

''' 제33회
(1980년) '''
에르마노 올미
(나막신 나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폴커 슐뢴도르프
(양철북#s-3)

밥 포시
(재즈는 나의 인생)
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


'''이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39년 4월 7일,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직업'''
감독
'''활동'''
1962년 – 2015년
'''학력'''
호프스트라대학교, UCLA
'''신장'''
182cm
'''가족'''
소피아 코폴라 (딸)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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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영화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함께 '''미국1970년대를 풍미했던 감독이다.'''

2. 상세


이탈리아계 부부의 아들로 아버지는 지휘자 카마인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의 지휘자를 담당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로저 코먼이 발굴한 로저 코먼 사단 중 일원으로서 1963년 코먼이 제작한 호러영화 《디멘시아 13》에서 감독과 각본으로 데뷔했다. 학생 시절부터 리더십이 강해 대학 연극부를 이끌었으며, 각본을 잘 쓰기로 유명해 영화사들의 시나리오를 봐주는 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배우들을 통제하는데 능수능란하여 기대를 받다가 독립 장편 <레인 피플>로 데뷔하였고, 곧 <대부> 프로젝트에 고용됐다. 영화사는 그를 재능 있는 신인 정도로 여겼으나 코폴라는 특유의 정치술과 리더쉽을 발휘하여 자기 입맛대로 영화를 만들었고, 대부 시리즈는 역사에 남을 성공을 이루어낸다. 그 뒤로 컨버세이션, 지옥의 묵시록 등 황금종려상을 2회나 수상하며 7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뼛속부터 고전 그리스 비극 덕후. 인물간의 신화적 갈등(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을 변주하는데 탁월하며 어릴 적부터 극단에서 짬을 쌓은터라 배우들 연기 연출에 도가 텄다. 명실상부 블록킹 (연기 동선) 연출의 대가이며, 실내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힘의 대결, 심리적 표현을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에 있어선 70년대의 일인자였다.
메이킹 영상을 보면 무려 알 파치노를 앉혀놓고는 똑같이 따라하라며 직접 연기를 시연하기도 하고, 대배우들 앞에서 전혀 기 죽지 않은 채 자신의 뜻대로 컨트롤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 유명한 게리 올드먼과 영화 찍을 때는 올드먼이 고집을 피우자 일부러 스탭들 보는 앞에서 고래 고래 모욕을 줘가며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옥의 묵시록을 찍을 때는 말론 브란도가 말을 안듣는 것은 기본이고 체중까지 수십 키로를 넘겨서 현장에 등장하자 묘안을 짜낸 것이 어둠 속에 그를 파묻어 버리고 자기 멋대로 독백하는 것을 찍어 명장면으로 만들어내는 등, 거물 배우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결과물을 뽑아내는 데에는 장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사업가 기질과 정치적 능력이 특출나 영화사의 입김을 감당해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선택과 결과물을 뽑아내는 데에는 교과서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이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고 거대한 현장을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있었고, 예술적인 능력 이외에도 영화 제작의 현실적 조건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났다. 물론 거장으로 인정받아 전권을 부여받은 지옥의 묵시록 제작시에는 과도한 야심 덕분에 스스로 죽을 맛을 보기도 했다만...
집안도 영화 집안으로 아내는 영화 제작자, 딸인 소피아 코폴라도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며 그녀의 오빠인 로만 코폴라도 뮤직 비디오 감독이자 영화 감독이다. 조카인 니콜라스 케이지(이 이름은 예명)와 크리스토퍼 코폴라[1]도 영화인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에 자주 나오는 제이슨 슈왈츠먼도 코폴라의 조카이며, 손녀인 지아 코폴라도 2013년 연출데뷔를 하였다.
내용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이 먹은 이후로는 사업가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혈연과 인맥을 중시하면서 이런 저런 사업을 많이 벌린 편이다. 가족들 대부분을 영화계에 입성시켰고 노인이 된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포도주 농장을 경영하며 편안히 사는 듯.
그 밖에도 영화 '대부'에서 여동생 탈리아 샤이어는 마이클 콜레오네의 여동생 코니 콜레오네로 출연하고[2] 친딸 소피아도 마이클의 딸로 출연하는데... 아기였을 때 연기는 그럭저럭 넘어갔으나, 어른이 되어서 출연한 대부 3부는 그녀의 발연기가 영화의 평가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그로 인해 소피아 코폴라는 각종 타블로이드에서 아버지와 비교되는 일이 많자 연기를 포기하고 사진촬영을 비롯 이런 저런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다 영화감독으로 전업하고 처녀자살소동으로 데뷔하였다.[3]
《대부》(1972) - 《컨버세이션》(1974) - 《대부 2》(1974) - 《지옥의 묵시록》(1979) 이라는 4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을 2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번[4]이나 받는 등 화려한 70년대를 보냈지만, 《지옥의 묵시록》 이후 코폴라의 영화들은 70년 대의 빛나는 작품들과는 다르게 매우 평범한 수준이다. 물론 《대부 3》를 비롯해 영화는 계속 만들기는 하지만, 주로 기획이나 제작에 더 많이 참가하고 있다. 물론 이후에도 기획 프로필을 보면 은근히 인지도있는 영화가 많다. 그리고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 나 《럼블피쉬》, 《아웃사이더(영화)》 등의 우수한 작품을 감독했다. 더불어 제작자로서 여러 영화도 제작,기획했는데 《슬리피 할로우》나 지퍼스 크리퍼스 시리즈 같은 영화 제작, 기획도 맡았으며 《카게무샤》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1997년 제작된 맷 데이먼, 클레어 데인즈, 대니 드비토 주연의 《레인메이커》 이후, 2000년대부터 만든 영화들은 평가들이 매우 안 좋다.
2007년 마틴 스코세이지가 《디파티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을 때,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와 함께 시상자로 나와서 감독상을 받는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라고 멘트를 했었다.
더불어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포도주 제조용 포도 농장을 경영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포도주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도 정식수입중이며,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도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5] 2013년에 해당 사업 관련해서 한국을 찾았는데 인터뷰 사진 하나 남기지 않아서 팬들도 소식을 몰랐다. 인터뷰도 영화 매체가 아닌 비즈니스 언론에서 진행했다. 이외에도 리조트, 레스토랑들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대부3의 재편집판인 THE GODFATHER CODA: THE DEATH OF MICHAEL CORLEONE를 개봉했다. 트레일러 영상에서 아직도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영상

3. 여담


마틴 스콜세지의 마블 영화 발언 대해서도 옹호하기도 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 대해서는 좋은 평을 남겼다.#
코엔 형제는 코폴라가 연출한 피니안의 무지개를 무척좋아한다고한다.#
프란시스 코폴라의 올타임 TOP10#
대부 제작 이야기를 그릴 <프란시스 앳 더 갓파더>에서 오스카 아이작이 연기한다.#
키가 182cm로 대부의 콜레오네 가족을 연기했던 배우들보다 전부 더 장신인데, 그 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더 작아보인다. 그러나 이는 배우들이 죄다 키높이를 신었기 때문이다.

4. 작품들



  • 대부 -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 작품.
  • 지옥의 묵시록 - 흥행에서 성공은 했으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코폴라 자신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래도 비평쪽에선 호평받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리덕스가 나오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아웃사이더(영화) - 럼플피쉬에 출연했던 맷 딜런이 다시 출연하였으며, S.E. 힌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수작으로 평가 받으며 미국 현지에서 크게 성공하여 현재까지 권장 영화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브랫 팩 군단의 시초를 만들어 냈다.
  • 마음의 저편 - 평가는 그럭저럭이었지만 흥행에서는 대참패를 거둬 코폴라에게 타격을 준 영화. 제작비가 2600만 달러[6]였는데 북미에서 겨우 63만 달러를 벌었다. 덕분에 코폴라는 파산 지경에 몰렸고, 이후의 영화들 중에는 이때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찍은 것이 많다.[7]
  • 터커 - 작품에 대한 평가는 좋았지만 흥행에서는 참패한 1988년작. 자동차 회사를 새롭게 세워 획기적인 차량을 만들어냈으나 포드와 GM같은 대기업의 횡포로 몰락해 비참하게 사라진 실존인물 프레스턴 터커(1903~1956)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영화부문),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수상작.
  •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 드라큘라를 로맨스 영화로 만들었다. 게리 올드만이 악역으로 출연했지만 로맨틱한 악역으로 출연했다. 평은 상당히 좋은 편.[8] 게리 올드만은 자신 특유의 캐릭터 해석력으로 색다른 분위기와 말투로 사람을 홀릴 듯한 그만의 드라큘라를 창조해냈다.
  • 커튼 클럽 - 마피아를 소재로 했지만 대부와는 다른 성향의 작품. 이름없던 시절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왔으며 리처드 기어, 다이앤 레인, 그레고리 하인스, 로렌스 피시번 등 제법 호화캐스팅이었지만, 제작비 5800만 달러에 겨우 2500만 달러를 버는데 그쳤다.
  • - 1996년작. 로빈 윌리엄스조로증 환자로 분한 작품. 느와르나 대하극 위주의 감독의 이력으로서는 독특한 성격의 작품(코미디, 가족물)이지만 이런다할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로튼토마토 신선도 19%)
  • 레인메이커(1997년 영화) - 1997년작으로 법정 드라마이다. 간만에 괜찮은 수작이 나왔다는 평이나 90년대 이후 코폴라 감독의 작품 이력이 그렇듯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 트윅스트 - 2011년에 제작된 호러영화. 7백만 달러로 만들어진 저예산 호러물...이었으며 미국 흥행 집계도 안될 정도로 쫄딱 망했다. 저예산 호러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평작 수준에는 들어가지만 감독 커리어에서는 엄청난 졸작으로 악평받고 있다!
  • 메갈로폴리스 - 드라마 연출을 맡으며, 9.11 이전 뉴욕의 이야기를 그린다. 20년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로 지옥의 묵시록보다도 훨씬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다고 한다.

[1] 니콜라스의 친형. 다만 감독이나 연기보다는 San Francisco Art Institute 에서 영화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80년대 국내에 개봉한 실비아 크리스털 주연 영화 드라큐라의 미망인을 감독했다.[2] 그 외에도 록키 시리즈에서 록키의 아내 애드리안 페니노를 연기했다.[3] 이후 도쿄를 배경으로 스칼렛 요한슨, 빌 머리가 주연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여성으로서는 처음 지명되었다. 다만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는지 커스틴 던스트, 엠마 왓슨과 작업한 영화들의 평은 미묘한 편.[4] 황금종려상 2회 수상을 기록한 감독은 2016년 기준으로 8명에 불과하다. 다르덴 형제, 이마무라 쇼헤이, 미하엘 하네케, 에밀 쿠스트라차, 빌 어거스트, 켄 로치 등 면면이 쟁쟁하다.[5] 비슷하게 《대부 2》의 비토 콜레오네가 자신의 가게에서 생산한 올리브유를 팔기도 한다.[6] 참고로 원래는 제작비가 2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엄청 뛰어오른 것이다. 코폴라는 지옥 같은 지옥의 묵시록 촬영 이후, 쉬어가는 느낌으로 소품이었던 이 영화를 찍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특유의 도전 의욕이 발생하여, 당시 새로운 매체이던 비디오로 영화를 촬영할 것을 결심하고, 이때의 시행착오로 제작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영화 자체가 흥행과 거리가 멀었고, 영사 방식 등의 문제로 결국 기록적으로 망했고, 이후 코폴라의 경력 내내 발목을 잡았다.[7] 대표적인 예가 대부3. 대부는 2편까지만 찍을 것이라 계획했었지만, 경제적 사정이 너무 안 좋자, 결국 다시 손을 댔다. 나중에 자기 입으로 여러차례 "대부3? 돈 때문에 찍었어요. 그래서 망한거에요 ㅋ" 라며 자조하기도 했다.[8] 다만 호러물을 로맨스물로 바꿔버렸다고 엄청 까이기도 했다.